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6 본문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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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그대가 예수 가까이에서 침묵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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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대가 장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설
령 그대가 천국에 이른다 해도 그것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바르게 보지
못하면 절대로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 천국이란 실제로 도착해야 하는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
그것은 의식의 상태이다, 지리적으로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다,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옥이나 천국은 둘 다
그대의 내면에 존재한다.
) -->
그러나 그대가 장님을 따르고 있다면 어떻게 그가 그대를 가장 높은 곳까지
인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그대를 골짜기 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인도될 필요가 있다, 그 필요성을 잘 알아야 한다.
) -->
그대들은 인도받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인도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장님 인도자라도 있는 편이
더 낫이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 상태이다.
) -->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가서 지붕 위에서 사람들에게 ‘여기에 스승이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쳐라!”
) -->
예수가 나타났다, 이런 기회는 아주 드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놓
쳐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달려가서 이 남자를 붙잡아라,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은 짧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그런 짧은 순간들이다, 그때 그는 하나의 문이다, 그대는 그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모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 -->
스승이란 그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승이란 그대의 잠을 깨워주
는 사람이다, 스승이란 그대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스승이란 그대에게 그대 자신의 존재를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사
람이다.
) -->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만일 예수가 침묵을 지켰더라면 아무도 그를
십자가에 매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급하게 서둘렀다, 그는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 -->
아무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오해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이
지상에 세워지는 왕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 -->
예수가 “나는 왕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가 이 나라의 왕권을 탈취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온유한 자들은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말
하면, 사람들은 그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약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 -->
정치인들은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예수가 말한 ‘왕국’ ‘왕’, ‘땅을 물려받는다.’ 등의 모든 말들이 정치적인 용어였기 때문이다, 사제들 역시 불안을 느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율법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 -->
사랑은 언제나 율법을 초월한다, 사랑은 어떤 율법도 따르지 않는다, 사랑
은 가장 높은 최상의 법이다, 그대가 사랑하고 있을 때 모든 것이 잘 된다, 사랑은 아무것도 잘못되게 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규칙이나 룰 같은 것이 없다.
) -->
규칙이나 룰이 존재하는 것은 그대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사랑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규칙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규칙들은 그대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상대방
으로부터 그대가 상처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대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상처 입힐 수 있겠는가? 규칙들은 사라진다.
) -->
예수는 궁극의 법, 사랑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사제들은 두려움을 느끼
게 되었다, 재판관들이나 법에 관계된 사람들은 그가 혼란을 일으켜 무정부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그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
이런 일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붓다
나 마하비라, 예수, 짜라투스트라, 모하메트를 경험한 지금, 우리는 반드시
더욱 깨어 있어야만 한다.
) -->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옛날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
운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인간이 가진 우매함이란 근원적이고 확고한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그 우매함을 계속해서 합리화한다.
) -->
그러한 우매함과 무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리고 그 우매함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적으로 보인다, 친구는 적으로 보이고 적은 친구로 보
인다, 그대를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길을 잃게 하는 사람인 것 같이 보이므
로 장님이 그대의 인도자가 된다.
) -->
먼저 그대 자신이 인도받을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라, 그것은 아름다운 일
이다, 그것은 탐구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급하게 아무나 따르지는 말라, 누
구를 따를 것인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무엇이 그 판단 기준이 되는가?
길을 찾는 사람에게 이것은 가장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 -->
누가 예수이고 누가 장님인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확실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실성의 일별은 가능하다, 그대는 처음
부터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사물이 가진 본질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 -->
장님이 어떻게 상대방이 장님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유일하게
확실한 가능성,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가 보기 시작할 때
에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인도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그대가 붓다가 되면 달리 붓다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대가 예수와 같이 되면 그대는 예수를 알 필요도, 예수를 따를 필요도 없다,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이다.
) -->
그대는 장님이므로 인도자를 찾아야만 한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그
사람이 한 말에 의해서? 그렇다면 그대는 속고 있다, 학자나 법사나 성직자
들, 그들은 말에 관한 한 아주 영리하다, 아무도 그들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
들은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예수는 말솜씨에서는 빈약하게 보일 것이다.
) -->
유태인 대제사장은 그를 쉽사리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까비르나 붓다는 논쟁이나 이론을 통해서는
쉽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말을 통해서 판단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속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 -->
예수 같은 사람은 오직 그의 존재에 의해서 판단된다, 그에게 가까이 가
라,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그의 존재에 귀기울여라,
이것이 핵심이다, 단지 그에게 가까이 가라, 힌두교에서는 이것을 사트상,
‘단지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어떤 존재인가
를 느끼는 것이다.
) -->
존재는 진동한다, 존재는 피어난다, 존재는 향기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
대가 예수 가까이에서 침묵할 수 있다면 그대는 그의 침묵을 듣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그대를 환희에 넘치게 할 것이다, 그 침묵을 그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며, 사랑과 자비로 넘치게 할 것이다.
) -->
그것이 바로 그대의 진정한 인도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그대가 학자
나 지식인에게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
만일 그대가 그의 말을 듣는다면 그는 위대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만일 그의 존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의 삶의 고동을 듣는다면, 그도 역시
그대처럼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가 그대보다
더욱 비참할는지도 모른다.
) -->
자신의 비참함을 숨기기 위해서 그는 말만 뛰어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론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고 논쟁을 일삼는다.
) -->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논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표현하고 단지 말할 뿐
이다, 예수의 이 말들을 보라, 그는 논쟁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이유들도 내
세우지 않는다, 그는 그저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단순하게 표현할 뿐이다.
) -->
높은 산 위에 견고하게
잘 세워진 성채는
무너질 수 없고 결코 숨겨질 수도 없다.
(거기에 논쟁은 없다, 단순한 사실의 표현이다)
) -->
너희는 너희의 두 귀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거나
숨겨진 곳에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등경 위에 얹어놓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도록 할 것이다.
(거기에 논쟁은 없다, 어떤 것을 증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표현
하고 있을 뿐이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
만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두 사람 모두 도랑에 빠질 것이다.
(사실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다)
) -->
지식인라면 이 말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대
들은 그 말에 속게 되는 것이다.
) -->
그대가 스승을 찾는 중일 때는 그의 존재를 들어라, 그의 존재에 귀 기울
이는 방법을 배워라, 단지 그의 가까이에 있으라, 그리고 가슴을 통해 그를
느껴라.
) -->
그대는 갑자기 삶이 변해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는 자석의 힘과 같기 때
문이다, 그대는 그대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을 느낄 것
이다, 그대는 전과 다르다.
) -->
그대 내면의 방은 미지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그대의 무거운 짐은 한
순간에 떨어져나가는 듯하며, 그를 통해서 그대는 마치 날개를 얻은 것처럼
느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체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만이 그대로 하여금 올바른 사람, 그대를 인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 -->
그대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그는 그대를 그대 자신에게로 인도한다,
지식만 가진 사람들은 그대를 어떤 다른 곳으로,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으
로, 미래의 어딘가에 있는 목적지로 인도하려고 한다.
) -->
그러나 붓다나 예수 같은 존재의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도 인도하지 않는다,
단지 그대 자신에게 인도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목적지가 바로 거기이기 때
문이다, 그대 자신이 바로 목표이며 목적지이다.
) -->
가슴을 통해서 듣는 자, 사트상, 그것이 바로 그대의 진정한 인도자를 판
단하는 기준이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자들이 그대를 수많은 생에 걸쳐서 인
도할 것이고, 계속 되풀이해서 눈먼 인도자와 그대는 모두 도랑에 빠지게 된다.
) -->
마지막으로 도랑에 관해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가 “그들은 도랑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이 ‘도랑’이란 자궁을 말한다, 눈먼 사람이 그대를 인도할 때 그대도 인도자도 둘 다 다시 자궁 속으로 빠진다, 도랑이란 바로 그것이다, 그대와 인도자는 비참한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
똑같은 고뇌가 새로운 형태의 삶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본질적인 것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똑같다, 모든 것이 똑같다, 단지 외면적인 형태
만이 변했을 뿐이다, 그대는 다시 지옥에, 비참한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자궁
이 그 도랑이다.
) -->
존재의 사람이 그대를 인도할 때 그대는 결코 도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대
는 다른 차원에서 태어난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은 더 이상 가치가
없다, 그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다른 곳이란 바로
신을 말한다, 다른 곳이란 바로 니르바나(열반)를 말한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
76.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비교를 통해서 내가 누구와 같은지
내게 말해 보라.
) -->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 -->
마태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많은 것을 아는 현자와 같습니다.
) -->
도마가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여,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내 입은 말할 수 없습니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스승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취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금지한 끓어오르는 샘물을 마시고
취해 있기 때문이다.
) -->
그리고 예수는 도마를 데리고 가서
그에게 세 마디의 말씀을 하셨다.
) -->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은 그에게 물었다.
예수께서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 -->
도마가 그들에게 말했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한마디라도 말한다면
너희는 돌들을 집어서 내게 던질 것이다,
그러면 그 돌들에서 불길이 솟아나
너희를 태워버릴 것이다.
) -->
) -->
예수나 붓다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그는 그대들에게 있어서 죽음과 같
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 -->
물론 그대들은 달아나는 것을 합리화시킬 것이고 왜 달아나는지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대들은 마음속으로 주장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 -->
그대들은 그에게서 무엇인가 잘못된 점을 찾아낼 것이고 그럼으로써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대들은 그를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를 만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이고, 그대들은
그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그대들은 그의 앞에서 자신의 거짓됨
을 감출 수가 없다, 그대들은 마치 펼쳐진 책과 같다.
) -->
지금까지 그대는 숨기며 살아왔다, 그대의 전 생애는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한 삶이다, 그대는 거짓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대를 꿰뚫어볼
것이다.
) -->
그의 앞에서 그대는 떨리는 나무 잎사귀에 불과하다, 그의 앞에서 그대는
그대의 진실 속으로 떨어뜨려질 것이다, 그의 앞에서 그대는 그대의 거짓된
이미지를 계속 유지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대에게 하나의 재난이 될
것이다.
) -->
그러므로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그에게로 가까이 갈 수 있다, 예수 같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그대가 깊은
심연으로 몸을 던져서 그대 자신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
육지도 보이지 않고 지도에 나타나 있지도 않은 망망한 대양이 주는 위험
속에서, 예수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것이 문제이다,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를 따를 것이다, 그에게서
달아나는 사람들은 그를 놓칠 것이며 그들 자신의 삶의 의미도 발견하지 못
할 것이다.
) -->
그러나 그대가 예수에게서 달아나는 것은 그대 자신의 진실로부터 달아
나는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그대의 미래이며, 그대의 가능성이다, 그로부
터 달아나는 것은 그대의 궁극적인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 -->
그러나 그에게 온 사람들일지라도 단지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
으로 그를 맞아들일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달아난 사람들은 달아난 사람들
이다, 그들은 끝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일
지라도 그를 피할 수는 있다.
) -->
왜냐하면 그들은 잘못된 이유를 갖고 그의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천의 사람들 중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선택할 것이며,
또한 그를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 모두가 다 올바른 이유를 가지고 그와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이유를 가지고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역시 그를 놓쳐버릴 것이다.
) -->
그대는 잘못된 이유를 가지고 깨달은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대가
무슨 이유를 가지고 그의 곁에 있으려고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대는
왜 스승에게 가려고 하는가? 그대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는 진리
를 추구하는가?
) -->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그대는 진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진리를 얻었을 때 생겨나는 것이
다, 그러나 그대가 만일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대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 -->
행복은 하나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것을 직접 얻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행복은 진리를 통해서 찾아온다, 그대가 진리에
도달하면 행복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행복은 하나의 그림자이다, 그것은
진리를 따라온다, 그러나 그대가 행복을 추구한다면 행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대는 진리도 놓칠 것이다.
) -->
백 명 중에서 아흔아홉 명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들은 많은 고통을 가지고
있고, 삶은 불행하다, 그들은 해독제를 찾고 있다, 반대의 것을 구하고 있다,
행복을 구하기 위해 예수나 붓다에게 간다면 그대는 다시 한번 잘못을 저지
르는 것이다.
) -->
그대의 눈은 닫혀 있다, 행복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저절로 성취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부산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 -->
나무를 키워보라, 그러면 꽃은 저절로 피어난다, 처음부터 꽃을 얻으려 들지
말라, 그러면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를 돌볼 때, 때가 되면 꽃은 피어난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 -->
그대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적용된다, 그대가 깊이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그대는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을 느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 -->
만일 그대가 한순간이라도 행복해 본 일이 없다면, 결코 행복감을 맛본 적이
없었다면, 그대는 그것을 추구할 수가 없다, 왜 행복을 추구한단 말인가?
행복의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행복을 목표로 삼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 -->
그대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었고 잠깐 동안 머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잠깐 동안의 행복, 그리고는 다시
고뇌, 아침은 잠시 찾아왔을 뿐 다시 밤이 된다, 그대는 행복을 느끼기는 했
으나 그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대의
행복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라.
) -->
그대가 행복을 느낄 때, 그대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았었다, 이것이
바로 행복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다, 행복이란 그대가 어떤 다른 것을 추구
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 -->
예를 든다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과학적인 진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과 연구와 사색에 몰두하였다.
) -->
그는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자기 목욕
탕 물 속에 누워 있을 때 그것이 일어났다, 그것이 떠오른 것이다, - 그는
그것을 깨달았다.
) -->
그는 알몸이었지만 자기가 알몸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대가 행복
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잊어버린다, 만일 그대가 자신을 잊지 못한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그대 자신이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이란 오직 자기가 사라지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 -->
아르키메데스의 문제는 해결되었고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는 큰 소리로
외치며 거리로 달려나갔다. “유레카, 유레카!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 그것을
알아냈단 말야!”
) -->
사람들은 그가 미친 줄 알았다, 그들은 줄곧 이 아르키메데스라는 사람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들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은 나쁘다.” 그들은 늘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이 아르키메데스야말로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미쳐서 알몸으로 거리에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유레카!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
) -->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그 순간 그는 얼마나 황홀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인 진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보통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제 그것은 단지 평범한 사실이 되었다, 일단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은, 그 후
에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렸고,
그리고 그는 너무 행복하고 황홀해서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그대가
행복할 때에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대가 추구했던 것은 다른 무엇
이었지 행복 자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
만일 그대가 행복 자체를 추구한다면 그대는 영원히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부산물이다, 그대가 어떤 것을 찾는 데 몰두하다가 드디어
그것을 발견했다면, 그 발견이 그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모든 노력은 이완되고 모든 긴장은 사라진다, 그대는 편안해지고, 평화스러워지며, 휴식 상태에 있게 된다, 그리고 그대는 행복한 느낌으로 가득 차게 된다, 행복은 하나의 부산물이다.
) -->
) -->
77.예수는 몇 번이나 말했다, "판단하지 말라!"
) -->
) -->
첫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만일 그대가 행복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그대 자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추구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지 못한다, 거기에 에고가 남아 있다, 그대는 여전히 판단하는 자로 남
아 있는 것이다.
) -->
행복이 일어날 때 그대는 거기에 없다,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보라, 그대는
거기에 없었다, 행복은 깊은 사랑의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고, 무엇을 발견하
는 순간에, 혹은 그대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느낄 수 있다.
) -->
그때 그대는 자기를 잊어버린다, 돌연 그대는 거기에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라도 행복으로 연결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구하려는 것은 위험
하다, 그대는 그것을 놓쳐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
만일 그대가 행복을 구하려고 스승에게 간다면 그대는 그릇된 이유로 스
승 곁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잘못된 이유 속에 숨어 있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먼 거리에 있다.
) -->
그대의 눈은 멀어 있고 그대는 예수나 붓다 같은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대의 두 눈은 잘못된 목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
혹은 그대가 행복을 구하지는 않더라도 더 낮은 차원의 목적이 있을 수 있
다, 그대는 권력을 얻기 위하여 스승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대는 어떤 시드히
(siddhi:신통력)를 구하려고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대는 좀더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곁에 있을 수도 있다.
) -->
그렇게 되면 그대는 그를 완전히 놓치게 될 것이다, 더욱더 차원이 낮은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차원이 낮으면 낮을수록 그를 놓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대는 더욱 눈먼 장님이 되기 때문이다.
) -->
그대는 건강 같은 아주 평범한 이유로 그의 곁에 있을 수도 있다, 그대는 병을 가지고 있고 예수는 그대를 치료해 줄 것이다, 또는 그대가 가난하다면 예수는 그대에게 돈을 줄지도 모른다, 그의 축복은 그대에게 돈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그대에게 자식이 없다면 그는 그대에게 자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 -->
목적의 차원이 낮으면 낮을수록 그대는 더욱더 그를 놓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목적의 차원이 낮을수록 그대는 더 깊은 골짜기에 있게 되기 때문이
다, 그리고 예수는 언덕 정상 위에 존재한다,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 -->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달아났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진정으로 그의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올바른 이유를 가지고 온 사람만이 그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올바른
이유란 바로 진리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왜 이것을 찾지 않는가?
) -->
진리는 왠지 하찮아 보이고, 메말라 보이고, 서둘러 구할 필요도 없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행복은 가치 있어 보인다, 그리고 만일 내가 “진리를 추
구하라, 그러면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대는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할 수도 있다.
) -->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대는 여전히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대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진리를 찾기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마음은 여전히 행복이라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 초점은 틀린 것이다.
) -->
오직 그대가 진리를 추구할 때에만 그대는 붓다나 예수, 혹은 짜라투스트
라 같은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대가 다
른 이유 때문에 그들의 곁에 머문다면, 그대는 육체적으로는 그들 가까이 있
을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가
존재하게 된다.
) -->
이제 예수의 말을 보자.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
너희는 비교를 통해서 내가 누구와 같은지
내게 말해 보라.
) -->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는 말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제자들을 통해서 알아야만 했다는 말인가? 왜 그는 제자들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했는가?
) -->
그들이 하는 대답은 그들이 예수 곁에 머무는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기가 바라고 있는 바에 따라 스승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대가
만일 병 때문에 예수 가까이에 있다면 예수는 치료자가 된다, 그대는 자신이
가진 욕구에 따라 그를 보게 되고 자신이 가진 욕구를 투영하는 것이다.
) -->
그대에게 만일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예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전지전능한 자가 된다, 그래야만 그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불멸의 것을 찾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불사의 것
을 염원하고 있다면, 예수의 이미지는 그대가 추구하는 바를 투영할 것이다.
) -->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보라고 했을까? 그는 단지
그들이 무엇을 투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 -->
만일 그대가 무엇인가를 투영하고 있다면 그대는 놓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나 붓다 같은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투영하지 않는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느 것도 투영해서는 안 된다, 그대는 단순히 사실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 -->
예수가 바로 하나의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사실이다, 그를
곧바로 바라보라, 거기에 그대의 욕구를 개입시키지 말라, 어떤 투영된 이미지를 만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보는 것은 단지 그대 욕망의 투영일 뿐이다.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교를 통해서 내가 누구와 같은지
내게 말해 보라.
) -->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 -->
이자는 도덕주의자이며 청교도였음에 틀림없다, 이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비도덕성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 대
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 -->
그것은 오직 그대 자신에 대해 보여줄 뿐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 관하여
판단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절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대 자신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 -->
예수는 몇 번이나 말했다. “판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가 하는 모든
판단들은 빗나갈 것이며 그대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
게 있어서 도둑은 하나의 죄인이다, 왜 그런가? 그대는 그대가 소유한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둑에 대한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대의 소유욕을 보여줄 뿐이다.
) -->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영국인이 죽어서 지옥에 도착했다, 악마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느 지옥을 선택하겠느냐? 여기에는 모든 종류의 지옥이 있다, 영국식, 독일식, 중국식, 소련식, 인도식......”
) -->
영국인이 대답했다. “인도식이 좋습니다!”
) -->
악마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는 영국인 같은데 왜 인도식을 택하는 거지?”
) -->
영국인이 말했다. “나는 영국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인도에 가본 적이 있
는데 인도에서는 보일러가 언제나 고장입니다, 그래서 인도식 지옥은 뜨겁
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
그대의 마음은 경험을 축적한다, 그대가 지옥에 대해서든, 천국에 대해서
든,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든지 간에 그것은 바로 그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이야기하는 모든 단어에 투영되어 있는 것
은 바로 그대 자신이다.
) -->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 -->
그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정의로운’이라는 말인데, 그는
언제나 불의를 두려워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는 늘 죄를 두려워하고,
비도덕적인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가 예수에게 투영하
고 있는 것은 불의나 비도덕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가 예
수와 함께 있는 이유이다.
) -->
이것을 기억하라, 반대의 것은 서로 끌어당긴다, 그대가 남자라면 그대는
여자에게 끌린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반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이다.
) -->
그러나 여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반대의 것이기 때문
이다, 이것에서 결혼의 불행이 일어난다, 결혼은 반대에 대한 매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대가 그 반대의 것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겨난다.
) -->
모든 면에서 그녀는 상반된다, 그녀의 논리는 그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결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남자는 남자답게 생각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
그들은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좀더 직관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하다, 여자는 결론으로 건너뛴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여자가 옳다, 그것이
더욱 문제를 일으킨다.
) -->
여자는 남자를 설득시킬 수 없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하든 남자를 설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여자는 그것에 대해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통찰력이 있다, 여자는 즉시 알아본다.
) -->
한번은 물라 나스루딘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법정에 열두 명의 여자
배심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집에서 한 사람의 여자조차 속일 수가 없는데 여
자 배심원들이 열두 명이나 있으니 속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어서 처벌하십시오.”
) -->
모든 남편들은 여자를 속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아무리 그대
가 궁리를 다해도 집에 도착하는 순간 사태는 틀어진다, 아내는 그대를 붙잡
고 정확하게 아픈 곳을 찌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그 능력은 남자와 다른 것이다.
) -->
여자는 결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서로 반대의 것끼리 끌리
는 원인이다, 왜냐하면 오직 신비스러운 것만이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
나 그 이해할 수 없는 반대의 것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싸움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
든 끊임없이 갈등과 싸움이 일어난다.
) -->
) -->
78.삶이란 전적으로 무(無)도덕적인 것이다
) -->
) -->
반대되는 것은 서로 매력을 느낀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포기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만일 그대가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면 그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성자에게 찾아갈 것이다.
) -->
인도의 자이나교도들을 보라, 그들은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
고 부자가 되는 것은 탐욕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포
기한 성자들을 숭배한다, 그들은 성자들이 옷 입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 -->
엄격한 자이나교 성자 디감버(digamber)들은 입을 옷조차 소유하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지낸다, 그들이 소유한 것이라고는 오직 그의 맨몸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 -->
그들은 음식을 손으로 받아야만 하고 그것도 한 번만 허용이 되며 두 번은
받을 수가 없다, 그들은 땅바닥에서 잠을 잔다, 그래서 그들은 디감버라고
불리는 것이다, 하늘만이 그들의 이불이며, 그들의 집이요, 지붕이다, 왜 이러
한 일이 생기는가?
) -->
모하메트는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슬람(islam)이라는 단어는 평화
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을 보라,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
적인 사람들이다.
) -->
그들은 왜 모하메트의 평화의 종교에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 반대되는 것이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것은 늘 매력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의
기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의 기본 형태는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대를 따라다닌다.
) -->
시몬 베드로는 예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 -->
이 사람은 자신의 비도덕성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옳든 그르든 그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예수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예수가 마치 천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
맑고 순수한 예수는 결코 죄를 짓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
니 없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왜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믿는가?
) -->
섹스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비도덕적인 것으
로부터 태어났다면 어떻게 그대가 도덕적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근원이
죄로 물들어 있는데 어떻게 그대가 도덕적일 수 있는가?
) -->
그대는 노력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해질 수는 없다, 그 비도덕성은 근원에서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
아무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주장하고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 -->
만일 예수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는 게 증명된다면 기독교인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비도덕적이다, 우리는 죄 속에서 태어났고 그도 역시 죄 속에서 태어 났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 -->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 -->
천사는 단지 절대적인 완전함, 순수함, 순결함을 상징한다, 이것은 시몬
베드로에 대한 어떤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는 기독교 교회의 반
석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끊임없이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 -->
모든 교회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어야 했다, 이것은 시몬 베드로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가 죄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쓸 때 그대는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삶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
삶이란 전적으로 무(無)도덕적인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이지도 비도덕적
이지도 않다, 그것은 무도덕적인 것이다, 삶은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삶은 그 양쪽 어디로든 움직이며 그 둘 다
를 내포하고 있다.
) -->
삶은 하나의 흐르는 강이다, 그대는 흐르는 강물을 선하다고 하겠는가,
악하다고 하겠는가? 흐르는 강물은 홍수가 나면 수천의 가옥들을 휩쓸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고통 받는 수많은 수재민들을 만들어
낸다, 그대는 이 흐르는 강물이 악하다고 하겠는가? 그대는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 -->
강물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대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그대 안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물 속에도 존재 한다, 나무가 넘어져서 그 아래에서 명상을 하고 있던 성자가 죽었다고 하자 그대는 그 나무를 어떻게 부르겠는가?
) -->
죄인? 살인자? 그 나무가 법정에 출두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다, 그대는 이
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나무이다, 우리가 말하는 죄라든가, 무죄라든가
하는 것들은 이 나무에 적용되지 않는다.“
) -->
도덕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신은 무도덕적인 존재일 것이다, 모든 존
재는 무도덕적이다, 무도덕이란 그 둘 다 아니거나, 또는 그 둘을 다 포함하
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대가 만일 도덕적인 마음을 가지고 예수에게 간
다면 그대는 그를 놓치고 만다.
) -->
성 베드로, 이 시몬 베드로는 예수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그는 도덕적인 사람
들, 성자를 찾고 있었지 현자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 -->
그리고 이것이 성자와 현자와의 차이점이다, 현자는 삶처럼 무도덕적이
다, 그는 반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자는 옳은 것은 선
택하고 잘못된 것은 거부한다, 그는 절반의 삶만 살며 삶 전체를 살고 있지
않다, 성자는 진정으로 종교적이지가 않다.
) -->
왜냐하면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그대가 거부하는 것은 곧 신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대는 그대가 신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애쓰는 셈이다.
) -->
한번 생각해 보라, 신이 섹스를 창조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것을
창조했겠는가? 그리고 그대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대는 성자가 될 수 있지
만, 그대의 성자다움이란 단지 도덕적인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것이 될 수 없다.
) -->
힌두교에서는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베다 시대의 리쉬(rishis.현자)들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처자를 거느렸다, 그들은 한 집안
의 가장이었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 -->
포기는 자이나교, 불교와 함께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힌두교의
리쉬들은 언제나 아주 평범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이란
그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부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 -->
이것이 바로 유신론(theism)의 참뜻이다, 아스티카(astika)란 삶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이 성 베드로는 훌륭한 사제, 성인은 될 수 있지만 현자는 될 수가 없다, 그는 그 자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 때문에 그는 예수에게 온 것이다.
) -->
만일 그대가 너무나 많은 도덕적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
나겠는가? 그대는 자신을 비난할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되었다는 말만으로
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될 것이다.
) -->
이런 사람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여자들은 아름답고 거기에 욕망이 존재
한다, 그 욕망은 신의 선물이다, 그것은 그대의 모든 털구멍과 세포 속에 깊이 잠재해 있다.
) -->
과학자들은 인간의 신체에는 칠천만 개의 세포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세포는 성적인 것이다, 그대의 몸 전체는 하나의 성적인 현상이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지, 그대가 눈을 감든지, 아니면 히말라야로 숨어버리든지,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대를 유혹할 것이다.
) -->
꽃은 매우 아름답다, 그대는 그것을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 역시 성
적인 것이다, 성자의 오두막집과 또는 은둔자가 사는 토막집 근처에서 아침
에 우는 새 소리는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그대는 이 새 울음소리가 성적
인 유혹이라는 것을 관찰해 본 일이 있는가?
) -->
새는 자기의 파트너, 즉 연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꽃은 어떤가? 꽃이란
하나의 성적인 현상이다, 꽃은 단지 속임수에 불과하다, 나무는 스스로 움직
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성 세포를 벌이나 나비, 혹은 다른 방법에 의해서
다른 나무에게로 옮겨야만 한다.
) -->
나무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뿌리가 땅에 박혀 있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다, 꽃은 벌이나 나비, 그리고 다른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이다, 그들은 꽃으로 날아온다, 그리고 벌과 함께 성 염색체는
옮겨진다, 벌은 암컷 나무에게로 간다, 그러면 씨앗은 그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 -->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성이 있다, 삶 전체는 하나의 성적인 현상
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대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대의 손
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대가 거부할 때 그대는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왜냐
하면 그대의 깊은 곳에는 성에 대한 억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
그대는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대가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할 수는 없다, 기억하라, 죄의식을 가지고서는
춤을 출 수가 없다, 죄의식은 그대를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다, 그대가 어디를
가더라도 그대는 웃을 수가 없다, 그대는 기쁨 속에서 살지를 못한다, 왜냐
하면 언제나 그대는 그 억압되어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
만일 그대가 춤추고 노래하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 억압된 것에 무엇이 일
어나겠는가? 그것은 위로 떠오를 것이며 그대는 끊임없이 그것을 지켜보아
야만 한다, 그대는 삶의 주인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 감시자가 되는 것이다.
) -->
그리고 모든 것이 추해진다, 왜냐하면 거기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기 때
문이다, 그대의 에너지는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낭비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사람은 자기 존재를 억압하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을 비난
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 -->
) -->
79.하느님은 이론이 아니다
도덕주의자와는 같이 지내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비난
의 눈으로 그대를 보기 때문이다, 차를 마셨다는 이유로 그대는 비난을 받
을 것이다, 차 한 잔 마시는 것조차 그는 보아 넘기지 못한다.
) -->
그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그는 비난할 것이다, 간디
의 아쉬람에서 그대는 음식을 즐길 수 없다, 거기에서는 무미의 맛없는 음식
만이 허용된다, 그대는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은 즐기지 못한다.
) -->
왜 맛을 즐기는 것을 거부하는가? 맛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자들은 즐거움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웃거나 미소 짓고 있는 성자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슬프게 보인다, 언제나 자
기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고 있다, 그의 삶 전체는 병들어 있다, 그는 행복할
수가 없다.
) -->
이 시몬 베드로는 상징적이다, 그는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당신에게 온 이유는 당신은 순수하고 동정녀 어머
니에게서 태어났고, 결코 결혼하지도 않았으며, 세속적인 삶을 즐기지도 않
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순수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천사로 보는 것입니
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
마태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많은 것을 아는 현자와 같습니다.
) -->
이 마태는 도덕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그는 지식을, 좀더 과학적
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
문에 그는 삶의 신비에 관한 해답들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
다.
) -->
“이 사람은 어떤 열쇠들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나는 그로
부터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마태는 이렇게 지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 -->
그러나 예수 혹은 예수 같은 사람에게 갈 때에는 지식을 추구하고 가서는
안 된다, 예수는 마치 대단한 지식을 가진 학자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확하고 진실 되기 때문이며, 그가 말하는 것은 모
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
그러나 그대는 그의 말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그의 존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마태라는 사람은 학자였다, 그는 원리와 이론과 체계와
철학을 추구해온 사람이었다, 만일 그대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수에게
간다면 그대는 그를 놓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
이다, 그는 존재의 사람이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 -->
지식이란 표면적인 것이고, 빌려오는 것이며, 죽은 것이다,
이 사람은 살아 있다, 전적으로 살아 있다!
) -->
이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누구로부터 빌려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깨달았 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그대와 나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로부터 단지 말만
얻으려 한다면 그대는 어리석다, 이런 말들은 책에서도 얻을 수 있다, 예수에
게까지 갈 필요가 없다, 도서관에 가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축적된 많은 지식들이 있다.
) -->
그대는 그에게로 가서 그대 존재의 갈증을 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대는 단지 몇 개의 단어만을 가지고 가버린다, 그대가 어느 황제에게
찾아갔는데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내가 그대에게 그것을 이루어 주겠
다”라고 말했는데도 그대는 단지 빵 한 조각만을 청하고는 행복하게 가버린
다.
) -->
그저 청하기만 하면 나라 전체가 그대의 발 아래 있게 될 참인데, 그대는
몇 개의 단어만을 얻고, 이론을 배우고, 신학자가 된다, 이 마태라는 사람은
기독교의 뿌리 신학자이다.
) -->
그 이후에 기독교는 두 가지의 것에 연루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거론한
것이다, 베드로는 교회의 도덕성과 섹스 반대 성향의 기반이 되었고, 그 기
반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 -->
마태는 신학의 기초가 되었고 그것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는 두
가지 것에 귀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구별하는 도덕성과 신학, 하느님에 관한 이론이 그것
이다, 신학은 하느님에 관한 이론이다, 그러나 하느님에 관한 이론은 있을 수가 없다.
) -->
하느님은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되거나 반증되어야 하는 가설이 아니다, 그대는 하느님에 대해서 논쟁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가 있었을 때에
그대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느님이 그곳에 있었다, 하느님이 이 사
람 마태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 -->
그러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장애물이 된다, 그대는 예수에게 지식을 구해
서는 안 된다, 그대는 존재를 구해야만 한다, 지식을 얻기는 쉽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변형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말만을 듣고 그것
을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
그대 편에서는 자신을 변형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대가 존재를 구한다면
그대는 침묵을 지키고, 깊은 명상 속으로 들어가서 단지 고요함 속에서 현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예수는 자신의 존재를 그대에게 쏟아넣을 수가 있다.
) -->
마태가 예수에게 대답했다. “당신은 많은 것을 아는 현자와 같습니다.”
) -->
예수는 현자가 아니다, 그는 지혜 그 자체이지 현자는 아니다, 그대는 깨
닫지 않고서도 현자가 될 수 있다, 현자들은 많이 있다, 공자는 현자였다, 그
러나 깨닫지는 못했다, 마누(Manu)도 현자였다, 그러나 그도 깨닫지는 못했
다.
) -->
붓다는 깨달았다, 노자도 깨달았다, 그들의 지혜는 전적으로 다른 원천으로
부터 온다, 그들은 삶의 가장 중심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앎’을 얻었다,
그들의 지식은 지능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지식은 존재를 통해서
얻은 것이다, 내가 예수를 존재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지식의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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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현명해진
다, 바보라도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 시간이 지혜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단지 살아가면서 실수를 범하고, 방황하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많은 경험들
이 그대를 현명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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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는 그런 식으로 현명하지는 않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이 아니었 다, 그는 겨우 서른 살밖에 안 된 아주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인생의
경험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그런 식으로 현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생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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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삶이라는 나뭇가지들을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뿌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리고 마태는 그것을 놓쳤다, 그는
지식을 모았다, 예수가 말한 것이면 무엇이든 모았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복음서를 만들었다, 그는 이론들을 짜놓은 것이다, 베드로나 마태,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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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도마는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제자
였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들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와 그
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은 제외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
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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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여,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내 입은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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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말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
고, 넘쳐흐르고 있으며, 수많은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입으로는 그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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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비교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틀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대단히 한정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당신은 광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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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마는 말한다, “스승이여,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내 입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말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말 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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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는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갔다하더라
도 여전히 멀리에 있다, 거기에는 아직도 틈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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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달마 대사에게도 있다, 그는 9년 동안 중국에서 살았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쳤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명상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달마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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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는 네 명의 제자들을 불러 다르마(dharma), 즉
‘진리’에 대해서 말해 보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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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처음 세 사람은 위에서의 그 세 사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시몬
베드로, 가장 피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 마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베드로
보다는 약간 깊이가 있지만 아직 멀리에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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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달마는 예수보다는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정말로 침묵
을 지키고 있는 네 번째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무언가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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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네 번째 사람은 완전히 침묵 속에 있었다, 그는 다만 보리달마를 바라보고 나서 그의 발 아래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보리달마는 말했다. “한 사람은 나의 뼈를 갖고, 한 사람은 나의 살을 갖고, 또 한 사람은 나의 피를 가졌다, 그런데 너는 나의 깊은 골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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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번째 제자는 도마가 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그는 골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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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다지 운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기후가
좋지 않았고 상황이 아주 달랐다, 중국에는 노자가 있었지만 유태인들에게
는 노자와 같은 사람이 전혀 없었다, 노자는 붓다의 씨앗이 아름답게 싹틀
만한 아주 좋은 토양을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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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가 중국에 갔을 때 그 밭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 밭은 노자와
장자 같은 인물들이 일구어놓은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드문 현상이다,
그리고 거기서 붓다의 씨가 보리달마에 의해 옮겨졌다, 그것은 훌륭하게 싹이
트고 아름답게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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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만큼 운이 좋지는 못했다, 밭이 준비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유태 문화 속에도 예언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노자와 장자 같은 현인들은
아니었다, 그곳에도 성인들은 있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 같은 사람이 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도덕주의자들이 있었다, 모세가 유태 문화의 밑바탕에 도덕
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십계명이 바로 그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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