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신지학 [앨리스 A. 베일리] 화이트 매직에 대한 논고 A Treatise on White Magic (2) 본문
[앨리스 A. 베일리] 화이트 매직에 대한 논고
A Treatise on White Magic (2)
규칙 10
“물로 창조된 형태를 씻을 때, 물을 흡수하고 사용한다. 형태는 점점 더 강해진다; 이렇게 그 일이 충분할 때까지 마법사가 계속 하도록 하라. 그러면 외부의 건설자(outer builders)들이 그 일을 멈추게 되고, 내면의 작업자들이 자신들의 주기를 시작하도록 하라.”
"As the waters bathe the form created, they are absorbed and used. The form increases in its strength; let the magician thus continue until the work suffices. Let the outer builders cease their labors then, and let the inner workers enter on their cycle."
상념태 만들기(Thought-Form Building)
센터들, 에너지들, 그리고 광선들(The Centers, Energies and Rays)
아스트랄 에너지와 공포(Astral Energy and Fear)
에너지의 올바른 사용 The Right Use of Energy
현재 시대와 미래(The Present Age and the Future)
하이어라키의 설립(The Founding of the Hierarchy)
세계봉사자들의 새로운 그룹(The New Group of World Servers)
점성학과 에너지들(Astrology and the Energies)
상념태 만들기(Thought-Form Building)
규칙 10에서 모든 형태들에게 적용되는 형태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고, 세 가지 경고(명령)가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
사실들은:
1. 형태는 그 형태가 담가져 있는 물을 흡수하고 사용한다.
2. 그 결과 그것은 힘이 자라난다.
세 가지 경고(명령)는:
1. 충분한 힘이 확인될 때까지 마법사가 계속 그의 형태를 만들도록 하라.
2. 그리고 나서 “외부의 건설자들(outer builders)”이 작업을 멈추게 하라.
3. “내면의 건설자들(inner builders)”이 그들의 주기를 시작하게 하라.
상념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념태가 창조자의 의지와 목적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형태를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해서 적당한 길로 가도록 하는 때가 어떻게 왔는지 보았다. 이것은 작업 초기에 일어나고 방향 설정 과정 후에 세우는 작업이 진행된다. 왜냐하면 상념태가 아직은 독립적인 삶을 할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기 임신 시기와 상념태를 구상하는 시기 사이의 진정한 비유가 있다. 자궁 속에서 아기가 올바로 놓여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훌륭한 의사는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현의 존재로 가는 길에서 잘못된 위치에 놓이게 되면 죽음이나 문제가 종종 일어나게 된다. 잘 알듯이 비유가 비슷하다. 탄생은 “물을 깨뜨리는 것”(의학용어)이 선행되고, 상념태가 물질계에서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전에, 마찬가지로 비슷한 반응이 오게 된다; 욕망의 물이 낙하할 정도로 너무 강력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바라는 표현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비유들과 사실들을 가지고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점에서 그것들을 연구해보자.
형태가 담겨 있는 질료를 흡수하고 사용한다는 것이 주목된다. 우리 태양계도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거대한 전체의 작은 한 부분이다. 이 더 거대한 전체는 일곱 부분(혹은 일곱 태양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자체가 공간의 물 속에 담가져 있으며, 욕망으로 탄생하였고, 그래서 필요성의 자식이다. 그것은 그 생명을 주위에서 끌어당긴다. 사방에서 우리 태양계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힘의 흐름들은 [우주불에 대한 소론(A 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하나(One about Whom naught may be said)”라고 부르는 것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것이다. 이 힘의 흐름들은 그의 의지와 욕망을 구현하고, 그의 사랑 혹은 인력을 표현하며, 우리가 태양계라고 부르는 거대한 상념태(thought-form)로써 현현한다.
덧붙여 말하면, 이 거대한 존재(Existence)를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하나(the one about Whom naught may be said)”라고 부른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좋다. 어떤 비밀이나 신비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태양계에서 진화의 기간을 완성할 때까지 그의 삶과 목적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태양계라고 말하는 것이지, 우리의 행성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자. 그의 삶을 통해서 일곱 개 태양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그 거대한 존재에 대한 추측은 에너지를 쓸모 없이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 행성에서 붓다(Buddha), 쿠마라들(Kumaras) 그리고 행성 로고스 같은 위대한 존재들만이 그 거대한 전체의 역동적인 충동을 감지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그분들도 그것을 의식하지만 그 추세를 완전하게 상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과 사랑과 의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지어 우리 행성에서 아주 먼 미래에서 조차도 그려보지 못하는 성향들과 용어들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인자들이 작용하도록 만들 것이다.
에테르(ether)라고 부르는 용어를 만들었다. 오컬트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우리가 흠뻑 빠져 있는 욕망의 바다인 “공간의 바다(the waters of space)”을 현대식으로 표현한 방법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고, 우주 자아 연꽃(cosmic egoic lotus)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고 (그것에서 발산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로 태양, 행성 혹은 인간의 형태를 먹여 살리는 49가지 에너지 유형으로 구성된 생명의 흐름이다. 이것을 [우주불에 대한 소론(A 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다루었다.
우리 태양계가 공간의 바다 속에 있듯이, 인간도 힘들 속에 흠뻑 빠져있다. 어떤 전체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태양과 그 태양을 수행하는 행성들처럼, 우리 자신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태양계가 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끌어 모은 혹은 어떤 생명이 현현된 표현인 일곱 계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듯이, 인간계도 마찬가지로 일곱 왕국 중에 하나이자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이것들이 일곱 태양계에 대응하는 행성 로고스 생명 속에 있는 상응이다. 태양 로고스가 일곱 행성 스킴(scheme)을 통해서 스스로를 표현함에 따라서, 그가 태양 로고스의 삶을 감지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일곱 태양 로고스의 삶들의 통합된 진동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는 우리 행성 스킴의 행성 로고스의 의식을 접촉하게 될 것이다.
그 유추를 한층 더 가깝게 가져오면, 인간계 그 자체가 주관적인 힘의 존재를 통해서 인간 단위에 상응하는 유사한 의식 상태이고,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번성하고 성장하는 “공간의 바다(the waters of space)”를 제공한다. 다시 우리는 네 번째 왕국에서 같은 일곱 가지 힘들의 표현과 만나고, 인간이 일곱 가지 광선 혹은 유형의 인식에 깨어남에 따라서, 그것들과 의식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것들을 초월하고 자신의 활동 영역 속에서 통제하는 첫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곱 가지 광선 유형에 대한 지식이 인종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고 있고 이 지식은 과거 오래 전에는 그 시대 입문자들의 특권들이었다.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안내하고 일곱 가지 행성 스킴들과 공명하게 해줄 그 정보는 점성학적인 제시 속에 숨겨진 채로 있다. 하지만 뉴 에이지가 우리와 함께 해서 새로운 방향을 성취할 때까지, 점성학에서 진정한 진보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류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물질의 자궁 속에 인류가 올바로 놓이도록 하는 것이 하이어라키의 목적이다. 이 말들을 주목하자. 지금 필요성이 엄청나고, 혼이 전체로서 인류 속에서 태어나고 있다. 우주적으로 말하면, 인간계의 힘들이 올바로 방향을 잡게 되면, 자아의 목적과 일치하고 내면의 영적 실재를 충분하게 표현할 형태, 아름다움 그리고 목적을 나타내는 인류가 지구상에 현현할 것이다. 다른 결과들도 슬프지만 감지될 수 있지만, 이것들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모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을 초월해서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지켜보는 형제들의 희망이자 믿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마디와 한 가지 힌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행성의 하이어라키는 상징적으로 인류의 두뇌 센터를 구성하고 그들의 힘은 그 두뇌의 힘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물질계에서 그 “두뇌 센터”에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거대한 무리의 열망자들, 견습생들 그리고 받아들여진 제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표현의 영역에서 모여들지만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적이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인류의 “송과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구성한다. 개개인 속에서 이것이 잠자고 휴면기에 있듯이, 마찬가지로 인류 속에서도 육체의 두뇌 속에 있는 이 그룹의 세포들이 휴면기에 있지만 두뇌 센터인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진동에 자극을 받고 느끼고 있다. 그 세포들 중에 어떤 세포들은 깨어나있다. 그들이 노력을 강화하도록 해서 다른 세포들을 일깨우도록 하자. 인류 가족의 개척자들, 과학자들, 사상가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뇌하수체를 구성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정신을 표현하지만 (상징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송과선 속에서 높이도록 하는 그런 직관적인 지각과 이상주의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나고 나타내 보여주며 탐구하고 있다. 하이어라키의 목적은 (다시 상징적으로 말하면) 송과선을 강력하게 만들어 끌어당기게 해서 세포 생명들의 뇌하수체가 자극을 받아 긴밀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포들이 송과선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런 강력한 작용을 일어나게 할 것이고 동시에 전체 신체가 영향을 받는 그런 강력한 반응이 시작될 것이며, 하이어라키의 노력의 중심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생명들을 대체하기 위하여 자극 받은 많은 생명들이 위로 흘러가는 결과가 생길 것이다.
이런 새로운 방향설정과 성향들의 전환이 진전되는 “공간의 바다”는 격렬한 혼란 상태 속에 있다. 상충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보이고 그 소용돌이가 지금은 혼란스럽고 너무 강력해서 이 바다의 깊은 심연까지 출렁거리게 한다. 근대 역사와 사회 질서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인류 속에서 개개인 열망자의 삶 속에서 격변에 상응하는 전례 없는 조건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격변은 제자도로 넘어가기 전에 항상 선행한다. 그래서 우울해 하거나 지나치게 걱정할 이유가 없고, 단지 그 전이가 제때에 적절하게 그리고 너무 빨리ㅡ그래서 모든 옳은 관계와 제휴에 파괴적이고ㅡ혹은 너무 끌지 않도록 해서 몹시 시련을 겪은 인류의 구조에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리하게 압박을 가하지 않도록 하자는 간절한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시대에 모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운 현현들은 서서히 오게 되고 그래서 안전하게 태어나게 된다.
모든 형태들은 궁극적으로 그 형태의 생명 주기 동안 적당한 탄력을 갖고 영향력을 가지려면 조용한 주관 상태 속에서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그 형태가 강력하고 확실하게 되고, 창조자와의 내적인 접촉과 패턴에 대한 진정한 순응이 튼튼하고 깨질 수 없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우주에도 적용되고, 자연 속에 있는 왕국, 인간의 사고자가 창조한 상념태에도 적용된다.
모든 형태를 만드는 데, 건설의 기술이 여전히 기본적으로 똑같고, 규칙들과 실현해야 할 것들이 다음과 같은 금언 구절 속에서 요약될 수 있다.
창조자가 자신이 건설자이지, 건설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라.
그가 물질계에 있는 원재료를 다루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신성한 마인드(Divine Mind)의 대리인으로써 활동하면서 패턴과 청사진을 연구하도록 하라.
그가 두 가지 에너지와 세 가지 법칙들을 가지고 일하게 하라. 이것들은 대계획에 순응하는 역동적인 목적의 에너지 그리고 그 노력의 중심으로 건설자들을 끌어당기는 욕망의 자기적(magnetic) 에너지이다.
이 세 가지 법칙들, 인위적 한계(synthetic limitation)의 법칙, 진동하는 상호작용의 법칙 그리고 활동적인 낙하(precipitation)의 법칙이 지배하도록 하라. 첫째는 생명, 둘째는 건설 그리고 셋째는 현현된 존재와 관련 있다.
그가 영향력의 원 주변으로 그의 호출을 보내면서, 그가 외부의 건설자들을 먼저 다루도록 하라.
그가 건설자들을 자신의 목적과 계획에 따르게 하면서, 살아 있는 질료(living substance)의 바다를 그의 생각과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게 하라.
그가 항상 “”감독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상념태와 긴밀하게 접촉하지 않도록 하면서, 노련함과 판단력을 가지고 만들게 하라.
그가 시각화, 명상과 행동의 노련함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 속으로 그의 상념태를 투사하게 해서, 그의 의지가 명령하고 그의 사랑이 바라며 그의 욕구가 창조한 그것을 만들게 하라.
그가 외부 형태의 건설자들을 불러들이게 하고, 역동적인 힘을 가진 내면의 건설자들이 상념태를 현현으로 밀어내도록 하라. 창조자의 눈을 통해서 이 내면의 건설자들이 활동하고 지시된 행동을 하게 된다. 창조자의 말을 통해서 외부의 건설자들이 안내된다. 창조자의 귀를 통해서 더 거대한 말씀(Word)의 소리가 공간의 바다를 통해서 진동한다.
그가 창조 작업의 질서를 기억하도록 하라. 공간의 바다가 그 말씀에 반응한다. 건설자들이 건설한다. 창조 주기가 끝나고 그 형태가 현현하기에 적당하다. 실행의 주기가 따라오고 주관적 형태를 구성하며 활기를 주는 생명을 전달하는 내면의 건설자들의 강력함에 따라서 그것의 기간이 달려있다.
그가 목적을 달성할 때 혹은 의지의 무력함 때문에 실행의 주기 속에서 기능이 실패할 때 그 형태의 중단이 따라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라.
학생들은 창조적인 건설, 실행 그리고 그에 따른 붕괴의 이런 주기들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들은 태양계, 인간 그리고 창조적인 사고자의 상념태에 적용된다. 모든 아름다움의 비밀은 이런 주기들이 올바로 기능하는 것에 달려있다. 물질계에서 모든 성공의 비밀은 법칙과 질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 달려있다. 열망자의 경우, 그의 노력의 목표는 “사람은 생각하는 그대로이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멘탈 물질 속에서 상념태를 올바로 만드는 것이다; 그에게 멘탈 질료의 통제와 명확한 사고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진보에 필수이다.
이것은 외적인 삶을 조정하고 어떤 창조적인 작업ㅡ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가정을 리듬 있게 기능하도록 하거나, 사업을 건전하고 진실한 선을 따라서 운영하거나, 생명을 구조하거나 외적인 다르마를 정확하게 수행하거나ㅡ을 하는 속에서 나타날 것이다. 다른 한편 내적인 조정이 가슴의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제자의 경우, 그 일이 확장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닌 그룹 계획과 목적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가 당면한 주기와 삶 전체 기간 동안 목적에 대한 순응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다르마와 생각들을 그 주기의 필요와 봉사에 종속시켜야 한다. 그는 지식, 강인함 그리고 개성아와 혼 사이의 조정을 성취하면 조직화된 형태들과 그룹들을 물질계에 만들고 그것들을 일관되게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기 자신의 기질과 도구의 힘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질과 도구 때문에 그가 더 거대한 생명 에너지들의 전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리고 어떤 단편을 볼 수만 있는 대계획에 그가 효율적인 협력자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계획에서 그의 측면을 만드는 데 충실하게 일하고, 언젠가 그 건설이 끝나서 전체를 볼 때, 하나의 거대한 존재의 정신과 접촉한 건축가들(맏형들)의 정신 속에서 전달된 청사진과 일치하고 디자인에 맞게 세웠다는 것을 그가 보게 될 것이다.
이 진리들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아무리 제한된 삶이라도 처한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누구나 법칙 하에서 이해력을 가지고 상념태를 만들며 현명하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열망자이거나 제자라면, 그는 삶 속에서 항상 멘탈 물질 속에서 작업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사용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으며, 그의 멘탈 과정이 그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자신의 “치타” 혹은 마인드-물질(파탄잘리가 그것을 부르듯이)을 다룰 수 있어서 그가 점점 더 유용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센터, 에너지 그리고 광선(The Centers, Energies and Rays)
이 규칙 10과 관련하여 공부해서 실질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혼이 그 도구인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는 작업의 관점에서 그것을 연구할 수 있다. 그리고 제자가 하이어카리를 위한 봉사와의 관계에서 제자가 하는 상념태 구축 및 조직화의 작업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외적 형태 뒤에, 그것의 창조와 사용 그리고 유지하는 원인이 되는 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인간의 진화를 촉진하고 다른 진화 과정들을 촉진하는 모든 활동 뒤에는 하이어라키가 서 있다. 둘 다 에너지 센터들을 나타낸다; 둘 다 창조적인 법칙 하에서 일한다; 둘 다 주관적 활동에서 객관적인 현현으로 진행하고, 둘 다 상위 에너지 센터들로부터 오는 시각화와 자극에 (단계별 생명들의 거대한 순서 속에서) 반응한다. 일련의 특정한 삶들이 펼쳐지면서 제자가 인식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어떤 인자들이 두 가지 주요 그룹으로 분류되고, 그것들 각각은 그의 형태 측면이 일곱 가지 유형의 에너지들 혹은 영향력을 받도록 만든다.
첫째 외적인 건설자들의 작업인 순전한 형태 측면과 관련된 힘의 그룹이 있으며, 견습의 길 단계까지 우세한 요인들인 그룹이다. 이것들은 물질 그 자체 속에 내재하는 힘들이다; 그것들은 체의 성질을 다루고 다음과 같이 열거될 수 있다:
1. 육체 힘. 이것들은 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생명에 기인한다. 이 세포 생명은 환경의 세포 생명에 반응한다. 오컬티스트는 자신 속에 있는 인자들과 자신의 환경 속에서 상응하는 인자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항상 본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형태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형태들은 생명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런 생명들은 나름대로 발산하거나 원인이 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세 가지 주요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가. 세포들 자체에서 나오고 그것의 특질에 달려 있어서 좋은 영향 혹은 나쁜 영향을 주거나, 그 영향력이 조악하게 하는 혹은 세련되게 만드는 그리고 합쳐진 세포 체의 물질적인 진동을 높이거나 낮추는 발산들. 이렇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악하고 잔인한 동물 성질을 가진 사람의 물리적인 영향이 교양 있고 깨끗하며 절제되고 순수하게 된 체 속에서 활동하는 오랜 경험을 가진 혼과의 접촉의 결과로 품위 있고 아름다운 영향을 내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나. 서로 다른 성(sex)을 합치게 만들고 하나의 동물 체와 다른 동물 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화학적인 친밀감의 원인이 되는 순전히 물질적인 종류의 발산. 그것은 동물적인 자성(magnetism)의 측면이고 인력과 반발의 법칙(Law of Attraction and Repulsion) 하에서 다른 세포들의 부름에 세포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공유하는 것이고, 모든 멘탈 반응으로부터 자유롭고 본능적인 것이다.
다. 조화로운 리듬에 세포들이 반응하는 그래서 자체 속에 그것이 반응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세포에 달려있는 그런 힘들 혹은 발산들. 이 발산들은 아직 거의 이해되지 않고 있지만,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서 점점 더 전면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유형의 힘은 육체가 주위 환경에서 조화로운 혹은 적절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스러운 어떤 것이다. 그것은 두 명의 사람 사이에서 (성적인 끌림은 별개로 하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서로 그것을 경험한다) 물리적으로 서로 서로 조화로운 영향을 주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는 정의할 수 없는 반응이다. 외적인 세계에서 이것이 모든 그룹 관계의 비전적인 토대가 되고, 이런 발산을 이해함으로써 거대한 진화의 계획 하에서 인종들을 분리하고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세 가지를 물질계에서 전적으로 작용하는 세포 힘들의 특질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힘들은 독특한 유형의 육체를 만들고, 두 육체 사이에 자성적인 끌림을 만들며, 인종의 유형들을 만드는 것이다. 인종의 마누(Manu)가 새로운 인종을 만들고 그의 생각을 외부 건설자들에 인상을 줄 때, 이 세 가지 요인들이 인종의 마누(Manu)를 안내한다. 그것들은 또한 지혜의 대스승이 어떤 때 혹은 장소에서 그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의지대로 자신의 육체를 만들 때, 또한 그를 안내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활동적인 봉사를 위해서 조직들이나 그룹들을 구성하는 데 전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발산을 어느 정도 적당하게 이해해야 한다. 만약 제자가 자신에게 묻는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 즉 그 체의 세포들의 진동의 특질은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그것이 갖는 자성적인 영향의 특질, 인력의 특질은 무엇인가? 그 그룹은 다른 그룹들과 공명하게 해주고 그래서 그것들과의 관계에서 조화롭게 만드는 전체 단위들의 매개체를 통해서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모든 그룹을 만드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한다.
2. 활력(vital forces). 물질주의자들은 종종 이것을 만질 수 없기에 물질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오컬티스트는 에텔 매개체를 물질의 형태 혹은 측면으로 간주하고 외적 객관적인 형태처럼 상대적으로 만져서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오컬티스트에게, 공간의 에테르(ether)라는 용어는 모든 체들의 에텔 형태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으로, 아스트랄체 혹은 감정체 그리고 마인드-물질로 구성된 멘탈체 모두가 물질이고 생명의 형태 측면의 질료(substance)이다. 올바른 이해를 위한 토대로서,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세포 생명(cell life)이 육체의 모든 부분을 상호침투하고 육체 건강의 원인이 되고 아직은 진실로 이해되지 않은 “혈액이 생명이다(blood is the life)”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 복잡한 체계인 혈관 체계에 의해서 조정되고 영향을 받으며 활기를 얻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식물계에서 수액처럼 혈액(blood)도 에너지의 한 측면이다.
감흥의 놀라운 도구인 교감신경계가 감정체 혹은 아스트랄체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혈액의 흐름의 특질을 지배하는 활기가 심장을 통해서 접촉하듯이, 그 접촉이 태양신경총을 통해서 일어난다. 심장 속에서 물질계 존재의 센터가 있다. 뇌척수신경계는 치타 혹은 마인드 물질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1. 세포 생명(Cell life) | 혈관 체계 | 심장 센터 | 흉선(Thymus gland) |
2. 감각적 생명(Sensory life) | 교감신경계 | 태양신경총 센터 | 취장(Pancreas) |
3. 멘탈 생명(Mental life) | 뇌척수신경계 | 아즈나(미간) 센터 | 뇌하수체 |
4. 활기 생명(Vital life) | 일곱 센터 | 비장 |
여기서 보듯이, 이것이 사중체(quaternary)의 현현을 지배하지만, 객관적인 형태를 통해서 현현하고, 전체 인간을 완성하며 여러 가지 객관적인 존재 일곱 가지를 만드는 인류의 다른 측면이 있다.
5. 자의식(Self-conscious) | 상위 두뇌(Upper brain) | 머리 센터 | 송과선 |
6. 자아-표현(Self-expression) | 하위 두뇌(Lower brain) | 목 센터 | 갑상선 |
7. 자기 영속(Self-perpetuation) | 성 기관(Sex organs) | 천골 센터 | 생식 기관 |
8. 자기 주장(Self-assertion) | 전체 인간(Entire man) | 척추기저 센터 | 부신(Adrenals) |
여덟 가지 요인을 열거한 것을 알아차릴 것이고, 여기서 많은 학파들이 길을 잃는다. “활기 생명(vital life)”이라는 제목은 포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센터들의 가장 낮은 측면을 통해서 육체적 활기를 주는 것과 전적으로 관련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물질 우주의 활기 생명은 비장을 통해서 인간에게 들어온다.
센터들은 세 가지 주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육체에 활기를 준다.
둘째, 인간 속에서 자의식(self-consciousness)의 계발을 가져온다.
셋째, 영적 에너지를 전달해서 전체 인간을 영적 존재 상태로 휩쓸고 들어간다.
활기 측면은 인간이 동물들 그리고 모든 창조된 형태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삼차원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그 측면의 두드러진 성취이다. 자의식 측면은 인류 가족의 특권이다. 인간이 진화할 때, 그의 신경계 모든 부분들, 내분비선 체계와 센터들이 조정되고 조화로운 리듬을 가지고 작용할 때, 그때 최고 측면(영적 측면)이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냥 의식 에너지가 아닌 영적 에너지가 자연에 있는 다른 하위 왕국들을 위해서 간직되고 사용되도록 신성한 대생명의 도구이자 힘들의 관리인인 인간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위에 열거한 것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조정될 수 있다. 표는 의도된 대로의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지 인간의 진화상의 진보 과정 속에서 현재 있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1. 자기-주장(Self-assertion)(온전한 계발) | 조정된 사중체(coordinated quaternary) | 척추 기저센터 | 부신 |
2. 자기-표현(Self-expression) (창조 작업) | 하위 두뇌 | 목 센터 | 융선(Thyorid) |
3. 자의식적 삶(개성) | 상위 두뇌 | 머리 센터 | 송과선 |
4. 자기-영속(Self-perpetuation) | 성 기관 | 천골 센터 | 성 |
5. 멘탈적 생명 | 뇌척수신경계 | 아즈나 센터 | 뇌하수체 |
6. 감각적 생명 | 교감신경계 | 테양신경총 | 비장 |
7. 세포 생명 | 혈관 | 신장 센터 | 신장 |
일곱 센터들과 작은 센터들 전체 체계 그리고 나디(nadis)---신경들 근저에 있고 센터들이 분비선들과 갖는 관계처럼 그 신경들의 존재 원인이다---를 통해서 기능하는 여덟 번째인 활기 생명(vital life)은 많은 힘들과 에너지의 매개체이다. 어떤 것은 순전히 물질적이고, 다른 것들은 애니마 문디(Anima Mundi), 세계 혼(World Soul)과 관련 있고 다른 것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화 프로그램에서 그것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들이 최고 측면 혹은 성부의 에너지인 신성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위의 표는 두 번째 광선의 개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과 위에서 언급한 자아(self)는 영적 인간의 자기 깨달음(self-realization)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신의 활기 생명의 가장 낮은 측면은 종의 영속이고, 이것이 화신한 생명의 살아있음(livingness)의 결과이다; 다음으로 “나(I)”라는 의식이 지배적으로 되고 완전한 개성 속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단계를 표현한다. 그러면 개성에 의해서 숨겨진, 비물질적 성격의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 내재하는, 자아 표현이 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신성한 성질의 온전한 현현 혹은 주장(assertion)이 온다. 기묘하게도 하위 척추 센터가 일깨워졌을 때, 물질 성질의 에너지가 의지의 행위에 의해서 하늘(Heaven)로 올려졌을 때 그리고 전체 성질---물질적, 감각적 혹은 심령적 그리고 존재 측면---이 합쳐지고 실현될 때, 이것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말들에 대하여 명상하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류와 관련해서 완성을 함축하고 있다.
오컬트 격언: “의지하는 것(to will), 아는 것(to know), 도전하는 것(to dare) 그리고 침묵하는 것(to be silent)”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여기서 힌트만 주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내면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즉시 이해할 것이다.
가. 의지하는 것(To Will). 이 단어들은 혼과 하위 인간의 뭉쳐진 의지 행위에 의해서 합일(unification)과 깨달음(realization)이 일어날 때, 궁극의 성취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것은 척추기저 센터와 관련 있다.
나. 아는 것(To Will). 이 단어들은 미간 센터인 아즈나 센터와 관련 된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알도록 하라(Let the Mother know the Father)”라는 말들 속에 힌트가 있다. 그것은 천상에서의 결혼과 관련 있다.
다. 도전하는 것(To Dare). 이 단어들은 개성의 굴복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고, 아스트랄 힘과 욕망의 거대한 청산소이자 변형 작업의 주요 센터인 태양신경총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라. 침묵하는 것(To Be Silent). 이 구절은 하위 창조 에너지를 상위 창조 에너지로 변형(transmutation)시키는 것과 관련 있다. 천골 센터는 침묵 속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제자에게 다음 센터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1. 아즈나 센터. 그것을 통해서 정화된 개성을 스스로 표현한다.
2. 척추기저 센터. 그것을 통해서 불이라는 정화 인자를 일깨움으로써 완전하고 철저한 통제와 조정을 성취한다.
3. 천골 센터. 그 속에서 우리 태양계의 기본적인 힘, 즉 형태가 형태에게 이끌리는 힘이 변형되고, 혼의 인력이 생식의 창조적인 물질적 행위를 대체한다.
4. 태양신경총. 신체 중심에 있고 아스트랄체와 하위 심령주의 기관으로 모든 하위 힘들을 모아서 혼의 충동 하에 그것들의 상위 저장소로 돌려보낸다.
여기서 제시한 가르침이 심오하고 난해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소수를 위한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각각 광선은 그 가르침 속에 독특한 충동에 반응하는 혼들을 위해서 서로 다른 방법과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이 주제의 복잡함이 더욱 커진다.
여기서 광선의 방법 각각에 대한 일곱 가지 열쇠를 제시한다. 이것들을 위의 표와 관련해서 공부할 수 있고 우리가 검토하는 네 가지 단어들과 연결해서 이것들을 공부할 수 있다. “의지하는 것(To Will)”은 영의 특권이고, “아는 것(To Know)”은 혼의 기능이며, “도전하는 것(To Dare)”은 개성의 의무이고, “침묵하는 것(To Be Silent)”은 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동물 성질, 물질 측면의 운명 혹은 다르마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광선(First Ray): - 힘들을 뭉치게 하라. 그것들을 고귀한 곳(High Place)으로 오르게 하고, 그 고귀한 고지로부터 혼이 파괴된 세계를 내다 보도록 하라. 그리고 나서 말씀이 나오게 하라: “나는 여전히 지속한다.(I still persist.)”
둘째 광선: - 모든 생명이 중심(Center)으로 끌리게 하고, 신성한 사랑의 심장(Heart of Love Divine)으로 들어가게 하라. 그리고 나서 의식하는 대생명(sentient Life)이 있는 그 지점으로부터 혼이 신의 의식을 깨닫게 하라. 말씀이 침묵을 통해서 울려 퍼지면서 나오게 하라: “나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다.(Naught is but Me!)”
셋째 광선: - 말씀에 반응하는 주의 군대(Army of the Lord)가 활동을 멈추게 하라. 지식이 지혜로 끝나게 하라. 진동하는 그 점이 조용한 점으로 되게 하고, 모든 선들이 하나(One) 속으로 모이게 하라. 혼이 많은 것 속에 있는 하나(One in Many)를 깨닫게 하고, 완전한 이해 속에서 말씀이 나오게 하라: “나는 작업자이자 작업이고, 있는 하나이다.(I am the Worker and the Work, the one that Is.)”
넷째 광선: - 외부의 영광이 지나가게 하고 내면의 빛의 아름다움이 하나(One)를 드러내게 하라. 부조화를 조화로 대체하고, 숨겨진 빛의 중심으로부터 혼이 말하게 하라: 말씀이 울리며 나오게 하라: “미와 영광이 나를 가리지 못한다. 나는 드러난다. 나는 존재한다.(Beauty and glory veil Me not. I stand revealed. I am.)”
다섯째 광선: - 전기 에너지의 세 가지 형태가 지나서 권좌(Place of Power)로 올라가게 하라. 머리와 심장의 힘과 모든 아래 측면들을 혼합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나서 혼이 신성한 빛의 내면 세계를 내다보게 하라. 환호하는 말씀이 나가도록 하라: “나는 에너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에너지를 숙달하였다. 숙달자와 숙달된 것은 단지 하나이다.(I mastered energy for I am energy Itself. The Master and the mastered are but one.)"
여섯째 광선: - 모든 욕망을 멈추게 하라. 열망이 끝나게 하라. 탐구가 끝났다. 혼이 목표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우주 평화로 가는 관문에서 말씀이 울려 퍼지게 하라: “나는 탐구자이자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휴식한다.(I am the seeker and the sought. I rest!)”
일곱째 광선: - 건설자들이 작업을 멈추게 하라. 성전(Temple)이 완성되었다. 혼이 그 유산으로 들어가게 해서 성소(Holy Place)로부터 모든 일을 끝내도록 명령하게 하라. 그리고 나서 따라오는 침묵 속에서 말씀을 읊조리게 하라: “창조 작업이 끝났다. 나, 창조자는 있다. 나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The creative work is over. I, the Creator, Am. Naught else remains but Me.)"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간의 에테르의 외피를 지나가는 활력(vital forces)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점성학 이론 바탕에 있는 개념들 중에 하나는 형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의 에텔체는 태양계 에텔체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그래서 태양 에너지, 행성 에너지 그리고 비전적으로 “숨결(breaths)”이라고 부르는 우주 충동 혹은 태양계 외부 에너지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우주 광선의 이런 힘과 에너지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모든 부분에 있는 공간의 에테르를 지나서 분명한 길을 지나고, 그래서 모든 외부의 형태의 에텔체를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인 진리이고 신중하게 명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함축하는 것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관적인 면에서만 알고 깨닫게 될, 통일성(unity)과 모든 현현의 하나됨(Oneness)이라는 생각으로 안내한다.
두 번째 기본 생각은 모든 형태들의 에텔체의 반응과 충당하고 사용하고 전달할 수 있는 에텔체의 역량은 센터들, 동양에서 부르는 차크라의 상태에 달려있다. 이것들은 잘 알려진 일곱 개 주요 센터들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는 아직 이름도 없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작은 소용돌이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에텔체의 특질, 에텔체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aliveness) 그리고 센터들이 위치한 상호교차 하는 신경망ㅡ그 전체를 “그물망(web)” 혹은 “황금 주발(golden bowl)”이라고 부른다ㅡ에 의존한다. 만약 이것이 침전물이나 장애물이 없다면, 그리고 그 통로들이 막히지 않았다면, 그러면 순환하는 광선들, 에너지들 그리고 힘들이 쉽게 매개체를 찾을 수 있고 신체 전체를 막히지 않은 채 순환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 진동에 반응하는 그 센터들을 사용할 수 있고, 자연의 같은 왕국 혹은 다른 왕국에 있는 형태들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에 모든 과학적 오컬트 치유의 비밀이 있다. 치유자들은 에텔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이지만 진정한 지식이 아직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체를 통해서 자성적 혹은 다른 전류가 흐르는 센터들에 대하여 거의 혹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에텔 센터들의 상태와 그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힘들의 성질의 상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가 그들의 삶을 단련시키고 그들의 욕구를 통제해서 깨끗한 체를 만들고 그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로 힘이 지나가게 하기 위한 깨끗한 채널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주목해야 할 세 번째 개념은 형태들이 아직은 행성에 있는 다른 형태들로부터 도달하는 힘들에 주로 반응하고, 일곱 행성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일곱 가지 기본 에너지 유형들과 생명을 주는 태양 광선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네 개 왕국 속에 있는 모든 형태들은 이런 많은 힘들에 반응하고, 일곱 가지 에너지와 하나의 광선에 반응한다. 인류도 다른 에너지와 태양 광선들에 반응한다. 그러나 모두가 태양계 경계 안에서(solar ring-pass-not) 만들어진 힘에 의해서 채색된다.
오컬티스트와 열망자의 일은 이런 힘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성질과 용도, 힘 그리고 진동율을 배우게 된다. 그는 또한 그것들의 근원을 인식하는 것을 배우고, 힘들, 에너지들 그리고 광선들 사이에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초보자는 형태 측면에서 발산하는 힘들을 통해서 개성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 똑 같은 개성이 정화되고 정렬되면 혼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힘들과 에너지들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인간 왕국의 작업은 대자연 속에 있는 하위 왕국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반면에 인간 왕국과 관련하여 하이어라키의 작업은 영적 영역으로부터, 다른 행성 센터들로부터 그리고 태양계로부터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들을 전달하기 위해서 낮출 때 힘들로 분화된다.
학생들은 주제의 복잡성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어떤 큰 일반화를 배워야 하고, 혼의 전지를 개발함에 따라서 더 자세한 지식이 점차로 제자리를 잡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열망자가 다루어야 할 처음 두 가지 그룹과 관련되는 다른 유형의 에너지는 전적으로 형태 측면과 관련 있다. 세 번째 그리고 나머지 그룹은 다음과 같다:
3. 아스트랄 에너지
4. 하위 구체적 정신, 치타(chitta), 마인드-물질(mind-stuff)의 에너지
5. 개성(Personality) 에너지
6. 행성 에너지
7. 태양계 에너지 혹은 생명 숨결(Life Breath)
이것들을 다음과 같이 더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3. 아스트랄 에너지. 다음에서 발산한다:
가. 인간 자신의 아스트랄체
나. 인류 가족 전체
다. 거대한 의미에서 아스트랄계
라. “태양의 심장”
4. 멘탈 에너지. 다음에서 발산한다:
가. 개인의 치타 혹은 마인드-물질
나. 다음의 멘탈
i. 인류 가족 전체
ii. 인간이 속한 특정한 인종
다. 멘탈계 전체
라.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
5. 개성 에너지. 다음에서 발산한다:
가. 인간의 조정된 형태
나. 지배적인 개성인 진보한 인간
다. 그룹들. 예를 들면,
i. 행성 하이어라키(Hierarchy of the Planet). 주관적.
ii. 신비가들의 통합 그룹. 객관적.
6. 행성 에너지. 다음에서 발산한다:
가. 일곱 행성들. 이것이 점성학의 토대이다.
나. 지구
다. 달
7. 태양 에너지. 다음에서 발산한다:
가. 물질 태양
나.
우주 광선들의 전달자로 역할을 하는 태양
아스트랄 에너지와 두려움(Astral Energy and Fear)
이제 고려해야 할 주제가 가장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스트랄체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그 체는 인간이 가장 현저하게 극화되어 있으며 어떤 다른 체보다 더 강력하게 의식하는 체이다. 에텔체는 진실로 의식의 경계 밑으로 내려갔다. 인간은 이 매개체를 통해서 힘들이 지나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고 그들이 그것을 인식하는 가장 가까운 때는 활기가 있거나 없다고 말할 때이다. 어떤 것이 잘못될 때 혹은 욕구들 중에 하나를 만족할 때 육체가 그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아스트랄체와 관련해서는 상황이 다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경험의 매개체가 있고, 그 체의 반응을 기록하고,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족, 확신과 의심, 용기와 두려움의 양극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그들의 의식적인 삶의 상당 부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정적 의식의 매개체의 내재적인 힘과 생명이 삶의 표현을 지배하고 육화된 혼의 경험을 주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힘들의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는 지 이해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거기가 그의 전쟁터이고, 또한 거기서 그가 승리하는 곳이다.
먼저 모든 아스트랄 에너지는 태양계 아스트랄 에너지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1. 인간의 유정체(sentient body)는 행성 로고스의 아스트랄체 속에 있는 질료의 원자이다.
2. 행성 로고스의 유정체ㅡ아스트랄이라는 용어보다 선호하는 용어이고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다ㅡ는 태양 로고스의 유정체의 원자가 아니라 한 측면이다.
3. 이것은 우리 태양계 밖에 있는 광대한 에너지 센터들로부터 발산하는 유정의 힘들(sentient forces)에 영향을 받거나 통로가 된다.
이것을 명심한다면 훨씬 광대한 매개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광대한 전체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인간이 그의 두뇌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거대하고 다양한 힘들이 만나는 장소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그의 문제가 복잡한 것이고 입문이라고 부르는 의식의 확장에서 모든 가능성들이 자라나오는 것이다. 욕망과 지각 반응(sentient reaction)이 작용하는 체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에너지 흐름은 그를 더 넓고 확장하는 접촉들과 깨달음으로 이끄는 경로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의 통로들이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기록하고 등록하기에 인류가 아직 적합하지 않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속에 대부분의 인류의 안전장치가 놓여있다. 멘탈 도구가 충분하게 깨어나서 통제될 때까지, 인간의 민감한 반응체가 전해줄 수 있는 정보를 인간이 제대로 해석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의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행성 에너지, 태양 에너지 그리고 우주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을 제외하고, 인간은 더 거대한 전체에서 아스트랄 에너지를 충분하게 제 것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자기자신의 아스트랄체를 만든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음에 반응하고, 그의 독특한 특질로 채색되며, 그의 진화 지점에 따라서 그를 제한하게 된다.
이것은 삶의 경험에 대한 그의 감정적인 반응의 한계를 정의하고, 특질 면에서 그의 욕망의 삶의 영역을 구체화하는, 그러면서 멘탈체와 혼의 충동 하에서 엄청난 확장, 계발, 조정 그리고 통제가 동시에 가능할 수 있는, 그의 아스트랄 경계선(astral ring-pass-not)을 구성한다. 그것은 그것과 물질계 삶의 경험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기는 진동 활동에 달려 있다. 그리고 거대한 경험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고 붓다의 사성제(four Noble Truths)를 이해하고 깨달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 아스트랄체는 그 속에 에텔 센터 혹은 라야(laya) 센터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고, 이전에 에텔체에서 다루었듯이, 그것들을 통해서 힘과 에너지가 흘러 들어온다. 이 센터들은 일곱 행성과 태양에서 아스트랄 유기체 모든 부분으로 에너지를 실어 나르면서 인간을 태양계 모든 부분과 공명하게 해준다. 그 사람이 자신의 불멸의 유산에 깨어나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힘들에 반응할 때까지, 이것이 그 사람의 삶의 운명으로 고정된다. 이것들은 그 형태에서 발산한다. 이것이 점성술이 아직 진화하지 않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종종 정확하지만, 고도로 진화한 사람의 경우에는 상당히 많이 틀리는 이유이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그의 욕망체가 그를 만든다. 나중에, “인간은 생각하는 그대로이다.” 동경, 욕구, 무드, 느낌 그리고 갈망을 가진 아스트랄체는 그것을 통해서 흐르는 인력을 통해서 육체를 주조하고, 그의 욕망들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인간을 안내한다. 만약 유정의 성질(sentient nature)의 갈망이 그 목적에서 동물적인 것이 지배적이라면, 강력한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에 몰입한 삶을 사는, 강력한 욕구를 가진 사람을 보게 된다. 만약 그 갈망이 안락과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실질적으로 순전히 이기적인 노력에 의해서 지배되는,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쾌락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된다. 이렇게 선한, 악한 혹은 보통의 많은 등급의 욕망을 통해서, 아스트랄 에너지에 다시 집중하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일어나서 그들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의 수레바퀴로부터 해방이 일어나고 그 사람은 윤회할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러면 지금 이해하는 점성술이 소용 없게 되고 무용지물이 되며, 종종 잘못 사용되는 “자아 혹은 혼의 별점”이라는 용어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혼은 개개의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One) 속으로 잠겨 들어가게 된다. 그 운명은 그룹의 운명, 전체의 운명이다; 그 욕망은 거대한 대계획을 풀어가는 것이고, 그 의지는 육화한 로고스의 영광(glorification)이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가능하다면 바가반 다스(Bhagavan Das)가 쓴 [감정의 과학(The Science of the Emotions)]을 구해서 읽을 것을 제시한다. 그것은 아스트랄체이자 유정체에 대한 훌륭한 소론으로, 열망자가 자신의 감정적 성질을 이해하고 통제하며 계발 기술을 숙달하고 그것을 더 광대한 경험으로 돌려서 두 번째 주요 입문---세례(baptism)와 그 흐름 속으로 결국 들어가는 것---의 테스트와 확장을 준비시키는 문제에 직면할 때, 열망자와 관련 있는 요인들을 다루고 있다.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면, 도의 길 앞에 높여 있는 경험은 다음가 같은 비전적인 구절로 커버된다:
“그 흐름이 생명의 강(River of Life)으로 들어갈 때, 그것이 지나간 것을 잠시 동안 추적할 수 있지만 이내 사라진다. 유정의 생명의 흐름이 만날 때, 그곳에서 강이 산의 거대한 기슭을 돌아서 지나고, 그러면 북쪽으로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보인다.”
이 상징은 분명하고, 두 가지 흐름---이다(Ida)와 핑갈라(Pingala)---과 그것들이 머리로 올라가는 에너지의 강 속에 섞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설명될 수 있다. 거기에 서로 만나는 곳이 있고, 거기서 골고다 언덕 위에서(두 개골) 희생이 재현된다.
인간의 유정체(sentient body)를 고려할 때, 만약 그것의 무드와 평상시 표현으로 다룬다면 아마도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를 다루고 그것들을 숙달하려고 추구하는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지식에 도달해서 대스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아스트랄 활동의 현현은 다음과 같다:
I. 두려움(Fear).
II. 우울함(depression) 혹은 그 정반대인 들떠있음(hilarity).
III. 동물적 욕망에 대한 충족을 원하는 것.
IV. 행복을 원함.
V. 자유를 원함. 열망(aspiration).
이 다섯 가지 속에 인간의 감정적 경험들 대부분이 요약되어 있고, 다음과 같은 시각에서 각각을 검토할 것이다.
1. 원인
2. 결과
3. 안내 방법(method of direction)
통제 방법(method of control)이 아니라 “안내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할 것이다. 열망자들은 자신들이 힘들 속에서 힘들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고, 물질계에서의 옳고 그름의 활동은 단순히 힘의 흐름을 올바른 혹은 그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고 에너지 그 자체들 속에는 내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I. 두려움. 이것이 아스트랄 에너지 현현들 중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 중에 하나이고, 제일 먼저 놓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다수 사람에게 경계의 거주자(Dweller on the Threshold)이고 또한 결국에는 기본적인 아스트랄 악(astral evil)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두려움을 알고 그 두려움의 진동 영역이 자연의 법칙과 힘들에 대한 무지와 어둡고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한 야만인의 본능적인 두려움에서부터,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 건강, 돈, 명성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열망자의 마지막 두려움---실패의 두려움, 의심 속에 뿌리를 둔 두려움, 궁극적인 부정 혹은 절멸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모든 인류와 똑같이 공유하는 두려움), 아스트랄계의 거대한 환영에 대한 두려움, 주마등 같은 삶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도의 길에서의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두려움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 이 리스트를 더 확장할 수도 있지만, 모든 종류의 두려움들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들은 대부분의 상황을 지배하고 많은 행복한 순간들을 어둡게 만든다. 그것들은 인간을 소심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적 삶을 사는 원자로 만든다. 그는 실존이라는 굉장한 문제들 앞에서 두려운 채, 인간으로서 모든 상황들에 대처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두려움들과 질문들을 뒤에 남겨두고 삶과 자유의 유산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종종 그는 두려움에 의해서 너무 지배되어서 바로 그 이유를 두려워하게 된다. 여기서 그림을 너무 어둡게 채색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현재 지배적인 아스트랄 에너지이고 민감한 인류는 그것에 모두 쉽게 굴복한다.
여러분은 물을 것이다: 두려움의 기본적인 원인들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하여 태양계의 비전적인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떤 지성적인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진보한 입문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두려움은 물질 그 자체의 씨줄과 날줄 속에 그 뿌리가 있고, 특히 마인드 원리의 영향 혹은 표현이자 멘탈 활동의 결과이다. 새나 동물이 두려움을 안다는 사실로 인해 두려움이 인간의 결함이고 인간 정신의 기능이 활동한 결과라는 것보다 전체 주제를 더 넓은 기반 위로 올려놓는다. 추리하는 정신을 인간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이성을 올바로 사용했다면 그는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소위 우주 악(cosmic Evil)---매우 과장된 구절이자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 구절---속에 놓여있다. 그것은 물질 자체의 사실 속에 그리고 혼과 물질, 서로 반대되는 쌍의 작용 속에 내재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의 지각하는 혼(sentient soul)은 잠재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인식하고 있다:
1. 전체(Whole)의 광대함과 느끼는 압박
2. 모든 다른 생명들과 존재들의 압력
3. 불변의 법칙의 작용
4. 유폐(imprisonment), 구속 그리고 따라오는 부적합한 느낌
현현된 과정 그 자체 속에서 자라나고 많은 세월 동안 힘이 커져온 이런 요인들 속에서 근대 모든 두려움의 원인들과 모든 공포의 바탕을 보게 되며 무엇보다도 동물의 본능적인 두려움이 아닌 순전히 심리적인 원인을 보게 된다. 그 문제를 더 분명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려움이 우리 행성 로고스의 아스트랄체를 특징짓는 혹은 근본적으로 채색하는 악의 (혹은 물질의) 특질이라고 듣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거대한 대생명이 우주계에서 자유를 추구하고 그 자신의 독특한 시험들과 테스트에 맞닥뜨리면서 겪는 그 거대한 대생명의 문제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얻겠는가? 그의(his) 혹은 그(he) 혹은 시험(test)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웃음만 자아낼 것이고 진리나 실재의 가능한 측면을 전달 수 없는 너무 초월적(impersonal)이고 고양된(exalted) 대생명들(Lives) 사이에 일어나는 우주 차원의 고군분투를 전달할 수 있는 적합한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우주 악(cosmic evil), 우주 차원의 진보 혹은 우주 차원의 문제들은 열망자가 세 번째 입문을 받아서 모든 분리감을 잃어버리고 그래서---생명 측면과 동일시하고 형태 측면과는 동일시하지 않을 때---어느 정도 우리 행성 로고스 의식 상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의 운명을 감지하고 순식간에 절정의 경이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을 인간과 한층 더 보통 사람에게로 제한해서 지속적으로 그를 정신 없게 하는 두려움의 파장이 어디서 오는 지 보자.
1. 죽음에 대한 두려움(Fear of Death)은 다음에 근거한다:
가. 죽음 자체 행위 속에서 마지막 찢어지는 과정의 공포
나. 미지의 형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다. 궁극의 불멸에 대한 의심
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에 남겨 놓거나 떠나는 것에 대한 불행
마. 무의식 속에 깊이 놓여 있는 과거의 격렬한 죽음에 대한 오래된 반응
바. 의식 속에서 주로 형태의 삶과 동일시하였기에 형태의 삶을 부여 잡는 것
사. 천국과 지옥에 대한 오래된 잘못된 가르침으로, 둘 다 어떤 유형을 기대하는 것이 불쾌하다.
외부 세계의 경험과 내면의 생명의 표현으로부터 그 문제를 아는 사람으로서 여기서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없다. 알다시피, 한층 더 충만한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육체라는 매개체의 장애로부터 자유가 있게 된다. 그렇게 많이 두려워해 온 찢어지는 과정은 격렬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죽음에서 진실로 불쾌한 것은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목전의 위기감과 파괴감이고, 전기 충격을 근접에서 접촉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없다. 진화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글자 그대로 어떤 잠이자 망각이다. 왜냐하면 정신이 아직은 충분하게 반응하도록 깨어나지 않았고, 기억의 저장소가 아직은 실질적으로 비어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선한 사람에게, 죽음은 그의 의식 속에서 알아가는 과정의 연속이고 삶의 성향들과 흥미거리를 계속 해가는 것이다. 그의 의식과 인식 감각이 동일하고 바뀌지 않았다. 그는 큰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잘 보호받으며 자신이 죽음의 사건을 지나갔다는 것을 종종 모른다. 사악하고 잔인하게 이기적인 사람들, 물질 측면만을 위해서 사는 소수의 사람과 범죄자의 경우, 소위 “지상에 묶여있는(earth-bound)”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그들이 지상과 만든 연결고리와 지상으로 향하는 그들 모든 욕망의 편향 때문에 그들은 지상에 가까이 있고 지상의 환경 속에서 가까이 있게 된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지상과 다시 접촉하려고 하고 지상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한다. 몇몇 예들에서 보면, 뒤에 남겨둔 사람들에 대한 대단한 개인적인 사랑이나 인식된 긴급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 때문에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어느 정도 비슷한 조건 속에 잡아두기도 한다. 열망자의 경우, 죽음은 그에게 익숙하고 새롭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표현과 봉사 영역으로 즉각 들어가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에 그는 활동적인 봉사와 배움의 영역을 계발하였다. 이제 그는 그 속에서 (물질계 용어로 말하면) 지상에서 수면을 취하는 몇 시간 동안이 아니라, 전체 24시간 동안 활동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 세기가 끝날 무렵에, 지금 이해되고 있는 의미에서 죽음이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의식의 연속성이 폭넓게 계발될 것이고 가장 높은 유형의 많은 사람들이 두 세계에서 동시에 활동하게 되어 오래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고 아스트랄계와 물질계 사이의 소통이 확고하게 확립되고 과학적으로 통제되어 트랜스 상태의 영매들의 작업이 적절하게 그리고 자비스럽게 끝이 날 것이다. 통제와 인디언 안내자 하에서 이루어지는 보통의 트랜스 영매 상태나 물현화는 두 가지 성 사이의 진정한 관계와 교제를 왜곡하고 성적 변태처럼 두 세계 사이의 교류를 왜곡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투시가들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고귀한 역량의 실체들이 육체를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현화하는 강령회, 엑토플라즘 그리고 오래된 아틀란티스인의 타락과 지상에 묶여있는 혼들, 보통의 인디안 추장과 안내자가 행한 맹목적인 무지한 작업이라는 불쾌한 현상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죽음의 두려움의 지배가 거의 끝나고 있고 곧 모든 두려움 밑에 있는 기반을 잘라버릴 지식과 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다룰 때, 전체 주제를 한층 더 과학적인 수준으로 올려서 과학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할 것이 거의 없다. 삶의 기술이 있듯이, 죽음의 기술이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서구에서 대부분 잃어버렸고 동양의 지자들(Knowers)의 센터들을 제외하고 거의 사라졌다. 아마도 이것 대부분을 나중에 다룰 수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한 필요한 접근방법에 대한 생각이 이 가르침을 읽는 학생들 정신 속에 놓이게 될 수 있고, 아마도 그들이 공부하고 읽고 생각해감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모아서 출판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그들에게 오게 될 것이다.
2. 미래에 대한 두려움(Fear of the Future). 이것은 점점 더 계발되는 성향의 두려움으로 그것이 말살되기 전에 세계에서 많은 고통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세 가지 역량에서 자라나온다:
가. 본능적 심리적 사고 습관들(Instinctual psychological thought habits)로, 동물 성질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자기 보존의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야만 인종들은 이것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앞을 내다 보는 정신의 예상 상태가 인간의 주된 특징이고 멘탈 과정들과 연결된 상상력 기능의 씨앗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에는 모드 창조 작업의 진정한 바탕인 시각화와 더불어 직관적 명상 속으로 합쳐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것은 하나의 위협이고 장애이다. 잠재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고대의 고통, 지독한 기억들, 잊혀지지 않는 불행들이 자주 표면으로 솟아오르고 어떤 이성으로도 잠잠하게 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고통의 상태를 일으킨다. 심지어 의사소통의 장비들로 인해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도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형제의 비극, 고통 그리고 괴로움과 공명하게 해주고 있다. 현재 시기의 경제적 재앙은 대중의 공포 상태를 일으켰고, 개인이 더 민감하면 민감해질수록 정신에 더욱더 많이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적인 기억과 예상하는 상상력의 고통스러운 혼합이고, 이런 위협을 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근심과 걱정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고 혼 자신보다 작은 인자로는 극복하거나 상쇄할 수가 없다.
나. 영원한 지금(Eternal Now) 의식 속에 거주하고 있는 혼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예지의 섬광(flashes of prevision)이다. 혼과의 접촉이 확고하게 확립되고 아는 자(Knower)의 의식이 두뇌 속에서 안정될 때, 그때 예지가 어떤 공포도 가져다 주기 않는다. 그러면 그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종종 그렇듯이 지나가듯 힐끗 조각을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해결책은 여전히 똑같다: 수련되고 통제된 정신에 의한 혼과 두뇌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서 원인과 결과를 하나로 볼 것이고, 최대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상황을 옳게 다루기 위해서 올바른 수단을 취할 수 있다. 예지는 좀처럼 행복을 예측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찾기에는 너무 멀리 있지 않다. 탕아(prodigal son)가 껍질을 인식하고 지상의 삶의 공허함을 의식하는 지점에 인류가 와있다. 그는 붓다의 메시지를 신중하게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세기 동안 전쟁과 기근 그리고 욕망과 경제적 투쟁이 그를 삼켜버렸기 때문에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앞에 놓여 있는 그가 보는 전망이 암울하고 험악하며 격변하는 재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모든 함축된 의미의 형제애의 개념을 삶과 일 속으로 매일 가져온다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 정치가와 국민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 혹은 인종과 인종 사이건 모든 관계 속으로 모든 함축된 의미의 형제애의 개념을 가져온다면, 어떤 것도 뒤엎을 혹은 뒤집을 수 없는 그런 평화가 지상에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규칙이 상당히 간단하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다. 개개인의 괴로움과 두려움 덩어리가 어떤 개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일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자신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데 그가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에 동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는 미래 재앙의 전조들과 자기자신을 그렇게 동일시할 수 있어서 자기자신에게 오는 경험으로 그것들을 해석하게 된다. 그는 그들의 반응으로부터 자기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들의 감정 오라와 멘탈 오라 속에 있는 너무 많은 독을 흡수해서 공포와 두려움의 바로 그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미래는 어떤 숨겨진 재앙도 가지고 있지 않게 된다. 그는 단순히 현혹된 것이지만, 그의 아스트랄체와 태양신경총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고 똑같다. 이것은 세계의 카르마를 다루는데 미숙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활짝 열려 있으며, 당면한 미래의 자기자신의 운명과 그들 환경 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구분할 수 없는, 아주 많은 수의 민감하며 열망하는 혼들이 있는 곳에서 고통스럽게 일어나는 경우이다.
또한 한층 더 진보한 열망자와 제자도의 길에 있는 사람들이 아스트랄계에 있는 불행과 악이라는 오래된 진동---아주 오래 전 지나간 악---을 접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이 개인이나 그룹에게 오는 고통에 대한 아카식 기록의 작은 기록을 읽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들 자신은 결코 볼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에게 전해진 정보를 도용한 결과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3.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Fear of Physical Pain).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걱정의 근본 원인으로서 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다른 세 가지 부류의 두려움들의 결과이다; 그들의 아스트랄체에 부과하는 압박, 상상력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긴장감 그리고 육체의 신경계 속에서 사고하는 긴장 상태. 이 신경계가 상당히 과민하게 되고 육체의 가장 예민한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보통 사람들과 더 냉정한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고통이나 아픔이 악화되어 그들에게는 진짜로 고통의 상태로 된다. 이것은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미 과도하게 작용하는 신경계에 압박이 가해지지 않도록 진정제나 마취제를 사용해서 육체의 상태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러분은 내가 수술에서 에테르나 클로로포름과 진정제를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는지 물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아니지만 일시적으로는 강력하게 그렇다. 인간이 혼과의 접촉이 확고하게 확립될 때,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서 자유자재로 나가고 들어오는 능력을 계발했을 때, 이런 도움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종의 진화 지점과 세계 카르마에 의해서 필요한 긴급 처방들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균형을 잃은 사람들이나 발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약이나 마약을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의 현명한 안내 하에서 고통을 완화하는 신중한 사용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4. 실패에 대한 두려움(Fear of Failure). 이것은 많은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성공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깔볼까 하는 두려움, 기회를 보고 잡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채색하는 두려움 콤플렉스의 모든 측면들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안 맞는 혹은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 때문일 수 있고, 그에게 주워진 일에 부적합한 것처럼 보이는 장비 때문일 수도 있고, 많은 경우에 그가 제자라는 사실 혹은 그가 견습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된 중요한 혼(big soul)이라는 사실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혼과의 접촉을 했다; 그는 비전을 보았고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개성을 보고, 해야 할 일을 따라서 배열하고 그것이 그와 접촉하게 만든 사람들의 특질을 보게 해준다. 그 결과로 매우 강력한 종류의 열등의식이 생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진정한 힘의 흐름에 의해서 공급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에너지는 생각을 따르고 그 생각의 특질로 채색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에 비판적이고 역겨워하는 시선을 던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한탄하는 바로 그것을 제공하게 되어 일을 하기에 자신을 한층 더 부적합하게 만든다. 이것은 악순환이고 다음 구절 속에 있는 진리를 완전하게 깨달음으로써 상쇄되어야 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이다.” 자신의 전지의 혼의 성질에 대하여 곰곰이 되새기면서, 그는 그 혼처럼 된다. 그의 생각이 혼 의식 속에 집중하고 그는 개성의 매개체를 통해서 현현 속에 있는 그 혼이 된다.
이것은 인류를 괴롭히는 주요 두려움들에 대한 간단한 요약에 불과하고 그 주제를 활짝 열고 몇 가지 실천적인 제안들을 제시하는 기회로서 역할을 한다.
II. 우울함(depression) 혹은 그 정반대 들뜸(hilarity). 우울함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우리는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우울증의 공격을 피하는 사람이 거의 드문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고 그가 분명하게 보고, 확실하게 걷고 그리고 실재(Reality)를 인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독한 공기, 어떤 안개이다. 그것은 거대한 아스트랄 환영의 일부분이고,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울증이 존재하는 이유가 명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원인은 아스트랄적인 것 혹은 물질적인 것이고 세계의 상황 혹은 개인의 상황에 따른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들 속에 있는 우울증을 연구할 수 있고 그 원인들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의 현혹(glamor). 이것은 고립된 단위를 휩쓸어서 세계의 반응의 심연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을 만드는 개인 상황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활기를 빼앗고 우울한 결과를 가진 세계의 현혹은 우리가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 점성학적 요인들로, 행성 차트(planetary chart)에 영향을 주어서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혹은 주로 인종에 영향을 주는 것. 이 두 요인들이 종종 간과된다.
나. 하늘에 있는 태양의 길. 남쪽 길은 낮은 진동의 영향을 주는 성향이 있고 열망자는 가을과 초겨울에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 달의 어두운 반쪽 면으로 기울 때와 초승달 시기. 잘 알려져 있듯이, 이것이 명상 작업에 영향을 준다.
라. 보통의 인류에게는 그 의도가 애매모호한, 행성과 계획들에 외적인 힘들 때문에 기인한 심리적인 요인들과 대중적인 억제들. 인류에게 작용하는 이 힘들은 가장 민감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것들은 그 다음 그들 환경에 영향을 주고, 점진적으로 어떤 시기 혹은 몇 년의 주기에 걸쳐서 인종이나 국가를 휩쓸고 가는 어떤 탄력이 붙어서, 심오한 우울증과 상호 불신의 조건들을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슬픈 자기 몰두(self-absorption)을 유발하고 이것을 우리는 패닉(panic) 혹은 불안의 물결(wave of unrest)이라고 부른다. 그 작용이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혹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쟁이나 종교 심판, 경제적 궁핍 혹은 국제적 불신의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것은 부수적이다. 그 원인들은 진화 과정의 청사진 속에 있고---심지어 깨닫지 못하더라도---선법(good Law)에 의해서 지배된다.
2. 아스트랄 극화(Astral polarization). 인간이 감정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그가 삶을 자신의 무드와 느낌으로 해석하는 한, 그가 욕망에 반응하는 한, 그는 절망, 어둠, 의심, 괴로움 그리고 우울함의 순간을 오랫동안 갖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왜곡시키고 거꾸로 보여주며 기만하는 아스트랄계의 현혹(glamor), 망상(delusion)에 기인한다. 이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약 열망자들이 인식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환영(Great Illusion)으로부터 자신들을 자유롭게 할 필요성이다. 아르주나는 이것을 알았지만, 그것에 굴복했다. 그러나 필요의 순간에 크리슈나가 그를 버리지 않았고 [기타(Gita)]에 있듯이 우울함과 의심을 극복할 수 있는 간단한 규칙들을 세웠다. 그것들을 아래에 간단하게 요약하였다:
가. 그대 자신을 불멸의 하나(undying one)라고 알아라.
나. 그대 정신을 통제하라. 왜냐하면 그 정신을 통해서 불멸의 하나를 알 수 있다.
다. 형태는 신성의 광휘를 숨기는 베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워라.
라. 하나의 대생명(One Life)이 모든 형태들을 침투해서 죽음, 괴로움, 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
마. 그러므로 빛(Light)과 생명(Life)이 찾아지는 곳에 거주하면서, 형태측면에서 그대 자신을 분리시키고 나(Me)에게로 오라. 이렇게 환영이 끝나게 된다.
자신의 많은 감정적 반응들과 대중의 느낌의 파도에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 바로 아스트랄 극화이다.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와 잘못 안내된 감정적인 힘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서 결국에는 세계 전쟁, 경제 공황, 종교 부흥 혹은 린치로 끝나는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그를 들뜨게 하고 가짜 행복의 고지로 올리는 것도 또한 바로 이것이다. 그 속에서 아스트랄계의 “기만하는 빛(light deceptive)”이 그에게 즐거움의 거짓 근원들을 드러내거나 그의 민감성 때문에 대중의 들떠있는 상태가 억제되지 않은 울음 상태(weeping)의 정반대이자 거리낌 없는 유쾌한 상태 속에서 분출구를 찾는 히스테리컬한 상태 속으로 그를 휩쓸어 데려간다. 여기서 진정한 유쾌한 상태나 적절한 유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통 사람들 속에서 흔하게 보이고 피곤한 상태로 되는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들떠있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3. 육체가 활기 없는 상태. 이것은 다양한 원인들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가. 에텔체 혹은 활기체가 고갈된 경우
나. 전염병 같은 그룹 카르마의 결과로 만들어진 혹은 잘못된 감정적인 반응에 기인하거나 혹은 다른 생에서 가져오거나 내재적인 육체의 질병
다. 공기. 이것도 종종 간과되지만, 공기 상태, 기후의 성질, 열기나 추위, 습기나 건기, 밀도가 심리적인 관점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
연구해보면 우울증과 그 정반대의 모든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원인들을 이 세 가지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원인을 확인했을 때, 그 치유가 명백해질 것이다.
아스트랄 힘의 두 가지 현현인 두려움---죽음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고통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그리고 인류가 처하는 많은 작은 다른 두려움들---과 우울증을 어느 정도 자세하게 다루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두려움이 지금 시대와 주기에 인간에게 경계의 거주자(Dweller on the Threshold)이기 때문이다. 그것들 둘 다 심리적인 요인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나타내고 용기 같은 다른 요인을 사용해서 다룰 수가 없다. 그것들은 정신을 통해서 작용하는 혼의 전지(omniscience)---전능(omnipotence)이 아니라---로 대응해야 한다. 이 속에서 오컬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욕망, 동물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욕망 그리고 해방(liberation) 같은 열거된 다른 요인들을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두 가지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원인과 현현에 대하여 자세하게 글을 쓸 수 있지만, 두려움과 우울함을 극복할 때, 인류는 행복의 유산, 진정한 만족---위에 나타낸 갈망들은 상징에 불과하다---의 유산 그리고 해방의 유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먼저 기본적인 악들을 다룰 것이다. 일단 그것들이 지배되면, 남아 있는 것은 혼 속에서 올바른 방향(orientation)과 극화(polarization)이다.
다음으로 아스트랄체 속에 있는 잘못된 진동을 극복하고 아스트랄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스트랄체의 주제를 상세하게 다루었고 그것이 나타나는 다양한 잘못된 방법들을 검토하였다. 인류는 이런 방법들 중에 하나 속에서 주로 진동하고, 보통 사람의 아스트랄체는 어떤 무드, 두려움, 흥분으로부터 거의 자유롭지 않다. 이것이 태양신경총이 비정상적으로 계발되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인류 대부분의 경우 천골 센터와 태양신경총 센터가 삶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물질적인 삶에 대한 욕망과 성 생활에 대한 욕망이 긴밀하게 섞여 있는 이유이다. 동물 속에서 태양신경총은 두뇌이고 모든 본능적인 반응들을 지배하지만, 인간 속에서 보는 것처럼 순전히 성적인 표현과 그렇게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다. 두뇌가 깨어나는 정신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감각적인 인상을 인식하는 도구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을 때, 결국에는 횡격막 위에 있는 센터들 속으로 의식을 고양시키는 방향 설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태양신경총이 순전히 본능적 동물적 생명을 안내하는 인자로서 그 오래된 기능으로 내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에 있는 진보한 제자의 경우, 태양신경총은 대체적으로 심령적 민감성의 기관이고 상위 심령 힘들이 하위 심령 힘들을 대체하여 인간이 혼으로서 기능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감각적인 삶이 의식의 경계선 밑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에너지의 올바른 사용(The Right Use of Energy)
잘못된 진동을 극복하고 아스트랄 에너지를 올바르게 안내하는 것을 고려하는 데, 인간의 유정체(sentient body)를 순환하고 인간 유기체에 인상을 주는 주요 에너지들을 간략하게 연결시킨다면 여기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1. 행성 자체의 유정체를 통과하고 또다시 지나가는 에너지. 다시 말하면, 이것은 지구 영(spirit of the earth)의 아스트랄체이다. 이 실체는 행성 로고스가 아니라, 하강 국면에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인간과 아스트랄 엘리멘트가 갖는 관계처럼 행성 로고스와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생명에 대한 사실들은 [우주 불에 관한 논고(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찾아 보게 될 것이다. 그 생명은 거대한 수의 생명들의 집합이고, 행성 로고스의 개성 측면의 의식을 가진(sentient) 생명을 구성하는 달의 영들(lunar pitris) 혹은 작은 건설자들(lesser builders)이다---선을 위한 강력한 힘이자 우리가 “악(evil)”이라고 부르는 것을 위한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악(evil)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고, 그것의 정반대 의미로 선(good)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외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의식 상태들이 있을 뿐이다. 이 하강하는 생명 에너지는 우리의 아스트랄 엘리멘탈을 구성하는 하강 국면의 다른 작은 생명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이 거대한 생명과의 완전하고 민감한 동일시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개체성(individuality)이고 빠르게 조정하는 개성의 강인함 때문이다.
인간은 개인(individual)이다. 인간은 다른 요인들의 결과이고 이 요인들의 결합 때문에 동물들처럼 행성의 의식 있는 생명(sentient life) 속으로 완전하게 흡수되는 것에서 보호받게 된다. 인간이 죽으면, 그의 아스트랄체는 분해되고 그러면 그 입자들은 거대한 전체의 미분화된 조각들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
2. 아직은 물질 행성들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에텔계에도 없지만, 우리 태양계 경계선(ring-pass-not) 속에 있는 어떤 행성 형태들로부터 발산하여 나오는 어떤 아스트랄 에너지들. 그것들은 행성 차원의 의미에서 두 가지 그룹의 생명들을 나타낸다: 첫째, 우리 태양 둘레를 아직 돌고 있지만 빠르게 사라져가는, 입문자가 볼 수 있는 부패하고 분해되는 행성들의 아스트랄 껍질들. 우리의 달도 외부 형태가 완전하게 분해될 때 그것들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천천히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은 에텔체가 없으며 현재 세계 주기에는 결코 육체를 가질 수 없는 진화 상에 있는 작은 태양 생명(solar lives)들의 아스트랄 형태들. 이 두 그룹은 윤회하는 인간의 유형들에 대응하는 것들이고, 물질계를 넘어가서 재탄생 전에 서서히 체들을 벗어버리고 있으며 그들 껍질을 완전하게 비워버린 존재들에 상응하는 것들이다.
우리 지구 근처에 이런 아스트랄 형태들 두 가지가 있으며, 그것들은 빠르게 분해되고 있지만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긴밀한 관계 때문에, 그것들은 인간 속에서 두 가지 유형의 욕망 혹은 아스트랄 성향을 만든다. 하나는 어린 아이들과 다른 유형의 인간들 속에서 보여주는 본능적인 잔인함의 성향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성 생활(sex life)에 영향을 주어서 지금 많은 어려움의 원인이 되는 변태적인 성향들을 만든다. 죽어가고 있는 이들 아스트랄 발산들에서 나오는 많은 영향력에서 가학증(sadistic) 성향과 성 도착증들을 보게 된다. 고대 시대에는 그것들이 지금보다 우리 지구에 더 가까이 있어서 그것들이 훨씬 강력하였다; 그래서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식으로 행해진 공포와 잔인함이다. 그들 힘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그 에너지들이 작용할 수 있는 어떤 본능들이 인류 속에 없다면 그것들은 힘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레무리아 시대에는 그것들의 영향력이 건설적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성(sex)과 고통을 지성적으로 기록하는 가르침이 동물 인간을 인간 의식---혼 의식이 아니고 매우 초기 시대에 심지어 자의식도 아니다---속으로 안내하려고 노력하던 분들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탄생의 길에서 지구 가까이 에텔 형태를 취하는 과정에 있는 거대한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부패하는 껍질의 생명을 구성하지 않으며 진화 선상에 있는 생명으로 뉴에이지(New Age)를 시작하는 데 진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영향은 두 가지이다: 이 거대한 생명의 아스트랄체에서 나오는 발산을 통해서 인간 속에서 이기심으로 그리고 국가들 속에서 민족주의로 나타나는 이기주의(individualism)라는 분리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진행된다. 빠르게 통합되는 이 에텔체를 통해서 이 거대한 생명이 우리 행성의 에텔체를 점점 더 빠르게 진동시키는 상태로 가져오고 있다. 어떤 행성 차원의 영향을 일으키기 위해서 시리우스(Sirius)에서 오는 아바타(Avatar)에 대하여 [우주불에 대한 논고(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생명이 그 아바타가 아니라 어떤 선구자 성질이며, “물 (아스트랄 발산)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성 요한의 역할과 같다. 이것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는 가능하지 않지만, 이 두 가지 요인들에서 오는 에너지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겠다.
3. 지금 우리가 들어가고 있는 황도대 새로운 별자리, 물병자리(Aquarius)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아스트랄 에너지들. 이 별자리는 물을 길어 나르는 것으로 살아 있는 별자리이자 감정을 가진 별자리이다. 그것의 강력한 힘의 영향을 통해서 그것은 인간의 아스트랄체를 자극해서 새로운 일체성(coherency)을 갖도록 하며, 모든 인종과 민족 사이 차이를 잊게 만드는 인류의 형제애 속으로 들어가도록 할 것이며, 인류의 삶이 통합(synthesis)과 통일성(unity)으로 진전되게 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진 통합시키는 생명의 파도로 지금은 그것을 볼 수 없지만, 천 년이 지나면 인류를 하나의 완전한 형제애로 결합시킬 것이다. 그것의 감정적인 영향은 인간의 아스트랄체를 “정화”시켜서 물질계의 강력한 매력(유인)을 멈추게 만들 것이고, 나중 단계에서는 물질성(materiality) 속에서 경험했던 것만큼 강력한 의식성(sentiency) 속에서 과장(exaggeration) 상태를 만들 것이다! 모든 별자리들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인자를 과도하게 계발시키는 것이다. 현재 이 별자리의 영향은 인류 개척자들 사이에서 건설적이고, 평범한 인류들 사이에서는 파괴적이다. 다가오는 물병자리 시대에 대한 사실들을 요즘 문헌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여기서 그것에 대하여 확장하는 것은 도움이 안될 것이다.
4. 대중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그룹 완전성(group integrity)을 점점 더 확고하게 하는 인류의 신비가들로부터 반응을 즉시 일으키는 신성한 “태양의 심장(heart of the sun)”에서 나오는 희미한 발산들. 이 발산들은 너무 높아서 대체적으로 인류가 감지하지 못하지만, 신비가들은 새로운 진동에 반응하고 그 진동을 감지하는 것에 의해서 함께 모이게 된다. 그러면 그들의 작업은 그 진동을 낮추는 것으로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의 선구자들이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그룹의 신비가들의 작업이 필연적으로 커져야 한다. 왜냐하면 “태양 로고스의 심장(heart of the solar Logos)”이 이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보다 이 행성(지구)과 더욱 긴밀하고 리듬 있게 고동치기 때문이다. 그 신성한 대생명의 사랑과 생각이 위대한 분들의 오컬트 문헌에서 종종 우리 행성을 부르는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아들의 작은 딸(little daughter of a long lost son)”로 향하고 있다.
5. 인간의 아스트랄체를 휩쓸고 지나가서 활기차게 활동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발산 덩어리는 하나의 전체로 보는 혹은 어떤 생명의 표현으로서 네 번째 왕국 혹은 인간 왕국의 아스트랄체의 충동적인 욕망이다. 인류의 이 유정체는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위의 네 가지 아스트랄 에너지 유형들에 반응하고 개인의 아스트랄체의 역량에 따라서 그리고 계발 단계에 따라서 반응이 오게 될 것이다. 대중 심리학과 군중 사태의 근원이 바로 이 사실 속에 있다. 또한 소위 여론의 뿌리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만, 학계의 심리학자들이 이 네 가지 요인들을 인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저런 욕망을 일깨우기 위해서 인간의 생각들을 주조하면서 인류의 지도자들이 이 유형의 의식적(sentient) 반응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들은 상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다루고 있는 요인들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이 유형의 의식적 물질을 가지고 일한다; 그들이 두 번째 광선에 있으면 자성적으로(magnetically) 일하고, 첫 번째 광선에 있으면, 파괴를 통한 두려움을 주입하면서 일한다. 만약 그들이 세 번째 광선에 있으면, 편리의 법칙(Law of Expediency)을 사용한다. 이렇게 모두가 인간의 아스트랄체를 가지고 일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은 대체적으로 그들 자신의 아스트랄체 유형과 적합한 의식(sentiency)을 가지고 반응해서 선한(good) 작업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충분하게 발달된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은 자신의 혼의 선(good)을 위해서 혹은 자기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주도하는 사람들의 아스트랄 힘의 희생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6.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아스트랄 삶 혹은 민감한 발산들. 어느 쪽이 양극(positive)이고 어느 쪽이 음극(negative) 인가에 따라서, 그들은 그가 믿는 것 이상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거나, 혹은 그가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나거나 접촉하는 모든 사람, 우리가 함께 살거나 매일 어울리는 모든 사람이 좋게 혹은 나쁘게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그들은 우리의 감정 성질을 선하고 고귀하게 불러일으켜서 방향 재설정하도록 도와주거나, 그 수준을 낮추어서 진보를 방해하고 물질성이 있는 방향으로 끌어 당기는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여기서 그것에 대하여 확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7. 인간이 삶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감정적 (아스트랄 의식) 도구로, 인생이 흘러가면서 그가 사용하고 만들게 된다. 많은 사람은 위에서 나열한 그룹의 에너지들에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감정체의 희생자이다. 아스트랄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민감한 성격의 모든 발산에 반응한다:
가. 감정적(emotional). 아스트랄체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개인 혹은 그룹의 아스트랄체들의 발산에 대한 반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 구절을 신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 민감한(sensitive). 민감한 아스트랄체는 감정적인 반응이 없더라도 모든 인상들을 항상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제자들은 둘 사이를 신중하게 구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종종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감정적인 반응이 없더라도, 감정체에 영향을 주는 근원이 되는 원인을 기록하고 있다.
다. 단순한 반응. 어떤 충격(impact), 어떤 감정적인 인상에 반응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혹은 기록하는 것. 이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경우에서, 서로 반대되는 쌍(pairs of opposites)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은 연관된 사람의 아스트랄 매커니즘의 특질에 달려 있다. 네 번째 방법은 감정체로부터 완전한 무집착과 관련 있고, 상당히 효율적으로 봉사하고 지성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어떤 감각적 인상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자유자재로 분리시킬 수 있는 완전한 역량과 관련 있다. 결국에는 사랑과 감정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질문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잘못된 진동을 극복할 수 있는가?
첫째: 잘못된 진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반응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진동, 어떤 충동, 어떤 감정, 어떤 욕망은 형태 측면의 하위 측면에서 유래한다. 그것들은 혼에서 오는 발산과는 다르다. 유정체에 미치는 두 가지 영향을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 반응이 개성의 삶에 대한 반응인가 아니면 혼 의식에 대한 반응인가? 나의 유정체를 휩쓸고 지나가서 활동하게 만드는 이 충동이 내면에 있는 신성한 생명(divine Life)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현현한 어떤 것들 속에 있는 형태 측면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나와 공명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거나 아니면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나의 아스트랄체를 활동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들은 방해를 하는가 아니면 도움을 주는 것인가?
자신의 감정적 반응들을 세밀하게 조사해보면, 세계의 현재 상태 관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본적인 특질을 고려하게 만든다. 바로 무해함(Harmlessness)이다. 긍정적인 의미(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에서 무해함을 성취한다는 것은 분명히 입문의 문으로 안내하는 그 단계를 성취한 것을 의미한다. 처음 언급했을 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고, 입문이라는 주제 전체를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설명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성적인 사랑에 바탕을 둔) 올바른 생각, (자기통제에 의해서 지배된) 올바른 말, 그리고 (법칙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 올바른 행위 속에서 풀어 가는 그런 적극적(긍정적) 무해함을 실천하도록 하라. 그러면 그런 시도는 그의 존재의 모든 자원들을 필요로 할 것이고 성취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안정된 삶의 균형을 흔들어서 결과적으로 불편함을 초래하는 문젯거리를 싫어하는 그런 센티멘탈하게 사랑하는 성향과 나약함에서 오는 무해함이 아니다. 해를 줄 수 있는 도구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조금 진화한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그런 무해함이 아니다.
그것은 혼에 의한 개성의 통제와 진정한 이해에서 오는 그런 무해함으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영적인 표현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의식 속으로 그리고 형제의 깨달음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역량에서 발산하여 나온다. 이것을 성취하였을 때, 도움을 주려는 욕망 속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만트람의 힘이나 시각화를 통하여 “껍질을 세우거나(building a shell)” 혹은 “격리(insulation)”시키는 방법으로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진동에 반응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일시적으로 편리해서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배우는 것이다. 껍질을 세우는 것은 알다시피 분리를 만들게 되고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습관을 극복해서 이미 세운 껍질을 소모시켜야 한다. 이것은 그 습관을 극복하는 것으로 쉽게 할 수 있다. 열망자가 자신 주위에 너무 많은 껍질을 만들어서 거기서 나올 수도 없고 그와 어떤 접촉도 할 수 없을 때까지 껍질을 세우는 과정이 자동적으로 계속 진행된다. 한층 더 진보한 방법이자 마법 지식을 요하는 격리 과정은 활기체의 어떤 에너지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발산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충격(impact)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 다른 에너지를 멀리 떨어지도록 유지하게 된다. 다가오는 에너지에 이런 충격을 줌으로써 그 에너지들의 방향을 바꾸게 하고 다른 방향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에너지들은 어딘가로 가야 하고, 만약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준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꾼 바로 그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 않겠는가?
무해함(harmlessness)을 실천하는 것이 열망자가 일하는 가장 좋고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면 어떤 형태 속에 있는 어떤 생명이든 그 생명에 해가 되는 그런 것이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주는 것만 자신에게 끌어당기게 된다. 그는 이렇게 끌어 모은 유익한 힘들을 다른 존재들을 돕는데 사용한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그것이 수반하는 수련(규율)과 인간이 진화하는 삼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들과 모든 반응들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감독)로 인해서 감정체를 깨어난 정신의 지배 하에 가져오도록 만들어준다. 그것들은 또한 동료 인간을 이해하게 해준다.
두 번째로 제자가 파괴적인 에너지들과 잘못된 진동들을 흡수하여 변형시키는 것을 배우는 나중 단계가 있다. 그는 어떤 외벽이나 장애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형제들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거나 고립하지도 않는다. 무해함을 통해서 그는 모든 나쁜 발산들을 중성화시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제 그는 새로운 종류의 적극성(긍정)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고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그는 자신 속으로 모든 사악한 발산들(파괴적인 에너지와 잘못된 힘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구성요소로 분해하여 그것들이 온 곳으로 무해하게 무력하게 그리고 중성화시킨 채 하지만 그 성질을 해치지 않고 돌려보낸다. 이것이 어렵고 보통의 열망자에게는 전달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항상 비전 가르침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한층 더 진보한 방법으로 입문자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법칙에 대한 지식과 어떤 힘의 말씀(Words of Power)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는 에너지를 되돌려서 그것이 온 센터로 돌려보내는 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방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아직은 무해함을 많이 실천해야 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 그것을 적용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계속해서 기울여야 한다.
아스트랄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것에 대하여 입문단계에 있는 제자들에게 주워진 고대의 규칙 문헌(Book of Rules)에서 발췌한 세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진정한 비전 학파들은 아스트랄체 통제로 시작하고, 제자는 그가 무해함을 나타내는 데 진정한 성장을 이룬 후에 이 세 가지 규칙들을 암기하고 실천해야 한다.
규칙 I. 그대 형제의 가슴(heart)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고충을 이해하라. 그리고 말하라. 말한 말들로 하여금 그가 자신의 족쇄를 푸는 데 필요한 강력한 힘을 그에게 전달하도록 하라. 하지만 그것들을 그대 자신이 풀지 마라. 그대의 일은 이해하면서 말하는 일이다. 그가 받은 힘은 그가 일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Rule I. Enter thy brother's heart and see his woe. Then speak. Let the words spoken convey to him the potent force he needs to loose his chains. Yet loose them not thyself. Thine is the work to speak with understanding. The force received by him will aid him in his work.)
규칙 II. 그대 형제의 정신(mind)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생각을 읽어라. 오직 그대의 생각이 순수할 때만 그렇게 하라. 그리고 생각하라. 이렇게 만들어진 생각들이 그대 형제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생각과 합치도록 하라. 하지만 그대 자신을 계속 분리시켜라. 왜냐하면 누구도 형제의 정신을 흔들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있는 유일한 권리는 그가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사랑한다. 그가 옆에 서있다. 그는 안다. 그는 나와 함께 생각하고 나는 옳은 것을 하기에 강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배워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배워라.
(Rule II. Enter thy brother's mind and read his thoughts, but only when thy thoughts are pure. Then think. Let the thoughts thus created enter thy brother's mind and blend with his. Yet keep detached thyself, for none have the right to sway a brother's mind. The only right there is, will make him say: "He loves. He standeth by. He knows. He thinks with me and I am strong to do the right." Learn thus to speak. Learn thus to think.)
규칙 III. 그대 형제의 혼과 합쳐서 그를 있는 그대로 알아라. 혼의 세계에서만 이것을 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 합치는 것은 하위 생명의 연료를 주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계획에 집중하라. 이렇게 그는 그와 그대 그리고 모든 인간이 하는 역할을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그는 생명 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성취한 일을 알게 될 것이다.
(Rule III. Blend with thy brother's soul and know him as he is. only upon the plane of soul can this be done. Elsewhere the blending feeds the fuel of his lower life. Then focus on the plan. Thus will he see the part that he and you and all men play. Thus will he enter into life and know the work accomplished.)
이 세 가지 규칙에 붙여진 메모는 이렇다:
“이 세 가지 에너지---말(speech), 생각(thought) 그리고 목적(purpose)---는, 제자가 이해하면서 행사하고 그가 도우려는 형제의 일깨우는 힘과 합칠 때, 모든 초인들이 가지고 일하는 세 가지 에너지이다.”
고대 문구를 적합한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위에 개략적으로 바꾸어 쓴 표현이 깨어 있는 정신에 그 생각을 전달할 것이다; 이 규칙들은 보통의 열망자가 에너지의 올바른 안내에 대하여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그가 준비해야 하는, 몇 가지 생각을 요약하는 것이다.
현재 시대와 미래(The Present Age and the Future)
이렇게 우리는 인간 개개인이 사용하는 작은 아스트랄 단위가 거대한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갖는 위치를 보았다. 그리고 아스트랄 진화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들을 주목하였다. 또한 아스트랄 에너지가 오는 원천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우리 개개인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유정의(sentient) 힘의 바다 속에 담가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법칙 하에서 우리는 각자 사용하기 위해서 전체와 공명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그 보편 에너지 일부분을 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드리지 않은 아스트랄 에너지 유형들 중에 하나는 “태양의 심장(Heart of the Sun)”에서 발산하여 나온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하게 다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로 그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심장 센터가 열려서 활동할 때까지 인간의 심장이 그것을 전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순수한 본질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이 에너지의 흐름을 거대하게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의 사랑(love of God)”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순례자 개개인을 아버지 집(Father’s House)으로 이끄는 자유롭게 흐르는 밖으로 향하는 자성적인 인력이다. 인류의 가슴 속에서 자극하고, 세계 아바타들의 매개체를 통해서, 모든 인간 속에서 발견되는 그 신비한 열망을 통해서, 인류의 복지라는 목적을 가진 모든 운동들을 통해서, 모든 종류의 자선과 교육의 성향을 통해서 그리고 (소위 자연계 속에서) 어머니의 보호본능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 힘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룹 의식(group sentiency)이고, 다가오는 물병시대에 그 진정한 성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고려해야 할 요인들 중에 하나이기에 여기서 그것을 다룬다. 하지만 “심장이 열려서 주(Lord)께 올려지는” 사람들만 내가 말하는 것을 알 것이다.
인류 앞에 멀리 놓여 있는 그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불필요하다. 당면한 문제들---모두가 아스트랄체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개인적 혹은 인류의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아 혹은 혼의 잠재성을 혼란 속에서 나타내고, 그 작은 영향력 영역 내에서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주워진다. 지금 시기에 모든 열망자들을 위해서 다가오는 날을 위한 독특한 노력의 시기가 놓여 있고, 여러분을 안내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따라야 하는 어떤 제시를 하고자 한다.
모든 열망자가 에너지 집중점(focal point)이고,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의식적인 집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폭풍우와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그는 자신의 실재를 느껴야 한다. 여기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작용하고, 종종 (현재 같은 세계 시기에 그런 내면의 접촉점들의 필요성을 내다보면서) 위대한 분들(Great ones)은 봉사하려는 열망자들을 어떤 지역으로 불러모은다. 그들이 어떤 균형으로서 행동하고 일반 계획을 도와주며, 동시에 그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수업을 받는다.
모든 열망자들이 해야 하는 노력은 그 압박에 저항하거나 물리치거나 싸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법은 관심을 비자아에 집중하게 되어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노력은 상위 자아와 접촉해서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따라서 있어야 하고, 그렇게 직접적인 정렬을 하게 되면 하위 삼중 성질을 통해서 그리고 그 삼중 성질로 혼의 힘과 권능이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쏟아지게 되면 정확히 내면의 접촉의 정도에 비례해서 그리고 육체 두뇌와 코잘체를 연결하는 채널의 명료함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주위에 영향을 주는 지속적인 방사(radiation)가 일어날 것이다. 열망자는 또한 접촉한 사람들의 선(good) 속에 그 자신을 융합하는 그런 자기 망각(self-forgetfulness)을 추구해야 한다. 이 자기 망각은 하위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 회고(self-recollectedness)와 자기 망각은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혼돈 상태와 건설적인 목적 및 질서를 위해서 일하는 분들 사이에 접촉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상식(common sense)이라는 가장 필요한 요인을 사용한다. 이것은 분별력에 기인한 힘의 경제의 법칙(law of economy of force)을 따르는 것과 진정한 가치관을 수반한다. 이것들이 있을 때, 시간을 경제적으로 사용할 것이고, 힘을 절약할 것이며, 에너지를 현명하게 분배할 것이고, 과도한 열의가 제거될 것이다. 그러면 위대한 분들은 열망자의 총명함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협조자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모든 오컬트 훈련은 열망자의 계발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그는 진실로 영적 에너지의 집중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훈련은 자연 속에 있는 다른 모든 것처럼 법칙 하에서 주기적이고,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활동의 시기 다음에 프랄라야(휴지) 시기가 따라오고, 기록된 접촉의 시기와 겉으로 보기에 침묵의 시기가 교차한다. 여기서 단어들의 선택을 주목하라. 이런 교차는 주기성의 법칙(Law of Periodicity)을 부과하기 때문에 그렇고 만약 학생이 바라는 대로 계발한다면, 각각의 휴지 기간 다음에 더 활발한 활동의 시기가 따라오고, 훨씬 더 강력한 성취의 시기가 오게 된다. 리듬, 밀물과 썰물 그리고 고동치는 생명의 보조를 맞추는 박동은 언제나 우주의 법칙이고, 고귀한 곳(high Places)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을 배울 때 이런 리듬 있는 주기성을 명심해야 한다. 같은 법칙이 인간, 행성, 태양계를 지배한다. 모두가 어떤 더 거대한 대생명 속에 있는 에너지 집중점 혹은 센터들이다. 만약 그대가 하는 일이 성공하길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은 대체적으로 멘탈 수준에 있는 어떤 흐름들---상위 자아, 그대의 자아 그룹 혹은 대스승으로부터 발산하여 나오는 흐름들---을 건드릴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일이다), 분명하게 계획된 조건들이 제공되어야만 한다. 어떤 요인들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그것들이 없다면, 그러면 그 흐름이 방향을 바꾸게 되어 접촉으로 성취하는 것이 없게 된다. 만약 세상의 일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면---그리고 그런 시기가 모든 생명 주기에서 온다---그러면 이런 세부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러면 상위 접촉을 일시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질계에서 일에 그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반드시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른 종류의 봉사처럼 그 특정한 시기에 계획의 일부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식 상태를 가진 개별 계가 똑같이 신성한 대생명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모든 계에서 온전하게 표현하고 의식하는 것이 목표이다. 대부분의 열망자들에게 아직 부족한 것이 통합하는 의식이고 연속성을 유지하고 기록할 수 있는 역량이다.
만약 감정적 혹은 멘탈적 혼란이 있다면, 그러면 그 흐름이 방향을 바꿀 것이고 내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두뇌가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피로가 있고 육체가 휴식을 필요로 한다면, 마찬가지로 내적인 것을 기록하는 데 실패한다. 이런 접촉과 그에 따른 에너지 전달 작업에서 활성화되어 활동적으로 되는 것이 바로 에텔 매개체 속에 있는 센터들이다; 그러므로 만약 활기가 낮고 프라나 액(pranic fluids)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전체 진동하는 접촉이 낮아지고 센터가 진동과 반응을 기록하는데 실패한다. 자극이 적절하고 다른 조건들이 필요한 고요 상태로 들어갈 때, 그때 그 흐름을 만날 수 있고, 반응이 일어나며 새로운 수용의 주기가 일어나게 된다. 많은 질문을 보았기에 이렇게 설명을 했으며, 따라야 할 과정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기를 기대한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그 작업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고---봉사하는 그들의 힘에 긴밀하게 영향을 주는 선을 따라서---밟아야 할 개별 단계를 충분하게 인식해야 한다.
세계의 불안과 격변의 시기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관심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자 한다. 여러분에게 전체 상황이 구름으로 가득하고 수평선이 폭풍우로 어둡게 보이겠지만, 혼란이 지금처럼 일반적이고, 전체 지역이 관련되어 있을 때, 끝이 가깝다는 것을 명심하라. 자연 속에서 전반적인 전기 폭풍우가 공기를 깨끗하게 해서 태양빛과 한층 더 살기 좋은 조건들의 시기를 가져온다. 세계 전쟁이라는 전기 폭풍우가 있었고, 주위에서 천둥이 치고,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바람과 비의 폭풍우가 태양빛을 원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뒤엎으면서, 구름이 점진적으로 흩어지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내적인 침착과 확신을 간직하는 사람들, 개성의 전경을 보지 않고 모든 형태들과 시기에 걸쳐서 작용하는 무형의 힘들을 명심하는 사람들은 혼돈에서 질서를, 지나간 파괴에서 건설을 그리고 현재의 조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결정화하는 껍질에 의해서 지금까지 차단된 신선한 생명력이 해방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비전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작은 주기 내내 인내하는 그런 긴 인내심을 가져라. 왜냐하면 거대한 주기의 열쇠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대에 나오고 있으며 과거의 산물이자 미래의 약속인 사고의 어떤 주요 선들을 간단하게 다루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각들은 언제나 종교적이었다. 만물을 존재하게 만든 신, 무한자, 그리고 대생명에 대한 인간의 생각들 혹은 종교가 없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심지어 가장 무지한 야만족들도 어떤 거대한 힘(Power)을 인식하였고 그들과의 관계를 두려움, 희생 혹은 달래기(propitiation) 관점에서 정의하려고 시도하였다. 자연 숭배라는 기초부터 원시인의 주물 숭배와 타락한 우상 숭배로부터 우리는 아직은 불완전하고 부적합하지만 주의 빛을 보고 실재를 표현하는 것으로 적합할 미래의 진리의 사원(Temple of Truth)의 토대를 놓는 진리의 구조를 세웠다.
시간의 어둠에서 위대한 종교들이 나왔다. 이 종교들은 그들 신학과 숭배 형태들에서 다양하고, 조직화와 의식으로 특징을 이루며, 진리를 적용하는 그들 방법에서 다양하지만, 세 가지 측면에서 통일되어 있다:
1. 신과 인간의 성질에 대한 그들 가르침에서
2. 그들의 상징에서
3. 어떤 근본 가르침에서
인간이 이것을 인식하고 모든 인종들과 환경들 속에 있는 똑 같은 내면의 중요한 진리 구조를 구분하는 데 성공할 때, 그때 보편적인 종교, 하나의 교회(One Church), 신에게 다가가는 접근방법이 균일하지 않지만 통일된 그것, 성 바울의 말인 “하나의 주(One Lord),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 그리고 만물 위에 만물을 관통해서 그대 모두 속에 있는 하나의 신이자 모두의 아버지”를 드러내 보일 것이 나타날 것이다. 신학은 신에 대한 지식으로 사라질 것이다; 독트린과 도그마가 더 이상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경험에 바탕을 둘 것이고, 권위가 실재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룹에 대한 교회의 힘은 인간 속에서 깨어난 혼의 힘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다; 기적과 회의론과 불가지론으로 가득 찬 기적들에 대한 이유와 방법에 대한 논쟁의 시대가 초인간 영역을 통제하고 진화 과정의 초자연적인 단계를 통제하는 자연의 법칙들에 대한 이해로 바뀔 것이다. 인간은 신성한 유산으로 들어가서 그의 신성한 자질 때문에 그의 것인 모든 신성한 특징들, 권능들 그리고 역량들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Son of the Father)로서 자기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구시대의 고착된 전통에서 벗어나고, 교회건 도그마 혹은 신학이건 그 권위로부터의 반란; 자기결정 성향과 인종들과 믿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열과 사상의 오래된 장벽 그리고 구시대 기준을 뒤엎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혼돈과 의문, 반발과 겉으로 보이는 방종의 중간 단계를 지나가고 있다. 과학의 방법들---조사와 분석, 비교와 추론---이 종교적인 믿음에 적용되고 있다. 종교의 역사, 독트린의 토대, 아이디어의 기원과 신에 대한 사고의 성장이 연구 대상이 되고 조사를 받고 있다. 이것이 많은 논쟁을 야기한다; 그리고 신, 혼, 인간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대한 구시대의 고착된 생각들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사상의 학파들은 그들 생각과 방법에서 서로 다르게 언제나 존재해왔고 인도 육파(six School) 철학이 실질적으로 현현의 이유와 의문에 대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기본적인 추론을 구체화시켰다. 과학적 기법과 방법의 천재성을 가진 서구의 정신이 이 여섯 가지 이론을 다양한 하위 명제들로 세부화했지만, 여섯 사상 학파에 서구에서 새롭게 추가한 것이 거의 없다. 사상, 이론, 추론, 종교, 교회, 컬트, 종파 그리고 조직들의 뒤섞임에서, 두 가지 주요 사상의 선이 나타난다. 하나는 결국에 사라질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시대를 위해서 충분하고 인간을 입문의 산과 사원의 고귀한 절정으로 데려다 줄 그 궁극의 진리 표현을 탄생시킬 때까지 강화되어 성장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선은 다음과 같다:
1. 과거를 되돌아보고, 과거 방법들, 구 신학들과 진리를 찾는 수구적인 방법들로 되돌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예언자나 성경 혹은 신학, 그것이 무엇이건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깨달은 혼의 자율적인 안내보다 부과된 권위에 대한 복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교회나 통치를 따르는 사람들로, 순수한 헌신과 사랑으로 구별되지만, 그들이 부여 받은 신성한 지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의 헌신, 신에 대한 그들의 사랑, 엄격하지만 오도된 양심, 무관용이 헌신자로서 나타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헌신에 의해서 눈이 멀었고 그들의 성장이 그들의 광신(fanaticism)으로 제한된다. 그들은 대부분 구세대에 속하고 그들의 희망은 헌신과 진화 그 자체가 그들을 두 번째 그룹 속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그 사실 속에 있다.
이 첫째 그룹은 구 형태를 완전하게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 결정화 작업에 전념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구시대 진리를 정의하는 일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이 명확해질 것이고, 본질과 비본질이 있는 그대로 인식될 것이며, 도그마의 표현과 근본적인 생각들이 너무 대조돼서 기본적인 것이 보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부차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믿음들이 거부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시대에는 기본적이고 원인이 되는 것만이 가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두 번째 그룹은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 그룹은 어떤 종교나 조직에 속하지 않지만 자신들을 보편적인 교회(Church universal)의 구성원이자 “서로서로 한 몸(members one of another)”으로 여기는 실재를 아는 자들, 지성적인 신비가들, 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부 그룹이다. 그들은 모든 나라에서, 모든 인종과 민족에서 모일 것이다; 그들은 같은 상징을 배울 것이고, 같은 길을 걸을 것이며, 같은 비본질을 거부할 것이고 본질적인 믿음이라는 똑같은 몸을 분리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서로 알아볼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인종들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똑 같은 헌신을 줄 것이고, 서로 서로의 성경들을 똑같이 자유롭게 사용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주관적인 배경을 형성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세계 종교의 영적인 핵을 구성한다; 그들은 결국에는 세계를 구원할 통합하는 원리이다.
과거에는 세계 구세주들---세계 메시지를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빛을 가져온 신의 자식들---이 있었다. 이제 마땅한 때에 진화 작업을 통해서 아마도 이 세계에 구원을 가져올 어떤 그룹---그룹 사상을 구현하고 그룹의 성질을 나타내며, 크리스트의 몸(body of Christ)의 진정한 의미를 작은 규모로 현현시켜서 세상에 영적인 유기체의 진정한 성질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는 그룹---이 나타날 것이고, 사람들의 생각과 혼을 자극하고 에너지를 주어서 신 자신의 사랑과 지식 그리고 조화를 쏟아 부음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알릴 것이다.
과거에 종교들은 어떤 위대한 혼, 어떤 아바타, 걸출한 영적 인물에 의해서 세워졌고, 그들의 삶과 말씀 그리고 가르침의 흔적이 인류의 가슴에 찍혔고 많은 세월 동안 지속되어왔다. 그룹 아바타(group Avatar) 메시지의 영향은 무엇일까? 진리를 선언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위대한 작업 속에서 주관적으로 함께 뭉친, 신을 아는 자들의 그룹 작업의 강력함은 무엇일까? 크리스트들이 아닌 서로의 노력을 보완해주고 서로의 메시지를 강화해주며 어떤 유기체---그 유기체를 통해서 영적 생명이 영적 에너지와 원리가 이 세상에서 느껴질 수 있게 한다---를 구성하는 어느 정도 신을 아는 자들로서 세계 구세주들의 그룹의 사명의 영향은 무엇일까?
그런 체가 모든 나라에 구성원들과 함께 지금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그들은 매우 적지만, 꾸준하게 구성원들이 증가하고 있고 점점 더 그들의 메시지를 느낄 것이다. 건설 정신이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건설자들이다; 진리의 정신을 보존하는 작업이 그들에게 주어졌고, 사람들의 생각을 재조직해서 인류의 정신이 조절되고 다음 단계의 신성의 개화를 인식하게 해 줄 그 명상 상태와 회고 상태로 가져오는 일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반항적인 독트린주의자들과 주관적인 신비주의 그룹들인 이 두 그룹과 연결된 것이 새로운 세대의 대다수 젊은 사람들로, 그들은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그들 생각은 대체적으로 두 그룹에 대한 인식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에 속하지 않고 그 과거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들을 올바른 채널로 돌리는 과업을 수행하는 지자들(Knowers)의 내면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지식의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두 가지를 인식한다: 그들의 자유의 필요성과 지식에 대한 강렬한 열의. 그들은 과거의 전통을 경멸한다; 그들은 진리를 구시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아직은 그들이 확실한 바탕에 있지 않고 단지 탐구하고 질문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세계 혼란, 겉으로 보기에 방종과 붕괴라는 현재 상태가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상태는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힘들이 충돌한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과거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들은 형태와 과거를 강조하면서 그 형태들의 파괴를 만들게 된다.
2. 내면의 신비가 그룹들에서 나오는 것으로, 행성 하이어라키의 안내 하에서 그들은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있다.
3.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아직은 맹목적으로 힘을 사용하고 그들이 현명하게 쏟아 부을 수 있는 그런 건설적인 채널들을 알아볼 때가 올 때까지 그 힘을 어리석게 휘두르고 있는 대중들에서 나오는 것.
그래서 이런 과도기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추구하는 열망자와 탐구자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을 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시대 전통을 거부하고 신비가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지만 자신들을 해방된 혼으로 알고자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개화에 대한 혼의 법칙들과 진리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지식과 함께 건설하는 신비가들(Building Mystics)의 꾸준한 성장이 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혼을 발견하고 그 표현의 도구인 하위 삼중인간과의 관계를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자동적으로 주관적인 생명의 의식 속으로 지나가서 원인을 가지고 일하며 결과의 세계에 몰두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는 모든 시대의 신비가들이자 아는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요즘 종교적인 충동의 추세이고 이것이 다가오는 시대의 영광이다.
현재 세계 상태의 바탕에,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한 신비가 그룹, 지식과 비전 그리고 멘탈 수준에서 일할 수 있는 힘으로 구별되는 신비가 그룹이 함께 모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그룹은 또한 엄격하게 종교적인 유형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수 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포함하는 이 그룹 속에서 인간의 사상 모든 부문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요즘 다른 모든 것처럼, 과학 그 자체가 변형 과정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의 인식하지 못하듯이, 물질을 가지고 하는 그들의 작업과 원자에 대한 탐구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바로 이 영역에서 과거의 기법들과 방법들을 점진적으로 버릴 것이고 물질의 성질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과 다른 근본적인 개념이 새로운 시대를 표시할 것이다. 다음 25년 내에, 원자의 성질에 대한 겉으로 보기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들로부터, 어떤 에너지 충동에 대한 인식을 볼 것이고 이것은 자연의 다양한 왕국들 속에 있는 만져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게 하는 (원자와 원자 형태들에 작용하는) 그런 에너지를 발견하면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지혜(Ageless Wisdom)의 어떤 기본적인 전제들을 이렇게 나타낼 것이다:
1. 혼은 인력(attraction)과 응집력(cohesion)을 만들면서, 형태를 세우는 원리이다.
2. 이 혼은 물질 자체 에너지와 구별되는, 어떤 에너지 유형 혹은 측면이다.
3. 원자는 어떤 에너지 단위로 인식되어 왔지만, 원자들을 휩쓸어서 우리가 유기체와 형태라고 부르는 집합체로 만드는 그 에너지가 아직은 구별되지 않는다. 과학계에 있는 신비가들은 이것을 다음 세대에 감지하여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모든 마법 작업의 원천인 현현의 형태를 세우는 측면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자연의 다양한 왕국들 속에서 형태, 형상, 종, 유형 그리고 생명 그 자체가 현현하는 수 많은 형태들을 구분 짓는 다양성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에너지이다. 형태들의 일정한 양을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에너지의 특질이다; 그리고 원자들의 집합이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이질적인 형태를 가진 인종의 의식 속으로 출현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빛이다.
4. 자연에 있는 모든 왕국들 속에서 형상들과 형태들 그리고 일관된 유기체들을 만드는 이런 에너지 유형이 생명 원리가 아니다. 혼 혹은 특질을 부여하는 원리인 형태를 만드는 자를 연구하고 인식해서 조사될 때까지 그 생명 원리는 그대로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인식되지도 않을 것이다.
5. 인간이 자신의 신성한 유산인 더 충만한 의식적 소유 속으로 들어가서, 혼으로서 일하면서 자신의 매개체 (육체, 감정, 멘탈)를 통제하면서, 모든 형태들 속에 있는 혼과 의식적으로 일치하여 일할 수 있을 때만 이것이 가능하다.
인류가 위의 가설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해서 현현체 밑에 놓여 있는 혼의 인자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그것을 반박하려고 추구할 때만 이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객관적 성질의 영역에 있는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과 일꾼들은 혼으로써 일해왔고, 어떤 특정한 분야에 있는 작업자가 그가 구성한 어떤 가설에 믿음을 갖고 시작해서 그의 작업을 단계별로 진행시켜가면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세우지 못한 진리의 측면을 접촉하게 되었을 때, 인간의 다른 지식 영역에서처럼 물리학과 화학 영역에서도 이 모든 가장 놀라운 발전들을 이루어왔다. 그러면 그의 직관을 사용하여 사고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서, 그는 거기서 발견한 지식을 가지고 어떤 이론이나 원리, 실험과 기계 장치로 그것을 만들어내며 그래서 그것은 그룹의 소유가 되고 때가 되면 세계가 이해하고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초에는 그것은 신비스러운 작업이고 신비스러운 직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이 임박해 있고 다은 두 세대 동안 근대 사상과 삶에 대변혁을 일으킨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가 이미 감지되었고 실험과 조사의 주제가 되었다. 즉, 원자 에너지 방출이라는 주제이다. 이것이 세계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상황이 대체적으로 경제적 상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계 문명이 단순화될 것이고, 돈의 악몽(돈의 소유와 무소유)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인류 가족이 다섯 번째 왕국인 영적 왕국과 자연의 세 가지 하위 왕국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왕국으로서 그 위치를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근대 교육 방법들을 대체할 혼의 문화(soul culture)를 위한 시간과 자유가 있게 될 것이고, 초인간 의식의 계발과 혼의 힘들의 의미가 모든 곳에 있는 교육자들과 학생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발견은 빛과 색깔에 대한 현재 탐구에서 자라서 나올 것이다. 색깔이 사람과 동물 그리고 식물계에 있는 단위들에 미치는 영향이 연구될 것이고 그런 연구 결과로 에텔 시력의 계발 혹은 순전히 육체 눈으로 물질의 다음 등급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사람들이 빛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말할 것이며, 인간의 사고 부문에서 오는 계발의 효과가 세 가지가 될 것이다:
가. 사람들이 에텔 시력을 소유할 것이다.
나. 외적 형태들의 내적인 구조로 있는 활기체 혹은 에텔체가 자연의 모든 왕국들 속에서 보일 것이고 주목해서 연구될 것이다.
다. 이것은 인종의 모든 장벽과 피부색의 모든 차별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형제애가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신성한 현현의 모든 형태를 다양한 정도의 밝기를 가진 빛의 단위로 보게 될 것이고, 점점 더 전기, 볼트, 힘의 강렬함 관점에서 말하고 생각할 것이다. 진화 단계와 관련해서, 사람들의 연령이나 상태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될 것이고, 나이가 많은 혼들과 젊은 혼들의 상대적인 역량을 인식하게 되어 지상에서 깨달은 사람들의 규칙을 다시 세우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런 발전들은 다음 두 세대 과학자들의 작업이고 그들의 노력의 산물이 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질료 원자를 가지고 하는 그들의 작업과 전기, 빛 그리고 힘의 영역에서의 조사가 필연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형제애인 형태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줄 것이고 모든 형태들의 내적인 빛이자 광휘인 혼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인 세 번째 발전은 오컬티스트들이 마법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한층 더 엄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소리와 소리의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자라날 것이고 창조 세계 속에서 인간의 손안에 엄청난 도구를 주게 될 것이다. 소리를 사용해서 미래 과학자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소리를 통해서 새로운 발견 영역이 열리게 될 것이다; 자연의 왕국 속에 있는 모든 형태가 내는 그 소리가 연구되고 알려지게 될 것이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새로운 형태들이 그것을 통해서 계발될 것이다. 한 가지 힌트를 여기 줄 수 있고 그것은 원자 속에 있는 에너지의 방출이 다가오는 소리의 과학과 연결되어 있다.
지난 세계 동안 소리 영역에서 일어난 것의 중요성이 아직은 정당하게 평가 받지 못했고 이해되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 행성에서 나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된 소음과 소리로 엄청난 효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계장치의 굉음, 세계 모든 부분에서의 교통 수단들의 덜컹 소리---기차, 배 그리고 비행기---거대한 도시들같이 밀집된 지역에서 인간이 내는 소리들의 집중 그리고 현재 시기에 음악 소리를 모든 가정과 거리로 가져오게 해주는 보편적인 라디오 사용으로 인간의 신체들과 모든 곳에 있는 생명의 모든 형태들에 어떤 영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영향들이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동물계와 주로 식물계에 있는 어떤 생명 형태들이 사라질 것이고 소리, 소음 그리고 음악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점점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 세 가지 발전이 새로운 시대를 알릴 것이고 지금 같은 과도기에 필요한 변화들을 만들어낼 것이며 형제애가 기조가 될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연 속에서 드러난 사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빛 속에서 걷는 시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된 내적 광휘의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세계의 작업이 소리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힘의 말씀을 사용하고 숙련된 마법사의 작업을 통해서 이행될 것이다. 질료에 대하여 이 숙련된 일꾼들은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고 빛의 관점에서 항상 보며 소리의 목적을 이해하면서 구조적인 변화들과 새로 오고 있는 인종에 적합한 문명을 만들 그런 물질적 변형들을 가져올 것이다. 그 작업은 혼과 그 현현의 도구를 의식적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인종에서 아직 계발되지 않은 부분을 더 나은 현현으로 가져다 주고 스스로 더 진정한 표현을 할 수 있게 해줄 그런 문화적 방법들이 세워질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가져오는 것이 다가오는 과학적 탐구자 세대의 특권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주기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심리학의 성장이다. 그것은 물질주의 학파의 근대 심리학자 관점에서 새로운 요인의 출현이 될 것이고 혼의 인식과 관련될 것이다.
기계론적 심리학파는 그 소중한 목적을 다하고 있다. 행동주의자들이 발견한 것들은 결론에서는 잘못되었지만 사실상 건전한 것이다. 그들은 내성주의자라는 이름으로 품위 있게 보이는 더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학파에 필요한 제동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현재시기에 세계에 있는 많은 다른 것처럼, 위에 언급된 두 가지 기계론적 학파와 내성주의 혹은 주관학파에서 두 학파 속에 있는 진리를 구체화하고 서로 조정시키는 세 번째가 나타날 것이다. 거대한 규모로 동양과 서양을, 신비주의와 오컬티즘을 융합시키는 속에서 이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싸울 것이 없다. 그러나 사고의 진화 속에서 현재시기에 사상의 주요 추세는 빠르게 서로 근접하고 있고 그것들에서 통합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이 다가오는 주기에 입지를 세울 적합한 발판이 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대략적으로 심리학 분야에서 사상의 세 가지 추세를 주목한다면 가치가 있을 것이다.
1. 기계론적 학파는 구조를 강조하고 인간의 반응들---멘탈, 감정 그리고 육체적----이 전적으로 물질적 측면 때문에 기인하며 인간이 정상적 비정상적으로 나타내는 행동과 특이성들은 구조가 원인이며 그것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본다.
2. 내성주의 학파는 상태들의 원인이 되는 그리고 종종 말하듯이 “인식(awareness)을 인식하는” 어떤 자아 혹은 의식적인 어떤 것을 가정한다. 이 심리학파는 구조를 인정하지만 행동의 어떤 측면들과 어떤 반응들과 문제들을 순수한 기계론적 과정 하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더 오컬트 입장에 근접하지만, 그렇게 멀리 나가지 못한다.
3. 활기론자(vitalist) 혹은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외부 환경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에너지와 힘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여기는 심리학자들 그룹이 있다. 이것들은 순전히 인간 자신의 자아 속에서 일어나는 에너지들보다 더 넒은 성질의 에너지들이고, 자연 그 자체가 원인이며 인간을 제외한 유기적인 생명 단위들 속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거대한 기본 충동들 중에 하나이다.
이 세 가지 학파 속에서 보호되는 진리는 하나의 진리이고 그것 각각의 측면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
진정한 인간이 활동하는 어떤 도구 혹은 방법이 있고, 그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서 세우고 사용하고 통제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어떤 구조가 있다. 그러나 더 주관적이고 추론적인 학파에 따르면, 그는 인식하는 의식 센터로서 자기자신, 즉 지성의 왕좌 위에 있는 “나(I)”와 그가 외부 세계를 접촉할 수 있는 그 도구를 구분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그 도구의 사용자인 “나(I)”가 이것을 할 수 있을 때, 그는 또 다른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즉, 그가 에너지 생성자이자 사용자이고 자기자신의 것인 일정 양의 활기를 관리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 행성 그리고 우주 속에 그가 반응할 수 있고 사용하며 적용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에너지와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학파들은 초기 단계에 있는 이런 인자들의 보호자들이다. 싸움과 분리라는 현재 체계 하에서, 이 세 가지 학파들은 대체적으로 서로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추론에서는 틀리지만 그 사실들에서는 맞다. 그들 모두 서로가 필요하고 세 가지 제시를 통합시킴으로써 분리된 세 가지 보다 진리에 더 근접한 네 번째가 나오게 될 것이다. 현재 사상계 속에 있는 다른 기본적인 추세들을 고려해 볼 때, 가장 지배적인 것 중에 하나가 점점 더 그룹 의식 혹은 주위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책임감으로 인식해왔고 개인 속에서 자아의 진동(egoic vibration)을 나타낸다. 그것이 혼이 그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첫 번째 조짐들 중에 하나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분리된 자아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이웃의 상태 속에서 그 상태에 맞추어 조정할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형제를 지키는 자가 되는 의무를 맡게 되고 사실상 진보, 만족, 정신의 평화와 번영이 형제와 떨어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이 꾸준히 개인에서 국가로 확장하고, 가족 단위에서 세계로 확장하며, 그래서 거대한 조직들, 형제단, 클럽, 리그와 각종 운동들이 모든 곳에 있는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의식 속에서 받는 대신에 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점점 더 성장하고, 형제애와 관련된 어떤 기본적인 개념들의 인식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사실로서 형제애는 아직은 대체적으로 이론에 불과하지만, 이상으로서 형제애가 이제 인류의 의식 속에서 형성되었다.
사라져갈 운명인 사상 학파들 중에 하나는 현재 시기의 철학들 중에 하나이다. 인간이 지혜의 의미를 점점 더 이해하고 신기원적으로 더 현명해짐에 따라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 전문적인 의미의 철학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철학 학파들은 그 목적을 거의 다했다. 이것은 신에 대한,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신성, 종말론 그리고 영적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철학 학파들의 마지막 위대한 몸짓이 아직 남아있다. 후반기에 행위 속에서 진실로 우주론자(cosmologist)가 될 사람들이 그들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인류의 말씀(Word of Mankind)을 이해하고 파악하며 개인의 중요성을 알아보게 되면, 우주의 말씀(Word of Cosmos)이 마땅한 그리고 더 옳은 관심을 받을 것이고.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저 거대한 존재의 법칙들과 성질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우주 크리스트는 개인 크리스트를 제외하고 어느 것에 의해서도 결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면서 알게 될 것이지만 인간은 이제 자신의 신성을 막 세우려고 하고 있다. 진화가 도구를 완전하게 만드는 데까지 진척되어서 그 도구가 이제는 조직화되고 통합된 유기체, 즉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고 신성한 사용자를 위해서 준비가 되었다. 다음 몇 십 년이 지나면서 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립될 것이고, 인류의 한 가지 개념으로서 혼의 힘이 확립되는 지점까지 내성주의 사상가들, 신비가들 그리고 오컬트 학생들의 작업이 진전될 것이다. 그리고 혼의 법칙이 인간의 법칙을 폐지하지는 않더라도 (왜냐하면 작은 것은 항상 거대한 것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대체하는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 현현하는 혼은 언제나 법칙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왜냐하면 법칙을 어기려는 성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침해하려는 성향도 없기 때문이다.
자아로서 혼에 대하여 점점 더 커져가는 확신이 물질의 지배를 강조하고 주관적 객관적 모든 현상을 물질의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상 학파들이 외치는 그 이론에 반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싸움을 통해서, 진리가 나타나서 빛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더 거대한 경우처럼 마치 영이 경험의 결과인 특질을 획득하고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서 “물질의 어깨 위로 올라가듯이”. 이렇게 되면 지식이 이론을 대신할 것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추론을 대체할 것이다. 인간의 신성한 성질에 대한 이론화 하는 것이 곧 확신으로 대체될 것이고, 철학화 하는 것이 혼을 직접 탐구하는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것이 관심과 조사 대상이고, 혼에 대한 실험 과학(experimental science)이 대학과 공공 재단에서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될 때 머지 않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혼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그 성질과 목적 그리고 생명을 분석하는 것이 지금 과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혼이 추구하고 결국에는 사용할 그 도구에 관심 갖고 있는 그것과 동등한 관심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거대한 진화의 발전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경고와 앞에서 말한 많은 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그것이 무엇이건 물질을 고수하지 마라. 모든 형태들은 실험에 불과하고, 그것을 버리거나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균형점에 도달하라.
둘째, 모든 개성 혹은 인격(그대 자신을 모함해서)은 법칙 하에 밀물과 썰물의 주기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두드러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썰물의 시기에 그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내면의 신(inner God)이 아닌 그들(개성)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종종 실망(당황함)을 준다.
셋째, 또한 비전이 흐려지고 골짜기를 건너야 하며 별들이 안개로 차단되는 주기들이 개인의 삶에서 오듯이, 마찬가지로 그룹과 관련해서도 같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나 (모든 열망자들과 진실한 영적 그룹들이) 그 골짜기를 건너면 입문의 산(Mount of Initiation)이 보이고 오르게 된다는 것도 똑같이 명심하라; 암흑 다음에 비전이 오고, 밤 다음에 낮이 오듯이. 우주 차원의 그룹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주기 속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다; 인류를 통제하는 작은 주기 속에서도 같은 결과가 따르고, 같은 법칙이 인간의 도구들 속에서 지배하는 작은 생명들의 그룹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은 그룹 속에서 지속할 것이다.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넷째, 그대 자신이 좌절하게 허락하지 마라. 좌절(discouragement)은 세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신체의 활기가 낮아서 그렇다. 그런 경우, 아스트랄체가 육체에 너무 강력한 요구를 하고, 그것에 반응하려는 노력과 그렇게 적합하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감지하는 속에서 좌절감의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이것이 종종 육체가 섬세하게 조직된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런 유형의 좌절을 치료하는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가? 휴식과 느긋한 여유가 새롭게 만들 것이고, 그 문제를 조정할 수 있게 자연에게 시간을 주도록 하라. 태양이 또한 프라나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결국 건전한 상식이 특히 필요하고, 또한 각자의 일이 지나친(압도적인) 필요가 아니라 각자 역량에 따라서 조정된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이것에 대하여 깊게 명상해 보라.
좌절의 또 다른 바탕은 구체적인 정신이 과도하게 계발되어 감정적 성질에 너무 과한 요구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육체에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모든 면에서 볼 수 있는 너무 큰 역량과 세계의 필요를 너무 불균형하게 이해하고 어떤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이슈들을 너무 빠르게 파악하게 되면 아스트랄체 속에서 격렬한 진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육체를 흔들게 만들고 그 결과로 우리가 좌절이라고 부르는 것이 감지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균형 감각을 배양해야 하고, 현명하게 균형 잡는 능력이 와야 하고, 멘탈 균형을 성취해야 한다. 그 치료는 시간, 영원, 진화 (무엇이라고 부르건)가 모든 것이 일어나도록 할 것이고, 모든 일이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지 않다는 깨달음 속에 있다. 현명한 혼들이 선한 작업을 빠르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은 확실하다. 비록 현명한 혼들이 오지 않더라도, 진화의 힘이 한층 더 서서히 진행되더라도 모든 것들이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하지만 멘탈 차원에서 좌절이 올 때, 차분함 속에서 그대 자신을 조정하고 사색(contemplation) 속에서 시간(Time)이라는 저 위대한 인자가 궁극적으로 성취하는 것을 감지하라.
세 번째 원인은 더 오컬트 영역에 있고, 서로 상반되는 것들(pairs of opposites)을 균형 잡는 데 기인한다. 진자(펜줄럼)가 우리가 어둠, 악,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부르는 것으로 향해서 갈 때---반드시 그렇게 된다---그것이 모든 체들 속에서 불편함을 초래하는 어떤 긴장 상태를 빛으로 향하는 그대들 속에서 만들어내고, 특히 육체 속에서 우울함(depression)을 감지하게 된다. 그대의 체가 더 민감하면 할수록, 이런 형태의 유혹에 그대가 반응하는 것이 더 크다. 이것이 특히 열망자들을 방해하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열망자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형태 측면에서 오는 것에 수용적으로 만들며, 그의 진동을 느리게 만든다. 그것은 성취를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세계 봉사에 피해를 보게 된다. 좌절을 치료하는 것은 격렬한 반대 진동을 배양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멘탈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있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그대 자신의 개성이나 환경 속에 있는 조건들의 원인을 볼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다. 이렇게 균형을 성취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앞에서 말했던 해결책으로서 시간(Time)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또한 구체적인 정신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혼과 연결하고 혼을 통해서 자아 그룹과 그리고 대스승과 연결하는 데 있다. 대스승과의 접촉은 이 순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 그리고 점점 더 혼의 안내 하에 오는 사람은 점점 더 대스승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것도 결코 잊지 마라.
그러면 이타적인 의도를 가지고 대스승과 연결하게 되면, 다음으로 순수한 공평심(dispassion)을 갖고 그리고 행동의 결실을 보고자 하는 욕망 없이 주도 면밀하고 집중된 노력이 따라오게 된다. 이 과정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인내심을 갖고 추구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 어느 것도 흔들 수 없는 어떤 균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오컬티즘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배양해야 할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과 특히 그룹이 성취하길 바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동기의 순수화(consecration of motive)
2. 철저한 대담함(utter fearlessness)
3. 추리 능력으로 현명하게 균형을 갖춘 상상력의 배양
4. 증거를 현명하게 따져보고 최고의 본능과 직관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역량
5. 기꺼이 실험하려는 의향
이 다섯 가지 성향들은 삶의 순수함 및 생각의 조절과 연결되어 성취 영역으로 이어줄 것이다. 또한 그대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대 각자가 있는 곳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이 깨닫듯이 진정한 문제는 철저한 대담함을 성취하는 것이다. 모든 두려움, 의심 그리고 걱정을 제거해야만 한다. 만약 이것을 할 수 있다면, 내면의 접촉 지점을 계발하고 영감의 원천을 발굴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할 것이다. 통제되지 않은 감정적 성질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들이 정보의 원천을 막고 있다. 아스트랄체가 통제될 수 있다. 어떻게?
1. 직접적인 억제에 의해서. 이 방법은 초심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에 반작용을 주고, 아스트랄체 속에서 막힘 현상을 일으키며 에텔체 속에서 비슷한 상태를 만든다. 그것은 종종 두통과 간(liver)의 막힘과 다른 장애들을 만든다.
2. 대스승의 제자에게는 봉사 속에서 더 큰 유용함과 증가된 지식 그리고 계발로 이어질 수 있는 것 이외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식과 성패가 달려 있는 이슈들을 직접 깨달음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소심함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모순적인 말이지만) 종종 자만(pride) 같은 멘탈 상태에 근거하고 있다. 멘탈체에 편향되어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지성과 관련된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 속에 편향된 사람의 두려움 보다 그들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 아스트랄체 속에 있는 두려움을 제거하는 데 지성을 가져올 수 있다. 멘탈 유형은 자아(Ego)에 직접 호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항상 하위에 있는 것을 다루기 위해서 상위에 있는 것을 불러 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채널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짓눌러서 없애려고 하지 마라. 그것을 역동적인 대체하는 힘으로 밀어내도록 하라. 이것이 그룹에 있는 학생들이 두려움의 습관을 치료할 수 있는 세 번째 제시로 이끈다.
3. 긴장이완, 집중, 고요함 그리고 전체 개성을 순수한 백색광으로 씻어내는 직접적인 방법.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라:
그대가 패닉 상태에 있다고 하자; 엄청 불쾌한 것들에 대한 암시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대의 상상력이 날뛰고, 정신이 그것을 강화한다. 감정적인 사람의 두려움은 당신이 갖는 두려움만큼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마라. 강력한 멘탈체를 가졌기에, 그대는 두려움의 반응을 상당히 활성화된 멘탈 물질로 감싸고, 그것은 강력한 상념태를 창조하게 된다. 이것이 그대와 두려워하는 사건 사이에서 순환한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그대는 고요함을 찾고자 진행한다. 그대는 육체를 이완시킬 것이고, 아스트랄체를 최대한 고요하게 만들 것이며, 정신을 안정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대 자신(개성), 혼 그리고 대스승---삼각형 맨 꼭대기에 있는 대스승---을 시각화하면서, 그대는 신중하게 순수한 백색빛의 흐름을 불러 내리고, 그것을 그대 하위 매개체들을 통해서 쏟아 부으면서,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씻어버릴 것이다. 필요한 작업이 되었다고 인식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하라. 처음에는 그것을 여러 번 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는 한 번으로 충분하게 될 것이고, 한참 후에는 전체 과정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그대가 그것을 정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성과 연결된 두려움들에게 적용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과 빛으로 채우면서 사랑 측면을 사용한다. 해야 할 일의 환경들과 관련된 것들과 그 일에 구체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지식에서 생겨나는 타당한 두려움들은 어느 정도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도 분명한 방법을 따라야만 한다:
- 육체를 고요하게 만든다.
- 일시적인 억제로 아스트랄체를 고요하게 만든다.
- 자아와 연결하고, 그 어려움을 대하는 적합한 절차에 대한 방법을 분명하게 생각해내라. 모든 상위의 이성적인 방법들을 다 사용했고 따라야 할 행동 방침을 분명하게 본 후에,
- 그대의 진동을 할 수 있는 한 고양시키고 직관 수준에서 그 어려움에 대한 부가적인 빛을 불러 와라. 만약 그대의 직관과 추리 능력이 조화를 만들어서 방법을 보여준다면, 그러면 계속 나가라. 모든 논란을 넘어서는 하나의 오컬트 사실로서, 가장 최선인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는 안다. 그대는 안내에 대하여 확신하고, 처음부터 끝을 이렇게 보는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부류의 두려움---열망자가 봉사 속에서 유용하게 되고 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점점 더 접촉하는 두려움---은 대계획에 반대로 작용하며 해야 할 일을 방해하는 힘들을 인식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열망자에게 호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오컬트 공격들과 힘들이 생길 것이다; 그것들은 매개체들 어느 하나에서 그 힘을 느낄 수도 있고, 드문 경우지만 열망자가 충분하게 중요한 경우 모든 매개체들에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종종 그것들이 개인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고, 그룹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그것들에 대응하기 위해서 첫 번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추가하고 변화시킨 방법을 이용한다.
그대는 개인으로서 혹은 그룹의 일원으로서 그대 자신의 혼과 대스승들의 롯지(the Lodge of Masters), 그대 자신의 대스승이 아니라 그대가 일하고 있는 형제단(Brotherhood)과 연결한다.
그리고 나서 고요함을 성취할 때, 그대가 아는 대스승들을 시각화하고, 그대의 진동을 더 높이 고양시켜서, 그대가 일하는 종교적 정치적 선을 따라서 그리고 그 공격이 오게 될 선에 따라서, 가능하다면 쵸한, 크리스트 그리고 마누와 연결한다.
그러면 그 연결 고리를 통해서 그리고 모든 매개체들을 통해서 그대가 보라색(violet) 빛의 흐름을 쏟아 붓는다.
이 방법은 필요가 절박하고 엄청 클 때만 사용한다.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보라색에 에텔 매개체가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 예방책들을 명심하면 두려움 진동과 대면할 수 있고 결국에는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들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미래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어떤 노력의 결과에 대한 의심.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두려움은 이 두 가지의 조합이다. 대부분의 열망자들은 궁극적인 이슈에 대하여 기본적인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가끔 이런 이슈들이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의심하고 또한 시련과 외로움을 통해서 사제의 문하(Feet of the Hierophant)까지 이끈다는 것을 알기에, 노력의 길에서 움츠리게 된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높은 영적 근원에서 발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높은 진동들과 문제들로 고통스러워 한다. 강력한 진동은 점점 더 증가하는 주기로 올 것이고, 인종이 진화 속에서 발전하면서, 그 진동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며 그들의 반응에도 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
영적 진동이 엄청나게 강력할 때 두 가지가 나타난다. 모든 선한 열망들과 동시에 발생하는 높은 진동들이 자극을 받고, 두 번째로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도 마찬가지고 자극을 받는다. 열망자들은 항상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범죄의 급증과 같은 요인들이 나타날 수 있고, 또한 영적 노력과 고귀한 열망을 나타내는 점점 더 많은 그룹들이 나타날 것이다. 열망자인 그대에게 진동을 높인 그 영향이 마찬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현현할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피곤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수면과 휴식이 아니라---그것들이 적절하게 필요하지만---진동을 바꾸는 것으로, 오락과 즐거운 진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둘째, 그것은 종종 심오한 우울이나 미래를 대면할 때 가슴이 내려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대면하고 미래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며 “기쁨은 아침에 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것은 또한 아스트랄체의 민감성으로, 아마 참기 힘들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은 내가 준 제안들을 명심하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다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다양한 매개체들 속에 있는 원자들을 영구적으로 자극하여 일관된 그러면서 안정화된 진동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열망자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목적지까지 더 끌어올려주게 된다.
모든 것은 모든 사건들의 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제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도의 길에서 그의 진보 전체는 가르침을 자기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내면의 세계에서 가르침을 실천적인 지식으로 변형시킴으로써만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경험의 일부분이 되고 더 이상 이론적으로 되지 않게 된다. 의식의 확장은 언제나 증가하는 실천적인 경험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론들을 사실로 바꿀 때까지 이론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상에 대한 명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명상 속에서 우리의 생각들이 일시적으로 그 생각에 맞게 진동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진동이 영속적으로 된다.
뜬 눈으로 오컬트 가르침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진실로 그 비용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끝에서 그 보상은 엄청나지만, 그 길은 거칠고 진정한 오컬티스트는 혼자 걷는다. 홀로 설 수 있는 역량, 책임질 수 있는 역량, 모든 것을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성취할 선을 위해서 악과 용감하게 대면할 수 있는 역량이 백색 형제(White Brother)의 표시이다. 그래서 외로움에 대비하여, 흐릿하고 애매한 성격의 위험들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그의 삶이 개성과 관련된 어떤 보상을 위해서 쓰이지 않기를 기대하라. 의식이 확장할 때만 그리고 우주 전체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발견할 때만, 그 보상이 명백하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멈추고 개성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고 혹시 그 개성이 고통 받는다 해도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보편적인 형제애를 위해서 어떤 선(good)을 얻고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어떤 법칙이 설명되어 드러날 때, 결국에는 대스승께서 (그렇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잘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눈을 똑바로 응시하라. 이쪽 저쪽으로 돌리지 마라. 길은 위로 올라가서 계속 점점 더 빠른 진동과 민감성으로 이끈다. 그대가 하는 일 속에서 균형점을 찾고 그 균형을 유지하라. 왜냐하면 많은 일과 많은 압박 그리고 많은 고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계의 비애를 보고, 재앙을 보며 그러면서 동시에 기쁘게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한가? 그대는 인종의 진화를 진전시키는 일에서 동반자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대는 곤란과 수련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비애의 흐름을 저지하기 위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현재 시기에 선발되어 애쓰는 혼들이 전세계에서 수련을 받고 있다. 대스승들은 일로 너무 바쁘고 그들의 시간이 일로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을 그들이 주지만, 주어진 것을 사용하는 것은 개개인의 열망자에게 달려 있다.
생명의 내면에서 안내하고 지켜보는 우리들은 물질계 존재의 열기와 짐을 지는 그대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인식한다. 우리는 그대들의 물질계 장애를 알고 있으며 언젠가 세계 봉사를 위해서 강한 체들을 만드는 방법을 분명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아스트랄 독기가 그렇다---그대들, 힘겹게 싸우는 우리 형제들이 훌륭한 건강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계의 카르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스트랄 부패와 멘탈계 하위계의 악취가 나는 오수구덩이가 모든 사람을 오염시키고 있고, 그것을 피해간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약하고 민감한 체들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일하고 싸우고 실패하고 지속하며 봉사하는 그대들 모두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고통과 긴장 속에서 주어진 단 한 시간의 봉사도, 시달린 신경, 피곤한 머리 그리고 아픈 가슴을 가지고 일하는 단 하루의 노고도 알아채지 않은 채 지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알고 관심을 가지지만,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그대가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없다. 세계의 카르마가 현재 시기에 그대들 각각을 삼켜버리고 있다. 만약 그대가 이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시간이 짧게 남았으며, 휴식과 기쁨 그리고 평화가 오고 있다.
절반쯤 얻은 승리, 어느 정도 성공을 했지만 성취하지 못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 나날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이 모든 것의 공허함인 것처럼 보일 때, 심지어 봉사 그 자체까지도 그렇게 보일 때, 혼과 체의 기진맥진한 기록들, 세계의 무지라는 노호하는 파도에 대항하여, 진화의 엄청난 힘에 대항하여, 겉으로 보기에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장애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하고 노력한 몇 달 몇 주---모든 것을 알고 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확신 속에서 위안을 가져라; 하이어라키가 서 있다는 깨달음에서 용기를 가져라.
대스승들에 대하여 세계를 가르치려는 사람들 그리고 접촉의 초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매우 격렬한 수련을 받고 있다. 그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테스트를 받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알아봐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비전으로 판단하는 수련을 받고 있다. 대스승의 목적을 인식할 수 있는 역량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본다. 제자로서 일하기 위해서 선택 받고자 하는 열망자들은 자아의 것들을 위한 모든 욕망을 잃어버려야 하고, 어떤 비용이라도 기꺼이 지식의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만약 실재의 주관적인 영역에 대한 증거가 세계에 주어지길 바란다면, 그것은 심장의 피로 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심장의 피 속에서(in the blood of the heart)”만 힘을 안전하게 얻을 수 있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계속 나아가서 열망자로서 자연의 숨겨진 법칙들을 공부함에 따라서, 그대는 지불할 가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자의 영적 개화는 그의 내적인 지식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이 지식은 세 가지로 자라난다:
1. 분명한 의식의 확장에 의해서, 제자가 성취해야 하는 지점들에 대한 인식이 제자에게 열린다. 이것은 제자의 마인드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앞에 놓여 있는 것을 형성하게 되고 성취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마치 대스승이 제자에게 그가 배워야 하는 교훈을 보여주듯이, 열망자는 한층 더 진보한 제자가 열망자를 분명히 내면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가 해야만 하는 것을 보여준다.
2. 다음 단계는 교훈을 통달하고 감지된 진리를 실험하며 명상 속에서 풀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기나긴 과정이다. 왜냐하면 그가 계속 가기 전에 모든 것을 흡수해야 하고, 제자 자아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덧셈을 푸는 것과 유사하다---한 숫자 한 숫자, 한 줄 한 줄, 해답을 얻을 때까지 풀어가는 것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물질계와 내면계에서 동시에 수행된다. 배움의 전당에서 제자는 어떤 다른 봉사 작업을 진행하기 전에 밤마다 짧은 시간 동안 배운다. 어떤 주제들에 대한 깊은 흥미 형태로 그리고 그의 관심을 차지하는 다양한 오컬트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려는 태도가 점점 더 커가면서, 그는 이런 가르침을 육체 두뇌 의식 속으로 가져온다. 그는 실험하려고 시도하고 법칙들을 연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험해보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가치가 있는 결과들에 도달한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그의 지식이 종합적인 형태를 띠고 그가 확신하는 지식에서 비롯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가르칠 준비가 되어 간다.
3.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더 깊은 지식이 온다. 가르치는 속에서 진리를 정의함으로써 배운 사실들을 결정화시키고, 다른 정신의 활동 속에서 열망자 자신의 진동이 심지어 더 고귀한 세계로 올려지며, 이렇게 진리의 새로운 진동과 새로운 범위가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 가르침이 숙달될 때, 더 깊은 가르침이 정해지고, 제자가 일련의 특정한 가르침을 배웠을 때, 졸업하고 어떤 입문을 지나간다. 그가 가르치는 전체 그룹이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혜택을 받는다. 왜냐하면 기이하고 정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제자는 그가 가르치는 사람들을 그와 함께 데려가기 때문이다. 단위에 주는 혜택이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대스승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와 함께 그의 제자들을 데려간다. 그 문제는 심오하고 대체적으로 진동하는 확장의 법칙의 비밀들 중에 하나이다. 로고스의 입문은 우주적인 차원의 영향을 주게 된다.
견습의 길이 잉태 기간의 나중 단계에 상응한다는 그대의 가정이 맞다. 첫 번째 입문에서 신약성서에서 “크리스트 안의 아기(babe in Christ)”라고 부르는 것이 도의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첫 번째 입문은 단순히 시작을 나타낸다. 올바른 생활, 사고 그리고 행동의 어떤 구조를 성취하였다; 크리스트가 거주하는 그 형태가 만들어졌고 이제 그 형태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깃들어야 한다. 크리스트 생명이 들어가서 그 형태가 생명을 갖게 된다. 여기서 이론과 그 이론을 그대 자신의 일부분으로 만드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대는 완전한 그림 혹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만 생명이 없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생명을 신성의 모형 위에 만든 사람도 있다. 그는 훌륭한 복사본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것이 부족하다. 이 어떤 것이 무엇인가? 내면에 거주하는 크리스트(indwelling Christ)의 현현이다. 씨앗이 거기 있지만 잠재된 상태로 있다. 이제 그것이 배양되고 탄생하게 되면, 첫 번째 입문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면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유추가 완전하다. 탄생과 세례 사이에 제자 예수(disciple Jesus)는 많은 해를 보냈다. 남아 있는 세 번의 입문들을 3년 동안에 받았다. 열망자의 길 위에서 똑 같은 상황을 보게 된다.
두 번째 입문은 아스트랄체의 통제의 위기를 나타낸다. 세례 후에 세 가지 하위 매개체들의 통제를 보여주는 세 번의 시험(temptations)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면 현성용(Transfiguration)이 오고, 미래 지식과 완전한 자기 희생(self-abnegation)이 따라 온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다:
1. 잉태 순간 – 즉, 개체화(individualization)
2. 9개월간 잉태 기간 – 즉, 삶의 수레바퀴
3. 첫째 입문 – 즉, 탄생 시간
그러므로 그 길은 고차원의 진동에 점점 더 민감해지는 꾸준한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는 길이다. 이것은 처음에는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민감성으로 계발되고 이것은 제자에게서 가장 필요한 기능들 중에 하나이다. 위대한 분들은 혼의 내면의 목소리에 빠르게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때가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모든 열망자들도 그들 대스승의 목소리에 민감해지도록 강하게 권고한다. 그분의 시간이 꽉 짜여 있고 제자들은 그분의 인상에 민감해지는 수련을 스스로 받아야 한다. 약간의 힌트, 가리킨 손가락, 급하게 준 암시가 그분이 줄 수 있는 시간의 전부이고, 제자 각자는 주의하고 있어야 한다. 그분들이 물질계로 한층 더 가까지 다가가오 있기에 그분들이 받는 압박이 지금 엄청 나다. 그분들이 멘탈계에서만 일했을 때보다 많은 혼들이 그분들을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조밀한 세계에서 일하기에 그분들은 조건들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데바들과 제자들, 열망자들 그리고 견습의 길에 있는 사람들을 그분들 주위로 불러모으고 있으며 특별한 작업이 배정된 그룹을 조직하고 있다. 어떤 혼들은 공통의 열망에 의해서 함께 모인 단체 모임에서만 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예를 들면 교회에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오컬티즘의 법칙을 모르고 내면의 진리를 감지만 하기 때문에 폭넓은 준비 단계들에서 일한다. 그들은 제시하고 안내하며 통제하는 낮은 수준의 데바들 혹은 천사들 그룹에 의해서 도움을 받는다.
한층 더 진보한 다른 사람들은 소그룹으로 일한다. 그들은 더 이상적으로 만들고 그들 속에서 사회 개혁, 인도주의적 갱생 그리고 교회 리더십(기독교 혹은 동양의 교회)의 사상가이자 리더들을 찾을 것이다. 앞의 그룹이 푸른색과 장미색의 데바에 의해서 안내되듯이, 상위 세계의 데바들, 푸른색과 노란색의 데바들이 이들을 안내한다.
그들 뒤에는 한층 더 진보한 열망자들, 견습생들 그리고 세계의 제자들이 있다. 그들은 혼자 혹은 두 세 명씩 일하고 9명을 넘는 그룹으로는 결코 일하지 않는다---이 숫자의 오컬트적인 중요성이 그들의 작업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하다. 위대한 백색 데바들과 금색 데바들이 그들의 작업을 도와준다.
이 세 가지 그룹 뒤에는 인류에 봉사하기로 서약한 위대한 형제단(Great Brotherhood)인 대스승들과 무형의 세계에 있는 데바들이 있다.
파괴적인 작업을 건설적인 작업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여러 운동들을 시작시킨다. 시기가 급박하다. 왜냐하면 파괴자의 작업 속에서 중지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파도를 바꾸고 사회를 개건할 기회가 있다.
여러분 개개인이 구원의 작업에 새롭게 헌신할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성(인격)은 가라앉어야 한다. 열망자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무해하게 살아야만 한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 각각이 순수한 채널이 될 수 있고, 대스승의 의식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으며, 형제단이 일할 수 있는 에너지 센터를 제공할 것이다.
열망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감정 성질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쿠르크쉐트라(Kurukshetra) 평원에서 승자로 서게 된다; 구름들이 물러가고, 그래서 빛 속에서 걸을 수 있다. 여기서 빛 속에서 걸을 수 있는 바로 이 자유 속에 그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한 가지 간단하지만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해보겠다.
어떤 사람이 글자 그대로 자신의 혼의 빛 속에서 걷고 도의 길을 드러내는 태양의 깨끗한 빛이 그 주의로 쏟아져 들어올 때, 그것은 동시에 대계획(Plan)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대계획이 아직은 완성에서 매우 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어둠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혼란과 비애 그리고 세계 그룹들의 실패가 드러난다; 싸우는 힘들의 오물과 먼지를 주목하고, 세계의 전체 비애가 놀라워하는 그렇지만 깨달은 열망자를 짓누르게 된다. 그가 이런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 그가 진실로 비탄과 익숙해질 수 있으면서 신성한 의식 속에서 영원히 기뻐할 수 있을까? 그는 그 빛이 드러내는 것과 직면하면서 결국에는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차분하게 그의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가 표면상의 악에 압도되고 겉으로 모이는 모든 것들 뒤에서 고동치는 사랑의 심장을 잊어버릴 것인가? 제자는 이런 상황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가 발견한 것에 의해서 부서질 것이다.
그런데 빛의 출현으로 그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인식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기회의 영역에서 일하는 것을 배운다. 마인드 영역이 그에게 열리고, 그가 감정적인 성질과 멘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또한 마인드가 통제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고, 그 감정의 힘(sentient forces)들이 멘탈 에너지에 복종해서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성의 빛(light of reason)”이 이것을 초래한다---그것은 그 속에 항상 있지만 현상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보고 알게 될 때 의미가 있게 되고 강력하게 되는 빛이다.
오늘날 마인드와 혼에 대한 많은 허위의 가르침이 퍼지고 있다.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는 어느 한 학파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 속에서 이것을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잔인하고 선택적이다. 자연은 적자 생존의 법칙에 따라서 작용한다; 선택의 과정 속에서 수 백 만의 생명들이 희생되고 많은 탄생의 형태들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끝난다. 그래서 혼의 삶을 성취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다. 혼을 가진 사람이 적고 그래서 매우 극소수가 불멸을 성취하며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권능의 자리로 간다. 나머지는 모두 다 자연의 일반적인 과정 속에서 사라지고 가라앉으며 삼켜진다. 인간 왕국은 대체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만드는 몇몇의 중요한 인물들을 제외하면 쓸모 없는 것이다. 그들은 대다수의 희생을 통해서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적합한 대답이다. 불멸성의 감지, 영원한 미래의 대한 확신, 신에 대한 선천적인 믿음, 빛의 계시, 도와주고 도움을 주는 지혜의 성취가 세네카(Senacas), 성 바오르, 악바르(Akbars)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초라한 농부 속에서 종종 가장 순수한 형태로 발견된다. 현자의 말이 문맹자의 입에서 나오고, 신에 대한 지식과 혼의 불명성에 대한 믿음이 가장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심장 속에 잠재하고 있으며, 종종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의 심장 속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고도로 진화한 그리고 가장 지성적인 인종이 자신들 속에서 신성한 불꽃(Flame)을 발견하고, 그들 존재의 심장에 자리 잡고 있는 지고의 통제자(Controller)의 권능을 일깨울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귀한 부류로 놓기 쉽고, 진화의 계발에 대한 분화를 그들처럼 멘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신의 자식들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안될 만큼 그들과 아주 많이 다르다고 분류하기 쉽다 그들은 멘탈 에너지 속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혼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래서 개인으로서 영원한 지속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마인드의 현혹에 불과하고, 거대한 분리설(heresy of separateness)의 일부분이며, 현재 시기에 감정체가 지배적이고 잘못 안내하고 있듯이, 다가오는 시기에 마인드가 그렇게 할 것을 희미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개인이 가지고 일해야 하는 멘탈 에너지 유형들을 연구해보고 이 거대한 분리설과 “부인의 오류(fallacy of repudiation)”을 어떻게 상쇄할 수 있을지 보자.
이런 유형의 에너지를 고려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중에 하나는 개인이멘탈 에너지를 사용할 때 그 효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인류와 관련해서 더 큰 의미에서 그 에너지의 추세와 작업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몇몇 사람들만이 이 유형의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래서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이 수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단위로서 와서 그들이 지적인 유산을 소유하게 될 것이지만, 수적으로 말하면 만 명에 한 명 정도가 이 내재하는 힘을 사용할 것이고 멘탈체 속에서 알면서 활동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전체로서 보고 과거 인종의 발전으로 시선을 돌려볼 때, 멘탈 에너지가 어떻게 가장 분명하게 영향을 주었고 두드러진 결과들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건, 두 가지 요인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게 해준다. 둘 다 동물 속에 잠재하고 있지만 인간이 그것들로부터 의식적으로 혜택을 거둘 수 있는 삼계에 있는 유일한 실체이다. 이 요인들 중에 하나는 고통(pain)이고, 다른 것은 분별력(discrimination)의 기능이다. 고통과 그에 따른 분석, 관계 그리고 기억과 시각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배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워왔다. 이것은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감각적인 경험의 영역에서 효과가 있다. 생각들과 사고 흐름에 대한 분별력을 통해서, 비록 그가 생각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감지된 진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완전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사 모든 부문에서 하는 자신의 행위들을 무엇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을 배워왔다. 그가 종종 어리석게 선택을 하고, 그룹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들이 최고가 아니며, 여론이 일반적으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흥미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 슬프게도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고통과 생각의 영역에 있는 선택의 힘을 사용하는 학습을 통해서---인간은 온전한 해방과 그가 유산 받은 권리인 지구의 온전한 통제를 향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대 주석서(Old Commentary)에서 인간의 이런 두 가지 특징에 대하여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된 상당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때, 물은 아스트랄 반응 혹은 감정(sentiency)을 상징하고, 불은 정신(마인드)을 상징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이 시원하다. 그것은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형태를 추출하면서 서서히 완화를 가져온다. 오랫동안 억눌린 욕망의 떨리는 열기가 시원한 한 모금에 굴복한다. 물과 고통이 서로를 거부한다. 시원하게 하는 한 모금의 과정이 길고 길다.”
"태우는 불이 생명의 길을 막고 있는 모든 것을 해방시킨다. 지복이 오고 물 위에 있는 불(fire on the waters)로서, 불을 따라간다. 물과 불이 함께 섞이고 거대한 환영(Illusion)을 일으킨다. 그것들이 안개를 만들고 연무와 증기와 소음을 만들며 빛(Light)을 가리고, 진리를 숨기며 태양을 차단한다.”
“불이 격렬하게 태운다. 고통과 물이 사라진다. 추위(cold), 열기, 대낮의 빛,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함 그리고 진리의 완전한 지식이 나타난다.”
“이것이 빛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길이다. 먼저 형태, 그리고 그 모든 갈망. 그리고 고통. 그리고 해소시켜주는 물과 작은 불의 출현. 그 불이 자라고, 열기가 작은 구체 속에서 활동적으로 되고 그 불의 작업을 한다. 마찬가지로 습기가 보인다; 자욱한 안개, 그리고 슬픈 당혹감이 고통에 더해진다. 왜냐하면 초기 단계에 마인드(정신)의 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환영적인 빛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열기가 점점 더 격렬해진다; 다음으로 고통 받는 힘의 상실이 온다. 이 단계를 벗어났을 때, 그때 가로막는 것이 없는 태양의 찬란함과 진리의 깨끗하고 밝은 빛이 오게 된다. 이것이 숨겨진 센터로 돌아가는 길이다.”
“고통을 사용하라. 오, 이상한 나라에 있는 순례자여, 불을 불러라. 물이 자연적으로 성장한 진흙과 진창을 씻어버린다. 불들이 순례자가 돌아가는 것을 잡고 있는 방해하는 형태들을 태우고 그렇게 해방을 가져온다. 하나의 강으로서 살아 있는 물이 순례자를 휩쓸어서 아버지의 가슴(Father’s Heart)으로 데려간다. 불들이 아버지의 얼굴(Father’s Face)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파괴한다.”
학생이 마인드의 용도와 성질을 이해하려고 할 때, 아마도 모든 학생이 배워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대중 의견이 올바른 개인 의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별 의식을 사용하고 집중시켜서 그것을 마나사푸트라(Manasaputra), 즉 마인드의 아들(Son of Mind)이라는 신성한 꽃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씨앗으로서 그리고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 영역 속으로 다시 이끌어주는 줄(thread)로서 올바른 균형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줄과 이 의식은 올바르게 따랐을 때 개인을 위대한 대회의실(Council Chamber)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곳에서 위대한 대생명(Life)의 목적과 계획이 드러날 것이고, 그곳에서 모든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추구(self-seeking)가 신의 의지(Will of God)의 깨끗한 빛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스트랄 성질의 올바른 이해와 올바른 사용 그리고 통제를 통해서 그리고 감정 의식(sentient consciousness)의 성질의 이해를 통해서, 인간은 신 자신의 바로 그 심장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서 모든 논란을 넘어서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마인드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서 그리고 지성 성질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인간은 신의 마인드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계획되고, 신성한 목적이 꾸준히 그 목적을 이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틀란티안 초인들의 작업은 신은 사랑(God is Love)이라는 사실을 세계 의식에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God)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진리의 상징적 표현이다. 아리안 초인들의 작업은 신은 의지(God is Will)라는 것을 세계 의식에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인류 가족을 위해서 이것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성을 통제하고, 다른 형태들을 정신에 복종시키며 정신을 통해서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될 지에 대한 비전을 인간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지성을 가지고 일한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의 대생명의 비전적(esoteric) 머리 센터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동물계에서, 의식(sentiency)의 계발과 고통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화를 통해서, 그분들은 그 유형의 형태들이 대자연 속에 있는 심장 센터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식 속에서 더 포괄적으로 될 때까지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진리를 전달하는 구절이다. 식물계에서는 색깔을 통해서 신성한 현현의 그 형태들이 인간 속에 목센터와 유사한 대자연 속에 있는 힘 센터와 진동상의 접촉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단어들을 사용할 때 주로 우리 행성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그 대생명, 우리 행성 로고스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생각은 우리 행성 로고스가 하나의 반영이자 표현인 거대한 대생명을 포함하는 것까지 진전시킬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두뇌이다; 동물들은 심장의 표현이다; 식물계는 목센터의 창조적인 힘의 표현이다; 자연에 있는 이 세 가지 계가 독특한 방식으로 형성하는 것이 인간 속에 있는 상위 세 가지 센터들에 상응하고, 하강 진화 상에 있는 세 가지 왕국들이 세 가지 하위 센터들에 상응한다. 그리고 광물계---그 생명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생각이 심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태양신경총, 즉 상위와 하위 사이에 있는 거대한 청산소(clearing house)에 상응한다.
이런 유추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 레무리아 시대에, 그것을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세계로 볼 때, 인류는 태양신경총 측면을 표현했고, 동물계는 천골센터를 나타냈으며, 척추 기저센터는 식물계에 의해서 상징되었다. 아틀란티스 중반에 어떤 거대한 변화와 실험이 이루어졌고, 전체 과정의 이동이 일어났다; 씨크릿 독트린과 우주불 론(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언급된 어떤 자아들이 들어왔고, 그들 노력에 의해서 엄청난 진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치타(chitta) 혹은 마인드-물질이 더 진동하게 되었고 이제는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것의 강렬한 활동의 시기가 되었다.
비전 가르침에서 신성의 모든 세 가지 측면들이 그 자체로 삼중이라고 들었고, 그래서 인류와 관련하여 마인드 에너지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1. 하위 구체적인 마인드로 파탄잘리 요가수트라에서 치타 혹은 마인드-물질이라고 부른 것.
2. 추상적 마인드(abstract mind); 혹은 관념(ideas) 세계와 관련된 마인드 측면.
3. 인간에게 정신(mentality)의 가장 높은 측면인 직관(intuition) 혹은 순수 이성(pure reason).
이 세 가지가 로고스의 세 번째 측면, 우리가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라고 부르는 활동적인 지성의 신성(active intelligent Deity) 속에 있는 표현 영역을 감싸거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아스트랄 힘의 선이 두 번째 계 혹은 모나드계로 돌아가듯이, 이 세 가지 하위 측면으로부터 흐르는 힘의 선은 세 번째 계로 되돌아간다. 인간 의식과 관련해서는 아스트랄 힘의 선들이 직관계 혹은 붓디계까지만 돌아간다.
욕망에 의해서 움직인 모나드가 우리가 개성(personality)이라고 부르는 그 생명 형태를 만들듯이, 우주 마인드를 통해서 작용하는 목적의 일부분으로서 마인드 측면도 그 차례로 멘탈계에 있는 마인드의 위대한 아들(great Son of Mind)인 우리가 마나사푸트라(Manasaputra)라고 부르는 그 현현 형태를 만든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자아체(egoic body), 코잘체, 카라나 샤리라(karana sarira), 열 두 개 꽃잎을 가진 연꽃을 현현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인류 속에 있는 마인드 원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전적으로 형태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행성로고스 자신의 생명이 있는 우주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주 아스트랄계로부터 형태의 존재와 구체적인 표현을 만드는 충동이 온다---왜냐하면 형태를 띠는 것은 욕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주 멘탈계로부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려는 의지(will-to-be)가 오고, 그것은 일곱 가지 자아 생명 그룹과 세 번째 분출(outpouring)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입문자가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게 되면, 그가 태양계 상위계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 우리 로고스가 개성 측면을 가지고 있는 우주계와도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 추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입문자가 육체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는 우주 물질계에서 “자유(freedom)”를 갖는다. 아스트랄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우주 아스트랄계에서 힘을 갖고, 멘탈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우주 멘탈계로 들어가게 해준다. 그럼 추론적으로 인간 속에 있는 세 가지 상위 센터들이 완전하게 기능할 때, 그것들이 이런 고귀한 영역으로부터 입문자의 활동 영역 속으로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작업에서 그 역할을 하고 지금까지 그에게는 닫혀있던 영역들 속으로 들어가는 문 역할을 하게 된다.
각각의 힘센터 혹은 챠크라는 상호 섞이는 세 가지 소용돌이 혹은 바퀴로 구성되어 있고, 견습의 길에 있는 영적 인간 속에서 그것은 한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지만, 그가 입문의 길에 있는 문에 가까워짐에 따라서 그 활동이 빨라진다. 입문에서 챠크라 센터를 접촉하고, 그 회전이 강렬하게 되며, 그 활동이 4차원으로 된다. 이런 생각을 비입문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 영향은 질서정연한 회전에서 빛을 방출하는 회전으로 바뀌는 것으로, 고대 성전에서 “자체 위에서 회전하는 바퀴(wheel turning upon itself)”로 묘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화, 규칙의 준수 그리고 어떤 장애도 허용하지 않고 고통에도 멈추지 않는 열망이 있을 때, 열망자가 그의 센터들이 고동치고 회전하도록 만들 것이고, 오직 그때만 대스승이 그를 대사제의 실재(Presence of the Hierophant)로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러면 입문주재자가 제자의 광선과 그의 하위광선, 자아와 개성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아직까지 붙어있는 카르마를 인식하면서 활성화를 기다리는 센터들을 접촉하게 된다. 그러면 숨겨진 불이 솟아오르고 집중된다. 어떤 센터를 활성화시킬 때, 그에 상응하는 머리 센터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그래서 결국에는 체 속에 있는 일곱 센터들과 머리 속에 있는 일곱 센터들이 조화를 이루며 회전하게 된다. 네 개의 보조(minor) 광선들이 세 개 주(major) 광선들로 넘어가듯이, 마찬가지로 네 개 보조 센터들이 그 상응하는 것을 진행하고, 목센터 속에서 집중점을 찾으면서 프랄라야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을 또한 명심하라. 이렇게 세 개 센터들---머리, 심장, 목---들이 내면의 불을 옮기면서 세 개 주요 머리 센터들과 조화를 이루며 진동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하고 기술적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여기서 전달된 많은 것이 여러분 모두가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 새로운 열망자들이 뒤에 올 때 그 유용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멘탈체를 훈련시키는 것이 가치가 있고, 많은 사람들은 내재하는 게으름 때문에 진리의 생명 측면을 강조하면서 뒤에 숨어서 그런 기술적인 것들을 피하고 있다. 지금 여러분이 받는 것은 비전가르침(esotericism)의 A.B.C.이다. 하지만 너무 세세한 추론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지금 가능한 모든 것은 넓고 일반적인 윤곽, 인내하는 판단의 유보, 육체 두뇌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려는 자발성 그리고 가설을 수용하려는 태도이다. 그대의 직관이 반발하지 않는다면, 이 가설들이 가능하다고 믿어라. 그렇지 않다면 롯지의 메신져가 제공한 과거 가르침과 모순된다. 나는 그대에게 독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가르침에서 그대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만 하는 것이다---그것이 맞는지는 미래가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기록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해에 지금 특이하거나 심지어 모순처럼 보이는 많은 것이 명확하게 될 것이고 서서히 풀어질 것이며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가르침으로 그 양이 늘었을 때 미래를 위해서 따로 놓아두지 않으면 약간의 지식으로 많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인간 속에 있는 심장 센터가 “태양의 심장(heart of the su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목 센터는 물질 태양의 길을 온전하게 이해해 주는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모든 진정한 점성가들은 결국에는 그 센터를 활동시켜야만 한다. 머리 센터는 중심의 영적 태양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각각 지나가면 그에 상응하는 행성 센터를 통해서 우주계의 하나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이렇게 우리는 전문적인 것들과 사실들을 요약하였다. 그것들은 (유추의 법칙 하에서) 순전히 학문적인 흥미가 있는 것이고 그 이상도 아니다. 심지어 입문자들인 우리도 실질적으로 우주 물질계 너머에 있는 우주계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 우리 의식은 이제 태양계 차원이 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태양계 지식과 생명으로부터 우리를 제지하는 저 행성 차원의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심지어 행성 의식(planetary consciousness)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는 열망자들에게, 위의 정보는 한 가지 가치만 갖고 있다. 즉, 그것은 거대한 계획의 통합적인 성질과 가장 작은 단위가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에너지는 로고스 전체 체를 두루 순환하고 있고, 그 전체 속에 있는 가장 작은 원자까지도 활성화 시키는 어떤 생명액(life fluid)이라는 생각을 강화해준다. 그 그림을 이해하고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그 경이를 보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 아스트랄계에 대하여 숙고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보통 사람이 우주 물질계의 다섯 번째 하위계인 자아의 세계도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그의 모든 열망과 명상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마인드, 추상적인 마인드 그리고 직관 혹은 순수 이성 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가 표현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인 마인드(정신)는 형태를 만드는 능력이다. 생각들은 사물들이다. 추상적인 마인드는 패턴을 만드는 능력 혹은 형태들을 본뜨는 청사진을 가지고 일하는 마인드이다. 직관 혹은 순수 이성은 사람이 우주 마인드와 접촉하러 들어가서 계획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신성한 생각들을 잡을 수 있게 해주며 혹은 어떤 근본적이고 순수한 진리를 따로 떼어낼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열망자의 모든 작업의 목표는 그가 가지고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마인드의 그런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그는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는 마인드(정신)라고 부르는 그 기구(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능력들과 힘들을 알아내야 한다. 이것들이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1,2권에서 잘 분석되어 있다.
2. 다음으로 그는 자신의 사고 과정과 형태를 만드는 성향 뒤로 돌아가서, 신성한 상념태, 세계 과정 밑에 놓여있는 관념들을 발견하고, 그 계획에 협력하여 일하며 자기자신의 상념태 형성을 이런 관념들에 종속시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는 이런 신성한 관념들 세계로 꿰뚫고 들어가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에 있는 것들의 패턴(pattern of things in the Heavens)”을 연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떠지고 주조되는 청사진을 가지고 일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상징주의자-학생이 되고, 우상숭배자(idolater)로부터 신성한 이상주의자(divine idealist)가 된다. 이 단어들을 진정한 의미와 함축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3. 그 계발된 이상주의로부터, 그는 순수 직관의 영역에 들어갈 때까지 한층 더 깊게 진보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그 근원에서 진리를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신 자신의 마인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직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상화하고 신성한 생각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것들은 그의 생각을 풍요롭게 한다(fertilize). 그는 나중에 이 직관들을 그가 이루어가면서 관념(ideas) 혹은 이상(ideals)이라고 부를 것이고 그의 모든 작업과 행동의 바탕으로 만들 것이다.
4. 그러면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에서 직관으로 발산하여 나오는 이런 신성한 관념들에 바탕을 둔 의식적인 상념태 만들기 작업이 따르게 된다. 이것을 명상을 통해서 계속 진전시켜간다.
모든 진정한 학생은 하위 마인드를 상위로 집중시키거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 집중(concentration)이 관련된다는 것을 안다.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상념태를 만드는 성향이 억제된다. 마인드를 빛 속에서 유지하고, 그 빛 속에서 계획을 인식하려는 정신력인 명상(meditation)을 통해서, 그는 필요한 관념들을 “가져온다.” 관조(contemplation)를 통해서, 그는 자신이 신성한 마인드를 이용하여, 신의 의식에서 신의 생각을 캐내어,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열망자 각자 앞에 있는 작업이고 그래서 자신의 멘탈 문제의 성질과 그가 가지고 작업해야 하는 도구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멘탈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해서 그가 배우고 얻은 것을 이용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져와서 그 후에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개별 사고자가 아무리 작고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의 형제와의 협력 속에서 그는 엄청난 힘을 사용하게 된다. 사람들의 강력하고 꾸준한 올바른 생각과 멘탈 에너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꾸준하게 진행되는 진화가 원하는 선을 따라서 나아갈 수 있다. 올바른 사고는 많은 것들에 달려있다. 그것들 중에 몇 가지를 매우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1. 비전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희미하게 나마 롯지가 인종을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원형(archetype)을 알아차릴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마누 작업에 협력하고, 추상적 통합적 사고를 계발하며 직관이 번뜩이는 것을 수반한다. 직관은 로고스 마인드 속에 잠재하고 있는 이상적인 계획의 터치(손길)를 고귀한 곳으로부터 짜내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역량을 계발하면서, 그들은 멘탈계에 있지 않고 멘탈계 자체가 존재하기 위해서 끌어오는 것들을 구성하는 그 힘의 근원을 접촉하게 될 것이다.
2. 그러면 비전을 감지하고 그 아름다움의 한 조각을 (인간이 얼마나 조금 보는지 놀랍다!) 힐끗 보게 되면, 그대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이 계획을 멘탈계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그대 손 안에 있게 된다. 처음에 그대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희미하고 애매하지만, 점점 더 구체화될 것이다. 처음에는 그대가 마음대로 그것을 접촉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비전이 코잘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오고 그 높은 의식을 장시간 유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악하려는 고군분투로 인해서 결과가 있을 것이고, 조금씩 조금씩 관념(idea)이 멘탈계의 구체적인 수준까지 지나서 스며들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생각의 바탕으로서 사용될 수 있고 시각화할 수 있는 어떤 것인 구체적인 생각으로 될 것이다.
3. 이것을 성취한 후에 무엇이 다음으로 오는가? 구상의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에 그대는 그대 의식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 비전에 대한 상념태를 만들게 된다. 서서히 이것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안정적인 진동과 잘 만들어진 형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한 일은 아무 것도 못 된다. 그대가 만들어가면서, 점진적으로 이 지구로 가져온 이 비전을 보고자 하며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어떤 갈망, 욕망이 감지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그대 의지력으로 상념태를 시각화하고, 그것이 존재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리듬이 점점 무겁고 느려지며, 그대 상념태를 만든 물질도 당연히 조잡해지게 된다. 그러면 그대는 그 비전에 대한 그대의 상념태가 멘탈계 물질과 아스트랄계 물질로 입혀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그 비전을 인류 가까이 가져와서 물질계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제자는 행복하다. 이것을 기억하라. 물질계에 비전의 어떤 측면을 물현화하는 것은 결코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감지했을 때만, 그들이 그 물질 형태에 작업을 했을 때만, 그들의 단결된 노력이 그것을 외적인 현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그대는 여론을 교육시킬 가치를 보게 된다; 그러면 많은 협조자들이 몇몇 비전을 보는 사람들을 돕게 된다. 항상 법칙이 유효하다;--- 하강에서는 분화(differentiation)는 것. 두 세 명이 계획을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그러면 그들이 생각으로 시작한 리듬이 멘탈계 물질을 휩쓸어서 활동하게 만든다; 사고자들이 그 관념(idea)을 붙잡게 된다. 이것은 배우기 어려운 것이고 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 보상은 엄청나다.
짜내려고 고군분투하며 참아내는 사람들에게 물현화가 올 때,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차이의 기쁨이 그대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어둠을 알기 때문에 그대는 과실의 빛을 즐길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과 테스트를 마친 동반자의 기쁨이 그대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해 동안 그대가 선택한 동료들이 누구인지 그대에게 증명했을 것이고, 고통을 같이 하는 공동체 속에서 더 튼튼해진 연결고리가 만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 후의 평화의 기쁨이 그대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험을 마친 전사에게 성취와 휴식의 과실은 배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대스승들의 계획에 참여하는 기쁨이 그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를 대스승들과 긴밀하게 연결시켜주는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 필요로 하는 세계에 위안을 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기쁨, 어두운 곳에 있는 혼들에게 빛을 가져왔다는 기쁨, 세계 고통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하였다는 기쁨이 그대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람 있게 보낸 날들에 대한 의식 속에서, 구원된 혼들의 감사 속에서, 모든 기쁨 중에 가장 심오한 기쁨이 올 것이다 – 그 기쁨은 대스승이 한 명의 형제를 진화 사다리 위로 조금 높게 올리는 데 도움이 될 때 아는 기쁨이다. 이것이 그대 모두들 앞에 놓여진 기쁨이다 –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멀리 놓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서 일하라;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와야 하는 내면의 요구에서 일하라; 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전을 보았기에 오는 그 충동(urge)과 그대가 그 비전을 지상으로 가져오는 데 그대가 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에서 일하라.
행복(happiness), 기쁨(joy) 그리고 지복(bliss)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행복(happiness)은 감정 속에 자리를 잡고 있고 그것은 개성의 반응이다.
둘째, 기쁨(joy)는 혼의 특질이고 정렬이 일어날 때 마인드 속에서 인식되는 것이다.
셋째, 지복(bliss)은 혼이 아버지(Father)와 하나됨을 깨달을 때까지 추측이 불가능한 영(Spirit)의 성질이다.
이런 깨달음은 개성아가 혼과 하나되는 초기 단계 후에 따라온다. 그러므로 비유와 용어들이 개인적이고 감각 세계와 관련되어 있는 보통 사람에게는 지복의 성질에 대한 추론과 분석이 무익하다. 열망자가 그의 행복이나 기쁨을 말하는가? 만약 그가 그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룹 의식, 그룹 결속(group solidarity), 모든 존재들과의 하나됨의 영향으로서 온 것이고, 결코 행복 측면에서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 행복은 개성이 그 하위 성질의 일부분 혹은 다른 부분 속에서 개성을 만족시켜 주는 그런 조건들과 만날 때 온다; 그것은 육체적인 행복감, 환경이나 주위 개성들과의 만족감 혹은 자신의 멘탈적 접촉 및 기회에 대한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다. 행복은 분리된 자아의 목표이다.
그러나 우리가 혼으로서 살려고 추구할 때, 하위 인간의 만족감은 중요하지 않고 그룹 관계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이 혼의 더 나은 표현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조건들을 가져오는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표현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조건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그들의 물질적인 조건들을 더 좋게 하려고 할 때 육체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우리가 있는 것으로 그들에게 평화와 행복감을 가져올 때 감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자극해서 사고와 이해를 명확하게 할 때 지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한테 오는 영향은 기쁨이다. 왜냐하면 우리 행동이 이타적이고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열망자의 환경이나 세속적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이 어렵고 “많은 생의 누적된 카르마가” 억눌러서 혹은 가족, 국가 혹은 인류의 문제들이 민감한 개성을 괴롭혀서, 나쁜 건강의 압박이 느껴질 때, 필연적으로 많은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 젊은 사람의 행복 혹은 이기적이고 따로 떨어져있는 개인의 자기중심적인 만족---자기 보호적인 욕망들 방패 뒤에 숨는---을 기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성의 깊은 비애와 불행 속에서 혼의 기쁨을 알고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부한 얘기이자 오컬트 패러독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고, 학생이 목표로 하는 것이 이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에 눈을 감았기 때문에 혹은 환영의 껍질 속에 자신을 숨기는 자기 최면에 걸렸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러나 열망자는 그의 눈이 활짝 열려있는 단계에 자주 도달했다; 그는 자신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을 배웠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분리하는 벽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깨어 있고 살아 있다; 그는 민감하고 종종 고통을 받는다. 그는 세계가 행복과 평화라고 부르는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 그를 왜 떠났는지 의아해하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묻는다.
내면에서 안내하고 지켜보는 우리는 싸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대들 모두를 애정어린 보살핌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안전한 고지에서 전쟁의 추이를 따르는 총사령부와 같다. 우리의 안전 속에 그대들의 궁극적인 성공이 놓여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손안에 가지고 있고, 그 전쟁이 여의치 않을 때 그 해결책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한 가지를 항상 명심하길 바란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바로 형태의 파괴 속에 모든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이 진술이다. 이것이 뻔한 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대는 그것이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볼 것이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대스승들은 형태를 최대로 이용한다; 그들은 형태가 목적을 다할 때까지 그리고 인류가 그 형태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구속하는 벽 속에 가두는 그것을 통해서 일하려고 한다. 그러면 그 형태가 더 이상 의도하는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그 구조가 쇠퇴하고, 결정화되어 쉽게 파괴되는 때가 온다. 그러면 그 파괴는 엄청 큰 관심사이자 유용성의 문제가 되고, 새로운 형태가 형성되는 동안 그것은 가게 된다. 이것이 그런지 아닌지 지켜보고 이해하라. 항상 형태를 만들고, 항상 그것을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하며, 항상 그 형태가 확장하는 빛을 막고 방해할 때 그 형태를 파괴하고, 그러면 항상 새로운 형태를 빠르게 새로 만든다. 이것이 영겁이 시작된 이후 사용되어 온 방법이다.
인류가 어렸을 때에는 형태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진화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이제 모든 것들이 위로 움직이는 추세에서, 형태가 짧은 기간 지속된다. 그것은 짧은 기간 동안 산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고 그러면 또 다른 형태가 따라온다. 이런 속도가 감소하지 않고 증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생명의 내적 확장 혹은 의식이 점점 더 빠르고 가벼운 리듬에 진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인류의 맏형들(Elder Brothers)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현재 노력의 주요 목적이 에텔체를 자극하고 정화하며 조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에텔체는 프라나의 전달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려하는 모든 에너지의 매개체이다. 또한 그 중요성이 다른 방향에도 있다:
- 물질계 물질이기에 글자 그대로 에텔 의식이 인류 앞에 있는 다음 단계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에텔적으로 보고 에텔 물질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 그것은 근대 과학자 앞에 있는 탐구 영역이다. 10년 안에 많은 의사들이 그것을 자연에 있는 하나의 사실로서 인정하게 될 것이다.
- 현재 육체가 고통 받는 대부분의 질병들이 에텔체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순전히 육체적인 질병이 있다 해도 거의 드물다. 질병은 아스트랄 상태와 에텔 상태 속에 그 근원이 있다.
- 안전하고 온전한 투시력과 투청력의 비밀이 에텔체의 정화에 달려 있다.
- 사람들의 에텔적인 발산(etheric emanation)이 엄청난 오염요인들이다. 그러므로 에텔체의 정화 속에 달콤하고 온전한 인류의 비밀이 놓여 있다.
그래서 에텔체가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강조될 많은 다른 이유들이 있다. 그 주제에 대하여 그대의 생각을 형성하기 시작할 때, 전체 문제가 그대 마인드 속에서 명확하게 자리잡을 때까지 넓은 일반론을 고수하는 것이 지혜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하이어라키의 관점에서 에텔체에 대한 작업이 인간의 체들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행성 차원의 과정이다. 지구 자체의 에텔체가 분명한 자극을 받고 있다. 지구의 영(spirit of the earth), 저 신비한 실체---행성 로고스가 아니다---가 새로운 의미에서 활성화되고 있고 그런 활성화 속에서 많은 흥미로운 계발들이 일어날 것이다. 세 가지 방식으로 이것이 시도되고 있다:
1. 새로 들어오고 있는 의식의 광선(ceremonial ray)에 의해서 일어난 에텔 원자들의 점점 더 증가된 진동율에 의해서. 이것을 갑작스럽고 격렬한 변화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진동율의 증가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 느리고 점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극이 있고, 많은 세기가 지나면서 인식될 것이다.
2. 어떤 아스트랄 힘들이 에텔체에 작용함으로써 원자 내부 구조 속에서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들, 또 다른 스피릴래(spirillae)가 의식 속으로 들어오고 원자의 우주 전체가 일반적으로 강화되는 변화들이 일어난다.
3. 내면의 세계에서 마하쵸한이 일곱 번째 광선의 강력한 부적(talisman)들 중에 하나를 사용함으로써.
지구의 영(spirit of the earth)이 느리게 점진적으로 깨어나고 있다. 그는 하강 국면에 있으며 먼 미래에 진화 상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체 속에서 우리에게 집을 제공하면서 우리의 목적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와는 여전히 분리된 채로 있다. 바로 이런 자극으로부터 에텔 데바들이 결과적으로 진화를 빠르게 진전시키고 있고 그들 이상에 더 근접하고 있다.
인간의 에텔체, 행성 그리고 지구의 영에 대한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에서 전체 상황의 핵심은 현재 시기에 다섯 가지 광선들 중에서 일곱 번째 광선이 우세한 광선이라는 사실에 있다. 일곱 번째 광선이 에텔 데바들과 에텔체를 통제하는 광선이다. 그것은 모든 계의 일곱 번째 하위계를 통제하지만, 현재 시기에 물질계의 일곱 번째 하위계에서 지배적이다. 또한 네 번째 라운드에 있기에, 어떤 광선이 분명하게 화신할 때, 그것은 같은 숫자의 계에서 통제할 뿐만 아니라 네 번째 하위계에 특별한 영향을 준다. 이제 이것이 현재 시기에 삼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주목하라:
1. 에텔계의 가장 낮은 계인 네 번째 에텔계는 물질계 의식 다음에 있다. 에텔 물질이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 세기가 끝날 무렵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게 될 것이다.
2. 아스트랄계의 네 번째 하위계가 경계를 넘어간(죽은) 대부분의 사람을 잡아두는 곳으로 그래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3. 네 번째 멘탈 하위계가 데바찬계이다.
하이어라키의 설립(The Founding of the Hierarchy)
인간에게 작용하고 인간의 개화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너지들이 인간의 경험 영역을 구성한다. 개화(unfoldment)와 경험(experience)이라는 두 단어는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왔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점점 더 형태 세계 속에서 경험을 해가면서, 그와 병행되는 의식의 개화가 진전된다. 그 개화는 인식(깨달음)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들을 만들어서 새로운 인식(awareness) 상태로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재설정하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경험---새로운 현상의 경험, 새로운 존재 상태 경험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차원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제자에게 아직은 어떤 평화의 지점이 없다는 사실에 자주 반발하게 된다. 평화는 아틀란티스 시대 열망자의 목표이다. 깨달음(Realization)이 아리안 제자의 목표이다. 그는 결코 정체될 수가 없다; 그는 결코 쉴 수 없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새로운 조건에 조정시킨다; 그는 지속적으로 그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배우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면서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의식이 대아(Self), 하나(One) 속에서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 된다. 그러면 입문자는 형태 속에 있는 생명의 주마등 현상을 지켜보면서 자기자신을 비밀을 여는 통일성(unlocking Unity)으로 알게 된다.
그는 한 가지 통일성(one sense of unity) 상태에서 이분성 상태(sense of duality)로 지나가고, 거기에서 다시 더 높은 통일성으로 들어간다. 첫째, 대아(Self)가 그 형태라는 환영 속에서 모든 이분성이 사라지는 정도까지 형태 측면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러면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있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형태를 보게 된다. 그러면 내재하는 대아가 자기자신과 형태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가 온다. 그러면 우리는 상위 자아 그리고 하위 자아 측면에서 말한다; 그는 자아와 그 외피들에 대하여, 자아와 비자아에 대하여 말한다. 세 번째 입문을 위해서 수련을 받을 때까지 이런 이분성의 단계가 열망자와 제자의 단계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형태 속에 갇힌 하나의 영적 실체(spiritual entity)라는 지식을 갖고 시작한다.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의식이 압도적으로 형태 의식으로 있게 된다. 점진적으로 이것이 바뀐다. 너무 점진적으로 바뀌어서 열망자는 균형의 삶(life of balance), 즉 어느 것도 우세하지 않은 삶이 올 때까지 인내(endurance)---심지어 비자아를 견디는 지점까지---의 교훈을 배운다. 이것은 그 속에서 한 두 생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얼핏 보기에 무력증(inertia)과 소극성(negativity) 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그는 어느 방향으로든 성취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사람들을 대할 때 중요한 힌트이다. 그러면 균형점이 바뀌고, 혼이 영향력 관점에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전체 의식 측면이 두 가지 측면의 상위 측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분성이 여전히 지속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종종 자신의 혼과 동일시하고 종종 자신의 형태 성질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시기에 대부분의 진실한 제자들에서 보게 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조금씩 그가 혼 속에서 “흡수되고”, 이렇게 모든 형태들 속에 있는 혼의 모든 측면과 공명하여 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깨달을 때까지 계속되며, 그러면 또 다른 통일성의 상위 상태가 일어난다. 이 점을 숙고할 필요가 있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생명 측면을 강조하는 사상 학파들---베단타나 다른 신비 사상학파들---이고 이분성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파들---신지학회---은 자아와 비자아의 사실을 가르치고, 그래서 이분성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둘 다 맞고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현현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분성을 통해서 상대적인 통일성(relative unity)에서 또 다른 통일성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작업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 형태의 통일성(unity of form)으로, 그 속에서 자아가 그 형태와 겉으로 보기에 동일시하고 있고 형태의 삶 속에 흡수되어 있다.
2. 이분성으로, 형태와 자아 사이에 왔다 갔다 변동을 거듭하면서, 의식의 초점이 종종 어느 하나로 왔다 갔다 한다.
3. 혼의 통일성(unity of soul)으로, 그 속에서 혼을 제외한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존재(being)만이 의식 속에 기록된다.
이렇게 두 학파 다 맞고, 이분성의 개념이 하나의 대생명(One Life)과의 본질적 합일로 가는 길의 한 단계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열망자(aspirant)나 견습생(probationer)의 전쟁터(쿠르크쉐트라)가 아스트랄계이듯이, 제자(disciple)의 전쟁터는 멘탈계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거기에 그의 쿠르크쉐트라가 있다. 열망자는 올바른 정신의 통제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적 심령 성질을 통제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아르주나(Arjuna)가 올바른 비전을 향해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크리슈나(Krishna)가 그를 수련시킬 때 이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제자는 이런 멘탈적인 주의를 계속 가져가야 하고, 마인드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서 더 상위의 깨달음(인식)을 성취하고, 한층 더 높은 요인인 직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자신 속에서, 열망자는 인종의 개화를 반복하고 인종의 드라마를 재현한다; 그는 그 드라마에 대한 어떤 사실들을 이해하고 여기 열거하는 하이어라키의 작업을 이해해야 한다:
1. 비밀의 가르침(Secret Doctrine)을 전파해온 운동은 1800만년 되었다.
2. 태초의 시발자(Instigators)들에서 4인만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그 작업은 (충동적이고 통제하는) 이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의 세 그룹 손에 놓여 있다:
1)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준비해온 우리 지구 인류의 손안에.
2) 다른 행성 스킴에서, 진화하는 우리 지구 스킴 속으로 온 어떤 존재들(Existences) 손안에.
3) 초인간(superhuman)의 진화를 하는 많은 수의 데바들 손안에.
이들 전체가 세 가지 주요 부문(division)에서 작용하고, 많은 신지학 문헌들에서 개략적으로 설명되었고 [입문, 인간과 태양(Initiation, Human and Solar)]에서 요약된 일곱 가지 그룹 속에서 작용하는, 행성의 오컬트 하이어라키를 구성한다.
3. 바로 그 초기 단계에서, 이 하이어라키가 다양한 이름들로 불려졌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이베즈 사원(Temple of Ibez)이다.
4. 이베즈 사원(Temple of Ibez)의 설립을 보자. 이렇게 하기 위해서 백색 형제단(White Brotherhood)이 지구에 도래하는 시기와 그들 앞에 놓인 당면한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결코 적합하게 검토되지 않았던 어떤 사실들을 인식하는 것을 수반한다. 우리 인류를 위해서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도래가 기원적이라는 것은 오컬티즘에서 인정된 사실이다; 그것은 두 가지 사건을 일으켰다:
- 이제 네 번째 왕국 혹은 인간계라고 부르는 그룹 혼의 뚜렷한 결정화(crystallization).
- 동물 인간 속에서 마나스 혹은 마인드를 세 가지 방법으로 일깨우는 것.
1) 백색 형제단의 어떤 구성원들이 직접 화신하여, 그들이 그들 자식에게 전달한 새로운 필요 인자들을 가지고 왔다.
2) 동물 인간 속에 오컬트 문헌들에서 “마인드의 불꽃(spark of mind)”이라고 부르는 것을 분명하게 심어서. 이것은 코잘체 혹은 영적 체 속에 필요한 멘탈 단위(mental unit) 혹은 사고의 멘탈 도구를 직접적인 행위에 의해서 창조하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3) 동물 인간 속에 있는 멘탈 기능(faculty)을 점진적으로 자극하고, 그 마인드가 현현된 마인드로 활짝 피울 때까지 잠재하는 마인드 씨앗을 꾸준히 활성화시킴으로써.
이것은 광대한 시간을 망라하고, 그 형제단이 샴발라에 본사를 두고 그 활동들을 지시했다 하더라도, 인종의 진화가 계획대로 진행되려면 아틀란티안 인종 첫 번째 아인종(subrace) 시기에 어떤 영향들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샴발라가 물질 속에 존재하고 공간 속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말해지지만, 여기서 말하는 물질이 에텔 물질이고, 세계의 주와 최고 등급의 보조자들이 에텔 물질로 구성된 체 속에 있다는 것을 신비의 학생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5. 약 1700만년 전에 물질계에 신비를 위한 어떤 조직이자 본사를 세우고 (하이어라키의 도래와 샴발라의 설립이 약 1850만년 전이다) 조밀한 육체들 속에서 활동할 일단의 초인들과 쵸한들을 구성해서 빠르게 깨어나는 인류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결정되었다.
6. 샴발라 형제단의 첫 번째 전초지가 이베즈(Ibez)의 최초 사원이었고 그것은 중부 아메리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사원의 지부들 중에 하나가 훨씬 나중에 고대 마야(Maya)인들 기관들 속에서 보였고, 그들은 모든 사람들 심장 속에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 태양을 기본적으로 숭배하였다. 두 번째 지부가 나중에 아시아에 세워졌고, 작업이 상당히 바뀌었지만, 이 지부의 대표자들이 히말라야 초인들과 남인도 초인들이다. 나중에 하이어라키 작업의 고대 형태가 실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발견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지상에 있고 많은 것이 지하에 있는 고대 기록들과 유적들이 드러날 것이다. 칼데아와 바빌론에서 투르키스탄을 거쳐서 고비 사막을 포함한 만주에 이르는 중앙 아시아의 신비들이 열릴 때, 많은 부분의 이베즈시대 일꾼들의 초기 역사가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베즈(Ibez)라는 단어가 글자 그대로 지구 행성 로고스의 진정한 이름을 숨기고 있는 아크로스틱(acrostic) 성질이고, 그 행성 로고스의 원리들 중에 하나가 사나트 쿠마라(Sanat Kumara) 속에서 작용해서 그를 행성 로고스의 직접적인 화신으로 만들며 그의 신성한 의식의 표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이 네 글자는 신성한 원리 네 가지를 구현한 우리 지구 체인의 네 개 구체들에 있는 네 분의 아바타들의 진정한 이름들의 첫 번째 글자들이다. I B E Z 글자들은 진정한 센자르 글자들이 아니라, 그런 부정확한 표현이 표의문자 언어에 사용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단순하게 유럽화된 왜곡된 표현이다. 그 진정한 의미가 네 번째 입문에서만 전달된다. 그 입문에서 행성 로고스의 성질이 드러나고 사나트 쿠마라의 직접적인 중재 작업을 통해서 그의 네 분의 아바타들과 분명하게 접촉하게 된다.
7. 여기서 이베즈 초인들의 작업과 그들의 신비에 대하여 한 마디가 더 필요하다; 여기서 그들 작업의 전체 추세가 현재 시기의 초인들의 작업과 다소 다르고 그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목적은 신비주의와 인간 원자 속에 있는 신의 왕국을 자극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식 상태 때문에, 그들 작업의 성질을 현재 시기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이베즈 초인들은 유아기에 있는 인류를 다루어야 했고, 그들의 극성이 가장 불안정하고, 그들의 조정이 매우 불완전하였다. 찾을 수 있는 정신이 거의 없었고, 인간들은 실제적으로 거의 아스트랄적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물질계보다 아스트랄계에서 더 의식적으로 활동했고, 샴발라로부터 지도 아래 인간의 에너지 센터들을 계발시키고, 두뇌를 자극시켜서 그를 물질계에서 온전하게 자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초기 초인들 작업의 일부분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내면의 신의 왕국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이고, (그들 제자들을 수련시키는데) 자연이나 다른 단위들 속에 있는 신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당시는 현재 허용될 수 있는 방법들보다 더 명확한 육체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런 육체적인 자극 방법들이 이용되었다. 그리고 하이어라키 작업에서 또 다른 큰 변화가 있을 때까지 다양한 센터들을 통해서 작용하는 에너지의 법칙들을 배웠다. 그리고 동물계에서 인간계로 들어가는 문이 닫혔고 입문의 문이 열렸다. 방법과 실천에서 급격한 변화를 허용하기에 인간이 충분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충분하게 개체화되었다고 그 당시 느꼈다. 이 모든 것이 광대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고 타락된 형태의 남근 가르침, 탄트라 마법 그리고 하타 요가 실천방법들로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것이 바로 초기 사원의 실습들의 잔재들이다. 레무리아와 초기 아틀란티스 시기의 유아기에 있는 인류는 지금 우리에게는 조잡하고 불가능하며 수 백 만년 전에 인류가 초월했어야 하는 성질의 상징들과 방법들에 의해서 그들이 무엇인지 배워야 했다.
8. 입문의 문이 열렸을 때, 수 백 만년 전에 롯지가 두 가지 결정을 하였다:
인간이 육체와 아스트랄체를 조정하고 자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와 아스트랄체를 초월할 때까지 개체화가 중지되어야 한다는 결정. 그가 그룹 의식적으로 될 때, 비로서 그때 자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다시 열릴 것이다.
신비주의의 길이 결국에는 오컬트 길로 이끌어야 하고, 가르침을 제공하는 계획들이 만들어야 하며, 인간 속에서뿐만 아니라 보이는 만물 속에서 신의 성질을 드러내는 신비들이 체계화되어야 한다는 결정. 인간은 개인일지라도 더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것과 그의 관심거리들이 그룹의 관심거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점진적으로 그 가르침이 재구성되었고, 그 과정이 늘어났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그 신비들에 준비되어 가면서 그 신비가 계발되었으며, 칼데아,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많은 다른 놀라운 신비 학파들이 생기게 되었다.
9. 세 가지가 언급될 수 있다:
1)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진화 지점에 있었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육체적 극성(polarization).
2) 흑색 초인들의 작업과 좌도의 추종자들. 이베즈 초인들 (샴발라에 있는 대스승들의 가르침 하에)이 그 신비의 성취를 더 어렵게 만들고 악용과 왜곡을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사원 속으로 철수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엄청난 힘과 지식을 가진 옛날 그들의 많은 추종자들이 그들과 싸워서 이렇게 흑마법과 백마법의 출현의 원인들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이것이 정화시키는 홍수가 필요하다고 본 이유들 중에 하나였다.
3) 초기 이베즈 신비들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미국에서) 아직까지 파괴되지 않은 강력한 상념태들. 열망자가 넘어갈 수 있기 전에 모든 진정한 신비들의 이 거대한 “경계의 거주자(Dweller on the Threshold)”를 괴멸시켜야만 한다.
10. 이베즈 초인들의 작업과 이베즈 사원(Temple of Ibez)의 신비들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고 전세계 두루 육체적으로 화신한 초인들과 대스승들을 통해서 계속 수행되고 있다. 그들은 사이키(psyche), 자아(ego) 혹은 혼(soul)과 인간 단위의 의미를 가르쳐서 인간이 진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지구상에서 걸어 다니는 하나의 신(a God)이 될 수 있으며, 그의 하위 성질(육체적, 아스트랄적 그리고 멘탈적)이 혼 혹은 사랑 측면(love aspect)에 의해서 완전하게 통제되어서 이것이 이론이 아닌 진실로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육체는 진정한 인간에게 어떤 유혹도 갖지 않을 것이고, 감정 성질과 욕망체도 더 이상 길을 잃게 만들지 못할 것이며 마인드도 영적이고 진정한 그것을 차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 신이 인류에 대한 봉사 매개체로서 그 세 가지 체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 왕국을 초월할 것이고 인간이 영계로 넘어갈 것이며, 거기서 더 심오한 교훈들을 배울 것이다. 마치 동물계에서 지나온 유아기 인류가 이베즈 초인들에 의해서 수련을 받고 그 기능들과 작업을 배웠듯이.
아틀란티스 시대에, 스승들의 하이어라키가 앞에 세운 목표는 심장 센터를 일깨우는 한 가지 단계로 인간 속에서 사랑의 성질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스승들은 그 당시 (의도적으로) 심장 센터 속에 집중했고, 그들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멘탈 에너지와 멘탈 도구를 억제시키면서, 전적으로 심장 센터를 통해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입문자들을 훈련시킬 때 세 번째 입문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의 멘탈 힘을 중단하였다. 우리 인종에서, 그 상태가 뒤바뀌었다. 모두가 심장 센터와 관련된 과거 성취들에 토대를 두고 노력을 하지만, 이제 하이어라키는 전적으로 멘탈 수준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 번째 입문까지 제자들은 멘탈 에너지를 통제하고 숙달하며 사용하기 위해서 완전히 멘탈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시도가 혼의 의지 측면을 (자아 수준에서) 전달하는데 집중된다. 개성이 혼의 자동기계가 될 때까지 그 의지를 개성에 부과시켜야만 한다. 그러면 직관이 통제할 것이고, 직관계 혹은 붓디계로부터 오는 에너지들이 형태의 성질인 개성에 그 충격을 주기 시작한다. 직관을 통제하기까지, 많은 생들을 살아왔으며 그 속에서 직관이 그 역할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학생은 깨달음(illumination)의 의미를 배운다. 하지만 세 번째 입문 후까지, 지배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순수한 직관적 지각 혹은 순수 이성이 아니라 깨달은 마인드(Illumined mind) 이다. 형태 의식에서 분명히 넘어가는 것을 표시하는 이 위대한 입문 후에, 입문자는 직관계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고, 마인드가 본능적인 도구---물질주의 심리학자가 그렇게 강조하는 본능적인 성질처럼 잠재의식의 본능적인 성질의 일부분으로---의 일부분이 될 때까지 뒤쪽으로 꾸준히 물러나게 된다. 직관적 지각, 순수 이성, 직지(direct knowledge) 그리고 우주 마인드의 미분화된(undifferentiated)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리안 초인들의 주요 특징들이다. 나는 “미분화된” 단어를 다양성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주된 차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혼이 일곱 광선(seven Rays) 중 어느 하나에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그 혼의 의지가 전체의 의지(will of the Whole)로 대체된다.
이것들은 거의 무의미한 말들이며, 기껏해야 이 그룹에 있는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다. 통제된 마인드를 매개로 전달되는 의지가 일곱 가지 유형의 에너지를 구체화시키고, 이 일곱 가지 유형에 상응하는 일곱 가지 유형의 인류가 있다고 말할 때, 그대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이 분명하고 이해하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진실로 이해하는가? 일곱 가지 유형의 에너지 그리고 일곱 가지 유형의 반응하는 정신이 일곱 가지 광선의 유형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 진술 속에서 마인드가 이해하는 혼의 측면의 분화를 주목해야 한다. 이것들이 차이의 다양성을 대신하는 일곱 가지 분화들로 형태 측면들이 나눠지는 차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구분들(distinctions)이자 분화들(differentiations)이고, 세 번째 입문까지 계속해서 인간을 잡고 있다. 그것들에 의해서 그의 특정한 광선에 따라서 그가 어떤 주요 활동들과 삶의 성향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것들이 멘탈적인 구분들이다. 멘탈계에 있는 모든 혼들은 태양 천사(solar Angels), 신성한 마인드의 아들들(divine Sons of mind)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그룹을 갖는 것이고, 그래서 대시대의 대계획(Plan of the Ages)이 일곱 가지 주요 부문을 통해서 작용하는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중 단계에 의식 속에서 어떤 거대한 변천이 일어나서 형태가 그 지배력을 잃어버렸을 때, 심지어 이런 구분들도 사라진다. 그리고 계획을 전체로 보고, 대생명(Life)을 그 본질적인 하나됨 속에서 알게 되면, 모나드(monad)라는 용어가 그 진정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모든 구분들과 분류들이 멘탈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사고 원리의 변형태들과 멘탈 에너지가 형태들을 통제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사고자가 생각의 힘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구분들과 차이들을 넘어서는 문제는 열망자가 신성의 두 번째 측면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물질 측면 혹은 세 번째 측면의 지배에서 나올 때까지 극복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 번째 입문까지, 심지어 두 번째 측면(사랑 측면)도 이분성(duality)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이분성이 사랑 자체 속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자(Lover)와 사랑받는 것(loved), 바라는 자(Desirer)와 바라는 것(desired), 추구하는 자(Seeker)와 추구되는 것(sought)이 있다. 활기를 불어넣고 통합시키는 대생명(모든 형태들과 모든 이분성을 하나의 거대한 통합으로 휩쓸어가는 대생명)의 첫 번째 측면을 세 번째 입문에서 감지할 때만 비로서 여기서 전달하는 말들이 실질적인 의미가 혹은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세 가지 진술로 할 수 있다면 문제들을 간단하게 하자; 제자가 멘탈계 에너지와 싸워서 그것을 통달할 때, 이 진술들 속에서 제자가 성취하는 작업을 요악할 것이다.
1) 멘탈계에서의 작업은 이분성의 인식을 만든다. 제자는 혼과 그 매개체를 섞고 합치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것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그는 그것들을 통일성(unity) 속으로 융합시키려고 한다. 그는 바로 여기서 그것들이 하나(ONE)라는 인식(깨달음)을 목표로 한다. 자아와 비자아의 통일이 그의 목표이다. 그가 자기자신을 형태와 동일시하는 것을 멈추기 시작하고 (이런 과도기 기간 동안) 그가 이분성(duality)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런 방향으로의 첫 걸음을 밟은 것이다.
2) 그러므로 올바르게 사용된 마인드는 두 가지 유형의 에너지 혹은 하나의 대생명(One Life)의 현현의 두 가지 측면을 기록하게 된다. 그것은 현상계를 기록하고 해석한다. 그것은 혼의 세계를 기록하고 해석한다. 그것은 인간 진화의 삼계에 민감하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혼의 세계에 민감하다. 그것은 이중 인식의 과도기에 위대한 중재 원리이다.
3) 나중에 혼과 그 도구가 통합되고 하나가 되어서 이분성이 사라지고, 그리고 혼이 자기자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 존재해왔던 모든 것 그리고 존재할 모든 것으로 알게 된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아주 먼 옛날에 세 번째 입문을 받은---그 당시에 세 번째 입문이 최고 입문이다---입문자가 불렀던 특이한 고대 아틀란티스 노래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것이 쓰여진 상징들을 번역하면서 그 리듬과 효력(potency)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나는 하늘과 지구 사이에 서있다! 나는 신을 본다; 나는 신이 취한 형태들을 본다. 나는 그것들 둘 다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내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 중 낮은 것은 더 이상 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찢어졌다. 공간과 그 생명을 내가 알 리 없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시간과 그 수많은 형태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그 둘 사이에 매달려 있다.”
“높은 하늘에서 신이 말한다. 어떤 변화가 있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듣고, 들으면서 머리를 돌린다. 보이는(visioned) 그것, 그러나 시야(visioning)가 도달할 수 없는 그것이, 내 심장보다 더 가까이 있다. 오래된 갈망이 다시 오고, 죽는다. 오래된 구속들(chains)이 큰소리로 딱 끊어진다. 나는 서둘러 앞으로 나아간다.”
“수 많은 목소리들이 말하고 내가 가는 길을 세운다. 지구의 소리들의 천둥이 신의 목소리를 차단한다. 나는 앞으로 가는 길에서 돌아서서, 다시 한 번 오랫동안 간직했던 지구의 기쁨들을 보고, 일가친척들을 본다. 나는 영원한 것들에 대한 시력을 잃는다. 신의 목소리가 사라져간다.”
“나는 다시 찢겨졌지만, 짧은 시간 동안만 그렇다. 나의 작은 자아가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고 한다. 마치 새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나무로 다시 내려앉듯이. 그러나 높은 곳에서 신은 그 작은 새보다 오래 지속한다. 이렇게 나는 신이 승리자이고 나의 정신과 나를 사로 잡는다는 것을 안다.”
* * *
“내가 부르는 기쁜 승리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라; 일이 끝났다. 나의 귀는 외적 형태들 속에 있는 숨겨진 모든 혼들의 그 작은 목소리를 제외하고 지구의 모든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들과 나는 하나(at-one)이다.”
“신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울리고, 그 음(tone)과 상음(overtone) 속에서 작은 형태들의 작은 소리들이 희미하고 사라지며, 나는 통일성의 세계 안에 거주한다. 나는 모든 혼들이 하나라는 것을 안다.”
“나는 보편 대생명(universal Life)에 의해서 휩쓸리고 내가 앞으로 가는 길---신의 길(the way of God)---을 휩쓸면서 나는 모든 작은 에너지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나는 그 하나이다(I am the one); 나는 신이다. 나는 모든 형태들이 합쳐지는 바로 그 형태이다. 나는 모든 혼들이 융합되는 바로 그 혼이다. 나는 대생명이고, 그 대생명 속에서, 모든 작은 생명들이 그대로 있다.”
독특하게 선별된 음으로 고대 공식으로 부를 때 이 말들은 오래 전에 사라진 어떤 고대 의식에서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이 세 가지 진술에다 네 번째 것을 다음과 같이 추가할 수 있다:
4) 치타 혹은 마인드 물질이 추상적인 관념들(ideas) (창조자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고 결과적으로 삼계 속에서 현상이라는 결과들의 원인이 되는 신성한 마인드의 구체화된 생각들) 에 의해서 휩쓸려서 활동할 때 그리고 이것에다 신의 의지와 목적에 대한 신성한 이해와 통합적인 터득을 더할 때, 마인드의 세 가지 측면들이 통합된다. 이것을 이전에 다루었고, 다음과 같이 부른다:
1. 마인드 물질(Mind stuff) 혹은 치타(chitta).
2. 추상적 마인드(Abstract mind).
3. 직관(Intuition) 혹은 순수이성(pure reason).
이것들이 열망자의 의식 속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이것이 일어났을 때, 제자는 다음과 같은 것을 연결시키는 다리(안타카라나)를 만든 것이다:
1. 영적 삼개조(The spiritual triad).
2. 코잘체.
3. 개성.
이것을 했을 때, 자아의 체(egoic body)는 그 목적을 다했고, 태양 천사는 그 일을 다 했으며, 우리가 경험의 매개체로서 형태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존재의 형태 측면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는 모나드(Monad), 하나(the onE)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코잘체가 파괴되고, 개성이 차차 희미해지며, 환영이 끝난다. 이것이 위대한 작업(Great Work)의 절정이고, 신의 또 다른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가 대계획과 협력해서 일하기 위해서 현상계로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는 인류가 겪는 그런 현현 과정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자기자신의 표현체(body of expression)를 만든다. 그는 대계획이 지시하는 대로 에너지를 가지고 에너지를 통해서 일할 수 있다. 이 마지막 말들을 주목하라. 왜냐하면 그것들이 현현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규칙 10을 공부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에너지에 대한 연구로 인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개성 에너지(Personality Energy): 다음에서 발산하여 나온다:
1) 조정된 인간(Coordinated man).
2) 지배적인 인간들(Dominant human beings).
3) 그룹: 예를 들면
가. 초인들의 하이어라키.
나. 통합하는 뉴에이지 신비가들 그룹(The integrating Group of Mystics of the New Age).
이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신비가들 그룹이 매년 그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행성 에너지(Planetary Energies): 다음에서 발산하여 나온다:
1) 일곱 행성(The seven planets).
2) 지구.
3) 달.
에너지들에 대한 이 부분과 다음 부분에 대하여 단지 몇 가지만 주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열망자들을 위한 일련이 가르침이지 에너지에 대한 논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 에너지(Solar Energies): 다음에서 발산하여 나온다:
1) 물질 태양(The physical sun).
2) 우주의 근원들(Cosmic sources).
이런 에너지들에 대한 모든 생각들 속에서 다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즉,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지나가며, 아니 오히려 거대한 그룹과 작은 그룹 속에 있는 데바들이라고 부르는 어떤 생명들의 체들을 구성하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생명들의 체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 불에 관한 논고(A Treatise on Cosmic Fire)]를 공부한 사람은 아래 정보가 가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1. 진화의 길에서 가장 낮은 유형의 건설자들 혹은 데바들은 보라색(violet) 데바들이다; 다음으로 녹색이 오고, 마지막으로 흰색 데바들이 온다. 이것들은 모두 네 번째 그룹이자 특별한 그룹에 의해서 지배된다. 이것들은 물질계 존재의 외적인 과정들을 통제한다.
2. 하지만 진화 사다리의 낮은 단계에는 잘못 붙여진 데바들인 다른 그룹의 데바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법칙에 복종해서 일하고 높은 실체들에 의해서 통제된다. 예를 들면 불의 엘리멘탈인 살라만더(salamanders)로 불려지는 조밀한 형태의 기체 생명(gaseous life)이 있다. 이것들은 멘탈계의 주(Lord of the mental plane), 아그니 주(Lord Agni)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고, 현재 같은 멘탈 시대에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불의 요소가 생활 속의 기계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열기에 의해서 통제된 제품들을 없애보라. 그러면 우리 문명이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교통 수단이 멈출 것이고 모든 빛의 방식들이 멈출 것이다; 그러면 모든 공장을 버리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불의 생명들이 타는 모든 것 속에서,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 형태를 유지하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번창을 일으키는 온기 속에서 발견된다.
3. 상응의 법칙 하에서 멘탈계는 물질계 세 번째 하위계, 지금 과학이 들어가고 있는 세계에 비유된다. 물질계에서 정신의 주요 표현으로서 우리가 과학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4. 아그니(Agni)는 멘탈계에서 지배하고, 마찬가지로 에텔계 세 번째 하위계에서 지배한다. 상징주의를 위해서 이런 용어들을 사용한다면, 위에서 아래로 셀 경우, 그는 멘탈계 혹은 다섯 번째 계의 주(Lord)이다. 붓디계 혹은 직관계의 주(Lord)인 인드라(Indra)가 점점 더 강력해지는 미세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 세계 주기 동안에 아그니가 지배적인 영향력이다. 현재 순간에 모든 인류가 세 가지 상위계와 세 가지 하위계 사이에 있는 합일의 네 번째 계, 마인드의 계 혹은 불이 가장 중요한 계를 향해서 노력하고 있다.
5. 어떤 특정한 화신에서 인간이 다양한 체들에 집중하거나 편극된다는---어떤 때에는 아스트랄체에, 다른 때는 멘탈체에---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재 시기에 우리 행성 로고스 자신이 자신의 멘탈체 속에 집중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가 네 번째 우주 입문을 향해서 정진하고 있다고 들어왔다. 그러면 우리가 네 번째 입문을 성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모두를 앞으로 데려가서, 우리의 특정한 수준에서 그의 체 속에 있는 세포들로서 우리가 성취하기 때문이다.
6. 시간이 지나면서, 인드라(Indra)가 통제하게 될 것이고 공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점점 더 붓디 원리가 현현하고 하나됨(at-one-ment)을 성취하면서, 우리는 공기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이 공기를 점진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확증될 수 있다. 비의적(esoteric) 의미에서 미래 모든 것이 더 가벼워질(lighter) 것이고, 더 희박해질(rarefied) 것이며 더 에텔화될(etherealized) 것이다. 나는 단어들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
7. “우리의 신은 태워버리는 신이다”(히브리서12장29절)라는 구절은 현재 시대의 통제 요인인 주로 아그니(Agni)를 말하는 것이다. 불의 데바들이 모든 지구 과정들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에게 뉴 에이지(New Age), 새로운 세계와 문명 그리고 새로운 대륙을 시작하는 일이 주어졌다. 마지막 거대한 변천이 바루나(Varuna)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8. 아그니가 지구의 불과 멘탈계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그는 신성한 불인 쿤달리니를 일깨우는 일과도 분명하게 관련 있다. 여기서 상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주목하라. 다섯 번째 근원인종의 상당 부분, 아마도 5분의 3정도가 견습의 길에 가까이 서게 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언젠가 고귀한 곳에 있는 크리스트의 도래로 (이것을 신중하게 표현하는 것을 주목하라; 인간의 구체적인 마인드 측면에서 독단적인 주장이 현명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추가 노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래서 첫 번째 주요 입문을 받는 것이 수반될 것이다. 그들은 다섯 번째 계에서 네 번째 계로 넘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불의 주(Lord of Fire)가 준비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쿤달리니 불을 일깨움으로써 이번 주기에 그의 특정한 작업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세기에 시작되었고, 다음 천년 동안 활발하게 실행될 것이다.
그대 작업 속에서 나중에 이런 지배적인 힘들에 접근하는 방법들이---모든 것이 그대의 소질(적성)에 달려있다---보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관적으로 오는 것이지 마법 같은 작업이나 공식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진동을 성취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올바른 조건들과 올바른 공명을 만들도록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행성의 미묘한 사항들과 태양 에너지의 상호작용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실질적인 영적 삶의 법칙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시대와 관련 있으며 인간이 자신의 것이자 선법(good Law)하에 그리고 재탄생의 경험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저 영광스러운 유산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몇 가지 생각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재탄생을 통해서 그는 형태를 올바르게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을 배운다.
모든 형태들은 그 자체로 어떤 개성의 표현들이 아니다. 개성의 표현이라는 용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세 가지 유형의 에너지가 있어야만 한다---세 가지 유형이 융합되고, 섞이고 조정되어 하나의 활동하는 유기체로 되어야 한다. 하나의 개성은 그러므로 멘탈 에너지, 감정 에너지 그리고 활력(vital force)의 융합이고, 이 세 가지가 조밀한 물질 형태 혹은 외피에 의해서 가려지거나(masked) 숨겨지거나(hidden) 혹은 드러난다(revealed) (이 용어를 주목하라). 이 외부의 껍질은 그 자체로 소극적(negative) 에너지 형태이다. 이 세 가지 에너지가 객관적인 행태 속에서 이런 합일이 이루어진 결과로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생긴다. 그들의 융합(fusion)은 “나(I)"라는 단어의 사용을 정당화시키고 모든 일을 어떤 자아와 관련시키는 바로 저 개체성 의식(sense of individuality)을 만든다. 마인드를 사용하고 감정체를 통해서 감각적으로 반응하며 육체에 (활기체를 통해서) 활력을 불어넣는 이 중심의 의식적 실체가 존재하게 되면, 그러면 그가 개성(personality)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형태 속에 있는 자의식적 존재이다. 그것은 다른 독자성(identities)들과의 관계에서 독자성을 인식(awareness of identity)하는 것이고, 이것은 신이나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 과정 동안만 지속되는 독자성(sense of identity)이고, 물질 측면과 의식 측면이 자연의 영원한 이분성으로 있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화 발전에서 그것은 하위 인간 형태들 속에서는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계에서 인식되고, 우리가 초인간(superhuman)이라고 부르는 더 거대한 형태들과 의식에 의해서 인식되고 그 속으로 합쳐지며 무효화된다.
개성(personality)은 개성을 조건화하는 인자를 마인드 물질 속에 가지고 있는 인식 상태(state of awareness)이다. 그러나 그 마인드 물질이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할 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다. 개별 마인드 물질이 우주 마인드의 통합적인 일부분이고, 마인드 원리가 모든 형태들 속에 내재하고 있듯이, 개체성 의식(sense of individuality)과 자아-인식(self-awareness)이 항상 영원히 가능하다. 하지만 고차원의 의식 상태 속에서, 그것은 결국에는 종속적인 위치로 물러나게 된다. 예를 들면, 신은 항상 영원히 자아를 구성하는 그리고 태양계 그리고 다른 태양계와의 상호작용의 온전함(integrity)을 지배하는 그 실재를 인식하고 있지만, 신성의 의식과 태양 신(solar Deity)의 인식은 자아상태(selfhood)에 일차적으로 몰입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과거 세계 주기와 경험의 결과로서---신성 의식 경계 밑에 놓여 있고, 인간의 본능적인 속성들처럼 우주의 본능적인 성질의 일부분이 되었다. 영원한 관심(Eternal Attention)---필연적으로 단어들이 거의 무의미한 이상한 구절을 사용하고 있지만---의 초점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는 인식 영역에 있다. 지혜의 대스승의 인식이 개미나 쥐의 시야 너머에 있듯이 그것들은 우리 시야 훨씬 멀리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하여 깊게 숙고하는 것이 무익하다. 우리에게는 개성의 성취 혹은 내재하는 자아의 인식이나 온전한 기록을 성취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그 개성을 사용하고, 결국에는 그룹 선(group good)을 위하여 그것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아를 하나의 대아 속으로 합치고 개인 혼을 대령(Oversoul) 속으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기꺼이) 융합시키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I am)”가 모든 인간의 외침이다; “나는 그것이다(I am That)”는 내재하는 실체인 진정한 사람(true person)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의 개성을 사용하고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는 모든 개성의 외침이다. “나는 나다(I am that I am)”는 개별 혼이 전체 속으로 사라져서 모든 자아 혹은 모든 혼과 하나됨을 인식할 때 개별 혼이 외치는 소리이다.
하나의 개성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개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나열할 수 있다. 그것들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탁월하게 이기적이다. 잊지 마라. 자아 상태로 가능한 원초 단계는 필연적으로 이기성(selfishness)이다. 또한 진보된 고도로 진화한 개성으로 가는 주요 장애물이 자아상태(selfhood) 혹은 그 이기적인 태도의 연장(prolongation)이라는 것을 똑같이 기억하자. 그러므로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그 순서적인 계발 속에 있다:
1. 나는 있다, 나는 원한다, 나는 바란다, 나는 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2. 자신의 작은 우주 중심 속에 있는 의식. “나를 중심으로 하늘이 돌고 별들이 돈다”가 이 단계의 모토이다.
3. 자신을 환경의 중심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역량과 드라마적 감각.
4. 주위의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여기는 적성과 책임감.
5. 중요성 의식---위에서 자라난 것. 이것은 실제로 꾸준히 깨어나고 있는 “가면(persona)” 뒤에 있는 어떤 실체가 있는 힘과 영향력 속에서 나타나고, 그리고 작고 이기적인 피조물이 활동하는 그 호언장담과 자기자랑 속에서 나타난다.
6. 전체 도구를 사용하는 힘으로 그래서 마인드와 두뇌가 동시에 활동하고, 감정 성질이 종속되어, 억제되고 혹은 통제된다. 이것은 사고를 사용하는 힘이 꾸준하게 성장하는 것을 수반한다.
7. 통합된 삶을 사는 역량으로 전체 인간이 기능하고 (의지 에너지를 표현하는) 목적에 의해서, (감정 성질 혹은 심령 성질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욕망에 의해서 그리고 육체 도구를 흔들어서 목적과 욕망에 일치하도록 만드는 활기에 의해서 안내된다.
8. 개인의 목적과 욕망의 범위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움직이게 하고, 안내하며 유지하는 힘.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개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융합하고 섞은 것이며, 내재하는 자아의 도구가 사용할 수 있으며 가치 있는 자산이 된 것이다. 그는 강력한 개성이고 어떤 그룹의 중심이 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생명들의 초점이 된 것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인간 단위들을 그룹들과 유기체 속으로 통합시키는 영향력 있는 자성적인 개인이 된다. 그는 조직과 정당의 수장, 종교 조직과 정치 조직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국가의 수장이 된다. 이렇게 지배적인 개성들이 나타나고 자신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렇게 힘의 중심, 자아와 도구 사이의 차이를 발견한다; 그들은 마침내 그 용어의 진정한 의미에서 사명(천직)을 의식하게 된다.
이런 단계적인 계발이 혼의 인식(soul awareness)이라는 내적인 성장과 병행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비록 그 내적인 성장의 표현 방식이 대체적으로 그 영적 실체(spiritual Entity)가 발견되는 광선에 달려 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하며 이 점에 대하여 열망자는 신중해야 한다. “영적 성장(spiritual growth)”이라는 말이 갖는 통상적인 함축된 의미는 대체적으로 종교적 이해의 성장을 의미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계의 성전들에 관심이 있다면, 그가 교회 구성원이자 성자 같은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을 종교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분하게 포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고기시대(Piscean Age)에 사용된 용어들과 인간의 사고에 남긴 인상에서 자라나왔고, 여섯 번째 광선의 영향과 기독교 교회---모두가 대부분 필요하고 모두가 거대한 계획 속에 내재하지만 (그들의 영원한 맥락에서 벗어난) 어떤 신성한 표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신성한 의식의 중요한 현현 같은 다른 것을 간과하였다---의 작업을 통해서 자라나왔다.
“영적 성장”이라는 말들의 진정한 의미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제공하는 종교적 신비적 문헌과 조직들의 매개체를 통해서 현현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고 더 포괄적이다. 힘(power), 목적(purpose) 그리고 의지(will)는 신성한 특질이고 표현들이며, 그것들이 교황을 통해서 혹은 무솔리니를 통해서 똑같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두 가지 경우 다 표현의 도구가 그 특질들을 수정하고 내려 받아서 어떤 장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력한 개성은 인간의 표현 영역 어디에서나 활동할 수 있고 그의 작업이 고귀한 이상주의(idealism), 최대 다수의 최대 선(good) 그리고 자기 희생적인 노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 영적(spiritual)이라는 말을 정당화할 것이다.
이 세 가지---이상주의, 그룹 서비스 그리고 희생---가 혼의 측면에 점점 더 민감해져 가고 있는 그런 개성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혼의 특질은 지식, 사랑 그리고 희생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진정한 비전가르침(esotericism) 학파들에서 동기(motive)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강력하게 개인적(individual)이고 필연적으로 그룹 의식을 계발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에서 비전 학파들 속으로 찾아 들어가서 혼의 성질이 개성을 개화시키고, 압도하여 사용하는 방식을 안내 받을 것이다.
아직 혼이 중심이 아닌 혼이 통제하지 않는 개성들의 두드러진 특징들은 지배, 야망, 자만 그리고 전체에 대한 사랑의 부족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들 혹은 그들의 안락에 필요한 사람들을 종종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인류의 단계적인 계발을 다음과 같은 단계 속에서 볼 것이다:
1. 동물 의식의 단계
2. 감정적으로 편향되고 이기적이며 욕망에 의해서 지배된 개인
3. 위 두 단계에다가 주위 조건들에 대하여 점점 더 증가하는 지성적인 이해
4.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 단계
5. 인간 표현의 어떤 영역에서 영향력과 힘을 갈망하는 야망의 단계. 이것이 새로운 노력으로 이끈다.
6. 위의 자극 하에서 개성의 도구를 통합(조정)시키는 것
7. 이기적으로 사용되고 종종 파괴적인 영향력의 단계. 왜냐하면 고귀한 이슈들이 아직 기록되지(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8. 꾸준하게 성장하는 그룹 인식 단계. 이것을 다음과 같이 본다:
1) 기회 영역으로서
2) 봉사 영역으로서
3) 모든 선을 위하여 영광스럽게 희생이 가능한 장소로서
이 나중 단계가 그를 제자도의 길에 올려 놓고,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초기 단계인 견습 혹은 테스트 단계를 포함한다.
문제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그가 어떤 단계에 있고 진화 사다리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규명하는 데 있다. 인간 개개인 뒤에는 장구한 일련의 생들이 펼쳐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지배적이고 이기적인 개성 표현 단계로 향하고 있어서 그들 자신을 온전한 의식적 인식 속에 있는 개인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그대가 제자도에서 한 단계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그들이 한 단계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개성이 되었고, 그들을 통해서 흐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실험하기 시작하며 그들의 음에 진동하는 그리고 그들이 분명하게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전세계 걸쳐서 수 많은 작은 그룹들이 인간의 모든 표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단계를 넘어갔으며 인간의 삶의 세계인 삼계 속에 있는 개성의 표현으로부터 탈중심화 하고 있고 개성 에너지의 상위 측면인 어떤 에너지에 의해서 동기부여 되고 있다. 더 이상 그들은 그들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 개인이 세계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혹은 그를 우러러보고 그래서 자만과 야망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그렇게 그들 둘 다 중요하고 영향력 있게 만드는 한 무리의 그룹을 그들 주위에 자성적으로 모으기 위해서 일하고 계획하고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그리고 진정한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기 시작한다. 마치 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 속에 내재하는 빛이 모아져서 혼의 빛이 모든 영광 속에서 발산하여 나올 때 그 혼의 빛 속에서 지워지듯이, 전체의 빛 속에서 그 작은 자아의 빛이 사라진다.
이런 이타성의 단계, 봉사 단계, 하나의 대아(One Self)에 복종하는 단계 그리고 그룹을 위해서 희생하는 이런 단계가 그 목표가 될 때, 그 사람은 행성 하이어라키의 물질계 반영인 세계 신비가들과 지자들(knowers) 그리고 그룹 작업자들로 구성된 그 그룹 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봉사자들의 새로운 그룹(The New Group of World Servers)
우리는 지구상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통합하는 지자들(knowers) 그룹에 대하여 종종 말해왔다. 그들은 어떤 외부 기관에 의해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영적인 끈에 의해서 이어지고 느슨한 그룹 형태로 함께 모인 그룹이다. 행성 하이어라키는 항상 존재해왔고, 태고 적부터 모든 시대에 걸쳐서 그 조건을 맞추고 일하기에 적합한 인간의 자식들이 세계의 진화 뒤에 서 있으며 작은 인간들의 운명을 안내하는 그런 사람들 대열로 들어왔다.
그들의 등급들과 작업들이 이론적으로 알려졌고,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의 이름들이 대중에게 주어졌다---어떤 개인적인 희생과 값을 치른 것인지 그 대중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나는 초인들의 하이어라키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 주제에 대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단어들의 제한적인 영향과 상징적인 해석에 대하여 필요한 유보적인 태도를 거지고 그것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육체, 활기체 그리고 아스트랄체가 통합되어 기능하는 하나의 단위가 된 아틀란티스 시대에 있었던 그 위기만큼이나 중요하고 중대한 사건이다. 그 당시 열망자들을 수련시키기 위해서 “헌신의 요가(yoga of devotion)” 혹은 바크티 요가(bhakti yoga)가 시작되었다. 지구상에서 하이어라키 작업을 수행하여 나중에 하이어라키 대열에 들어올 사람들을 위한 어떤 수련 학교를 구성하는 어떤 활동 방식을 의식과 그림을 사용해서 배울 수 있고 그리고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물질계 모형이 (그런 모형이 그 당시 가능한 정도까지) 조직되었다. 아틀란티스 그룹의 잔재들이 메이슨 운동 속에 여전히 우리와 함께 남아있고, 하이어라키의 작업이 이렇게 기호와 상징 속에서 영속되었다. 이렇게 삼중 조정 속에 있는 인류 가족 속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행성 조건을 나타내는 그림의 표시가 인종의 의식 속에서 보존되어왔다. 그것이 주요 목표였다. 형태와 상징, 도구와 가구, 사원과 소리(tone), 사무실과 외형적인 것들이 두드러진 요인들이었다; 그것들은 진리를 숨겼고 그래서 우리는 “내적이고 영적인 실재의 외적이며 눈에 보이는 형태”를 보존하였다. 그 당시 자신들 속에서 신비 비전에 대한 욕망과 갈망을 느꼈고 깊이 사랑하였으며 영적 이상에 헌신한 사람들 만이 이런 신비들에 참여하고 일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들은 활동적인 정신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들의 지성적인 힘은 실질적으로 없었다. 그들은 권위를 좋아했고 필요했다; 그들은 의식을 통해서 배웠다; 그들은 위대한 분들에게 헌신했으며 그분들 이름과 형태가 외부 롯지에 있는 관리인 뒤에 서 있었다. 마인드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개성들이 없었다.
오늘날 세계가 또 다른 위기 순간에 도달했다. 나는 현재 세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마인드가 활동하는 힘을 갖게 되었고, 개성이 조정되었다. 인간의 세 가지 측면이 합쳐지고 있다; 초인들의 하이어라키로부터 또 다른 침전(precipitation) 혹은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질계에서 어떤 외적인 조직, 의식 혹은 외적인 형태 없이도---조용하게, 꾸준히 그리고 강력하게---이전 하이어라키의 노력을 결국에는 대체할 사람들의 그룹이 통합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교회들, 모든 그룹들 그리고 모든 조직들을 대체할 것이며, 결국에는 세계를 지배하고 안내할 선택된 혼들의 과두제(oligarchy)를 구성할 것이다.
그들이 모든 나라에서 모이고 있지만, 지켜보는 하이어라키나 어떤 대스승에 의해서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기회와 파도(tide) 그리고 음(note)에 그들이 반응할 수 있는 힘에 의해서 선택된다. 그들은 모든 그룹과 교회 그리고 정당에서 나타나고 있고, 그래서 진실로 대표적으로 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그들 자신의 야망이나 자만에 찬 계획의 끌림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봉사의 바로 그 이타성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 지식의 모든 부문의 최고로 찾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이상과 발견 그리고 이론에 대하여 떠들어대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야가 너무 포용적이고 진리에 대한 해석이 너무 폭넓어서 그들은 모든 일화들 속에서 신의 손을 보고, 모든 형태들 뒤에 있는 신의 각인(imprint)을 보며 주관적 실재와 객관적 외부 형태 사이에 있는 모든 소통 채널을 통해서 소리 내는 신의 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인종에 속한다; 그들은 모든 언어를 말한다; 그들은 모든 종교를, 모든 과학을 그리고 모든 철학을 품어 안는다. 그들의 특징은 통합(synthesis), 포괄성(inclusiveness), 지성(intellectuality) 그리고 훌륭한 멘탈 계발이다. 그들은 하나의 대생명에 근거한 형제애의 신조를 제외하고 어떤 신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자신 혼의 권위를 제외하고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이 봉사하려는 그룹과 그들이 깊이 사랑하는 인류를 제외한 어떤 대스승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주위에 쌓은 어떤 장벽도 없고, 넓은 관용과 온전한 정신 그리고 균형감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들은 열린 눈으로 사람들의 세계를 보고 그들이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들과 위대한 분들이---끌어올리고 가르치고 도우면서---서 있듯이 그들이 서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그들 친구들과 동료들을 알아보고, 그들이 만나서 인류를 구원하는 작업 속에서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 서로를 알아본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거나, 상징들과 성전들에 대한 그들 해석이 다양하거나 혹은 그들의 말이 많건 거의 없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정치, 과학, 종교 그리고 경제---그룹의 구성원들을 보고 그들에게 알아봤다는 표시와 형제의 도움을 준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진화의 사다리 위에서 그들 앞을 지나간 분들을 알아보고 그분들을 스승으로 일컬으며 그분들이 그렇게 주려고 하는 그것을 그분들로부터 배우려고 한다.
이 그룹은 과거의 산물이고 그 과거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또한 현재 상태를 나타낼 것이고 그들 관계와 미래 작업이 흘러갈 일반적인 선을 어느 정도 예측할 것이다. 그런 그룹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고 다가오는 수 십 년 동안 조짐이 좋다. 조용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그들이 이미 실재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들은 아직 주로 주관적인 영향력이다.
먼저 과거를 시작하자. 약 1400년경, 대스승들의 하이어라키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두 번째 광선의 작업과 관련하여 (영적인 진리를 전해주는 것과 관련 있는) 소위 그 진리의 완전한 객관화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 광선의 활동은 세계 국가들과 정부들 사이에 강렬한 차이(differentiation)와 결정화(crystallization)를 초래하였다. 구체적인 정통성(orthodoxy)과 정치적 차이라는 이 두 가지 조건들이 많은 세대 동안 지속되었고 여전히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계와 정치계에서 비슷한 상태를 본다. 인도나 미국, 중국 혹은 독일을 보건, 혹은 많은 종파를 가진 불교의 역사, 수많은 종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신교 혹은 동서양에 많은 철학 학파들을 연구하건, 이것이 사실이다. 그 상태가 광범위하고, 대중 의식이 엄청나게 다양화되었지만, 이런 정세는 분리성의 시기를 요약하는 것이고 이런 사고의 강렬한 특수성(distinctiveness)의 끝을 표시하는 것이다.
다음 100년 동안 이런 정세의 추세를 주목하고 지켜본 후에, 인류의 맏형들은 약A.D. 1500년에 모든 부문에 비밀회의를 요청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보편적 질서의 기조인 통합을 향한 충동을 어떻게 재촉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물을 존재하게 만들었던 그 신성한 대생명의 목적의 현현이 가능하게 된 사고의 세계에서 그 통합과 통일성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까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 사고의 세계가 통합될 때, 그때 외적인 세계가 통합적인 질서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여기서 대스승들은 크게 생각하고 진화의 노력이라는 더 폭넓은 주기 속에서 일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작고 일시적인 주기들, 우주 과정의 밀물과 썰물인 아주 작고 일시적인 주기들은 그분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비밀회의에서 그분들은 세 가지를 하기로 했다:
1. 신성한 계획을 가능한 대규모로 보고, 그들의 정신을 그 비전으로 새롭게 하는 것.
2. 그분들이 서약한 거대한 노력 속에서 어떤 영향력 혹은 어떤 에너지들이 이용가능한지 주목하는 것.
3. 미래 세기에 그분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보조자들 그룹을 가질 수 있도록 남녀 견습생들, 제자들 그리고 입문자들을 수련시키는 것.
이 열망자들과 관련하여 그분들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1. 그들은 가장 진보한 제자들이 의식의 지속성을 간직하지 못하는 문제, 심지어 입문자들도 보여주는 실패를 다루어야 한다.
2. 대스승들은 제자들의 정신과 두뇌가 상위 차원의 접촉에 이상하게 둔감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여전히 지배적인 상태이다. 지금이나 그 당시 제자들은 열망, 인류에 봉사하려는 욕망, 헌신 그리고 가끔 상당한 멘탈 도구를 가졌지만, 강렬한 지성 작업을 위해 필요한 선결조건들인 텔레파시적 민감성, 하이어라키에 대한 본능적 반응 그리고 하위 사이키즘으로부터의 자유가 두드러지게 부족하였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은 여전히 비통하게 그렇다. 텔레파시적인 민감성이 세계 상태들과 진화상 추세의 결과로 명백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내면에 있는 일꾼들에게) 가장 격려하는 신호이지만, 사이킥 현상을 좋아하고 다양한 등급의 하이어라키 일꾼들의 진동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작업을 엄청 방해하고 있다.
여기서 그대가 묻고 싶을 것이다: 이 계획이 무엇인가? 내가 계획을 말할 때, 나는 혼의 개화(soul unfoldment)라는 어느 정도 무의미한 용어로 부르는 인류를 위한 계획 혹은 진화 계획 같은 그런 일반적인 계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행성을 위한 계획의 이런 두 가지 측면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구체적인 목적으로 가는 과정들이자 방식들에 불과하다. 현재 감지되고 있고 대스승들이 꾸준하게 그것을 위해서 일하는 그 계획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결국에는 인류 속에서 시간을 없애게 하는 주관적인 통합(subjective synthesis)과 텔레파시적 상호작용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과거의 성취들과 지식을 이용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정신(마인드)과 두뇌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 보여주어서 그 도구의 주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며 그래서 그를 편재하게(omnipresent) 해주고 전지상태(omniscience)로 가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 계획의 다음 발전 단계는 우리가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하나(One in Who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가 화신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기는 그 신성한 목적에 대한---지성적이자 협조적인---이해를 만드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그 계획을 내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 번째 단계 이하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것을 힐끗 보고 심지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자가 그 계획을 이루는 데 책임 있는 분들과 공명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의 계발과 앞에 있는 당면한 단계인 전체의 그 작은 측면을 (그냥 희미하게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협력이 가능하게 해주는 역량을 모든 제자들이 성취할 수 있고, 그것을 모든 열망자들 앞에 있는 목표로 간직해야 한다. 그 노력이 아직은 충분하게 안정되어 있지 않은 견습 제자는 예외로 하고, 모두가 의식의 지속성을 성취하기 위해서 정진해야 하고 지성적으로 사용하고 보일 때, 대계획의 다른 측면을 드러내 보여주며, 특히 깨달은 지자(illumined knower)가 반응하고 유용하게 봉사할 수 있는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할 그 내면의 빛을 일깨우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지난 과거 400년간 제시된 모든 수련의 목표가 이것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고, 이 사실로부터 그대는 인류의 지자들(Knowers)의 완전한 인내심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들 목표를 향해서 어떤 속도감에서 자유로이, 서서히 그리고 주도 면밀하게 일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우리가 소통해야 하는 즉각적인 관심사가 있다---그들은 시간 제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주기의 법칙(Law of Cycles)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기회의 시기, 어떤 힘의 시기, 어떤 영향력 그리고 에너지의 시기가 작용하는 것과 관련 있으며, 대스승들이 이것들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언급한 비밀회의(conclave) 동안, 앞을 내다보면서, 함께 모인 인류의 봉사자들은 독특한 에너지와 놀라운 기회들을 가진 다가오는 미래 물병자리시대(Aquarian age)를 주목했다. 그들은 이것들을 주목했고 약 2500년 동안 지속하는 그 시기를 대비하여 인간을 준비시키고자 했으며, 그것을 적합하게 이용할 때, 의식적 지성적인 인류의 통일성(unification)을 가져와서 요즘 만연하고 있는 감정적인 함축성을 가진 형제애와는 구별되는 소위 “과학적 형제애(scientific brotherhood)”라고 내가 부르고자 하는 그런 현현을 만들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물병자리 시대의 강력한 힘들을 유익하게 사용하기 전에 그 당시 그들에게 두 가지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첫째, 인류가 멘탈계까지 고양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의식이 감정계와 느낌의 세계뿐만 아니라 지성의 세계까지 포함하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이 폭넓게 전반적으로 활동적으로 되어서, 인간 지성의 전체 수준이 높여져야 한다. 둘째, 인간을 서로 멀어지게 만들고 그들이 예견하듯이 점점 더 그렇게 되게 만드는 분리성(separateness), 고립(isolation) 그리고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주기마다 인간은 점점 더 자기자신---만족과 배타성 그리고 인종적 편견---속으로 휘감겨 들어갔다.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인종과 인종 사이에, 폭넓은 분열과 세계적인 장벽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더 빠르게 수련시켜서 한층 더 통합적인 통일성을 지향하도록 만들려는 하이어라키 구성원들의 결심으로 인해서, 그룹 단위들을 형성하고, 사고자들과 일꾼들로 구성된 그 그룹들의 출현을 가져온 어떤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활동을 통해서 대체적으로 지난 3, 4세기 동안 우리 세계를 형성하고 지배하여왔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 비밀회의로부터 분명하게 정의된 선을 따라서 뚜렷하고 구체적인 그룹 작업이 시작되었다. 각각의 그룹은 실재에 대한 지식의 어떤 측면과 진리의 어떤 독특한 제시를 나타낸다.
이 그룹들은 대체적으로 네 가지 주요 구분으로 나누어진다; 문화, 정치, 종교 그리고 과학. 한층 더 근대시대에 세 가지 그룹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것들은 철학, 심리 그리고 재무 그룹들이다. 물론 철학자들은 항상 우리와 같이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분리성(separativeness)과 당파성(partisanship)으로 특징짓는 학파들을 세웠던 분리된 단위들이었다. 이제는 과거처럼 걸출한 인물들이 없고 어떤 사상(개념)을 나타내는 그룹들이 있다. 어떤 상태를 만들고 어떤 준비 조건들이 생기도록 해서 인류와 관련된 세계 진화 작업 속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하이어라키 프로그램의 일부분으로 일곱 가지 그룹의 사고자들의 작업을 인식하는 것이 심오하게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활동하고 사라지는 서로 다른 광선들의 영향 하에서, 인류의 작은 그룹들이 출현하였고, 그룹 형태 속에서 그 역할을 했다가, 그들의 내재적인 통합(synthesis)과 동료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지성적 역사적인 회고 속에 이해할 수 있듯이, 그들이 인류를 위해서 한 일과 인류의 진보라는 가장 행렬 속에서 기여한 것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특별한 기여를 한 그룹의 관리자와 이런 그룹들의 행렬을 다룰 시간이 없으며 그들이 한 일이나 그들이 작업했던 주관적인 충동들을 추적할 수도 없다. 단지 그들 노력의 추세를 나타내줄 수 있고, 그들이 인류의 멘탈적인 표준을 높여서, 그가 살았던 세계와 조화롭게 만든 그래서 물질과 형태의 성질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존재의 숨겨진 심연에 눈을 뜨게 만들었던 그들의 영적 작업의 황금줄에 대한 서술을 깨달은 역사 학생에게 남겨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서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세 가지로 특징짓는 긴밀한 관계 속에 있는 인류가 되었다:
1. 라디오, 근대 교통수단, 전화와 전보를 이용한 놀라운 상호관계와 상호소통.
2. 널리 퍼진 대규모의 박애주의 사업과 1500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형제에 대한 책임감의 성장. 적십자, 교육 기관, 병원 그리고 현재의 경제 구제책 같은 운동들이 모든 나라에서 겉으로 나타나고 있다.
3. 전체 인류 가족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짐: 첫째 반항적이고 분리적인 사람들로, 오래된 것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들은 분리적인 국수주의, 국경, 노예상태 그리고 굽실거리는 복종을 나타낸다; 종교적 파벌주의와 권위에 대한 의존이 그들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들은 모든 근대 혁신들과 진보에 반대한다. 둘째, 신의 사랑이 서로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고, 모든 종교적, 정치적 그리고 교육적 활동들 근저에 깔려있는 동기들이 부분이 아닌 전체의 복지와 세계 의식으로 특징짓는 통합된 세계를 비전으로 보는 사람들.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열망하는 통합은 어떤 부분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분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을 수반하며 그래서 유기체 전체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그것은 모든 국가에서 올바른 정부와 적합한 발전이 수반되어서 국제적인 의무들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고 그래서 국가들의 세계 형제애의 일부분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이 개념은 세계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관련되지 않고, 전체의 통일성을 인식하고 그래서 각자가 모두를 위해서 모두가 각자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결의를 만들어내는 보편적인 대중 의식을 계발시키는 것이 수반된다. 오직 이런 식으로만 정치적 국가적 비이기주의(unselfishness)로 특징짓는 국제적인 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인 정신 상태가 세계 종교 혹은 보편적 종교를 세우는 것과 반드시 관련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진리와 믿음이라는 모든 공식화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부분적이고 시대와 인종의 기질 및 조건들에 일시적으로 맞춰진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필요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로 가는 어떤 특정한 접근방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다른 접근방법들과 다른 표현 방식들, 용어들 그리고 신성을 정의하는 다른 방법들도 마찬가지로 옳고, 인간이 현재 도구로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거대하고 더 광대한 진리의 측면들을 그 자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인식을 성취할 것이다. 심지어 위대한 분들조차도 희미하게 실재를 감지하고 그분들이 제자들보다 근저에 있는 더 깊은 목적을 인식하더라도, 그분들도 궁극적인 목표를 보지 못한다. 그분들도 그분들 가르침에서 절대적 실재(Absolute Reality)나 궁극적 깨달음(Ultimate Realization) 같은 무의미한 용어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3세기 동안, 하나 둘 그룹이 출현해서 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성취한 것의 혜택을 수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문화 그룹 하에서 우리는 엘리자베스 시대 시인들이 출현하는 것을 보았고, 독일과 빅토리아 시대 음악가들을 본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영광인 유명한 학파들을 제공하는 예술가 그룹들을 보게 된다. 두 가지 유명한 그룹, 하나는 문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 그룹으로, 그들의 역할을 했다. 하나는 르네상스를 낳았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 그들 작업의 영향을 아직도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근대 현재에 끝난 과거를 강조하는 그리고 초기 추세에서 인간의 뿌리를 추구하는 인문주의 운동이 르네상스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서 싸우려는 결의와 혁명을 그것들이 시작되는 주요 영향력이자 원동력으로서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보게 된다. 반란, 정당의 구성, 오늘날 너무 만연한 계급간 투쟁과 비록 산발적이지만 모든 나라가 싸우는 정당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지난 2백년 동안 보편적으로 되었고, 대스승들께서 시작한 그룹 활동의 모든 결과들이다. 그렇게 인간들은 성장했고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비록 잘못 생각하고 재난 같은 실험들을 시작할 수 있더라도, 궁극적인 선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일시적인 불편함, 지나가는 우울함, 전쟁과 유혈사태, 가난과 악이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비관주의의 심연 속으로 이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어라키의 내면의 도움을 감지하고 아는 사람들은 인류의 심장이 건전하며 현재의 혼란으로부터 그리고 아마도 대체적으로 그 혼란으로부터 통일(unification)과 통합(synthesis)의 과업에 적합하고 그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날 것을 안다. 이 시기를 오컬트적으로 “추락으로 부서져왔던 것의 회복의 시대”라고 불러왔다. 분리된 부분들이 다시 결합하여 전체가 초기의 완전함 속에서 다시 함께 설 때가 되었다.
종교 그룹도 마찬가지로 많이 있어왔다---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열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서구의 영광인 카톨릭 신비가들 그룹이 있고, 반대하는 루터 그룹들, 캘빈파(Calvinist)와 감리교파(Methodist),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시큰둥하고 진실한 사람들---위그노파(Huguenot)와 모라비아파(Moravian) 그리고 근대 수 천 그룹들. 이 그룹들은 모두 그 목적을 다 했고 인간을 반란 지점까지 이끌어서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독특한 모범의 힘으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로 몰아갔다. 그들은 자유와 알 수 있는 개인적인 권리를 나타내었다.
이 나중 그룹들은 대체적으로 여섯 번째 광선과 두 번째 광선의 영향 하에서 활동하였다. 문화 그룹은 네 번째 광선의 영향 하에서 나타났고, 첫 번째 광선은 국가들 속에서 그런 변화들을 가져온 정치 활동들을 밀어붙였다. 다섯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광선의 충동 하에서, 과학적 탐구 그룹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한 생명을 구성하는 힘들과 에너지들을 가지고 일하며, 신의 겉옷을 다루면서 외부에서 내면으로 탐구해 들어가면서 모든 생명 형태들과 내재적 본질적인 관계와 모든 창조들과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인간에게 나타내 보여준다. 어느 그룹에 있건 개인들의 이름이 많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룹이자 상호 연결된 작업이다. 과학 그룹에서 근저에 있는 통일성이 특히 눈에 띈다는 것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 구성원들이 특히 당파주의와 이기적인 경쟁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종교 그룹과 정치 그룹에서는 이렇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국가들과 지구상에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진 이런 틀을 만드는 그룹들은 숫자가 몇 안 된다. 그 그룹들의 구성원과 인간의 표현이 성장하는 데 그것들이 기여한 것과 계획 속에서의 위치를 쉽게 추적할 수 있다. 강조하려는 점은 그들 모두 생명의 내적 주관적 측면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신성한 충동 하에 그리고 성취하려는 구체적인 일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들 모두는 초기 단계에는 낮은 단계의 제자들과 입문자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들 모두는 그들 혼에 의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주관적으로 안내 받았고, 그들의 혼들은 지자들의 하이어라키(Hierarchy of Knowers)와 의식적으로 협력하여왔다. 심지어 개인이 그 그룹과 그룹의 신성한 임무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개인이 성공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실패도 없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런 일꾼들의 표시는 그들은 후손을 위해서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따라왔던 사람들이 실패했고, 이런 작업에 반응했던 사람들이 그 이상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처참하게 사실이지만, 초기 그룹은 한결같이 성취하였다. 이것이 확실하게 비관주의를 없애서 주관적인 활동의 엄청난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 세 가지 그룹에 대하여 몇 마디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그들 작업은 신기하게도 다른 그룹들과 다르며, 세 번째 그룹(재무 그룹)의 구성원들이 주로 일곱 번째 광선, 의식적인 조직(ceremonial organization)의 광선에서 보게 되지만, 그들 대열은 모든 광선 그룹에서 모집되었다. 그들 출현의 순서는 철학자 그룹, 심리학자 그룹 그리고 사업가 그룹이다.
근대 철학자들 그룹이 이미 사고(thought)를 강력하게 형성시키고 있다. 반면에 아시아 철학자들의 고대 학파들이 서구 사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분석, 상관관계 그리고 통합을 통해서, 인간의 사고력이 계발되고 추상적 정신(abstract mind)이 구체적인 정신과 통합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작업을 통해서 본능, 지성 그리고 직관의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 인간의 흥미로운 민감성이 지성적인 조정 상태로 되었다. 본능은 인간을 동물계와 연결시키고, 지성은 동료 인간과 통합시키며, 반면에 직관은 신성의 생명을 드러낸다. 이 세 가지 모두 철학적 탐구의 주제이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의 주제가 실재에 대한 성질과 지식을 얻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가장 최근 그룹이 “인간이여, 그대 자신을 알라”라는 델파이 신전의 명령하에 일하는 심리학자들과 인간이 물질계에서 살 수 있는 수단의 관리인들인 재무가들(financiers)이다. 이 두 그룹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상이함과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 측면에서 어떤 다른 그룹들 보다 더 통합적이다. 전자는 인류, 다양한 유형의 인류, 도구 그리고 인간의 충동, 특이성, 그의 존재 목적---겉으로 보이건 숨겨졌건---과 관련 있다. 다른 그룹은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교류, 무역 그리고 교환의 모든 방식에 대한 독재권을 나타내면서 인간이 존재하는 수단들을 통제하고 명령한다. 그들은 근대 인간이 삶의 방식에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다양한 형태-대상들(form-objects)을 통제한다. 돈은 이전에 말했듯이 결정화된 에너지(crystallized energy) 혹은 활력(vitality)이다---동양 학생이 프라나 에너지(pranic energy)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에텔 힘이 결정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현화된 활력 에너지이고, 이런 에너지 형태가 재무 그룹의 안내 하에 있다. 그것들이 가장 최근 그룹들이고, 그들 작업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이어라키에 의해서 분명하게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미치는 영향들을 일으키고 있다.
16세기 비밀회의(conclave) 이후 수 세기가 지났기에, 이 외부 그룹들이 그 역할을 했고 가장 두드러진 봉사를 했다. 성취한 결과가 국제적으로 효과가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한 나라나 인종에 국한되지 않는 어떤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제 하이어라키가 주의 깊은 취급이 필요한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1500년 이후 그룹들의 작업이 만들어낸 서로 다른 사상의 힘의 추세와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에너지 줄기들을 모으고 합쳐야 한다. 그들은 또한 한층 더 분화(differentiation)로 향하려는 어떤 영향들을 이제 상쇄시켜야 한다. 힘이 물질계와 접촉하게 될 때 이것이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초기 원동력(impulses)은 그 속에 좋은 힘과 나쁜 힘을 다 가지고 있다. 그 형태가 계속 이차적인 의미를 갖고 상대적으로 경시할만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good)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그 표현이 아닌 그 사상(idea)이 통제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의 에너지가 물질과 접촉하고 더 낮은 정신들이 그 특정한 에너지 유형을 붙잡거나 그것에 의해서 활성화되면서, 악이 실재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이것이 이기심, 분리성, 자만 그리고 세계에서 너무 많은 해를 만든 그런 특징들로 나타나게 된다.
약 17년전에 대스승들이 만나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이전 비밀회의에서는 시작단계의 인류로부터 다양한 선을 따라서 있는 일꾼들 그룹을 모아서, 인류를 고양시키고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임무를 정하는 결정을 내렸듯이, 마찬가지로 이제 많은 그룹들로부터 모든 인종, 모든 유형 그리고 모든 성향을 가진 어떤 그룹을 모으는 것이 현명하다고 느껴졌다. 이 그룹은 구체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먼저 그것은 물질계에 하이어라키를 현현화 시키려는 시도이다. 혹은 그것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체가 작은 규모로 작용하는 복제판이다. 그 구성원들은 육체 속에 있지만 전적으로 주관적으로 일해야 하고 그래서 내면의 민감한 도구와 직관을 사용한다. 그것은 국가들과 다양한 나이를 가진 남녀들로 구성되지만, 개개인이 영적인 성향을 가져야 하고, 모두가 의식적인 봉사자여야 하며, 모두가 멘탈적으로 편향되어 정신이 초롱초롱하여야 하고, 모두가 포용적이어야 한다.
그룹 구성원들에게 부과된 본질적인 조건들 중에 하나는 그들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주관적인 수준에서 기꺼이 일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분들이 그런 것처럼 뒤에서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구성원들은 모든 야망의 오점과 인종 및 성취에 대한 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들은 또한 그들 동료와 그들의 생각 및 조건을 정하는 환경을 민감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종류가 어떤 것이든 외부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본사도 없으며, 평판이나 이름도 없는 그룹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혼과 그룹의 필요성에 따르는 그 말씀(WORD)에 순종하는 일단의 일꾼들이자 봉사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진정한 봉사자들은 그들 봉사 노선이 문화적, 정치적,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 심리적 혹은 재무적이건 모두 이 그룹에 속한다. 그들은 그들이 알건 모르건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들과 세계 신비가들의 내면의 그룹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그들이 세계 차원의 교류라는 스스럼없는 방식으로 접촉했을 때, 그들은 그들 동료 그룹 구성원들에 의해서 이렇게 인식될 것이다.
이 그룹은 “영적(spiritual)”이라는 단어에 넓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인류의 향상, 고양 그리고 이해를 향한 포괄적인 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을 믿는다; 그들은 그것에 관용, 국제적 통합적 영적 교감, 종교적 포용성 그리고 인간의 비의적인 계발과 관련된 모든 다른 사고의 추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종류의 성격이나 용어도 없는 그룹이다; 그것은 어떤 신조나 어떤 도그마적인 진리의 제시도 없다. 각자 그리고 모두의 원동력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마치 신이 동료 인간을 위하여 사랑으로 이끌듯이. 그들은 인종의 구분 없이 형제애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 그들의 삶은 이타심을 갖고 어떤 의구심 없이 제공한 철저한 자발적인 봉사의 삶이다.
그 그룹의 인원들은 인류의 맏형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이름을 기록하는 어떤 명부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세 가지 필요조건들만 있다:
1. 혼과 그 도구 사이에 어느 정도의 하나됨이 필수적이고,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잠재 상태로 있는 혼-정신-두뇌의 내면의 삼위일체가 정렬되어 활동해야 한다.
2. 두뇌가 두 가지 방향으로 그리고 자유자재로 텔레파시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뿐만 아니라 혼들의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3. 또한 추상적 혹은 통합적 사고 역량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인종적 종교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것이 실재할 때 생명의 지속성과 사후 삶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게 될 것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과거의 그룹은 진리의 어떤 측면을 지지하였고 어떤 광선의 특이성들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그룹에서는 모든 측면들을 표현할 것이고 모든 광선에 있는 사람들을 갖게 될 것이다. 많은 그룹들 속에 있는 대부분의 일꾼들은 계획의 어떤 세부사항들을 수행하여 왔고, 앞으로 나가는 인류의 충동에 그들에게 할당된 에너지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같은 소수의 걸출한 신비가들을 제외하면, 그들이 성취하는 것과 진실로 지성적인 작업으로 이끄는 육체-혼의 관계에 대한 어떤 진정한 이해 없이 그들 대부분이 이것을 실행하였다. 그들은 혼과의 어떤 접촉을 나타내는 천재성이 부가된 사람들의 그룹들이었다. 지금 형성되는 과정 속에 있는 그룹은 혼의 사실을 인식하고, 실재하고 지속하는 혼과의 교류를 세운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정신, 감정 그리고 육체 성질을 단순히 어떤 도구로 보고, 그것으로 인간의 접촉이 만들어지며 그들이 이해하는 그들의 작업을 혼의 지시 하에 이 도구를 매개로 진전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간헐적인 혼의 충동에 의해서 활성화된 개성이 아닌, 개성을 통해서 활동하는 살아 있는 혼들이다. 많은 그룹들의 구성원들은 어느 정도 한쪽으로 치우쳤고, 그들의 재능은 어떤 특정한 선을 따라서 흘러왔다. 그들은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고, 다빈치처럼 그릴 수 있으며, 베토벤처럼 음악의 대작을 만들거나, 나폴레옹처럼 세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을 나타냈다. 그러나 새로운 유형의 그룹의 일꾼은 원만한 사람으로 그의 손이 닿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계 보다 사고의 세계에서 일하려는 기본적인 충동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하이어라키에게 유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유연성과 경험 그리고 접촉의 안정성 모두가 그룹의 요구조건에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그룹 유형의 진정한 옹호자가 앞으로 수 십 년 동안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물병자리시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보편적인 감촉과 강렬한 민감성 그리고 고도로 조직화된 멘탈 도구, 주로 상위 영적 진동에 반응하는 아스트랄 도구, 강력하고 통제된 에너지체(energy body)와 건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면 신비가들을 통합하는 그룹과 관련하여 현재 상황은 어떤가? 어느 정도 분명하게 하고자 한다:
모든 유럽 국가, 미국 그리고 아시아와 남아프리카 일부에서, 진리를 생각하는 대체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떤 제자들이 발견된다. 이 구절에 집중하길 바란다. 이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일꾼들이자 위대한 분들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일상의 사고의 삶이 새로운 이상에 의해서 맞춰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런 사고의 삶이 분명한 외적인 활동들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고귀하고 비밀스러운 곳(high and secret place)”에 살고 그곳으로부터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향력이 조용하게 고요히 행사되고 그들은 그들의 개성이나 그들 자신의 견해와 생각들 혹은 일을 진전시키는 방법들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한계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제한 받지 않으며, 활기를 불어넣어서 형태로 만드는 것이 그들 사명인 비전의 그 측면을 충분하게 생각해서 객관적인 현현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교양 있고 폭넓게 독서한다. 왜냐하면 이런 어려운 과도기에 그들은 세계의 상태들에 대한 이해를 배양해야 하고 다른 나라들에서 무엇이 진행되지 않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국가와 정치적 제휴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종교적 분파주의, 국가적인 배타성 그리고 인종적 편견과 단절시킬 그런 여론을 서서히 그리고 꾸준하게 조직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 둘 여기 저기서 그들이 모이고 있고 과거의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인 이론의 제한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한 가지 그룹의 구성원들인 그들은 선의와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는 것이 운명인, 앞을 내다보는 이런 혼들로 그룹들을 조직하고 있다. 그룹 구성원들에 의해서 영향 받는 후자의 사람들은 아직은 수 백만 명 중에 몇 천명에 불과하고, 요즘 세계에서 일하는 4백명의 받아들여진 제자들 중에서 156명만이 그들 사고 활동에 의해서 서서히 형성하는 그룹의 일부분을 구성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었다. 이들이 언젠가 지배적인 힘이 되는 핵을 구성할 것이다. 사고하는 혼들의 강력한 주관적인 체의 비전을 본 여러분들이 필요한 말들을 말할 수 있고, 통합(integration) 작업을 촉진시켜서 이 그룹에 있는 단위들이 서로서로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줄 그런 개념들을 개략적으로 그릴 수 있다면, 다음 25년 동안 그들의 영향력이 정치적인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해질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여러분이 어디에 있건 이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의 기조와 메시지가 되도록 하라.
그러면 당면한 현재의 작업은 무엇인가? 최대한 개략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설명하겠다.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여러분들과 여러분이 새로운 그룹에서 일하는 제자들로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고하게 세우고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세계 다양한 나라들---스위스, 미국,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영국 등등---에 있는 그룹의 리더들 작업에 그대 자신이 익숙하도록 만들어라.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작업 유형의 비전에 대한 그들 반응으로부터 그대가 잠정적인 결정을 내려라. 그들이 하는 일에서 그들을 지켜보아라. 그들이 개성을 강조하는지 주목하여라. 만약 개인적인 야망이 그들 활동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만약 그들의 위치가 새로움 때문에 신비가 그룹에서 일하는 결정 요인 중에 하나라면, 혹은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위상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혹은 그것이 그들의 상상력을 돋구거나 그들 주위에 사람들을 모으는 여지를 제공한다면, 그러면 더 이상 진전시키지 마라. 그냥 침묵을 유지하면서 시간과 법칙이 그들의 태도를 고치도록 놓아두어라.
둘째, 그대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같은 음조로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여기서 그대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들 모두가 주관적으로 속한 그룹을 의미한다. 만약 그대가 확고하게 일하고 통일성의 음을 명확하게 소리 내어서 그대의 동기와 그대의 사심 없는 활동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그들은 올 것이다. 현재 핵을 구성하는 156명 중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대의 활동 영역에서는 아닐지라도 그대와 조화를 이루어 일할 것이다.
그대 눈 앞에 간직해야 할 그림은 많은 가능한 선들을 따라서 일하며 그들 심장에서 혹은 그들 뒤에서 혼의 접촉을 통해서 조용하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일하는 새롭게 출현하는 그룹의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구성원을 가진 그룹들의 거대한 네트워크 이다. 하이어라키가 이 초점들을 통해서 일하려고 하고 있고, 이 초점들은 텔레파시적으로 단결하며 그들은 외적으로 무간섭 태도를 항상 유지하면서 각자가 보기에 적합한 것을 자신의 그룹에 자유롭게 가르치도록 놓아두면서 완전한 이해 속에서 일해야 한다. 사용되는 용어들, 이용되는 방법들, 도달한 유형들, 가르치는 진리들, 나타난 삶의 규율은 일하는 제자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새시대 일군들로 구성된 이 그룹 구성원들은 어떤 일반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강요된 도그마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권위나 독트린을 강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개인적인 권위를 갖는 것에 흥미가 없고, 그것이 종교적이건 과학적이건 문화적이건 혹은 어떤 다른 형태의 강요된 진리이건, 전통적인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실재에 다가가는 방식들을 인식할 것이고 각자가 자유롭게 자기자신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과 협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규율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단위들이 독특한 활동 영역 속에서 어떻게 살고 일하고 명상하고 먹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어떤 한 사람 혹은 리더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그들은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 새로운 그룹 작업의 구성원들은 비의적으로 혼과 일하고 그들이 영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열망자들의 개성의 삶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기본적인 규칙이고 지금 형성하는 과정 속에 있는 세계 봉사자들 그룹에서 많은 훌륭한 열망자들을 추려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자기자신의 견해를 부과하려는 성향은 이해력이 부족한 것을 나타내고 그것은 많은 것을 배제할 것이다.
젊고 유망한 열망자들을 찾아서 새로운 이상들의 추세를 신중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들에게 모든 것, 사람과 환경 속에서 선과 신성을 찾도록 가르쳐야 한다. 폭넓은 비전을 계발시켜야 하고 넓은 시야를 알려서 열망자가 지금 우리가 있는 과도기를 지나갈 수 있도록 해서 그들이 중년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세계에서 힘의 기둥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고대의 규율로 좁히지 말고, 다이어트나 금욕, 때와 시기를 너무 강조하여 혼으로서 사는 경이로움과 새롭고 신성한 존재 예술로부터 그들의 관심이 흐트러지게 하지 말아라.
어떤 사람이 혼으로서 살아서 그의 개성 전체가 그 혼에게 복종하게 될 때, 이타적인 목적, 순수한 삶, 법칙에 대한 순응 그리고 영적인 삶의 진정한 모범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예를 들면, 음식은 종종 기후 형편과 맛의 문제이고, 육체가 인종을 위해서 봉사하게 해주는 그런 음식이 가장 바람직하다. 신성한 신의 자식은 결혼 상태에서 혹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확실히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조잡한 만족을 위해서 그 육체의 힘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고착된 관습에 반하여 불쾌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 세계가 최고로 그리고 가장 좋다고 정한 기준을 저하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들이 혼동되어 왔고 행위자의 삶이 아닌 육체적인 행위들이 너무 자주 강조되어 왔다. 관심이 혼으로 고정될 때, 물질계 삶이 올바르게 다루어질 것이다. 영적 존재 속에서 그 사람이 성장하는 데 고기를 먹는 것보다 자기 만족 상태나 비판적인 태도가 더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젊은 열망자에게 삶의 행동의 두 가지 규칙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가 건설적인 활동에 집중하고 삶의 오래된 질서를 끌어내리는 것을 자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가 미래를 위해서 세우고 새로운 선들을 따라서 사고하도록 설정되어야 한다. 그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공격하는 데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대신에 영광이 현현될 수 있도록 주(Lord)의 새로운 사원을 창조하는 데 그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관심이 점진적으로 새롭고 아름다운 것에 집중될 것이고, 오랫동안 자리 잡은 창조물들이 관심부족으로 쇠하여 약해질 것이며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당파는 영적 발전의 표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에 반대하는(anti) 혹은 그것을 옹호하는(pro)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용어들은 자동적으로 혐오와 공격을 낳을 것이고, 변화에 저항하는 노력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수세적인 상태에 놓을 것이다. 모든 부류의 인간은 형제들 그룹이다. 카톨릭교도, 유대인, 비유대인, 서양인 그리고 동양인 모두가 신의 아들들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세계 그룹의 미래와 관련하여, 많은 것들이 두 가지에 달려있다:
첫째,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하는 고립된 제자들이 서로 알고 그래서 텔레파시적인 공명으로 들어갈 필요하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놀랍고 비현실적인 비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확언한다. 이런 감응을 세우는 작업이 느릴 수 있지만, 그것은 세계의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혼들의 민감성이 점점 더 증가하는 것의 불가피한 효과이다. 그것의 첫 번째 조짐은 세계 상호교류 방식 속에서 그들이 서로 만나서 접촉하는 이 그룹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즉각적인 빛의 번뜩임, 즉각적인 전기적 상호작용, 비전과 목적의 유사성에 대한 갑작스러운 감지 혹은 모두가 관심 있는 작업에서 서로 돕고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그들에게 올 것이다.
모든 곳에서 일하는 제자들은 그들이 서로 만날 때 그들 작업이 동일하고, 협력과 보조적인 노력이 가능한 곳에서 서로 조언을 준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될 것이다. 약 30년이 지나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 그룹에 있는 단위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긴밀해져서 정해진 시간과 비밀 장소에서 그들이 매일 만나게 될 것이다. 혼-마인드-두뇌의 삼위일체가 개인 속에서 정렬되고 그것 각각이 그룹의 구성원들과 동시에 접촉할 수 있게 될 때만,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 신비가들 그룹의 모든 혼들이 합심하여 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혼과 마인드가 긴밀하게 자리잡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이렇게 정렬되고 연결된 삼각형의 가장 낮은 측면인 육체 두뇌가 새로운 시대의 문명의 토대를 세우는 데 이렇게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의 더 높은 측면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힘의 파장들에 전혀 반응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체적으로 두뇌 매커니즘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그것이 혼의 인상들, 그룹의 목적들과 인식들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수반된다:
1. 동양 학생이 아즈나(ajna) 센터라고 부르는 미간 사이 센터를 의식적으로 활동하도록 일깨우는 것
2. 그리고 이 센터의 활동을 머리 센터의 활동에 복종시켜서 두 센터가 조화를 이루어 진동하게 만든다. 이것은 세 가지를 확립하게 만든다:
1) 혼-마인드-두뇌 사이의 직접적이며 의식적인 정렬
2) 두 가지 머리 센터들을 아우르고 송과선과 뇌하수체에 분명하게 영향을 주는 자기장의 출현
3) 이 이중 활동을 하는 장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 내면의 찬란한 태양, 머리 속에 있는 빛 혹은 혼의 의지, 목적 측면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 센터로.
3. 그가 다음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의 계발:
1) 어느 방향을 선택하건 마인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 그것을 외적인 현상계로 돌리거나 내적인 영적 존재계로 돌리거나.
2) 육체 두뇌 속에서 상응하는 반응을 의식적으로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그것이 물질계와 감정계에서 오는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된다.
3) 의식 활동의 이런 모든 영역들 사이에 지성적으로 분별하는 것.
결국에 이것은 모두 새로운 심리학적 접근방법으로 커버될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서 나올 것이고, 기계주의 학파, 내성주의 학파 그리고 한층 더 순수한 동양의 입장과 곧 나타날 것이지만 이름을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 작은 두 가지 새로운 학파들의 결론의 어떤 혼합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배아 단계에 있다. 어느 한 학파는 개인의 에너지 측면들과 그가 담가져 있는 우주 에너지에 대한 그의 반응을 다룬다; 다른 학파는 인간을 전기 단위로 여길 것이다. 둘 다 한쪽만 보는 것이고 다양한 학파들의 기여가 언젠가는 통합되어 하나의 통합된 제시로 나타날 것이다.
이 그룹 속에서 일하는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두 번째 필요조건은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의 기억을 꾸준하게 순차적으로 간직할 수 역량이다. 그것을 의식의 연속성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24시간 전체 동안 그의 존재 모든 영역과 모든 부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온전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먼 일이다. 잠자는 시간 동안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없다. 관련된 꿈의 삶은 한층 더 하위 심령적 경험들 같은 환영들로 가득 차 있다. 심리학 관점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는 꿈에 대한 흥미와 그것들의 근원에 대한 조사가 인식(의식)을 과학적인 토대 위에 세우는 미약한 첫 번째 시도들이다. 아직은 그런 시간 동안, 예를 들면 감정체가 무대 중심에 있을 때, 멘탈 활동에 대한 의식적인 기록이 없다. 감정적인 긴 혼란 시기에 마인드는 무엇에 몰두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 자신의 삶과 법칙들을 가지고 있다. 개성이 자기자신의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고 있을 때 혼의 활동들은 무엇인가? 의식의 발전으로 인간의 성질의 모든 부문들 속에 있는 의식적(sentient) 반응과 두뇌가 그것 모두를 기록하는 그런 단계에 도달하는 때를 그려보는 것이 불가능할까? 이미 사람들은 물질계 활동과 감정계의 생생함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보통의 상태이다. 두 가지 활동들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면, 왜 세 가지 혹은 네 가지를 기록할 수 없다고 보는가? 그것이 인종의 미래이고,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제자들이 이런 확장된 의식을 드러내고 표현할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렇게 텔레파시 상호작용과 확장된 의식(sentiency)을 계발시켜야 하고 또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렇게 제자 개개인의 목전에 있는 미래 발전을 지적하였다. 그룹을 위한 당면한 미래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먼저, 대중 의식 속으로 나타나서 그것이 실재하는 것을 느끼는 예비 기간. 이것은 새로운 이상에 대한 꾸준한 소통과 모든 인류의 본질적인 하나됨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여기 저기서 한 두 명이 내는 음(note)의 균일성(uniformity)과 포괄성의 결과가 될 것이다. 이 단계 동안에는 어떤 종류라도 서두르지 말고 느닷없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그룹과 그룹의 생각들의 성장이 천천히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룹은 이미 존재한다. 그룹이 구성되어 조직화되지 않아야 하며, 그래서 여러분 누구도 어떤 책임을 맡거나 주관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택한 이런 제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만드는 어떤 활동을 조직화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맏형들(Elder Brothers)이 승인한 방법들이 아니고, 그분들이 일하는 방식도 아니다.
여러분 각자 스스로 새로운 입장을, 작업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그리고 주관적인 방법을 지지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아라.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조직을 만들어 활성화시키고, 그런 과거 작업 방식에 따라오는 모든 기구를 만드는 과거의 대중적인 야심 있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지, 여러분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여라. 여전히 그런 그룹들이 엄청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직 새로운 시대가 아니고 어린 사람들(little ones)이 새로운 힘들에 노출되도록 놓아두어선 안되며, 그들이 자연스럽게 속하는 유아원을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새로운 작업 방식이 여러분에게 호소력을 갖는다면, 반드시 개성이 종속되도록 하고, 명상의 삶을 가장 중요하게 유지하며, 주관 영역에 대한 민감성을 함양하고, 필요한 외적 활동들을 내부에서 외부로 다루도록 주의하라. 진정한 오컬트 명상의 삶은 필연적으로 외적인 사건들을 만들 것이고, 이런 객관적인 결과들은 외적 활동이 아닌 내적인 성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순전히 신비적인 자기성찰(introspection) 혹은 그 정반대인 지나치게 강조된 조직화 정신을 피하라. 고대의 성전에서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가르친다:
“태양이 봉사하는 사람의 대저택 속으로 나아갈 때, 생명의 길(way of life)이 작업의 길(way of work)을 대체한다. 그러면 생명의 나무가 자라나서 그 가지들이 모든 인간의 아들들에게 쉴 곳을 제공한다. 사원의 건설과 돌을 나르는 것이 멈춘다. 자라는 나무들이 보인다; 건물들이 사라진다. 태양이 정해진 장소로 지나가게 하고, 요즘 시대와 세대에 자라나는 뿌리를 돌보도록 하라.”
소그룹들이 여기 저기서 생겨날 것이다. 그 그룹 구성원들이 새로운 음(note)에 반응할 것이고 세계 그룹으로의 성장이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제자들에 의해서 보호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룹들을 조직하지 않는다; 여기 저기 있는 사람이 새로운 비전에 깨어나면서 혹은 그 작업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맡아서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기 위해서 화신함에 따라서 그들은 성장할 것이다. 이 그룹들은 어떤 분리감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룹의 야망 혹은 개인의 야망을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존재하는 만물과의 통일성을 인식할 것이고 일반적인 목적과 미(美) 그리고 포괄성(inclusiveness)에 의한 창조적인 활동, 건설적인 건축, 순수한 삶의 모범으로서 세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아마도 통합 초기 단계에는 친근감(friendliness)과 협동심(cooperativeness)이 그들을 가장 잘 묘사할 것이다. 그들은 도그마나 독트린에 관심이 없고 케케묵은 원칙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판적인 정신에서 자유로운 개인과 그룹이 될 것이다. 이런 무비판 정신(non-criticism)은 실수를 보지 못하는 무능이나 어떤 사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패에서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거짓, 불순함 그리고 약점이 있는 그대로 인식할 것이나, 주목할 때 그것들은 사랑하는 유익함을 환기시키는 역할만 할 것이다.
서서히 이런 그룹들이 서로 알게 되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려는 욕망이나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다는 생각 없이 이런 상호 컨퍼런스에 올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위를 올리려는 어떤 야망도 없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세계 그룹의 구성원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은 교리 성질의 가르침이 없고 학식을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를 돕는 방식과 다양한 방법 하에서 제시되어 많은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진리로 구성된 그리고 보편적인 플랫폼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만 만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용어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실재와 상징에 접근하는 상대방의 접근방법과 익숙해 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서서히 개별 그룹의 특별한 기여와 음(note)이 인식될 것이고 세계 어느 부분에서든 그 특별한 접근방법과 특정한 음 혹은 해석 방법의 필요성이 있는 곳에, 그 곳에서 그 특별한 그룹이 할 수 있는 작업을 용이하게 하려는 즉각적이고 단합된 충동이 있게 될 것이다.
이 그룹들 뒤에는 의식적이고 살아 있는 혼들로 구성된 하나의 주관적 그룹이 있다. 이 그룹들은 세계 봉사와 세계 공익으로 너무 바빠서 본질적이지 않은 사소한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만날 때 그룹 이름이나 휘장, 배지 그리고 협회의 기술적인 것들을 가지고 놀 시간이 없을 것이다. 세계의 요구와 기회들 그리고 인류의 의식의 빠른 발전과 인류를 영적 실재 속으로 입문시키는 것이 그들의 관심을 몰두하게 만들어서 그들은 전적으로 물질계 처리 방식에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고,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성장을 강조하는 데도 흥미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봉사 속에 있는 세계 요구에 대한 반응과 집중된 명상의 삶이 그들의 성장을 촉진시킬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은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 자신의 훌륭한 성격이나, 그들 개인의 성취에 있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그들 사이의 텔레파시 관계와 단합된 컨퍼런스 결과로, 세계 봉사를 위하여 그들을 더 빨리 준비시킬 수 있도록 계발을 위한 어떤 비전 그룹들과 학파들이 출현할 것이다. 이런 학파들에서 명상 방식, 진동의 강화 그리고 우주의 법칙들에 대하여 가르칠 것이고, 색깔과 소리의 올바른 사용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봉사와 인류의 향상이라는 생각에 종속될 것이다. [오컬트 명상에 대한 편지들(Letters on Occult Meditation)]에서 언급된 학파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 신비가들 그룹의 통합과 그것의 융합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내가 미래에 대하여 더 분명한 말로 예측해서 흥미로운 성질의 어떤 그림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계 통합(unity), 진정한 의미에서 형제애, 텔레파시 상호작용의 성장, 인간의 생각들을 분리시키고 물질계에서 분리성을 초래하는 비본질적인 것들의 제거, 영원한 지혜(Ageless Wisdom)의 근본적인 것들을 진실로 강조하는 것, 진정한 이해의 현현, 혼과의 하나됨을 가져오는 것, 세계 구세주들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 --- 이것이 해야 할 당면한 일이고, 그대의 관심을 이것에 몰두해야 한다.
오직 이것만이 여러분이 주어야 하는 모든 것---사랑과 생명, 시간과 돈---의 사용을 정당하게 만든다.
오직 이것만이 그대의 존재를 정당화시키고 비전에 반응하는 그대들로부터 드물지만 그 영향에서 광범위한 그 순수한 자기 희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계 구원 작업이 진전될 수 있도록 생명의 주(Lord of Life) 발 아래에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자신의 삶에서 방해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 주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까지 가진 모든 것을 주는 것, 항상 자신에게---내가 더 적절하게 도울 수 있기 위하여 무엇을 줄 수 있을까?---이것을 물어보면서 순응(surrender)에 근거하여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그것과 그것 이상이 필요와 기회에 반응하고 부름을 듣는 그대들 모두 앞에 놓여 있다.
그대들에게 이것을 말하겠다---이런 그룹이 구성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라자 요가와 바크티 요가 학파들의 요가를 점진적으로 대체할 그 나름대로의 “요가”와 수련 학파를 발전시킬 것이다. 그 수련 방법은 마인드를 수련시키고 감정을 통제하는 것을 배운 사람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열쇠가 주어질 것이다. 그 수련 방식이 목표로 가는 쉬운 지름길이 아니다. 지성적인 사람들만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고 개성이 조정된 사람들만이 그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요가의 기조는 통합(synthesis)이 될 것이다: 그 목적은 직관 기능을 의식적으로 계발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계발이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질 것이다: 첫째, 직관과 영적 지각의 계발, 둘째, 해석하는 대리인으로서 마인드를 숙달하게 사용하는 것.
[아그니 요가(Agni Yoga)]에서 주어질 가르침의 어느 정도가 여과되어 들어왔지만 그것은 의지 측면의 시각에서만 주어졌다. 어떤 형태건 “통합의 요가(yoga of synthesis)”를 제시하는 어떤 책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헌신을 통한 합일 혹은 “바크티 요가”를 가졌다. 마인드를 통한 합일인 라자 요가가 이제 강조를 받고 있다. 통합을 통한 합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쓸데없는 반복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체와의 동일시를 통한 합일이다. 비전을 통한 혹은 깨달음(realization)을 통한 합일이 아니다. 이 차이를 잘 구분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개성들을 위한 다음 단계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주로 헌신의 요가에 대한 열쇠를 준다. 파탄잘리는 마인드의 요가에 대하여 가르친다. 복음서 이야기에서는 깨달음에 대한 묘사가 있지만 동일시(identification)의 비밀 혹은 열쇠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비가들과 지자들로 구성된 통합하는 그룹에 있는 소수의 보호 속에 있고 그들 개인의 경험의 용광로 속에서 현현되어 세상에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 그룹이 힘과 지식 그리고 직관적인 지각에서 성장해야 한다.
그대는 물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그룹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 무엇일까? 네 가지가 그런 관계를 막고 있다고 강조하여 말하겠다.
첫째: 조정되지 않은(uncoordinated) 개성. 이것은 필연적으로 수련되지 않은 정신과 미약한 지성이 관련된다.
둘째: 분리감, 차이감(distinction)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다르거나 떨어져 있다는 느낌.
셋째: 어떤 신조(creed)의 소유. 어떤 믿음에 대한 공식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만든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을 차단한다.
넷째: 오만과 야망.
여러분이 다시 물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격을 갖출 것인가? 규칙들은 간단하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무해함을 실천하는 것을 배워라; 둘째, 분리된 자아를 위해서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셋째, 모든 것 속에서 신성의 표시를 찾아라. 세 가지 간단한 규칙들이지만, 성취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들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식의 모든 부문에 있는 사고자들---사고자(thinkers)라는 말을 반복한다---을 포함하는 이 신비가들 그룹 뒤에는 대스승들의 하이어라키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그룹 사이에는 한 그룹의 스승들이 있으며 내가 그 중에 한 명이다. 이들은 에너지의 전달자이자 중개자로서 행동한다.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이 그룹이 지성적이고 사고하는 인간의 모든 그룹에서 모이고 있다는 것을 반복하며 주의할 것을 요청한다. 아직 그리고 몇몇 사람을 놀라게 하겠지만, 그들 주위에는 오컬티스트들이 많이 없다. 이것은 오컬티스트들이 인류 대중들과 관련해서 숫자적으로 소수라는 사실 때문이고, 인류의 성향이 교파적이고 배타적이며 독선적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일꾼들이 있다;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학자들 그리고 세계의 실험실들 속에 과학자들도 있다. 세계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과 종교 지지자들도 거기 있고 실천적인 신비가들과 소수의 오컬티스트들이 있다. 진정한 오컬티스트는 드물다.
그들은 존재하고 철저하게 주관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그 구성원들은 텔레파시적으로 연결되거나 그들이 외부 세계에서 하는 일의 특질과 그들이 소리 내는 음의 포괄성을 통해서 서로 서로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분들과 그 구성원들의 혼에 의해서 위로부터 영감을 받을 것이고, 인류 자체의 필요에 의해서 활동하도록 활기가 불어넣어질 것이다. 그것은 조정된 개성을 통해서 일하는 살아 있는 의식적 혼들로 구성된다. 그 상징은 맨 꼭대기에 다이아몬드를 가진 삼각형이 균등한 길이의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황금 삼각형이다. 이 상징은 결코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그룹 구성원을 제외하고 (심지어 투시가도) 어느 누구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작업 목적을 위해서 그에 대한 인식의 자극이 필요할 때만 그렇다. 이 그룹의 모토는 “한 분의 영광(The Glory Of The one)”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말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진행되고 있는 작업의 실재에 대한 어떤 생각을 여러분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이타적인 봉사를 위하여 그들 자신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력을 하게 만드는 어떤 동기부여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요 에너지의 두 가지 유형에 대하여 검토를 매우 간략하게 시작할 것이다. 그것들 자체가 조정하는 에너지로 구성되고 혼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가 너무 고급 성질이어서 열망자가 그것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쓸모없다.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쓰여진다면 많은 분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어떤 넓은 일반적인 사항들을 개략적으로 그리고 어떤 흥미로운 사실들을 나타내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이 에너지에 대하여 너무 면밀히 공부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행성 영 혹은 행성 로고스와 행성의 실체(Entity)가 이 에너지들의 충동에 가장 강력하게 반응하는 두 가지 형태로 왕성한 현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응하지만 무의식적으로만 그렇다. 왜냐하면 (인간의 형태 성질 속에서) 그가 생성 표현의 일부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행성 영은 엄청 오랜 세월 이전에 우리가 인간 상태라고 부르는 의식 상태를 지나가서 그것을 아주 멀리 뒤에 남겨놓은 어떤 거대한 존재이다. (용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단순하게 대명사를 사용하면) 그(He)는 전적으로 태양계 밖에 놓여 있는 어떤 기원을 갖고 있다; 그의 생명은 행성 속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의식은 우리 행성 하이어라키의 최고의 초인들의 개념을 넘어서는 영역 속에 있다. 행성의 실체(Entity)는 행성 영이 현현하고 그래서 행성의 물질, 아스트랄 그리고 멘탈 엘리멘탈의 통합인 그 형태를 구성하는 형태들의 총합이다. 우리의 검토 목적을 위해서, 이 실체는 모든 물질, 활기, 아스트랄 그리고 멘탈 형태들의 총합으로 섞이고 융합될 때 우리 행성을 구성한다. 각각은 에너지의 구현이고, 우리 행성 존재의 의식 측면과 행성을 만드는 이 두 가지 주요 흐름이 인간에게 충격을 만든다. 행성 영의 생명이 혼을 통해서 그 충격을 준다; 행성 실체의 생명이 개성 매커니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 에너지들의 특질은 주로 아스트랄-붓디이고, 현재 거대한 주기 속에서 인류에 영향을 주는 충동들의 전반적인 추세와 생명력의 성향은 행성 로고스의 직관 성질이라는 인력 에너지이며, 아스트랄체의 강력한 힘이다. 다른 말로 하면, 행성 로고스의 욕망 성질을 구현하는 아스트랄 엘리멘탈이 엄청나게 강력하고, 특히 현재 주기에 그렇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하나(the one in Who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의 영적 직관적 성질의 강력함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여러분은 욕망의 충족에 따르는 범죄와 섹스 그리고 쾌락을 격렬하게 추구하는 파괴적인 표현을 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 문명을 특징짓고 지금 최고조에 있다; 거의 감지할 수 없지만, 그것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입문의 문이 열려 있다. 현재 둘 다 동시에 보게 되지만, 전자가 약해지고 있고, 후자를 향한 추세가 자라고 있다. 이렇게 출구를 볼 수 있다.
위 단락에서 현재 진화 속에 있는 지배적인 행성의 충동들이 요약되었고 그것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주목하였다.
태양 에너지도 두 가지 영향을 준다. 첫째, 물질 태양에서 발산하는 태양력의 충동의 결과인 프라나 영향(pranic effect)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객관적 형태들 위에 분명한 결과를 만들고, 이것을 물질 혹은 활기(vital)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비장을 통해서 그리고 견각골(shoulder blade) 사이에 있는 센터를 거쳐서 인간 육체 속으로 들어온다; 이 센터는 척추 속에서 목 센터와 심장 센터 사이에 있지만, 목 센터 보다는 심장 센터에 더 가까이 있다. 둘째, 소위 비전적으로 “태양의 심장(the heart of the sun)”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있다; 이것은 일곱 가지 거대한 흐름 속에 있는 행성들 중에 어느 하나를 휩쓸고 지나가서 인간의 혼 속으로 쏟아 부으며 우리가 인식(awareness)이라고 부르는 그 민감성(sensitivity)를 만들어낸다. 이 일곱 가지 에너지 유형들이 일곱 가지 유형의 혼들 혹은 광선들을 만들고, 바로 이 생각 속에서 여러분은 혼의 통일성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현현하는 동안, 공간의 물질에 작용하는 일곱 가지 유형의 에너지 충격 때문에, 일곱 가지 유형의 혼들, 일곱 가지 표현 영역 그리고 일곱 가지 등급의 의식과 광선의 특이성들을 보게 된다. 이런 분화들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태양 광선을 받을 때 프리즘이 취하는 색깔이나 맑은 연못 위에 반사된 것 속에서 보이는 패턴 무늬와 비슷하다.
점성학과 에너지(Astrology and the Energies)
이 두 가지 에너지에다 세 번째 그룹의 에너지를 추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부분의 점성학 연구의 바탕이 된다. 그들은 우리 태양의 황도대를 구성하는 열 두 개 성좌에서 발산하여 나온다. 그들 영향은 무한하고 이 세 가지 그룹의 에너지들의 변형이 우리가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복잡성을 만든다. 인간 유기체에 영향을 주는 에너지들의 실재에 대한 점성가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은 근거가 없다. 행성의 최고의 지성에 의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초인들은 주로 직관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이런 에너지들은 자연의 모든 왕국에 있는 모든 형태 위에 물러나는 혹은 자극하는 힘으로서 작용하면서 그 표시를 남긴다. 그것들은 어떤 한 가지 유형의 에너지가 어떤 형태의 특질이 더 충분하게 표현되도록 가져가거나 다른 유형이 발달된 현현으로 나타나는 것을 제지한다.
여기서 진정한 점성학의 성질을 서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점성학이 하나의 과학이고, 앞으로 다가올 과학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 측면에서 그리고 진정한 탐구에서 점성학은 인간이 결국에는 그의 이해력을 집중하고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도 똑같이 사실이다. 점성학이 때가 되면 올 것이라는 계시 속에 혼과 형태 사이의 진정한 조정의 비밀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도 또한 맞다. 그러나 그런 점성학이 아직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간과되고 많은 사람들이 점성학이 정확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정확한 과학을 만들기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 주장은 미래 언젠가 실현될 것이지만, 때가 아직 아니다.
하지만 점성학자들이 명심해야 할 어떤 요인들과 그들이 망각하기 쉬운 어떤 조건들을 간략하게 주의할 수 있다.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이 분야를 탐구하는 탐구자가 신중하게 공부해야 할 많은 진술들을 간략하게 표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서 점성학이 다루고 있는 에너지들에 대한 논문을 쓸 수가 없다.
점성가들은 주로 세 가지 유형의 에너지를 다룬다:
1. 탄생 시기에 태양이 위치한 성좌의 에너지.
2. 그 사람이 반응하는 떠오르는 별자리.
3. 그의 형태 측면, 그리고 특히 육체 형태를 지배하는 달.
사람이 태어난 특정한 성좌 혹은 별자리의 에너지가 제시되어 왔던 것보다 더 심오하게 중요하다. 그것은 그의 현재 문제를 나타내거나 구체화하고, 그의 삶의 완급을 정하며 그의 개성의 특질과 관련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환생 동안 그의 삶의 활동 측면을 지배한다.
그가 어떤 화신의 목적을 수행하려고 한다면, 상승궁(ascendant sign)은 그의 에너지가 전체적으로 흐르게 될 선을 나타낸다. 물론 올바르게 다루어진다면 이렇다. 그것은 그의 미래에 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상징과 이해 속에서 그의 삶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와 그가 무엇이 될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표시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에게 그가 성공할 수 있게 해줄 힘의 유형을 보여준다. 적절하게 완성될 때, 이것이 그의 삶의 조화 측면 혹은 삿트바 측면을 만드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역할을 하고 사용될 때, 그것은 어느 특정한 화신 동안 혼의 의지와 조화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달의 영향 속에서 우리는 탄생인의 과거를 나타냈다. 그것은 그가 처한 한계들과 장애들을 요약하고, 그래서 물질의 타마스 측면을 구체화하는 것 혹은 “방해하는”그리고---과도하게 영향을 주도록 놓아둔다면---관성(inertia)을 만드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가 갖춘 체 속에 과거 경험의 비밀이 숨겨져 있고, 우리가 달의 형태를 통해서 충분한 표현에 도달해야 하며 그 모든 달의 형태는 그 자체로 모든 과거의 산물이자 총합이다. 이 미묘한 과학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점성학에 대한 진리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자.
탄생월은 기회의 날을 나타낸다. 문이 활짝 열린다. 어떤 혼이 화신 속으로 들어온 특정한 월은 이전 삶의 주기에서 화신으로부터 나간 월을 그 혼에게 나타내준다. 예를 들면, 만약 사자자리(Leo)가 지배했던 월에 그가 죽었다면, 그가 떠났던 경험의 실을 주우면서 지구의 삶에서 떠나갈 때 가지고 있던 같은 유형의 에너지와 특정한 도구 그리고 사고와 의식적 방관(onlooking)의 획득을 갖고 시작하면서, 같은 별자리 속으로 돌아와서 시작할 것이다. 사는 동안 조작할 힘들의 성질과 에너지 특질이 이런 식으로 그 혼에게 나타내준다.
또 다른 유형의 에너지를 구체화하는 상승궁은 화신 동안 그 힘이 커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신한 신의 자식이 어떤 특징들을 가진 특정한 개성의 매개체를 통해서 사용하려는 혼의 힘의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달의 영향은 주로 물질적이다. 혼의 감옥이 이렇게 나타내어진다. 충족되어야 하는 장애들이 이렇게 확보된다; 탄생 별자리의 힘과 그를 목표로 데려다 줄 에너지 특질이 지나가는 체 혹은 체들의 유형이 이렇게 규정된다. 달의 주(lunar lords)들의 매개체와 많은 세월에 걸쳐서 과거 경험의 결과로 그것들이 그에게 준 것을 통해서 그는 자신을 물질계에서 표현해야 한다.
분점의 세차 때문에, 네 번째 유형의 힘을 느끼는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 더 거대한 황도대와 관련해서, 사실 태양은 거대한 하늘 둘레 속에서 그것이 있다고 말하는 곳으로부터 많이 떨어져있다. 물론 이것은 시간의 관점에서 그렇다. 태양이 성좌을 지나가는 범위는 약 2200년을 커버하기 때문에, 수 세기가 지나면서 이동이 매우 작다. 너무 경미해서 행성의 별점을 볼 때 차이가 거의 없다. 태양계 별점을 볼 때, 그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행성의 가장 현명한 점성가의 역량을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이기에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특정한 월에 태어난 인간의 별점을 볼 때, 이제는 월과 별자리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8월에 태양은 사실 사자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차트의 올바른 해석은 주로 사이코메트리와 관련 있고 수 많은 세월 동안 점성가들이 세워온 성좌에 대한 상념태에 달려 있다. 에너지는 생각을 따른다. 수 천년 동안 어떤 유형의 에너지와 그 결과 형태와 질료에 특질을 주는 그것의 영향이 이렇다고 간주되어 왔고 그리고 그것이 맞다. 그러므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존재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신의 별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그래서 더 이상 그것들의 지배와 규칙 하에 있지 않게 될 진정한 열망자, 고도로 진화한 사람들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들은 맞다.
지금 점성학은 개성의 별점을 치고 개성의 삶의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명상과 봉사 그리고 달의 체들(lunar bodies)의 수련을 통하여, 그가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자신의 혼의 광선(soul ray) 영향 하에 오게 될 때, 그러면 그는 분명히 일곱 태양계들 중에 어느 하나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일곱 태양계가 성좌들 중에 어느 하나를 통해서 그들 에너지를 집중하고 다음으로 신성한 일곱 행성들 중에 어느 하나를 통해서 집중하게 된다. 결국에는 열 두 개 성좌에 상응하는 열 두 개의 신성한 행성들이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 우리 태양계는 알고 있듯이, 일곱 태양계들 중에 하나이다. 인간이 진화 상의 이 지점에 도달했을 때, 탄생 월, 현세의 점성학 그리고 형태 측면에 작용하는 영향력들이 점점 더 덜 중요해진다. 이 태양계들의 그룹은 혼에게 최고로 영향을 주고 그것은 영적 에너지들의 집중점이 된다. 이것이 자신의 계에 있는 혼의 문제, 즉 이런 유형의 에너지에 대한 반응성의 문제이고, 그것들에 대하여 개성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 분류에 들어가는 별자리들은 주로 횡격막 아래에서 살고, 하위 네 가지 센터들을 사용하는 사람과 관련 있다: 척추기저 센터, 천골 센터, 태양신경총 그리고 비장. 일곱 가지 주요 태양계 에너지로 이루어진 내면의 그룹은 횡격막 위에서 살고 있고, 머리 속에 있는 일곱 대표 센터들을 통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그 영향을 준다. 그것들 중에 네 가지가 목 센터, 심장 센터, 아즈나 그리고 머리 센터를 통해서 집중한다. 세 가지 센터는 머리 센터(천 개 잎을 가진 연꽃) 영역 속에 잠재하고 있으며 세 번째 입문 후에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12궁도 관점에서 순전히 인간도 아니고 순전히 영적이지도 않은 사람의 경우 두 가지 유형의 성좌 에너지가 만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분명해질 것이다. 보통의 별점이 거부된다. 별점을 묘사하는 것이 아직은 가능하지 않다. 기본적이고 거의 오류가 없는 유일한 점성은 철저하게 낮은 등급의 인간, 전적으로 횡격막 아래에서 살고 동물 성질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사람의 점성이다.
점성가들은 끌어당김과 이동을 만들고 에너지 흐름을 우리 지구에 집중해서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드는 발견되지 않은 몇 개의 행성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명심해야 한다. 명왕성이 그것들 중에 하나이고, 이제 현현으로 나타나서(아니 인식되어서) 모든 설명되지 않은 조건들을 그것으로 돌릴 것이다. 명왕성이 앞으로 다가올 오랜 기간 동안 잘못된 점성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런 차트가 작동하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명왕성은 그 속에서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는 명왕성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명왕성은 항상 우리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고 그 영향을 만들어내고 있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된 생각들과 감정들의 죽음 혹은 중단을 지배하고, 그래서 그 영향이 주로 뇌에 있고 그것을 최근에 발견했다는 데 실마리가 있다. 인류가 이제 막 멘탈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 영향을 먼저 멘탈체 속에서 느끼게 된다. 행성들의 이름이 제멋대로 선택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행성들은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
점성가들은 결국에는 세 개 별점 혹은 세 개 차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순전히 육체 성질을 다루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로 감정 성질을 다루며, 개성의 특질과 그 민감성 혹은 의식 상태를 다룬다; 세 번째는 멘탈 충동과 상태들의 차트가 될 것이다. 이 세 개 차트들이 어떤 기하학적인 선을 그릴 것이고, 에너지들의 선이 패턴들을 형성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세 개 차트를 겹쳐 놓으면 개성의 대한 도표, 개인의 삶의 패턴을 줄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놀라운 상징적인 차트들과 선의 형태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개인의 기하학(geometry of the individual)”이 이것에서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개별 선이 다른 선과 관련하여 기능할 것이고, 생명 에너지의 추세가 명확하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심지어 이 지식 부분에서도, “별이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심리학 분야를 구성할 것이고 그것의 진정한 옹호자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미래 점성학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뿐이다.
요즘 시기의 점성가들이 할 필요가 있는 한 가지는 물고기 자리에서 나와서 물병자리로 들어가는 과도기를 마땅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과도기에 따르는 엄청난 혼란이 개인의 차트에 영향을 주고, 종종 개인의 운명 혹은 카르마를 상쇄시킨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행성의 운명과 인종의 운명 속에 깊이 담가져 있고, 그들 자신의 작은 일들이 거의 전적으로 상쇄되거나 종종 완전히 무효화된다. 행성의 별점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그것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네 번째 왕국인 인류의 별점을 결국에는 파악할 것이지만, 입문자들이 그것을 할 것이고, 현재 물질계에서 일하는 입문자 점성가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힌트를 주겠다.
첫 번째 인간의 성향이 고군분투하며 나타났을 때 태양이 궁수자리에 있었다. 동물 인간의 단계가 끝났고 궁수자리가 지배적이었을 때 (우리 행성의 관점에서---여기서 말을 신중하고 사용하고 있다) 개체화하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당시 인간의 두뇌는 일어났던 것을 기록하는 데 실패하였다. [고대의 주석서(Old Commentary)]에 있는 말에서,
“신의 아들들이 활에서 화살처럼 쏘았다. 형태들이 그 충동을 받았고 보라! 신이 태어났다. 작은 아기는 거대한 사건을 몰랐다.”
이것이 2100만년전에 일어났다. 주기들이 지나갔고 나중에 태양이 사자자리로 들어갔을 때(약 1800만년전에) 두뇌와 정신의 첫 번째 조정이 일어났고 인간이 분명히 자의식적으로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개체성을 기록하였다. 첫 번째 해(이런 변이 체계에서 숫자가 정확하지는 않지만)가 21,688,345년 전이다. 이 숫자들은 현재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옳은지 그른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성질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나중에 조사할 때 그것들이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궁수자리는 인간의 진화를 지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적인 목표를 향한 진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자자리는 인간계에 있는 인간 의식을 지배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에너지 때문에 인간이 “나는 존재한다(I am)”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부적합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개별 별자리의 키워드 번역을 시도한다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과 관련하여 두 개 카테고리를 나누어진다. 형태 측면의 키워드와 혼 측면의 키워드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말로 표현된다; 두 번째 경우는 혼이 의식적으로 말한다. 근대 용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발산하여 나오는 에너지의 작업을 안내하는 근저에 있는 생각이 가치가 있다. 우리의 세계 주기 동안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양자리에서 물고기자리로 나아갔으며 그래서 자신의 방향을 재설정한 열망자를 위하여 다음과 같다:
- 양자리(Aries) – 나는 앞으로 나와서, 마인드 세계로부터 나는 통치한다(I come forth, and from the plane of mind I rule).
- 황소자리(Taurus) – 나는 보고, 눈이 열릴 때, 모든 것이 환하게 빛난다(I see, and when the eye is opened, all is illumined).
- 쌍둥이자리(Gemini) – 나는 나의 다른 자아를 인식하고 그 자아가 약해지면서 내가 성장하고 빛난다(I recognize my other self and in the waning of that self I grow and glow).
- 게자리(Cancer) – 나는 빛이 밝혀진 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거주한다(I build a lighted house and therein dwell).
- 사자자리(Leo) – 나는 그것이고 그것이 나다(I am That and That am I).
- 처녀자리(Virgo) – 나는 어머니이자 자식이고, 나는 신이고, 나는 물질이다(I am the Mother and the Child, I God, I matter am).
- 천칭자리(Libra) – 나는 두 가지 거대한 힘의 선들 사이로 이끄는 길을 선택한다(I choose the Way that leads between the two great lines of force).
- 전갈자리(Scorpio) – 전사가 나고, 전쟁에서 나는 승리한 채 나타난다(Warrior I am, and from the battle I emerge triumphant).
- 궁수자리(Sagittarius) – 나는 목표를 본다. 나는 목표에 도달하고 다른 목표를 본다(I see the goal. I reach the goal and see another).
- 염소자리(Capricorn) – 천상의 빛 속에 나는 빠져 있고 나는 그 빛에 등을 돌린다(Lost am I in light supernal and on that light I turn my back).
- 물병자리(Aquarius) – 목마른 사람들을 앞에 뿌리는 생명의 물이 나다(Water of life am I, poured forth for thirsty men).
- 물고기자리(Pisces) – 나는 아버지 집을 떠나서 돌아오면서 나는 구제한다(I leave the Father's home and turning back, I save).
형태 관점에서, 생명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자연의 작업을 다음과 같은 말들 속에서 보게 된다:
- 물고기자리(Pisces)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And the Word said): 물질 속으로 들어가라(Go forth into matter).
- 물병자리(Aquarius)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형태 속에 있는 욕망이 지배자가 되게 하라(Let desire in form be ruler).
- 염소자리(Capricorn)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야망이 통치하고 문을 활짝 열어놓도록 하라(Let ambition rule and the door stand wide).
- 궁수자리(Sagittarius)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음식을 찾아라(Let food be sought).
- 전갈자리(Scorpio)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마야가 번성하게 하고 기만이 지배하게 하라(Let Maya flourish and deception rule).
- 천칭자리(Libra)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선택을 하라(Let choice be made).
- 처녀자리(Virgo)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물질이 군림하게 하라(Let matter reign).
- 사자자리(Leo)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다른 형태들이 존재하게 하고, 내가 통치한다(Let other forms exist, I rule).
- 게자리(Cancer)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격리가 규칙이 되게 하고 그러나 군중이 존재한다(Let isolation be the rule and yet the crowd exists).
- 쌍둥이자리(Gemini)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불안정성이 그 일을 하게 하라(Let instability do its work).
- 황소자리(Taurus)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고군분투가 흔들리지 않게 하라(Let struggle be undismayed).
- 양자리(Aries) – 그리고 말씀이 말했다: 형태를 다시 추구하라(Let form again be sought).
이런 모든 생각들이 어떤 형태 에너지의 작업과 관련되고 마지막 그룹에서 소위 만족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죄 많고 이기적인 개인의 작업과 관련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열망자가 자기자신의 혼의 힘 속에서 사용한 만트라 구절들의 그룹이 확실하다.
다양한 유형의 힘을 더 이상 다룰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제 규칙 XI로 관심을 돌리자.
규칙 11
“법칙에 따라 일하는 작업자는 이제 세 가지를 수행해야 한다. 첫째, 생명들(lives)을 둘러싸는 벽 속으로 가둘 공식을 확인하라; 다음, 그것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그리고 만들어진 것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말을 하라; 마지막으로, 그 일에서 그를 구하는 신비스러운 구절을 말하라.”
"Three things the worker with the law must now accomplish. First, ascertain the formula which will confine the lives within the ensphering wall; next, pronounce the words which will tell them what to do and where to carry that which has been made; and finally, utter forth the mystic phrase which will save him from their work."
세 문장에 대한 분석(Analysis of the Three Sentences)
상념태들로부터의 구원(Salvation from our Thought-Forms)
죽음으로부터의 구원(Salvation from Death)
세 문장에 대한 분석(Analysis of the Three Sentences)
알고 있듯이, 이 규칙은 어떤 유형의 에너지 표현인 상념태들을 활성화시키는 마법 작업과 아스트랄계에서의 작업을 지배하는 규칙들 중에 마지막 규칙이다. 우리는 인간이 다루는 다양한 에너지들과 상념태들을 만들어서 인간이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검토하였다. 또한 우리는 구현된 생각이 멘탈 물질과 아스트랄 물질로 입혀질 때까지 인간이 어떻게 다양한 등급의 물질을 조종할 수 있는지 보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물질계로 물현화하기 직전에 있는 활기를 가진 실체이다. 이제는 그 창조자가 표현한 의지 행위를 제외하고 그 어느 것도 그것이 객관성으로 출현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창조자에 의해서 활기가 불어넣어진 그 형태는 창조자가 “신비한 구절(mystic phrase)”을 말함으로써 그것과 연결고리를 자르기 전까지 항상 그의 의지를 따르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존재로의 출현이 그 결정이고 창조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가정할 것이다.
여기서 이 작업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처럼 상념태를 무의식적으로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를 물질계로 결코 만들지 못하고, 그들이 의도한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기심과 혐오로 활력을 받는 한, 이런 것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인류에게 운 좋게도, 소수의 사람만이 멘탈 물질 속에서 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스트랄 물질 혹은 욕망 물질을 가지고 일하고 이 형태들은 유동적이고 변하기 쉬우며 끈기(persistence)라는 기능을 통해서만 강력하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가 그것을 갖게 될 것이라는 진술에 오컬트적인 근거가 있다. 그것이 보통 사람을 화신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집중된 정신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만, 그것은 멘탈계 물질의 일점지향성이 없기 때문에, 이 욕망 형태들이 해를 주지 못한다. 그것들의 영향은 주로 이런 카마-마나스 형태들의 창조자에 의해서 느껴지고 주위에 있는 동료들에 의해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인드 인자가 들어와서 지배적으로 되는 순간, 그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유용하기도 하고 위험하게 된다---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위험하거나, 진화 계획을 이루어가는 데 유용하다. 그러면 그는 상념태들을 창조할 수 있고, 외적으로 현현하는 결과들과 만져서 느낄 수 있는 영향들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열망과 영적 충동을 고려할 때, 그는 진정한 오컬티스트가 될 수 있고, 조직화된 결과들과 물질계에서 활동하는 유기체를 만들 수 있다. “유기체(organism)”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상념태라도 모두 현현 가능하며 섬세한 물질을 입고 있는,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로, 우리가 간주한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떤 생각을 풀어낸다” 혹은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대중적으로 부른다; 다른 시대에는 그것을 “발견(discovery)” 혹은 “발명(invention)” 혹은 그런 성질의 어떤 것으로 불렀다. 그것을 깨닫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항상 오컬트 용어들로 말하고 (신 혹은 인간에 의해서) 생각해온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된 방법들에 대한 내적인 이해의 증거가 되었다.
구체화된 아이디어(idea) 혹은 생각(thought)---전자가 후자보다 잠재적으로 훨씬 강력하다---이 애쓰며 나아가서 이제 막 물질계에 현현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 집중되지 않은 사람인 “화이트 매지션”의 경우, 그 창조자는 그것의 내면의 목적과 계획이 드러날 수 있는 단계까지 의식적으로 그것을 가져온다. 그는 그 상념태를 자신의 의식 속에 간직하고 자기자신의 일점지향의 멘탈 집중력을 통하여 그것에 형상과 에너지를 부여한다.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이 규칙에서 열망자가 해야 할 일이 세 가지라고 듣는다:
1. 건축가들과 교량 건설가들이 원하는 형태를 수학적인 공식으로 줄이듯이, 같은 방법으로 그가 만든 그 형태를 결정화시킬 공식을 확인하라.
2. 형태에 활기를 줘서 그것이 물질계로 나가게 하는 어떤 말들을 발성하라.
3. 상념태를 그의 오라에서 떨어지게 하고 그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을 막을 그 구절을 말하라.
그 공식(formula)이 상념태와 관련 있고, 힘의 말씀(words of power)는 그 형태를 만든 목적과 관련 있으며, 신비한 구절(mystic phrase)은 창조자와 창조물 사이를 묶어주는 자성적인 연결고리를 자르는 것과 관련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형태와, 다른 하나는 형태 속에 구현된 혼과(가장 낮은 특징이 사랑의 반영인 욕망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창조자가 창조물에 부여한 생명 측면과 관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적으로 영원한 삼위일체, 영, 혼, 체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마법을 위한 규칙들은, 진정한 비전가(esotericist)가 이해하듯이, 창조된 우주, 태양계 혹은 행성에 적용되고, 그것들이 제자나 열망자의 아주 작은 창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위의 글을 읽은 보통 학생의 첫 반응은 어떤 유형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체의 성질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중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그것이 그의 마인드 속에 실재한다. 그러나 요즘 시기에 오컬트 학생 앞에 놓여 있는 주요한 필요조건들 중에 하나는 에너지 그 자체이자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실재(Reality) 측면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심오한 주제에 대하여 토론하는 데 영과 에너지는 동일한 용어이고 상호 사용가능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이것을 깨달을 때만 우리는 과학과 종교간에 조화에 도달할 수 있고 우리가 움직이고 둘러 쌓인 활동적인 현상 세계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유기적(organic) 그리고 무기적(inorganic) 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 존재한 육체와 영, 생명과 형태 사이의 분명한 구분과 많은 혼란을 갖게 만들었고, 자연 속에 있는 이 두 가지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진짜 단단하고 만져서 느낄 수 있는 세계로 여기지만, 움직임과 활동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내는(근저에 숨겨져 있는) 어떤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대충 표현하는 것이지만 지성적이지 않은 태도를 요약하는 것이다.
정통 과학자들은 구조와 관계, 형태들의 구성과 구성부분들이 만드는 활동과 상호관계 그리고 상호 의존성에 대하여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화학원소들, 그것들이 하는 기능과 역할들, 자연계에 있는 모든 형태들을 구성해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 그들의 탐구 주제이다. 원자, 분자 그리고 세포의 성질과 그들의 기능, 그것들이 나타내는 힘의 특질과 다양한 유형의 활동, (자연계 혹은 물질계의 서로 다른 형태들 속에 집중되거나 국부화된) 에너지의 성질과 특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의 숙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너지는 무엇인가? 혹은 존재(Being)의 성질과 되어가는(Becoming) 과정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대한 문제는 성과가 없고 추측에 불과한 거의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 직관의 올바른 활동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고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 그것들을 해결하는 것은 보통의 계시와 입문을 성취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오직 진실한 생물학자는 신비의 입문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명과 그 목적을 이해하고 생명 원리와 하나가 되어서 에너지와 그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이고, 행성 하이어라키의 일과 관련된 그들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 힘 그리고 물질이라는 세 가지 측면 혹은 분화를 통해서 느끼는 생명과 관련된 몇 가지 근본 공식들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간이 자기자신을 이해함으로써만 우리가 신(God) 이라고 부르는 그 총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명한 이치이고 오컬트의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일어날 때 현재 “미지의 신(Unknown God)”을 하나의 인식된 실재(Reality)로 만드는 어떤 계시로 안내한다. 설명해 보겠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살아있는 존재로 알고, 죽음을 생명의 숨결(breathe of life)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거둬들인 신비스러운 과정으로 부른다. 숨결을 거둬들일 때 형태가 무너지게 된다. 뭉치게 하는 활력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육체로 여겨왔던 것의 본질적인 요소들로 분해하게 만든다.
이 기본적인 본질적 존재, 신비스럽게 빠져나가는 인자인 이 생명 원리는 우리가 대우주 속에 있는 영 혹은 생명이라고 부르는 그것에 상응하는 인간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생명이 형태를 뭉치게 하고, 생명을 불어넣고, 활력을 주며 활동하도록 해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듯이, 신의 생명---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부르듯이---도 우주 속에서 같은 목적을 수행하고 응집력 있고 살아 있는 활기를 가진 태양계라고 부르는 앙상블을 만든다.
인간 속에 있는 이런 생명 원리는 삼중으로 현현한다:
1. 방향을 지시하는 의지, 목적, 기본적인 유인(incentive)으로서. 이것은 역동적인 에너지로, 그의 존재를 활동하게 만들고, 그를 존재하게 만들며, 그의 생명의 기간을 정하고, 짧건 길건 여러 해 동안 살아가게 하면서 그의 생명의 주기가 끝나면 스스로 철수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이다. 이것은 인간 속에 있는 영(spirit)이며, 살려는 의지, 존재하려는 의지, 활동하려는 의지, 추구하려는 의지, 진화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그것의 가장 낮은 측면에서 이것은 멘탈체 혹은 멘탈 성질을 통해서 일하고, 육체와 관련해서 두뇌를 통해서 자신을 느낀다.
2. 응집력(coherent force)으로서. 그것은 개개인을 서로 다르게 만들고, 인간의 독특한 심리학을 만들어 내는 그 복잡한 기분, 욕망, 특질, 억압, 느낌 그리고 특이성들이 현현하도록 만드는 바로 그 중요한 본질적 특질이다. 이것은 영 혹은 에너지 측면과 물질 혹은 육체 성질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이것이 독특한 주관적인 인간으로, 그의 색깔 혹은 개인적인 음(note)이다. 이것이 그의 육체의 진동율을 정하는 것이고, 독특한 유형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며, 그의 외적인 측면들, 기관, 분비선들의 상태와 성질을 만드는 원인이다. 이것이 가장 낮은 측면의 혼이고 감정 성질 혹은 아스트랄 성질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육체와 관련해서 심장을 통해서 작용한다.
3.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원자들의 활동으로서. 그것은 인간 전체를 형성하는 기관들을 구성하는 작은 생명들의 총합이다. 그것들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동일시된 나름 대로의 생명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명 원리 측면은 에텔체를 통해서 작용하고 육체와 관련해서 비장을 통해서 작용한다.
물론 규칙 11에서 언급된 그 만트라 말과 구절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입문자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에게 심오하게 이해 불가능한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이 가르침들 속에 있는 많은 것이 근대 사상보다 앞서가 있고 이 가르침과 [우주불에 관한 논고(Treatise on Cosmic Fire)]가 금세기 말에야 충분하게 이해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 규칙을 한 문장씩 검토해서, 보통의 열망자에게 가장 쉬운 해석들 중에 하나로 가보자. 모든 규칙들은 지성인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으며 그러면 의미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들을 열망자 관점에서 읽을 수 있고, 그러면 매일 적용할 수 있고 삶의 경험의 용광로 속에서 풀어갈 수 있는 어떤 실천적인 생각들을 전달할 것이다. 열망자가 에너지를 다루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 멘탈 물질 속에서 일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 진화 계획 밑에 놓여 있는 목적(Purpose)을 창조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제자의 시각 관점에서 이 규칙들은 어떤 강력한 가르침을 가져다 주고 필연적으로 열망자의 정신에는 봉인되어있지만 제자를 자연 속에 있는 창조적인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로 이끌어 줄 것이다. 입문자의 이해에 대하여, 이 말들은 깨어난 직관만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분명한 명령을 전달한다. 더 높은 등급의 지성에 대하여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규칙을 순전히 열망자의 시각에서 검토할 것이고, 다른 해석들은 내면의 도구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둘 것이다.
I. 생명들(lives)을 둥글게 둘러싸는 벽 속에 가둘 공식을 확인하라.
우리가 잘 알듯이, 자연 속에 있는 모든 형태들은 무수히 많은 아주 작은 생명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은 그 형태의 건설자가 사용한 인력의 법칙(Law of Attraction)의 힘에 따라서 어떤 수준의 인식, 리듬 그리고 응집성(coherency)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대우주뿐만 아니라 더 거대한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소우주 생명들의 무한한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성한 생각의 충동 하에서 존재하게 된 배아단계의 태양계들은 처음에는 유동적이고 흐릿하며, 윤곽이 변하고 중심에 있는 에너지 핵에 의해서 느슨하게 간직된다---구체화된 생각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시간이 진전되면서, 그것들이 다른 상태들로 들어가고, 그것들이 더 분명한 형태를 취하며, 연관된 주변 형태들과 독특한 관계를 갖게 되어, 그 형태들의 내면의 성질의 다양한 관계들과 자신들을 조정하게 된다. 초기 단계에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우리 태양계나 수많은 다른 것들 같은 어떤 태양계가 존재하게 된다---태양계란 주위에서 회전하고 도는 행성들을 가진 태양으로 기능하며, 그들의 서로 다른 궤도를 보존하면서, 그 행성들이 정해진 상대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독립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유기체들로 활동하며, 그러면서 천문학자의 눈에는 어떤 응집성(coherence), 통일성(unity) 그리고 각각이 독특하지만 우주의 법칙 하에서 기능하는 어떤 구조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주 마인드(Universal Mind) 속에 꾸준하게 간직되고 구상된, 어떤 광대한 목적에 부합한다. 그리고 그 우주 마인드는 그 형태의 창조자이자 존재의 저자인 그룹 의식적이며 자의식적인 실체의 어떤 측면이다.
이 하나의 지성적인 대생명이 그의 (혹은 그것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표현하는 데 모든 것이 소용 없을 때, 말들이 중요하겠는가!) 명상 속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사색적인 마인드(reflective mind) 속에서 우리가 상념태라고 부르는 그것을 창조하는 것으로 상정할 수 이다. 이 상념태는 네 가지 주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1. 그것은 인력의 법칙(Law of Attraction)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2. 그것은 신성한 창조자의 마인드에 의해서 이끌려서 서로 서로 관계를 맺게 된 무한히 많은 수의 살아 있는 실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3. 이 형태는 창조자가 아래처럼 행한 어떤 것의 외현화(externalization)이다:
가. 시각화했던
나. 그것이 의도하는 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하여 지성적으로 만들었고 “채색하거나” “특질을 부여한”
다. 그의 욕망의 힘과 그의 살아 있는 생각의 힘에 의해서 활기를 받은
라. 그것의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까지 그 형상을 유지한
마. 자성적인 줄에 의해서 그 자신과 연결된---그의 살아 있는 목적의 줄이고 그의 지배적인 의지의 강력함
4. 멘탈 질료, 아스트랄 질료 그리고 활기 질료로 표현된 이 내면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실행한 물질계에서 강력하다:
가. 그것이 창조자의 생각 속에 의식적으로 계속 있다.
나. 그것이 창조자와 오컬트적으로 그 거리를 유지한다. 많은 상념태들은 그 창조자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용지물로 된다.
다.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든 지시를 받을 수 있고, 최소 저항의 법칙에 의해서 그 자신의 장소를 찾을 수 있어서, 바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그것이 창조된 그 목적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그 “공식”은 신성한 사고자(divine Thinker)로부터 발산하여 나오는 생각(idea)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자가 그 사물을 보고 그의 정신 속에서 외현화하여, 그것을 그의 의도의 운반자(carrier)로서 시각화하면서, 그 공식은 역동적인 목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인간의 업적을 두드러지게 하는 거대한 간격을 가진 그런 교량 건설 근저에 놓여 있는 수학은 비입문자들에게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핵심적인 용어들로 줄여진 교량 그 자체이다. 그것들은 잠재성 속에 있는 다리이고, 이런 수학 공식 속에 완성된 구조의 목적, 특질 그리고 형태와 궁극적인 용도가 숨겨져 있다. 마찬가지로 상념태를 낳는 개념들과 생각들도 그렇다. 이 오컬트 공식들은 (열망자에게) 직관의 세계인 원형계(archetypal plane)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훨씬 더 높은 의식 상태이다. 이 공식들은 형태 세계 근저에 놓여 있고 우주의 웅대한 건축가(Great Architect of the Universe) 밑에서 적절한 절차에 따라서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 의해서 접촉되어야 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위대한 공식의 문헌이 있다. “상징적으로 말하면”이라는 것을 주목하고, 그것들을 잊지 마라. 첫째 모든 등급의 입문자들이 읽고 결국에는 통달해야 하는 생명의 서(Book of Life)가 있다. 모든 등급의 열망자들이 읽는 신성한 지혜의 서(Book of Divine Wisdom)로 종종 아는 경험의 서(Book of Knowing Experience)로 불린다. 그리고 지성이 깨어나서 기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는 형태들의 서(Book of Form)가 있다. 지금 우리가 관련 있는 것은 형태들의 서이다.
파탄잘리는 어느 한 곳에서 혼이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비구름(rain-cloud of knowable things)”에 대하여 말한다. 열망자는 영원히 반복되는 자기자신의 중요하지 않고 쓸모 없는 생각들에 지쳐서, 이 “비구름”의 자원을 개발해서 신의 생각들의 일부를 지상에 하강시키려고 한다. 그는 창조자의 생각들의 현현을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도록 일하려고 한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그는 어떤 초기 필요조건들을 성취해야 한다. 그것들을 간략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명상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
2. 혼, 정신 그리고 두뇌를 쉽게 정렬한다.
3. 자신의 계에 있는 혼으로서 관조하거나 활동한다. 그러면 혼이 신성한 생각들의 세계와 멘탈계 사이의 중재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신성한 창조 과정에 참여하는 이 문제가 어떻게 모든 명상 작업의 목적으로서 이루어지는지 이해하겠는가?
4. 혼에 의해서 직관적으로 받은 생각을 기록하고, 그것이 취할 형태를 인식한다. 이 마지막 네 개 구절이 가장 중요하다.
5. 애매하고 흐릿한 생각을 본질로 줄이고, 모든 헛된 상상과 하위 정신의 표현들을 버려서, 자기자신이 쉽게 활동 속으로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관조 속에서 견고함을 통해서 존재하게 될 그 형태의 주관적인 뼈대 혹은 내면의 구조에 대한 비전을 정확하게 받는다.
6. 혼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정신 위에 기록된 이것이, 빛 속에서 꾸준하게 유지된 마인드에 의해서,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기록되며, 그러면 그 공식이 청사진으로 축소되었다고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공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이차적인 과정이다. 그 공식을 간단한 윤곽의 구조 속에 구체화시키는 명확함, 단순함 그리고 강도에 따라서, 최종적으로 갖추어진 구조와 결과적인 형태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외적인 형태 자체 범위 안에 그 형태를 만들 때 사용된 생명들을 제한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임신의 단계와 비슷하다. 최종 산물의 잠재성들과 역량들이 배아(남녀의 관계의 결과로) 속에 잠재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품어졌지만 영 측면이 생명을 불어넣은 그 생각(idea) 속에 최종 상념태의 잠재성들이 잠재하고 있다. 마인드로 대표되는 물질 측면이 영 측면에 의해서 수정되었고, 삼위일체가 결국에는 창조된 형태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는 “공식(formula)”---착상된 생각, 잠재하지만 역동적인 개념---만이 있다. 그것은 성장하고 형태가 되기 위한 본질적인 것들을 그 자체로 끌어 당기기에 충분히 강력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산될 지, 평범하고 미약한 것이 될 지 혹은 진실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될 지 누가 말할 것인가?
그러므로 외현화된 모든 생각은 욕망에 의해서 활기가 불어넣어졌고 마인드 힘에 의해서 창조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구체화된 생각(idea incarnate)”을 만들기 위해서, 그 생각(idea)을 형태 속에 입히기 위하여, 마인드가 그 수정(임신)된 것을 놓는 세계가 욕망계이다. 그러므로 그곳이 잉태하는 곳이다. 이전에는 마인드가 혼이 시각화하여 이해한 원형계의 생각(archetypal idea)를 받았다. 이제 다음으로 혼이 생각의 세계 속에서(world of ideas) 혼에게 제시된 공식을 받는다. 이렇게 “제시된 생각(presented-idea)”, “지각된 생각(perceived-idea)”, 그리고 “공식화된 생각(formulated-idea)”, 그리고 현현으로 이루어지는 생각이 있게 된다.
다음 요인들이 우주 마인드에서 형태들의 세계 속으로 생각의 출현을 지배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이것들은:
1. 원형계에서 발산하여 나오는 에너지들. 우리 행성의 최고 지성들(Intelligences) 그룹의 관심이 이 세계에 집중된다. 그들의 의식은 이 활동 영역에 반응할 수 있고 포함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우리가 형태로서 이해하는 것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채 신의 마인드(Mind of God)가 자신을 표현한다. 그들이 공식(formula)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이 위대한 계획의 청사진을 준비하는 수학자들이다;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그 힘들의 영향을 계산하고, 다루어야만 하는 에너지들의 영향을 계산한다; 그들은 형태들이 생명력의 충동에 영향 받는 중압과 압박을 감안하고, 진화 과정이 반응하는 주기적인 충동들을 다룬다; 그들은 형태 측면과 생명 충동 사이 관계에 관심 있다.
2. 인식의 직관 상태. 이 단계의 의식 수준에서 우리는 지혜의 대스승들이 그분들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보고, 보통의 지성적인 사람들이 물질계에서 쉽고 편안하게 일하듯이, 바로 이 영향력 영역에서 그분들이 가장 쉽게 그리고 능숙하게 일한다. 그분들의 마인드는 공식의 수호자들인 원형계 마인드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그들은---청사진을 가지고(상징적으로 말한다)---구체적인 사항들을 다루며, 작업을 조절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찾아서, 필요한 사람들을 모은다. 그분들은 물질계에서 정보의 집중점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발견할 때까지 혹은 계획의 바라는 부분을 물질계 현현시키기에 가장 적격인 그룹을 발견할 때까지 그분들 제자들 중에서 찾는다. 그분들은 세부사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글자 그대로 “하강(precipitation)”을 진척시킬 수 있을 때까지, 아이디어-특질-형태(idea-quality-form)의 영원한 삼위일체를 그렇게 선택된 사람들 정신에 새기면서 그들과 일한다.
3. 멘탈 상태 의식의 활동. 이 작업의 많은 부분이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곳이 멘탈계이고, 열망자가 수련된 지성을 계발시켜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비구름(rain cloud of knowable things)”이 먼저 멘탈계로 하강하고, 제자들과 열망자들이 수신자가 될 때 더 나아간 하강(precipitation)이 진전된다. 그 다음으로 제자들과 열망자들이 카르마적으로 혹은 선택에 의해서 그들 영향력 범위 안에 있는 낮은 등급의 일꾼들과 열망자들에게 인상을 주고 안내하려고 한다. 이렇게 제시된 “아이디어(Idea)”를 많은 정신들이 잡게 되고 위대한 작업의 공식 측면이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이 작업이 어떻게 해서 결과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룹 작업(group work)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 명상 과정을 숙달하여, “정신을 빛 속에서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holding the mind steady in the light)”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빛은 사실 우주 마인드에서 흘러나오며 다양한 종류가 있고 (비전적으로 말해서) 이전 태양계에서 생성되었으며, 이번 태양계에서 사용되고 계발되어야 한다.
“직관의 빛(light of the intuition)”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가 간주하는 대계획, 신의 의지, 목적을 구체화하는 그런 유형의 에너지를 전달하였다. “혼의 빛(light of the soul)”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인간 형태 속에서 화신한 채 그리고 종종 육체 밖에서 활동하면서 자연 속에 있는 네 번째 왕국에 신성한 개념을 물질화하는 책임을 가진 그런 실체들의 목적, 계획, 의지를 요약하는 표현을 본다. 인간계가 우주 마인드의 탁월한 표현의 매개체이고, 인간 형태 속에서 신의 자식들이 완전하게 될 때, 자연계에 있는 문제들이 대체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온전하게 의식하는 신의 자식들은 인간 형태 속에 있는 동안 자기자신들을 인식하면서(그들은 아직 소수이다) 글자 그대로 행성 생명의 두뇌를 구성할 것이다.
어떤 문제, 상태 혹은 상황에 “빛을 비춘다(to throw the light)”라는 말에는 진실로 오컬트적인 의미가 있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제시된 아이디어(idea)를 드러내는 것을 암시하고, 외적인 현현 근저에 놓여 있는 원리를 드러내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를 만든 내면의 영적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징주의에 있는 모든 작업의 기조이다. 멘탈계에서 강렬한 활동과 직관적인 인상의 계획 혹은 주관적인 차트를 그리는 작업, 공식을 확인하는 작업은 조직적인 행성 하이어라키만의 작업이다. 하이어라키와 의식적으로 협력하면서 인간 진화의 삼계 속에서 그 작업의 실재를 드러내는 일꾼들에 의해서 그 작업의 두 번째 단계가 수행된다. 그들은 아이디어의 배아를 가져와서, 올바른 생각의 과정, 욕망의 일깨움 그리고 올바른 대중여론 육성을 통해서, 배아 단계 개념이 외적으로 완전하게 존재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그들은 필요한 물리적인 활동을 일으킨다.
세계 모든 부분에 있는 열망자들, 그룹 리더들 그리고 사고자들의 정신이 열려있고 집중되어 있다면, 이 작업에 그들이 이용 가능하다. 진리에 접근하는 그들의 단순함에 따라서, 그들 생각의 명확함에 따라서, 그들 그룹의 영향과 포괄적인 인식 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된 노력을 할 수 있는 그들의 힘에 따라서, 외적인 형태가 내면의 아이디어와 영적 주관적 실재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말하려는 요점은 이 가르침을 공부하는 보통 학생들은 그 공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진화 과정 뒤에 서 있으며 그것의 기능적인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위대한 지자들(Knowers)이 그것들을 파악하고 이해한다. 대스승들, 선임 입문자들 그리고 제자들의 하이어라키가 꾸준하게 그 작업을 진전시키고 있지만, 법칙 하에서 외적 형태들을 만드는 물질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반응하지 못하면, 지체 혹은 잘못된 구축이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실수를 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될 것이고, 다시 지체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흥미를 잃고 일하기를 멈추면 혹은 그들 자신의 일과 개성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계획은 기다려야 할 것이고, 인류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안내하는 데 사용될 에너지가 다른 방향으로 그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창조과정에서 정체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의 대생명의 고동 속에서 그리고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활동 속에서---결코 끝도 없고 쉬지 않는---흘러 나오는 에너지가 어딘가에서 사용되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든 그 통로를 찾아야 하며, 종종 (인간이 그 의미를 실패할 때) 대재앙의 결과를 가져온다. 대재앙의 문제, 예를 들면 꾸준하게 증가하는 곤충 재해 원인이 미사용되고 미인식된 에너지의 유입과 관련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세계의 열망자들과 제자들이 그들 그룹의 책임을 지고, 그들 개성을 복종시키며, 진정한 인식을 성취한다면, 그 에너지가 대계획을 진전시키고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카르마 의무와 운명을 풀어가는 데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지성적으로 되어야 한다. 인간 계획의 수호자들과 보편적으로 공명해서 그들의 정신과 두뇌가 직관의 빛, 혼의 빛 그리고 우주 마인드에 의해서 빛날 때, 그들이 생명의 내면 측면에서 주기적으로 발산하여 나오는 시기 적절한 충동에 지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수련시킬 때, 그때 생명과 형태 사이의 꾸준한 조정이 있게 될 것이고 세계 조건들이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지자들(Knowers)들이 번역하여 전달한 그 공식에 더 진보한 인류의 자식들이 반응한 첫 번째 효과는 자연 속에 있는 네 개 왕국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고, 인류 가족 속에 있는 그룹들과 단위들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세운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이 방향으로 이제 첫 단계를 밟고 있다. 물질 에너지가 주된 지배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 동물, 식물 그리고 광물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 활동 영역 사이의 관계가 이제 심하게 조정되었다. 인간계에서 이 에너지가 이기심(selfishness)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동물계에서는 잔인성(cruelty)으로 나타나고, 책임감 없고 오직 본능적이며 일시적인 보호의 책임만 보이는 것에 대하여 어떤 비판도 하지 않는다. 식물계에서 이 부조화(maladjustment)는 행성의 오용 기간 동안 질병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그대를 놀라게 하는가? 질병은 기본적으로 식물계 속에서 부조화와 잘못 지시된 힘 속에 그 뿌리가 있다; 이것이 동물계와 광물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인간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것이 너무 멀리 앞서간 것이기에 보여줄 수가 없지만, 이런 조건을 이해할 때, 탐구자들의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데가 자연 속에 있는 바로 그 식물계이고, 결국에는 질병을 근절하는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II. 그것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만들어진 그것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말하는 구절을 소리 내어 말하라.
이 규칙과 관련하여 “법칙과 가지고 일하는 일꾼(worker with law)”이 자신 속에 있는 내면의 실재, 즉 혼과 공명하는 경우에만 강력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온전하게 깨어 있는 의식 속에서 그를 통하여 혼이 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말들을 소리 내는 것이 혼이다. 그 신비한 구절을 소리 내는 것이 혼이고, 형태-도구, 매커니즘의 통치자 혹은 통제자로서 혼이다. 이런 통제는 두뇌-마인드-혼의 정렬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대우주의 창조과정이건 혹은 소우주 창조과정이건, 태양계의 창조자로서 신(God)을 다루건 혹은 인간 매커니즘의 창조자로서 혼을 다루건, 혹은 마법 작업의 기법을 숙달하여 자기자신의 작은 영역에서 형태의 창조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인간을 다루건, 창조 작업의 표현인 이 규칙이 모든 창조 과정에 적용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이 규칙의 진정한 의미를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 자신도 자신의 존재 법칙 하에서 일하기 때문이고, 이 법칙은 우리에게 자연의 법칙들로서 나타난다.
질서정연한 활동과 목적을 가진 의식적인 목표에 대한 생각들이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이 구절 속에 엮여 있다. 어떤 형태의 건설자는 먼저 생명들의 통제자가 되어야 하고 어떤 실체들의 운명의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이 생각 속에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Law of Cause and Effect)과 자유 의지의 주제에 대하여 밝히게 된다. 하지만 원인들의 신비가 과거 우주 속에---“신이 내재한 형태들(forms indwelt by God)”이 한창 일 때---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순수한 원인(pure cause)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주요 결과들을 풀어가는 것만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순수 이성(pure reason) 같은 그런 실재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성취할 수 없듯이, 순수 원인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요인들은 우리 태양계 이전이고 그래서 그것들에 대하여 추론하는 것이 멘탈 도구를 계발시키는 것 이외에 아무런 보상이 없다. 이 태양계는 결과의 태양계이고, 그에 따라서 이 태양계도 원인들을 만든다. 마인드 파워(mind power)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인류 가족 속에서만 어떤 종류의 원인들이 생성되고 있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사고하는 어떤 종류의 정신에 의해서 시작된 모든 원인들은 사고자(Thinker)를 상정하고, 바로 이것이 심오하게 오컬트 과학의 입장이다. 우리 태양계는 하나의 상념태이지만 생각이 지속되는 한 실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성한 사고자에서 흘러나오는 생각(ideas)들의 흐름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모든 생각들은 신성한 흐름의 일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래서 때가 되면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원인들을 만들지 못한다.
그대가 물을 것이다: 그럼 많은 근대 오컬트 문헌들에서 삶의 추세 혹은 삶들의 주기가 필연적으로 미래를 나타내고, 어느 한 생에서 시작된 원인들이 다른 생에서 결과들로 나온다고 진술한 진리가 어디 있는가? 삶들이 압도적으로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지향일 때, 그 보조를 맞추는 것이 어떤 특정한 삶이 아니라, 서로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생명들의 그룹이 미래에 어떤 선을 따라서 가도록 만든다. 이것은 어떤 수준의 의식 계발 단계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영원히 적용된다. 그들은 전통과 여론에 의해서 분별없이 만들어진 대중들의 생각에 의해서 휩쓸리고, 이기적인 흥미들에 솔직하게 몰두하며, 그들 자신이 “조건들을” 휘어잡지 못하고 진화의 파도를 타고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상황과 주위 환경을 일으키는 특이성들과 성향들을 만드는 (물질 및 아스트랄 형태들의 진동에 의해서 지배 받는 그룹들) 그룹 활동의 한 형태이다. 인종과 국가 카르마 그리고 조건들에 대한 비밀이 바로 이런 깨달음 속에 숨겨져 있다. 보통 느끼고 활동적인 사람은 이 그룹들 속에 몰두하고 있고, 그는 그의 정신을 발견하고 사용하여 이런 몰두에서 나오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본능이 지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많은 주기 동안, 혼의 그룹들은 그들이 이끌리는 물질 형태들의 끌어당김을 통해서 화신한다. 초기에는 혼이 이렇게 끌어당기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왔으며 결국에는 그것이 버려지고 분해된다. 먼저 혼을 화신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형태의 효력(potency)이다. 왜냐하면 진화 과정 상반기에는---이전 태양계에서 고도록 조직화된---물질이 지배적인 인자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영이 물질의 어깨 위로 올라간다. 영과 물질의 이런 집단 상호작용이 이제는 너무 강력해서 혼이 경험하는 주요 경험들 중에 하나가 물질의 끌어당김이 약해지고 혼이 그것을 분리시키는 것을 배우는 그런 단계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경험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의 그룹 활동이다.
많은 미숙한 서적에서 보게 되는 형태를 취하고 버리는 것을 지배하는 규칙들에 대하여, 종종 잘못된 정보보다 크게 보는 일반화가 더 안전하다. 심지어 이런 일반화도 많은 의심을 갖고 봐야 한다. 상정될 수 있는 전부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 하에서 영과 물질이 섞이고 세계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같은 법칙에 지배되어, 형태들이 창조되고 생명 충동의 물질적 표현들이 되었다. 그것들은 우리 태양계 바로 앞에 있던 것보다 훨씬 이전 태양계 속에서 시작된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고동에 따라서 현현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형태들의 그룹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그들 그룹의 응집성(coherence)과 진동에 거의 전적으로 지배되었다. 그렇게 생명이 엘리멘탈 왕국들을 지나서, 자연 속에 있는 세 가지 하위 왕국들을 통해서 그리고 인간계 속으로 발전하여 왔다.
하위 인간 단계와 동물 인간 단계 속에서, 같은 그룹 활동이 지배하지만, 개인 단위들이---하나 둘씩---진정한 자의식 개인의 위상을 성취하고, 혼으로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점점 더 작아지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혼자 설 수 있는 힘과 명확한 생각의 능력 그리고 정확한 시각화를 갖고 창조자들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창조적인 상상력의 기능 혹은 창조적인 예술을 가진 자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그들은 개성이 계발되고 사용되는 자족(self-sufficiency)의 한 생 한 생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의식 속에서 외적인 물질계 그룹을 대체할 그들의 주관적인 그룹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들은 다시 그룹 경험을 얻지만, 이번에는 온전한 의식과 통제 속에 그렇다.
그들이 주관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그룹 속에서, 초기 집단 상태 속에서 그들과 함께 일해온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가장 가까웠고 거대한 생명의 주기 속에서 그들과 연결되어 왔던 사람들과 함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일하게 된다.
암시적이고 환하게 밝혀주는 이런 단계들에 주어진 어떤 이름들이 오컬트 보관소에 있다; 그것들은 당연히 상징적인 것이다. 만약 그 단계들의 이름과 그것의 비전적인 색깔 그리고 그 상징을 전달하는 수수께끼 같은 고대의 발성을 제공한다면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종종 학생들에게 전해주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런 정보가 친절하게 살고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을 하며 무사무욕(self-forgetfulness)을 실천하라는 명령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서 지적하고자 한다. 오컬트 정보는 학생들이 읽고 주목하지만, 친숙한 가르침은 지나쳐서 간과해버린다. 열망자들과 일하는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보이는 판단 부족과 어리석음을 보고 종종 웃는다. 어떤 학생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친절함(loving-kindness)의 법칙을 꾸준히 실천하라고, 그러면 그는 진실로 시도할 것이지만, 그 자신 속에서 그 명령의 친숙함 때문에 그것이 싫증나게 되고 기껏해야 필요한 진부한 이야기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학생에게 말한다: 어떤 오컬트 구절 혹은 위대한 분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겠다고, 그러면 그는 열의를 가지고 신나서 우쭐해 하는 자기만족과 즐거운 호기심에서, 중요한 계시를 받기 위하여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앞의 명령이 오컬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따른다면 해방과 자유로 이끄는 어떤 법칙을 나타내는 것이다. 후자는 현상과 관련되고 그것에 대한 지식은 피곤한 순례자를 천국의 문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그대들 중에 누군가에게 이런 환기가 필요하다.
인간 단계를 앞서는 단계들은 생략되었다. 이 말들을 읽을 사람 그 누구도 그들 내면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단계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1단계
생명이 형태를 매일 매일 사용해서 계단을 올라왔다. 더 작은 셋(three)을 통해서, 느린 진보로, 길고 긴 길을 여행하였다. 또 다른 문이 이제 열린다. 말씀이 나온다: “진정한 욕망의 길로 들어가라.”
자기자신을 형태로만 아는 그 생명이 자신을 생생한 붉은 색(vivid red), 즉 아는 욕망의 붉은색으로 자신을 완전히 감싸고, 붉은색이 장미색으로 장미색이 창백한 분홍색으로, 분홍색이 백색으로 변할 때까지, 그 붉은색을 통해서 갈망하던 모든 형태들이 다가오고, 붙잡아 간직하며, 사용하여 버린다. 그러면 순백색의 생명의 장미가 꽃을 피운다.
살아 있는 생명의 작은 장미가 꽃봉오리 속에서 보인다; 아직은 활짝 핀 꽃이 아니다.
2단계
상황이 형태를 바꾼다. 가까운 곳에서 오는 또 다른 목소리가 또 다른 구절을 말한다. 그 생명은 그 길을 계속 간다. “어린이가 노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게임에 참여하라.” 생명의 게임에 깨어나서, 그 혼은 문을 지나간다.
그곳은 초록색이고 그 넓은 벌판에 하나의 움직이는 대생명의 많은 형태들이 흥겨워 놀고 있다; 그들은 생명의 춤을 누비듯이 지나가고, 신이 많은 패턴의 형태들을 취한다. 혼이 “주의 놀이터로(playground of the Lord)” 들어가서 그가 다섯 개의 밝은 점을 가진 별을 보고, “나의 별(My Star)”이라고 말할 때까지 그곳에서 논다.
그 별은 아직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아닌, 빛의 한 점에 불과하다.
3단계
붉은 욕망의 길이 약해진다. 그것의 매력을 잃어버린다. 신의 자식들의 놀이터가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형태의 세계 밖으로부터 두 번 소리를 낸 그 목소리가 이제 심장 속에서 소리친다: “그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그대가 일점지향의 목적의 오렌지 볼을 잡아라.” 소리 들린 말에 반응하여, 형태 속에 깊이 잠겨 있던 살아 있는 혼이 많은 형태들로부터 나와서 앞으로 나가는 길을 깎아서 만든다. 파괴자의 길이 오고, 건설자 그리고 다시 형태들의 해체자가 온다. 파괴된 형태들이 만족시킬 수 있는 힘을 갖지 않는다. 이제 혼 자신의 형태가 거대한 욕망이고, 이렇게 마인드의 놀이터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꿈들과 환타지 속에서 종종 어떤 비전이 온다---꽃잎이 딱 붙어있고, 꽉 닫혀있으며, 향기가 없지만 차가운 파란 빛(cold blue light) 속에 휩싸인, 접혀 있는 연꽃에 대한 비전.
먼 미래에 오렌지와 파란색이 섞일 것이지만, 그 날이 아직 멀었다. 그것들의 혼합이 그 봉오리를 빛 속에 감싸고 미래의 개화(opening)를 일으킨다. 빛이 빛나도록 하라.
4단계
어둠 속으로 그 생명이 나아간다.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동굴로 들어가서 그대 자신을 찾아라; 어둠 속에서 걷고 머리 위로 불이 붙은 램프를 가지고 가라. 그 동굴은 어둡고 외롭다; 그것은 춥고 많은 소리들과 목소리들이 있는 곳이다. 주(Lord)의 놀이터에서 놀도록 남겨진 많은 신의 자식들의 목소리가 빛을 간청한다. 그 동굴이 길고 좁다. 공기가 안개로 가득 차다. 흐르는 물 소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 소리와 만나고, 천둥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종종 만난다.
멀리, 희미하게 그리고 가장 어렴풋이 보이는, 타원형의 열린 부분이 나타나고, 그 색깔은 파랗다. 이 파란 공간을 가로질러 펼쳐진 채, 장미색 십자가가 보이고, 네 개 팔이 만나는 그 십자가 중심에 장미가 있다. 윗부분 위에 진동하는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안에는 다섯 개 점을 가진 별이 있다.
살아 있는 혼이 그 십자가를 향해서 앞으로 밀고 나아간다. 그 십자가는 드러나고 알려진 생명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아직 그 십자가를 오르지 못하였고 그래서 뒤에 남겨졌다. 그러나 눈은 그 십자가에 고정한 채, 귀는 모든 형제 혼들이 통곡하는 울음소리에 열어둔 채, 살아 있는 혼이 계속 앞으로 간다.
5단계
환한 생명과 빛 밖으로! 동굴을 뒤에 남겨두었다; 십자가를 정복하였다; 그 길이 명확하다. 말씀이 심장 속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다시 주(Lord)의 놀이터로 들어가라 그리고 이번에는 게임을 이끌어라.” 계단의 두 번째 단 위에서 길이 막혔으며, 이것이 혼 자신의 행위로 그렇게 되었다. 더 이상 붉은 욕망이 모든 삶을 지배하지 않고, 이제 맑은 파란 불꽃이 강하게 탄다. 막힌 길의 최하단에서 그가 돌아서서 계단을 지나 내려가 놀이터로 가서, 이전 단계에서 만들었던 죽은 껍질들을 만나서, 버려지고 파괴된 형태들을 밟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의 어깨 위에 평화의 새가 내려 앉는다; 그의 발 밑에 메신져의 샌들을 신고 있다.
아직 찬란한 생명의 완전한 영광이 아니다! 아직 영원한 평화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일이 있고, 여전히 작은 존재들(little ones)들을 들어올려야 한다.
여기에 우리는 인간의 삶과 발전의 그림들, 형태 속에서의 삶과 창조 작업을 표시하는 건설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그림을 상징적인 형태로 보게 된다. 그것은 어떤 만트라 구절들과 기본 상징들을 꾸밈없이 번역한 것이고, 아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게 표현된 어떤 과정을 암시하는 것 이외 어떤 다른 것으로 결코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비전가들(esotericists)은 이 다섯 단계가 모든 형태의 삶의 기간을 망라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 창조자가 우주건, 행성이건 혹은 인간이건 마찬가지이다.
모든 형태는 어떤 창조자에 의해서 발산된, 생명의 충동적인 불꽃(impulsive spark)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부가의 법칙(law of accretion)---생명의 법칙(law of life)인 인력의 법칙(law of attraction)의 한 측면---하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한다. 이 법칙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물질을 지배하는 법칙인 원인과 결과의 법칙과 공조한다. 원인, 인력 혹은 욕망, 부가(accretion)와 결과---이 네 단어들이 어떤 상념태이건 그것의 건설을 지배한다. 상념태가 완성된 실체일 때, 그것은 유기적인 원인의 힘 하에서 부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이제는 인류가 물질 측면 보다는 특질(quality) 측면에서 주로 영향을 생각하는 지점까지 진화하였다. 어떤 영향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상념태가 우리를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형태들의 존재 이유는 그 창조자의 목적에 열쇠를 줄 어떤 주관적인 특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말들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라. 그러므로 규칙 11에서 소리 낸 말들은 그 형태를 구성하는 생명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만들어진 그것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말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목적(purpose), 활동(activity) 그리고 목표(goal)를 보게 된다.
태양계, 행성, 자연에 있는 왕국 혹은 인간 같은 상념태와 관련하여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고 지금까지 나온 방대한 양의 문헌들에 추가할 필요도 없다. 어떤 측면에서 목적, 활동 그리고 목표의 이런 주관적인 삼위일체가 잘 알려져 있고, 다른 측면에서 이런 가르침에서 우리가 다루기에는 너무 고귀하고 헤아릴 수 없어서 추측 영역 속으로 방황하여 들어가게 된다. 종교가 오랫동안 목표를 다루어왔다; 과학자가 이제는 활동 측면을 다루려고 시도하고 있다; 가장 진보한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이 신의 의지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사색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자신의 영적 의지의 규율을 따르고 자신의 형태 속에 있는 생명들의 활동을 통제하여 목표가 점진적으로 그의 비전에 호소하면서 자신을 그 목표로 향하도록 할 때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신의 의지를 구성하는 그 계획의 진정한 이해에 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열망자가 매일 배우면서 창조하기 시작하는 상념태들과 관련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법 작업에서 배워야 하는 첫 번째 학과이기 때문이다. 멘탈 물질 속에서 창조자는:
가. 지성적으로 만드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 그가 만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올바른 말(speech)을 통해서 그 상념태가 의도된 아이디어(idea)을 전달할 수 있도록 충동(impulse)을 주어야 한다.
다. 그 목표를 향해서 진실되게 지시하여 그의 상념태를 올바르게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목적에 도달할 것이고 그것을 보낸 자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명확한 사고의 필요성과 나태하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열망자가 길에서 진보하면서 점점 명백해진다. 마인드 파워가 증가하고 그의 생각을 점점 더 대중 생각과 구별할수록, 그는 필연적으로 사고 질료를 가지고 형태를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만, 운 좋게도 인류의 경우 만든 형태들이 너무 약해서 그것들이 대체적으로 무해하거나 대중의 생각과 일치하여서 그것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의 힘을 진전시키고 돕거나 해를 줄 수 있는 역량이 증가하면서, 그리고 그가 제대로 만들어 그가 만든 그것을 올바르게 움직이게 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는 파괴적인 인자가 될 것이고 해로운 힘의 센터가 될 것이다---곧 보겠지만, 자신을 파괴하고 해를 줄뿐만 아니라 그의 음(note)에 진동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를 주고 해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그대가 적절하게 물을 것이다: 정직하고 진실한 초보자가 이 상념태를 만드는 과학에 적용할 수 있는, 그리고 명확하고 간결해서 필요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어떤 간단한 규칙들이 있나요? 그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간단하게 언급해서 초보자가 따르면 흑마법의 위험을 피할 것이고, 계획과 일치하여 만드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내가 준 규칙들을 따른다면, 그 자신이 무지하게 만들어 와서 낯의 빛을 차단하고, 그의 세계를 어둡게 하며, 그 자신의 독특한 거대한 환영인 형태들의 벽 속에 그를 가두는 그 복잡한 문제를 피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열망자에게 이 규칙들이 너무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진리로 가는 안전한 이정표가 될 것이고 결국에는 그들이 초인이 되는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되었고, 다른 것들은 불가피하게 블라인드이며, 또 다른 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1. 생각의 세계(world of thought)를 보고, 진리에서 거짓을 분리하라.
2. 환영(illusion)의 의미를 배우고, 그 중간에서 진리의 황금줄을 찾아라.
3. 감정체를 통제하라. 왜냐하면 삶의 폭풍우 치는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파도가 헤엄치는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고 태양을 차단할 것이며 모든 계획들을 쓸모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4. 그대가 어떤 마인드(min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의 두 가지 용도를 배워라.
5. 사고 원리(thinking principle)를 집중하고, 그대의 멘탈 세계의 주인이 되어라.
6. 사고자(thinker), 그대의 생각 그리고 생각의 수단인 그것이 성질상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실재에서는 하나라는 것을 배워라.
7. 사고자처럼 행동하고, 분리적인 욕망의 순수하지 않은 용도에 그대의 생각을 더럽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배워라.
8. 생각 에너지는 모두의 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신의 대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대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마라.
9. 그대가 상념태를 만들기 전에, 그 목적을 그려보고, 그 목표를 확인하며, 동기를 밝혀라.
10. 생명의 길 위에 있는 열망자인 그대에게, 의식적인 건설의 길이 목표가 아니다. 생각의 대기를 깨끗하게 하는 작업, 증오와 고통, 두려움, 시기와 저급 욕망에 생각의 문을 단단하게 잠그는 작업이 의식적인 건설 작업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오, 길 위의 여행자여, 그대의 오라(aura)를 보살펴라.
11. 생각의 문들을 엄중히 감시하라. 욕망을 경계하라. 모든 두려움, 모든 증오, 모든 탐욕을 물리쳐라. 조심하고 위를 보라.
12. 생명이 대부분 구체적인 삶의 세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의 말들과 화법이 그대의 생각을 나타낼 것이다. 이런 것들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라.
13. 말은 세 종류이다. 헛된 말들(idle words)은 결과를 만들 것이다. 선하고 친절한 것이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대가를 지불하는 데 오래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의도를 갖고 내보낸 이기적인 밀들(selfish words)은 분리의 벽을 만든다. 그 장벽을 부숴서, 비축된 이기적인 목적을 해방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대의 동기를 보살피고, 작은 생명과 신의 의지의 거대한 목적을 합치게 하는 말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라.
그 주문을 느끼는 사람들을 망치게 만드는 증오의 말(word of hate), 잔인한 말, 스릴을 주기 때문에 전달해준 유독한 가십(gossip)---이런 말들은 꺼질 것 같은 혼의 충동들을 죽이고, 생명의 뿌리를 내리치며, 그래서 죽음을 가져온다.
환한 낮에 말했다면, 그것들은 합당한 징벌을 가져올 것이다; 말하고 거짓으로 인식되었을 때, 그것들은 말하는 사람이 그 속에 살고 그를 해방으로부터 잡아두는 바로 그 환영의 세계를 강화시킨다.
해치고, 상처 주고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말했다면, 그것들은 그것들을 내보낸 그에게 되돌아서 와서 그에게 상처를 주고 죽게 할 것이다.
14. 헛된 생각, 이기적인 생각, 잔인한 증오의 생각이 말로 표현된다면 감옥을 만들 것이고 생명의 모든 샘을 오염시킬 것이며 질병을 유도할 것이고 재앙과 지체를 유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선하고 친절하고 상량하라. 침묵을 지켜라 그러면 빛이 들어올 것이다.
15. 자아에 대하여 말하지 마라. 그대의 운명을 가여워 마라. 자아와 그대의 열등한 운명에 대한 생각들이 그대 자신의 혼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 귀에 두드리지 못하게 막는다. 혼에 대하여 말하라; 계획을 확장하라; 세계를 위한 건설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잊어라. 이렇게 형태의 법칙이 상쇄된다. 이렇게 사랑의 규칙이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간단한 규칙들이 마법 작업을 진전시키기 위한 토대를 놓을 것이고, 멘탈체를 깨끗하고 강력하게 만들어서 올바른 동기가 지배할 것이고 구축 시 진정한 작업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규칙의 많은 부분의 의미가 이론적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상념태 구축의 진정한 마법 작업이 보편적으로 가능하게 될 때까지 어떤 도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우리가 보았던 공식(formula)도 다가오는 오랜 세월 동안 초인들의 하이어라키 구성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시하는 말(directional words)은 확인이 가능하지만, 그들 자신의 혼의 안내 하에 의식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깊은 명상 속으로 융합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서 사고 물질을 조작해서 “아는 창조자들(knowing creators)”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들과 유기체들, 조직들과 생각의 표현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그런 추진력 있는(impulsive) 말들을 말할 수 있고 말한다. 그것들은 그들 삶의 주기를 살고 그들 목적을 다하며 적당한 때에 지정된 목적을 위하여 올 것이다. 이 창조자들은 인간 삶의 모든 단계에 있는 지도자들이고 조직자들이며, 교사들이고 안내자들이다. 그들의 소리가 모든 땅으로 퍼져나가고 그들의 음이 국제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 백 명의 그런 이름들을 쉽게 기억하고 쉽게 분명하게 떠올린다. 그들은 대중 기억 속에 살고, 사는 그것이 선하건 악하건 그들의 성취의 소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검토해야 하는 문장 속에서 보편적인 기능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비록 그것이 아직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진전되다 하더라도. 다루어야 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III. 마지막으로, 그것들의 작업에서 그를 구제할 그 신비한 구절(mystic phrase)을 밖으로 말하라.
그러므로 창조의 마법 작업이 끝날 무렵에, 어떤 구제를 하고 두 종류의 해방을 하는---창조자가 창조한 그 형태로부터의 창조 대리인의 해방과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자의 통제로부터 그 형태의 해방---어떤 구절을 외쳐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구체화된 생각들과 관련된 말의 성질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생각을 내보내는데(launch an idea)” 사용되는 주요 인자가 되는 말하는 방법을 연구하라. 모든 발명들이 (구체화된 개념들인) 말해진 말의 힘을 통해서 물질계에 외적인 존재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주목하고, 또한 대중적인 필요의 바다에 어떤 생각들을 내보내는 것과 관련 있는 모든 컨퍼런스, 회의, 회담 그리고 논의들의 오컬트적인 의미를 신중하게 숙고하라. 어떤 생각을 팔기 위하여 대중에게 접근하는 수단으로서 판매사원에서 말의 사용 방법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광고 대행사들이 사용하는 활동 방식들 하에서, 창조적인 기업의 모든 영역들에서 혼의 창조를 출현시킬 그 신비한 구절들의 발산에 대한 왜곡된 첫 번째 암시를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대중 여론을 훈련시키고, 캐치 워드와 슬로건을 사용하며, 캠페인에서 진부하면서 적절한 구절들을 사용하는 경향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는 마법 작업에 대한 인식의 일부분이다. 이 모든 수단들을 진정한 깨달음 없이 맹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진정한 창조 작업을 발견하기 직전에 있는 인류의 활동들의 일부분으로, 우리가 그 창조 작업의 원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나 과학적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길을 가리키고, 통합으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단순화 속에서, 우리는 말의 사용의 중단과 더 간단한 형태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진화 과정의 충동 하에서, 우리는 말씀(Word), 언어(Speech), 창조적인 소리(creative Sound)를 가졌다. 나중에 이것이 말들, 구절들, 문장들, 문단들, 책들로 분화되어, 이제는 이런 분화가 최고점에 다다른 시대에 도달하였고, 우리 모두는 항상 말(speeches)를 하고 있다; 우리는 대중의 귀에 도달하기 위하여 공공 플랫폼을 사용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대중 의식 속에 어떤 생각들과 개념들을 가져오려는 노력 속에서 인류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수 백만 권의 책들의 출판을 보고, 모두가 같은 위대한 작업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직은 말하고 쓰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목표와 야심적인 목적을 위하여 두 가지 소통 방법이 쓰여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인류가 비전을 보게 만들어 줄 그런 신비한 구절들을 말하려고 하고, 그들의 소리가 들리도록 노력하는 소수의 진정한 창조자들이 있다. 이렇게 요즘 시대 신의 맑은 빛을 차단하는 상념태 구름들이 결국에는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 주제를 여기서 확장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러나 지성적인 독자가 마법 작업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루게 하는 어떤 생각으로 데려다 줄 그런 제시들을 하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지식에서 발전을 이룬 만큼 지금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는 것을 알면서 낙관적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언어와 말, 강연과 책들의 현재의 혼란에서, 인간의 가슴 속에서 메아리를 발견할 몇 가지 명확한 개념들이 확실히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새로운 시대(뉴 에이지)로 안내되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말이 사라질 것이고 책들이 무효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관적인 의사소통의 선들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텔레파시 교류에서 소음이 억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쓰여진 말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눈을 통해서 주관적인 청각이 기록한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빛과 색깔의 상징들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지어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 단계들이지만, 그 날까지는 아직 멀었다.
진리를 가능하면 간단하게 표현하면, 많은 언어와 책이라는 복잡성을 통해서, 이제는 생각들이 형태를 취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들의 활동 주기를 보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고대 기름에 심지로 담가서 불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지식 영역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방법이다. 전기 불이 그것을 대체하였고, 언젠가는 진정한 텔레파시 소통과 비전이 언어와 글들을 대체할 것이다.
같은 개념을 진정한 비전 작업 영역으로 가져가면, 우리는 사고 물질(thought-matter) 속에 있는 작업자가 “경계선(ring-pass-not)” 안에서 그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상념태를 만들며 “생명들을 가두는 것을” 보게 된다. 그의 정신의 관심과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향해 있는 동안 그 상념태는 지속된다. 그는 상념태가 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그것이 세워진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창조된 그 목적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말들을 외치게 될 것이다. 창조 작업에서 사용된 말들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주어진 모든 것이 칠중구조의 성음(sevenfold sacred Word), 옴(AUM)이다. 이것을 멘탈계에 있는 혼이 올바르게 사용할 때, 모든 상념태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촉진하며, 그래서 성공적인 큰 작업을 만들어낸다. 아틀란티스 시대에 사용된 말이 타오(TAU)였고, 폭발적으로 너무 강력하게 사용되어서 이렇게 활기가 불어넣어지고 촉진된 상념태들이 필연적으로 부메랑처럼 작용하였으며 그것들을 내보낸 자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 타오(TAU)는 마찬가지로 그 상징적 형태에서 윤회(reincarnation)의 상징이다. 그것은 형태의 사용을 만들며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형태 속에서의 재탄생을 일으키는 형태를 향한 욕망이다. 고대 아틀란티스 문명을 휩쓸고 간, 결국에는 물로 압도해버린 것도 타오(TAU)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옴(AUM)을 사용한 소수는 욕망의 힘을 상쇄하기에는 강력하지 못하였다. 인류의 마인드 체들이 그 새로운 창조적인 소리에 반응할 수 없었다. 소유와 형태를 즐기려는 합쳐진 욕망이 인간을 비의적으로 “물 속으로(into the waters)” 몰아붙이는 그런 정도로 인류는 여전히 갈망과 욕망에 전적으로 휩쓸리고 있다. 타오(TAU) 영향력이 소진되고 옴(AUM) 소리가 지배할 수 있을 때까지 형태를 향한 욕망이 재탄생의 지속적인 과정을 인류에게 강요하고 있다. 전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고, 옴(AUM)의 힘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배적인 인자가 될 것이다. 옴(AUM) 소리가 전적으로 대체될 때까지, 혼의 소리가 결국에는 옴 소리를 승계해야만 한다.
많은 물(many waters)의 소리가 (타오(TAU) 영향력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방법) 멈출 것이고, 기독교 성서에서 확인되었듯이, “더 이상 바다가 없게 될 때”, 그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멘탈계 소리이자 “맹렬히 타오르는 불의 큰소리(roaring of a blazing fire)”라고 상정적으로 말하는 옴(AUM) 소리가 그것을 대체할 것이다. 혼의 소리는 입문의 비밀 장소를 제외하고 어디에서도 주어질 수 없다. 그것은 독특한 진동과 음(note)을 가지고 있지만, 옴(AUM)이 정확하게 사용될 때까지 이것을 전해줄 수가 없다. 소유하고 존재하려는 충동과 욕망의 음을 실어 나르는 타오(TAU)가 오용되어 그 문명을 재앙으로 데려갔듯이, 옴(AUM)도 마찬가지로 오용될 수 있고 그 문명을 불 속으로 데려갈 수 있다. 이것이 지옥불과 불의 호수에 관한 잘못 이해된 기독교 가르침 근저에 있는 진리이다. 이전 문명이 물의 정점에 왔을 때 형태 측면과 관련하여 그랬듯이, 그것들은 멘탈계 문명들이 대변동의 끝에 오게 될 때 그 시대의 끝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자주 간과된 한 가지 힌트를 줄 것이다. 멘탈계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에 의한 마지막 종말에 대한 생각에는 시간 방정식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재앙이나 대변동을 정해놓은 시간이 없다. 그 충분한 영향이 마인드 계에서 일어날 것이고, 심지어 지금도 걱정과 예감의 불, 근심 그리고 두려움의 불이 우리 생각을 태우고 있으며 우리의 멘탈적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작업은 정화하고 청소하는 것이며, 그래서 옴(AUM)이 그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그대들 모두가 그것을 빈번히 그리고 올바른 생각으로 사용해서 세계 정화가 빠르게 진전되도록 하라.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원형의 형태들의 출현을 막는 많은 것을 태워야 하고 전소시켜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것이고 혼의 말씀을 소리 내고 외적으로 듣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서 준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위에 쓰여진 단락들은 부주의한 사람들에게는 경고를 그리고 빛을 추구하는 진실한 탐구자에게는 많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그리고 간략하게 다루고자 하는 이 단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다룰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두 가지만으로도 실질적인 제안을 갖기에 충분하고, 모든 곳에 있는 열망자들이 이해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들을 포함하기에 충분하다. 형태로 구체화된 생각들의 영향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어떤 구제하는” 생각을 두 가지 제목으로 커버하고자 한다. 멘탈적인 삶 동안 매일매일 만든 상념태로부터 열망자가 보호되어야 하고, 화신한 혼도 수 많은 세월 동안 성장하고 강력하게 된 그 형태의 부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하여 그가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주제를 다음과 같이 나눌 것이다:
I. 우리 자신들이 창조한 상념태들이 미치는 힘으로부터 구제.
II. 혼이 만든 삼중체(threefold body)의 힘으로부터 죽음이라고 부르는 마법 같은 해방을 통한 구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후자이지만, 상념태의 힘과 그것들의 위험, 그리고 그것들을 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방식에 관하여 어떤 것들을 말해야 한다.
상념태들로부터의 구원(Salvation from our Thought-Forms)
지금 나는 집중과 명상을 통하여 생각 속에서 힘을 얻어가는 열망자들을 위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사업, 과학, 종교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 방식에 일점지향적으로 적용하고 전념하여 마인드를 (감정이 아니라 정신을) 어떤 지속적인 활동의 선으로---거대한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신성한 활동의 일부분인---향하도록 해온 세계의 사상가들을 위하여 말한다.
바로 여기에 생각을 사용하는 속에서, 블랙 매직과 화이트 매직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그 동기가 수많은 생 동안, 자기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고, 개인적인 소유를 성취하는 것에 집중하여 왔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무엇이건 관계없이 오로지 자기자신의 쾌락과 만족의 성취를 지향하여 온 사람이 멘탈 질료 속에서 일하면서 이기심, 무자비함, 증오 그리고 잔인함의 특징을 나타낸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그런 관점으로 가는 방법은 성취하기가 쉽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 없이 물질성(materiality)으로 가는 길을 걷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점진적이고 꾸준한 그룹 의식과 책임의 성장, 개성아(personal self)의 소원들의 억제 그리고 사랑하는 영(loving spirit)의 현현이 신성한 전체(divine whole)의 생명 편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룬다.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주요 그룹으로 인간이 나누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1. 광대한 대다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단순히 생각 없이 진화의 파도 속에 잠겨있으며, 진정한 자기 의식과 필요한 도구를 계발하는 작업 속에 있다.
2. 아주 적은 소수는 분명히 물질성 측면 혹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악의 측면에서 분명하게 의식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들은 물질계에서 강력하지만, 그들의 힘은 일시적이고 영원하지 않다. 우주의 법칙은 사랑의 법칙으로 영원히 그들과 싸우고 있으며 겉으로 보이는 악에서 선이 나올 것이다.
3. 상당히 많은 수의 혼의 왕국의 개척자들로, 새로운 시대 사상들의 주창자들이고 인류에게 드러날 그 측면의 영원한 지혜(Ageless Wisdom)의 수호자들이다. 이 그룹은 모든 분야에 있는 이타적이고 지성적인 사람들, 열망자들과 제자들, 다양한 그룹과 유형들의 음(note)을 내는 입문자들 그리고 오컬트 하이어라키 그 자체를 구성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룹의 신비가들과 지자들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고 그것과 협력하여 일하는 기회를 얻기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시기보다도 요즘 시기가 더 쉽다.
첫 번째 그룹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두 그룹은 생각하기 시작하고 사고의 법칙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열망자가 생각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생각에 대한 많은 것을 [우주 불에 관한 논고(A Treatise on Cosmic Fire)]에서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보통 열망자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적인 생각들과 제안들을 제시하려고 한다.
먼저 아무리 진실하고 헌신적인 열망자라 할지라도 그가 잘못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이미 초인이다. 모든 열망자들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여전히 우울과 심지어 증오하기도 한다. 종종 그 성질과 증오가 소위 정당한 원인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서 일어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당함, 인류와 동물에 대한 잔인함 그리고 그들 동료의 혐오와 사악함이 그에 상응하는 반응들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많은 고통과 지체를 일으킨다.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만약 열망자가 동료 속에서 혐오를 일으킨다면, 만약 그가 그를 성내게 만든다면, 그리고 만약 그가 반감과 적대감을 갖고 만난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완전하게 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아직도 문제의 씨앗들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는 대로 받고, 우리의 활동, 그것이 육체 활동, 감정 혹은 정신 활동에 따라서 반응들을 만든다는 것이,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입문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 경우가 다르다. 그가 전달하려는 씨앗 생각(seed ideas), 그가 하도록 위임 받은 작업, 그가 진전시키려는 개척 사업이 그가 밝히는 진리의 올바름과 대의의 아름다움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종종 그렇게 만든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문제가 되지만 그에게 책임이 없는 그런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적대감은 인류의 헌신자들과 반발자(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들로부터 오고 어떤 생각(개념)의 대표자로서 그에게 집중되더라도 대체적으로 그것은 개인과는 관련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선 이런 고귀한 혼들을 다루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더라도 종종 잘못 사고하는 영원한 지혜의 학생들을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위 성질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기심과 사랑의 결핍에 바탕을 둔 그런 반응들에 의해서 사고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열망자들이 배울 필요가 있는 세 가지 교훈이 있다.
첫째, 그가 만드는 모든 상념태는 어떤 욕망 혹은 어떤 감정의 충동 하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드문 경우에 어떤 환한 깨달음(illumination)의 빛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직관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인드 물질을 활동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충동(motivating impulse)은 선하건 악하건, 혹은 이기적이건 혹은 이타적이건, 강력한 욕망 혹은 감정적인 것이다.
둘째, 그렇게 만들어진 상념태가 여전히 그 자신의 오라 속에 남아 있거나 어떤 감지된 대상을 향해서 찾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경우, 그것은 그의 멘탈 오라를 구성하거나 그를 완전히 둘러싸는 그런 상념태들의 조밀한 벽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것에 관심을 둠에 따라서 그것이 점점 더 강력해져서 결국에는 너무 커져서 실재로부터 그를 차단하거나 혹은 그것이 너무 역동적이고 강력해서 자신이 만든 그것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 상념태가 창조자보다 더 강력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가 그 자신의 생각들에 의해서 사로잡히고 자기자신의 창조물에 의해서 휘둘리게 된다. 두 번째 경우, 그의 상념태가 다른 사람의 멘탈 오라 속으로 혹은 어떤 그룹 속으로 찾아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사악한 마법 작업의 씨앗들과 강력한 정신이 약한 정신에 부과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 그것이 어떤 그룹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같은 진동율 혹은 진동 강도를 갖는 비슷한 충동 형태들이 (그룹 오라 속에서 발견되는) 그것과 합칠 것이다. 그러면 개인의 경계선 속에서 일어났듯이, 똑 같은 일이 그룹 오라 속에서 일어날 것이다---그 그룹이 그 주위에 상념태들로 구성된 억제시키는(제약을 가하는) 벽을 세우거나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분파주의, 모든 광신주의 그리고 그룹 혹은 개인의 어떤 형태의 정신 이상에 대한 실마리를 보게 된다.
셋째, 그 상념태의 창조자가 (여기서는 열망자) 여전히 책임을 갖고 있다. 그 형태는 그의 살아 있는 목적에 의해서 그래서 그 결과의 카르마에 의해서 여전히 그와 연결되어 있고, 그가 만든 그것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작업도 그의 몫이다. 이것은 그것이 선하건 악하건 구체화된 모든 생각에 적용된다. 그것들 모두의 창조자가 그 창조물에 책임이 있다. 예를 들면, 대스승 예수(Master Jesus)는 여전히 우리가 기독교 교회라고 부르는 그 상념태를 다루어야만 하고, 할 일이 많이 있다. 크리스트와 붓다도 여전히 완수해야 할 어떤 완벽한 작업을 갖고 있다. 비록 그것들이 그분들이 선언한 원리들을 구체화하는 형태들이라기 보다 그런 원리들을 적용하여 진화해가는 혼들과 관련 있는 것이더라도.
하지만 여전히 사고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 열망자의 경우, 그 문제가 다르다. 그는 여전히 실재 아이디어들(ideas)을 잘못 이해한 것을 구체화시키기 위하여 사고 물질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여전히 사고의 힘을 통해서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여전히 그의 개성의 욕망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마인드 물질을 사용하려고 한다. 모든 진실한 열망자가 이것의 증인이다.
만들어진 아이디어들을 보호하고 생각들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그대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떤 생각들은 멘탈 물질이 입혀진 아이디어(ideas)이고 그것들의 거주지를 사고 물질의 세계에 두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추상적인 개념들이고 사고자의 정신을 지나가는 거의 감지되지 않은 내면의 오컬트 삶 혹은 신비한 삶에 대한 사실들이다. 그것들을 보호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진동이 너무 고귀하고 가벼워서 그것들을 멘탈 물질로 적절하게 입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수들도 너무 드물어서 그런 진술이 어리석게 알려질 위험도 그렇게 크지 않다.
그리고 오컬트 가르침과 관련된 의사소통들이 있다. 그것들을 이해하는 사람들 범위가 어느 정도 넓어지고 있으며 이 상념태들은 학생의 지식만큼이나 중요한 그룹 지식을 그룹과 공유하고 확인하며 확실하게 보완하기 위하여 종종 학생의 가슴 속에 있는 욕망으로부터 아스트랄 물질을 가져온다. 어떤 때는 이것이 가능하고 또 어떤 때는 가능하지 않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면 보호 방법은 무엇일까? 대체적으로 아스트랄계 물질이 멘탈 상념태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거부하는 것이다. 욕망계 수준에서 그 물질과 끝까지 싸우고, 그런 유형의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라. 말하려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핵 주위로 물질이 모이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열망이 존재하는 곳에서, 간섭하고 보호하는 또 다른 상념태가 만들어진다.
여전히 또 다른 유형의 상념태가 나온다---이것은 가장 널리 퍼져있고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들은 정보를 제공하는 어떤 사실들, 자세한 자료, 가십(gossip)으로 퇴보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뉴스이며, 그것이 그대 작업과 관련 있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대의 정신이 이 같은 사실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까? 이것들은 물질계에서 시작된 사실들이기에, 그래서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오컬트 삶의 내면의 사실들과 멘탈계에서 시작한 것들을 숨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그대의 진동이 충분하게 높을 때까지 그대의 길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될 때, 충분한 안정성과 지혜를 갖춘 인격이 같이 따라온다. 그러나 물질계 사실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른 생각들은 위에서 내려 온다; 이것들은 물질계로부터 위로 작용하고 많은 사람들, 종종 현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지식으로 그 생명력이 커진다. 한 가지 종류가 흐릿하게 멘탈계에서 시작하면, 최고 유형의 마인드가 그것을 명확하게 서술할 수 있고, 기하학적으로 정확하게 물질로 그것을 입힐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인드는 종종 그것을 아스트랄 물질로 입히는 것을 거부하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다. 물질계 사실과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대가 처음 만나서 접촉할 때 아스트랄계와 멘탈계 물질로 입혀진 하나의 활기 있는 실체이다. 그것을 활성화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제지할 것인가? 연관된 당사자를 위하여 그 상념태를 둘러싸는 사랑의 파도와 쇄도로 그것을 제지하고 솟아오르는 아스트랄계 물질의 날개 위에 실어서 충분히 강력하게 휩쓸어가도록 하면서 그것을 창시자에게 돌려보내라. 그리고 아마도 분해하면서 그러나 가장 확실히 무해하게 그것을 보낸 사람에게 돌려보라. 아마도 그것은 사악한 정보 조각이거나, 거짓 혹은 가십거리일 것이다. 그것을 사랑으로 활기를 약화시키고, 평화와 조화의 대응하는 상념태의 힘으로 그것을 산산조각 부숴라.
혹은 그것이 오해한 형제의 슬픈 혹은 나쁜 사건이거나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실의 활기를 약화시키거나 분해시킬 수 없다. 여기서 흡수의 법칙(Law of Absorption)이 도와줄 것이다. 그대의 가슴 속으로 그대가 만난 상념태를 흡수하여 거기서 그것을 사랑의 연금술로 변형시켜라.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 실질적으로 설명하겠다.
어떤 형제가 그대에게 와서 다른 형제에 대한 어떤 사실---잘못 행위에서 그 형제의 역할에 대한 사실---을 그대에게 말할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그대는 소위 잘못 행위라는 것이 카르마의 작용이거나 잘못 이해한 선한 동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대는 그 말에 덧붙이지 않고, 그 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며, 그대로서는 그 사실 주위로 새워진 그 상념태가 막다른 골목으로 방황하여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대는 겉으로 보기에 실수하는 형제에게 그대가 (사랑의 파도 위로) 보내는 생각들의 대응 흐름을 만든다: 다정한 도움, 용기와 열망의 생각들과 그가 성취한 행위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들을 현명하게 적용하는 생각들. 힘을 사용하지 마라. 왜냐하면 강력한 사고자들이 다른 마인드들에 과도하게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고, 현명하게 변형시키는 사랑의 부드러운 흐름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세 가지 방법들이 있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도 엄밀하게 오컬트 방법이 아니라 다수에게 이용가능한 방법들이다. 왜냐하면 오컬트 방법들은 나중에 주어질 것이다.
1. 멘탈 수준에서 유지된 상념태로, 예를 들면, 아스트랄 물질의 억제.
2. 잘 안내된 사랑-힘의 흐름에 의해서 분해되고 해체된 상념태.
3. 상념태의 흡수와 사랑하는 지혜의 대응 생각을 만드는 것.
억제(Inhibition) —분해(Disintegration) —흡수(Absorption)
사고 질료를 잘못 사용하는데 세 가지 주요 처벌이 있고, 열망자는 이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하고 그런 활동들을 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구제 과정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1. 강력한 상념태는 부메랑처럼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이 증가된 가속으로 그것을 내보낸 사람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 멘탈 물질을 입은 강력한 증오가 증오하는 사람의 에너지를 가지고 그 창조자에게 되돌아와서 열망자의 삶에 해를 입힐 수 있다. 증오하지 마라. 왜냐하면 증오는 그것이 온 곳으로부터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고대 격언에 심오한 진리가 있다: “저주하면 제게 화가 돌아온다.”
물질 소유를 향한 강력한 욕망은 궁극적으로 바래왔던 그것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면서 되돌아올 것이다. 단지 대부분의 경우에 열망자가 더 이상 소유하기를 갈망하지 않고, 그것을 어떤 큰 걱정거리로 간주하거나, 그 동안에 이미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소유해서 충분히 만족해하고 이미 얻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다.
영적 깨달음 혹은 대스승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열망을 구현하는 강력한 상념태는 열망자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는 그런 빛의 홍수를 가져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가 준비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는 풍부한 영적 에너지 소유자로 만들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분들 중에 어느 한 분에 대한 상념태를 열망자에게 끌어올 수도 있어서, 그를 환영과 아스트랄주의(astralism) 세계로 점점 더 깊게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진정으로 올바르게 상념태를 만들고자 한다면, 겸손이 필요하고, 봉사하려는 갈망과 결과로 일어나는 자기망각(self-forgetfulness)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다.
2. 상념태는 또한 유독한 인자(poisoning agent)로 작용할 수 있고, 모든 생명의 샘을 중독시킬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창조자 오라에서 나와서, (매우 극소수의 상념태들이 그렇다) 다른 오라 속에서 그 목표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얻어서 그것이 온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그것은 열망자의 삶을 파괴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활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격렬한 증오, 갉아먹는 걱정, 질투, 지속적인 근심 그리고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것을 향한 갈망이 거슬리게 하는 것 혹은 독으로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어서 전체 삶을 망치게 되고, 봉사를 소용없게 만들 것이다. 전체 삶이 구체화된 걱정, 증오 혹은 욕망에 의해서 쓰라리고 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가 쓸모 없게 되거나 심지어 분명하게 해를 주게 된다. 왜냐하면 걱정하고 의심하는 열망자가 어떤 아이디어에 의해서 지배되는 그의 내면의 독성을 가진 태도로 가정이나 친구들 그룹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혼과의 관계 그리고 영적 아이디어들 세계와의 접촉의 힘이 멈추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앞으로 진보할 수 없고 그 자신의 멘탈 체계 속에 있는 독성 때문에 방해 받기 때문이다. 그의 시야(vision)가 점점 왜곡되고, 그의 성질이 부식되며, 그의 모든 관계가 그 자신이 형태 속에 구체화시켰으며, 너무 강력한 생명을 가져서 그를 지치게 만들고 불평하며 그런 생각들로 방해 받아서 그것들이 그를 독으로 죽일 수 있다. 그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그 문제의 원인을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하더라도, 그는 그것들을 자신에게서 제거할 수 없다. 이것이 가장 공통된 형태의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기적인 개성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고, 그리고 종종 너무 유동적(fluidic)이어서 직접적인 행동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 열망자가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세 번째 위험은 그 자신이 구체화시킨 아이디어들(ideas), 그것들이 일시적으로 옳거나 기본적으로 틀리더라도, 그것들에 의해서 점점 더 사로잡히게 된다. 모든 올바른 아이디어들(ideas)은 자연 속에서 일시적이고 결국에는 부분적으로 올바른 것들로 그 위치를 차지해야 하며 더 거대한 진리에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오늘의 사실이 나중에 더 거대한 사실의 일부분으로 이해된다. 어떤 사람이 영원한 지혜(Ageless Wisdom)의 작은 원리들 중에 어떤 것들을 너무 명확하게 이해해서 그것들이 맞다는 것을 너무 확신할 수 있어서 더 큰 전체를 잊어버리고 그가 이해한 부분적인 진리에 대한 어떤 상념태를 만들게 되어 그것이 어떤 구속이 되어 그를 죄수로 잡아두고 그가 진보하는 것을 제지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너무 확신해서 다른 사람의 진리를 볼 수 있다. 그는 진리가 무엇일지에 대하여 그 자신이 구체화시킨 개념의 실재에 대하여 너무 확신해서 그 자신의 두뇌의 한계를 망각하고 진리가 그 자신의 혼을 거쳐서 오고 그의 광선에 의해서 채색되며 결과적으로 분리시키는 개성의 마인드에 의해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망각한다. 그는 그 작은 진리를 위해서만 산다; 그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그는 그의 상념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그는 사로잡힌 광신자가 되고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그가 제정신이라고 여기더라도 그렇게 멘탈적으로 균형을 잃게 된다.
이런 위험들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그가 어떻게 올바르게 만들 것인가? 그가 진리를 보고, 올바르게 판단해서 그의 혼과 그리고 그의 동료들의 혼과 멘탈적인 접촉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균형을 그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우선 가장 먼저, 무해함(Harmlessness)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에서 그리고 또한 생각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행동에서 무해함을 실천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것은 적극적인 무해함으로 꾸준한 활동과 경계가 수반된다; 그것은 소극적이고 유동적인 인내가 아니다.
둘째, 생각의 문들을 매일 경계하고, 사고의 삶을 감시(supervision)하는 것. 어떤 선의 사고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구식의 사고 습관들이 건설적 창조적 사고를 도입함으로써 상쇄될 것이다; 어떤 사전에 인지된 생각들(preconceived ideas)이 (그 구절의 비전적 가치에 주목하라) 뒤로 물러날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지평들을 우러러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매일매일, 매시간 경계해야 하는 것을 수반하고, 과거 습관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리듬이 형성될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열망자는 마인드가 새로운 영적 아이디어들에 너무 집중해서 오래된 상념태들이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은 기아로 죽을 것이다. 이 생각에는 격려가 들어있다. 첫 3년의 작업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 후에 마인드가 상념태가 아닌 그 아이디어들에 몰두할 것이다.
셋째, 어떤 사람의 생각 속에 사는 것을 거부하고, 아이디어들의 세계와 인간의 사고 추세의 흐름으로 들어감으로써. 아이디어들의 세계가 혼의 세계이자, 상위 마인드의 세계이다. 인간의 생각들과 의견의 흐름은 대중 의식의 흐름이고 하위 마인드의 흐름이다. 열망자는 두 세계 속에서 자유로이 활동해야만 한다. 이것을 신중하게 주목하라. 그 생각은 그가 더 능숙(facility)하다는 생각이 관련되어 자유롭게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속에서 자유 인자(free agent)로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꾸준한 매일매일의 명상을 통해서 그가 첫 번째 것을 할 것이다. 폭넓은 독서와 공감하는 흥미 그리고 이해를 통해서 그가 두 번째 것을 성취할 것이다.
넷째, 그는 자신의 생각의 창조물들로부터 자기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가 목적을 위해서 그것들을 지성적으로 내보낸 바로 그 목적을 성취하도록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한다. 이 네 번째 과정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어떤 구체화된 아이디어를 그의 사고 오라 속에 잡고 있는 그 연결고리를 그가 자르는 어떤 신비한 구절을 사용함으로써.
2. 일단 그가 그것을 내보내서, 바가바드 기타에 있는 교훈을 배우고 “집착 없이 일하면서(work without attachment)”, 그의 마인드를 그 아이디어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이 두 가지 요점은 열망자의 위치와 성장에 따라서 다양할 것이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절단시키는 구절(severing phrase)”을 만들어서 표현해야 하고, 그는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그런 노력 속에서 일하는 삼계로부터 각자가 혼자 도움 없이 눈을 돌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는 그가 혼으로서 살면서 영적 에너지가 그를 통해서 쏟아져서 그의 상념태가 그 영적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그 작업을 수행한 것을 알면서, 그 생각이 구체화되어 있는 바로 상념태로부터 그의 관심을 거두는 것을 스스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개성의 욕망이 아닌 혼의 생명에 의해서 뭉쳐진다. 유형의 결과는 상념태 속에 구체화되어 있는 그의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 영적 충동의 강도에 달려있다. 그의 작업은 물질적 효과들의 세계에 있지 않고 아이디어들의 세계에 있다. 물질적 측면들이 자동적으로 영적 충동들에 반응할 것이다.
죽음으로부터의 구원(Salvation from Death)
이제 우리는 규칙 11의 마지막 구절을 연구하는 두 번째 단계까지 왔다. 우리는 멘탈계에서 인간이 상념태를 창조하는 것을 배웠거나 배우는 데 수반하는 위험들로부터의 구제를 다루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관점에서 많은 것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확한 사고는 감정적 성질의 모든 반응들과 활동들로부터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과 관련 있다. 아스트랄체가 안절부절못하는 움직인 속에 있는 한, 그리고 그 무드와 느낌, 욕망 그리고 감정들이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동안, 긍정적이고 순수한 생각 과정이 불가능하게 된다. 집중과 명상의 가치에 대한 더 일반적인 이해가 있는 때가 올 때까지, 그리고 마인드 성질과 그 변형태들이 더 보편적으로 이해될 때까지, 이 주제에 대한 더 심오한 가르침이 소용 없을 것이다.
이 가르침에서 비전 심리학(esoteric psychology)의 첫 단계들에 대한 암시를 주고자 하였고, 아스트랄체의 수련에 대한 성질과 방식을 주로 다루어왔다. 금세기 후반에 마인드의 심리학, 그 성질과 변형태들이 더 자세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주제는 죽음의 과정을 통하여 체의 성질로부터의 구제이다.
우리가 이 구제 방법을 연구하려고 할 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체의 성질(body nature)은 통합된 개성(integrated personality) 혹은 육체, 활기 혹은 매개체, 욕망 성질의 물질(혹은 존재 방식) 그리고 마인드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의 도구를 의미한다. 이것들은 화신한 혼의 외적 형태 혹은 외피들을 구성한다. 의식 측면이 종종 이것 중에 어느 하나에 집중하거나 혹은 형태와 동일시하거나 혼과 동일시한다. 보통 사람은 육체와 아스트랄체 속에서 자의식을 갖고 능숙하게 활동한다. 지성적이고 고도로 진화한 사람은 이 두 가지에다 그의 멘탈 도구, 비록 기억이나 분석 측면 같은 멘탈 도구의 어떤 측면일지라도, 그 도구의 의식적 통제를 부가한다. 그는 또한 어떤 경우에 이 세 가지를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개성으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열망자가 개성에 활기를 불어넣는 생명 원리에 대한 어떤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고, 제자는 세 가지 모두를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혼, 정신 그리고 두뇌를 조정 혹은 정렬시켰고, 그의 주관적인 도구 혹은 에너지 측면들을 가지고 일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구제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신비한 경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일어난다. 이것이 우리 주제가 될 것이고, 그 주제는 너무 광대해서 열망자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선을 제시할 수 있고, 나중에 그가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전제들을 상정할 수만 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주로 육체의 죽음으로 제한할 것이다.
먼저 모든 형태들이 따라야 하고 종종 몹시 무서워하는 끝---무서워하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인 이 신비스러운 과정을 정의하자. 인간의 마인드가 거의 계발되지 않아서 미지에 대한 두려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 그리고 형태에 대한 집착 때문에 화신하는 신의 자식(Son of God)의 생명 주기에서 가장 은혜로운 사건들 중에 하나를 가능한 한 피하고 미루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기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깨달을 수만 있다면, 죽음은 우리가 가장 자주 실천하는 활동들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많이 죽었고 반복해서 죽을 것이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의식의 문제이다. 우리는 한 순간 물질계에서 의식하고, 다음 순간에 다른 계로 의식을 거둬들여서 그곳에서 활동하게 된다. 우리 의식이 형태 측면과 동일시하는 한, 죽음이 우리를 공포로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혼으로 알고 그리고 우리 의식 혹은 인식을 어느 형태나 어느 계에 자유자재로 혹은 신의 형태 속에 있는 어느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되자마자,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모를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죽음은 사랑과 애정의 모든 표시들의 단절, 모든 육체 활동의 중단, 모든 인간 관계의 단절 그리고 미지 세계이자 두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수반하는 무시무시한 끝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익숙하고 친화적인 빛이 가득한 따뜻한 방을 떠나서, 혼자 공포에 사로잡힌 채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최선을 기대하면서 춥고 어두운 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일 밤 수면 시간에 우리가 물질계에서 죽고 다른 곳에서 살아 있고 활동하는 것을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이미 물질계를 떠나는 것에 능숙하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나가는 기억과 뒤에 따라오는 활동인 삶의 기간에 대한 기억을 물질계 두뇌 의식으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과 수면을 연관시키지 못한다. 결국 죽음이란 물질계에서 활동하는 삶의 더 긴 간격에 불과하다; 그가 더 긴 기간 동안 “집 밖으로 나간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수면 과정과 가끔 죽는 과정은 동일한 것이지만, 한 가지 차이는 수면에서 생명력이 흐르는 자성 줄(magnetic thread) 혹은 에너지 흐름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육체로 돌아오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죽음에서는 이 생명줄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의식하는 실체는 조밀한 육체로 돌아올 수 없고 그 체는 응집성(coherence)의 원리가 없어서 해체된다.
존재하고 행동하려는 영적 결심(determination), 즉 혼의 목적과 의지가 혼줄(thread soul), 수트라트마, 생명 흐름(life current)을 형태 속에서 그 표현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생명 흐름은 육체에 도달할 때 두 가지 흐름 혹은 두 가지 줄로 분화되고,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지만, 그 체의 두 가지 위치에 “닻을 내린다.” 이것은 아트마(Atma) 혹은 영이 두 가지 반영인 혼과 체로 분화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을 이성적이고 사고하는 실체로 만드는 혼 혹은 의식 측면은 이 혼줄(thread soul)의 한 측면을 송과선 근처에서 발견되는 두뇌 속에 있는 어떤 “자리(seat)”에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체의 모든 원자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응집성(coherence) 혹은 통합성(integration)의 원리를 구성하는 그 생명의 다른 측면이 심장으로 가서 그곳에서 집중하거나 “닻을 내리고 있다.” 이 두 지점으로부터 영적 인간이 그 도구를 통제한다. 이렇게 물질계에서 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객관적인 존재가 일시적인 표현 방식이 되는 것이다. 두뇌에 자리 잡은 혼은 인간을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실체로 만들며, 자의식적이고 자기 결정하는(self-directing) 존재로 만든다; 그가 사는 세계의 다양한 정도로, 그의 진화 지점과 그의 도구의 계발 정도에 따라서, 그는 인식한다. 그 도구는 표현에서 세 가지이다. 먼저 힘의 일곱 센터들과 모든 나디(nadis)가 있다; 그리고 신경계가 세 부분으로 있다: 중추신경계, 교감신경계 그리고 말초신경계; 그리고 내분비계로 다른 두 가지의 가장 조밀한 측면 혹은 외현화로 여길 수 있다.
심장에 자리잡고 있는 혼은 생명 원리이고,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 원리이며, 체의 모든 원자들을 적합한 위치에 있도록 유지하고 혼의 “존재의지(will-to-be)”에 따르도록 하는 양 에너지(positive energy)의 중심 핵이다. 이 생명 원리는 혈관계를 그 표현 방식이자 통제 대리인으로 사용하고, 내분비계와 혈관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혼에 의해서 지배되는 살아있고 의식적이며 기능하는 실체와 매일 매일의 모든 활동들 속에서 혼의 목적을 표현하는 것을 합치게 만든 혼의 활동의 두 가지 측면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은 글자 그대로 이 두 가지 에너지 흐름을 심장과 두뇌로부터 거둬들여서, 결과적으로 의식을 완전히 상실하고 체의 해체를 만들게 된다. 죽음이 수면과 다른 것은 두 가지 에너지 흐름을 거둬들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수면에서는 두뇌 속에 닻을 내린 에너지 줄만이 거둬들이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의식 혹은 인식 감각이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이 더 이상 유형의 사물들과 물질로 향하지 않고 존재의 다른 계로 돌려서 또 다른 도구 속에서 집중하게 되었다. 죽음에서는 두 개 줄이 거둬들여지거나 생명 줄 속에서 통합된다. 활기가 혈관의 매개체를 통해서 침투해 들어가지 않고 두뇌가 기록하지 못하듯이 심장이 활동하지 못하고, 이렇게 침묵이 내려앉는다. 집에 비워졌다. 물질 그 자체의 특권이자 부패 과정에서 그 자체를 표현하는 그 놀라운 즉각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활동이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에서 그 과정은 물질인 만물과의 인간의 통일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가 자연 자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고 여기서 자연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의 체를 의미한다. 그 삼계 속에---살아있는 것, 움직이는 것 그리고 존재하는 것---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존재하는 것(Being)은 인식(awareness), 자의식(self consciousness) 그리고 자기표현(self-expression)이고 인간의 머리와 두뇌가 이것의 외적인 상징들이다. 살아있는 것(Living)은 에너지, 형태 속에 있는 욕망, 응집성이고 어떤 아이디어에 부착(adhesion)이며 심장과 혈액이 이것의 외적인 상징들이다. 움직이는 것(Moving)은 존재하고 인식하며 살아 있는 실체가 보편적 활동에 반응하고 통합되는 것을 나타내며, 위, 췌장 그리고 간이 이것의 외적인 상징들이다.
비록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부수적이지만 저능(imbecility)과 백치의 경우 그리고 종종 노망(senile decay)이라고 부르는 고령 단계에서는 두뇌 속에 자리잡은 줄이 거둬들여졌지만, 반면에 생명 충동을 전달하는 그것은 여전히 심장 속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 생명은 있지만 어떤 지성적인 인식이 없다; 움직임은 있지만 어떤 지성적인 방향(결정)이 없다. 노망의 경우, 삶 속에서 사용된 높은 등급의 도구가 있을 때, 지성적인 기능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오래된 습관과 오랫동안 구축된 리듬 때문에 환영이며 조정되고 일관성 있는 목적이 아니다.
또한 죽음은 자아의 지시,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그 지시로 시작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자동적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혼이 그 관심을 거둬들일 때, 물질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생명 에너지와 이성(reason) 에너지 두 개 줄을 거둬들이는 죽음이거나 혹은 생명 흐름이 여전히 심장을 통해서 활동하도록 하면서 어떤 지성적인 인식이 없는, 정신의 특질을 가지 에너지 줄을 거둬들이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혼은 다른 곳에 몰두하고 있고 그 자신의 계에서 그 자신의 일로 바쁘다.
고도로 발달한 사람의 경우, 종종 죽음의 시기를 미리 내다보기도 한다; 이것은 자아 접촉과 자아의 소망을 인식하는 것에 수반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최후의 철수 순간까지 자기-결의(self-determination)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죽음의 날짜를 아는 것이 관련된다. 입문자들의 경우 이것 이상 훨씬 더 많이 있다. 철수(abstraction)의 법칙들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이것 때문에 과도기를 지나가는 사람이 육체로부터 의식적으로 그리고 온전하게 깨어 있는 인식 속에서 철수하여 아스트랄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의식의 연속성을 유지해서 물질계에서의 인식과 사후 상태의 인식 사이에 어떤 간격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도구 없이 물질계를 접촉할 수 없지만, 그는 그 자신이 이전 것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비록 그가 조밀한 물질계 매개체를 지각하거나 접촉할 수 없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들과 느낌 상태들을 인식한다. 그들과 서로 공명하면, 그는 아스트랄계에서 혹은 텔레파시적으로 마인드를 통해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계 오감을 사용하는 소통은 그에게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아스트랄적으로 멘탈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 긴밀하고 더 민감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는 육체의 핸디캡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가지가 이런 상호작용을 방해한다: 하나는 보통 사람의 경우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비탄과 격렬한 감정적 혼란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새로운 조건들을 맞닥뜨리면서 겪는 그 자신의 무지와 당황함이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사실 오래된 조건들이다. 일단 그가 죽음의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환영이나 히스테리 혹은 (그 자신과 같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만든) 그 자신의 상념태의 통제 하에서 말하는 보통 영매가 내린 결론에 토대를 두지 않은 그런 사후 상태에 대한 이해를 확고하게 세웠다면, 우리는 죽음의 과정을 적합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조건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어떤 관계의 상실이나 허위의 에너지 낭비가 없게 된다.
사람들을 화신하게 만드는 과학적인 방법과 우리가 그들을 화신에서 벗어나게 안내하는 완전하게 무지하고 종종 무서우며 확실하게 무지한 방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본인은 오늘날 서구에 죽는 과정을 다루는 더 새롭고 더 과학적인 방법을 열어 보이고자 하며, 내 자신을 완전히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이 임시방편들과 스킬을 가진 근대 의학을 결코 파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호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분별 있는 접근이다;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이 다 소진했고 허약함이 결과로서 일어났을 때, 죽어가는 사람이 위대한 과도기를, 심지어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 무의식적일지라도, 준비하도록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만들기 위해선 강인함과 신경계를 강력하게 움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죽는 행위가 인생의 의기양양한 피날레가 되는 때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임종에서 보낸 시간들이 의식적인 출구로 가는 영광스러운 서곡에 불과할 수도 있는 때를 그려보는 것이 불가능한가? 사람이 육체라는 외피의 핸디캡을 버린다는 사실이 그와 주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쁜 절정이 되는 때가 되는 것이 언제일까? 두려움과 눈물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대신에, 죽는 사람과 그의 친구들이 그 때를 서로 합의하고 이렇게 지나가는 것을 행복으로 특징짓는 그런 때를 그려볼 수 없을까? 남겨진 사람들 정신 속에서 비애의 생각이 들어오지 않고 임종이 탄생이나 결혼보다 더 행복한 순간으로 여겨질 수 있는 그런 때를 그려볼 수 없을까? 그대들에게 말하는데, 머지 않아서 이것이 인류의 지성인들에게 아주 깊게 그렇게 될 것이고, 조금씩 조금씩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될 것이다.
불멸에 대하여 아직은 믿음들만 있고 어떤 확실한 증거들이 없다고 그대는 말할 것이다. 확실한 암시가 증언을 축적하고, 인간의 가슴의 내적인 확신 속에,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어떤 아이디어로서 영원한 지속성에 대한 믿음 속에 놓여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기 전에, 암시가 확신과 지식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고 희망을 확신으로 믿음을 지식으로 바꿀 어떤 계시가 인류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배양하고 죽음에 대한 새로운 과학이 시작을 알리도록 하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서 필연적으로 우리를 좌절시키는 그런 것이 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쪽으로 우리가 넘어가는 것을 통제하고 어느 정도 과도기의 기술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이 주제를 상당히 자세하게 다루기 전에, “두뇌 속에 있는 그물망(web in the brain)”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그것은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깨달은 입문자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인간의 체 속에서 우리는 육체에 대응하는 근본적이고 상호 침투하는 활기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육체보가 더 크며 우리가 에텔체(etheric body) 혹은 에텔 복체(double)라고 부른다. 그것은 힘센터들과 나디 혹은 힘의 줄(force threads)들로 이루어진 에너지체(energy body)이다. 이것들은 신경 도구---신경들과 신경절---의 대응체이거나 그 근저에 놓여 있다. 인간의 활기체 두 곳에 생명력이 나가는 구멍들(orifices of exit)이 있다. 하나는 태양신경총에 있고 다른 하나는 머리 정수리에 있는 두뇌 속에 있다. 서로 얽혀 있는 생명 에너지의 줄들로 구성된 에텔물질로 이루어진 촘촘히 짜여진 망이 이 두 군데를 보호하고 있다.
죽음의 과정 동안, 그 망을 때리는 생명 에너지의 압박이 결국에는 구멍 혹은 천공을 만든다. 철수하는 혼의 영향력의 힘이 커갈수록, 이곳으로부터 생명력이 쏟아져 나온다. 동물들, 아기들 그리고 육체와 아스트랄체에 전적으로 분극화되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출구가 태양신경총이고 천공되는 것이 바로 그곳의 망이며, 이렇게 나가게 된다. 멘탈 유형, 더 고도로 진화한 사람들의 경우, 파열되는 것이 숨구멍 영역의 정수리에 있는 망이고, 이렇게 사고하는 이성적 존재가 나가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심령가들과 영매들 그리고 하위 투시가들의 경우, 태양신경총 망이 삶 초기에 영구적으로 파열되어서, 트란스로 들어가고 아스트랄계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은 육체에 쉽게 들어가고 나간다. 그러나 이런 유형들에게는 의식의 연속성이 없고 그들의 물질계 존재와 그들이 트란스 상태 속에 있을 때 말하고 깨어난 의식 속에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실행이 횡격막 아래에 있고 주로 동물 의식의 생명과 관련 있다. 의식적인 투시와 상위의 심령가들과 투시가들의 작업에서는 어떤 트란스나 사로잡힘 혹은 영매가 없다. 천공되는 것이 두뇌 속에 있는 망이고 그 영역에 있는 구멍이 빛, 정보 그리고 영감의 유입을 허용한다; 또한 그것은 동물 성질의 트란스 상태에 대한 영적 상응인 사마디 상태 속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므로 죽음의 과정에서 이것들이 두 가지 주요 출구들이다: 아스트랄적으로 분극화되고, 육체적으로 편향된 사람 그래서 대부분의 인류는 태양신경총으로 그리고 멘탈적으로 분극화되고 영적 지향인 사람은 머리 센터로. 이것이 기억해야 할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삶의 성향의 추세와 삶의 관심의 집중이 죽을 때 나가는 방식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쉽게 볼 것이다. 또한 아스트랄적 삶과 감정 성질을 통제하려는 노력과 자아를 멘탈계로 그리고 영적인 것들로 향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죽음 과정의 현상적인 측면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학생이 명확하게 생각한다면, 한쪽 출구는 영적이며 고도로 진화한 사람과 관련 있고, 다른 출구는 동물 단계를 거의 넘어서지 못한 하위 등급의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해질 것이다. 그럼 보통 사람은 어떨까? 지금 세 번째 출구가 일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장 센터 꼭대기 바로 밑에 출구를 커버하는 또 다른 에텔 망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1. 세계에 있는 지성적 유형들, 제자들과 입문자들이 사용하는 머리 속에 있는 출구.
2. 선한 시민이자 지성적인 친구 그리고 박애주의적 일꾼인 친절하고 선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심장 속에 있는 출구.
3. 동물적 성질이 강력한 사람들과 감정적이고 우둔하며 생각 없는 사람이 사용하는 태양신경총 부위에 있는 출구.
이것이 다음 세기에 서구에서 서서히 일반적인 지식이 될 새로운 정보의 첫째 요점이다. 동양에 있는 사상가들은 이미 그것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죽음의 과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첫 단계의 성질이다.
이해해야 할 두 번째 요점은 죽는 기법과 그 기법을 사용하도록 이끄는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수련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따를 수 있는 수련과 관련하여, 모든 열망자들이 지금 하는 많은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힌트를 줄 것이다. 오랜 세기에 걸쳐서 인류를 안내해온 인류의 맏형들은 사람들이 밟게 될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느라 지금 바쁘다. 이 단계는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물질계와 아스트랄계를 매우 긴밀한 관계로 연결시켜서 그 두 계가 사실상 하나의 계를 구성하도록 만드는 의식의 연속성을 가져올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 하나됨이 일어났듯이, 마찬가지로 행성 생명의 다양한 측면들과 관련하여 비슷한 통일(unification)이 일어나야 한다. 혼과 체뿐만 아니라 세계들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에텔계와 물질계 사이에 이미 이것을 대체적으로 이루었다. 이제 물질계와 아스트랄계 사이에 이것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인간의 사상과 삶의 모든 부문에 있는 탐구자들이 하고 있는 작업 속에서 이런 통일이 진행되고 있고 정직하고 성실한 열망자들에게 제시된 수련 속에 혼과 체의 하나됨을 만드는 하나의 목적 이상의 다른 목적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못된 목적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능력 때문에, 그것들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는다. 이제 어떤 리듬을 세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따른다면 삶 자체가 조직화되고 건설적일 뿐만 아니라, 외피를 비워야 할 때가 왔을 때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규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지금 하고 있는 많은 것을 연결시키는 네 가지 간단한 규칙들을 제시할 것이다:
1. 시각화와 명상을 통해서 그리고 지속적인 집중 실천을 통해서 머리 속에 집중을 유지하는 것을 배워라; 미간 사이 왕좌에 앉아 있는 왕으로서 사는 역량을 점점 더 계발하라. 이것이 삶의 일상사에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다.
2. 다른 사람들의 일을 다루는 활동에 감정적인 주장이 아닌 가슴의 봉사를 제공하는 것을 배워라. 그런 모든 활동 전에, 이것은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관련 있다: 내가 이런 서비스를 개인으로서 개인에게 주는 것인가 혹은 어떤 그룹에 그룹 구성원으로서 주는 것인가? 나의 동기가 자아의 충동인가 아니면 감정, 빛나려는 야망과 사랑 받으려는 혹은 존경 받으려는 사랑에 의해서 촉발된 것인가? 이 두 가지 활동들이 삶의 에너지를 횡격막 위로 집중하고 해줄 것이고 그래서 태양신경총의 끌어당기는 힘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센터가 점점 더 덜 활동하게 될 것이고 그 부분에 있는 망을 뚫는 위험이 없게 될 것이다.
3. 잠자려고 할 때, 의식을 머리로 거둬들이는 것을 배워라. 이것은 잠들면서 분명하게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이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잠들게 해서는 안되고, 아스트랄계로 의식적으로 지나갈 때까지 의식을 온전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긴장을 풀고 세심하게 주의하고 머리 속에 있는 센터로 꾸준히 끌어 올리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열망자가 잠들면서 모든 과정들을 꾸준하게 인식하고 동시에 긍정성(positivity)을 유지하는 것을 배울 때까지, 이 작업에는 위험이 있다. 첫 단계를 현명하게 시작해야 하고 거둬들이는 작업을 쉽게 성취할 때까지 많은 해 동안 따라 해야 한다.
4. 거둬들이는 과정과 관련된 모든 현상을 기록하고 경계하라. 그것이 명상 작업에서건 잠들면서건.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잠에 들었다가 처음에는 거의 고통스럽게 깨어난다는 것을 본다. 이것은 적절하게 깨끗하지 않은 망을 통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닫혀있는 구멍을 통해서 의식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에는 머리 부위에서 강렬하고 크게 툭 부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인식하지 못하는 머리 속에 있는 활력 공기(vital airs) 때문에 일어나며 그것은 항상 있지만 보통은 기록하지 못하는 소리를 인식하면서 일어나는 내적인 청각 민감성 때문에 만들어진다. 다른 경우들에는 잠들면서 빛을 보거나 색깔 구름 혹은 자색의 띠와 깃발을 볼 것이며, 이 모두가 에텔 현상들이다. 이런 현상들은 중요하지 않고 모두가 횔기체와 관련 있으며, 프라나 발산 그리고 빛의 망(web of light)과 관련 있는 것들이다.
이 실천방법을 계속 수행하고 여러 해에 걸쳐서 이 네 가지 규칙들을 따르면, 임종 기법을 촉진하는 데 많은 것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잠들면서 자신의 체를 다루는 것을 배운 사람은 그 과정에 어떤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죽는 기법과 관련 해서 현재는 한 두 가지 제시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배석한 사람들의 태도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혼이 더 쉽게 넘어가기 위한 그런 점들만 다룰 것이다.
첫째, 방 안에서 침묵을 유지하라. 물론 이것이 종종 있는 경우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대체적으로 무의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무의식이 겉으로 보기게 그렇지만 실재로는 그렇지 않다. 십중팔구는 두뇌 인식이 일어나는 것을 온전하게 의식하면서 거기에 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에너지를 만들 수 없고 표현할 수 있는 의지가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침묵과 이해가 지배적일 때, 떠나는 혼이 그 도구를 마지막 순간까지 명확하게 잡고 있을 수 있고 마땅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나중에 색깔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이 알려질 때,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방에는 오렌지 색깔들만 허용될 것이고, 회복 가능성이 확실히 없을 때, 이것들은 적절한 의식(ceremony)을 한 후에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붉은색이 태양신경총을 자극하고 녹색이 심장과 생명 흐름에 분명한 영향을 주듯이, 오렌지는 머리 속에 집중하는 것을 도와준다.
소리와 관련하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어떤 유형의 음악이 사용될 것이지만, 혼이 체로부터 철수하는 작업을 촉진시키는 음악이 아직은 없다. 비록 피아노에 있는 어떤 음들이 효과적이지만, 아직은 그런 음악이 없다. 바로 죽음의 순간에, 만약 어떤 사람 자신의 음을 소리 낸다면, 그것은 두 가지 에너지 흐름을 조정시켜서 생명줄을 파열시킬 것이지만, 이런 지식은 전달하기에 너무 위험해서 나중에 주어질 수 있다. 미래를 가리키고 미래의 오컬트 연구가 흘러갈 선들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신경 센터들과 어떤 동맥들에 압박을 주면 그 작업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죽는 과정에 대한 이런 과학이 많은 학생들이 알고 있듯이 티벳에 보호되고 있다.) 경정맥과 머리 부위에 있는 큰 신경절 그리고 연수에 있는 특정 지점을 압박하면 도움이 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혼과 체와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나타나게 될 때만, 죽음에 대한 분명한 과학이 후에 자세하게 설명될 것이다.
만트라 구절들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여 죽어가는 사람 의식 속에 분명하게 부가되어 넣어지거나, 죽어가는 사람 자신이 의도적으로 멘탈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크리스트께서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저의 영을 맡기나이다(Father, into Thy hands I commend my spirit)” (누가복음 23장46절) 라고 외칠 때 그것의 사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예가 있다: “주여, 이제 당신의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Lord, now lettest Thou Thy servant depart in peace).” (누가복음 2장29절) 특정한 음으로 혹은 낮은 톤으로 성음을 꾸준히 사용하는 것이 이행 의식의 일부분을 구성할 수 있고, 이 의식은, 가톨릭 교회에서 유지되었듯이, 성유를 바르는 것이 수반되는 의식이다. 병자 성사(extreme unction)는 오컬트적, 과학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다. 또한 죽어 가는 사람의 정수리가 상징적으로 동쪽을 향하게 하고 발과 손은 서로 교차시켜야 한다. 방안에서 샌들우드만 태워야 하고 어떤 다른 종류의 향은 허락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샌들우드는 파괴 광선 혹은 첫째 광선의 향이고 혼이 그 거주처를 파괴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 대중이 숙고할 수 있도록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소통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지만 그대들 모두가 죽음과 그 기법에 대한 연구를 최대한 밀어붙이고 이 문제에 대한 오컬트 조사를 진전시킬 것을 그대들에게 간청한다.
규칙 12
“그물 망(web)이 고동친다. 그것이 수축하고 팽창한다. 마법사가 그 중간 지점을 잡도록 해서 “행성의 죄수들(prisoners of the planet)”들을 해방시키도록 하라. 그들의 음(note)이 내야 할 그것과 올바르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The web pulsates. It contracts and expands. Let the magician seize the midway point and thus release those "prisoners of the planet" whose note is right and justly tuned to that which must be made."
막간과 주기들(Interludes and Cycles)
행성의 죄수들(The Prisoners of the Planet)
규칙 13
“마법사는 넷(four)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가 하는 일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자색(violet)의 색조를 주목하고 이렇게 그림자를 만들어라. 이렇게 될 때, 그 그림자는 스스로 옷을 입고, 넷(four)이 일곱(seven)으로 된다.”
"The magician must recognize the four; note in his work the shade of violet they evidence, and thus construct the shadow. When this is so, the shadow clothes itself, and the four become the seven."
인식해야 할 사중체들(The Quaternaries to be Recognized)
상념태들의 투하(The Precipitation of Thought-Forms)
규칙 14
“소리가 부풀어오른다. 용감한 혼에게 위험의 시간이 가까워 온다. 그 물은 화이트 창조자(white creator)를 해치지 못하고 어느 것도 그를 익사시키거나 흠뻑 적게 할 수 없다. 이제 불과 불길(flame)이 위협하고, 희미하게 일어나는 연기를 본다. 이제 휴식의 주기 후에 그가 다시 태양 천사(Solar Angel)를 부르게 하라.”
"The sound swells out. The hour of danger to the soul courageous draweth near. The waters have not hurt the white creator and naught could drown nor drench him. Danger from fire and flame menaces now, and dimly yet the rising smoke is seen. Let him again, after the cycle of peace, call on the Solar Angel."
센터들과 프라나(The Centers and Prana)
손의 사용(The Use of the Hands)
도의 길을 걷는 것(The Treading of the Way)
센터들을 일깨우는 것(The Awakening of the Centers)
규칙 15
“불들이 그림자에 다가오지만 그림자를 태우지 않는다. 불의 외피(sheath)를 완성했다. 마법사가 불과 물을 섞도록 만드는 말을 외치게 하라.”
"The fires approach the shadow, yet burn it not. The fire sheath is completed. Let the magician chant the words that blend the fire and water."
비의적인 감각(The Esoteric Sense)
대환영의 부정(The Negation of the Great Illusion)
봉사로의 부름(A Call to Service)
새로운 시대의 그룹들과 수련(The New Age Groups and Training)
출처: 다음 신지학 카페
'영성수행 비전 > 신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지학회] 다양한 오컬트 주제 (0) | 2018.10.07 |
---|---|
신지학 [앨리스 A. 베일리] 에텔체에 대한 가르침 (0) | 2018.10.07 |
[루돌프 슈타이너] 초감각적 세계인식 (0) | 2018.10.07 |
인식의 좁은 길 (0) | 2018.10.07 |
세 가지 세계 (0) | 2018.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