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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카발라 - 20장. 생자의 땅 본문
20장
생자生者의 땅
시편기자(다윗)는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면전에서 걷고 생자의 땅을 거닌다.' 생자의 땅은 지구, 특히 지구의 정묘한 에테르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는 우리가 매일 보고, 밟고 다니는 세계이다. 그러나 지구에는 정묘한 세계도 존재한다. 거기에는 빛나는 영, 천사, 신들이 거주한다. 예수는 아직도 그 지구 위를 거닐고 있다. 예수는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약속하지 않았던가. '보라, 나는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끝 날까지.'
물론 그는 물질계를 떠났다. 하지만 빛나는 신성한 세계인 생자의 땅, 에테르계를 떠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정화하고 위대한 영적인 높이에 이른 모든 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 생자의 땅에 거주한다. 그곳은 의식의 상태이다. 위대한 마스터들, 천사와 신들, 그리스도의 영과 교감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카발라 전승에서는 일곱 세계가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사실 '일곱 땅'은 정묘함의 정도에 따라 나뉘는 지구의 일곱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 강, 화산으로 이루어진 지구는 전체 실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장 농밀한 영역으로, 인간이 원죄를 저지른 후 천국으로부터 추방된 뒤 살게 된 곳이다. 천국은 진정한 지구, 생자들의 땅이다.
사실 지구는 인간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일곱 신체로 구성돼 있다. 육체만 아는 정도로는 결코 인간의 참 모습을 안다고는 볼 수 없다. 만일 인간을 알기 원한다면 물질 차원만이 아니라 에텔, 아스트럴, 멘탈, 코잘, 붓디, 아트마 차원상의 신체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한다.
당신은 이런 격언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인간에 대해 알면 당신은 우주와 모든 신들에 대해 알 것이다.' 우주와 인간은 동일한 패턴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측면, 즉 육체만 보고 전체를 안 것처럼 생각한다면 무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협소하고 부적절한 시야인가! 인간의 진화가 그토록 느린 것은 자신을 오감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존재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비전가들은 이 한계를 멀리 초월한다. 그들은 인간과 우주의 모든 차원들을 탐험한다. 그들은 창조의 무한성과 풍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밟고 거니는 지구는 우리의 육체에 비유할 수 있다. 지구는 우리 몸처럼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멘탈체 등의 영체들을 가지고 있다. 지구는 영체를 통해 태양과 그밖의 행성들과 접촉한다. 겉으로 볼 때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분리돼 있다. 모든 행성들은 거리에 의해 서로 분리돼 있다. 그러나 이 분리는 단지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그들은 영체들을 통해 사실한 긴밀히 접촉하고 있고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지구의 앤터티Entity들이 다른 행성들을 여행하고 다른 행성의 앤터티들이 지구를 방문한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영향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태양계를 구성하는 모든 별들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몸과 같다. 태양은 이 몸에 생명을 주는 심장이다. 태양계는 다양한 기관들을 가진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이다. 우리 몸의 기관들처럼 이 기관들은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호 긴밀한 교감과 협력을 통해 일해 나간다. 점성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긴밀한 관계는 지상의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행성들의 영향을 설명해준다.
지구는 태양계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몸의 기관들 중 하나이다. 그 공장들 안에서 일하는 존재들은 다른 행성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금속, 광물, 식물 등 역시 그것들의 영향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가 생명도 지성도 없는 무정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어떻게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지상이나 바다의 온갖 생물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가? 지상의 모든 형태의 생명은 지구령의 작업 결과이다. 이 신성한 영은 태양과 여타 행성들의 영들과 끊임없이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지구는 영체들을 통해 태양과 그밖의 행성들과 접촉하고 있다. 지구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지구는 생각하고 느끼고 숨 쉬고 진화한다. 그리고 지구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점성학자들은 천궁도를 작성할 때 지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는 완전히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행성들보다고 지구로부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경우 거리라는 요인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째서 태양보다 달이 더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달이 우리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지구는 우리와 훨씬 더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히 지구의 상이한 상태들에 의해 보다 쉽게 영향받는다. 지구는 깨어 있을 때도 있고 잠자고 있을 때도 있다. 지구는 생각에 잠길 때도 있고 행복해 할 때도 있고 슬퍼할 때도 있다. 누구도 이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큰 실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구와 계속 접촉하며 살고 있으며 변동하는 자류의 영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는 태어나는 순간의 지구의 상태에 의해 영향받는다. 나는 이 사실이 점성학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영원한 생명의 땅, 생자의 땅은 매우 고양된 영, 성자, 선지자, 위대한 마스터들의 거처이다. 예수는 말했다. '보라, 나는 당신과 항상 함께 있다. 세상의 끝 날까지.' 이 말은 그가 이 지구를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지구를 떠난 적이 없다. 신성한 원리로서의 그리스도와 그 원리의 화신으로서의 예수 모두. 그는 여전히 여기에 존재하며 일하고 있다. 사실 그는 우리가 아는 물리적 지구에서는 떠났다. 그러나 생자의 땅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 거기서 그는 빛의 길을 선택한 모든 자들을 보호하고 계명하고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는 사후에 승천하였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의 전全 존재는 천상에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지상에서 일하고 있다.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의 경우에, 우리는 지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는 천상에 있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에 그의 전 존재는 천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아직도 지상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그의 본부는 지구의 에테르계에 존재한다. 이 지구의 에테르계가 바로 생자의 땅이며 예수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거기에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지구는 사자死者의 땅이다. 눈물과 고뇌의 골짜기이다. 병원이고 무덤이다. 실제로 그것은 무덤이다! 영겁의 세월에 걸쳐 지표 위에 축적된 그 모든 뼈들을 생각해 보라! 무수한 인간들이 남긴 뼈와 살들. 나무, 꽃, 과일, 채소 등은 모두 그 위에서 자라난다. 우리의 집들은 그 위에 지어져 있다. 지구의 어느 모퉁이든 무덤 아닌 곳이 없다. 달리 말해 우리는 무덤 위를 걷고 그 위에서 마시고 먹고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곳은 지구의 에테르계 뿐이다. 그 차원에는 무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성자, 선지자, 위대한 마스터들이 거주하기로 선택한 곳이다.
우리는 지구의 에테르계에서 예수를 추구해야만 한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가 실제로 살았던 성지 팔레스타인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지 않는가? 그곳이 그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곳에서 그의 존재의 흔적들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아왔다. 사람들의 상념과 감정들은 그리 순수하고 맑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더럽혔다. 그곳은 더 이상 예수가 살던 당시의 그런 곳이 아니다. 그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다. 당신은 예수의 흔적을 지구의 에테르계에서 찾아야만 한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수세기 동안 크리스천들은 그의 무덤으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무덤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교인들과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들이 예수의 무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던 것인지, 실제로 그것이 예수가 누워있는 무덤인지 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설령 그렇다 해도 그 무덤 속에 있는 것은 예수의 육신이지 그의 영이 아니다. 그의 영은 다른 곳에 있다. 지극히 빛나는 우주의 영역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영은 계속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마스터 페테르 되노프가 죽은 뒤 불가리아에 있는 형제단의 몇몇 사람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 그의 무덤가에 종종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와 분쟁들에 대해 내게 말하였다. 이것은 나를 무척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들은 무덤에 간다면 마스터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마스터와 가까이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이보다 더 나은 증거가 있을 수 있는가?'
어떤 성자나 위대한 마스터의 무덤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들의 영과 실제로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만일 당신이 자신의 진보를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할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면 무덤에 찾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더 정직한 행동일 것이다.
나는 지금 성지를 순례하고 거기서 흙이나 자갈 등의 기념물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예수와 하나 되도록 노력한다면 그것들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만으로는 당신에게 아무런 덕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한 때 지녔던 그 옛날의 진동들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불경한 일들이 지난 2천년 동안 성지에서 발생했고, 그 때문에 예수에 의해 남겨진 흔적들 대부분이 지워져버렸다. 모든 비전가들은 이 법칙을 알고 있다. 너무 많은 불순이 축적되면 순수는 계속 영구히 지속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소와 신전들이 대중들과 분리되고 닫혀지도록 전통들이 요구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성스러운 장소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안의 건물과 물건들 속에 아무리 순수하고 빛나는 진동이 간직돼 있다 할지라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면 대중의 상념과 감정들에 수반되는 부정적인 파장 때문에 모든 순수와 빛의 흔적들은 파괴될 것이다. 어둠의 존재들은 빛의 존재들을 몰아낸다. 그러므로 정화 작업이 매번 다시 행해져야만 한다.
물질계 위에 남겨진 순수의 흔적은 불순의 파장에 의해 덮이면 영구히 지속되지 않는다. 나비의 날개를 예로 들어보자. 그 위에 덮인 지극히 미세한 반짝이는 가루는 아주 매혹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아주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비전가들은 항상 성소와 성물들을 보호한다. 그 속에 포함된 신성한 자류와 힘들이 다른 힘들에 의해 상쇄되지 않도록. 그러나 일단 비전가들이 그곳을 떠나고 다른 자들이 차지하게 되면 그것들의 성스러움은 점진적으로 침식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이집트, 트라키아, 인도 등의 많은 성소들이 그 신성한 힘들을 상실한 이유이다. 그곳들에는 더 이상 한때 지니고 있던 신성한 파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그것들을 신성모독해 왔다. 한때 거기에 존재하던 불가시의 신성한 존재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물질계 상에는 더 이상 그들의 존재의 흔적들이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은 다른 곳, 보다 정묘한 차원, 에테르계, 그리고 코잘계에서 그것들을 구해야만 한다. 그 빛나는 영역은 시편의 작가가 '생자의 땅'이라 부른 곳이다.
세브레, 1964년 1월 4일.
[출처] 비전의 카발라 - 20장. 생자의 땅|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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