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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본문

천지인 공부/카발라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柏道 2018. 12. 5. 19:10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
저자  김태항
출판  하모니  |  2017.9.15.

책소개

[영지주의 복음서와 카발라]는 영지주의가 무엇이고, 이것이 정통교회 가르침과 어떻게 다르며, 영지주의가 박해받아 사라진 이유를 설명한다. 모든 사상의 근원으로 알려진 카발라와 영지주의의 관계를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비밀 가르침으로 알려진 영지주의가 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표적 영지주의 문헌인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의 난해한 내용을 카발라와 비의 지식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영지 지식을 통하여 긴 잠에서 깨어나 신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예수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의 모토이다. 이 책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김태항

동국대학교에서 법학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기업체 연수원에서 사원교육을 담당했고 대학에서 토익강사를 역임했다. 동서양 가르침 특히 카발라를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출판과 번역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를 심층 연구한 '카발라의 신비열쇠'와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을 카발라로 해석한 '도마복음과 카발라'가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서문 5
1장 영지주의
1 영지주의 개관 17
2 영지주의 기원 21
3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29

2장 영지주의와 카발라
1 카발라의 기본 개념 이해하기 47
2 성경 속의 신의 이름 63
3 카발라와 예수 66
4 신비의 인물 멜기세덱 67
5 예수와 에세네파 69
6 예수의 비밀가르침, 영지주의 75
7 예수와 카발라 상징 78
8 영지 창조신화 82
9 카발라 우주 창조론 88
10 근원적 존재에 대한 영지주의와 카발라 시각 92

3장 영지주의 복음서의 카발라적 해석
1 나그함마디 문서 97
2 야고보 비밀의 서(야고보 비서) 105
3 빌립 복음서 156
4 진리 복음서 294

참고 문헌 347
부록: 도마복음 354
주석 377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이단이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이전에 이미 영지주의가 존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많다. 확실한 것은 1세기~4세기의 기독교 시대에 영지주의는 번성하였고 많은 작품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p21

기독교 영지주의는 예수의 비밀가르침이지만 영지 사상은 예수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자들에 의하여 설해져왔다. 그래서 광의의 차원에서 보자면 고대 지혜가르침, 헤르메스 철학, 카발라, 불교, 이슬람 수피, 신지학, 힌두교 등도 영지가르침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p27

구원이나 깨달음은 자신에 대한 앎과 관련이 되고 우리가 신비지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거나 근원으로 복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 종교의 기본 바탕이었다. 영지주의의 영지는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으며, 보통은 “지식”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에서는 이론적인 지식과 경험을 통해 직접 얻은 지식을 구별한다. 경험을 통해 직접 얻은 지식이 그노시스요, 이 그노시스를 얻거나 열망하는 사람이 영지주의자이다. p29
영지주의 문헌 상당수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 그리고 낮선 개념을 담고 있어서 심지어 전문가들도 해석에 어려움이 크다. 이것은 어떤 종교 문헌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는 낯선 내용과 상징 때문이다. 그러나 카발라 교리와 고대지혜가르침을 이해하게 되면 난해한 구문이 쉽게 해석이 되기도 한다. p31

영지주의 구원의 개념은 동양종교에서 볼 수 있는 무지와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개념과 많이 가깝다. 정통교회는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왔고 그래서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이런 대속론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가 설한 진리가 아니라 교부들이 창작한 논리였기 때문이었다. p39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책이다. 성서는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각과 믿음, 소망 그리고 자신들만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p41

영지주의 대표적인 복음서인 [빌립 복음서]와 [진리 복음서]에서는 신의 이름이 중요하게 언급이 되나, 사람들은 카발라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해석을 못하고 있다. p65

고대 비밀 전승에 의하면 예수는 카발라의 대가였으며 영지주의 사상은 카발라의 한 갈래였다. 에세네파는 고대 비밀가르침이 담겨있는 서적들을 보존하여 왔고 다가올 예수의 우주적 사역을 준비한 단체였다. p73

야고보가 그대에게 글을 씁니다. 하늘의 평화로부터 평화가, 하늘의 사랑으로부터 사랑이, 하늘의 은총으로부터 은혜가, 하늘의 신앙으로부터 신심이, 그리고 거룩한 생명으로부터 생명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주님이 나와 베드로에게 계시한 비밀의 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나는 그대...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서 히브리어로 내용을 써서 그대에게만 보냈습니다. (야고보 비밀의 서) p106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기독교 구원론의 기반을 닦은 바울이 개심만 하지 않았어도, 영지주의사상이 살아남아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셨으므로 오직 예수만을 믿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예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구원의 주제는 교회를 있게 하는 핵심 교리이다. 이런 논리 때문에 다른 종교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아서 많은 갈등을 낳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독단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런데 예수는 한 번도 인간의 죄를 갚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울의 주장이었다.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정통유대인이었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신비 경험을 통하여 예수를 만나 예수의 제자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직접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바울 서신들도 바울이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개인의 신앙고백 글이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간들]은 바울이 어떤 인물이며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이 [누가복음] 이후인 약 85~90년경에 작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바울 사후 20~25년이 지난 시점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이 죽고 수십 년 후에 바울에 대하여 전해지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그에 대하여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실린 바울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도행전]과 바울이 직접 쓴 여러 서간문 특히 [갈라디아서]를 비교하여 자료의 정확성을 구한다. 바울의 개종을 이끈 신비체험과 그 후의 행적이 주요 비교 대상이다.
바울은 자신이 쓴 여러 편지글에서 예수를 인용하지 않는다. 회심하고 그리스도 제자가 되었으면 예수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예수 출생이나 이적 그리고 행적 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예수에 감복하여 극렬한 반대자에서 열렬한 추종자로 개심하였다면 예수 삶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거의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러했을까?
바울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이었다. 바울의 심리와 당시의 분위기를 알려면 [갈라디아서]를 보면 된다. 바울은 사도직을 하느님에게 받았고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주신 것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예수 제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그 이면에는 사도들에 대한 멸시와 자신에 대한 강한 자긍심이 숨어있었다. 예수를 뵌 적이 없는 그였기에 사도들에 비하여 권위도 약하였고 영향력도 미약했으나 그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사도들과 함께한 예수의 행적보다는 죽음과 부활에 의미를 두고 자신의 신학을 펼쳤다.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저주의 말을 한다. 다른 복음이란 여러 사도들이 전하는 다양한 가르침들(영지주의 포함)이었다.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일은 바울이 이해한 예수와 예수 가르침이 가톨릭교회의 기본 교리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의 비극이었다. 물론 바울은 율법 종교인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를 분리시켜 세계종교로 발전시킨 선구자이기는 하다.
바울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했고 예수로 성육신했다고 하였다. 예수의 부활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식했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기독교의 교리 거의 대부분이 바울의 저서에 근거한다. 바울을 실제적인 기독교 창설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바울이 자신의 잣대(의식수준, 가치관 등)에 맞추어 예수를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지금의 교리 체계를 만들어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수를 직접 만나지 못한 바울임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만큼 예수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였을지 의문이다.
신약성경에는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12제자 글이나 행적이 묘연하다. 이들에 관한 글은 지금의 기독교가 배척한 교리를 담고 있는 외경에서 드러난다. 정경에서는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주인공이다. 신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들로 인해 최고의 사도는 바울처럼 비춰진다.
그런데 다른 사도들의 행적은 정경으로 채택이 거부된 외경에 나온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지금의 정경과 외경을 구별하지 않은 채 각 지역 교회의 판단에 따라 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내부 종파 다툼 때문에 교회에서는 공인된 경전 목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정경 목록을 확정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기독교 정경 목록은 393년 카르타고 주교회의에서 비로소 결정되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년)과 니케아회의(325년)를 통하여 예수 교리가 하나로 일원화될 때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따르는 기독교는 여러 종파 중 살아남은 종파의 교리이고 패배한 종파 문서는 거의 파괴되었다. 파괴된 문서 상당수가 영지주의 작품이었다. 영지주의는 예수가 준비된 제자들에게 전한 비밀 가르침으로 믿음이 아닌 영지지식을 통한 구원을 주장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사라졌던 영지주의 문헌이 대량으로 발견되었고 이것은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은 율법 엄수나 믿음이 아니라 영지(앎)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대속론이나 원죄론, 천국론 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을 구원으로 생각한다. 이런 구원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니 자신의 내면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에만 몰두하게 된다. 예수는 영지주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신의 선택 행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면을 밝히는 행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예수에게 죄를 사해 달라고 아무리 기도하고 회개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기독교 구원관은 원죄설 때문이다. 인간을 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죄 사함이라는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원죄는 예수가 말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교부들이 주장한 이론일 뿐이다.
“원래의 예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기독교가 살고 인류가 살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가 무엇이고, 정통교회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며, 왜 박해받아서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며, 영지주의와 카발라의 관계를 심도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표적 영지주의 문헌인 [야고보 비밀의 서], [빌립 복음서], [진리 복음서]의 난해한 내용을 카발라 가르침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였다는 점이다. 영지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의 참 가르침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가 있다.
모두가 예수가 전하는 영지 지식을 통하여 긴 잠에서 깨어나 신에게 돌아가길 바란다. 이것이 예수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책 속으로 추가]
그분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명령한다 해도 어느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느니라. 다만 너희들 자신이 충만하게 되어야 들어갈 수 있노라. 내가 야고보와 베드로 두 사람을 충만하게 할 터이니 두 사람은 따로 남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 비밀의 서) p109

영이 너희를 지키는 든든한 성벽인데도 감히 육체를 아끼려고 하느냐? 너희에 앞서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으며, 너희 이후에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할지를 생각해 본다면, 너희 삶이 단 하루이고 너희 고통도 단 한 시간에 불과함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세상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경멸하고 삶을 생각하라.(야고보 비밀의 서) ?p118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은 선이 아니고, 악은 악이 아니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 각각은 태초의 근원으로 녹아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 위로 높여진 사람들은 해체될 수 없어서 영원하다. (빌립 복음서) p165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이름은 이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름이요, 모든 것 위에 있는 이름이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입지 않고는 아들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름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빌립 복음서) p169

어떤 이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언제 여자가 여자에 의해 임신된 적이 있었는가? 마리아는 어떤 힘(사악한 세력)도 더럽히지 않은 처녀이다. 그녀는 사도들과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큰 저주이다. ?(빌립 복음서) p175

예수는 숨겨진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드러난 이름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어떤 다른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늘 예수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고대시리아어로는 메시아요, 희랍어로는 그리스도이다.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네 말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사렛 사람(예수)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자이다.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지니고 계신다. (빌립 복음서) p178

주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그 후에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자들은 잘못이다. 그분은 먼저 부활하시고 그 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먼저 부활을 얻지 못하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빌립 복음서) p179

하느님은 염색공이시다. “진짜”라고 불리는 좋은 염료가 염색되는 것으로 녹아 스며들듯이 하나님은 자신이 물들인 자들 속으로 스며든다. 신의 염료는 불멸이므로 물든 것들은 신의 색으로 인해 불멸이 된다. 이제 하느님은 물에 담아서 염색하신다. (빌립 복음서) p199
당나귀가 맷돌을 돌리면서 100마일에 해당하는 거리를 걸었으나 당나귀가 맷돌에서 풀려나서 보니 여전히 제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이와 같이 많은 여행을 했으나 목적지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저녁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도시나 마을도, 인공물이나 자연 현상도, 힘이나 천사도 보지 못했다. 그 가련한 자들은 헛수고를 하였다. (빌립 복음서) p207

성체(聖體)는 예수이다. 그분은 고대 시리아어로 파리사타라고 하는데 “확장되어 나온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셨기 때문이다. (빌립 복음서) p208

구세주의 친구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셨고 그녀와 종종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이 기분이 상하여 불만을 표시했다. “어찌하여 주님은 우리보다 마리아를 더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왜 너희들을 마리아처럼 사랑하지 않겠느냐?” (빌립 복음서) ?p211

혼인의 신비는 위대하다. 그것이 없었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존재는 사람에게 달려있고, 사람의 존재는 혼인에 달려있다. 순결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그것은 위대한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미지는 형상의 더럽힘으로 이루어진다. (빌립 복음서) p216

진리는 알몸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 왔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부활이 있고 부활의 상징이 있다. 상징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분명히 필요하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상징은 상징을 통해 다시 살아나야 한다. 신랑과 그 상징은 상징을 통해 진리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회복이다. (빌립 복음서) p225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아래에 있는 것을 위에 있는 것처럼 만들고, 바깥에 있는 것을 안에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왔다. 나는 이곳에서 그것들을 합체하기 위해 왔다.” 그분은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이곳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빌립 복음서) p228

이브가 아담과 함께하였을 때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서 분리되었을 때 죽음이 존재하게 되었다. 만일 아담이 다시 완전해져서 이전의 자아를 얻는다면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빌립 복음서) p231

만일 여성이 남성에게서 분리되지 않았다면 여성은 남성과 함께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분리가 죽음의 시작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시작부터 있었던 그 분리를 고쳐 그 둘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그 분리의 결과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다시 하나로 만드시려고 오셨다. (빌립 복음서) p240

성유식은 세례의식보다 더 높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것은 세례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성유식이라는 말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이름을 지니신 것은 성유식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기름을 부으셨으며, 아들이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빌립 복음서) p257

신방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성소 안의 성소이다. 처음에는 휘장은 하느님의 창조 방법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휘장이 찢어지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드러날 때 이 집은 황폐해지거나 파괴될 것이다. (빌립 복음서) p288

진리의 아버지가 말씀(Logos)의 권능을 통하여 그분을 알도록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이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리의 복음”은 기쁨 그 자체이다. 그분(Logos)은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 안에 있는 플레로마(충만)에서 나왔고, “구세주”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그가 아버지를 몰랐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사역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의 이름은 희망의 계시인데 이는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발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신이 근원한 그분을 찾으려고 힘썼다. (이전에) 만물은 모든 생각을 넘어 계신, 한계가 없고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분 안에 있었다. (진리 복음서) p297

그분은 안식일에조차도 구덩이에 빠진 양을 보시면 그 양을 구하시기 위해 일하셨다. 그분은 그 양을 구덩이에서 꺼내서 그 양에게 생명을 주셨나니, 이는 안식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안식일에 구원의 일을 태만히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진리 복음서) p326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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