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제6장 흑마술사의 최후 -제9장 자연마법 본문
제 6 장
흑마술사의 최후
폭크 롯지의 회장은 도시의 부유층이 사는 지역에 살았고, 매우 아름다운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빌라는 온갖 호화로운 설비가 갖추어지고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재계에서 명망 있는 거부로 통했다.
그러나 오늘 그는 방안의 책상에 우울하게 앉아 황금 만년필로 두서 없이 긁적이고 있었다. 그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변의 호화로운 환경도 그의 불안을 달랠 수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념에 잠긴 채 방을 나섰다. 그는 하인들에게 아무도 자기를 방해하지 말고 어떤 방문객도 받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두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공의 행진에 제동이 걸렸다. 지금까지 그가 계획한 모든 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프라바토 건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이것이 그의 영혼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이 신비한 인물의 배후에 자기 롯지의 배후보다 훨씬 더 막강한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롯지 멤버들은 네거티브한 세력의 도움이 있어야만 계획들을 이룰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이 회장의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부채질해, 어떤 수단을 써서든 프라바토를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충동을 일으켰다.
비록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프라바토가 그의 모든 공격들을 피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롯지의 법을 어긴 자에게 내려진 형벌을 피해간 자는 이제까지 없었다. 그리고 테파폰을 사용하여 실패한 경우도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사람에겐 쉽게 공격당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 회장은 프라바토의 약점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이미 최면금지법 위반을 이용한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또 다시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 가슴속에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일반적인 상황 하에서라면 그는 자기를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그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으며 그것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다. 심지어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도 신경을 자극했다. 불안감과 함께,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말의 두려움과 공포심 마저 뒤섞여 일었다.
회장은 오랜 세월 동안 묘안을 짜낼 때마다 그의 어두운 상념을 살찌워 왔다.
그는 책상에 앉아 정부 고위 관리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그도 폭크 롯지의 멤버였다.
친애하는 형제 후원자님.
당신도 아다시피 프라바토는 우리의 많은 계획들을 무산시켰습니다. 우리는 그를 우리 롯지의 멤버로 만들려고 했지만 우리의 선의를 거절했습니다. 마법적인 능력으로 그는 우리 롯지의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비전 의식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내밀한 계획들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프라바토가 우리 롯지에 항상 위험 인물로 남게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아직 그를 제거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테파폰조차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동맹한 데몬들의 왕도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법적인 능력으로 프라바토는 자연스럽게 정부와 군부의 일급 비밀들에도 접근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적대 세력이 그를 스파이로 고용하는 날이면 엄청난 위험이 초래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님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말입니다. 저로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의 도움을 청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우리 롯지는 이 문제의 해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는 당신이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희망합니다.
앞으로 당신과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상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S 드림
회장은 편지를 봉투에 넣고는 봉인 왁스에 롯지의 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인을 불러 그걸 즉시 우체국에 가서 부치도록 했다.
이제 그의 안색이 환해져 왔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두 손을 비볐다. 이 계획은 꼭 성공하리라 그는 확신했다. 왜냐하면 당시엔 정치적인 반대세력은 즉각 처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밀 경찰이 이 사건을 맡게 될 것이다.
최근의 사건들은 회장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손이 떨려 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그는 계속 초조해졌고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는 무심코 대형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던 그가 서서히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인광(燐光)이 그의 양 눈썹 사이에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떨려왔다. 그는 그 징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롯지에서 그것은 죽음의 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충격으로 꼼짝도 못한 채 회장은 그 인광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인광은 조금씩 커져가더니 마침내 거울 표면 전체를 덮어 버렸다. 불꽃의 뒤로 기괴한 얼굴이 뚫어질 듯 노려보며 서서히 나타났다. 그리고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무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형제여, 그대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노라!”
회장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얼음 같은 냉기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그 악마의 얼굴이 사라지고 불꽃도 작아졌다. 마침내 거울엔 잿빛이 된 회장의 얼굴만 남았다.
뻣뻣이 굳어버린 그는 가까스로 거울에서 몸을 돌려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그렇게 앉아 한 동안 꼼짝도 못했다. 그는 절망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빌어먹을 프라바토.” 그는 중얼거렸다. “그놈만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
회장은 불길한 상념들을 툴툴 털고, 시거에 불을 붙인 채 서재를 왔다갔다하며 진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일이 오늘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점성학적인 태양의 위치를 떠올린 그는 곧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상기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6월 23일, 롯지의 총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장으로서 그가 침착한 모습을 회원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는 하인에게 저녁을 준비하도록 시켰다. 식사를 끝낸 후 그는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자가용 운전사에게 롯지 빌딩으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6월 23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은 해가 가장 긴 날, 이른바 하지였다. 하지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유럽인들은 전통적으로 큰 모닥불을 피웠다. 빛의 형제단, 특히 낮은 등급의 입문자들은 이 날 밤에 소위 성 요한 초환(招喚) 의식을 베푼다.
이 의식 동안 그들은 세 가지 소망을 불가시(不可視)의 아스트랄계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이 소망들은 카르마의 법칙이 허용하는 한, 다가오는 해에 성취되었다. 이 성 요한 비의(秘儀)는 빛의 형제단 사이에서 엄격한 비밀로 유지되고 있다.
폭크 롯지에서도 6월 23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이 날은 결코 행복한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것은 파멸의 날이었다. 왜냐하면 롯지의 한 사람이 자신들이 섬기는 악마에게 생명을 바쳐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멤버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법에 따라야 했다.
롯지에는 99명의 멤버들이 있었다. 100번 째 멤버는 롯지를 주관하는 대 악마였다. 이 대 악마는 멤버들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하위의 악마들을 각 롯지 멤버들에게 붙여 주었다. 각 악마들은 자신의 특별한 이름과 소환 사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그 악마와 관계를 맺고 있는 롯지 멤버 개개인들만 알고 있었다. 그 악마의 이름과 사인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어서는 안 되었다. 그걸 어기면 벌로 죽임을 당했다.
희생 제물이 될 자는 추첨으로 선택되었다. 희생자의 자리는 새로운 멤버로 메워졌고 이전 멤버의 악마가 그에게 붙여졌다. 운이 나쁘면 새로운 멤버는 입회한 그 해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대가로 롯지 멤버들은 물질적인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고,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층민이나 빈민 출신들은 롯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을 소유했을 때만 입회가 허락되었다. 그런 경우 거액의 돈이 즉각 그 멤버에게 주어졌다. 그 멤버와 연결된 악마의 도움으로 사회에서 입지를 굳히는 법을 배울 때까지 재정적인 지원이 계속 되었다.
이날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덥기는 했지만 교외에는 아직도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폭크 롯지 멤버들의 마음 속에는 공포의 먹구름이 덮고 있었다. 매년 이 날만 되면 그들은 자신들 머리 위에 데모클레스의 칼26이 매달려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롯지의 대 홀에는 의식 준비가 말끔히 되어 있었다. 낮은 단 위에 98개의 의자가 회장의 좌석과 마주한 채 놓여 있었다. 롯지의 각 멤버들은 자신의 번호에 맞추어 자리에 앉았다.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이날 모임에 불참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각 멤버들은 이날 밤 총회 참석을 위해 개인적인 일정들을 조정해야 했다.
모임은 저녁 8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멤버들은 7시 반에 이미 들어와 몇몇씩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계의 긴 분침이 잔인하게 운명의 시간을 가리키자 멤버들은 번호가 매겨진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비서직을 겸하는 부회장도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정각 8시가 되자 회장이 홀에 들어섰다.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일어서 그를 맞았다. 그는 오후의 사건 때문에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기운을 차린 뒤 특별히 제작된 봉으로 커다란 공(gong)을 세 번 쳐서 개회를 알렸다. 그러자 그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그가 연설을 시작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만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멤버 전원이 참석해 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은 우리 롯지에 있어서 전통적이며 역사적인 날입니다. 오늘, 멤버들 중 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되고 다른 신입 멤버로 대체 될 것입니다.
추첨을 통해 떠날 사람이 결정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롯지에 입회 할 때, 우리 단체 규정에 이 절차가 명문화 돼 있으며 그것이 강제 조항이라는 사실을 이미 고지하였습니다.
우리 교단은 수세기 동안 존재해 왔으며 지금 전 세계에서 같은 법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99는 우리에게 성스러운 숫자이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우리와 같은 롯지27가 99개 있고 그 각각의 롯지에 99명의 멤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롯지들은 우리와 동일한 법규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어둠의 지배자, 우리의 신은 높은 등급의 악마들을 각 롯지에 파견해 놓고 있습니다. 또 그 악마들은 각 롯지 멤버들에게 하위의 악마들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각 롯지의 수장들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주재 악마가 그에게 붙여집니다.
이 역사적인 날 저는 여러분이 우리 롯지의 멤버가 됨으로써 각자에게 엄청난 이익이 주어졌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롯지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여러분 중 누구도 그렇게 빠른 시일 안에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보다 빨리 정적을 없앨 수 있는 자가 누구 있습니까?
우리 단체보다 여러분의 인생의 위험으로부터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이익들은 오로지 제가 방금 말씀드린 어둠의 영적인 힘들의 도움으로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담보로 하여 그러한 이익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그 대가로 우리는 악을 지원하고 선과 싸울 수 있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여러분 중 누구도 이것이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오늘밤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롯지에 남게 될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과정을 받아들이는 걸 유감으로 생각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재정적으로 부유하게 된 것도, 여러분의 목적을 성취하게 된 것도 다 시종(侍從) 데몬의 도움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회장은 말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말이 다른 멤버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주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회장은 물을 약간 마신 뒤 롯지가 회원들에게 얼마나 이익을 베푸는 지 찬사를 계속 늘어놓으려다가 불현듯 프라바토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사실이 떠올랐다. 치미는 분노를 간신히 참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멤버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 강력한 정적이 우리 롯지의 목적에 대항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마법사 프라바토입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공격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심지어 테파폰의 공격조차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 모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합심해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슬로건 아래 하나로 뭉칩시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회장은 거의 광분한 상태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멤버들은 침묵만을 지켰다. 누구도 그의 개인적인 복수에 끼어 들길 원치 않았다. 어떤 이들은 전율이 등골을 스쳐 지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일었다. 많은 멤버들은 이제 롯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누가 테파폰의 공격에 살아남은 적이 있단 말인가? 그런 천하무적의 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지상에 존재한다니! 회장이 이 문제를 친히 다뤄야 할 정도라니, 게다가 어려움을 교단 멤버들과 상의까지 해야 하다니!
그 강력한 정적에 대한 생각은 멤버들 사이에 극도의 불안을 야기했다. 회장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그가 승리와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여러분 중 프라바토의 이름을 들어도 기겁하는 분이 많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프라바토 때문에 저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롯지는 그러한 정적을 없애는 데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어둠의 지배자는 제 편입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제게 도움과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정계의 라인을 가동해 프라바토를 정치범 으로 몰고 갈 예정입니다.
물론 그가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일주일도 안 돼 그는 투옥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거금을 풀면 그런 일을 도와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여러분께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머지 않아 프라바토가 제거될 것임을 말입니다!”
회장의 마지막 말에 멤버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프라바토는 이미 많은 롯지 멤버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회장은 롯지의 결속이 다시 회복된 것을 확인하자 만족스러웠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는 자리를 비서에게 내주고 자기 의자에 앉았다.
비서는 회장께 연설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나서 앞에 모인 멤버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멤버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은 지난 일년 동안 여러분 각자의 시종 데몬의 도움으로 성취한 일들을 비밀 암호로 적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악마적인 힘들과 접촉하는 상태들을 점검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하인과 특별한 문제나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오늘밤 모임이 끝난 후 회장님과 상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회장님께서 그 존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자,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제게 보고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보고서에는 여러분의 개인 번호를 기입하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멤버 두 사람이 서류의 수합을 부탁 받자 그것들을 모아 비서에게 갖다줬다. 서류를 받은 비서는 그것들의 숫자를 주의 깊게 세고 살폈다.
회장의 의자 뒤에는 호화롭게 장식된 캐비닛이 있었다. 시간을 멈추고 싶기라도 한 듯 그는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비서가 보고서를 서랍에 넣고 잠근 뒤 또 다른 서랍을 열었다. 나무 상자를 꺼낸 뒤 그는 그것을 캐비닛 옆에 있는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런 뒤 매우 진지하게 멤버들을 향해 섰다.
그리고 운명의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멤버들의 번호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이 바야흐로 멤버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었다. 짓눌린 침묵이 모임을 지배했다. 지금이 모든 멤버들에게 일년 중 가장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옆방에서 원통 모양의 용기를 하나 가지고 오더니 손잡이를 돌려 축을 중심으로 회전이 가능하도록 그것을 틀 위에 얹었다. 비서는 그것을 홀 중앙에 가져다 놓은 뒤 그 측면에 있는 작은 입구를 열었다. 처형된 실레시우스의 숫자를 옆으로 치운 뒤 그는 엄숙하게 봉투를 하나씩 차례로 원통 속에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멤버들은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 작업을 마친 뒤 그가 원통 문을 닫았다.
롯지 멤버 중 한 사람이 관리인의 딸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엘리는 자기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성요한절의 이브에 같은 일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이 시간에 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한 멤버가 ‘특수 임무’를 위해 선택되어질 것이라는 설명에 항상 그러려니 해왔다. 그녀는 이 작은 일로 후한 사례금을 받았기 때문에 더 깊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또한 그녀는 롯지 일에 대해 너무 많은 호기심을 가지면 아버지가 직장을 잃게 되리라는 걸 잘 알았다.
비서가 그녀의 눈을 가린 뒤 원통 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서 그가 손잡이를 잡고 원통을 돌렸다. 왼쪽으로 10번, 오른쪽으로 10번. 그런 뒤 그는 뚜껑을 열고 엘리의 손을 그 위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뽑도록 했다. 주저 없이 엘리는 그 중에서 한 봉투를 뽑았다. 비서가 그것을 받아들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놓았다.
침착 하려고 애쓰면서 비서는 엘리의 눈에서 가리개를 푼 뒤 그녀에게 사례금을 주었다. 그리고 몇 마디 다정한 말을 건네며 그녀를 건물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마침내 그가 홀로 돌아왔다. 홀에선 멤버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운명의 봉투에 손을 뻗어 숫자 표를 꺼냈다.
큰 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1번! 우리 회장님의 번호입니다!”
긴장감이 풀렸다. 반응들은 각기 달랐지만. 어떤 멤버들은 흥분하며 결과에 대해 숙덕였고 또 다른 멤버들은 손을 턱에 괸 채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선 채로 전체 진행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던 회장은 사색이 되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천장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의 내적인 환시(幻視)에 오싹한 악마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는 절망적으로 외쳤다. “프라바토!”
회장의 반응이 홀 내를 무시무시한 공포로 꽉 채웠다. 왜냐하면 전에는 결코 그렇게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인 멤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희생 물로 선정된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운명에 충격을 받았지만, 최소한 외적으로 그들은 침착 하려고 무척 애썼고 어느 정도 평정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전체 롯지의 모범이 되어야 할 회장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이 약간 흘러서야 겨우 자기를 추스릴 수 있었다.
마침내 그의 얼굴 근육이 눈에 띠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상심한 목소리로 멤버들에게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최근에 프라바토 건으로 절치부심 해왔습니다. 저는 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멸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대로 그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테파폰의 공격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프라바토는 강력한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프라바토의 가장 큰 적수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가 이 추첨에 그의 마법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봅니다. 저의 번호가 뽑히게끔 일을 꾸민 것이지요.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그의 공개 시연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거리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하는 초능력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회장은 잠시 말을 끊고 반응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라바토의 초능력 시범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장은 멤버들이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기색을 보고는 용기를 내어 계속 말을 이었다.
“친애하는 멤버 여러분, 우리 롯지에서 이 정적 프라바토를 파멸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효과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다는 걸 부디 고려해 주십시오. 저는 단언컨대 프라바토가 엘리로 하여금 제 번호를 뽑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봅니다!”
이 말에 홀 전체에 나직한 불평의 소리가 퍼져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또 다시 추첨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롯지 멤버들은 회장이 겁을 집어먹었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에게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회장이 원할 경우 재 추첨을 요구할 수 있다는 롯지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희귀한 경우였다. 99개 롯지를 통틀어 지난 이 백년 동안 불과 단 두 번 일어났을 뿐이었다. 희생 제물로 최종 결정이 나면 회장은 롯지 지휘권을 몰수당하게 된다. 그러면 규정에 따라 비서가 회장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회장은 자신의 최후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에 매달려 볼 여지가 있었다.
비서가 멤버들에게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유감스럽게도 이 추첨으로 우리의 존경하는 회장님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롯지를 여러 해 동안 잘 이끌어 오셨고 우리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재 추첨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라바토가 마법력을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재 추첨을 위해 특별한 예방책 강구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프라바토로부터 올 수 있는 모종의 방해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규정에 의하면 각 멤버가 원통을 세 번 돌린 다음 재 추첨을 하게 됩니다.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올려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다. 심지어 회장도. 그러나 재 추첨은 멤버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왜냐하면 만일 회장이 옳다면 이번에는 자기들 중 한 사람이 선택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의 제안이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비서가 말을 이었다. “회장님을 향해 보여준 여러분의 이해심에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프라바토가 우리 롯지에 지금 이 순간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영매를 통해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H 형제님, 가셔서 엘리를 다시 데려 와 주시기 바랍니다.”
H가 밖으로 나가더니 엘리와 함께 곧 다시 돌아왔다. 비서는 흑마술만 능한 것이 아니라 사람 다루는 솜씨도 뛰어났다. 그는 엘리를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엘리, 이 늦은 시간에 널 귀찮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우리가 급히 네 도움이 다시 필요해서 말야. 네가 도와줘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다. 너를 힘들게 했으니 그 보상으로 사례를 두 배로 해줄 게.”
롯지의 모임은 그녀에게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홀 전체를 내리누르는 분위기가 오늘 따라 유달리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스러운 듯 대답했다.
“늦어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시겠다니, 여러분을 돕는 게 매우 기뻐요.”
홀 중앙에 쇼파가 놓였다. 엘리는 익숙한 동작으로 그 위에 드러누웠다. 21명의 위원들이 그녀 주위에 원을 형성했다. 그리고 비서가 그녀를 깊은 최면 상태로 유도한 뒤 그녀 안에 투시 상태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영혼으로 프라바토를 찾아가라.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내게 말하라.”
잠깐 머뭇거린 뒤 엘리가 짧게 보고했다. “프라바토는 지금 무대 위에 있어요. 늘 그렇듯 공개 시연을 하면서요.” 다시 비서가 물었다. “프라바토가 이곳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그러자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오.”
홀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앞서 회장의 주장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했다. 회장은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술렁거림이 자신을 향한 거라는 것을. 갑자기 그가 펄쩍 일어나 홀이 떠나갈 듯 외쳤다.
“프라바토가 여러분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소! 만일 그가 직접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 그의 엘리멘탈을 보내고 있는 것이오. 그는 수천의 엘리멘탈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소!”
프라바토가 수천의 엘리멘탈을 부릴 수 있다는 설명에 멤버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홀 안의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폭크 롯지 멤버들은 각각 단 하나의 시종 엘리멘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은 순간 ‘아차!’ 했다. 프라바토를 더 부추겨 주고 자신과 롯지를 낮추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지친 그는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낭패로군!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비서가 목에 힘을 주어 큰 소리로 조용히 해달라고 외치자 그제 서야 홀 안이 잠잠해졌다. 21 위원들은 여전히 잠자고 있는 영매 주위에 원을 이루고 서 있었다. 그녀에게 비서가 예리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네가 깨어나면 너는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힘도 너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떠한 외부 존재도 너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하게 될 것이다.”
추가로, 그는 조용히 어두운 사대의 지배자들을 홀의 네 모퉁이에 불러내 외부의 어떠한 마법적인 영향도 막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영적인 눈에만 보이는 이 네거티브한 사대의 지배자들이 의식의 진행을 수호했다. 그들을 소환하는 공식은 오직 회장과 비서만 알고 있었다.
소환을 다 마친 뒤 비서가 멤버들에게 어떤 외부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완벽한 보호가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오로지 지고한 신성의 섭리만이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임을 단언했다.
비서는 회장의 번호를 새 봉투에 담고 원통 속에 넣었다. 원을 형성했던 위원들은 매직 서클의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공식을 반복해 외웠다.
비서가 마법 공식으로 영매를 깨웠다. 그녀는 주변의 당황해 하고 있는 얼굴들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시 정신이 회복된 엘리는 자기가 잠든 사이 뭔가 특별한 일이 발생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비서는 주의 깊게 그녀의 눈을 가린 뒤 그녀를 원통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봉투를 하나 꺼내라고 말했다. 엘리는 침착하게 안에 손을 뻗어 한 장을 꺼냈다.
무덤 같은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봉투에 쏠렸다. 비서가 그것을 받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엘리의 눈에서 눈가리개를 풀고 다급히 그녀를 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는 그녀에게 옆방에서 25분 정도 기다려 주길 부탁했다. 다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곧장 홀로 돌아 온 비서는 운명의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개봉해 번호표를 꺼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1번이었다.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회장의 가슴에서 새나왔다.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희생제물의 선고 대상이 누구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의 사건들은 그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회장에게로 향했다. 회장이 어떻게 나올지 잔뜩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장은 이제 꼼짝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신을 추스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죽음의 공포로 이런 외침이 흘러 나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어! 여기에 날 파괴하려는 어떤 힘이 흐르고 있어! 설령 프라바토가 직접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해도 그의 영향력이 이 일 전체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추첨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래야만 내 패배를 인정하겠소!”
세 번째 추첨은 투표를 통해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을 때만 재가(裁可)될 수 있었다. 비서가 일어나 말했다.
“우리 법규에 의하면 회장은 세 번째 추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추첨은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할 수 없습니다. 과정의 유효성뿐만 아니라 롯지 법규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회장의 이 고유 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추첨을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이 날 밤의 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멤버들의 마음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자칫 자신의 생명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세 번째 추첨으로 진실이 판결 날 수 있다는 희망 사이에서 갈등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찬성의 표시로 손을 든 사람은 60명. 운명이었다.
세 번째 추첨을 준비하는 동안 회장이 벌떡 일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뽑겠소. 프라바토나 세상의 어떤 외부 힘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비서는 밖으로 나가 엘리에게 사례금을 쥐어 줘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홀에 다시 돌아 온 그가 곧장 원통으로 가서 마지막 추첨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모든 절차가 신속히 이루어졌다. 원통을 세 번씩 돌리는 멤버들의 손길도 빨라졌다. 이 모든 걸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원통을 다 돌린 후 비서가 회장의 얼굴에 눈가리개를 했다. 다시 쥐죽은듯한 침묵이 홀 안을 메웠다. 회장이 미친 듯 봉투들 사이를 더듬거렸다. 마침내 한 장을 쥐고는 원통에서 꺼냈다. 미처 비서가 돕기도 전에 그는 검은 눈가리개를 벗어 마루바닥에 집어 던졌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봉투를 열고 번호표를 꺼냈다.
1번.
그는 마치 마비된 듯 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또 다시 괴물처럼 생긴 악마가 그 앞에 나타났다. 경멸의 웃음소리가 그의 귀에 가득 울려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회장을 부축해 옆방으로 데리고 간 뒤 소파에 눕혔다. 그는 이제 완전히 롯지의 회장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일개 희생 제물에 불과했다. 다음 모임에서 현재의 비서가 회장에 임명될 것이고 멤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차기 비서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일어난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은 그들 모두에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랜 세월 동안 롯지에 몸담아 온 구참들도 이날 밤과 같은 일을 경험한 적은 이제껏 없었다.
새로운 회장이 된 비서가 30분간의 휴회를 선언했다. 홀은 텅 비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바람이라도 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몇몇은 정원에 모여서 아까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어떤 이들은 라운지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옛날 사람들은 신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바로 그 인신 공양이 폭크 롯지에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의식이 현대화돼 있을 뿐,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롯지 법규에는 매년 주재 악마에게 한 사람의 멤버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거기에는 신참이건 구참이건 예외가 없었다.
다시 회의를 속계 하는 공이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새 회장이 일어나 연설을 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밤 우리는 롯지의 주재자께 올릴 희생 제물을 선택하는 의식을 마쳤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모두 존경해온 회장님이 그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롯지는 회장님이 떠나시게 된 것을 참으로 비통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매년 치러지는 이 추첨 의식에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여러분 모두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가시리라 믿습니다. 비록 우리 롯지의 활동이 그 성격상 허위와 위선이 불가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에는 어떤 속임수도 통할 수 없습니다!
“오늘밤의 추첨은 롯지의 법규가 가차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감독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기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회장님조차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밤 회장님이 보여준 처신 때문에 그분의 공적이 과소평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우리 롯지의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입니다.
“롯지의 법규에 따라 한 멤버가 떠나면 새로운 멤버로 그 자리를 메워야 합니다. 오늘 밤 실레시우스 형제의 자리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비서는 다음 모임 때 임명될 것입니다. F 형제님이 친구 한 분을 새로운 멤버 후보로 추천해왔습니다. 충성심과 분별력 등 후보자의 자질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F 형제님, 친구 분을 모셔 오십시오.”
한 멤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홀을 나서더니 잠시 후 한 젊은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새 회장이 그와 악수하며 환영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의식 도중에 예기치 않은 복잡한 일이 발생해서요.” 그 청년은 이미 입회 조건들에 동의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제 서약과 함께 이름과 번호 부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새로운 멤버에게 주어진 번호는 2번, 롯지명은 C였다.
C는 롯지의 법규를 준수할 것을 엄중한 맹세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서 한 악마 엘리멘탈이 그의 소원 실현을 위해 그에게 할당되었다. 그에게는 그 존재를 다루는 방법과 그의 활동에 대한 일지를 기록하는 방법 등이 가르쳐졌다. 또 그는 텔레파시와 흑마술로 공격하는 비밀 공식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른 멤버들의 롯지명도 알려 받았다. 롯지명은 사회에서 쓰는 이름이 아니라 오직 롯지 내에서만 불리는 이름이었다.
새로운 멤버를 위한 입문식이 끝나자 회장이 공식적으로 폐회를 선언하였다. 시간이 이미 자정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서둘러 헤어졌다. 롯지에는 새 회장만 뒤에 남아서 서류를 작성했다. 작업을 마치자마자 그는 전 회장이 있는 방으로 갔다. 그는 아직도 쇼파에 쓰러져 있었다. 정신을 반쯤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축하지 않으면 방에서 나갈 수 없었다.
새 회장은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응급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진료 가방을 가져와 혈액 순환 활성제를 주사했다. 그러자 몇 분 후 겨우 제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새 회장은 낙담해 있는 그를 부축해 차로 데리고 갔다.
오래 기다리는 동안 잠에 곯아 떨어졌던 전임 회장의 운전사가 그들이 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었다. 그는 황급히 달려 나와 주인을 위해 도어를 열었다. 간단히 작별 인사를 마친 전임 회장은 차 뒷좌석에 무겁게 몸을 뒤로 던져 누웠다. 그러자 문이 닫히고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새 회장은 수심에 잠긴 채 사라져 가는 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롯지 빌딩에 돌아와 모든 문들을 주의 깊게 단속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면직된 회장이 자신의 저택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시간쯤 후였다. 운전사가 주인을 부축해 집안까지 모셨다. 그가 무척 편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운전사가 더 시키실 일이 없냐고 묻자 그는 그만 가라는 손짓만 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총총히 밖으로 사라졌다.
기력을 상실한 회장은 비틀거리며 서재로 간 뒤 소파에 풀썩 드러누웠다. 잠잘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눈으로 천장만을 계속 바라보았다. 마음 속에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은 온통 중상, 사기, 거짓, 살인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애초부터 그의 사전에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앞으로 악마의 종노릇을 해야할 상황에서도 그의 상념은 선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선한 힘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때에만 흑마술사 특유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로지 물질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 그가 스스로 짊어진 저주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영적인 법칙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피할 길은 없었다. 악마들로부터 도망칠 도리는 없었다.
공허한 마음으로 그는 일어나 포도주를 잔에 따랐다. 그리고 캐비닛에서 작은 가루 봉지를 꺼냈다. 그는 그 가루를 포도주에 조금 섞은 뒤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방 전체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그 소리를 떨쳐 버리려 애썼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는 잔을 단숨에 비웠다. 잠시 동안 속이 불타는 듯 하고 몸에 경련이 일었다. 그러다 뭔가에 홀린 듯 먼 곳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잠시 뒤 유리잔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박살이 났다. 독이 몸에 퍼지자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마침내 호흡이 멈추었다. 흑마술사 S의 삶은 그렇게 자살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제 7 장
탈 출
그 날 밤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프라바토의 신비한 마법 시연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난 후 프라바토는 두 시간 이상 기자들과 여타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 시간을 가졌다. 이제 열광이 가시고 마침내 숙소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는 기뻤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자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피곤하여 곧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 한 숨 푹 자고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이완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안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 한 가운데 회색 구름이 나타나더니 그 중심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며 거기서 무수한 불꽃들이 방출되었다. 그 불꽃들은 만화경처럼 무지개 색깔로 형형색색 빛나며 방안을 빙빙 돌았다.
구름 속의 빛이 서서히 응고되기 시작하면서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의 온갖 행법에 통달한 프라바토였기에 즉시 투시안을 작동시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 결과 그는 그것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영역28에서 온 매우 진화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미 그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프라바토는 이 존재의 방문이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한 밤중에 이런 위대한 존재가 나타난 것일까? 그 존재는 자신의 힘을 농축시키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 그런 존재를 불러내 물질화 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프라바토의 눈앞에 빛의 구름이 영적인 존재의 형상으로 가시화되었다. 그 존재는 휘황찬란한 눈으로 프라바토를 바라보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프라바토, 그대는 지금 위험에 직면해 있다! 내일 정오가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 정적들이 너를 중상하여 국가 반역죄로 기소하려 하고 있다. 이 정치적 혐의로 그대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라! 체포 영장이 이미 발부되었다.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광적인 이데올로기와 공개적으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대의 소지품들을 모두 놔두고 떠나라. 그대에게 전하는 경고이니, 서둘러 도망쳐라!”
그의 마지막 말이 아득히 멀어져 갔다. 그 존재가 빛의 안개로 녹아 서서히 사라졌다. 방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고요함 속에 감도는 상큼한 향기만이 이 기이한 방문을 상기시켜 주었다.
프라바토는 이제 정신이 완전히 깨어 있었다. 그는 이 특별한 존재29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고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도망칠 궁리를 하기 앞서 그는 자신을 아카샤30로 완전히 둘러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상념과 계획들이 영적인 세계에서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정적들이 어떤 앤터티entities31나 영매를 통해 그의 계획들을 알아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적들은 아카샤에 각인된 것들을 지우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키는 기술을 알지 못했다. 지상에서 프라바토처럼 빛의 형제단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비밀들과 응용법을 알았다.
프라바토는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여기서 쌓아놓은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하려면 지금 재산과 이익들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정적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는 그들보다 더 능란하고 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그가 계획을 완전히 다 짜자 새벽이 밝아 왔다. 떠날 시간이 될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는 일련의 특별한 명상들을 행했다. 한 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프라바토가 명상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7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쾌하게 찬 물로 몸을 씻었다. 옷을 차려입을 때쯤엔 마치 지난 밤 잠을 푹 잔 것처럼 맑은 정신이 되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돈과 서류들을 여러 호주머니에 분산해 넣었다. 잠시 후 그는 아침 식사를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는 빈 테이블에 앉은 뒤 주문을 했다. 원래 그는 호텔 지배인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지배인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다. 프라바토는 그를 손짓해 부른 뒤 자기 자리로 초대했다. 친절하고 사람 좋은 지배인은 반갑게 악수하며 그를 맞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잘 주무셨습니까?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계시는 동안 아무런 불편도 없기를 바랍니다.”
프라바토는 지배인이 앞에 앉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서비스, 음식, 직원들 모두 다 매우 좋습니다. 다른 분들한테도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알다시피 저는 여기 2주 더 머물 예정입니다. 여기 대금을 미리 지불하고 싶군요.”
그는 가슴 포켓에서 돈을 꺼내 지배인에게 건넸다. 지배인이 굳이 선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몸짓을 해왔다. 그러나 프라바토는 그를 설득해 받게 했다. 그러자 지배인이 사무실에서 영수증을 가져와 그에게 주었다.
그는 별의별 손님들을 다 상대해 왔기 때문에 프라바토의 행위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간혹 숙박료를 지불하지 않고 줄행랑치는 손님도 있었기 때문에 지배인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일약 명사로 떠오른 프라바토가 계속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영수증을 받아들며 프라바토가 말했다. “지배인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늘 기자와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시립 탑 근처의 까페로 가봐야 합니다. 두 시간쯤 후에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 동안 혹시 절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쯤 올 거라고 전해주십시오.”
지배인은 아무 의심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프라바토가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대도시의 혼잡한 교통 속으로 사라졌다.
프라바토는 코트도 모자도 없이 간편한 옷차림으로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익숙한 택시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에 몇 대의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담배를 피우며 쾌활한 담소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프라바토가 갈곳을 말하자 한 기사가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약 3킬로쯤 차를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프라바토는 요금을 지불하고 다시 행인들 속에 섞여 걸었다.
프라바토는 평소 알고 있던 근처의 다른 택시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한 대의 택시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바토는 기사에게 기차역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역에 도착한 프라바토는 잠시동안 밖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들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수상쩍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또 다시 한 대의 택시를 골랐다. 육기통 엔진의 큰 차였다. 뒷좌석에 앉은 뒤 그가 호주머니에서 백 마르크 지폐를 꺼내 운전사에게 주며 말했다.
“국경까지 빨리 가봐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방금 받았거든요. 가능한 빨리 집에 가봐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주신다면 요금을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승객의 슬픈 얼굴과 백 마르크 짜리 지폐는 즉시 운전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차는 국경을 향해 총알처럼 달렸다. 운전사는 이것이 도주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프라바토가 국경을 향해 서둘러 가고 있는 동안 두 명의 신사가 드레스덴의 호텔로 들어왔다. 그들은 카운터에서 그에 대해 조회했다. 그들은 프라바토가 오전 10시 30분 경에 돌아올 거라는 정보를 얻었다.
두 명의 신사는 레스토랑에 앉아 기다리지 않고 프라바토가 돌아올 때까지 호텔 앞을 서성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지배인을 만나 자신들의 신분증을 보이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프라바토에 대해 물어볼 게 있는데요?”
지배인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프라바토가 그들과 친한 친구라는 말을 듣자 안심했다.
그가 말했다. “프라바토는 당신들이 찾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오늘 아침 그는 제게 2주일 분 숙박료를 선불로 내셨거든요. 그의 차는 주차장에 있습니다. 그의 옷이나 기타 소지품들도 방에 있습니다. 그는 도시 타워 근처의 까페에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습니다. 조금 늦어지고 있을 뿐일 겁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두 신사는 지배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프라바토가 오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며 그에게 전화번호를 남기고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두 경찰은 서둘러 까페로 갔다. 그리고 직원에게 프라바토가 거기 왔었는지 물었다.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그제야 낌새를 알아채고 프라바토가 도망친 것 같다고 서에 알렸다. 즉시 수많은 경찰들이 여러 택시 정류소를 탐문하며 프라바토의 행방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프라바토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인상착의를 설명해가며 가까스로 그의 행방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덜미를 잡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수사망을 빠져나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차로 질풍처럼 달린 프라바토는 11시 30분에 국경에 도착했다. 그는 운전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요금을 두 배로 지불하였다. 그리고 국경 초소사무실로 무심히 걸어갔다. 아무 짐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무 제재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엔진을 식히기 위해 잠시 정차하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자리에 몸을 비스듬히 눕힌 채 담배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매일 저런 손님들만 탔으면 좋겠군.”
프라바토가 세관을 통과해 고국 체코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독일 쪽 확성기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모든 독일 국경 초소들은 들어라! 프라바토가 당국의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려 하고 있으니 발견 즉시 체포하라. 택시를 이용해 국경을 넘으려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프라바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뒤따랐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프라바토가 국경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생각했다. “하마터면 잡힐 뻔했군. 하지만 해냈어!” 고국에 넘어온 이상 그는 이제 안전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다시 한 번 폭크 롯지의 계획을 보기 좋게 무산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응해야만 했다. 지금 그는 돈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 동안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길 바랬다.
작은 도시 역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그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신께 감사했다. 한 시간 뒤 그는 고국의 수도로 가는 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제 8 장
새로운 출발
프라바토는 호텔 방에서 깨었다.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그걸 실천하는 것, 인간들은 그런 일엔 무능력해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런 부정적 풍조가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가고 있었다. 당시(나치시대)에는 정치적인 박해가 횡행했고 그 과정에서 고문, 살인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파멸의 주연으로 치닫게 될 터였다.
영안(靈眼)을 통해 프라바토는 아카샤 속에서 앞으로 닥칠 사건들의 추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침묵의 법칙 때문에 그는 그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의 운명 역시 비극적인 것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마법력을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주 안의 모든 존재들은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제한 받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성한 섭리가 이 박해 기간 동안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지상에서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빛의 형제단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울한 상념들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는 몇 분 동안 특별한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목욕을 했다. 잠시 후 그는 완전히 상쾌해진 기분으로 호텔을 나섰다.
대도시 거주자들의 모토는 ‘빨리 빨리’인 것처럼 보였다. 도시의 거리거리는 이미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프라바토는 아침을 먹기 위해 조용한 거리에 있는 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가 앉은자리 옆 테이블에는 세 명의 신사들이 활기찬 대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프라바토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신문을 집어들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에겐 미래의 계획이 없었다.
신문을 읽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특히 세 명의 신사 중 한 사람이 흥분해서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피력하고 있었다. 갑자기 흥미가 동했다. 그들의 대화 주제가 형이상학과 심령술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치채지 않게 세 사람을 계속 지켜보았다. 비록 투시력을 이용하지 않아도 그는 신사들 중의 한 사람이 학자이고 다른 두 사람은 사업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동안 그들의 주장에 귀기울이고 있자니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의 얘기 속에는 많은 혼란과 완전히 잘못된 개념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우연히 프라바토 쪽을 바라보다 그가 웃음 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잠시 그는 헷갈렸다. 이 사람이 웃는 이유가 대화의 주제에 정통해서인지 아니면 이런 얘기들이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첫 번째 이유 때문이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잠시 얘기가 끊긴 사이, 그 신사가 친구들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그들이 프라바토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먼저 번 신사가 일어나 프라바토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실례합니다만 선생님, 이렇게 보니 오컬티즘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테이블로 오셔서 합석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의 이름은 K이고 안경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프라바토는 그의 초대를 깍듯이 수락했다. 자신을 소개한 뒤 프라바토가 옆 좌석에 앉았다. K가 친구들을 소개했다. P는 은행장이었고 G는 화학박사이자 교수였다. 교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물었다.
“선생님 혹시 신문에 자주 기사가 실렸던 오컬티스트 아닙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프라바토는 이 도시에서 사람의 이목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그 교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제가 그 사람 맞습니다. 참 운이 좋으시군요. 사실 전 이 도시에 오고싶어서 온 게 아니거든요. 제가 아까 웃은 건 여러분들을 비웃으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형이상학적 견해들 중에는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있어서요.”
그들은 프라바토가 그 도시에 피치 못해 오게 된 연유를 알고 싶어했다. 그가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충격을 받아 그를 힘껏 돕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프라바토는 달리 아무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삼일 밤을 이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날을 잡아서 몇몇 친구, 지인들과 함께 작은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다. 프라바토는 이 모든 것을 섭리로 받아들이고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그는 나중에 이 서클의 큰 도움으로 힘겨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신사들은 먼저 그에게 오컬트 현상에 대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프라바토는 최선을 다해 명쾌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비전가에게만 드러나는 광대한 지식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세 사람은 이제까지 그릇된 시각에서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는 사실을 곧 수긍하게 되었다.
두 시간이 지날 무렵 그들의 대화는 ‘운명’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G 교수는 예정된 운명이란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교수는 자신의 견해에 대한 타당한 이유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프라바토가 웃으며 대답했다.
“교수님, 사람은 반드시 영적인 길을 따라 여행해야만 일정한 성숙을 얻게 되고 그 때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그 성숙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지배하길 원한다면 멘탈적, 아스트랄적, 물질적 균형을 성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그러한 수준의 성숙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교수님께서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운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작은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말이 끊겼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프라바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교수의 얼굴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이면 항상 그들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냈었는데 이제 기가 팍 꺾여버렸기 때문이었다. 프라바토가 얼른 눈치채고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론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외국 서적들을 포함해서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교수님께선 독서양도 많고 여러 외국 잡지에 형이상학에 대한 원고들도 기고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문가라는 소리도 듣고 계시고요. 그러나 오컬트 과학에서는 단순한 지식과 실천적인 방법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수는 프라바토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기심에 그가 말했다. “프라바토 선생님. 만일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운명의 영향에 대한 어떤 증거를 직접 보여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상념에 잠긴 채 프라바토가 앞을 응시했다. 그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특이한 시선을 지었다. 그의 의식은 분명히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 상태가 잠깐 지속되더니 이윽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프라바토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웃음을 띠며 교수에게 말했다.
“저는 방금 영안(靈眼)으로 당신의 미래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사건의 도움으로 교수님께 운명의 영향을 증명할 수 있겠더군요. 교수님께서는 오늘 밤 자정에 풀버 타워 인근에 계시게 될 겁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교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게 될 거구요. 그럼 교수님께서 운명을 통제할 힘을 갖고 계신 지 나중에 보도록 하지요."
교수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표정이 새어나오더니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제가 오늘 밤 자정에 풀버 타워에 가게 된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프라바토는 그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자신의 초대 날짜를 확인해 물으며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모두들 와인을 다시 한 잔씩 마시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 G교수의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독신인 그는 호화롭게 살았다. 큰 빌라에 살았고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가 다방면에 걸쳐 연구해 나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독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애박사도 아니었다. 물론 그도 때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의무는 지길 원치 않았다.
집에 도착해 보니 많은 편지들이 와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눈으로 쭉 훑으며 넘어 갔다. 어떤 편지들 위에는 메모를 몇 자 휘갈겼다. 그러나 답장 보내는 것은 다음 날로 미루었다. 그는 방금 전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마지막 대화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기분 상태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프라바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아까 첫 대면에서 프라바토는 마치 와 보기나 한 것처럼 교수 집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었다.
“프라바토가 틀렸다는 것을 오늘 밤 입증해 보이고야 말 테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내 운명의 지배자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말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저녁에는 집에서 절대 나가지 말아야지.”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녁 내내 침대에 눌러 있으리라 결심했다. 프라바토가 틀렸다는 걸 증명한다면 참 샘통이겠다! 그는 자신만만해졌다. 그러나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가 자신의 철학적인 견해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는 아직 점심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요기를 했다. 그리고는 외국 잡지에 보낼 원고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집중이 잘 돼지 않았다. 프라바토의 말들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여 프라바토의 말이 맞으면 어쩌나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 G교수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프라바토에 대한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심난해 오자 그는 아예 잠을 자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까지 일어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불안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척거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인이었다. 그가 잘 아는 예술가 일행이 그를 찾아왔고 지금 현관 홀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왔다. 교수는 예술계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문 학술 활동과는 별개로 연극 비평도 했다. 그는 하인에게 적당한 구실을 둘러대 손님들을 돌려보내도록 시켰다.
손님들은 이미 몇 잔의 와인을 마신 것처럼 보였다. 모두 약간 취해 있었다. 하인이 그들에게 가서 교수님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웬걸, 그들은 오히려 그의 방으로 허겁지겁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자네. 이 대낮에 침대 속에 기어 들어가 있으니! 몸살기운이 있으면 기분 전환이 필요해!” 손님 중 하나가 고함쳤다.
그는 재치 있는 유머를 잘하는 수다쟁이였다. 예술가들은 교수에게 집요하게 치근대며 침대에서 끌어내리려 애썼다. 눈에 띠는 병 증세가 없었기 때문에 교수는 참 난처했다. 그는 손님들을 일단 방에서 내보낸 뒤 할 수 없이 옷을 챙겨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손님들은 응접실에서 태연자약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절친한 사이들이었기 때문에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몇 병의 와인을 내놔야 했다. 그들 중 한 유명한 희극배우가 최근 뉴스들에 대해 활기차게 떠벌렸다. 그러자 곧 교수는 프라바토의 예언에 대한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배우가 입심 좋게 얘기를 마친 뒤 교수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친구야, 너 꼭 우리랑 같이 오늘 밤 극장에 가야만 해! 오늘밤은 내가 주연을 맡은 연극 초연이 있어. 넌 평론가잖아.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연극을 놓치면 안 돼.”
와인 두 잔을 마시자 교수는 기분이 얼큰해져 왔다.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는 서둘러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떠들썩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고 나자 이제 출발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두 대의 대형 택시를 잡아타고 희희낙락거리며 우르르 극장으로 몰려갔다.
그 날 밤 연극 초연은 대 성공이었다. 교수는 친구들과 함께 현관에서 주연배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마침내 스타가 도착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그에게 축하 세례를 퍼부었다. 교수도 매우 호의적인 평론을 쓰기로 약속했다. 같이 공연한 배우들이 그들과 합류했고 그렇게 그들은 무리를 지어 술집으로 간 뒤 연극의 성공을 축하했다.
다음 날 또 다시 공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행은 11시 30분 경 헤어졌다. 주연 배우가 교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게! 왜 택시를 타지 않고? 빨리 집에 가야잖아.”
그 날은 토요일 밤이었다. 클럽은 다소 붐볐다. 택시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취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걸어가며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로의 교통은 아직도 복잡했다. 그래서 그는 한산한 샛길로 돌아 내려갔다. 그는 흥에 겨워 있었다. 반쯤 열린 술집과 나이트 클럽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가에 울려 퍼졌다. 그는 길을 거닐며 상념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 술집 근처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서 있었다. 호기심에 교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술에 만취한 두 젊은 남자가 서로 욕하며 막 싸울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본 교수는 울컥 올라오는 충동으로 그 두 사내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거리에서 싸움질 그만두고 집에 가!”
그리고 한 순간에 모든 상황이 변화되었다. 그 두 술 취한 사내가 싸움을 문득 멈추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교수에게 욕을 퍼부으며 대들었다. 그는 잡아먹을 듯 그에게 다가왔다. 그가 교수의 멱살을 잡는 순간 교수가 놈에게 주먹을 한 방 날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일대 소동이 뒤따랐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교수는 운이 사납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군중 속으로 도망쳤다. 그에게 얻어맞은 놈이 복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새된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교수를 쫓아갔다.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번화가 쪽을 향해 달렸다. 거기서 경찰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아, 이런. 경찰들은 꼭 이럴 땐 없단 말야!”
그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러나 추적자와의 간격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는 거의 완전히 녹초가 돼 있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풀버 타워가 나왔다. 그런데 그 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프라바토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도와 주세요!” 교수가 숨을 심하게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저놈들이 날 죽이려고 해요!”
프라바토가 교수를 옆으로 부드럽게 밀치며 말했다. “됐어요. 이젠 두려워 말아요!” 침착한 목소리였다. 교수를 안심시킨 뒤 그는 다가오는 불한당 앞에 고요히 섰다. 그러자 갑자기 사내의 몸이 마비되듯 정지되었다.
손에는 아직도 칼이 들려있었다. 잠시 후 그는 방향을 돌려 옆 모퉁이로 사라져 버렸다. 프라바토가 카발라의 마법 공식32을 사용하여 상황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프라바토가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손발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가 약간 더듬거리며 프라바토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 시체가 돼 있을 거예요!”
프라바토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수님, 당신은 아직 자기 운명의 주인은 전혀 아닌 것 같군요. 운명의 주인이라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말한 것들이 입증됐죠? 이젠 아시겠죠, 모든 상황들을 콘트롤하고 그것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능력이 없다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이제 아시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이른바 ‘마법적 균형’33을 성취해야만 한다는 것을요.”
교수는 자신이 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죄나 저지른 것처럼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에 대해 사과했다. 프라바토는 그를 번화가로 데리고 갔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게 해서 그를 진정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한 집시 밴드가 손님들의 흥을 돋구어 주고 있었다. 프라바토가 교수를 구석의 조용한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프라바토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그의 마음은 진정되었고 곧 평소의 침착함을 다시 회복했다.
한숨 돌린 교수가 상세한 설명을 원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프리바토가 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프라바토는 이 사건을 아카샤에서 미리 보았고, 싸움이 벌어졌을 때 나타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명이 다소 설득력 없게 돼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풀버 타워에서 얼마나 기다렸죠?” 교수가 물었다.
“5분 정도 밖에 기다리지 않았어요.” 프라바토가 대답했다. “나는 영안으로 당신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디서 당신을 만나게 될지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는 이 운명적인 연결들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 날 밤 교수는 프라바토에게 영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고 프라바토는 그에게 상세히 대답해 주었다.
밤이 깊도록 얘기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다음 날 저녁에 K의 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그들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땅거미가 기울기 시작했다. K의 빌라에서는 큰 파티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다. K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이미 많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손님들 중 다수가 신문 지상을 통해 프라바토를 알고 있었고 그를 개인적으로 무척 만나보고 싶어했다.
K는 이미 아침에 G와 전화 통화를 했기 때문에 지난 밤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G 교수는 짤막하게만 말한 뒤, 그 날 밤 자세히 얘기를 들려주겠노라고 대답했다.
손님들을 태운 차들이 하나씩 꼬리를 물고 도착했다. K는 사교 모임을 주재하길 무척 좋아했다. 사업가, 작가, 예술가, 기자들이 섞여 한 무리를 이루었다. 7시 30분에 K가 손님들에게 환영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프라바토가 8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손님들에게 알렸다.
그 사이 그는 친구 G에게 프라바토와 겪은 일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입에 거품을 물고 감동적으로 프라바토의 예언과 그가 겪은 사건에 대해 말했다.
지난 밤 사건에 대한 G의 이야기는 프라바토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기대감을 고양시켰다. 왜냐하면 손님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부탁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집 주인이 프라바토의 도착을 손님들에게 알리자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K가 프라바토를 안으로 안내했다. 몇 마디 말로 그를 소개한 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즉시 저녁이 나왔다. 손님들에게 진수성찬과 최고급 음료들이 제공되었다.
프라바토는 테이블 끝의 상석에 모셔졌다. 상석이었기 때문에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그는 거기서 눈에 띠지 않게 손님들 한 사람 한 사람씩 꼼꼼히 살폈다. 테이블이 닦일 무렵 그는 이미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밀한 생각들을 파악하게 되었다. 물론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척 했다.
바야흐로 그 날 이브닝 파티의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 시작될 참이었다. K는 프라바토가 손님들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프라바토가 먼저 일어서서 주인에게 초대와 극진한 대접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였고 이 곳의 많은 사람들이 오컬트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프라바토가 그렇게 인사말을 하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해진 K가 프라바토를 만나게 된 경위를 좌중의 사람들에게 설명하였다. 30분 정도 일반적인 대화가 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들 중에는 그 날 밤 프라바토와 한 마디 말도 나눌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오컬트적인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프라바토가 커피 한 잔을 청했다. 설탕을 저으며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여러분 대부분은 이미 마법 거울과 수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진정한 비전가는 어떤 액체도 마법 거울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 잔의 블랙 커피로도요.”
한 여배우가 질문을 청하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프라바토가 그녀에게 가만있어 달라는 손짓을 했다.
“저는 당신이 내일 있을 연극이 성공할지 여부를 물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역을 맡은 데다, 리허설에서 약간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프라바토가 강한 집중을 하여 커피 잔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것으로부터 직접 사건을 읽으려는 듯이. 하지만 커피 액의 검은 표면은 단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었다. 그가 미래를 보는 것은 그의 영안을 통해서였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 성공을 거둘 것이고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여배우는 놀라며 기뻐했다. 프라바토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상념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프라바토의 말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러분은 제게 아무 말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프라바토가 말을 계속 했다. “저는 여러분 각자가 처한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사업가들 중 한 사람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의 미래는 어둡게 보입니다. 이틀 전에 서류에 사인을 하셨죠? 그 때문에 당신은 곧 사업상 곤경에 처하게 될 것 같군요.”
문제의 신사는 실제로 어떤 서류에 동의 사인을 한 바 있었다. 그는 프라바토의 예언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프라바토의 말은 머지않아 현실로 되었다.
이런 식으로 프라바토는 그곳에 모인 손님들에게 앞으로 곧 닥칠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차례로 한 사람씩 프라바토와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고, 어떤 젊은 숙녀가 막 다른 질문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 프라바토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다. 그러자 일순간 실내가 조용해 졌다.
사람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프라바토를 바라보았다. 프라바토는 룸 한 구석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에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은 무표정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깊이 숨을 들이신 뒤 K를 돌아보며 말했다.
“K 씨, 당신의 막내 누이를 홀로 위층 방에 두고 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오늘 당신은 그녀한테 저에 대해 말했죠? 그녀는 나와 얘기 할 수 있길 무척 고대하고 있어요. 병든 누이를 이곳에 우리와 같이 있게 하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병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는군요.”
프라바토의 말은 K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당혹케 만들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할 수 없다는 듯 프라바토가 말한 것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은 파티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라바토에게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만일 손님들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서 누이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K의 제안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다. 그리고 두 숙녀가 자진해서 K의 누이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 주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누이 방에 갔을 때 그녀는 정말로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K의 누이인 헬렌은 6개월 전부터 뇌출혈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는 몸 오른 쪽이 마비돼 있었다. 그 분야 최고의 의사들이 그녀를 치료하려 애썼지만 나아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과 23살이었다.
K는 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파티에 같이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처음에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파티에 합석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러나 두 숙녀들이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자 호기심과 기대감에 마침내 그녀가 동의했다.
숙녀들이 헬렌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옷을 다 입은 뒤 그녀가 아래층으로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녀는 자신이 프라바토 곁에 앉는 영광을 얻자 무척 기뻐했다.
파티가 계속 진행되었다. 프라바토가 수많은 여행들 중에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그의 얘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나 내심, 프라바토의 오컬트 능력들을 더 보길 원하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프라바토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의 영안에는 그들의 모든 상념들이 열려 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그는 헬렌의 운명을 바삐 훑고 있었다. 프라바토는 마음 속으로 그녀를 치유해 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마침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신의 응답이 들려왔다. “그녀를 도와줘라. 그녀를 치료해 주어라!”
갑자기 프라바토가 이야기를 멈췄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헬렌의 손을 잡고 그녀를 몇 초 동안 응시했다. 그녀는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모두들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2분쯤 후 헬렌은 깊은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속눈썹이 약간 깜빡이더니 이윽고 깨어났다.
프라바토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다시 건강해졌어요. 기분이 어때요?”
K의 젊은 누이는 의심스러운 듯 주위를 둘러 봤다. 그리고 나서 머뭇거리며 그녀의 오른 팔을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 허리를 굽혀 그녀의 오른 발을 쫙 폈다.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고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당신은 이제 양쪽 다리를 다시 사용할 수 있어요.” 프라바토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일어서려 했다. 아직은 움직임이 약간 불안정했다. 프라바토가 그녀의 팔을 잡고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혼자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녀는 혹시나 예전 상태로 돌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몇 미터를 걸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예기치 않았던 치유에 그녀를 축하해 주자 기쁨의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손님들이 헬렌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동안 프라바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 나와 바(bar)로 갔다.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성자가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손님들은 기적적인 치유에 경외감을 느꼈다.
어떤 이들은 중병을 간단히 치유하는 초인적인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헬렌이 바(bar)로 프라바토를 찾아왔다. 손을 뻗으며 그녀가 말했다. “저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당신은 제게 다시 새로운 삶을 주셨어요.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프라바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제가 기쁩니다. 저는 단지 통로에 불과해요. 당신은 제가 아니라 신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치유가 가능하게 해준 분이시니까요.”
중병에서 완쾌된 헬렌은 다시 손님들과 섞여 어울렸다. 파티의 무드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몇몇씩 모여 그 날 밤 사건들을 가지고 열띤 토론들을 벌였다. 손님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며 파티장을 떠나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마지막 손님이 집을 떠나간 뒤 오직 K와 누이, 그리고 프라바토, 세 사람만이 남았다. K는 프라바토에게 그 날 밤 집에 머물러 주길 간청했다. 프라바토는 무척 피곤했던 터라 그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들이 각자 방으로 가자 프라바토는 자기를 위해 마련된 방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떠오르는 태양 광선이 커튼을 뚫고 들어와 프라바토의 얼굴에 머물렀다. 햇살이 그를 이내 잠에서 깨웠다. 그가 일어나 옷을 입고 막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K와 그의 누이가 웃음 띤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에게 편히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는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두 사람은 지난 밤 사건으로 인한 흥분 때문에 잠을 조금 밖에 자지 못한 듯 했다. 그럼에도 프라바토 때문에 그들은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은 헬렌이 준비한 것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K가 프라바토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희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희가 교외에 별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지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까지라도 거기에 머무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가까이 계시면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 프라바토가 대답했다. “당신의 제의에 매우 감사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들이죠. 호텔 방은 편안하지 않아서요. 원하신다면 기꺼이 제가 당신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드리도록 하지요.”
아침을 마치고 그들은 함께 호텔로 갔다. 프라바토의 짐을 챙긴 뒤 그들은 시골 별장으로 차를 몰았다. 집은 모든 설비가 다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매력적인 전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K와 누이가 프라바토에게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공급해주겠다고 말한 뒤 작별 인사를 했다.
프라바토는 이 운명의 흐름에 대 만족이었다. 별장은 그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도시 유지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그들은 그를 경제적으로도 도와줄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그의 운명에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제9장
자연 마법
오래지 않아 프라바토는 새로운 거주지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형이상학에 대한 글들을 여러 잡지에 기고했다. 기자들이 그를 방문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그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환자들도 더욱 늘어났다. 그는 힐링(치유)에 매우 정통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 날도 그렇게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오후 늦게 마지막 방문자가 막 그의 집을 떠났다. 프라바토는 다음 날 할 일을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벨이 울렸다. 현관에 나가 보니 G 교수가 서 있었다. 교수가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G 교수는 그를 정기적으로 찾아 왔다. 두 사람은 종종 오컬트 과학의 다양한 측면들을 상세히 토론하곤 했다.
프라바토는 G 교수와 악수하며 말했다. “오늘 방문객들이 무척 많았어요. 쉴 새가 없었어요.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싶군요. 오늘 날씨 너무 좋죠? 맑은 공기를 마시면 건강에도 좋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G가 동의했다. 몇 분 후 그들은 집을 나와 초원으로 둘러싸인 가까운 숲을 향해 걸었다. 태양이 이미 약간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빛살이 강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끈한 열기가 아직도 땅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자연이 바싹 타는 것처럼 보였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그렇듯이 오늘도 G 교수는 오컬트 문제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준비해 왔다. 프라바토가 상세히 대답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그가 프라바토에게 물은 것은 엘리멘탈 존재들과 자연령들에 대한 것이었다. 프라바토는 교수에게 엘리멘탈 존재들의 다양한 종류와 활동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그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영적 존재들이 특별히 자연과 친근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은 한 동안 사색에 잠긴 채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말없이 마냥 걸었다. 비록 태양이 차츰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꽤 무더웠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저는 압니다.” 프라바토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독한 회의론자라는 것을요. 이론가로서 당신은 마법의 힘들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다시피 지금 이 순간 비가 올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곧 비가 내릴 수 있도록 카발라의 자연 마법을 사용해 보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면 당신은 이 영적인 과학의 효력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군요.” G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어떠한 비밀도 숨겨져 있는 것 같지 않군요. 물론 저로선 당신이 자연 마법의 한 예를 입증해 준다면 고맙기 그지없죠.”
프라바토가 미소를 머금었다.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은 마법사의 일반적인 능력들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G에게 말했다. ”당신은 신성한 섭리와 연결된 인간에게 어떠한 일도 불가능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데프트는 항상 신의 명령에 의해서만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죠.
비전가는 자신의 영적인 수준이 높아갈수록 신성한 섭리와 우주의 경이로운 비밀들을 더욱 존중하게 됩니다. 저는 단지 당신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비를 만들지는 않아요. 비를 갈구하는 자연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자 이제 하늘을 잘 주시하세요. 그리고 내가 다시 말할 때까지 조용히 있어주세요.“
두 사람은 잔디에 앉았다. 광활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근처에는 둘밖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프라바토는 결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곧게 세운 뒤 눈을 감았다. 그는 완전히 마비된 듯이 보였다. G 교수는 주의 깊게 주위 풍광을 보았다. 그리고 간간이 경직된 프라바토를 힐끗 쳐다보곤 했다. 5분쯤 지나자 프라바토가 생기에 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눈을 뜬 뒤 다리를 쭉 뻗으며 G에게 물었다.
“뭐 어떤 특별한 것을 보지 못했나요?"
사실 G는 이미 공기 중에 차츰 긴장이 감도는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폭풍의 전조였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프라바토가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을 때 지평선 위로 구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G가 경악하며 저 먼 곳을 가리켰다.
“저 봐요. 구름이 저렇게 빨리 몰려오다니! 그렇게 강력한 힘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니 놀랍군요. 당신 겉모습만 봐선 누가 당신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겠어요?”
“진정한 마법사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어떤 환경에도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침묵의 속성이지요. 헤르메스학의 관점에서 볼 때 침묵은 신성한 힘의 기본적인 특성들 중 하나입니다.
마법적인 관점에서 침묵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대중으로부터 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원리가 지켜졌을 때만이 신은 그의 성숙도를 신뢰하여 그에게 최고급의 힘을 맡깁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내가 헤르메스학이나 영적인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서로 수년동안 알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당신의 발전의 수준에 맞추어서만 저의 능력의 정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진정한 아데프트는 결코 성자처럼 행세하지 않는답니다.”
이 짧은 대화를 하는 동안 하늘은 곧 폭풍이라도 칠 듯한 기세로 돌변했다. 번개가 구름 사이로 번쩍거리고 있었고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렸다. G 교수는 근심스러운 듯 하늘을 쳐다보며 불안해하였다. 허허벌판에서 폭우를 맞으면 어쩌나 하는 모양이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프라바토가 손을 그의 어깨에 대며 말했다.
“내가 여기 당신과 함께 있는 한,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몇 방울의 빗물이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치진 못할 거예요. 게다가 이 근처에 밤나무 수풀이 있으니 거기 피하면 되고요. 하지만 폭풍우가 치기 전에 집으로 가고 싶다면 같이 가면 되고요.”
G는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비를 피해 밤나무 아래로 가자고 말했다. 그곳은 2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거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첫 번째 큰 빗방울들이 땅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달린 그들은 비가 퍼붓기 바로 전에 가까스로 숲에 도착했다.
강풍이 나무를 통해 불어오고 있었다. 인정사정 없이 잔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나갔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방에 물웅덩이들이 생겼다. 땅이 미처 물을 흡수할 겨를도 없었다. 이 지방에서 이렇게 강한 폭우가 쏟아지기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밤나무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 그곳도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그러나 프라바토는 아무려나 희희낙락이었다. 하지만 G는 몸이 약해서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전 매우 민감한 체질이에요.” 애써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가 말했다. “옷이 젖어서 감기에 걸릴 거 같아요.”
“두려워 말아요.” 프라바토가 오른 손을 그의 어깨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몇 초 후 G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프라바토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열을 손으로 제게 방사하고 있군요! 벌써 사우나탕에 있는 것처럼 몸이 뜨거워지는 걸요. 당신의 이 놀라운 능력을 보니 이제 당신이 환자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는군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당신이 지닌 이 힘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퍼부었다. 땅이 빗물을 다 흡수할 겨를도 없었다. 도랑은 이미 넘쳐흘렀고 길들이 잠겨버렸다. G가 겸연쩍게 물었다. “이 비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우리는 이 폭우 속에서는 집으로 갈 수 없을 거예요.”
프라바토가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내가 자연의 정령들로 하여금 비를 오게 한 것처럼 지금 비를 그치게 할 수도 있어요.”
“그건 불가능해요!” 교수가 소리쳤다. “하늘이 이렇게 새까맣고 집에 갈 일도 막막한데!”
프라바토가 웃으며 말했다. “왜 안돼요? 우리가 이 장소를 떠나면 곧 한 방울의 비도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이 비가 우연이라고 의심하는 거예요? 나는 신과 함께라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당신에게 증명할 수 있어요. 이런 사소한 일이 왜 불가능하겠어요? 자 이제 잘 지켜봐요!”
프라바토가 한 방향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서 몇 마디 말을 속삭이며 공중에 어떤 동작을 했다.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비가 그쳤다. 비록 하늘의 색깔은 여전히 시커멓지만. 프라바토가 G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교수가 종종걸음으로 프라바토를 따라갔다. 비록 그들의 몸은 완전히 젖어 있었지만 프라바토는 고급한 영들로 둘러싸인 듯 했다.
G 교수는 다음 벌어진 기적적인 사태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놀랍게도 다른 모든 곳은 비가 계속 비가 내리고 있는데 프라바토와 그가 걷고 있는 곳만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그들이 가는 길 앞에서 갈라졌다가 뒤에 다시 닫히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프라바토가 교수의 곁에서 걸었다. 프라바토는, G가 경악하는 모습을 웃음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은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았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곳들은 폭우가 계속되었다.
프라바토의 집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들은 전등 스위치를 올려야 했다. G는 당장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프라바토가 자기 집에 머물도록 설득했다. 그는 교수에게 마른 옷을 빌려주고 젖은 옷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건네 세탁해서 다림질을 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차와 비스켓을 먹으며 편안하게 응접실에 앉았다.
“당신은 정말 놀라운 사람이군요! 당신은 비를 내리게도 하고 멎게도 합니다. 당신이 고치지 못하는 병도 없구요.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과학에 정통하구요. 그러면서도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처럼 풍부한 지식과 파워를 가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프라바토가 교수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떤 인간도 이런 종류의 지식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법의 길을 따라 에너지를 모으고 최고 차원으로 상승한다면 말입니다. 이 힘은 내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나는 에너지와 힘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행위를 신 앞에서 정당화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고급한 비전가들은 카르마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마법력을 자신의 이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일정한 육체적인 화신 기간동안 그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능력들을 어떤 보통 사람이 갖는 정도만 행사하도록 허락 받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위배되어서는 안 되는 발전의 법칙입니다.
진정한 마법사는 자신이 신과 항상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흑마술사에게는 그런 연결이 없지요. 흑마술사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기를 우주의 고아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흑마술사의 최종적인 운명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고독감은 비전가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비전가들은 영적 법칙들을 절대 준수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한 섭리의 힘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 받습니다. 이 영적인 법칙을 절대 준수하는 것은 카르마의 힘들에 의해 주어지는 형벌이 두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의 힘과 지혜를 향한 절대적인 존경과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마법의 길에 있어서 신에 대한 존경과 겸손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특성들입니다.
미숙한 비입문자들은 비전가의 운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영적인 법칙들에 대한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행운아는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마법력에 대한 약간의 실례들을 보여 주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사실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존재와 법칙들의 효과들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면 그 이익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믿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지식을 통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마법에 있어서 믿음은 점차 앎으로 대체 됩니다. 먼저 학인들은 비전가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런 믿음을 ‘체현된 믿음’이라 부르죠. 그리스도가 설한 것은 바로 그러한 믿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진정한 믿음은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방이 환히 밝아졌다. 그리고 이어 천둥소리가 우르릉쾅하고 울렸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아시죠.” 프라바토가 말을 계속 이었다. “대기의 상태가 고기압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멘탈 존재들이 나의 명령을 따르고 비와 천둥을 일으켰다는 것을. 만일 영안을 이용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처럼 뇌우를 일으키기 위해 앤터티들이 어떻게 사대를 움직이는 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전류를 인도해 이런 효과들을 야기하는 지 말입니다.
우리 투시가들은 그런 과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에는 기적처럼 보이죠. 사대를 움직이는 것은 자연 마법에 대한 카발라의 가장 기초적인 비밀들 중 하나입니다. 자, 이제는 다시 사대를 진정시키야겠군요. 그렇지 않다면 뇌우가 내일 아침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면 피해가 많이 발생케 됩니다.”
말을 마친 프라바토가 창문 가에 다가가 섰다. 그는 시선을 멀리 던진 채 교수가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마법 공식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몇 분 후 비가 그쳤다. 구름들이 서서히 갈라지며 별이 빛나는 하늘이 보였다. 자연이 다시 숨을 쉬고 생기에 넘치는 것 같았다.
다행히 G 교수의 옷도 다 말랐다. 프라바토는 교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그 날의 사건들은 교수에게 깊은 인상과 사색거리를 남겼다.
몇 달이 흘렀다. 프라바토는 매우 바빴다. 그가 가명으로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기사들이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는 형이상학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와 권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거나 심지어 증오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프라바토는 온갖 정적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무시한 채 완전히 카르마의 작용에 맡겨 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외국 여러 나라와도 많은 접촉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그를 초대하는 일들이 빈번하였다. 마침내 프라바토는 K의 시골 별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조만간 세계 여행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들이 신속히 이루어졌고 곧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는 세계의 여러 대도시와 흥미로운 도시들을 여행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상황에 따라 비전가로서 활동하거나 영적인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일했다. 프라바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없는 사이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K와 K의 누이 모두 결혼해 있었다. 사실 K는 물의 요정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K는 마법을 통해 한 운딘(물의 요정)을 소환하였다. 그러나 그는 마법적 균형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극히 아름답고 매혹적인 물의 요정의 유혹에 못 이겨 결혼 계약을 맺게 되었다.
운딘은 아름다운 젊은 소녀의 몸으로 화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법에 의해 아픈 몸을 치유했고 K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 K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34
프라바토는 이미 오래 전부터 K에게 요정과 그런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했었다. 그는 투시로 K의 미래를 볼 수 있었고 K가 직면하게 될 위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K는 프라바토의 경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운딘의 유혹에 넘어가 희생자가 된 것이다.
K의 누이인 헬렌은 외국인 사업가와 결혼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있었다. 교외의 시골 별장 또한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프라바토는 오래된 지인들이 멀어진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느라 심신이 무척 피로했고, 무엇보다 앞으로 조용히 살기를 원했다. 그의 고향에 새로운 집을 마련하고 그 후 2년 동안 은거하며 지냈다.
물질주의와 정치적인 광신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영적이고 오컬트적인 과학에 흥미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큰 위험에 처했다.35 전쟁의 공포가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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