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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스크랩] 뉴한반도 광개토 비전 -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

柏道 2015. 1. 20. 15:11

 

 

 


지정학이란 말 그대로 한 나라의 지리적인 위치가 그 나라의 정치와 외교안보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다름 아닌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역사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패권투쟁의 역사였고, 21세기의 세계 역사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한반도는 밑으로는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이란 해양 세력의 서부 바다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위로는 중국, 몽고의 고비사막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평원이 펼쳐지는 대륙국가들의 육지 끝자락에 위치한 동북아 중심 반도이다. 중국의 산동 반도 보다는 태평양에 더욱 근접한 위치에 있으며 일본과 대만보다는 대륙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 접경해 있다. 한반도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두 개의 국가는 바로 중국과 러시아뿐이다.


한반도의 지리적 좌표는 북태평양의 입장에서 본다면 북태평양 서안 정도에 위치해 있는 나라이며, 중국이란 대륙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 남쪽에 붙어 있는 나라이다. 문화적으로 본다면 한반도는 대륙의 동양 문화와 대양의 서양 문화를 모두 쉽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소위 동서 문화를 모두 융합시켜 한반도라는 토지위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그런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 그 어느 곳도 가질 수 없는 한반도만의 독특한 문화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런 대륙과 대양의 관문에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을 잘못 활용하게 되면 이는 대륙과 대양세력 모두로부터 협공을 받아 쉽게 어느 일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는 취약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한반도를 폐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위로는 대륙에 막혀 있고, 아래로는 대양에 막혀있어 대륙과 대양의 진출이 동시에 불가능한 고립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개방적이고 팽창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경우에는 대륙과 대양으로 모두 뻗어 나갈 수 있는 세력팽창의 최적지임을 느끼게 된다. 태평양으로 뻗어 나갈 수 있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바이킹과 유목민의 기질을 모두 갖춘 민족으로 확대해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은 대륙으로의 진출을 가끔 꽤해 보기도 했지만 대양으로의 진출은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우리가 대륙 보다는 대양을 더 잘 이용했어야 제국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갖게 만든다. 유럽의 지도를 보게 되면 그리스 반도에 그리스가 있고 이 희랍 반도에서 헬레니즘 문화가 융성했음을 보게 된다. 오늘날 서구 문명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문명은 바로 그리스 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 부츠처럼 생긴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반도가 있다. 바로 이 반도에서 로마 제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탄생되었다. 아프리카와 유럽전체를 정복한 대제국이 바로 이태리 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못지않은 또 다른 제국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스페인 제국일 텐데 이 제국은 다름 아닌 이베리아 반도에서 탄생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대서양을 제패하고 지구의 삼분의 일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남미의 모든 국가들이 스페니시를 사용하게 된 것도 바로 한때 잘 나갔던 스페인제국의 영향이다. 지금 이 스페인 제국의 영향은 21세기 세계패권국가인 미국에게까지 상당한 문화적 물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근육노동자들 가운데 멕시칸 등을 포함하여 스페니시 계통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미국에서 스페니시는 제2의 외국어로 등장하게 되었다.

영어와 달러로 세계 경제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센터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는 벌썬 스페니시를 배우지 않으면 정치생명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스페니시를 배우는 의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21세기 제국인 미국의 초등학생들은 중국어와 함께 스페니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의 제국 스페인이 현재의 제국인 미국에 아직도 그 영향력을 강하게 미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어쩌면 미국이란 현재의 제국 속에서 스페인이라는 과거의 제국이 다시 부활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의 반도국 이외에도 유틀란트반도에서는 세계적인 농업국가 덴마크가 그리고 해적이 가장 많이 들끓었던 스칸디나반도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건설해 냈다. 그러나 한반도에 위치해 있는 우리 민족만이 세계제국을 만들지 못했다. 그 원인은 바로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대양을 활용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양세력과 대륙세력에 둘러싸여 고립국가의 수준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속에서 대국의 기질을 발휘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구려가 대국의 길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주변국들의 해양 통로를 장악하여 그들의 통상무역의 숨통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고구려가 대국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목문화의 전형적인 이동성 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초기부터 어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양문화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5세기 들어 서해안과 동해안의 중부 이북을 흡수하면서 해양활동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 이러한 고구려의 해양활동은 어업, 조선술, 항해술 같은 해양문하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업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고구려는 동북아질서 속에서 자기의 고유문화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이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수용했고 새로운 한반도의 융합문화로 발전시켜 나갔다.

고구려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해양, 반도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동몽골과 북방방면의 초원유목문화, 화북에서 올라온 중국의 한(漢)문화, 해양을 통해서 들어온 해양남방문화, 동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수렵삼림문화등이 하나로 융합된 집결지였다. 고구려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의 문화영역이 주변국가들과는 달리 유우라시아대륙과 중국에서 내려오는 대륙문화와 일본과 남방에서 뻗어 올라가는 해양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두 문화를 고구려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고구려는 중국의 대륙문화를 배척하지도 않았고 일본의 해양문화를 봉쇄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이 둘의 문화를 하나로 흡입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맞게 혼용 혹은 융합시켜 창조적 자기문화를 만들어 냈다. 즉, 고구려가 대국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 독자적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문화의 개체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융합성에 있었으며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견인해 내는 포용성에서 고구려는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최고의 국가로 융성할 수 있었던 고구려의 역사를 볼 때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 나가야 할 국가의 목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설정이 보다 분명해 진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대륙에만 매달려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해양세력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고구려로부터 얻게 된다.

우리나라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동시에 견인해 낼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성을 21세기 우리 국가가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는 미래의 진보적 역사관을 얻기가 매우 힘들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오늘날 남북교류협력을 원활하게 진행시켜 나가기 위해서 남북한 간 단독으로 만나고 또 만나도 우리의 주변국가들이 이를 방해하고 제동을 걸게 되면 우리는 서로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평화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기 전에 정전체제의 해체와 종전선언을 하고 싶어도 이 모든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란 나라와 협력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남한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은 정전협정의 직접 당사국이란 점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분단은 남북한 간의 문제이지만 이 분단문제를 해체하는데 필요한 것은 중국과 미국의 협력과 도움이란 사실이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복잡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오늘의 남북문제만 보더라도 아니 6자회담장을 쳐다보면 왜 남북한이 마주 앉으면 될 문제를 이렇게 주변 4대 강대국들이 모두 빙 둘러 앉아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 비추어 다시금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왜 국제성을 띄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주변 4대강대국들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한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약소국의 입장을 탈출하지 못한 원인은 다름 아닌 해양국가로의 진입에 실패했고 바다를 우리의 세력 확보의 교두보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바다이용권을 중국으로부터 일찌감치 제약 당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가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지 못하도록 미국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것처럼 과거에는 해양거함을 만들지 못하도록 중국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아테네는 에게해를 무대로, 로마는 지중해를 무대로 그리고 스페인은 대서양을 무대로 제국을 이뤘는데 왜 우리는 앞에 펼쳐져 있는 태평양을 무대로 제국을 꿈꾸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대한해협조차도 공격적인 국력팽창의 보루로 활용하지 못하고 항상 해상 방어진지만 구축하고 말았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바이킹 족과 해적 떼들도 배를 타고 나가서 북극에서 남극으로 그리고 그린란드로 가서 자원을 확보하고 부를 만들어 냈었는데, 왜 우리 민족은 우리 앞에 펼쳐진 저 망망대해인 태평양을 가로질러 신대륙을 정복하지 못했을까. 왜 태평양 앞바다에 한국인은 없었을까. 전 세계 왕조 중에 가장 오래된 왕조로 기록되는 것은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조선왕조이다. 그러나 우리 왕들은 500년 동안이나 왜 태평양의 진출을 단 한 번도 꿈꿔 보지 못했을까. 왜 저 드넓은 태평양을 한번 헤엄쳐 건너볼 생각도 못해 봤을까. 그저 50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궁전의 신하들에 둘러 싸여 일기나 쓰고 정쟁에 여념이 없었을까.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가 해양국가가 아니라 내륙국가인 것으로 착각하고 지내 온 것이다. 사실 일본은 대양을 향해서는 열려 있지만 대륙을 향해서는 폐쇄된 땅이다.

반면 몽고는 대륙을 향해서는 열려 있지만 대양을 향해서는 닫혀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대양을 향해서는 섬과 같이 열려 있고 대륙을 향해서는 내륙국처럼 열려 있다. 우리가 팽창하고 확장하려는 생각만 가졌더라면 대륙과 대양을 모두 우리의 영토로 만들 수 있었고, 거대한 제국의 형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과거에 조선의 선비들은 공부를 하려면 모두 산으로 들어갔다. 바닷가를 찾지 않았고, 바다에 가서는 고작 해수욕이나 즐기거나 아니면 연안에 가서 멸치 아니면 꽁치나 잡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 지리학자는 말한다. 특히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떨쳐 버리지 못한 조선은 30자 이상이 되는 배를 만들지 않겠다고 중국 황제에게 약속을 해야만 했고, 조선이 중국과 맺은 조공관계는 근본적으로 조선이 큰 배를 건조하여 대양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조선은 중국이외의 나라는 가지 않고 오로지 중국만을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지금 미국에게 300마일 이상 날아가는 미사일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꼭 같은 것이다.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던 시절의 우리 조상의 나라와 지금의 우리나라가 무엇이 다른가. 이 점과 관련하여 앙드레 슈미드란 캐나다의 역사학자는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란 책을 통해 제국의 팽창시기인 “1895년에서 1919년까지 한국은 사라져가는 제국과 이제 막 떠오르는 제국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개항 이전까지 조선에 있어 말 그대로 세계중심이었던 중화(中華)의 중국은 ‘과거의 제국’으로 스러져가고 있었고, ‘왜구(倭寇)’의 오명을 좀처럼 씻지 못했던 일본은 명실상부한 근대국가로서 ‘미래의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은 국권이 발견되자마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조선’은 무너져가는 왕조의 낡은 표상이었으며, ‘코리아’ 역시 외국인이 편의에 따라 발음한 특정왕조(고려)의 명칭일 뿐 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륙국가 중국의 힘이 쇠잔해 가자 해양국가 일본이 조선에 상륙하여 새로운 한반도 질서를 재편해 나가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럼 우리의 이런 역사가 지금은 반복될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대륙국가 중국과 해양국가 일본 사이에서 해륙국가인 대한민국이 지금은 과거와 같이 속국이나 식민국가로 전락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 부분이 보장되려면 우리나라가 중일 이 두 나라보다 국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가능하거나 군사력이 월등하게 앞서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는 남북한을 모두 합쳐봐야 22만 KM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인천 앞바다에서 장닭이 울면 들린다는 중국의 산동성 하나만으로도 15만KM2이며, 일본열도는 육지영토만 따져도 약 37만KM2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현재 세계 4위이고, 해군력은 세계 2위이며, 해양영토는 세계 5위이다. 더구나 일본은 타타르해협의 일부에서부터 대만에 이르기까지 해양으로 동아지중해, 한반도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으며, 우리의 석유운반선의 해양경로선을 미국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통로를 언제든지 차단시킬 수 있다. 이지스 함의 숫자도 4대일 정도이다. 중국은 21세기 미국과 패권을 견줄 유일한 나라로 분류된다. 해군비를 증액하고 있고 핵을 갖고 있다.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등 해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 말했고, 국제무대에서 이제 '중국의 부상'이란 말은 더 이상 화제의 언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과거 25년간에 걸친 개혁과 개방으로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 1979년 개혁개방정책의 추진으로 시작된 중국의 경제대약진은 연평균 9.5%의 고도성장을 이룸으로써 세계의 공장, 세계 최대의 자본 투자 시장으로 성장했고,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경제의 한 축을 맡게 되었다.

현재 중국의 경제는 세계 제6위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으며, 2008년 하계 북경 올림픽 유치와 2010년 상해 박람회 유치 그리고 유인 우주선의 성공적 발사와 귀환 등을 통해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전 세계에 알렸다. 중국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전 지구적 파트너로 부상했다. 세계 속의 경제 대약진을 통해 새로운 정치외교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러한 시점에 대한민국이 지상력과 해양력을 배양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강대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조선업에서 세계 제1위이다. 철강 산업도 세계 수위에 꼽힌다.

반도체 산업 역시 세계 2위이다.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새롭게 창의적인 기술로의 연계적 발전을 시도한다면 한국은 해양강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측면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대륙세력에게는 해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양진입의 관문이 될 수 있고, 해양세력들에게는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일종의 전초기지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과의 정상관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대륙으로의 진출이 차단될 것이며, 미국, 일본과의 외교안보관계가 돈독하지 못하면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대륙과 해양 모두로부터 고립된 나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대신, 이들 해양국가와 대륙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경색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의 지정학은 이들 패권세력들의 격투장이 되거나 아니면 이들이 우리나라를 협공해 들어오는 공략지역으로 변모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는 사실상 우리 민족 자신보다는 오히려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해양세력들과 대륙세력들에게 더 절박한 가치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다. 미-소를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 때 자유 민주 진영의 빅브라더였던 미국이 구소련 공산주의의 남진정책을 막기 위해 왜 한반도 허리에 38선을 긋고 남한지역에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봉쇄하는데 남한을 방어기지로 활용해 왔는가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예의 적용은 역으로 구소련이 왜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뒷받침했는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렇듯 한반도는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가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민족의 운명까지도 달라졌었던 강대국의 절대적 영향권 하에 있었다. 만일 어떤 강대국가가 출현하여 한반도를 먼저 차지하고 한반도에서 자국의 힘을 절대적으로 발휘한 경우에는 한반도는 그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해양국가 일본이 한반도의 패권을 차지하여 한반도로부터 중국이나 러시아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한반도를 거점으로 삼아 또 다른 대륙을 공격할 꿈을 꾸게 된다면 그 순간 한반도는 공격기지로 변하게 되고, 일본이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면 한반도는 그 순간부터 다시 방어기지로 변했다. 그리고 한반도를 어느 일국이 지배하지 못하고 두 개의 강대국이 분할점령하게 되면 한반도는 순식간에 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세력균형의 군사적 중립지대로 변한다. 이런 경우는 2차 세계 대전이후 북한과 남한에 모두 러시아군과 미군이 진출하여 어느 일방이 한반도를 완전 장악하지 못하고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해 온 결과 지금까지 남북한이 분단현실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 처지’가 이를 잘 반영해 준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했을 때,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한반도가 갖고 있는 생래적인 지정학적 위치였음을 반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중국에 접경해 있었던 나라라는 사실 한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중국이 우리나라의 과거 운명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과거 한국은 중국과 근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역사동안 강력한 중국의 간섭과 통제 속에서 미완의 자치 국가를 유지해 왔다. 이 말은 과거 한국이 중국의 조공국이자 속국이긴 했으나 주권을 인정받았고 국가경영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자율권을 보장 받았기 때문에 자치적 주권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중국의 힘이 한국의 자치권을 보호해 줄 수 없을 만큼 약해지거나 또 다른 한국 주변의 강력한 이웃국가였던 일본이 한반도에서 패권을 확보한 경우에는 중국은 한국의 주권을 보호하지 못했다.

기원전 처음 1세기동안 한국의 국제적인 위치는 대체로 중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에 의해 결정되었거나, 혹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힘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었다. 물론 7세기 신라의 삼국통일도 중국의 개입 덕분이었다. 중국 당나라의 개입이 없었다면 통일신라시대의 삼국통일은 불가능했다. 한국은 13세기부터 중국의 파워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19세기까지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드는 중국의 하부 문화국가로 존재해 왔었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 문화적 리더십을 받아들였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거나 일종의 조공국가였었다. 그러나 16세기말부터 일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을 침략한 이후부터는 한반도를 놓고 중국과 새로운 패권을 다투게 되었고, 1894-1895년까지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중국을 패배시킨 뒤로는 일본은 어떠한 형태의 중국의 한반도 통치도 거부했다. 그 이후 일본 역시 한국지배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러시아로부터 도전받게 되었고, 1896년부터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한반도를 압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와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을 향한 경쟁도 1904-1905년 약 1년 동안의 러ㆍ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침으로써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일본이 다시 한반도에서 절대 권력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본도 한반도의 지배를 영구화 하지는 못했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일본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했으며, 그 이후부터는 미국과 구소련이 일본을 대체하여 한반도를 분할 통치했으며, 그 이후 미국은 일본을 대신하여 러시아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구소련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향권으로 복속시키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이 자리를 미국과 구소련에 내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중국은 이 전쟁에 개입했고, 한국전쟁의 개입을 계기로 다시 한반도의 지배를 위한 자신들의 전통적인 이해를 회복하려 노력했다. 이리하여 2천년 이상 한국의 운명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강력한 일국패권의 출현에 따라 한 강대국가의 지배하에 놓였거나 아니면 한반도 지배를 위한 패권국들 간의 경쟁이란 세력균형 사이에서 존재해 왔었던 것이다. 한반도가 스스로 자신을 지켜 낼 힘을 갖지 못했을 경우 그리고 대륙과 해양으로의 팽창을 시도하지 못하고 한반도라는 작은 우물에 갇혀 있게 될 경우에는 우리민족은 오히려 대륙과 해양의 강대국들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아니면 한반도는 이들 세력들의 패권다툼의 각축장으로 전락되고 만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남한과 북한문화가 만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문화가 만나며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만나고 유불선3교가 기독교 문화와 만나며 중화주의와 서구의 민주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라 할 있다. 이는 우리의 대외 국가전략에 따라 이질적인 문화들이 한반도에서 만나면서 서로 공존을 모색하고 공생할 수 있지만, 반면 잘못된 정책과 전략에 기반을 둔 지도력에 따라서는 동서간의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적 상황 또한 동시에 안고 있다.

21세기 한국을 이끌어 나갈 지도력이 왜 해양과 대륙을 동시에 포용하고 융합시킬 수 있는 해륙국가로서의 세계적 안목의 소유자여야 하고 그것이 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리더십을 새로운 발전모델로 삼아야만 된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광개토대왕만이 국제질서를 염두에 둔 동서남북 공략작전과 해양군사거점을 확보했고 수륙양면작전의 활용등 군사력을 활용하여 외교력을 강화시킨 것은 물론 경제활동을 활성화 시키는데 동시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장성민

 

 

출처 : 민족회의
글쓴이 : 다움잘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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