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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사상 지상중계 ④우주와 종교-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장·목사)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씨알사상 지상중계 ④우주와 종교-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장·목사)

柏道 2018. 1. 24. 15:33


씨알사상 지상중계 ④우주와 종교-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장·목사)


지금은 깊은 종교, 깊은 철학 필요한 시점


 

인류와 우주는 한집···인류목적

종교 통해 너와 내가 하나돼야

씨알사상은 새 문명시대 종교

 

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다르면서 함께 사는 세상이다. 인류와 우주세계가 한 집이 되는 것이 인류의 사명이고 목적이다. 그것이 예수와 다석이 파악한 하나님의 뜻이다. 우주의 물질,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통합된 존재다.

우주에는 물질세계 위에 생명세계가 있고 생명세계 위에 정신세계가 있다. 정신세계, 얼과 영은 신과 소통한다. 생명현상과 정신현상이 있다는 것은 확증되지만 신이 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 물질의 세계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중력이 작용하며 중력에서 중력파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중력파를 검증하지는 못하고 있다. 인간의 얼이 체험하는 신은 인간의 내면과 인간을 초월하는 밖에서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관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엄청난 에너지와 입자들이 결합되어 물질을 이루고,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둘째, 우주는  정지상태에 있지 않고 팽창하고 회전하며 움직인다. 셋째, 팽창하는 우주 안에서 부분적으로 수축이 이루어져 검은 구멍이 생겨나고 거기서 다시 별들이 탄생한다. 넷째, 우주는 유한하지만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경계도 없다. 자족적으로 순환한다.(스티븐 호킹)

이런 과학이론으로는 우주가 왜 생겨났는지를 알 수 없다. 우주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우주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이론에 머물러도 안 되지만 과학의 상식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도 우주의 존재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현대과학기술이 우주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과 지식을 알려주고 있지만 인류는 아직 옛날의 우주관에 익숙하다. 옛날에 사람들은 땅 아래 지옥이 있고, 하늘에 천국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땅 밑에 지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되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하늘 어디엔가 있고, 부활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 오른 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예수가 구름타고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것은 다 낡은 우주관에서 나온 신화적인 상상이다. 상징적인 표현과 서술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은 우주 안에 신의 뜻과 섭리가 있고, 신의 생명과 존재가 깃들어 있음을 뜻한다. 우주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우주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 속에 있다. 이런 자세로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사용했다면 생태계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기술문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정복자적 자연관을 가지고 기술문명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생명파괴적인 문명을 낳았다. 자연친화적이고 친생명적인 철학을 가지고 기술문명을 발전시켰다면 자연과 공동체에 친화적인 문명이 되었을 것이다.

황막하고 텅 빈 우주공간을 향해 하나님을 부르면 우주가 살아서 내 몸의 세포와 함께 생동하는 것을 느낀다.(톨스토이, 함석헌) 우주는 내 몸의 일부이다. 나는 우주의 일부이다. 함석헌은 문명을 우주와의 사귐, 친구 됨으로 이해했다. 목축은 동물과의 사귐이고 농업은 식물과의 사귐이며 광공업은 금속물질과의 사귐이다. 우주와 문명을 이렇게 함석헌처럼 이해하면 생태계파괴와 공동체 파괴의 문명은 나오지 않는다.

함석헌은 우주를 살아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우주의 깊은 존재 의미는 자연계, 영계에 이어서 인간 영혼의 내부에서 발견된다. 결국 인간 영혼의 내부에 계시되는 신의 뜻과 아름다움에서 우주의 존재의미가 드러난다. 신의 말씀이 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우주의 존재이유를 알려준다.

우주는 여러 층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물질, 생명, 심리, 이성, 얼(영), 신의 존재가 있다. 물질을 탐구하는 과학으로는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없다. 우주 안에 다른 지적 존재들이 있다고 해도 인간이 우주의 중심과 목적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속에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가 들어 있고 인간 속에 물질, 생명, 심리, 이성, 얼, 신이 있다. 신은 인간의 내부에 있으면서 인간과 우주를 초월해 있다. 인간이 우주를 초월한 신을 상대하고 신을 모시고 신과 사귀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우주의 꼭대기에 있다.

이 물질적 우주세계에서 인류의 생존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주만물은 사람의 타락으로 허무와 무의미, 고통과 죽음에 빠져 신음한다. 인간과 자연과 하나님 사이에 부조화와 단절이 일어났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포기하고 악마의 노예가 됨으로써 우주만물은 수치를 당하고 허무에 빠졌다.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우주만물은 사람 안에서 해방되고 보람을 얻으며 영원한 삶에 참여한다.(롬 8:18~22)

유영모는 죽음을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육리(陸離)라고 함으로써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의 진입임을 말하였다. 함석헌도 죽음이 전체 생명에로의 진입이라고 하였고, 물질에서 정신이 나온 게 아니라 정신에서 물질이 나왔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우주가 멸망하여도 정신은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주 안에서 그 동안 인류가 닦아오고 쌓아온 정신세계는 우주의 물질세계가 망하여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류가 신화(神化)되면 우주의 4차원 시공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정신과 신의 세계는 다시 물질세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교(宗敎)란 으뜸되는 가르침, 마루가 되는 가르침, 서로 다른 ‘나’가 하나 됨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나와 타자가, 대립하고 적대하는 것이 더 큰 전체 속에서 하나됨에 이를까. 그것은 다름아닌, ‘나’의 깊이에서, ‘나’의 참된 바깥(초월)에서 하나됨에 이른다. 하나됨에 이른 ‘나’는 나이면서 나 아닌 나, ‘큰 나’, ‘한 나’, ‘참 나’이다. 이것이 신이며 전체 생명이다. 신은 우주의 중심이며 통일력으로서 ‘하나’ ‘전체’ ‘뜻’으로도 나타난다. 하나, 전체, 뜻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이다.(함석헌)

종교는 깊이 파는 것이다. 이 점에서 철학과 종교는 만난다. 사랑, 정의, 얼, 신통(神通)은 다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다. 정치․종교․문화․교육은 모두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별적 존재자들의 서로 다름과 다툼을 넘어서 전체가 하나로 되는 것을 추구한다. 오늘날 인류는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에 대해서 최고의 사상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지 못한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는 사랑에 의해 종합되고 실현된다. 사랑, 우애, 박애는 정치의 지평을 넘어서 종교에서 나온다. 사랑과 우애의 공동체는 하나됨에 근거한다. 하나됨은 하나님 신앙에서 나온다. 종교는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원시종교는 자연세계가 살아있다고 보고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자연을 신령하게 본 것은 좋으나, 자아를 자연에 예속시키고 매몰시킨 잘못이 있다.

이어 나타난 국가종교는 신과 국가의 일치, 신이 건국의 배경이 되고 왕이 신의 아들이 되고 왕이 신이 되기도 한다. 개인을 자연숭배에서 벗어나 국가사회 안에서 살게 했다. 개인의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삶에로 이끌었으나 국가권력에 예속되고 제사장과 예배의식에 묶였다. 국가와 함께 신분계급이 생겨나고 창녀, 군대, 성직계급이 함께 나왔다. 지난 인류역사는 민족국가의 역사라고 할 만큼 국가의 구실이 컸으나 국가권력의 폭력성, 정복주의 폐해도 두드러진다.

                                  

이성의 높은 봉에 오르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영을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이성만이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자아를 초월하여 절대계에서 오는 영에 접할 수 있는 디딜 곳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 같은 것은 그 봉우리의 중턱에 피는 꽃밭에 지나지 않는다.(함석헌)

                                   

고등종교는 2500~2000년 전 국가의 제국주의적 활동이 활발해졌을 때 이 문명사적 모순과 고민 속에서 나왔다. 기독교는 이집트, 바빌론, 로마로 이어지는 오랜 식민지생활 속에서 나온 예수의 새 나라운동에서 형성되었다. 유교는 주나라가 망하고 제후의 나라들이 갈등과 대립 속에서 전쟁으로 치닫는 춘추전국 시대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서 생겨났다. 불교는 토착 드라비다 문명을 정복한 아리안 문명이 국가들 사이의 정복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신분제도와 탐심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를 지향하는 종교로 태동되었다.

이들 종교는 자연과 국가의 예속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신과 영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전체 하나의 삶에 이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예수, 석가, 공자, 노자의 가르침은 개인의 깊은 깨달음이 보편적 삶과 결합되게 했다.

고등종교는 개인의 깊은 영성과 보편적 깨달음을 추구했으나 그 시대 그 문명의 역사적 한계 속에서 자라났다. 국가권력의 영향으로 국가종교적 잔재가 덧붙여졌다. 불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에 이르는 사상인데, 호국불교가 됐고, 예수는 국가권력의 희생자인데, 기독교는 국가권력과 유착돼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가 없다. 유교와 이슬람교 역시 국가사회의 위계질서와 긴밀해 결합되었다. 결국, 서구 기독교 문명은 이성과 영성(말씀)의 통합에 이르지 못했다. 중세에는 신앙이 과학을 억압했고 근대 이후에는 이성이 신앙을 위축시켰다. 퀘이커는 과학적 이성과 신앙적 영성을 종합했는데 소수파로 밀려났다.

한국의 종교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다. 지금도 샤머니즘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이것으로는 주체의 깊이와 전체의 하나됨에 이르지 못한다. 깊은 종교가 없고 깊은 철학이 없기 때문에 깊은 자아가 없고 전체의 하나됨이 없어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고난의 역사에 빠지고 나라를 잃게 되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낙관적 감정의 종교를 극복하고 깊이 생각하고 파고드는 철학의 종교로 한국의 종교적 심성을 완성해야 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생각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이성과 영성의 통합을 추구했다. 유영모는 생각함으로써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 신과 소통한다고 하였다. 함석헌은 이성을 끝까지 추구한 다음에야 온전한 영성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성의 높은 봉에 오르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영을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이성만이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자아를 초월하여 절대계에서 오는 영에 접할 수 있는 디딜 곳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 같은 것은 그 봉우리의 중턱에 피는 꽃밭에 지나지 않는다.(함석헌)

유영모는 궁신지화를 말했다. 이성과 영감이 통합하는 것이다. 궁신하면 과학적 추리, 변화의 지식을 알게 된다. 추리하면 궁신하게 된다. 생각에 의해서 속을 줄곧 뚫어서 하늘과 통하고 만물과 통한다. 자기 속을 깊이 파면 공과 무, 빈탕한데에 이르고 전체와 하나로 된다. 귀일함으로써 통일하게 된다. 통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귀일하는 것이 철학이고 종교이다. 새 시대 새 문명에 이르려면 깊은 철학과 깊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유영모의 철학과 종교가 싹튼다.

‘씨알종교’는 국가문명의 마지막 국면에서 시작되었다. 동양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으로 생겨났다. 민주시대, 세계문명시대의 종교다. 국가의 주권이자 주체의 종교요, 국가문명을 넘어서 세계평화문명을 시작하는 때의 종교다.(정리=정성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