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도마복음의 유래 본문
도마복음의 유래
도마복음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65년(1945년)전에 이집트 북부에 있는 나그함마디라는 작은 마을의 동굴 속에서 발견되었다. 도마복음서를 발견한 사람은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모하멘 알리삼만이라는 농부라고 한다. 이 농부는 마을 가까이에 자연 퇴적물(堆積物)로 생긴 비옥한 흙을 찾아서 비료로 내다 팔기위하여 약대를 타고 강변의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가 동굴모래밭에 네 개의 손잡이가 달린 밀봉(密封)된 큰 항아리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농부는 모래위에 돌출된 큰 항아리를 보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혹시 항아리 속에 보물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곡괭이로 항아리를 깨뜨려 보았더니 그 속에서 기대한 보물은 나오지 않고 고대 이집트어 계열인 곱틱어로 기록된 12권의 고문서(古文書) 사본(寫本)들이 나온 것이다.
나그 함마디 동굴에서 발견된 고문서 사본(寫本)들은 도마복음 외에도 빌립복음, 진리의 복음, 야고보 묵시록, 요한 묵시록, 베드로 묵시록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등이 있다. 이 고문서들은 2세기에서 4세기 중반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12권의 고문서 사본들 속에는 52개의 교본들이 있으며 그 중 40개의 교본들은 지금까지 학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아주 귀중한 고문서(古文書)들이다. 이 고문서들은 신약과 초대 기독교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귀중한 보물이며 이 복음서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성경에 기록된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들을 재조명(再照明)해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도마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은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오늘날 기독교회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마복음은 모두 114절로 되어 있으나 이 안에는 공관복음(共觀福音)에 누락되어있는 예수님의 충격적인 말씀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도마복음서가 약 1900년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이 시대에 발견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마복음은 당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이 조금도 가감(加減)되지 않은 채 모두 보전(保全)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서를 살펴보면 공관복음(스테판역과 알렌드역)이 역자(譯者)들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가감(加減)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들이 도마복음에는 모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정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이 성경기록자들에 의해서 여러 부분이 가감(加減)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도마복음 14절로 예를 들어보면서 가감되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을 찾는 이들에게 기쁜소식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께서 그들(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희가 금식한다면 너희 자신에게 죄를 불러들이는 것이요, 만약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기도한대로) 정죄(심판)를 받을 것이요, 또 만약 너희가 자비를 베푼다면 너희 영혼(마음)에 해를 끼칠 것이다. ”
이런 말씀은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지 못하시고 도마만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처:도마복음해설서 : http://www.bk96.net/menu3/menu3_2_1.html?page=1&total_page=3&num=11&search=&key=&order=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이 책은 예수의 도마 복음서를 오쇼 라즈니쉬가 강의한 내용이다, 신약 성서 속에 들어 있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를 4 복음서라고 부르고, 성서에 들어 있지 않은 이 도마 복음서는 제5의 복음서라고도 불린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콥트어로 된 영지주의(靈知主義)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문서들 가운데 도마 복음서가 들어 있어 학계의 비상한 시선을 끌었다. 이 복음서는 1959년 학자들의 공동번역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모두 114편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성서에 있는 4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한 것들도 있다.
학자들은 도마 복음이 쓰인 시기를 AD 150년경에서 3세기 이내로 추정한다, 4복음서가 쓰인 시기를 살펴보면, 마르코 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으며 그 연대를 대략 AD 70년경으로 보고, 나머지 복음서들은 그보다 훨씬 후인 AD 80년에서 100년으로 보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도마 복음서에는 두 가지 전승 층이 있는데 하나는 영지주의 전승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 그리스도교 전승이다, 그러나 도마 복음 속에는 4 복음서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은 없다. 신약성서 속에는 ‘기록되지 않은 예수의 말씀’을 시사한 곳이 있다, 특히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께서는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많이 행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요컨대 4 복음서 외에도 기록 문자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고 도마 복음서가 그 중 하나로 발견된 셈이다, 3, 4세기 교부들, 특히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에우세비우스 등이 이 도마복음서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도마 복음서에는 예수의 말씀만 기록되어 있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이것은 영지주의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은 영적인 것, 도(道)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도마 복음서에는 예수를 ‘살아 있는 존재’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4 복음서가 예수를 ‘부활하신 주’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영지주의 학파가 사용하는 예수의 대명사격이다.
도마 복음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인지, 아니면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나오는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인지, 또는 도마라는 이름을 가진 제3의 인물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단지 도마 복음 본서의 서두에 있는 “도마가 예수로부터 받은 비밀의 말씀을 기록하였다.”라는 내용 때문에 도마 복음서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오쇼는 이 책을 통해서 도마 복음서야말로 신약성서에 있는 그 어떤 복음서보다도 예수의 말을 가장 실제에 가깝게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신학자들이 행한 예수와 복음서에 관한 연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오쇼처럼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예수와 복음서에 관련된 그 모든 신학 서적들에는 명확한 해답이 없다, 보수신학자들은 보수주의적인 견해에서,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사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지식과 세상의 관점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복음서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오쇼의 예수에 대한 해석은 명쾌하다, 어느 신학자도 오쇼의 성서 해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신학을 했고 사제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복음서가 주는 의문점들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 모든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니 해결이라기보다는 완전한 이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가 인도에 온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옳다, 예수가 한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유대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인도의 고대 경전, 베다나 우파니샤드, 혹은 베단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쇼는 예수의 이야기들을 깨달은 이의 눈으로 꿰뚫고 있다, 예수가 한 말의 핵심을 그 근원에서부터 관통하고 있다, 예수가 2천 년 전에 타올랐던 불이라면, 오쇼는 2천 년 후인 현재에 타오르는 불이다.
그 두 불길이 이 책에서 만나 함께 어울려 춤추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불꽃처럼 터져 나오는 진리의 불똥들이 우리에게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 불똥은 진리를 구하는 이들에게 옮겨져 다시 타오를 것이다.
추신; 이 글을 번역한 이는 박노근이라는 분입니다. 제 생각과는 다른 점이 있지만 역자의 소개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보도자료
신약성서 속에 들어 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4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외에, 제5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도마 복음」을 인도의 구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해석한 책 《도마 복음》 강의(원제:The Mustard Seed)》가 「도서출판 예문」에서 출간되었다.「도마 복음」은 이른바 정통 기독교 사상에 위배되는 요소를 담고 있어 2,000년 동안 성경 정본에 포함되지 못한 채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서만 비밀스럽게 전해져 내려오던 금서로서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하마디에서 발견되었다.
「도마 복음」은 발견 당시 상형 문자와 그리스 문자를 겸용한 콥트어로 씌어져 있었다.「도마 복음」의 저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인지, 아니면 요한 복음 20장 24절에 나오는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인지, 또는 도마라는 이름을 가진 제3의 인물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단지 「도마 복음」 본서의 서두에 있는 "도마가 예수로부터 받은 비밀의 말씀을 기록하였다"라는 내용 때문에 '도마 복음'으로 불리게 되었다.
프랑스의 학자 필립 드 슈아레는 이 「도마 복음」의 연구를 통해 불교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밝혀 다른 복음서에 대한 기존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독교 성립 과정 자체에 대한 의문점을 푸는 열쇠를 제공함으로써 유럽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신약성서의 성립에 관한 문헌적 고증이 빈번히 행해지고 카톨릭교회의 권력체제와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되는 수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다.
「도마 복음」의 존재는 예수의 사상이 불교사상, 그 중에서도 법화경의 불성내재론(佛性內在論)과 흡사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권위적이고 율법적인 유태교의 토양에서는 이런 사상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불교의 법화경 사상이 실크 로드를 거쳐 이스라엘까지 전해졌거나, 아니면 예수 자신이 인도, 티벳에서 배워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도마 복음 강의》는 이러한 성서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라즈니쉬 자신의 날카로운 안목과 사상으로 정련, 구체화하고 심화시켜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의 근원을 진단하고 치유의 이정표를 제시한 책이다. 라즈니쉬는 「도마 복음」 이야말로 신약성서에 있는 그 어떤 복음서보다도 예수의 말을 가장 실제에 가깝게 기록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예수가 기독교 역사의 중심을 이룬 33살 이전에 인도의 밀교 집단에서 제자로서 훈련을 받았을 것이며 이때 인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종래의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33살 이전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도마 복음 강의》는 하나의 비유이며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이며 '우화'요 '시(詩)'이므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예수의 말을 라즈니쉬 특유의 동어 반복과 모순어법, 인도의 고대 경전, 베다나 우파니샤드, 불교와 기독교 경전 등에서 끌어온 다양한 설화들 속에 용해시킴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에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도마 복음 강의》의 전면을 관류하는 것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절대신(유일신)을 상정하여 인간과 신(창조주)을 영원히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는 기존의 정통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의 제기다. 라즈니쉬는 세상의 종교를 세 가지--"신은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불교, 자이나교)과 "신은 자신의 외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로 나눌 수 있다면 기독교는 그 둘의 차원 높은 종합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외부에 있는 전 존재계의 축복,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예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안다면, 너희는 알려질 것이고 너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에서는 이 구절을 이단시한다.) 라즈니쉬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기독교에 대한 종래의 잘못된 시각은 예수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라즈니쉬는 「도마 복음」에 담겨 있는 예수의 말들의 행간을 더듬고 구절구절을 음미하면서 이러한 확신을 완성시킨다. 다음 인용구는 이것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왕국은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열매 맺게 한다면, 너희가 한 것이 너희를 구할 것이다" 라즈니쉬는 여기에서 왕국(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즉 스스로 신이 된다는 것은, 깨달음을 통해 에고(ego)를 버리고 '진정한 자신(self)'에 이르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그 깨달음의 과정에 깊숙이 천착한다.
그는 「도마 복음」에 들어 있는 예수의 말의 의미를, 신성(神性)으로의 '내버려둠(Let go)'과 '내맡김(surrender, 歸依)', 자기 내면으로의 침잠과 명상을 통한 새로운 탄생의 가르침으로 빚어낸다. 이때 신성이란 먼 곳 어디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힘이 아니라 예수나 붓다나 마하비라와 같은 깨달은 자, 혹은 스승이며 '진정한 자기'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할 다리이다. 그는 깨달은 자를 불〔火〕에 비유함으로써 존재의 완전한 연소를 통한 자기 회복을 구가하는 '변형의 과학'(라즈니쉬 자신의 표현이다)을 창조한다.이 때문에 라즈니쉬는 얄팍한 선행이나 금욕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며 사람들을 거짓된 위안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는 제도로서의 종교, 계율로서의 종교를 비판한다. 그는 행위의 변화와 같은 부분적인 수정이 아니라--"구두쇠가 기부자로 바뀌었다면 돈에 대한 욕망이 적극적인 형태에서 소극적인 형태로 변한 것일 뿐, 욕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존재 자체의 전면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종래의 기독교가 이단시했던 예수의 그 이상한 말--"너희가 금식을 행하면 너희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된다. 그리고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자선을 하면 너희는 너희 영혼을 사악하게 할 것이다"--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된다.존재의 변형, 정체성의 위기와 관련된 문제는 《도마 복음 강의》가 유난히도 생생하게 가차없이 현대인의 폐부를 찌르는 근거이기도 하다. 라즈니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깃든 인간 욕망의 허구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현대인의 혼돈과 고독과 불안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라즈니쉬는 끊임없이 가면을 쓰고 치장하여 에고의 성곽을 쌓아감으로써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딜레마(제3장:"너희는 무엇을 입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버려라"), 헤어날 수 없는 습관의 최면에 걸려 수백만번의 생에서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미망(불교의 業, 힌두교의 카르마 karma),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물질의 욕망에 매몰되어 신의 초대를 끝없이 거절하고 미래로 연기하는 인간이 상인적(商人的) 속성을 섬뜩하리만치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 모든 조건과 상황으로부터 놓여난 순수한 인간 존재, 존재 자체의 오롯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 물음의 추를 무겁게 드리운다.
1.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
이 책은 예수의 도마 복음서를 오쇼 라즈니쉬가 강의한 내용이다, 신약 성서 속에 들어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를 4복음서라고 부르고, 성서에 들어 있지 않은 이 도마 복음서는 제5의 복음서라고도 불린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하마디(Nag Hammadi)에서 콥트어로 된 영지주의 (靈知主義)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문서들 가운데 도마 복음서가 들어 있어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이 복음서는 1959년 학자들의 공동번역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모두 114편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성서에 있는 4복음서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한 것들도 있다.학자들은 도마 복음이 쓰여진 시기를 AD 150년경에서 3세기 이내로 추정 한다, 4복음서가 쓰여진 시기를 살펴보면, 마가 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졌으며 그 연대를 대략 AD 70년에서 100년으로 보고 있고, 나머지 복음서들 은 그보다 훨씬 후인 AD 100년에서 150년으로 보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도마 복음서에는 두 가지 전승 층이 있는데 하나는 영지주의 전승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 그리스도교 전승이다, 그러나 도마 복음속에는 4복음서 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은 없다. 신약성서 속에는 '기록되지 않은 예수의 말씀'을 시사한 곳이 있다,특히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께서는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많이 행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요컨대 4복음서 외에도 기록 문자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고 도마 복음서가 그 중 하나로 발견된 셈이다, 3, 4세기의 교부들, 특히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에우세비우스 등이 이 도마복음서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도마 복음서에는 예수의 말씀만 기록되어 있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이것은 영지주의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은 영적인 것, 도(道)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도마 복음서에는 예수를 '살아 있는 존재'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4복음서가 예수를 '부활하신 주'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영지주의 학파가 사용하는 예수의 대명사격이다.
도마 복음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인지, 아니면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나오는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인지, 또는 도마라는 이름을 가진 제3의 인물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단지 도마 복음 본서의 서두에 있는 "도마가 예수로부터 받은 비밀의 말씀을 기록하였다"라는 내용 때문에 도마 복음서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오쇼는 이 책을 통해서 도마 복음서야말로 신약성서에 있는 그 어떤 복음서보다도 예수의 말을 가장 실제에 가깝게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신학자들이 행한 예수와 복음서에 관한 연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오쇼처럼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예수와 복음서에 관련된 그 모든 신학 서적들에는 명확한 해답이 없다, 보수신학자들은 보수주의적인 견해에서,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사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지식과 세상적인 관점으로 예수를 이해 하고 복음서를 해석하기 때문이다.오쇼의 예수에 대한 해석은 명쾌하다, 어느 신학자도 오쇼의 성서 해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역시 신학을 했고 사제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복음서가 주는 의문점들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 모든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니 해결 이라기 보다는 완전한 이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가 인도에 온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옳다, 예수가 한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들은 유대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인도의 고대 경전, 베다 나 우파니샤드, 혹은 베단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쇼는 예수의 이야기들을 깨달은 이의 눈으로 꿰뚫고 있다, 예수가 한 말의 핵심을 그 근원에서부터 관통하고 있다, 예수가 2천 년 전에 타올랐 던 불이라면, 오쇼는 2천 년 후인 현재에 타오르고 있는 불이다.
그 두 불길이 이 책에서 만나 함께 어울려 춤추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속에서 불꽃처럼 터져나오는 진리의 불똥들이 우리에게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 불똥은 진리를 구하는 이들에게 옮겨져 다시 타오를 것이다. |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도마 전통의 성립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입니다.
These are the secret sayings which the living Jesus spoke and which Didymos Judas Thomas wrote down.
These are the hidden sayings that the living Jesus spoke and that Didymus Judas Thomas wrote down.
These are the hidden words that the living Jesus spoke. And Didymos Judas Thomas wrote them down.
도마복음은 여기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비밀의 말씀들”임을 선언하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여기에 나오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로 가장 깊은 차원의 진리를 찾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꿰뚫어 볼 수 있는 “비밀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제 23절의 표현처럼 “천 명 중에서 한 명, 만 명 중에서 두 명” 꼴이라고 할 정도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관심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말씀이다.
종교적 진술에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피exoteric 층이 있고, 정말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이해하 수 있는 내밀 혹은 밀의esoteric 층이 있는데, 여기 이 말씀은 바로 내밀적 기별, 감춰진 말씀, 비밀, 신비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 이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성립된 ‘도마 전통’에서 이해한 대로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디두모Didymos'는 그리스어, ’도마Thomas'는 아람어/시리아어, 둘 다 ‘쌍둥이’이라는 뜻이다. ‘쌍둥이’가 고유명사가 아니기 때문에, ‘디두모 유다 도마’를 문자 그대로 하면 ‘쌍둥이 유다’라는 말이 된다. 물론 여기의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가롯 유다와 다른 유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 ‘도마’를 그대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적은 도마는 꼭 문자적으로 육체적인 쌍둥이라기 보다는 예수님과 같이 모두 한 분 하느님에게, 혹은 한 태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예수님과 쌍둥이라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마복음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가 깨치기만 하면 모두가 형제자매 내지 쌍둥이라 불릴 수 있는 경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 본다. 선불교에서도 함께 깨달음을 얻은 도반을 쌍둥이라고 한다. 도마는 누구인가?
전통에 의하면 도마는 기원후 2세기 말 인도로 간 선교사다(Klijn, 1962: 27-29). 기원후 3세기 동부 시리아에서 쓰인『도마행전』은 도마가 군다보로스 Gundaphoros왕의 황실에서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한다. 도마를 둘러싼 전통은 도마가 시리아의 수도 에뎃사에서 출발하여 인도로 여행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도마행전』에서 도마의 이름은“도마라고 불리는 유다(Ioduas ho kai thomas)”와“디뒤무스라고도 불리는 유다 도마”로 언급된다. 도마의 이름이 적힌GT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살아계신 예수가 말하고 디뒤무스 유다 도마가 적은 비밀 어록이다."
그러면, 누가 디뒤무스 유다 도마인가? 도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으로「마태복음」10:3; 「마가복음」3:18; 「누가복음」6:15; 「사도행전」1:13에서 언급된다. 여기서 언급된 도마는『도마복음서』의 도마와는 다르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동일인물로 묘사하다. 「요한복음」11:16과 14:5, 20:24-28, 그리고 21:2에서 언급되는 도마는“디뒤무스라고도 불리는”이라는 구절에 첨가되었다. 「요한복음」14:22에 한 시리아 번역본 성서인 페쉬타는“이스 카리옷이 아닌 유다”라는 구절을“도마”로 대치하였다. 이 구절은 분명 시리아 교회 전통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에뎃사의 선교활동상을 기록한 아브가르 전통에도“도마라고도 불리는 유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4)
“도마”는 고유명사 이름이 아니라, “쌍둥이”를 의미하는 아람어 단어의 음역이며, 그리스어로는“디뒤무스”이다. 시리아어 판본이나『도마복음』에 공통적인 이름은 바로“유다”이다.
신약성서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도들이 여럿이 있다: 1)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 2) 「누가복음」6:16 =「사도행전」1:13 에서 도마와 함께“야곱의 아들, 유다” ; 3) 「마가복음」6:3= 「마태복음」13:55 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유다”.
신약성서 서신서중「유다서」는 저자를 예수의 형제인“야곱의 동생, 유다”라고 전한다. 유다는 동방교회전통에서 독립적으로“유다, 쌍둥이, 예수의 형제”라고 전한다. 동방 시리아 그리스도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도마를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고 주장한다: 1) 「요한복음」14:22에 한 고 시리아어 번역본은 유다를‘가롯 유다’라고 칭하지 않고‘유다 도마’라고5) 주장한다. 고대 시리아 번역본은「누가복음] 6:16과「사도행전」1:13의‘야고보의 아들 유다’를‘도마’로 대치하였다; 2) ‘유다 도마’라는 이름은 시리아에서 유래한 그리스도교 문헌 에서, 특히 예수와 동시 사람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전승이 내려오는 시리아의 수도 에뎃사의 왕이었던 아브가르(13~50년) 전통과6) 에프렘(306373년)의7) 저술에 등장한다; 3) 『도마행전』은 원래 시리아어로 저술된 동방 시리아 전통을 기록한 책으로, 유다를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기록한다.8)
‘도마’라는 말은‘쌍둥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람어 단어를 음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그리스도교 이전 그리스어,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 문헌에서 고유명사도 사용된 적은 없다.‘도마’라는 이름은 아마도 유다의 별명으로 시리아 그리스도교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유다,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는 명칭은 아람어/시리아어를 사용하는 동방 그리스도교에서 발생하여, 점차 고유명사로 여기게 되었다.9)
GT에서 유다는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소개하고 있다. GT는 유다는 교회의 지도자(GT 12)이며 비밀스런 지혜를 전수하는 자(GT 13)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 유다, 도마와는 형제가 아닌 것 같다. 도마는 예수와 이촌간 이란 점을 강조한 것은, 자신이 기록한 GT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원용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전통은 특히 동방 시리아 그리스도교의 전통이다. 실제로 전혀 다른 두 권의 저자가‘유다 도마’로 되어있다. GT와『도마(경쟁자)의 책』모두 예수가 말한 내용을 유다 도마가 직접 필사했다고 전한다. 이 두 권의 책들이 앞에서 언급한 도마의 전도 여행 기록인『도마행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들 3권 모두 문서로 서로 다른 문학적 장르에 속하며 GT는 고대 세계의 잠언들을 추려 모은(Robinson 1971) 아마도‘어록복음서’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10)
‘도마’이름을 가진 낙함마디 문서들이 서로 다른 장르에 속하지만, 학자들은 이들 간의 연결점을 찾으려 시도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서들이‘유다 도마’전통이 보존되고 기억되는 동부 시리아 지역에서 기본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는데 동의한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사도 도마의 권위에 의존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로부터 이 문헌들이 작성되었다고 생각한다(Layton 1987:359-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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