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5 본문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5
) -->
) -->
70.모든 사람은 다 엑센트릭하다
그대의 존재가 100퍼센트 의식적으로 될 때 거기에 지복이 있다, 갈등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붓다는 옳다, 그대들 또한 옳다, - 그대들의 경험은 그
대가 더욱 민감하게 깨어 있을수록 그대 주위에서 더 많은 문제를 느끼게 된
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 -->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기나긴 졸음 속에, 일생 동안 계속되는 잠 속에 머물
러 있는 편이 더 낫다, 우리들이 자기의 성채를 산 위가 아니라 골짜기 아래
에 세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 -->
우리들은 우리들의 성채를 덧없이 지나가버리는 현상 위에, 일시적인 것
위에, 덧없는 것 위에 세우기 때문에 집이 다 지어져 갈 무렵 그것은 무너지
고 만다, 다 지어질 무렵에는 그것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이다.
) -->
왜 그럴까? 우리에게는 일시적인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단지 우리 곁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 순간만이 가까이에 있다.
) -->
그대는 하나의 순간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다음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것 또한 스쳐지나간다, 그대는 이렇게 지나쳐버리는 순간들만을 보고 전체적인 시각은 가질 수 없다.
) -->
전체적인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완벽한 의식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시
각을 가지면 그대는 삶 전체를 볼 수 있다, 삶 전체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이나교도들이 한 말 - 마하비라가 깨달음을 얻었
을 때 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 전체를 볼 수 있다 -의 의미이다.
) -->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말은 존재의 전체성이 그대들에게 밝혀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전체성이 분명해졌을 때에만 그대는 견고한 성채를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세울 수 있겠는가?
) -->
그대는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음 순간 그것이 무효화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대가 하는 것은 무엇이
든지 전체적인 것이 아닌, 모두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전체는 그것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전체
속에서 그것은 완전히 무의미해질 것이다.
) -->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중국인 스승에게 미국인 제자 한 명이 있었다, 이
제자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할 때 스승은 그에게 조각이 새겨진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다. “언제나 지켜야만 하
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대가 이 상자를 다른 사람에게 주더라도 그 조건
은 꼭 지켜야 한다, 내게 약속해라, 나도 이 약속을 지켜왔다, 그리고 이 약
속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몇 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조건이다.”
) -->
제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상자였
다, 아주 귀한 골동품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어떤 조건이라도 꼭 지키겠습니다.”
) -->
스승이 말했다. “조건은 간단하다, 그대는 이 상자를 집 안에 둘 때 언제
나 동쪽을 향하도록 두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항상 지켜온 약속이다,
그러므로 이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 -->
제자가 대답했다.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그러나 그는 그 상자를 가지고 가서 동쪽을 향하도록 두었을 때야 그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객실의 배치가 이상하
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 -->
동쪽을 향해 있는 그 상자는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객실 전체의 배치를 상자와 어울리도록 바꾸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집 전체가 이상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집 전체를 바꾸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원이 이상하게 보였다.
) -->
그렇게 되자 그는 너무 지친 나머지 스승에게 편지를 썼다, “이 상자는 위험 합니다, 저는 세계 전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만일 정원을 바꾼다면 그 다음에는 정원에 가까이 있는 이웃집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는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 -->
만일 그대들의 삶을 일시적인 것 위에 세웠다면 그대는 전체와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조
화되지 않는다, 무엇인가 늘 이상해질 것이다, 그대의 성채를 세우기에 앞
서, 그대의 집을 만들기에 앞서, 그대는 먼저 전체를 보아야 한다.
) -->
전체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대는 전체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
때 비로소 그대의 삶은 조화된 화음과 멜로디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렇지 않
으면 그대는 어딘가 이상하고 엑센트릭(accentric)하게 된다.
) -->
모든 사람은 다 엑센트릭하다, 이 말은 아름답다, 이 ‘엑센트릭’이란 말은
중심을 벗어났다, 어딘가 중심을 잃었다, 정확히 있어야 할 지점이 아니다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 모든 사람들은 다 엑센트릭한 것일까? 왜 모두
중심으로부터, 초점으로부터 벗어나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 -->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순간적인 것에 의해서 삶을 창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간은 전체가 아니다, 순간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영원 속의 아주 작고 하찮은 조각이다.
) -->
이렇게 순간적인 것에 의해서 그대의 삶을 세우려 한다면 어떻게 전체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말한다, “너희의 삶을 순간적인 것에 세우지 말고, 전체에 의해서, 영원한 것에 의해서 창조하라.”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 -->
그대의 성채는 늘 무너지고 있다, 그대의 성채는 언제나 폐허가 된 채로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수에게 물을 것까지도 없다, 단지 자기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
그것은 폐허이다, 그대가 그것을 짓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폐허이다, 그대는
폐허가 된 성채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 시간을 초월한 것에 대한 시각을 그대는 가져야 한다.
) -->
이러한 시각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대의 의식이 높아질수록 그대의
시각은 더욱 커진다, 의식이 낮을수록 그대의 시각도 낮아진다, 길가의 나무
아래에 서서 바라보라, 그대는 하나의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 -->
그대는 그 길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퉁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모퉁
이에서 그대의 시야는 멈춘다, 나무에 올라가서 한번 바라보라,
그러면 그대는 넓게 트인 시야를 가지게 된다.
) -->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그대는 도시 전체를 조감하는 시야를 갖게 된다,
높이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진다, 낮아지면 시야도 좁아진다, 의식의 사다리에는 단계가 있다,
만일 그대의 의식이 최고 정점에 있다면, 거기에서 한번 보라, 영원한 것이 보일 것이다.
) -->
아주 작은 것을 관찰해 본 일이 있는가? 그대가 나무 아래에 서 있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다, 그때 그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한다.
“우마차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 -->
그대는 이렇게 말한다. “우마차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존재한다는 말인가?”
) -->
그 우마차는 그대에게 있어서 미래의 것이다, 그러나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현재의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
그대의 현재는 그대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현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의식의 사다리에 있는 단계 중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에 달려있다.
) -->
붓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다, 거기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시각은 완전하다,
예수에게 있어서도 모든 것은 현재이다, 거기에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래는 없다, 그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최고 정점에서 보면 전체가 보인다.
) -->
거기엔 과거라는 것도 없고 미래라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미래가 존재하는 것은 그대들의 한정된 시각 때문이지 미래라는 것이 세상에서 필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 -->
그것은 단지 그대들이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대가
가진 시각의 영역으로부터 나온 것이 과거가 되고, 아직 거기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미래가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 영원 속에 있다.
) -->
시간이란 그대들이 만든 것이다, 그것은 그대들이 골짜기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비주의적 전통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사마디에 들거나, 황홀경에 있거나, 깊은 명상 중에 있을 때 시간은 사라진다.”
) -->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아무런 구별 없이,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대의 성채를 시간을 초월한 곳에 세워라, 순간적인 것 위에 세우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늘 폐허가 되어 있을 것이다.
) -->
왜냐하면 현재는 덧없이 지나가버려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왜 나는 그대가
아직 세우지도 않은 것을 두고 그것은 폐허가 된다고 말하는가? 그대가 그대
의 성채를 세우는 순간, 그 순간은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제 더 이상 그대의 손 안에 없는 것이다, 그대가 딛고 서 있는 대지는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 -->
예수는 왜 이 ‘성채’라는 말을 썼는가? 현재 상태의 그대는 늘 두려움이나 불안 속에, 그리고 위험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사는 골짜기는 유령들과 그림자들, 그리고 적들과 증오로 가득 차 있다.
) -->
71.무의식 상태가 되고 싶어 할 때 그대는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 -->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파리 한 마리가 슈퍼마켓 근처를 날고 있었다, 그
슈퍼마켓 윈도우에는 살충제 광고가 하나 붙어 있었다, 파리는 그 선전 문구
를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크고 붉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파리를 즉
석에서 죽이는 최신식 스프레이, 품질보증.” 파리는 그 광고를 읽고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날아갔다. “세상은 너무 많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단 말이야.”
) -->
그대들은 골짜기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는 죽음만이 보증되어 있
다, 그대들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고 있다, 아무것도 보증된 것은 없다, 오
직 죽음만이 보증되어 있다.
) -->
그대들은 삶 속에서 죽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관찰해 본 일이 있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대에
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죽음에 대한 보증뿐이다, 그것뿐이다, 골짜기에서
는 이것만이 확실하다.
) -->
그대는 죽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밖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며 우연
일 뿐이다, 그것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삶이기에 죽음만이 보증되어 있단 말인가? 그럴 수밖에 없다, 죽음은
오직 어둠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오직 무의식 속에서만 존재한
다, 무의식은 죽음으로 가는 통로이다.
) -->
그대가 무의식 상태가 되고 싶어할 때 그대는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내부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충동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높은
곳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 -->
프로이드는 그의 말년에 한 가지 심오한 사실에 직면했다, 그는 그것을
타나토스(thanatos), ‘죽음에 대한 욕구’라고 불렀다, 그는 일생 동안 리비도(libido)에 대해서 생각해 왔다, 즉 인간은 삶에 대한 의지로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 -->
그러나 그 삶에 대한 의지를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확신을 잃게 되었다, 삶에 대한 의지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는 그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 -->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는 일차원적으로 사고하
는 사람, 일원론적인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가였기 때문이다, 리
비도의 배후에 - 삶에 대한 욕망과 삶에 대한 의지 배후에 - 죽음에 대한
의지, 타나토스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었다.
) -->
그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가 언제나 말해왔던 것, 예수가
말해 왔던 것이었다, 즉, 지금 상태의 그대는 너무나 쓸모 없고 그대의 삶
전체는 무의미하다, 욕구불만에 꽉찬 나머지 그대는 죽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 -->
무의식 상태가 되고 싶어 무언가를 할 때면 거기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욕
구가 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일시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단 며
칠만이라도 잠자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잠은 일종의 일시적인 죽음이다.
) -->
그대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 만일 그대가 날
마다 8시간씩 죽을 수 없다면 그대는 다음날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삶이 그토록 혼란스럽고, 산다는 것이 도무지 축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차라리 죽는 것이 오히려 축복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잃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기쁨을 느낀다, 그대가 만일 정치운동 속에
서 자기를 잃는다면, 그대가 만일 나치에 가담하여 군중 속에서 자기를 잃는
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그대는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군중이 있을 뿐이다.
) -->
독재자가 성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욕구가 있
기 때문이다, 20세기에서조차 독재자들은 성공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
게 쉽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 -->
이것이 전쟁이 늘 존재하는 이유이며 전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존재할 것
이다, 그대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 변형되지 않는다, 죽음
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기 때문에 전쟁은 없어지지 않는다.
) -->
그대들은 죽고 싶어한다, 그리고 죽이고 싶어한다, 산다는 것이 너무도 무거
운 짐이기 때문에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그대가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그대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 -->
그렇지 않다, 단지 그대는 두려울 뿐이다, 그대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간다, 정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더욱더 풍요로운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약속을 한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넘치는 생명을 주겠다.”
) -->
예수는 말한다. “나는 생명이다, 위대한 생명이다, 나에게 오라!” 그러나
예수에게 가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골짜기 속에다 삶의 어두운
길에다 많은 투자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 -->
그리고 그대들은 생명력 있는 삶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대들은 지나치게
생명력 잇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편들을 마련한다, 그대는
최소한의 삶의 영역 안에서 존재한다, 그대는 마치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그대는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변환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생명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생명력 있는 삶을 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 -->
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폭력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죽일
것이다, 그러한 모든 노력은 결국 지구 전체를 자살로 몰고 갈 수 있는 정치
를 만들어냈다.
) -->
수소폭탄이 바로 그것이다, 왜 과학자들은 그들의 전 생애를 바쳐 끊임없이
파괴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헌신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 내부에 있는 깊은 욕망 때문이다.
) -->
죽는 것, 어떻게 해서든 죽고자하는 욕망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
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의식적인 것이라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변형
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여러 번이나 그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 -->
그리스의 철학자 필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일 큰 축복은 태어
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 축복은 가능한 한 빨리 죽는 것이다.”
) -->
그는 이 두 가지만이 유일한 축복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같은 행운을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은 이미
태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것만이 가능하다.
) -->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는 일, 그러나 필로 자신은 97세까지 살았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자살하지 않는 겁니까?” 필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죽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이 메시
지를 전하기 위해 참고 사는 것이다.”
) -->
자살은 하나의 뿌리 깊은 본능이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느
낄 때 그대는 순간적으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종교적인 사람이란
이러한 죽음에 대한 깊은 의지가 자신의 내부에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을 말한다.
) -->
왜 죽음에 대한 의지가 거기에 있는 것인가? 그대는 그대 자신 속에 좀더
많은 빛을 가져와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죽음이 그대 내면의 구석에서
끊임없이 그대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
어느 날 갑자기 그대가 죽는 것은 아니다, 그대는 70년에 걸쳐서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이란 최후에 오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탄생과 함께 시작
된다, 호흡 하나하나, 순간순간이 단지 죽음의 연속일 뿐이다, 그것은 너무도
느린 과정이라서 70년이 걸려야 완성된다.
) -->
그대는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대는 종말을 기다리
고 있다, 빠를수록 좋다, 그대가 자살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삶을 참아내는 것이다.
) -->
그대는 삶을 신이 그대에게 준 선물로서 즐기지를 못한다, 그대는 삶을
참아낼 뿐이다, 그대는 간신히 그것을 끌고 다닐 뿐이다, 삶이라는 기차
에서 내리게 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 -->
이런 일이 있었다, 토마스 에디슨이 어느 날 친구들이 모이는 만찬에 초대
를 받았다,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항
상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혼자만 일하는 사람이었고, 사색적인 탐구가였다.
) -->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방해가 되었다, 그날의 만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먹거나 잡담하거나 토론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이곳을 빠져나갈 기회다!”
) -->
그래서 그는 막 빠져나갈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만찬의 주인이 그를 붙잡고 말했다. “에디슨 씨, 요즘 연구하고 계
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 -->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출구!”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출구를 생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 -->
그대들은 삶을, 신이 내려준 선물을 왜 즐기지 못하는가? 그대들의 삶은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하나의 은총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존재계가 그것을 그대에게 준 것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다.
) -->
그것은 단지 하나의 선물이다, 순수한 선물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가?
) -->
당연히 그대는 춤추며 즐겨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환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뇌하고 근심하는 데에
자각은 필요 없다, 고뇌하고 근심하는 데에는 더 깊은 어둠이 필요하다, 의식
은 적을수록 좋고 밤이 필요하다, 낮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환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더 깊은 자각이 필요하다.
) -->
) -->
72.이 목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던 날, 그들은 엄청난 불장난을 한 것이다
) -->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슬퍼보이는 성자를 만난다면 그대는 그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깨어 있음은 충만한 기쁨을 주는 것이며, 깨어 있
음은 자기 존재 전체에 깊은 웃음을 가져다 주는 것이며, 깨어 있음은 어린아이와 같아지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가져다준다.
) -->
그는 나비를 쫓아 뛰어다닐 수 있다, 그는 조촐한 음식에 만족하며 삶의 가장 평범한 것들을 즐기므로 모든 것들은 하나의 선물이 된다, 모든 것이 신이 내려 준 은총이므로 그는 한순간 한순간을 감사할 수 있다.
) -->
숨쉬는 것 조차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숨쉬는 것까지도 즐긴다, 호흡이란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슬픈 표정의 성자를 만난다면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 -->
그는 여전히 골짜기에서 살고 있다, 그는 정상을 향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는 광휘가 있을 것이다, 가볍고 신선한 기운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걱정도 없고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의식 안에 견고한 성채를 세운 것이다.
) -->
왜 의식이 그대를 성채로 만들어주는가? 그것은 그대의 의식이 높아질수
록 그대는 점점 자신은 죽을 수 없으며, 죽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은 오직 어둠의 골짜기에서만 존재한다.
) -->
그리고 만일 그대가 죽음을 물리칠 성채를 얻는다면 그대 자체가 견고한 성채이다, 그대가 의식적이면 의식적일수록 그대는 자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자신이 신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 -->
지금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골짜기이다,
거기에서 죽음이 생겨난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떨면서 살아
간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그대는 거기에서 두려움밖에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
왜냐하면 그대 주변에는 오직 죽음뿐,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주변에 있는 것이 죽음뿐이라면,
내면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 -->
만일 그대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대의 내면에는 사랑이 있고 영
원한 것들이 주위에 있게 된다, 거기에 두려움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대는 파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불멸의 존재이다, 그대가 죽
을 가능성은 없다, 그대는 죽지 않는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한 성
채의 의미이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기억하라, 높은 산이 바로 그 성채라는 것을)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 -->
이 말은 매우 역설적이다, 골짜기 속에서 그대는 끊임없이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산꼭대기 위에서는 결코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이 역설적인 것
은, 우리들은 사람들이 산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
골짜기에서 왜 굴러 떨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평지에서 사람들은 걸어다니
지만 높은 곳에서는 떨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
에서는 아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일단 그 높은 곳을 획득하면
결코 그곳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
그대가 만일 내면의 세계에서 그것을 성취하기만 하면 그 어느 것도 그대로
부터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다, 그러나 바깥 세계에서는 이와 반대이다.
) -->
사람들은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높은 곳이란 골짜기
에 속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높은 곳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명성을 얻고 있
다면 머지 않아 그대는 그 명성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대가 왕좌
에 앉아 있다면 그대는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대가 이 세상에서 성
취한 것은 무엇이든지 영원히 성취된다.
) -->
그것은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앎’은 사라질 수 없다, 그대가 일단 그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그대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그대의 소유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존재가 되고 그대는 그것을 버릴 수가 없다.
) -->
그대가 죽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앎을 잊을
수 있겠는가? 깨달은 것을 버릴 방법은 없다, 그리고 버릴 수 없는 것이야말
로 진정한 지식이다, 버릴 수 있는 지식은 단지 기억에 불과하다, 그것은 앎
이 아니다, 그대는 기억만을 잊을 수 있지 앎은 결코 잊을 수 없다.
) -->
앎이란 그대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잊어버릴 방법은 없
다, 그것은 그대의 존재, 그대의 일부, 그대의 존재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대는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대의 일부
가 되지 않는 것뿐이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 -->
그대는 그것을 숨길 수 없다, 산꼭대기 위에 세워진 성채는 당연히 알려지
게 된다, 그것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붓다를 어떻게 숨길 수 있단 말
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를 어떻게 숨길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현상이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는 너무도 깊이 침
투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은 끝없이 지속된다.
) -->
그대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수는 있지만 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
고 그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단
지 한 인간이, 그것도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 죽었을 뿐이다, 그것은 전혀 중
요하지 않다.
) -->
그 누구도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했음
에 틀림없다, 만일 그대가 어느 목수의 아들을 죽였고 그것이 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였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 십자가 때문에 2천년 동안 대대에 걸쳐 고통 받고 있다.
) -->
한 사람의 남자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벌을 받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태인들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옳다, 실제로 그 일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것이다.
) -->
그러나 예수와 같은 사람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예수에 관한 한 그
십자가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예수와 같은
사람에게 결코 과거는 없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사건이다, 그는 지금 십자
가에 매달려 있다.
) -->
유태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한 일이다, 그 일
을 행한 사람들은 지금은 없다, 우리는 결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 속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그 일을 하지는 않았다!”
) -->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이제 하나의 영원한 사건이 되었다, 이제 와서
그것을 과거 속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상처가 되었다, 그 상처는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 -->
그리고 유태인들은 고통받아왔다, 그들이 받은 고통은 너무나 컸다, 단 한 사
람 때문에 이 20세기에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때문에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그것은 불공평하게 보인다.
) -->
그러나 그대들은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수백만의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들이 이 목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던 날, 그들은 엄청난 불장난을 한 것이다.
) -->
그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숨기려고 했다, 유태인들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기록이 없다, 기독교인들의 기록에는 존재하지만 유태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 -->
그러나 그것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유태인들은 멸망하기 시작했다, 그들
은 태양 앞에서 눈을 감으려고 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사건 전체의 비극적 요소이다, 그들이 예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 -->
예수는 유태인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유태인으로 머물렀다, 그
는 결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유태인들은 이 사람을 수천 년 동안 기다려왔
다, 과거에 그들의 예언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을 구원해 줄 분이 오
신다, 머지 않아 너희의 구세주 되실 분이 곧 오실 것이다.”
) -->
지붕 위에서 예언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유태인들에게 이렇게 예언해 왔다,
그리고 유태인들은 이 사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 사람이 왔을 때 그들은 그를 거절했다,
이 사람이 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당신은 오기로 약속된 그분이 아니다.” 왜 그랬을까?
) -->
마음에 있어서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희망과 욕망
을 가지고 계속해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그대의 문을 두드릴
때면, 기억하라 그대 또한 거부할 것이다.
) -->
그대가 하느님이 오시기를 열심히 기도해 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느님이 문을 두드리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왜 그대는 거부하는가?
) -->
그것은 그대라는 집 안에는 한 사람밖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그대의 문을 두드릴 때 그대는 사라져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 -->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대는 존재할 수 있다, 그대의 에고는 존재할 수 있
다, 유태인들은 약속된 사람이 유태 민족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 대단
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선택된 민족이었다, 하느님은 그들을 선
택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그들의 집안에서 태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 -->
그들의 에고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약속된 이 사람이 와서 그들의
문을 두드리고 “나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 당신은 약속된 그 사람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죽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
문제는 인간적인 것이다, 문제는 예수가 존재하면 그대는 사라져야 한다
는 데 있다, 그대는 그의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대는 항복해야만 한
다, 에고에게 있어서는 약속된 사람이 자신들에게, 선택된 민족에게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왔을 때 그를 받아들
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
73.'아니다'는 언제나 끝이며 '그렇다'는 언제나 시작이다
) -->
그들은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은 이 모든 사실을 잊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갖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희망을 가지고 있다, 유태인들은 아직도 약속된 사람이 언젠
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 -->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그가 만일 다시 온다면 - 천만에, 그는 오지
않는다 그는 이전에 경험으로 배운 바가 있기 때문이다 - 그가 만일 다시 온
다면, 그들은 또다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유태인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다, 단지 산꼭대기에 세워진 성채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해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 -->
그들은 산꼭대기 위에 세워진 성채를 숨기려고 했다, 태양을 숨기려고 했다,
그들은 진리를 숨기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 -->
그러나 진리는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 그대는 그것을 죽일 수 없다, 그
것은 영원하며 죽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 때문에 고
통을 받아왔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 -->
이러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유태인은 한 사람도 없다, 죄의식은 마치 그림
자처럼 따라다닌다, 그 죄의식은 약속된 사람이 왔을 때, 그 사람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유태인들은 마음속 깊이 자기들이 최악이라고
할 만한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이 문을 두드렸을 때
그를 거부한 것이다.
) -->
그리고 그는 그대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올 때,
그는 이방인으로서 올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기대한 대로 온다면 그는 신이
아니다, 신은 늘 이방인이다.
) -->
늘 미지의 형태로서 그대를 두드린다, 그는 그대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는 오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늘 미지의 형태로, 신비의 모습으로
머무른다, 그대들은 그가 그대들이 생각하는 공식대로 오기를 원한다, 천만에!
그는 어떠한 공식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죽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죽은 것
만이 공식을 따른다, 삶이란 하나의 신비로서 사는 것이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
너희는 너희의 두 귀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거나
숨겨진 곳에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
오히려 그것을 등경 위에 얹어놓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도록 할 것이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두 사람 모두 도랑에 빠질 것이다.
) -->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의 두 귀로 들은 것
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거나 숨겨진 곳에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
예수는 말한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가서 ‘미지의 것’이 너희
들의 세계로 들어왔다고 전하여라, 가서 너희들의 평범한 세계에 신비의 것
이 들어왔다고 전하여라, 가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그것을 알고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지붕 위에서 외쳐라 부끄러워하지 말라!”
) -->
이것에 관해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예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틀림없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
나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매우 어렵다.
) -->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고 그대가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구세
주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대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예수는 하느님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대가 완전히
돌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아라,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해라, 어딘가 이상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 -->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가 깨달았다는 것을 알 때마다 그것은 그대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대도 그렇게 될 수 있는데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이다.
) -->
그대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그대의 에고는 상처를 받는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왜 나는 아닌가?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어야 하는데, 도대
체 예수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단 말인가?”
) -->
자기 자신을 변형시켜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부정해 버리
는 것이 더 간단하다, 그 편이 훨씬 쉽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일은 없다 단지 ‘아니다’ 라고만 말하면 끝난다.
) -->
만일 그대가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것은 새로 시작된다, 끝나는 것은
없다, ‘아니다’는 언제나 끝이며 ‘그렇다’는 언제나 시작이다.
) -->
그대가 만일 ‘그렇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변형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사실을 긍정만 하고 있
을 수는 없다, 그대는 움직여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부정
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 -->
그렇게 되면 그대가 무엇을 하든, 어느 곳에 있든 - 골짜기 속이든, 어둠 속
이든, 죽음 속이든, 그대는 편안하다, 예수는 그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붓다는 그대들의 중심을 흔들어놓고 불안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한다.
) -->
만일 한 인간이 그렇게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렇지 못한 그대
의 입장은 어떠한 것인가? 그렇게 높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편이 그대에게
는 더 낫다, 그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어둠 속에서 안주한다, 그대는 편안할 수 있는 것이다.
) -->
예수나 붓다와 같이 깨달은 사람들은 그대들에게 아주 엄청난 긴장을 준
다, 그들은 그대를 골짜기로부터 뿌리째 뽑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대들을 잠
에서 흔들어 깨우며 이렇게 말한다, “움직여라! 여기는 머물 만한 곳이 못된다!”
) -->
예수가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 세상은 단지 하나의 다리에 불과
하다, 움직여라! 이곳은 집을 만들 만한 곳이 못 된다, 다리는 건너가라! 멈
추지 말라, 다리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
이 세상은 단지 다리에 불과한데 그대들은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대들은
이곳이 다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만일 안다면 그대의 노력과 수고, 모든 투자
와 이 집을 짓기 위해 소모한 그대의 전 생애는 어떻게 될 것인가?
) -->
그런데 이제 어떤 방랑자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곳은 다리이다!” 그러므로 다리 아래에 흐르는 강물은 아예
내려다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 -->
이 세상이 왜 다리라는 것일까? 예수나 혹은 예수 같은 사람들은 한마디
의 말도 결코 무의미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다리는 강 위에 걸려 있기 때문
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강이란 순간적인 것이다, 시간이란 단지 순간적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과도 같다, 그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 -->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 -->
왜냐하면 그대가 두 번째로 발을 담글 때면, 그 물은 이미 흘러가버렸기 때문 이다 지금은 또 다른 물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 전에 흘렀던 물이 아니다, 그대들에게 강은 똑같은 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은 고정 되어 있지 않다.
) -->
강이란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흐르고 또 흐른다, 예수는 이 세상을 왜
다리라고 불렀을까? 그대들은 그것을 일시적인 것 위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간, 시간의 강,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이 다리로부터 움직여 나아가라,
이곳은 집을 지을 만한 곳이 아니다.
) -->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와서 그대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 “오십 년 동안 집
을 지어왔고 이제 거의 다 완성되었다.”라고 그대가 생각하고 있을 때 - 그대는 다음 말을 기억해야 한다.
) -->
그대에게는 언제나 거의 다 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것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그 집을 세우기 위한 노력과 긴장으로부터 그대가 휴식하려 할 때 만일 이 남자가 와서 “여기는 강 위다”라고 말한다면.
) -->
그대는 그를 믿고 강을 내려다보기보다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장 사라져라,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런데도 이 남자가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마치 예수가 계속해서 주장한 것처럼 그가 주장한다면 그대는 노여워질 것이다, 그대는 그 남자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대단한 싸움이다.
) -->
소크라테스는 독살당했다, 왜냐하면 이 남자 때문에 아테네 전체가 불안
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의 어디에서건 그대들을 붙잡고 불편한 질
물들을 할 것이다, 그대들의 안락한 거짓들을 여지없이 부술 것이다.
) -->
그는 아주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골짜기 속에서 현자들은 언제나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신적인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을 불러일으켜주었기 때문이다.
) -->
그는 말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여기는 강이고 이곳은 다리이다, 당신들은 이 다리 위, 시장의 한복판에다 집을 세우고 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 진리를 구하라!” 소크라테스는 너무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독살해야만 했다.
) -->
74.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놓쳐버렸는지를 안다
) -->
골짜기 속에서 이런 일은 언제나 있어왔다 만일 눈이 보이는 사람이 맹인
들의 마을에 간다면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혹은 만일 사람들의 마음이
친절하다면 그들은 그의 눈을 수술할 것이다, 그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 -->
왜냐하면 거기에 간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그들을 장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님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와서 “당신들은 장님이다 당신들은
미쳐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한 것들이 근심을 만드는 것이다.
) -->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한다. “가서 지붕 위에서 외쳐라!” 왜 지붕 위
인가? 사람들이 거의 귀머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듣지 못하
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듣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은 듣지 않는
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 -->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의 마음은 지루해 한다, 그들은
진실을 듣는 것을 참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기뻐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그대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대들은 허위의 골짜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
그대의 삶 전체가 허위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왔고, 자
기 자신에게도 그래왔다, 모든 것을 허위로 둘러싸버렸다, 그런데 지금 누군
가가 와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일 온갖 병에 걸려 있는데도 자신은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당신은 병들어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
“이 사람은 악한 존재다, 이 사람은 나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나의 건강은 이상이 없다.“그대를 깨어 있게 하기 위해, 그대에게 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예수는 말한다. “가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 너희가 나에게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등불을 켜서 그것을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 -->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빛이 거기에 있다, 이제 그것을
숨겨서는 안 된다. “...... 그것을 숨겨진 곳에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등경 위에 얹어놓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도록 할 것이다.”
) -->
이것은 언제나 문제였다, 붓다, 마하비라, 노자, 예수, 모하메드, 짜라투스
트라...... 이들은 늘 제자들에게, 가서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강조해야만 했다,
기회는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육신을 가지고 영원히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 -->
만일 그가 육신을 가지고 존재했을 때 그대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가
육신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 어떻게 그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만일 그의 육체의 현현이 그대에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우주로 사라져버린 그가 어떻게 그대에게 보여질 수 있겠는가?
) -->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어둠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은 아주 드
물다, 그것은 아주 희귀한 현상이며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예수는 언제나 급하게 서둘렀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
는 이 지상에서 아주 한정된 시간을 가졌었다. 그는 세른세 살에 죽었다.
) -->
그가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그리고 서른세 살에
그는 죽었다, 단지 3년 동안이었다, 그는 매우 서둘렀다, 그는 십자가형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각성시켜주고 깨우쳐주라! 문은 열려 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 -->
그러나 제자들은 언제나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가르치기 시작한 것
은 예수가 죽고 나서부터이다, -이것 역시 늘 일어났던 현상이다, 예수가
이 지상에서 사라졌을 때에야 제자들은 자기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
지를 깨달은 것이다.
) -->
예수가 존재하는 동안에 그대들은 예수가 빛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만다,
그 빛이 사라지고 암흑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그대는 놓쳐버린 그 빛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대는 지붕 위에서 외친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가능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 -->
그대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그렇게 해왔다,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다, 예수가 빛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문은 사라져버렸다, 이제 예수
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 -->
그는 지금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빛이 존재할 때 그대가 그것을 볼 수 없었다면, 예수를 볼 수 없게 된 지금 어떻게 그대가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그대 앞에 그 문이 열려 있을 때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이제 전혀 보이지 않게 된 그 문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 -->
그러나 제자들은 빛이 사라졌을 때 정신을 차린다, 그들은 소리 내어 울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대는 대립되는 것을 통해서만 알게
된다, 그대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 -->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
게 해서 그것을 놓쳐버렸는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죽을 때에만 자기가 살아 있음을 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놓쳐버린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두 사람 모두 도랑에 빠질 것이다.
) -->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 가서 사람들에게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전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길을 잃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인
도가 필요하다, 그대가 비록 붓다나 예수 같은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해도
그대는 여전히 누군가를 따르고 있다, 따라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는 안다”라고 말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
예수 같은 존재는 매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붓다와 같은 이는 매일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성은 항상 존재한다, 적당한 음식을 구하
지 못하면 그대는 좋지 않은 음식이라도 먹게 된다, 왜냐하면 배고픔은 매일
존재하기 때문이다.
) -->
그리고 장님을 찾아내기는 아주 쉽다, 그대가 바로 장님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의 언어를 이해한다, 장님을 따라가기가 아주 쉬운 것은 두 사람
모두 같은 어둠의 세계, 같은 골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
눈 먼 사람에 의해서 그 사람이 스승이라고 설득당하는 것이, 눈이 멀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 설득당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눈이 보이는 사람
은 다른 언어로, 다른 세계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이질적이므
로 그대들은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 -->
그릇된 스승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대 스스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
이다, 그 스승과 그대 사이에는 무언가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
수는 말한다. “만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두 사람 모두 도랑에 빠질 것이다.”
) -->
이런 이야기가 있다, 물라 나스루딘이 죽었다, 그리고 그의 두 제자들도
자살을 했다, 스승이 없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라
가 인도를 했고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
) -->
세 사람은 함께 저쪽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 문은 아름다웠다, 나스루딘이
말했다. “보라! 이것이 바로 내가 약속한 것이다, 나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 왔다, 우리는 천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 -->
안내인은 그들을 아름다운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당신들은 여기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
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즉석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 -->
물라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보라! 이것이 내가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나
는 그것을 지켰다,” 7일 동안 그들은 황홀하게 지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무엇이든지 가능했다, 수많은 생에 걸쳐
서 쌓아온 욕망들이 7일 동안에 성취되었다.
) -->
노력할 필요도 없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7일째가 되었을 때 그들은 심한 권태감을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을 때 그대는 그것을 즐길 수 없게 마련이다, 그리고 욕구와 성취 사이에
있는 시간의 틈도 없이 그것을 즉석에서 얻는다면, 그대는 싫증을 내게
된다, 부자들이 삶에 싫증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 -->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그렇
지 않다, 왕족들을 보라, 그들은 죽어 있는 상태이다, 모든 것에 싫증을 내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가난보다도, 궁핍보다도 더 큰 문제이다.
) -->
7일째 되는 날 그들은 싫증이 났다, 그들은 최고의 미인들을 즐기고 최고
급의 포도주와 최상의 음식을 먹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황제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7일째 되는 날 물라는 안내인에게 부탁했다.
“잠시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으니 지상을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좀 열었으면 좋겠소.”
) -->
안내인이 물었다. “무엇 때문입니까?”
) -->
물라가 말했다, “다시 흥미를 느끼고 싶어서요, 욕망을 다시 찾으면 도움
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내인은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세상에 있
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사는 인간들은 일생 동안 아무리 애써도
얻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고 다시 욕망을 되찾았다.
) -->
그들은 또 7일 동안을 즐기면서 보냈다, 그러나 또다시 싫증이 났다, 그러
나 똑같은 약은 효과가 없다, 아래 세상을 보는 것으로는 이제 별 도움이 안
되었다, 면역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물라는 이렇게 부탁했다.
) -->
“또 하나 어리석은 부탁을 좀 해야겠소, 지옥이 보이는 문을 열어줄 수는
없겠소? 우리가 지옥을 본다면 미각을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요, 하지만 두려운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다음에는 더 이상 할 짓이 없으니까요.”
) -->
그러자 안내인은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들은 지
금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지옥에 와 있었던 것이다.
) -->
그대의 욕망이 모두 이루어지면 그대는 지옥에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무욕이 주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는
것은 오직 욕망을 이루기 위한 투쟁뿐이다.
) -->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은 즐거움은 기다림 속에 있는 것이지 만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쁨은 열망 속에 있는 것이지 달성하는 데 있지 않다, 이것은 그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모든 것이 충족된다면 그대는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는 지옥에 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영성수행 비전 > 도마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 -17 (0) | 2018.12.09 |
---|---|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6 (0) | 2018.12.09 |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4 (0) | 2018.12.09 |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3 (0) | 2018.12.09 |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2 (0) | 2018.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