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내일의 신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과 나눈이야기

내일의 신

柏道 2018. 2. 6. 20:09

                                                                   



Tomorrow's God: Our Greatest Spiritual Challenge
Neale Donald Walsch | Atria Books | 2004년 03월

<내용 요약>

1. Tomorrow's God does not require anyone to believe in God.
2. Tomorrow's God is without gender, size, shape, color, or any of the characteristics of any individual living being.
3. Tomorrow's God talks with everyone, all the time.
4. Tomorrow's God is separate from nothing, but is Everywhere Present, the All in All, the Alpha and the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Sum Total of Everything that ever was, is now, and ever shall be.
5. Tomorrow's God is not a singular Super Being, but the extraordinary process called Life.
6. Tomorrow's is ever changing.
7. Tomorrow's God is needless.
8. Tomorrow's God does not ask to be served, but is the Servant of all of Life.
9. Tomorrow's god will be unconditionally loving, nonjudgmental, noncondemning, and nonpunishing.||

<목 차>

INTRODUCTION

PART onE - REDESIGNING GOD
1. THE GREATEST BLASPHEMY
2. GOOD-BYE TO YESTERDAY'S GOD
3. INTRODUCING TOMORROW'S GOD
4. SAVING THE WORLD
5. CHANGING GOD'S NAME
6. REDEFINING GOD'S CHARACTER
7. PERSONALIZING GOD
8. BRINGING THE UNIVERSE TO LIFE
9. HOW RELIGIOUS BELIEFS CREATE CIVIL LAW
10. YOU'RE MAKING IT ALL UP
11. THE ROAR TO MASTERY
12. THE JESUS FACTOR
13. FOUNDATIONS OF THE NEW SPIRITUALITY
14. LIFE'S SECRET FORMULA
15. IS GOD NEEDLESS
16. THE END OF THE SINGLE SOURCE

PART TWO - THE FOURTH TRANSFORMATION
17. NEW WAYS FOR YOU TO EXPERIENCE GOD
18. A CIVIL RIGHTS MOVEMENT FOR THE SOUL
19. TOMORROW'S GOD AND "REAL LIFE"
20. THROWING THE MONEY CHANGERS OUT - AGAIN
21. OUR KIDS AND GOD
22. GOD'S WAY IN RELATIONSHIPS
23. SEX AND SPIRITUALITY
24. THE WAY TO ENLIGHTENMENT
25. GOOD-BYE, AND HELLO

IN CLOSING . . .


<내용 요약>

1. 내일의 신은 아무에게도 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2. 내일의 신은 성(性)도,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아무런 개별적 생물체의 특징도 지니지 않는다.
3. 내일의 신은 모든 사람과 언제나 이야기한다.
4. 내일의 신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되어있지 않고,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며,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이자 끝이요, 지금까지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5. 내일의 신은 유일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 불리는 특별한 과정이다.
6. 내일의 신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7. 내일의 신은 필요로 하는 것이 없다.
8. 내일의 신은 섬김 받길 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생명의 봉사자이다.
9. 내일의 신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심판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벌주지도 않을 것이다.

<목차>

Part one - 신을 재설계하기
1. 최고의 불경
2. 어제의 신이여 안녕
3. 내일의 신 소개
4. 세상 구하기
5. 신의 이름 바꾸기
6. 신의 특징 재설계하기
7. 신을 인격화하기
8. 세상에 삶을 가져오기
9. 종교적 믿음들이 민법을 만드는 과정
10.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11. 완성을 향한 함성
12. 예수 인자
13. 새로운 영성의 기초
14. 삶의 비밀 공식
15. 신은 필요로 하는 것이 없는가
16. 단일 출처의 종말

Part Two - 네 번째 변환
17. 당신이 신을 체험하는 새로운 방법들
18. 영혼을 위한 민권운동
19. 내일의 신과 "진짜 삶"
20. 환전상들을 다시 내던지기
21. 우리 아이들과 신
22. 관계에서의 신의 길
23. 섹스와 영성
24. 깨달음으로의 길
25. 안녕, 그리고 반가워

마치면서 . . .

 

 

내일의 신 1~25장 전체


내일의 신



제 1장 [최악의 신성모독]


과거의 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제대로 작동했다고 하는 이들은 그들의 주위를 둘러 보지 않은 것이다.정직하게 보지도 않았고, 종합적으로 보지도 않았다.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잔혹과 전쟁과 살생을 보지 않았다.그들은 분리와 억압과 두려움과 역기능을 보지 않았다.더욱 심한 것은, 보고도 그 속에서 장난질을 친 것이다.그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상황을 이용하였다.
사실은 과거의 신, 즉 어제의 신이 많은 개인적 삶이 작동하도록 했을 수도 있지만,그 신은 평화로운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정하거나 기쁨이 넘치고 조화로운 세상을 결코 만들 수 없었다.그 신은 오늘에 와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즉각적인 의사소통 기술, 완전한 연결망, 진전된 이해력, 개선된 자각, 세련된 기술, 놀라운 기적들을 바탕으로 한 모든 힘을 동원해도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가 염원해 온 간단하고 소박한 체험을 너희는 아직도 만들어 낼 수 없다.너희는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너희는 지속적인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고 너희가 믿는 신도 마찬가지다.왜냐 하면 너희가 믿는 신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너희가 믿는 신은 가짜다.궁극적 실재와는 아무 관계 없이 너희가 엷은 공기(thin air)로 만들어 낸 신이다.
(닐: 최악의 신성모독에 해당하네요.)
위대한 진실은 모두 신성모독으로 시작된다.너희의 가장 신성한 믿음들이 의심 받는 때가 다가 온다. 이제 너희의 믿음에 대해 너희가 의심하지 않으면, 너희의 믿음들이 너희에게 도전할 것이다.
이 책은 도전적이다.이 책은 세상을 구하려는 것이다.



제2장 '어제의 신'과의 작별


[또 다른 길]


지금까지 살아 온 것과는 다른 길이 있다. 신을 체험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인생을 사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그 다른 길이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uc0 그 다름이 갈등을 빚어내야 하는 건 아니다. 믿음의 차이가 삶에서 폭력을 불러 오는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길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을 네가 찾는다고 찾아지는 건 아니다. 그 길을 창조함으로써만이 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해서는 그 길을 창조할 수없고, 새로운 발상에 너 자신을 열어제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신과 삶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참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새영성]


나는 새영성에대하여도 이야기할 것이다. 새영성은 인류가 서로 상대방이 잘 못 되었다고 매도하지 않고, 서로 죽이지 않으면서, 신성을 추구하고 체험하려는 자연적 욕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는 인간사회의 체험과 제도 중 특히 종교, 정치, 경제, 사업, 교육, 인간관계 그리고 성에 있어서 이 새영성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묘사할 것이다.


[내일의 신]


내일의 신은 미래에 너희가 믿을 신을 말한다. 그 신은 새로운 신이라기보다 지금의 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의미한다. 확장된 개념이요, 심화된 자각이 따라야 한다.
새로운 신이라고 할 때 그것은 새로운 버전의 신이라는 뜻이다. 더 큰 버전의 신이다. 과거에 늘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신과 같지만, 지금 너희가 이해하는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너희의 이해는 불완전했다. 나는 지금 신과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희의 자각을 확장하고, 더욱 완전히 이해하는데 너희를 초대한다. 나는 내일의 신을 창조하는데 너희를 초대한다. uc0


[믿음, 행동, 체험]


인류의 선택에 따라 근본적 변화가 매우 빨리 일어 날 수있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가능하다. 삼십년 안에도 가능하다. 일단 첫번째 도미노만 넘어지면 그보다 더욱 빠를 것이다. 단지 임계질량의 문제일 뿐이다.
임계질량에 대해 사람들은 과반수라고도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 25퍼센트나 10퍼센트 또는 5퍼센트라고 하는 이야기도 맞지 않다. 임계질량은 전체의 2 내지 4 퍼센트가 영향을 받을 때 도달된다.
비등점에 이른 물의 표면을 보라. 표면의 반이 끓을 때가 아니라 그 전에 비등점에 도달하게 된다. 임계질량의 영향은 기하급수적이다. 몇개의 방울이 표면에 나타나는가 하더니 갑자기 물 전체가 들끓게 되지 않는가?
인류의 일부가 변화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둘 중의 하나이다. 더 큰 증오나 더 큰 희망이다. 분노와 폭력 그리고 살생으로 얼룩진 전세계적 재앙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생성되는 전세계적 각성이다.
또 다른 길, 또 다른 방식은 분명 있다. 테러가 아니라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확산시키는 전세계적 운동이 있을 수 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도록 하는 대대적 민초운동이 있을 수 있다. 지금 테러리스트 조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성운동팀이 세계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생각의 단계이다. 인류의 미래는 인류의 생각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인류가 신과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너희 생각으로부터 너희 현실이 드러난다. 너희 발상으로부터 너희 미래가 나타난다. 그래서 너희 믿음이 너희 행동을 창조하고, 너희 행동이 너희 체험을 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너희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너희 외부 세계에서 너희 믿음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바로 내부적 영적 사건을 창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그렇게 하였다. 지금 너희가 또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할 수 있기도 한다. 그리 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 방법은 이미 너희 손 안에 있다. uc0



제3장 '내일의 신' 소개



이제 신과 삶에 대한 지식의 기초를 확장할 때이다. 이해의 깊이를 더할 때이다. 자각을 심화시킬 때이다.너희 의식을 확대시킬 때이다.
이제 과거의 영성에서 새영성으로 옮겨 갈 때이다.어제의 신을 내보내고, 내일의 신을 맞을 때이다.


[내일의 신이 어제의 신과 다른 점]


1. 내일의 신은 아무에게도 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제의 신과 첫번째 다른 점이다.
2. 내일의 신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남녀도, 아무런 개별적 생명체로서의 특징도 없다.
그동안 종교가 신에 대해 규정해 왔다고 하지만 결국은 너희가 규정한 것일 뿐이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을 신이라고 하는 이도 있듯이 너희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3. 내일의 신은 모든 사람과 언제나 이야기한다.
나는 2천년 전에 대화를 멈추지도 않았고, 단지 일부분의 사람만 선택해서 나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신(신성하다고 평해지는 힘, 에너지, 디자인, 체험)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정확하고 완벽하게 들어 맞게 너희 삶에 나타난다. 너희는 그러한 체험을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연, 동시 발생, 무작위 등등으로도 부른다. 그러나 너희가 무엇으로 부른다고 해서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단지 대상에 대한 너희의 신념체계를 나타낼 뿐이다.
신은 불변의 존재이다. 신은 항상 존재하고 항상 변화하는 존재이며, 자신을 매순간에 적응시켜 그 순간에 이해되도록 하고, 수용되도록 하며, 체험되도록 하고, 표현되도록 한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신이 항상 너와 함께 있다. 그러나 어제의 신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신이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을 너도 기대한다면 신을 못 보거나 체험하지 못할 수 있다.
신이 나타나는 방식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에게 한계를 두려고 시도를 했으며, 결국은 그들 자신에게 한계를 씌워 신을 보고 체험하는 능력에 한계를 만들어 버렸다.
과거에는 한계지워진 신을 너희가 믿었다. 그러나 앞으로 너희는 한계가 없는 신을 믿게 될 것이다. 한계가 없는 신은 어떠한 모양으로도, 어떠한 여건에서도, 누구에게나, 그리고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든 장소에서 언제나 나타날 수도 있다.
사실은 바로 이 순간에도 그렇게 되고 있다. 단지 너희가 믿지 않고 있을 뿐이다. 축복받은 미래인 그 내일에는 너희가 한계 없는 신을 믿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신을 보게 된다.
축복받은 미래인 그 내일이란 네가 선택하기 나름인 날이다. 무엇이 너를 일깨우느냐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너는 외부의 재난을 선택할 수도 있고, 어떠한 사건도 선택할 수 있다. 네가 선택하는 것은 네가 사용하는 것이다. 너는 나와의 이 대화나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을 사용할 수도 있다. 너희 각자는 이 삶에서 깨어나기 위해 무엇인가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깨어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희는 모두 깨어난다.
삶은 깨어나는 과정이다. 깨달음의 과정이요, 되어감의 과정이며, 자신이 늘 그랬던 것으로 됨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불가분의 존재와 재결합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재결합하는 것은 아니고, 분리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는 것일 뿐이다.
4. 내일의 신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이며,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이자 끝이요, 지금까지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이것은 신의 본질이고 진실이다. 너는 너 자신이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되었을 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그 뜻은 너를 통하지 않고는 너에게 전해질 수가 없다. 너는 너 자신이 어느 것과도 분리되지 않았다고 결심하고 나서, 그러한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너의 삶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지게 된다. 그러면 변화가 일어나는데, 계속 그렇게 하라.
그러면 어느 샌가 너는 거기에 도달해 있게 된다. 너는 분리의 선을 넘어선 것이고, 그 무엇도 너를 다시 분리시키지 못한다. 그 때, 너는 내일의 신을 수용하게 되고, 너의 세상이 변하기에 너는 기쁨이 넘칠 것이다.
지금 바로 그리되지 못하는 것은 신에 대한 이 말이 그동안 네가 신에 대해 배우고 들어 온 모든 것을 깡그리 허물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종교에서 신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충분하지 못했다. 피조물과 분리된 창조주로 가르쳐 왔다. 그래서 이 메세지가 과격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메세지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이고, 그동안 신학에서 빠트려 버렸던 메세지이다. 이 메세지가 빠짐으로 인해서 인류는 평화와 조화와 행복의 세상을 창조하는 시도에서 방황을 거듭하게 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와, 그리고 서로간에 하나가 되는 체험을 빠트리게 되었다.
만일 인류가 이 메세지를 앞으로 종교에서의 진실로 채택한다면 - 의학이나 과학 및 기술의 진실을 종종 채택해 오듯이 - 세상은 하룻밤 새에 바뀔 수도 있다. 그동안 종교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메세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 메세지를 탐구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임계질량에 곧 도달하게 된다. 속죄의 날 - 하나됨의 날 -이 가까와졌다.
분리가 없고, 삶의 단일성, 만물의 일체성이라는 이 메세지를 살아라.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 메세지를 살아라. 이 메세지가 네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잠재의식의 일부가 되도록 하고, 일상 생활에서 즉각적으로 반응되도록 하라. 이 메세지를 서로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메세지를 사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도 나누어라. 세상으로 이 메세지를 가져가라.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내일의 신과 새 영성에 대해 이야기 하라. 그러나 혼자서 하지는 마라. 혼자서 하기엔 너무 벅차다. 서로 힘을 합해 단체로 그리 하라. 이제는 서로 같이 뭉쳐 일하여야 하는 시대이다. 둘 이상이 모인 곳이면 내가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세상의 희망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너를 통해 그들의 가능성을 본다. 너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계시록과 평화에 이르는 5단계 그리고 이 책의 메세지는 개인들이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 근본적 변화는 지금 바로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제4장 세상 구하기


[먼저 섬김]


네가 먼저 섬기는 것을 너는 지키게 된다. 네가 구한다는 말이다.(You preserve what you pre-serve. ou save it.)
만일 네가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그런대로 즐긴다면 지금처럼 삶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는 것을 지킨다고 할 수 있고, 다른 말로는 가장 먼저 섬긴다는 것이다.
먼저 섬김은 신성한 충동(Divine Impulse)이 반영된다. 예를 들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아이 엄마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러 물에 뛰어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화재가 났을 때 쓰러지는 건물 속에 다른 사람을 구하러 뛰어 드는 사람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담배를 피우려든 이가 문득 더 이상 담배에 집착할 이유가 없음을 느끼고 담배를 내려 놓고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본능은 첫번째 생각보다 더 앞의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 반응은 전혀 통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좀 더 높은 의식의 존재에 있어서는 자동적 반응이 아니고, 가장 훌륭한 본능들(best instincts)을 섬기는 반응을 뜻한다. 이 반응은 창조되고 통제될 수 있다.
너희는 독특하게 표현된 삶 자체이자 진정한 너희(Who You really Are)에 대하여 가장 고귀한 너희의 생각(idea)을 먼저 섬겨라. 그러면 너희가 아는 삶이 지켜지게 될 것이다.


[4차원 의식과 의식상승]


잠재의식, 의식, 초의식, 초월의식, 이렇게 네가지 차원에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잠재의식 차원에서는 신으로부터 너를 밀어내는 반면, 초월의식 차원에서는 너를 신으로 끌어 당긴다.
신나이 시리즈 전체는 인간의 제한된 인식으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해방시키는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즉 잠재의식 차원에서 초월의식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의식상승(consciousness raising)라고도 알려져 있다. 삶의 더 큰 자각, 자신에 대한 더 멋진 체험, 우주와 더 밀접한 연결로 옮겨 가는 것이다.
새영성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의식을 확장하고 상승시켜 잠재의식과 초의식 그리고 초월의식 차원에서도 진실인 것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누구~? 명상]


거울을 보라.(거울 대신 자신이 비치는 물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숨을 들이 마신 후 자기 눈을 들여다 보며 "누구~?" (Whoooooooooo?) 하고 10초간 숨을 내 쉬라.소리를 내어도 되고 속으로 해도 된다.
누구~? 하고 두번째, 그리고 세번을 그렇게 하라.
앞으로 한달간 3번씩 100회, 모두 300번을 그렇게 하라.
누구~? 라는 질문은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과연누구인지 묻는 것이다.
한달 후에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혹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영적으로) 네가 존재한다는 자각은 생기게 된다.


[신나이 명상]


삶의 매 순간 명상하라. 길거리 보도의 갈라진 틈,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 꽃밭의 꽃잎들, 군중의 얼굴들을 보라. 거기서 너를 보는 연습을 하라.
심호흡을 하고 제3의 눈에 집중해서 신나우에 나오는 식으로 신나이 명상을 하라. 너의 영혼에게 인사하라.
이 명상을 하게 되면 너는 자각하고 있는 너 자신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너의 의식을 의식할 것이다.


[마음열기 호흡법]


삶과 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건 단지 마음만 여는 것이다.마음 열기는 심호흡을 통해 가능하다.앉아서건 누워서건 상관 없다.
숨을 들이 마시며 삶 에너지를 끌어 들이는 너 자신을 느껴 보라.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이 에너지가 백회를 통해 들어 오는 것을 상상하라.내면의 눈으로 이 에너지가 네 몸 속에서 흐르는 것을 보라.
숨을 내쉬며 이 에너지가 발로 빠져 나가게 하라.이 호흡을 한 참 반복하라. 네 마음으로 네 몸을 훑어 보라.
다음엔 이 에너지가 네 머리를 채우는 것을 상상하라.산소가 네 머리를 채우고 뇌세포를 왕성하게 하는 것을 느껴라.뇌세포가 팽창하는 것을 느껴라.7분 동안 그렇게 느껴라.
머리가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 가벼움과 함께 자각이 고조될 수 있다.그러면 너는 마음을 연 것이다.



제5장 신, 이름을 바꾸어라!



신, 이름을 바꾸어라!
삶을 믿으면 신을 믿는 것이다. 내일이 오면 인류는 이를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독특한 신을 믿어 옴으로써 빚었던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
신이나, 알라, 여호와, 브라만 등의 이름을 쓰면 갈등이 있기에,나는 신이란 이름 대신 너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름을 제안하는 것이다.
삶이란 말이 너희의 수 많은 언어 중에서 너희가 쓰는 신, 알라, 브라만, 비슈누, 시바 등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삶이란 신의 현현(顯現-stuff)이다.

삶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삶은 존재하는 그 자체이다.
삶은 아무 형태가 없고,아무런 모양도, 남녀도 없고,아무 색도, 냄새도 , 크기도 없다.
삶은 모든 형태, 모든 모양이고,모든 색과 냄새, 크기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이면서, 성이 없기도 하다.
모든 것이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무(無-No Thing)이다.
삶이 창조하는 것 중에서 삶이 아닌 것도 없다.네 주위의 모든 것은 표현된 삶(Life, expressing)이다.삶은 모든 것이다.모든 것 속에, 모든 것으로, 모든 것을 통해 진행된다.너 자신이 표현된 삶이다.그리고 삶은 바로 너인데, 너로 표현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도 표현된 삶이다.삶의 표현이 아닌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위의 글들 중 삶이란 단어를 신이란 단어로 교체해 보라.

신이 삶으로 교체되는데 대해 신성모독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그 이유는 신은 삶이 아니고, 삶 밖에서 삶을 창조하는, 삶이 아닌 존재라고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삶과 신은 서로 교체될 수 있는 말이다.이것을 이해하면 너희는 새영성의 기초를 이해하는 것이다.
삶은 네가 삶을 믿기를 요구하지 않는다.삶은 어디로 사라지지도 않고,네가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너를 달리 다루지 않는다.
삶은 단지 존재할 뿐이다.네가 삶을 믿고 안 믿고에 괘념치 않으며,믿으면 상을 주고 안 믿으면 벌을 주지도 않는다.삶은 과정이다.
5. 내일의 신은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는 엄청난 과정이다.
그동안 너희들은 신을 사람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 왔다.신을 사람과 닮은 존재로 창조해 왔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이 신을 닮은 존재인 것이다.또한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신을 닮은 것이다.
이 사실은 너와 주변의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바꾸게 된다.이제 모든 것이 하나이고, 그것은 바로 신이라 불린다.
과학과 철학과 종교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과학과 철학과 종교가 이 지점을 무시하고 또 각각 제 갈길을 간다면각각 내세우는 원리들은 불완전하여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새영성은 이 지점에서 당당하게 주도해 나갈 것이다.새영성이 널리 퍼지면 세상을 바꾸고, 구할 것이다.
너희 가족과 너희 나라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의 너희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은 오직 서로가 분리되었다는 환상을 동원하는 것 뿐이다.



제6장 신을 다시 정의한다


신과 교체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변화(Change)'이다.삶은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데는 다시 정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이러한 재정의는 신에 대한 정의를 확장하여 미묘한 의미까지도 포함할 수 있게 한다.
신은 항상 현존(Present)하면서 항상 변화한다.신은 모든 순간에 자신을 적응시켜 매순간 이해되고, 수용되며, 체험되고, 표현되도록 한다.
6. 내일의 신은 항상 변화한다.
신은 항상 확장(expand)되고 무엇인가 되고 있다.이러한 확장과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은 끝이 없다.
이 과정이 바로 삶이 기능하고 적응하고 지속되는 모습이다.이것이 바로 진화(evolution)라고 불리는 것이다.
바위마저도 움직이고 변화한다.이것은 고성능의 현미경을 통해 관찰이 가능하다.입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크기에 비해서 믿을 수 없는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이다.우주의 어느 하나도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다.모든 것은 움직인다.그리고 그 움직임(movement)이 바로 변화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같은 속도와 빈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같은 의식 수준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하는 에너지는 느리게 움직이고,거의 반복적인 모양(pattern)을 나타낸다.
낮은 속도로 진동하는 에너지 시스템일 수록 더 고정적이다.그 이유는 종전과 같은 모양을 연출해 내기 때문이다.
은하계는 수십억년을 같은 방식으로 돌고 있다.앞으로도 수십억년을 그렇게 돌 것으로 믿을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자각(self-awareness)의 수준과 관련된다.
바위를 포함하여 모든 것은 자각하고 있다.다만 자각의 수준은 다르다.
에너지 시스템은 자각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욱 자각을 추구하게 된다.더 많이 알수록 더욱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더 많이 체험할수록 더욱 더 많이 체험하기를 원한다.이것이 삶의 본성이다.삶은 삶의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삶을 추구한다.
에너지는 더 빠르게 진동할수록 더욱 더 빠르게 진동하고자 한다.
모든 에너지는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에너지가 다 자신이 자각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아니다.
삶의 모든 것, 세포와 분자와 미립자까지 지능(intelligence)을 간직하고 있다.이러한 기본 지능은 타고난 것이다.
이 지능에 따라 의미 있게 움직이고,그 운동이 예측할 수 있는 특정 결과를 나타내며,그 결과가 삶이라 불린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주론이 되고,미시적으로 보면 소립자물리학(particle physics)이나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 등이 된다.
너희 중 일부는 이 타고난 지능을 생존본능(survival instinct)이라고도 부른다.너희의 물리학 법칙들은 너희의 이해 수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입자가 첫번째 결정적 순간(the First Pivotal Moment)에 드는 생각은 분리의식이다.시스템의 일부로서 자각이 생기다가는 바로 분리의식으로 확장된다.
분리의식 때문에 혼돈(chaos)이 오게 된다.시스템과 다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혼돈을 초래한다.
자신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대신 시스템의 일부라는 자각을 잃게 된 것이다.시스템의 일부라는 자각을 잃어 버리고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환상에 빠진 것이다.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은 신이 자신의 부분들을 보면서 자신을 보고,그 부분들에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관찰하는데 대한 과학적 설명이다.
이러한 현상은 더 높은 의식 수준이나 상승된 자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이 에너지 입자는 다시 전체의 부분으로 자신을 체험하게 된다.그리고 더 빠르게 진동하고 빈도가 많을수록 주변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각이 클수록 삶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바위는 진동이 매우 느리고 빈도가 적다.이에 비해 인간은 매우 빠르고 많다.
바위의 변화 속도는 느리다.그러나 인간은 바위가 수십억년에 걸쳐 이뤄내는 변화를 몇시간 만에 만들어 낸다.의식적 창조(Conscious Creation)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진화가 많이된 존재일수록 더 의식적으로 창조한다.
진화의 정도는 결국 자신이 나온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그 때 두번째 결정적 순간(the Second Pivotal Moment)을 맞게 되고 개별의식이 사라지게 된다.
합일의 순간에 이르면 한 바퀴가 끝나고 새로운 한 바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변화이다.이것이 신이다.



제7장


[신의 의인화]


신은 삶이다.신은 살아 있다.신은 삶을 창조했고, 그 때에도 신은 살아 있었다.따라서 신은 신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신이 더 많은 삶을 창조했을 때,신은 더 많은 자신을 창조한 것이다.
신에 대한 너의 개념에 비인격화가 드리워질 때,너는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삶에 대한 너의 개념에 비인격화가 드리워질 땐,너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신이란 말 대신에 삶이란 말을 쓰는 것이 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더 쉽다고 한 것이다.
삶은 네가 언제든지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다.네가 삶을 이렇게 사용할 때,너의 바램에 따른 체험을 창조함에 있어서,삶은 너의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되고,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며, 너의 엄청난 힘이 된다.너는 삶이다.
신은 네가 언제든지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다.네가 신을 이렇게 사용할 때,너의 바램에 따른 체험을 창조함에 있어서,신은 너의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되고,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며, 너의 엄청난 힘이 된다.너는 신이다.
이렇게 의인화될 때 친구가 된 것 같고, 돌보아지는 것 같고, 또 힘을 받는 것이 지금의 너이다.그렇다면 너는 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너에게 좋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신을 생각하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가져 오는지 살펴보고,그렇다면 그 생각을 유지하라.그렇지 않다면 바꾸어라.


[신의 경고]


삶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삶은 스스로 규율적이고 스스로 지속적인 시스템이다.이 시스템은 항상 기능적이고, 적응적이며, 지속적이다.그래서 삶은 끝이 없는 것이다.
지금 너희의 세상인 지구는 너희의 시간으로는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그래서 세상을 구한다는 말을 내가 쓸 때는 너희가 아는대로 세상을 지킨다는 의미이다.세상을 지킨다는 말은 너희가 세상을 보존(preserve)한다는 뜻이고,보존은 너희가 먼저 섬길(pre-serve) 때 가능하다고 했었다.먼저 섬기는 것은 네가 섬김을 생각하기도 전에 섬긴다는 말이다.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섬김을 뜻한다.
지금은 너희 본능을 너희가 훼손하고 있다.너희 본능은 너희가 지금 너희 세상과 너희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너희는 여전히 그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너희는 지금 삶의 메세지를 무시하고 있는 삶이다.그러나 그 메세지를 그리 오랫동안 무시하도록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삶은 비기능적으로 되기 전에 지속적일 수 있도록 자신을 적응시킬 것이다.즉, 그 형태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삶의 가장 중요하고 기능적인 메세지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그들의 형태를 바꾸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너희의 용어로는 그들이 죽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어릴 때 죽을 것이다.대다수는 그들이 그들의 삶을 더욱 지속적으로 만드는 간단한 메세지들을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 때보다 먼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현재의 형태로 너희 삶을 즐기고 있다면삶을 더 지속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권한다.
지속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이 너희의 제2의 본성이 되도록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라.너희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계속 수집하고,계속해서 그것들을 살펴 보라.계속 반복하라.너희 잠재의식 속에 녹아 들도록 시대적 지혜를 되뇌이고 또 되뇌어라.



제8장 우주를 불러 들여라!


[살아 있는 우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에 있는 지구나 태양, 태양계 같은 존재에 대해 바위덩어리와 같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이러한 존재들을 최대한 착취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환상)이다.이러한 존재들은 살아있는 시스템의 일부이고,그 시스템과 너희와의 관계는 새롭게 설정되고 체험될 수 있다.
네 주위의 모든 것들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더 큰 전체의 일부로서,더 큰 에너지 결합체 속의 작은 에너지 결합체로,더 큰 삶의 형체 속에 있는 하나의 삶의 형체로,큰 나 속의 작은 나로 너희를 체험하게 된다.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이고,모든 측면과 요소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물질과 형체 등을 창조하는 에너지와 진동이 서로 연결되고 얽힌 거대한 매트릭스이다.
지구는 잴 수 없이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부분, 점 하나이고,너는 그 점 속에서 또 작은 부분, 점 하나이다.또한 너 속에는 마찬가지로 미세한 점들이 존재한다.
너의 어떠한 부분, 점들도 너에게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왜냐 하면 그것들이 바로 너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너와 살아 있는 전체 시스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낡은 영성과 새영성]


낡은 영성이 주장하기를, 어제의 신이 천국과 지구를 창조했다지만새영성은 내일의 신이 바로 천국과 지구라고 말한다.
낡은 영성이 말하기를, 신은 신의 피조물과 떨어져서 별개로 존재하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으며,인간이 만지고, 보고, 느끼고 모으는대로 최대한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영성은, 신은 모든 것과 통합되어 하나이고,인간으로 삶을 주었으며,인간은 구현된 신으로서 자신들을 나타내고 체험하도록 하였고,그들이 만지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구현된 신이라는 것을 알도록 했다고 말한다.
낡은 영성은 너희에게 신을 섬기라고 요구하지만,새영성은 같은 말이지만, 너희에게 삶을 섬기라고 요구한다.
삶을 먼저 섬겨라.이것은 새영성의 모토이다.새영성의 신조이다.




제9장 종교와 법


- 신과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인가요?
네가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평화와 조화와 행복 속에 함께 사는 것이라면, 너희가 즐겁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고, 너희 숨이 넘어갈 정도로 경이로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행성들 중의 천국이라고 할 환경 속에서 건강과 장수를 누리는 것이라면 그렇다.맞다, 빠를수록 좋다.
- 그렇지만 어떻게 가장 기본적인 신조들을 바꾸죠?
그 신조들에 도전하면 된다. 논리와 분석의 빛을 들고 도전하라.너의 가장 신성한 전제들에 대해 도전해야 한다.그러한 전제들이 나온 근원에 대해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도전하기 전에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그러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신조들은 어디에서 나왔죠?
바로 폐쇄적인 기성 종교들이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법률과 인류의 근본적인 신조들 대부분은초기의 몇몇 선각자와 번역자 및 추종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 추종자들은 가르침을 다른이들에게 계속 전파해 나가기를 거듭해,본의는 아니지만 결국은 오해와 왜곡이 되었다.
그 가르침들은 다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들의 기초가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가르침들이 너희의 문화이야기가 되었다.그 가르침들이 곳곳이 스며들었는데 법률도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되고 나면 그 신조들은 인류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도 하고,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까지 결정하게도 된다.
- 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결정하는 그런 사례가 있나요?
동성간의 결혼과, 자궁내 유전자 조작이 전형적인 사례이다.이 두가지에 대해 끝까지 논리를 파고들면 결국 신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에는 도덕적 권위가 부여되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정부에서 참전하도록 명령하더라도 양심적 거부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지만,신이 명령하는 성전이라면 양심적 거부마저 불가능해진다.
결국 사람이 신에 대해 도전하면 변절이 되므로 안되는 것으로 믿고,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 의심하면 안되는 것으로 믿는다.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믿음 자체를 믿는다.
- 마침내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면서도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믿죠.
무엇을 믿든 의심하지 마라는 것이 신조가 되어 버리지.
그 결과는 두얼굴의 신이다.
너희는 신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증오한다.너희는 신의 이름으로 창조하고 파괴한다.너희는 신의 이름으로 수용하면서 거부하고, 상도 주고 벌도 준다.
다시 말하거니와 너희는 너희의 신조들로 너희를 죽이고 있다.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너희의 신이 너희를 죽이고 있다.




제10장 원수의 얼굴에서 신을 보라!



[신이 말하는 방식]


내일의 신은 모든 사람과 항상 말한다.
여기서 모든 사람과 말한다는 뜻은 두가지가 있는데,대화한다는 뜻도 있지만, 함께 동시에 말한다는 뜻도 있다.즉 모든 사람을 통해서 말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뜻을 알고 받아 들일 때, 너희에게는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신은 모든것 속의 모든것이고,그 모든것에 너희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너희 속에 신이 있고, 신 속에 너희가 있어서,신과 너희는 하나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폭군과 살인자를 통해서도 이야기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통해서 신을 본다는 말입니까?
너희 원수의 얼굴에서 신을 볼 수 없으면 너희는 신을 전혀 볼 수 없다.참으로는 바로 원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부분과 대조적인 다른 한 부분이 있을 뿐이다.너희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물 속에만 존재하는 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너희가 동의하는 것 속에서만 체험될 수 있는 신이란 건 진짜가 아니다.
진정한 선각자는 모든것 속에, 모든것으로, 모든것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 그렇다면 그렇게 미친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죠?
그들은 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 왜 망각을 했죠?
망각하도록 배웠고, 망각하란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너희의 고대 문화이야기가 신과의 분리를 이야기하였고,최근 사회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새롭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삶이란 게 망각과 기억의 순환이다. 너희는 완전한 앎에서 완전한 망각으로, 그리고 다시 완전한 앎으로 순환하고 있다.합일에서 분리로, 다시 합일로.완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다시 완전의식으로.이러한 운동과 과정이 바로 오고 가는 것이며,나타남과 사라짐이고,존재와 무이며,삶과 죽음인 것이다.
-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해치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그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켜라.그러나 먼저 너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그렇게 행동하라.
누군가 너를 해칠 때, 그건 종종 화해를 위한 기회이다.대개 자기 생각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해친다.그럴 때 너의 선택은, 첫째, 방어를 하던지,둘째, 다시 공격을 하던지,셋째, 공격을 하는 이유를 찾아서 화해와 용서와 협력으로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모든 공격은 도움의 요청이다. 이것을 알면, 너는 무슨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지 살펴보게 된다.그리고는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다치게 해서, 당신은 그걸 고치려고 나를 해쳐야 한다고 느끼는지 말씀해 주시죠."라는 식으로 바로 물어볼 수도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 차원이나, 집단, 종교, 문화, 국가의 공격에 있어서 대부분은 적용될 수 있다.
- 그런데 이미 자기가 신이라고 하면서 미친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죠?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신이 누구인지도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상기시키고 지켜 보면 되지.
- 그럼 신이 누구이고, 무엇이라고 할까요?
사랑.한마디로 신은 사랑이라고 하라.
그리고, 자유.한마디로 신은 자유이다.
또, 기쁨.한마디로 신은 기쁨이다.
그리고 평화.한마디로 신은 평화이다.
또한, 합일.한마디로 신은 합일이다.
너희는 모두 나의 사자이고, 단 하나의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메세지이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나는 진정한 당신을 봅니다.나는 당신을 압니다.나는 진정한 당신을 압니다.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나는 진정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세지이다.
"나는 당신을 보고, 앞으로도 늘 볼 것입니다.당신은 사라질 수도, 숨을 수도 없고,당신의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잃을 수도 없습니다.당신은 당신이 아닌 것이 될 수 없습니다.당신은 당신이 아닌 것처럼 행세할 수는 있지만, 당신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나는 항상 당신이 행동하는 바는 염두에 두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를 볼 것입니다.당신의 지금 행동이 당신 자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나는 늘 존재의 차원에서 당신을 볼 것입니다.나는 당신을 봅니다.나는 진정한 당신 자신을 봅니다.당신의 행동이 내가 보는 것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라는 메세지이다.



제11장 선각자의 길



[집단 깨달음의 시대]

--나를 억압하고, 죽이려 하고, 본연의 나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 도대체 어떻게 사랑의 메세지를 보내고, 본연의 존재로 본다고 말하죠?--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을 때 자신을 본연의 나로 봄으로써.특히, 다른 사람이 나를 본연의 나로 보지 않을 때.
모든 위대한 선각자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세상을 바꾸었다.
이것이 바로 부처가 한 것이 아닌가?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한 것이 아닌가?이것이 바로 예수가 한 것이 아닌가? 무하마드가 한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이것은 바로 간디가 한 것이 아닌가?테레사 수녀가 한 것, 마틴 루터 킹이 한 것,쟌 다르크가 한 것,바로 넬슨 만델라가 출옥한 날 한 것이 아닌가?
세상을 바꾼 이들을 보라.이것이 바로 그들이 한 것이 아닌가?

--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이 아니죠.--

너 자신을 그 수준에 두는 순간 그 수준이 된다.너 자신 말고는 아무도 너를 그러한 수준에서 끌어 내릴 수 없다.
-- 나에게는 무리입니다.--
만약 너 혼자 해야 한다면 무리인 걸로 보이겠지. 하지만 너 같은 사람이 천 명이 있다거나, 십만 명이나, 백만 명이 있어서 너와 함께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무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면 무리는 아니겠죠.--
그럼 그런 팀을 만들어 보아라. 인류애팀(Humanity's Team)을 만들어 보아라.사람들을 많이 많이 모아라.이제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선각자가 여기 저기서 경이로운 일을 해 내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기에.
개별적인 선각자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수 많은 선각자가 나타나는 시대가 왔다.문제는 바로, "너희가 집단적으로 선각자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이다.
너희는 아직도 선각자가 아는 것을 너희는 모르는 척,선각자가 이해하는 것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척,선각자가 하는 것을 너희는 할 수 없는 척 할 필요가 있는가?
만일 너희가 아직도 자기위장(self-pretending)의 세계에 머물기를 필요로 한다면,집단적으로도 너희가 너희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은 바로 너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에.
이 과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비켜 가거나, 뛰어 넘거나, 우회할 수 없다.먼저 너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그리고 나서, 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집사로의 초대]

너희 모두가 선각자의 길로 접어들 때가 되었다.왜냐하면 나는 너희가 지구의 훌륭한 집사(stewards)가 되도록 보냈고,이제 집사가 될 때가 다가 왔기 때문이다.
집사로서 너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직분은 진실의 집사이다.너희는 너희 존재의 진실에 대한 궁극적인 집사가 되어야 한다.
너희 존재의 진실에 대한 집사가 된다는 것은 그 진실을 보호하고, 잃어 버리거나 망각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너희와 어느것이나 누구에 대하여도 그 진실을 이야기 하고, 반드시 이야기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너희가 너희 속에서, 너희로서, 그리고 너희를 통해서 그 진실을 살고, 그 진실에 생명을 부여함이 부족해서 죽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다음에 너희는 서로의 집사가 되어야 한다.너희는 서로를 보살피고, 지키고, 보호하고, 돕고, 인도하며 인식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인식한다는 것은 다시 안다(re-cognize)는 뜻이라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따라서 너희는 서로를 다시 알아야 한다.너희가 서로를 본연의 존재로 알게 되면, 모든 자해행위는 멈춰지고, 자기치유가 시작될 것이기에.
이 다시 알기는 잠재의식과 초의식과 초월의식이 함께 작동되어 의식적 의지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새로운 의식 수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너희가 본연의 너희일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그런 것이다.너희는 삶을 보존하게 되고, 삶을 가장 우선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너희는 고향(home)의 집사, 우주에서 너희가 머무는 곳의 집사가 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 고향을 보살피고, 보호하고, 너희 고향이 스스로 돕기를 도울 것이다.
만일 평화와 기쁨과 건강과 행복과 조화 속에 함께 사는 것이 너희가 원하는 것이라면너희는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고 한 적이 있잖아요?

너희가 이런 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의미에서는 너희가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만일 이런 일들이 너희가 체험하고자 하는 것들이라면 꼭 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그런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그러한 창조를 위해서 다른 방법은 없다.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네가 있고자 하는 곳으로 이르는 다른 길은 없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줄여 말할 수 있다.바로 사랑이다.이것이 바로 너희에게 요구되는 의식의 새로운 수준이다.너희는 너희가 사랑인 의식의 수준을 체험하기를 요구받고 있다.너희는 사랑이다.
사랑이란 말은 신이란 말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마찬가지로 신은 삶이란 말과 바뀔 수 있고.그래서 너희가 사랑이라는 것은 너희가 삶이라는 것이고, 신이라는 것이다.
당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너희는 신의 의식을 체험하고 표현하기를 요구받고 있다.너희는 이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제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너희는 어떻게 대응하려느냐?
다시 말하거니와 이 집사로의 초대는 사랑으로의 초대이다.집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살핀다는 것이고,사랑한다는 것 또한 무엇인가를 보살핀다는 것이기에.
그러므로 진실을 사랑하라.서로 사랑하라.너희 고향, 지구를 사랑하라.그리고 나를 사랑하라.나를 사랑하면, 모든 것을 사랑게 될 것이기에.나는 모든 것이고, 나 아닌 것은 없기에.



제12장 예수



- 때로 심리적 편의상 신을 나의 외부에 두고, 나는 여기에, 신은 저기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방식이 될 수 있고, 만약 그렇다면 그 방식을 이용하라. 그게 작은 자기가 큰 자기와 교감하는 방식이다.

- 그런데 우리 모두가 당신이라면 당신의 한 부분이 어떻게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나요?

너는 너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느냐? 너는 항상 네가 하는 모든 것과, 네가 말하는 모든 것, 동기와 과제와 의도 하나하나를 다 이해하느냐?

- 아뇨.

너는 방금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이다.

- 그 말 속엔 뭔가 더 의미하는 게 있는 것 같네요.

그렇다. 네가 나의 개체화된 부분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정의상, 네가 신이라 부르는 개체화되지 않은 궁극적 실재가 보유하는 전체적 이해와 기억과 앎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왜요?

한방울의 바닷물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바다와 같은 힘을 보유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개체와 전체는 같지 않다.

- 그럼 신과 내가 하나가 아니란 말이죠.

대부분은 나와 하나이다.

- 하지만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거죠.

대부분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규모는 아니다. 같은 규모로 하는 경우는 빼고.

- 같은 규모로 하는 비결은요?

너의 의식을 고양하고 확장하는 것이지. 큰 자기, 우주적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지.

- 예수가 한 것처럼 말이죠.

이제 너는 비로소 신과 예수,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했다.

-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자였고 지금도 그렇죠.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초대 받은 것처럼요.

맞는 말이다.

- 사람들은 스스로 창조한 환상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걸 예수님은 알았고, 또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도 알아서 진정한 자기를 모든 사람이 듣도록 선언한 것이죠.
또 자기가 한 것을 우리도 할 수 있다고도 했죠.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믿는 바대로 이루어지리라. 여인이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의 눈이 나았죠.
예수님은 또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약속 아닙니까? 예수님이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해 얼마나 훌륭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다" 라고 했고, 또 이어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라고 하였는데,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신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예수님과 형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요.
성경에서 이런 점을 였볼 수 있는 구절들이 수두룩합니다. 아래에 좀 인용을 해 보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복음 10:30)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영광을 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7:22)
"제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부디 그들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복음 17:23) "아버지께서 제게 보이신 사랑이 그들에게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요한복음 17:26)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2:5)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3:8)
"빵이 하나이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의 빵을 먹는 것은 우리가 여럿이라도 모두 하나의 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7)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들이 있고, 몸에 지체들이 많이 있지만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든지, 그리스인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었고, 모두 한 성령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몸은 하나의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므로 몸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발이 몸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귀가 '나는 눈이 아니므로 몸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몸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2:20)
"그러나 지금 그런 것처럼 지체는 많아도 몸은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2:20)
이처럼 우리가 신과 하나라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 성경일진대, 기독교인이 내일의 신을 받아들이고 새영성을 탐구하는 것은 현재의 믿음에서 결코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와 함께 신에게로 가는 것이 예수를 통해서 신에게로 가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요즈음의 말로 다시 표현하라면 다음과 같이 하겠지요.
"나는 삶이요, 길이다. 내가 나의 삶을 산 것처럼 너희도 너희의 삶을 살아라. 내가 간 길을 너희도 가거라. 이것이 바로 나를 따르라는 말이다. 그러면 너희도 신을 체험할 것이다.그런데 만일 너희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내가 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말들을 못 믿는다면,너희는 너희 자신을 못 믿게 될 것이고, 너희가 신을 체험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왜냐 하면 너희는 인간이 신성함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려는 진실이 바로 이 너희의 신성함이다."

예수의 신성함 뿐만 아니라 너희의 신성함이 바로 진실인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새 영성은 성경의 가르침을 파기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확장하는 것일 뿐이다.이제 너희는 새영성으로 인류의 희망이 되어라.



제13장 새영성의 초석



[일체성, oneness]


일체성, 즉,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 새영성의 초석이다.
만약 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면, 이 생각이 너희 잠재의식에 스며들어 너희의 자연적 본능이 된다면,이 개념이 너희의 살아 있는 철학이 된다면,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와, 직업이 변하고, 인간관계와 섹스와 갈등 해소에 대한 너희의 생각, 그리고 삶의 목적에 관한 너희의 생각을 포함한 모든것이 바뀔 것이다.
그래서 이건 별거 아닌게 아니고, 계속해서 반복할 만한 것이다.
이걸 가르쳐라.그 외의 모든 것은 저절로 들어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이 말을 기억하라.
이 말의 귀감이 되라.다음 선택과 결심을 할 때,다음에 움직이거나 전략을 세울 때,다음 수입 목표를 세울 때,너희 종업원의 급여를 책정할 때,너희가 파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격표를 붙일 때.
이 말의 귀감이 되라.너희가 작전실이나 회의실이나 침실에 들어 갈 때,이슬람 사원이나, 유태교 사원이나, 성당이나, 절에 들어 갈 때.
너희의 삶 순간순간마다 이 말의 귀감이 되라.그러면 새영성이나 내일의 신에 대해 너희가 가르칠 건 전부 가르치게 될 것이다.



[불필요, Needlessness]


새영성의 기본원리 중 또 한가지는 바로 불필요이다.새영성의 시대에 너희는 내일의 신을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일의 신은 불필요하다.첫째는 너희가 신을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체험할 것이라는 것을 뜻하고둘째는 너희는 신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체험할 것을 뜻한다.
새영성의 시대에 너희는 너희 자신을 뭔가 필요로 하는 존재라서전능한 존재에게 원조와 호의를 기원해야 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신은 불필요하다.
열가지 환상 중에서 첫번째가 필요의 환상이고,다른 환상은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이 건 아주 강력한 환상이고,이로부터 좀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 환상을 보면네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너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 가는 것이다.
신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너희도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너희는 신에게 충성해야 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신의 계율을 지키는 것을 신이 요구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내일의 신은 말한다,"나는 너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나는 너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내일의 신은 말한 그대로를 뜻한다."너희는 자유의지를 가졌다.하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너희를 영원히 단죄할 것이다."라는 뜻은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자유의지라는 할 수 있는가?내가 원하는 대로 네가 할 자유가 있다고?그게 도대체 무슨 자유인가?



제14장 삶의 비밀 공식



[하나님의 형상대로,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하나님의 형상대로' 너희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내가 너희를 닮았다는 뜻이지만내가 그러기를 원할 때 그런 것이고, 내가 별똥별로 보이기를 원하면 별똥별로 보인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너희가 만들어졌다는 말의 핵심은 신이 너희 같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신같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말이 함축하는 바는 너희가 물질적 형태의 존재가 아니고너희가 원할 때 물질적 존재의 형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또 너희가 원하면 다른 형태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너희는 무한한 지혜와 조건없는 사랑의 근원으로 표현되는, 창조력이 있는 순수 에너지라는 말이다.

[삶의 비밀 공식]


환상의 세계에서 평화와 조화와 행복을 찾는 비밀 공식은 바로 섬김(Service)이다.삶 자체를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삶을 섬길 때, 삶은 너희를 섬긴다.그것은 너희와 삶이 하나이기 때문이며,삶을 섬기는 것은 너희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일이 너희를 섬기는 것인 이유이다.신은 너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8. 내일의 신은 섬김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삶을 섬긴다.
진정한 선각자는 가장 많은 추종자를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많은 선각자를 창조해 내는 자이다.
하지만 너희가 자유의지에 따라 신을 섬길 때, 너희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너희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너희가 가진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 너희의 기쁨임을 드러내는 것이고,이것이 바로 선각자의 정의인 것이다.
위 문장에서 신 대신 삶이란 단어를 넣어 보라.그러면 지구 상에서 평화와 조화와 행복을 찾는 비밀 공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생각과 말과 행동 모든 것에서 삶을 먼저 섬겨라.무엇이든 삶을 개선하고, 풍요롭게 하고, 지지하는 것인지 늘 질문을 해 보면 도움이 된다.
삶을 섬기는 것이 너희(your Self)를 섬기는 것이라고 할 때'너희'라는 말은 작은 너희(Little Self)가 아니라 큰 너희(Big Self)를 말한다.




제15장 새영성의 초석3 - 무조건(Unconditionality)]
새영성의 초석 중 또 하나는 '무조건'이다.무조건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삶은 있는 것이다. 그냥 있을 뿐이다. 삶에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삶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조건이란 건 없다.
죽으면 삶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틀린 말을 한 것이다.너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조건도 죽음이 아니고 다른 형태의 삶이다.
그래서 삶은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이 말은 신은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한다는 말이고,또한 이 말은 사랑은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신과 삶과 사랑은 서로 바꿀 수 있는 말이며,이 셋은 하나이며, 성삼위일체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이다. 조건을 붙이는 사랑은 위조사랑이고, 사랑이라 할 수 없다.진짜 사랑, 진짜 신, 진짜 삶은 조건을 모른다.
조건적 사랑은 자가당착이다.따라서 사랑에 조건을 붙이는 신이란 개념은 작동할 수 없다.너희가 두려워하는 신에게 사랑받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신은 어제의 신이다.
사랑과 두려움은 서로 배타적이다.그래서 인간은 어제의 신과 굉장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영적 스승들이 준 지침 중 가장 공통적인 것이 '두려워 말라'는 것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신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이 전혀 없기에 너희가 신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필요한 것이 많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족시킬 능력이 없어 인간에게 갖가지 요구를 하고,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너희를 심판하고, 저주하고, 처벌하는 어제의 신에 대해 너희가 그동안 배워 왔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어제의 신과 내일의 신의 아홉번째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9. 내일의 신은 무조건 사랑하고, 심판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으며 처벌하지 않는다.



제16장 내면으로 가라]


새영성의 초석으로 일체성과 불필요, 무조건 외에는 더 말하지 않으련다.더 말하면 너희는 이 책을 바이블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에 모든 것을 담거나 너를 독점적 출처로 삼지는 않겠다.
사실은 독점적 출처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다.이것이 새영성의 초석 중 우리가 자세히 논의하는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누구든 새영성의 초석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내면으로 가면 된다.
내면에서 찾아라. 내면에서 구하라.내면에 문의하라.내면에서 추구하라.내면으로 가라.
내면으로 가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너희를 만족시키는 답도 구하지 못하고, 너희와 함께하는 평화를 얻지 못하며,너에게서 솟아나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너 자신이 되는 사랑도 주어지지 않는다.
명상하라.숙고하라.반추하라.여기서 너희가 얻은 것을 다시 살펴 보라.그리고 다시 너희 가슴 속 깊이 생각하라.
너희 모두는 천사요, 너희 모두가 서로를 일깨우고, 본연의 자기를 상기시키며, 너희 체험과 과정을 가장 명확하고 투명하게 나누는 과업을 부여 받았다.
그래서 한 책에 모든 것을 담거나, 한 사람에게 모두 주거나, 한 출처에서 모든 것이 나오도록 하지 않고, 삶이라는 과정과 삶의 비밀들을 통해서 삶이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다.
어느 한 책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새 영성은 열린 체계라서 계속 성장하고, 확장하며, 다음에 되려는 것이 되고, 삶 자체와 삶이라는 축적된 체험이 그 출처이다.
새 영성은 절대 신나이를 새 종교로 만들지 않는다.신나이는 대단한 가치가 있지만 한사람의 개인적 체험으로서 그럴 뿐이다.신나이가 교과서나 신성한 출처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진실이 여기에만 있다고 말하기 보다 여기나 저기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라.
새 영성으로 살려는 이들에게 모든 책과 모든 사람이 신성하고, 그들 자신이 신성하며, 그들의 삶 자체가 가장 신성한 진실을 써 내려간 책이라고 생각하도록 청하라.너희 자신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 너희의 가장 신성한 진실을 담은 책을 쓰는 것이고,그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17장 새영성의 종교



[신을 체험하는 새로운 방법들]


인류는 21세기의 문제를 그 전부터 전해 온 1세기의 보잘것 없는 지침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그러는 것은 21세기의 수술실에 1세기의 수술도구를 갖고 들어 가는 것과 같다. 내일의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은 18세기나, 10세기, 6세기의 지식과 지침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그러한 지식과 지침이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미흡한 것이다.
종교적 경전들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지식은 여러 면에서 지혜롭지만 또 여러 면에서는 미흡하여 위험하다.전통을 존중하라 그러나 그 지식을 확장하라.이것은 이제 요령이다.종교들이 앞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살아 남으려면 당장 익혀야 할 요령이다.
너희는 그 누구와도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경쟁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삶을 경쟁이 아니고 게임으로 생각하라.과거에는 너희는 삶을 경쟁으로 생각했다.너희는 자연과 경쟁하고, 서로간에 경쟁하고, 삶 자체와도 경쟁했다.
하지만 삶은 너희의 경쟁상대가 아니고 그런 적도 없다.자연도 경쟁상대가 아니고 그런 적이 없다.사른 사람도 너희의 경쟁상대가 아니고 그런 적이 전혀 없다.또한 신은 너희의 경쟁상대가 아니고 전혀 그런 적이 없다.
너희는 자연을 정복할 필요가 없다. 단지 협동만 하면 된다.너희는 삶과 다툴 필요가 없다. 단지 같이 흘러가면 된다.너희는 신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신과 하나가 되면 된다.
새영성은 전통적 종교를 결코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그 대신 신성한 진실이 계속 밝혀지는 과정에 동참시킬 것이다.너희의 종교에는 내버리기 아까운 수많은 보물들이 있다.종교에 관한 인류의 미래는 폐기보다는 재활용, 분쇄보다는 분석과 관계 깊다.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말이 되고 안 되는지 살피고, 무엇이 도움이 되고 안되는지,무엇이 작동되고 안 되는지종교를 분석하고, 정밀히 관찰하며, 하나 하나 탐구하고, 교리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들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새영성의 초석이 될 새로운 자각과 확장된 의식으로부터 나오는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식견, 새로운 진실들을 추가하여 전통을 부흥시키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융성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화내고, 질투하고, 벌하는 신은 사라지게 된다.복수를 정당화하는 것도 사라진다.과거에 많은 종교들이 가졌던 배타주의와 우월주의 교리들도 사라지게 된다.



제18장


[영혼의 시민권 운동]


새영성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내면으로 가기 바란다.명상이나, 깊은 기도, 조용히 듣기 등 너희가 편한 방법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라.아침과 밤의 각 15분 정도로 너희 삶을 바꿀 수 있다.
두번째는 운동이다.너희 몸이 개운하지 않고는 너희 마음이 새로운 데이타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루에 20분이라도 들이면 네 삶을 바꿀 수 있다.
세번째는 제대로 먹는 것이다.너희는 음식으로 너희 몸을 죽이고, 마음을 무디게 한다.이것의 효과는 매우 느리지만, 그 결과를 바꾸기도 어렵다.서구 사람들의 3분의 2가 설탕과 녹말, 동물성 지방 등 소화시키기 어려운 것들을 먹고는 비만이다.그러고선 주어진 수명보다 훨씬 빨리 죽고 있다.흡연도 문제다. 너희 폐가 바로 독소를 흡수하는 형태로 음식 중에 가장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는 규칙적으로 너희 영혼의 양식인 영감을 찾는 것이다.모든 삶의 신성함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어떤 방법이든 너희에게 맞는 방법이면 된다.영감을 찾는데 교회나 절, 사원 등에 가는 것이 도움이 되면 그렇게 하라.그러나 거기서 무작정 따라하지는 마라.너희 가슴에 비추어 회의가 드는 것에 대하여는 반문하라.그러한 곳들은 숭배의 장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경외의 장이 되어야 한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너희 기성 종교들은 서로 싸우기를 멈출 것이다.새영성의 시대에는 너희 기성 종교들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를 멈출 것이다.새영성의 시대에는 너희의 많은 기성 종교들은 신 외에 무엇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를 멈출 것이다.



제19장 [새영성의 정치]


새영성의 시대에는 정치와 영성은 별개라는 생각이 영원히 내팽개쳐질 것이다.너희의 정치는 드러난 너희의 영성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인류는 마침내 기본적 신념들을 더 많이 공유하기 시작할 것이며,세계적으로 정치적 표현들에 대하여 더욱 통일된 기준을 만들어 낼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신의 본질과 특성이 더욱 충실히 이해될 것이다.그 결과는 세계적으로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일체성의 초석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체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 사회구성원들은 그들의 공동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고,서로 싸우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자유의 메세지가 자유의 체험을 더욱 활발히 하게 할 것이다.새영성은 영혼의 시민권 운동이고, 자유의 메세지이다.억압에 반대하는 사람이 비등점에 도달하면 억압의 정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일체성이 체험적일 것이다.일체성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된다.다수결보다는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모두가 참여하는 온라인투표제, 그리고 전과정에 있어서의 투명성이 주요 변화가 될 것이다.




제20장 새영성의 경제


모든것이 하나라는 개념 - 새영성의 초석이 되는 신념은 내일의 세계를 창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1.새영성의 시대에는 모든 경제적, 기업적, 사업적 판단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고,모든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통합시스템방식(Whole System Approach)을 따르게 될 것이다.
지구에는 최근까지도 사회적 결과나 환경적 영향에 대하여는 별로 고려하지 않은 채,경제 계획이 수립되고, 경제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래에는 양심이 사업에 다시 도입될 것이다.복합적 영향력에 대한 의식이 고양되고, 자각수준이 높아질 것이다.기업들은 자신들이 인적 공동체이고, 더 큰 공동체의 일부이어서,서로의 선택이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2.새영성의 시대에는 기업과 사업의 목적이 바뀔 것이다.지금의 모델에 있어서는 기업은 기업주의 이윤을 위해 존재하지만. 새영성은 너희에게 경제모델의 새로운 기초를, 사업을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 새로운 목적이란 풍요(wealth)를 창조하는 것이다.현재 지구상에서는 풍요가 소유와 지배력으로 정의되고 있다.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지배력을 가질 때 더 풍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새영성의 시대에는 풍요가 접근과 행복으로 정의된다.소유보다는 사용이 중요하다.세탁기와 진공청소기를 예를 들면,사람들이 이것들을 모두 소유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한정된 갯수라도 서로 다른 시간대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만 하면 풍요로와진다.
접근과 사용이 풍요로 가는 답이다.소유와 지배력의 경제에서, 사용과 협력의 경제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3.또한 새영성의 시대에는 경제가 투명해 질 것이다.아무런 비밀도, 막후협상도, 분식회계도 없을 것이다.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삶을 영위하는데 바람직한 것들에 대해 동등한 접근이 허용되고,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 가능성이 높아지는 진정한 풍요를 제공하기 위해 네가 행하는 모든 것도 일체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비밀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4.새영성의 시대에는 경제가 지방화될 것이다.경제력이 선택받은 소수에서 일반 대중으로 넘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탈중앙화이다.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외지에 의존하지 않을수록,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더 양질의 삶을 살게 된다.
5.새영성의 시대에는 풍요와 자원이 일부에게 편중되지 않고, 극한적 빈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소수의 사람이 세상의 돈과 자원 대부분을 지배하는 현상은 사라질 것이다.
6.새영성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권리가 부여될 것이다.최저소득의 보장이나, 주택, 의료, 교육, 고용 등에 있어서 제도적 장치로 고통과 절망과 비극을 몰아내게 될 것이다.
7.새영성의 시대에는 자연자원은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이유로 해서 개인이나 한 나라가 지구의 자연자원을 독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터무니 없게 보이게 될 것이다.나무나 광석, 기름, 물 등 소중한 자연자원은 모든 인류를 위한 공동 소유로 간주될 것이다.



제21장 새영성의 교육


아이들은 스크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TV 스크린, 컴퓨터 스크린, 비디오 게임 스크린, 영화 스크린 등.스크린을 통해 상상의 세계를 사는데, 여기서 문제는 TV 프로듀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게임 제작자, 영화 제작자의 상상에 기속되는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암기를 요구하는 것은 과거를 다시 창조하는 것일 뿐이고, 공정함, 인내, 평등, 정직 등이 개념과 아이디어들을 탐구하는 것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새로운 교육방법은 영성을 모든 분야에 도입하여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과 일상생활이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영성로 이해되고, 생활 속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영적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강제와 처벌이 교육 과정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체벌은 아이에게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도록 가르칠 뿐이다.처벌은 어떤 행동을 멈추게 하는데 어쩌다 효과가 있겠지만, 그 행동을 바꾸지는 못한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교육의 초점이 창조에 있다.
창조교육이 과거의 교육과 가장 다른 점이다.창조교육의 첫해 교과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9대 구성요소가 있다.
1. 너희는 신을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과 하나이다.모든 것은 하나의 살아있는 시스템의 일부이다.
2. 너희는 신과 하나이기에 너희 삶에서 체험하고자 하는 것을 창조할 힘을 갖고 있다.
3. 너희가 창조하는 방법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4. 창조의 과정에서 실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실패는 환상이다. 너희가 창조하는 것은 너 자신을 포함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5. 너희가 창조할 때, 너희는 삶의 목적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왜냐하면 창조는 너희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방법이며, 너희와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삶 자체가 너희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삶은 내재된 귀결이 있지만 처벌이란 없다.배움은 너희 영혼이 늘 알던 것을 기억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7. 다른 사람이나 장소,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치지 말고,돕고, 사랑하되, 특히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그렇게 하라.
8. 모든 사람에게 이미 충분히 주어져 있다.행복해지는데는 별로 필요한 게 없다.너희 자신이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9. 너희의 가장 친한 친구는 삶 자체이다.왜냐 하면 삶은 끝이 없기에.지구에서의 네 삶 한 부분이 끝나도 심판의 날이란 없다.선택은 너희가 진화하고, 궁극적인 너희 자신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교육의 우선순위가 사실의 전파에 있지 않고,삶의 경이에 대해 감수성과 자각과 이해와 애정과 수용과 축하와 감사를 확대하는데 있다.
지금의 3R은 읽기(Reading), 쓰기(Riting), 수학(Rithmetic)이지만,새영성의 3R은 화해(Reconciliation), 재창조(Re-creation), 합일(Reunification)이다.
화해는 인종과 성과 국적과 종교로 나뉘어진 너희 사회를 크게 이롭게 하는 것이다.화해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행한 모든 것에 대한 인정과,과거의 '잘못'에 대한 시인과, 진심어린 사과를 포함한다.
일본이 과거 한국 침략에 대한 사과와,미국인이 미국의 원주민, 일본계 미국인, 노예로 혹사당한 미국인에 대한 사과와,영국이 인도에 대한 사과와,러시아가 폴란드에 대한 사과와,유태인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과와,팔레스타인이 유태인에게 폭력으로 대응한데 대한 사과를 예로 들 수 있다.
화해는 너희 사회, 단체, 개인들의 회복을 반드시 포함하여, 다시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이 회복에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좁히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재창조는 낡은 방식과, 낡은 이야기, 낡은 습관, 낡은 해석, 낡은 근거들을 버리고,너희 자신에 대한 가장 위대한 비전을 가장 멋진 버전으로 다시 창조하는 것이다.
우린 지금 너희를 하나의 종으로 재정의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희가 서로 평화와 조화 속에 살고자 한다면,인간적이고, 성공적이고, 풍요롭고, 행복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아서 너희들은 너희 세상을 다시 고안해야 한다.
재창조의 상당 부분은 창조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이 교육은 세상의 사람들과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합일은 창조 교육에 의해 어른에게도 늘 독려되는 것으로 신과, 세상 모든 사람과의 합일이다.수많은 형태를 가진 삶의 모든 것과 융화되는 것이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합일은 3R 중에서 가장 중요한데, 합일이 이루어지면 다른 모든 것은 제자리를 잡기 때문이다.너희가 하나라는 것을 알면 너희 모든 체험을 영원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3R도 삶의 정보로서 창조 교육에 물론 포함된다.하지만 기본 과목은 아니고, 창조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있다.창조가 즐거운 체험이 되면, 아이들은 그러한 도구들을 사용하고 싶어 하게 된다.그런 도구들을 사용하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다.
새영성의 시대에 교육의 기능은 삶을 돕는 자료와 시스템에 대해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조 교육의 8번째 구성요소를 가르침에 있어서,교사는 아이들이 찾아내는 해법 중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심령력 같은 재능교육을 포함하는 차이점이 있다.명상과 육감 개발이 정규과목이 된다.교육이 무엇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끌어 내는 것이 된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교육의 관심은 학교가 아니라 배울 환경의 창조에 있다.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감옥으로 느껴진다.따라서 학교는 학습공동체로 대체될 것이다.학습공동체는 연령과 성과 인종과 문화와 배경에 따라 분리되지 않는다.이 공동체 속에 서로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묻고, 표출하고, 탐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의 시너지는 새영성의 교육이 삶과 삶의 신비로운 교류임을 말해 줄 것이다.



제22장 새영성의 인간관계



새영성의 시대에는 인간관계의 목적과 과정이 완전히 다시 창조될 것이다.
인간관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관계의 목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고, 관계의 목적은 기쁨과 행복과 완성과 충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관계가 더 이상 필요의 충족 수단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필요는 환상이고, 너희가 무엇을 찾고 있다면,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상상하게 될 것이다.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 창조할 수 있을 뿐이다.
관계의 목적을 무엇인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면너희는 끊임없이 그 무엇을 찾게 될 것이고,그 무엇이 네 속에 있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왜냐 하면 그것이 네 속에 있다면 찾지 않을 것이기에.
그래서 너희는 너희 바깥에서 찾으려 하고,특히 너희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찾으려 한다.
반대로 관계의 목적이 무엇인가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너희가 체험하고자 하는 것을 관계 속으로 불러들일 것이다.너희는 창조하고자 선택한 것의 근원으로 너희 자신을 볼 것이고,그 이유는 어떤 것의 창조자가 바로 근원이기 때문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모든 관계가 신성하게 보일 것이다.
너희는 상호 의존적이면서 독립적이다.어느 특정인에게 의존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체험적으로 자기자신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남을 앎으로써이다.
상대계에서는 남이 없으면 자기자신도 없다.절대계에서는 남이란 없기에 남과의 관계에서 있는 것이란 게 없다.
신이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었다.신은 자신을 수십억개 이상의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었고,그 부분들은 신이라는 전체와 다른 것이라고 보였다.
이 부분들은 사실 전체를 알 수 있고, 전체는 이 부분들을 알 수 있어서 ,신은 자기자신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창조된 상대계이고 상대적 체험이다.신의 각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자신을 체험할 수 있고,신의 개체성과 전체성, 전체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의 장엄함과 경이와 영광을 알 수 있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부여한 의미 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상황을 두고 너희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걸로 내 평화를 잃을 필요는 없어. 이게 나를 해치지는 못 해."라고 할 수도 있고, "나는 너무 상처 받았어. 난 죽을 지경이야. 미치겠어. 못 참아."할 수도 있는데 각각이 너희 체험이 된다.
상처받는 느낌이란 단순한 망각행위일 뿐이다.너희 자신을 잊고, 상대방을 잊고, 너희 모두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잊어서 그렇다.미궁에 빠져 환상을 본 것이다.자신의 각본에 도취된 작가가 자신의 각본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관계의 목적과 삶의 과정과 자신의 역할을 이해할 것이다.
그 과정을 축복하며 성스럽다 할 것이고,그 과정에 참여하며 모험이라 할 것이고,그 과정을 체험하며 기쁘다고 할 것이고,그 과정을 끝내며 열반이라 할 것이고,그 과정을 다시 시작하며 행복해 할 것이다.그 과정은 끝이 없는 지복의 순환이며 창조 자체이다.
이것은 의식이 펼쳐지는 이야기이고,인간이 진화하는 이야기이며,네 자신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관계는 이 이야기의 일부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인간의 영혼과 함께 또 그 속에서 모든 관계가 시작하고 끝나며 창조될 것이다.
일단 네 속에서 나와 관계를 가지면 네 바깥에서 네가 가지는 모든 관계들에서기쁨과 행복과 완성을 체험할 것이다. 왜냐 하면 네가 가져다 놓은 것이기에.네 속에 가지지 않은 것을 네 바깥에서 체험할 수는 없다.
관계의 목적은 완성을 찾기 보다 너의 완성을 나누는 것이고,기쁨을 찾기 보다 너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행복을 찾기 보다 너의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관계는 너희 자신을 넣어 둔 맥락의 장이고, 일종의 창고와 같다.너희가 표현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너희의 어떤 측면도 꺼내 쓸 수 있지만너희가 넣어 두지 않은 것을 꺼내 쓸 수는 없다.다른 사람이 채워 줄 것을 기다리다간 실망하게 될 것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사랑과 자유가 같은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자유는 신이 준 어떤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의 진수이다.사랑과 신이 같고, 신과 자유가 같기에 사랑과 자유가 같은 것이다.자유는 임신과 같은 면이 있는데, 조금 임신할 수 없듯이 조금 자유일 수 없다.자유이거나 아니거나 일 뿐이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인류는 관계에 있어서 항상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유는 본질이기에 어느 누구도 박탈할 수 없고, 자유를 박탈했다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단순한 망각행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편과는 같이 살지 않겠다는 아내가 있을 때,남편은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살거나, 집을 떠나는 선택권을 가진다.관계에 있어서 부부는 그들의 선호를 드러낼 자유가 있고, 모든 선택은 결과를 낳는다.
상대방의 자유선택권에 의하여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이고,망각행위이다.불행하다는 불평은 관계의 당사자들이 자기자신들을 망각하고, 희생자의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선택한 것을 말하고, 행하고 또 된다.한 사람의 선택이 상대방의 행복을 방해하면, 상대방은 그렇다는 말을 할 수 있고,그래도 그런 행위가 반복되면, 상대방은 그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하는 과정이 연속되어,자유선택 뒤의 자유선택, 또 자유선택이 사랑과 삶의 이름으로 이어진다.따라서 희생자나 악한이 있을 수 없다.
새영성의 시대에는 관계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상호 창조 체험이 될 것이다.
관계는 스스로 되고자 선택하는 자기자신을 선언하고, 나타내고, 충족하고 되고, 체험하는 더 없는 기회이다.어떠한 경우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망각행위이다.진화는 모든 것의 최종 목적이며, 관계는 진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너희는 살면서 예닐곱 번 정도 심각한 선택상황에 처하게 된다.그러한 상황을 반겨라. 움츠리지 마라.너희 진화과정에서 도약을 위한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그것은 축복이다.



제23장 새영성과 섹스]


새영성의 시대에 인류의 성은 삶의 즐거운 축전이고, 신성의 영광스러운 표현이며, 당황스럽거나 부끄럽거나 죄의식이 없이, 스스로 부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제약이나 한계 없이 표현될 것이다.
성적 표현이 영적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어떤 것이든 과도한 경우에는 균형을 잃고 에너지가 손실될 뿐이다.과로, 과식, 과음을 포함하여 운동이나 TV 시청, 섹스, 영적 수련 등 그 어떤 것이든 과도하면 불균형이 초래된다.
너희는 폭력을 싫어하면서도 폭력물을 좋아하고,섹스를 좋아하면서도 성적 장면을 싫어한다.성적 표현에 대한 너희 법률은 너희에게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강간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성적 표현이기 때문이 아니라 폭행이기 때문이다.폭행은 어떠한 형태이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부당한 행동이기에 위법이다.
섹스는 협동적 에너지 교환이며, 서로 만나는 두사람 간에 교환되는 것은 에너지이고, 중요한 것은 섹스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섹스이냐이며,어떤 종류의 협동적 에너지 교환이 되고 있느냐이다.
두사람이 만나게 될 때 에너지를 교환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이 교환은 당연히 일어 나는 것이며,이 교환이 어떻게 되느냐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문제는 바로 그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느냐이다.새영성은 더 큰 자각과, 삶의 목적에 대한 더 완전한 이해를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제24장


[깨달음의 길]


새영성의 첫째 원리는 너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지혜는 바로 네 안에 있다는 것이다.너희 모두는 항상 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순수한 가슴과 깊은 바램으로 너희의 가장 고귀한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내면으로 갈 때마다 알게 될 것이다.너희가 할 일은 오로지 너희자신에게 할 말을 듣는 것이고, 그리고는 믿는 것일 뿐이다.
(닐 월쉬)깨달음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신비한 체험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왔습니다.
깨달음을 추구함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두가지가 있는데,첫째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특정한 무엇을 해야 하고,그러지 않으면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생각이고,둘째는 자신의 방식이 가장 빠른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자아실현을, 마하리쉬는 초월명상을 제시하였고,워너 에르하드를 비롯한 맣은 사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였으며,브라이언 와이스는 '많은 삶, 많은 선각자'라는 책을 저술하였고,싯다르타 고타마는 "깨달음이란 깨닫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일지 이승헌 박사는 단학을 제시하였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단학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완벽합니다.그래서 나마스테 라는 말이 강력한 도구이고, 에너지의 특별하고 의미심장한 교환이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자신이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사람을 깨달은 존재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제25장 이별과 재회


1. 내일의 신은 아무에게도 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2. 내일의 신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남녀도, 아무런 개별적 생명체로서의 특징도 없다.
3. 내일의 신은 모든 사람과 언제나 이야기한다.
4. 내일의 신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이며,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이자 끝이요, 지금까지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5. 내일의 신은 단일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 불리는 특별한 과정이다.
6. 내일의 신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7. 내일의 신은 필요로 하는 것이 없다.
8. 내일의 신은 섬김 받길 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모든 것을 섬기는 종이다.
9. 내일의 신은 심판하지 않으며, 비난하지 않고, 벌주지도 않으며 조건 없이 사랑할 것이다.
신에 대한 이 메시지들을 너희가 받아들이느냐는 가장 큰 영적 도전이 될 것이다. 선견지명과 굳건한 힘과 비상한 용기가 요구될 것이다. 비장한 각오와 불굴의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지구상에 새영성을 태동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겐 엄청난 곤경 속에서도 당당하게 웃고, 가슴 속에선 벌써 과업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기가 요구된다. 거기엔 단지 시간의 문제가 있을 뿐이니.
네가 현재의 네 물질 형태로 여기에 있으면서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어쨌든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너를 불러 “보라, 네가 작동시켜 놓았던 것을 보라. 잘 했다, 지구의 친구여. 잘 했다, 인류의 친구여. 잘 했다, 삶과 사랑과 신의 친구여.”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가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라. 영혼의 시민권운동을 시작하라. 화내고, 압박하며, 요구하고, 제한하며, 폭력적이고, 살인을 저지르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의 백성들을 해방시켜라.
나의 백성을 해방시키고 너희 세상을 구하거라. 먼저 섬겨라. (Pre-serve it.) 그래서 너희 자식들을 위해 그들의 것을 보존하라. (preserve)
오, 지금 여기서 너의 빛으로 밝힌다면 미래는 찬란하다. 그러니 모든 사람 앞에 네 빛을 더욱 밝게 하여 마침내 아무도 그들 본연의 자신을 아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하라.
어제의 신조차도 이제 그러기를 원한다. 어제의 신이 지금 여기 이순간 말한다: “나의 시간은 여기까지이고, 이제 나의 시간은 지났다. 이제 새로운 신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말이 나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기에 나는 버려질 수가 없다. 너의 새로운 신인 내일의 신도 새로운 모습의 나일 뿐이다.”
그러기에 나의 인사는, “잘 있거라. uc0 uc0 uc0 uc0 그리고, uc0 uc0 반갑네.”이다.
사랑한다.
끝.



[출처] 내일의 신 1~25장 전체|작성자 kalbawi

 


'영성수행 비전 > 신과 나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과 나눈 이야기 1(1)  (0) 2018.02.07
신과나눈 이야기 가이드북   (0) 2018.02.06
신과 나눈이야기- 새로운 계시록  (0) 2018.02.06
신과 나눈 교감  (0) 2018.02.06
신과 나누는 우정  (0) 2018.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