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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카발라 - 7장. 사원소 II 본문
7장. 사원소 II
당신은 사원소들 중에서 부동성의 특성을 지닌 유일한 원소가 흙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원소들, 즉 물, 공기, 불은 모두 유동성을 지닌다. 흙만이 부동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흙은 다른 원소들, 특히 불에 의해 가차 없이 이겨지고 조형되는 물질을 구성한다. 하지만 흙을 조형하는 불은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 태양의 불이다. 이 태양의 불은 모든 운동의 기원이 되는 불이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 모든 변화는 태양의 작용의 결과이다. 만일 태양이 없다면 공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물은 정체될 것이고 흙은 무형상을 띨 것이다. 모든 운동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불 원소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의 작용에 의해 모든 물질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물질은 그 자체로 불활성이며 무형이다. 물질의 생명과 운동은 영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창세기의 서두에 모세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일단 이것이 이해된다면 우리는 세계, 사회 그리고 개인들도 관념에 의해 지배받고 조형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에 힘을 가지길 원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영에 보다 큰 표현의 자유를 주고 자신의 물질 위에 작용할 수 있게 해야만 한다. 위에 있는 것은 반드시 아래의 것을 지배하고 컨트롤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위로부터 오고 아래에 반영된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이미지는 지구에 미치는 태양의 작용이다. 지상에서의 생명과 죽음은 태양의 열과 빛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다. 유사하게, 우리의 육체와 물질생활의 전체는 우리의 영의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핵심 포인트를 환기시켜 준다. 그것은 바로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태양은 지구 위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양은 항상 공기와 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영이 육체 위에 작용하기 위해서는 중간 매개들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시스템에 의존한다면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존재계의 삼중 체계를 사용한다면 영이 혼(마음과 가슴)의 매개를 통해 육체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영체 시스템을 사용한다면 아트마체(영)가 붓디체, 코잘체, 멘탈체, 그리고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육체에 작용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또 영과 육체 사이의 또 다른 매개로 신경체계(특히 태양신경총)를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 잠재의식 사이의 통신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면 태양신경총의 매개를 통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태양신경총에 작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아스트랄체, 즉 느낌(감정)을 통해서이다. 상념(공기)은 우리의 느낌(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의 느낌(감정)을 통해서 거대한 생명 에너지의 저장소인 태양신경총에 영향을 미친다.
위로 불에서 아래로 흙까지, 원소들 사이의 체계적인 순서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순서체계를 무시하는 자는 자기 지배 즉 내면의 질서를 수립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항상 사건이나 환경에 좌우되게 된다. 만일 그가 물질계의 요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다른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물질계에 묶인 채로 남아있게 된다. 그는 결코 고급한 계로 상승할 수 없다. 그리고 상황을 지배하기 위해 그 요소들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원소와 그 상하체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들만이 성공의 길을 걷고 지고한 이상을 성취할 수 있다. 오로지 그들만이 자신의 욕망과 자기 자신을 마스터할 수 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오래 전에 나는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 당신은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이해하였다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조각가, 화가, 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인식했다면 태양이 최초의 원인자이므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주의력을 태양에, 다시 말하면 당신의 영에 기울였을 것이다.
바람을 일으키고 대기의 흐름(당신의 상념)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영이다. 바람은 물, 연못, 호수, 강, 바다, 즉 당신의 느낌, 감정, 정서 위에 불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몸과 얼굴의 인상을 조각한다. 물이 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감정은 육체를 조형하고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심령적(사이킥적) 조각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조각하기 원한다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에 안정성을 주고 싶다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만들고 싶다면, 그것이 필요로 하는 표현 능력을 가지고 싶다면 당신은 반드시 영의 우선 법칙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단지 흉한 꼴이 되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이것을 매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자기를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영의 진정한 과학을 배우기 위해 신성한 학원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와 전쟁,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은 모두 관념, 상념에 의해 생겨난다. 칼 막스의 <자본론>에서 주어진 깊은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인간 사회의 생명의 상태를 만들고 지배한다는 그의 말은 틀린 것이다. 경제 이면에 관념이 있다. 그것은 선하고 악한 상념들이다. 그것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본의 분배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관념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은 결코 자연의 내밀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 사대의 과학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우리자신의 상념과 감정에 적용할 수 있을까? 오로지 비전의 가르침만이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수년 동안 설명해 오고 있는 것이다. 먹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당신이 카발라, 연금술, 점성학을 실천하는 법에 대해 나는 말해 왔다.
매우 미묘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누군가와 얘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해보자.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영에 집중하라. 그리고 그것에 당신의 상념을 맡겨라. 그러면 당신의 상념은 당신의 감정과 정서를 컨트롤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감정과 정서가 영의 인도를 따를 때 당신의 모든 몸짓, 목소리, 말 또한 순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만일 당신이 영에 우선권을 준다면 당신은 반드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영의 스위치를 누르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일단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제자리를 척척 찾아갈 것이고 당신의 일은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영으로 하여금 당신의 상념과 감정을 책임 맡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어색한 말과 몸짓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대의 과학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하나의 예이다. 그것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 하나하나에 적용된다. 먹는 것이든, 말하는 것이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든. 당신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영을 불러내어 떠맡기도록 하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자체로 잘 되어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에 대해 내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아내, 자식, 형제자매, 부모, 장인장모, 이웃, 동료, 고용주 등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잘 못 한다고 하소연한다. 아무도 자기들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때로 매우 특별하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당신한테 말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사람, 예를 들어 왕이나 고관대작이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정성들여 준비하고 안전을 체크한다. 깃발들을 꽂고 포스터들을 붙인다. 거리를 청소하고 장식한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지성적이고 가장 존경받는 시민들이 그를 영접하는데 선택된다. 왕이 도착할 무렵이 되면 그 장소는 너무도 달라져서 마치 다른 도시가 된 듯이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계속 작업하여 보다 고귀해지고 자신을 보다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면 어디에 가든 당신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은 당신의 영예 속에서 변형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평범한 것 밖에 아무 것도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위해 사물과 환경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불쾌함에 노출될 것이다. 그것은 모두 당신한테 달려 있다. 만일 당신이 계속적으로 빛과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면 당신의 모든 친구와 지인들, 당신의 아내, 자식 그리고 이웃들은 변화될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변화될 수 있는가?” 물론 나는 그들의 내적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매우 진보된 존재들이 와서 당신의 가족 속에 그리고 당신의 친구와 이웃 속에 거주할 것이다. 당신은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내와 자식들은 실제로 변화되는가?” 외적으로는 아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전과 똑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 속에 당신을 사랑하고 도와줄 새로운 존재들이 거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한테 적대적인 존재들은 쫓겨나고 다른 존재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당신이 영, 빛, 사랑, 지혜 등에 우선권을 주는 것을 배운다면 당신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자연히 당신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변화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어떤 노력도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항상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활동의 어떠한 측면도 - 심지어 당신의 내적, 영적, 신비적 삶도 - 이 매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는 매개를 통해서만, 위대한 천사 하이어라키의 채널을 통해서만 간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한다면 많은 종교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그들은 신께 직접 말하기를 원한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신이 자신들한테 응답한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신이 그들한테 말하고 그들이 신께 대답한다고! 그들 중에는 크리스천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야곱의 사다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야곱의 사다리는 영적인 하이어라키를 상징하는 사다리이다.
그 사다리는 위대한 마스터들로부터 세라핌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있다. 신의 피조물들은 이 사다리를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다른 방식으로 창조주에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 속의 모든 것들은 사다리의 필요성을 지적해준다. 심지어 당신 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는 데도 사다리가 필요하다! 당신은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사다리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왕에게 직접 편지를 전하기를 원한다. 글쎄, 설령 우체국에 가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왕궁에 직접 가져간다 할지라도 편지는 왕한테 전달되기 전에 장관이나 각료 등 매개자의 손을 통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이어라키이다. 모든 곳에,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천상에서도 하이어라키는 존재한다. 돌, 식물, 인간, 별, 세계들은 우리에게 하이어라키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신께 직접 올라가서 그를 손으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 내게 자신이 예수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던 한 나이든 부인이 생각난다. 그녀는 자신이 영매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오늘 아침,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 얘기를 했어요.”
“예? 하나님 아버지께요?”
“예. 예수님은 바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대신 오셔서 저와 얘기했어요.”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그분께 오늘 시장에서 무엇을 사면 좋은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말씀해 주시더군요.”
보다시피 이렇다. 이러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쁘시지 않겠는가. 사람들한테 무슨 야채를 사고 어떤 빗자루를 사고 어떤 가루비누를 사야할지 일일이 말해주시다니! 분명 그분은 매우 친절하시다. 당신이 그분의 조언을 청하기만 하면 그분이 그것을 주시니!
다시, 사원소 사이에 존재하는 이 하이어라키의 개념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지구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바다와 대양들(물)이 대륙들(흙)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공기)가 물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 위에 에테르(불)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무를 보라. 당신은 나무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의 구성은 흙, 물, 공기 순으로 성분이 조금씩 많아진다.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은 빛과 불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태워보라.
그러면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에서 많은 화염이 나오고 그보다 적은 양의 가스가 나오고 또 그보다 적은 양의 수증기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한 줌의 재가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사원소 사이의 하이어라키 관련 문제와 이 법칙의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은 흙을 떠받치고 자양분을 공급한다. 공기는 불을 떠받치고 불을 먹여 살린다. 비록 흙이 물보다 위에 있지만 물은 흙을 돌보는 보모이다. 공기와 불은 남성적이다. 흙과 물은 여성적이다. 불의 공기에 대한 작용은 새로운 다섯 번째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유황이다. 불의 공기에 대한 작용은 유황을, 공기의 물에 대한 작용은 수은을, 물의 불에 대한 작용은 소금을 각각 만들어낸다. 연금술사가 유황, 수은, 소금을 가지고 작업하는 걸 배울 때 그는 철학자의 돌을 발견할 수 있다.
봉팽, 1960. 8. 18.
[출처] 비전의 카발라 - 7장. 사원소 II|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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