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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임마누엘-[임마누엘 이야기] 본문

영성수행 비전/탈무드 임마누엘서

탈무드 임마누엘-[임마누엘 이야기]

柏道 2018. 2. 20. 00:05


[임마누엘 이야기]

 

창조 안에서의 우리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탐구하는 중에 우리는 우리의 存在 理由를 설명하기 위해 종교와 신앙체제를 만들게 되었다. 모든 종교란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다.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해 삶의 의미는 우상이나 신화, 태양신, 조신(bird gods)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에 의해 설명되어 왔다. 이런 것들은 시대의 理解知性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삶에 대한 공부를 단계별로 밟아야 한다. 진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도전하고 발견하며 배워야만 한다. 새로운 시대는 發想의 전환을 위한 시대, 우리 자신을 위한 眞理를 찾아나서는 시대를 대표한다. 우리는 이제 종교들과 철학자들을 절대적인 권위자로 대접하고 경청하지 말고, 그 대신 그들의 말을 우리가 개인적 발견의 길을 걷는 데에 활용하기 위한 하나의 정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변환기에 있어서 우리는 창조와 자신의 연결에 대한 책임을 배우게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 즉 스스로 자신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어떤 신(하나님, 알라 등)이 어떤 것을 우리에게 원한다고 말해 주는 영적 영매(middle-man)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이해한 것을 남들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삶이 주는 어려움을 直面하는 것과 자신의 行爲에 대해 100% 責任을 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우리가 진실로 배우게 될 위대한 공부다. 미래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모범과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그 개념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고대에는 들이 이 지구를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은 홀로 서서 창조 안에서 스스로 영적으로 설 자리를 발견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대가 되면 인간은 자신의 靈魂과 접촉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이미 창조의 한 부분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창조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 영적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게 된다. 靈魂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창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됨에 따라 텔레파시나 텔레키네시스, 미래 비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창조 및 고도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다른 존재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독특한 능력을 우리의 영혼이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교육과 새로운 방법 및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패러다임이 답변해 줄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의 영적 자아를 이해할 수 있고 이 자아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롭고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필요성이 여기에 있지만 현실 종교는 그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천 년 전의 평균적인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구성된 종교(기독교)가 얼마나 가치 있었겠는지 깨닫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 당시는 혼돈의 시대였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잘 짜인 종교를 애처롭게 필요로 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신(하나님)과 인간의 삶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논리적 방법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것을 제공했다. 첫째로 우리의 삶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십계명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에 준해 살 수 있었던 기본 법칙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존재의 이유를 발전시켰으며 창조를 보다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보다 풍성해지고 보다 의미 있게 되었다. 기독교는 이런 가르침이 함께 집대성되어 <신약성서>가 되었을 때 탄생되었다. 태양신으로써 시대에 대한 이해를 반영했던 이집트 종교처럼 기독교는 그것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반영으로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천 년이 흘렀으며, 우리는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 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기독교는 원래의 형태 속에서 자체보다 오래 살아왔으며, 우리의 의문에 해답을 더 이상 제시해 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자신 속에서 찾아라. 그러면 자신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라나면서 나와 부모님은 성공회와 아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신부의 보조인 보미사였으며, 영성체 의식(Communion ceremony)의 거의 전 과정을 단번에 암송하기도 했었다. 나의 성장과정은 미국의 중서부 지방에 있어서 아주 정상적인 것이었으며, 내가 살던 동네의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당연하게 기독교를 배우면서 자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事物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 뒤 나는 사업상 일본, 중국, 유럽, 이집트 등으로 여행하게 되었으며, 사람들마다 제각기 서로 다른 관점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동일한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라의 숫자보다 더 많은 철학, 신앙 그리고 종교가 있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당신도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듣게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환상적이었으며, 나로 하여금 인도에서 살았던 예수에 대한 책을 읽도록 이끌었다.

 

예수는 인도에서 살았다.

'셈야자 실버스타 센터'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나는 빌리의 <Contact Note>와 내가 가지고 갔던 다른 여러 가지의 책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가운데 <Jesus Lived in India>(<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장성규 옮김. 고려원. 1987초판)라는 이름의 책이 한 권 있었다. 이 책은 내가 미국을 떠나기 전에 친구가 준 것이었다. 그 책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 모든 것을 쓴 것이었는데, 독일의 역사학자인 Holger Kerstein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照査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 형벌에서 살아남았으며, 그 뒤로도 여러 해 동안 인도에서 살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가 이스라엘에서 수년간 연구한 끝에 펴낸 상세한 보고서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디아 등에서 그는 십자가 형벌 이후에 예수가 밟았던 길을 밝혀냈다. 그의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이 행했던 탐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살아난 뒤에 밟았던 길을 따라 걸었다. 그 결과 이 역사학자는 여러 나라를 거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묘사하는 낡은 두루마리들과 서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인도의 스리나가르라는 고장에서 예수가 末年을 보냈다는 설을 입증할 증거들로 끝맺고 있는데, 예수에게 가족이 있었으며 아주 나이가 많이 든 후에 생을 마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책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잘 쓴 책이었다. 즉 저자가 자신의 모든 주장을 아주 잘 뒷받침하고 있어서 설사 법정에 가더라도 저자가 충분히 승소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읽은 내용에 감명을 받아, 나는 플레이아데스 사람들과 접촉했던 빌리가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하는지 매우 알고 싶었다. 나는 빌리가 셈야제에게 종교(주로 기독교), (하나님) 그리고 예수에 대해 많이 질문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플레이아데스 인들에게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역사를 실제로 목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한 개인의 경험에 대해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빌리에게 전해 주었을지도 모르는 정보는 다른 어디에서 나온 것보다 더 진실에 접근해 있었을 것이다. 역사상 예수의 삶과 죽음만큼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별로 없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다.

 

임마누엘의 생애

나는 부엌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빌리를 찾아냈다. 그는 내가 이 책을 며칠 동안 읽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온갖 질문을 가지고 내가 나타날 것을 알면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라디오 위에서 메모지를 두 장 집어 들었다. 나는 내 첫 번째 질문이 예수가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빌리도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빌리는 나에게 '예수'가 그의 진실한 이름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예수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생 동안 그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이 이름은 기독교를 창시하는 단계에 있던 사람들이 AD189년에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임마누엘의 가르침이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을 최대한 발휘하여 다시 쓰인 것도 이 기간 동안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저술들 속에는 임마누엘(Jmmanuel)Emmanuel로 씌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많은 찬송가 속에서도 여전히 Emmanuel로 발견된다. 그러나 아직도 플레이아데스 인들이 사용하는 라이라인들의 고대 언어 속에서는 그 철자가 J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빌리는 Jmmanuel이라고 말한다.

우리 대부분이 생각하는 임마누엘의 이미지는 기다란 금발 머리에 좁고 섬세한 골격을 가진 젊은이다. 빌리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얼굴을 쳐다보면서 몇 초 동안 생각을 하고 나서, 임마누엘은 십자가형에 처해질 무렵에 실제로 대략 178cm 정도의 키에 78~80kg 정도의 몸무게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검고 곱슬곱슬한 머리에 골격이 컸으며 커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볕에 그을었으며 햇볕에 장기간 노출된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임마누엘의 출생

임마누엘이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이며 모든 인간들처럼 살다가 죽었음을 플레이아데스 인들은 명백히 밝히고 싶었다. 그의 생애는 삶의 의미에 대한 眞實을 위해 싸운 예언자의 삶이었다. 그는 플레이아데스에서 온 天子들로부터 그들의 지혜를 통해 많은 교육을 받았다. 자기 영혼의 능력과 지혜로써 그는 지구상에 창조의 지식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스스로의 意志를 발견했다.

그의 출생은 플레이아데스 인들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이는 지구상에 있던 플레이아데스 인들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플레요스(Plejos)가 요청했던 것이다. 플레요스는 자신의 여생을 보내기 위해 플레이아데스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 하나를 뒤에 남겨서 자기 대신 창조와 삶에 대해 가르치도록 하고, 자신은 플레이아데스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지구를 다스릴 들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플레요스는 플레이아데스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영혼을 지상에 탄생시키도록 허락을 구했고, 그들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던 것이다.

임마누엘의 경우에 평범한 지구인 부모들로부터 태어나기에는 그의 영혼이 너무 고도로 진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역시 고도로 진화된 플레이아데스 남자가 되기로 결정되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아데스 인이 아버지로, 메리라는 지구 여인이 어머니로 결정되었다. 메리는 지구상에 살고 있던 오래된 라이라인 영혼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의 유전자가 새로 태어날 영혼이 보다 높이 진화하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브리엘이 메리를 임신시킨 수단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이 가장 특별한 영혼의 탄생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에 동의했고, 임마누엘의 영혼이 지구로 오기로 결정했으며 그녀의 몸으로 들어왔다. 메리는 요셉이라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었지만 요셉은 이 특별한 수태에 대해서 듣고는 펄쩍 뛰면서 이 일에 관련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메리에게서 떠남으로써 결혼 계획을 취소하려고 했다.

요셉의 마음을 이해한 가브리엘은 그에게 가서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이 지구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셉은 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혔고, 메리와의 결혼계획을 진행시켰다. 임마누엘은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경전이 말하듯이 여관에는 정말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달력에 의하면 임마누엘의 진짜 생일은 23일이지, 1225일이 아니다.

임마누엘은 자신의 삶 내내,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인 가브리엘을 알고 있었다. 그가 여러 차례 임마누엘을 찾아 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신이 아니며, 당시에 지구를 다스리던 플레이아데스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지시 받아 자신이 이 삶으로 이끌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레이아데스 인들의 지식은 의 것이었지만 그들은 단순히 관찰하는 쪽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지구인들이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을 배울 때, 또한 창조와 자신들의 영적 연관성을 발견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더 이상 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임마누엘은 이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지구인들이 이라는 존재에 의해 다스려지는 데에 익숙해졌으므로 스스로에 대해 책임진다는 생각이 아주 천천히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임마누엘의 특별한 재능은 未來豫見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에 자신의 가르침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또 자신이 우리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어느 하늘의 자손에게서 태어났음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의 가르침은 모든 인간의 영원한 靈魂創造에 대한 것이지만 인간들이 이를 과 어떻게 연결시킬지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을 돌보아주는 이라는 존재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아직 스스로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들에게 전하는 창조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임마누엘은 사전에 참으로 많은 삶의 지침을 미리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꼴이 될지 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그의 말은 지구상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살아남을 眞理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의 진실한 가르침은 미래에 다시 한 번 지상에 나타나게 되며, 인간을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이끌 영적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임마누엘은 약 13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인도로 가서 자신의 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에서 그는 冥想을 수련했고, 당시의 위대한 선생들로부터 삶에 대해 공부했다. 東洋의 지식은 별들에서 온 하늘의 자녀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었던 아틀란티스 시대 이래로 수천 년간 전해져 내려온 것이었다. 여러 번에 걸쳐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방문을 받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그를 영적 능력으로 안내하고 그 활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 뒤의 삶에서 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진실로 미래의 일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또 그렇게 살 것이며, 자신의 사명을 다 할 것이었다. 그는 영적 능력으로 미래를 쉽게 내다 볼 수 있었으므로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115세에 육체적인 죽음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의 육체가 아주 늙어 있겠지만 자신의 영혼은 좌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가올 십자가 형벌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오직 육체적 고통만 초래할 뿐이며 자신의 靈能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임무가 끝나는 것이다. 그에게 쏟아진 모든 증오는 그를 그의 길에서 끌어내지 못했다. 진실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고문을 당하고 파멸할 수도 있지만 육체의 고통은 지나가 버리므로 진실과 그의 영혼이 상처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글들

나는 임마누엘이 자신의 생애 중에 썼을지도 모르는 어떤 가르침에 관심이 있었고, 플레이아데스 인들은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으로 자랐기 때문에 나는 마태, 마가복음과 신약이 어떻게 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임마누엘 자신이 쓴 오리지널 저서가 왜 하나도 없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쓴 원전이 있다면 그의 진정한 말들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빌리도 그런 질문을 플레이아데스 인들에게 했었다. 그들은 임마누엘이 살았을 당시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귀했기 때문에 자신의 가르침을 써놓아야 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고 빌리에게 말했다. 임마누엘은 십자가 형벌을 겪은 뒤에 자신이 어려서 영혼의 공부를 했었고 나중에 길고 윤택한 삶을 살게 될 인도로 되돌아가서 집필하려고 계획했었다. 어쨌든 그 당시에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사람은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이었다. 유다는 임마누엘의 제자이자 훌륭한 친구였으며,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그를 배신한 사람이 아니었다.

플레이아데스 인들은 또한 이러한 가르침이 단순히 임마누엘에게 전해진 것이었음을 명백하게 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을 자신의 플레이아데스 아버지인 가브리엘과 어린 시절 인도에서 살았을 때 그를 아주 잘 지도했던 인도의 선생으로부터 그가 스스로 배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가르침은 기록되었고, 미래를 대비하여 안전한 장소에 묻혀 있었다.

이 가르침들은 그의 書記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이 기록하였고, 또한 그의 아들인 요셉(인도에서 낳은 맏아들)이 추가로 기록했으며 오랜 세월을 통해 만들어졌다. 후세들을 위해 진리가 긴 세월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사람들인 플레이아데스 인들은 그 기록이 미래에 발견되어 지구 인류가 볼 수 있게 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2천 년대에 있어서까지도 인간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며, 또 다른 200년이 더 지나서야 진리의 밀알이 다소 영양분 있는 토양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임마누엘의 탈무드(임마누엘의 가르침)

1963년 플레이아데스 인들은 라시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 정교의 신부를 두루마리가 묻혀 있는 장소로 이끌었다. 그 두루마리는 송진 속에 넣어진 채 임마누엘이 젊었을 때 이런 목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수정처럼 투명한 상자에 들어 있었다. 고대 아람어로 쓰인 두루마리들은 아들 요셉이 감추어 두었던 납작한 바위 밑에서 발견되었다.

라시드는 그 두루마리의 내용을 아람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사본들을 만들어 두었다. 이것을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루마리들은 길었고, 무려 120(chapter)이 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스위스에 있는 빌리에게는 불과 그 가운데 36장만 그때까지 보내 주었을 뿐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자신의 가족과 숨어 있던 라시드(당시에는 이 때문에 신부직을 떠나 있었고 결혼도 했었다-역자 주)는 기독교 세력과 유태 세력이 보낸 자객들의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레바논으로 달아난 그는 가족과 함께 난민수용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가족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발견되는 바람에 수용소는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살육 당했다. 가족과 함께 간신히 학살을 피한 그는 야밤에 도주했는데, 이때 두루마리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직후에 라시드와 그의 가족들은 한 테러리스트의 기관총탄 세례를 받아 살해당했으며, 그가 번역한 36장만이 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원본 두루마리들의 운명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이들 36장은 빌리에 의해 정확한 독일어 성서체로 다시 번역된 다음, 영어로 번역되어 오늘날 <The Talmud of Jmmanuel>라는 작은 책으로 나와 있다. 미국의 와일드 플라워 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이 책은 <천상의 가르침(Celestial Teachings)>이라는 부록 책자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James Deardorff 박사라는 기독교 역사학자가 썼으며, <임마누엘의 탈무드>의 가치를 검증하기 위한 6년간의 연구결과다.

 

주기도문

서양의 학교나 교회에서는 대부분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을 배운다. 그런데 <임마누엘의 탈무드> 속에서는 이것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읽게 된다. 임마누엘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속에 있는 靈魂과 도와 달라고 에게 부탁하는 기도라고 생각했다. 잘못 이해된 채로, 주기도문은 <임마누엘의 탈무드> 속에 기록되어 있는 형태만을 취해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임마누엘이 처음에 말했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이 내용은 '나의 영혼이여'라는 제목의 명상법이다. 여기에 주기도문의 원형을 싣는다. 이것은 원 기록인 <임마누엘의 탈무드> 6장에서 취한 것이다.

 

나의 영혼이여(주기도문으로 알려져 있는 기도의 원형)

나의 영혼이여, 당신은 전능함 속에 존재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내 안에 당신의 왕국을 스스로 구현하소서.

당신의 능력을 내 안과 땅 위와 하늘 안에서 스스로 펼치소서.

매일 필요한 糧食을 오늘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나의 그릇된 행실과 진리를 認識할 수 있도록 하소서.

또한 나를 유혹과 혼란으로 이끌지 말고, 실수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이는 내 안의 王國能力知識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