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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가르침. 명상 본문

영성수행 비전/명상과 기도

티벳의 가르침. 명상

柏道 2018. 3. 27. 11:25


티벳의 가르침, 명상



- 모든 기쁨은 저 너머에 있다. 이 '감옥'에 있는 동안만큼은 또한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그만큼 더 늦게 석방될 것이다. 그러니 이 지상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이번 생을 떠나게 될 때 더욱 위대한 저 너머의 삶을 맞을 준비가 절로 되어 있을 것이다.
  지상의 삶 속에서의 소소한 노력들에는, 분명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 지상의 인간들은 오히려, 가학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실은 꾀죄죄한 군상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이 지상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그런 성품들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려고 지상에 오기 때문이다.


- 지상의 우리는 참으로 가련한 존재들이며, 진흙 주머니에 싸여 육욕과 탐심에 짓눌리고 잘못된 음식에 중독되어 있다.
 '계급의식'에 빠져 있거나 단기간에 돈을 긁어모은 졸부들은 오히려 지상에서의 그들의 삶이,  
​   더없는 실패작임을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 모든 사람에게는 진실을 직면해야 할 때가 온다.
 ​ 그리고 이 지상에는 진실이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허상의 세계이고,
   그들은 수업의 본질을 왜곡하여, 돈과 권력과 지위에만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학교에 다니듯 이 지상에 태어났으므로,
  과거의 잘못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임계점 가까이로 몰고 가는 스트레스를 감당함으로써 영성을 단련하고 과거의 잘못을 뿌리 뽑아야 한다.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지상에 오고, 그 과정에서 친절보다는 고난에 의해,
  더욱 빠르고 확실하게 필요한 바를 배우게 된다.


- 이 세상은 고난의 세계다. 이 세상은 교화소와도 같은 학교이다. 이따금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과 같은 친절함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투쟁으로 점철돼있다. 내 말이 거슬린다면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라.
  고대에 벌어졌던 무수한 전쟁들을 보라.  이 세상은 참으로 혼탁한 곳이다.


- 고귀한 존재들이 의도적으로 스스로 타락함으로써 지상에다 닻을 내리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형태로서는 이곳에 올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는, 지상의 슬픔과 시련을 견뎌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뭔가를 탐한다고 해서 그가 소문만큼 고귀하진 않다고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그는 아주 고귀한 존재일지 모른다. 술은 고귀한 능력을 전부 없애버리는 요물이지 않은가.


- 누군가의 겉모습만으로 그의 영성을 판단하지 말라. 그가 병이 들었다고 해서 질 낮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는 진동수를 높여 특별한 과업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그 병을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소위 대인처럼 행동하지 않고 욕설이나 내뱉는다고 해서, 그를 부정적으로 단정짓지 말라.
  어쩌면 그 불경한 말이나 악덕은 지상에 닻을 내리기 위한 그 나름의 방편일지 모른다.
  술만 끊는다면 그는, 당신이 애초에 기대했던 바로 그 고귀한 존재일 수도 있다.


- 기억하라. 중도야말로 삶의 철칙이다. 후에 되돌려 받아야 할 만큼의 악행을 짓지 말라.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게 만들 정도로 성스럽고 순결하게 살지도 말라.
  그런 식으로는 이 지상에 머물 수가 없다. 물론 다행히도, 그토록 순결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지만.


-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드러내지 말자. 자연스럽게 보일수록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얻으리라.
  우리는 절대로 증거를 내보이지 말기를 권한다. 증거를 보이려 애쓰면 다른 이들의 의심스런 뇌파로 인해
  당신 자신이 먼저 함몰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커다란 해가 된다.


- 당신은 당신 자신 이외의 그 누구로부터도 심판받지 않는다. 당신 자신의 심판보다 더 엄격한 것은 없다.
  오히려 빈천하고 낮고 가난했던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고 높은 평가를 내리곤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한 행위는 우리의 세속적인 진동수(육체)와 영적인 진동수(초자아)를 동시에 높인다.
 그러나 우리가 남에게 악한 행위를 할 때는 진동수가 낮아지고 줄어들게 된다.


- 일이란 그 성격이 어떻든 간에 -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간에 '순수한 동기'와 '타인을 위한 봉사'라는
관념만 있다면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지 결코 폄훼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한 존재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다 보면 이윽고 이 지상에 더 이상 태어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도래한다.
 그렇지만 지상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참하고 고통받고 가난하고 오해받는
 몹시 혹독한 세월을 겪게 된다. 지상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는 사람은 종종 가장 불운한 부류의 인간들로 여겨진다.
마지막 삶을 영위한다는 측면에서는 행운이지만, 겉모습만 보면 청소도 필요하고 이사도 다녀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음 생에서는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 충분한 몫을 취하는 것이다.
죽은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생전의 고통은 오히려 기쁨으로 탈바꿈되리라.


 죽음 너머에는 다만 평화와 위대한 진화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만일 사람들이 지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지를 알게 된다면 더 이상 여기에 머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실제로 닥쳐오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진다.


- 지상의 삶은 그저 일종의 수업과정일 뿐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우리에겐 죽음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죽음의 실상을 알게되면 자살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나쁜 일이다.
자살자는 죽음저편으로 가는 즉시 가련하게도 다른 육체(태아) 속으로 되밀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지상에 오는 모든 사람에겐 살아야 할 날들이 정해져 있다.
즉, 우리의 출생 시와 사망 시는 정해져 있다. 그런고로 누군가 자살을 범하면 그는 지상으로 다시 보내져 아기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죽음은 좋은 것이다. 만약 이 미개한 지구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죽음은 지구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죽음을 우리를 진화시키고 초자아의 견문을 넓힌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현 진화단계에서 인간은 육식동물이므로 필요하다면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것이다.
 단, 과식은 안 된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니까.

 그는 계속해서 황도대의 모든 사분면과 모든 궁을 거치면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쾌한 사건을 경험한다.
 그렇게 배움을 마치고 나면, 굳이 이 지구에 다시 태어나겠다는 유별난 열망이 없는 한 지구에서의 윤회를 벗어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얻은 교훈을 간직한 채로 지구라는 학교를 떠난다.


 우주는 아주 긴 간격으로 잠을 잔다. 우주에는 여러 주기가 존재하고, 각 주기마다 우주는 잠을 자면서
 새로운 주민들은 고안하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러나 항상 기억할 것은, 반대로 육체를 가졌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영혼으로서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을 얻기위해 육체를 부여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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