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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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분별
상당수의 사람들이 마귀와 귀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같은 존재로 보는 것이지요. 물론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피조물이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다릅니다. 마귀 즉 사단은 천사장이었던 계명성이라고 불리는 스랍의 한 존재가
타락함으로써 사단이 되었고 그 존재에 동조하였던 수많은 천사들이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나 이 세상으로 내려온 것이지요.
저의 글에서 천상의 존재들에 대해 구분해서 설명한 것이 있는데 그들 3분의 1이 타락하였지요.
마귀와 귀신들은 지금 천상에 남아있는 거룩한 존재들과 동일하게 창조되었고 따라서 동일한 능력과 기능들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사와 동일하지만 그 의도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단과 그
부하들에 대해서 크게 마귀와 귀신으로 구분합니다. 이미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특히 귀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악한 영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별력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마귀가 하는 일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능가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으로는 그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지식이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귀에게 속을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박옥수 집단을 보더라도 많은 목회자들이 미혹되어 그 집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성경지식이 부족해서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기는 알아도 사람의 지혜로만 알았기 때문이지요. 이렇듯이 성령의 감동이 없는 지식은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분별하는 능력은 오로지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이 활동하는 목적은 우리 몸을 점령하여
그들의 거처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쫓겨난 하급 천사들은 우리 몸을 거처로 삼고자 합니다. 이들이 귀신들인데 이들을
구분하는 능력은 오로지 영적 감동으로 가능합니다. 즉 귀신의 존재는 영적 느낌으로만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림과 흡사한 행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신병과 우울증, 자폐증, 환청과 환상 등 많은 병리적 증상 역시 귀신들림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구분할 수 없으며, 성경지식으로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느낌입니다, 귀신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귀신 특유의 증상이 있습니다. 이 증상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신병증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증적 방법으로는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성숙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영분별의 능력이
임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이 능력을 받게 되면 환상과 환청을 경험하게 됩니다. 환상이란 검은 그림자가 자주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영분별의 능력이 임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거나 마귀의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합니다.
환청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분명히 들렸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유리창이나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가 보면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소름이 갑자기 끼치면서 근육이 굳어지고 머리카락이 솟구칩니다. 두려운 대상이 없는데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리고 순간이지만 검은 존재가 스쳐지나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런 느낌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두려워하게
되고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영적 느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냄새도 느낍니다. 시궁창 냄새, 타는 냄새,
비린 냄새, 역겨운 냄새 등을 느껴 구역질을 하게 됩니다. 전율도 느끼고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도 느낍니다. 소름과 청령감 등도
느낍니다. 이런 영적 증상들을 경험하면서 담대함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느낌의 강도를 경험하면서 차츰 영적 존재의 힘을
가늠하는 생각들이 들어옵니다.
실제로 귀신을 쫓게 되는 자리에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적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귀신의 존재를
구분하게 되고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집중적으로 귀신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 능력을 받은 날부터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 영적 경험들이 간헐적으로 또는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현상을
통해서 자신에게 영분별의 능력이 임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어진 능력을 개발하고 키워나가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하십니다. 영적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멘토를 만나게 하거나 실제로
축사하는 현장을 만나게 하십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는 일은 매우 힘든
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능숙한 사역자를 통해서 배우도록 하십니다. 귀신을 쫓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능력 대결은 힘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깁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이지만 주님이
주신 능력의 범위 안에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강력한 귀신을 만나면 심각한 영적 손상을 입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호하심으로 인해서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영적 능력에는 굉장한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자주 나타나는 영적 현상이 모두 영분별의 능력과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귀신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분명합니다. 귀신의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은 먼저 마음의 상처나 죄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또는
단조로운 형태의 귀신의 공격을 집요하게 받게 됩니다. 이 부분은 귀신들림에서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경험하는 영적 현상은 다양하고 그 폭이 넓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리고 그 현상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개발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비록 경험이 없어서 두렵지만 그러나 마음에는 평안이 있고 주님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더 강해진다는 점
입니다. 귀신들림으로써 경험하는 것은 두렵고 공포감이 휩싸여 어쩔 줄 모르게 되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육체적으로 괴로워집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건강이 날로 나빠집니다. 환청과 환상에 시달릴 정도로 집요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증상은 귀신들림의
전조입니다.
그러나 영분별의 능력으로서 경험하는 영적 증상들은 우리에게 위협적이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섭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곧 사라집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느낌을 파악하는 수준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고
난 후에 실제로 귀신이 있는 곳에 가면 그와 동일한 느낌들을 느끼게 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느끼지 못하지만 능력을 받은 사람은 느낍니다. 귀신의 공격을 받고 있거나 귀신이 들린 사람을
만나면 즉시 느껴지기 때문에 귀신이 그 존재를 숨길 수 없는 것이지요. 부적을 부쳐 놓은 곳에 가면 역시 느낌을 강하게 느끼고
지식의 말씀도 임해서 감추어놓은 부적을 바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일반인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보거나 느끼기 시작합니다. 영적 지식이나 말씀의 깊이가 많지
않은 사람에게 임하는 경우 혼란을 느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세속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속의 영향이 강한 편이어서 귀신이라고 하면 먼저 무속인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이 주장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귀신은 속임수에 매우 능합니다. 그리고 죽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류 역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편재하지 못하므로 한 귀신이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지식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한 가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아주 세밀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며
압박합니다.
귀신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영분별의 능력인데 이 능력은 경험을 바탕으로 강해지고 구체적이 됩니다. 교육이나 이론적
지식보다는 본인에게 주어진 능력의 한계 안에서 경험할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귀신은 지역을 장악하는 귀신과 사람의 몸을
점령하는 귀신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귀신에 대한 지식도 다릅니다.
지역의 악령도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그 영역 안에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하는 강한
악령으로부터 한 가정 정도를 점령하는 약한 악령이 있습니다. 악령은 자신들의 영역이 침해를 받을 염려가 없을 때는 절대로
대항하지 않지만 축사자가 지역의 악령을 제거할 목적으로 들어오면 심각하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지역의 악령에 대한 경험은 몸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장소에
들어가면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그 소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는 밀려나갑니다. 마치 자력처럼 당기거나 밀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역의 영에 강하게 눌려있는 사람이 자신 곁에 다가오면 그런 자력과 같은 힘을 느끼게 됩니다. 밀치고 당기는 강한 힘을 느끼는데
이런 현상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영 분별의 능력을 받으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능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느껴보려고 해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느낀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악령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느낌을 받는다면 그 악령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악령은 자신이 느끼지 못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역의 악령은 그 대상이 지역이므로 피대상이 전혀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지 않으면 그 지역에 어떤 악령이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편하게 살아가지만 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처음에는 피곤합니다. 여기저기서 영적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지요. 영적 분별력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피곤할 정도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의 영적 상태에 대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금 어느 정도 악령으로부터 침해를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마치 장사꾼이 자신이 다루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옷장사는 옷만 보이고 신발장사는 신발만 보입니다. 이처럼 영 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영만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초기에 집중되지만 어느 정도 성숙하면 자신이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영적 느낌을 받는다면 이것은 자신이 초기 단계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영은 지역을 근거로 활동하며 자신들이 점거하고 있는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역의
악령에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적 메핑이 필요합니다. 지역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하고 그곳에서 드려진 무속행위나 제사의식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악령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몸으로 느껴지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지식의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영적 메핑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지식의 말씀에 의지해서 악령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정보가 있어야 악령을 묶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말씀을 받는 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지역의 악령을 파악하는 방법은 영적 메핑과 영분별 능력이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철저한 조사뿐만 아니라 지식의 말씀과 영적 분별력을 이용하여 악령이 행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고 그 모든 악령의
역사는 불법임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축출합니다.
사람의 몸을 장악하고 있는 귀신은 귀신들린 사람의 행위를 보고 판단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을 구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적 느낌을 통해서 귀신의 존재를 파악하여야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악령의 강한 힘에
눌려있지요. 그러므로 그 힘이 분별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영적 싸움은 능력의 싸움이기 때문에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굴복하게 되어있습니다. 악령보다 약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해도 악령은 끄떡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역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능력을 받은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 그 사람에게 들어있는
악령이나 마귀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경우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악령이 자신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미리
악령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악한 영에 대해서 지식의 말씀이 임하면 그 악령이 들어오게 된 통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수고해서 알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의 말씀을 주시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자세한 부분을 가족들이나 관련된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악령을 다루기 위해서 영분별의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사하는 능력 행함의 은사를 주십니다. 마귀와 귀신을
쫓는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는 것이지만 그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게
됩니다. 즉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쫓는다고 해서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귀와 귀신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영 분별의 능력입니다. 개인에 따라서 다양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반적인 사항만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능력을 온전하게 개발하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지도자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론적이고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이며,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수십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생생하고
그것이 곧 능력이 됩니다. 지식으로는 귀신을 알 수도 없고 내어쫓을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능력을 가지고
현실에서 하나씩 경험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현상들이 올바른지를 가름하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 분별의 능력은 하루 아침에 개발되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그만큼 마귀와 귀신은 다양하고 능력이 많기
때문입니다. 항상 모습을 바꾸는 세균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면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귀와 귀신을 점령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마귀를 분별하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이 40일간 금식하시고 난 다음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마귀를 분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귀는 귀신과 다른 높은 차원의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단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알아야 하고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분별력을 얻는 것입니다. 마귀가 베드로를 이용하여 주님에게 접근했을 때
분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분명한
신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식이 없이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귀신은 느낌을 통해서 그 존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마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단은 높은 차원의 영적
존재이므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창조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쉽사리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분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낮은 차원의 마귀는 그 행동을 눈여겨보면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고도의 마귀는 분별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를 만류했을 때 우리가 그 곁에 있었다면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인간적이고 스승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리에서 제자가 취할 태도는 그것 말고 어떤 다른 태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은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마귀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많은 말을 하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를 시험들게 하는 마귀의 말이 있지요.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도
마귀의 말이 끼어듭니다. 심각한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여 마귀에 대한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마귀로 하여금 자신을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방임하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아주 중대한 일을 만나는 상황에서 마귀는 평소 쉽게
자신을 다루었기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올무에 걸리게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로써 극심한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편안하다고 마음을 놓는 것은 장차 닥칠 큰 불행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면 상당한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이 든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교회는 심각한 문제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를 인간적 결함으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우리 스스로도 자신이 마귀의 올무에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의 문제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올무에서 벗어날 적당한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이런 마귀를 분별하는 영 분별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마귀를 분별하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듣기입니다. 이 부분은 절대로 필요한
필수조건입니다. 성령과의 깊은 교제는 마귀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조건이 됩니다. 우리의 주인은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주인을 알지
못하면 가짜 주인을 주인처럼 여기고 살아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마귀를 알아차리는 요소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묵상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이해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묵상과 관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능력이
있어야 마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묵상을 통한 하나님의 영과 관련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영이 자신의 영과 접촉할 때
갖게 되는 느낌은 마귀의 영이 접촉할 때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깊은 묵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이고 원론적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차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마귀와 연관된 일들의 속성이 추상적인 것들이 많다는 점이 이 분별을 어렵게 합니다. 추상적인 개념은 주관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 기준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 이 탁월한 영적 존재를 이길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성령님의 보호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귀는 너무도 교활하고 속임수가 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를 알고자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주인인 성령님을 더 잘 이해하고 친숙하려는
노력이 곧 마귀의 올무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마귀의 분별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성령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항상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근본적으로 악합니다. 악하기 때문에 비록 처음에는 선한 것으로 위장을 하였다고 해도 얼마 가지 않아 그 악함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마귀는 사랑이 없습니다. 철저한 위계와 압박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들에게서 사랑의 모습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은 역시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고린도전서 13장에 언급되어있습니다. 이 추상적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기술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술을 얼마나 잘 익히고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열쇄입니다.
마귀를 분별하는 능력은 오랜 세월의 성경 공부와 묵상과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와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하는 기술 등을 익혀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 분별의 능력 가운데 마귀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앞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귀신을 구분하는
분별력은 우리의 느낌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 두 부분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악령의 높은 차원이 사단입니다. 이것은 더욱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우리를 해하거나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이지만 이 사단으로 인해서 우리 인류 전체는 언젠가는 극심한 곤경에 빠질 것입니다.
사단이 정권을 장악하여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 부분을 제대로 분별하여 하나님에게 구체적으로 간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부분은 지도자들이 일반인들에게 올바르게 분별하여 인식시켜야 할 몫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평범한 성도들에게 있어서
마귀는 고통의 근원이 됩니다. 죄와 연관된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서 이해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헤맵니다. 연속되는 불행과 질고들, 이상
성격과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나약함,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문제의 배경에 있는 마귀를 어떻게
찾아내어 그 속박에서부터 자유할 것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런 문제 배경에 있는 마귀를 찾아내는 일은 먼저 죄의 속성을 살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이해와 그 처리가 제대로 정당한 절차를
따라서 행하여졌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과 그 고백이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행하여 졌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곧 영 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죄를 고백하면 죄가 용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가 자신들이 드리는 희생과 제사를 통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미숙한 죄의 처리는 마귀의 올무가 됩니다.
저는 어려운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죄를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서 그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는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올바른 처리를 도와왔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통의 질고 속에서 아파하는 성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교만 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고 그분의 대리자로 자신이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의 영성 훈련 카페에서는 이런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드리고
여러분들이 한 가지씩 갖추어 나갈 때 언젠가는 훌륭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귀를 구분하는 능력은 절대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먼저 이해하고 이제 다른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다루어나갈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창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분위기가 갑자기 냉랭해지면서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고 서먹서먹해 하면서 한 두 사람씩 자리를 뜹니다. 이내 즐겁던 모임이 깨어지고 맙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만
보면 알 수 없는 냉기를 느끼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말의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어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는 대화하려고
하지 않고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항상 부정적인 말만 하고 무슨 일이든지 우선 반대하고 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는 의논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흔히 있습니다. 항상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는 그 힘을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으로 여기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이상 성격자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문제를 단순한 정신적인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계속 그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의 대부분은 그 배경에 마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 분별에서 귀신은 느낌으로 알게 되지만 마귀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해했으므로 우리는 마귀를 분별하는 수단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마귀의 특성은 성령과는 반대되므로 성령의 열매와 다른 일들을 일으킨다면 그 배경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이지만 고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가 알아차리기가 어렵지요. 그러나 마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때문에 반드시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을 살펴야 합니다. 마귀에게 조정 당하는 사람은 먼저 위장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어딘가 어색하고 과장되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본 마음을 속이고 위장하기 때문에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어색합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며 의도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과잉 친절이나 봉사 등 우리의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귀의 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지요. 그러므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마귀의 일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 목적하는
바가 어느 정도 들어나기까지 기다리면서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어떤 유명한 복음가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순교자의 아들이라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다니지만 모두 거짓입니다.
그는 아내가 유명한 복음가수이므로 교회에서 찬양집회를 열자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위해서 피아노를 선물하겠다고 하면서
고급 피아노를 선물합니다. 찬양집회도 열고 게다가 피아노도 선물로 받은 교회 목사는 너무 감격해서 성도들에게 헌금도 많이 하고
테이프도 사 주도록 광고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집회를 마치면 목사님은 성도들이 드린 감사헌금을 그들에게 모두 드립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집회가 끝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다음 피아노 가계에서 사람이 찾아옵니다. 밀린 잔액을 지불해 달라고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목사는 사기를 당한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속아서 이런 수치스런 일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속알이만 하면서
목사가 그 빚을 떠안고 맙니다. 이런 속임수 사기를 당한 목사가 잠잠히 있기 때문에 그는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사기
행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남편의 사기 행각에 복음가수인 아내는 여러 번 헤어지려고 했지만 폭행과 협박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 일에 휘말려 계속
범죄하면서 점점 양심이 무디어지게 되어 수년 뒤에는 공범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두 부부는 마침내는 교도소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행위의 배경에는 역시 마귀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별을 하지 못함으로써 피해를 입고 믿음의 시험에 빠져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으로 생활하다가 개종하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흥사가 되어 전국 기도원을 다니면서 간증도 하면서 안수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가 집회를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흥회를 인도하고 다니는 것은 그 문제가
즉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심각한 정신질환
즉 귀신들림에 시달립니다.
자신 속에 있는 귀신들을 안수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다니는 이 목사를 교회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심령기도라고 하는 무당들이나 하는 그런 기도로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정말로 족집게 같이 알아맞히고 처방을 내줍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헌금을 요구합니다. 많이 드려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성도들은 그 족집게 같은 말에
빠져 들어 거액을 헌금하여 낭패를 봅니다.
마귀의 일은 이처럼 속임수가 교묘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알아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이런 모호하고
위장이 철저한 마귀의 일을 멸하는 무기입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을 대하게 되면 영분별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 임하며 특히 말씀이 강하게 임합니다. 열매를 보아 구별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별로 없는 일에
있어서는 말씀이 그 무기입니다.
우리는 의심스런 조건을 제시한다든가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영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이 제시하는 말에 대해서 성령님이 말씀을 주셔서 분별하도록 돕습니다. 마귀의 조정을 받는 사람이 자신 앞에 있거나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면 즉각적으로 말씀이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그 사람을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살피고 그의 제안을 살펴야 합니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귀의 속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서있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귀의 올무를 피할 수 있지만 우리가
욕심에 미혹되면 이런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파수꾼과 같습니다. 영적 경찰인 것이지요. 마귀의
일을 드러내고 그 존재를 밝힘으로써 성도들을 보호하는 경찰의 기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귀의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체의 약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줍니다. 마귀는 우리가 비탄에 빠져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져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있는 가장 뿌리 깊은 약점을
자극하고 어떤 상황에 이르면 그 약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듭니다. 마귀의 충동에 의해서 우리는 그 약점을 다시 반복하게
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볼 낯이 없어서 괴로워하다가 심하면 주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귀의 충동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영적으로 약한 그리스도인은 아주 악습에 물들어
일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을 발견하여 그 마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이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하는 몫이지요.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의 특징들을 우선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 갈라디아서는 육체에 속한 사람의 특징으로 언급하고 있고 이 특성이
바로 마귀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1. 음행
음행은 이성사이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벗어난 일체의 관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춘화를 보는 것을 포함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젊은이들이 이 유혹에 매우 약하고 심각한 병적 증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혼인 관계를 떠난
성적 교제는 우리의 영혼을 불결하게 만들며 죄의식에 휩싸여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런
불륜관계에 빠진 사람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더욱 타락하게 만듭니다. 포르노그레피에 빠진 젊은 10대들은 양심이 무디어지고
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되며, 책임감이 사라지고 순간적인 충동에 쉽게 휩쓸립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혹하여
더욱 음란한 행위에 몰두하게 만들며, 정조관을 어지럽혀 결혼 후에도 불륜에 쉽게 빠지게 만들어 가정을 파괴합니다.
2. 더러움
마귀의 특징은 더럽다는 것입니다. 더러움이란 불결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더러운 이익을 탐하도록 충동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게 됩니다. 요즘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왔던 공직자가 한 순간 더러운
돈을 받았다가 들통이 나자 그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많습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입니다. 불법과
부정 행위는 그 이후 계속 자신을 올가미에 묶어 그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한 불법행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거듭 더러운 행위를 반복하거나 그 행위로 인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이지요. 한 순간의 달콤함을 떨쳐내지 못한 행위로 인해서 치르게 되는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고 괴롭습니다.
3. 방탕
규모없는 삶을 말합니다. 삶의 뚜렷한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그날그날을 단순한 생리적인 삶의 연장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마귀는 자신을 비하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는 생각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런 생각을 물리치지 않고 동조함으로써 삶의 의욕을 잃고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하루살이와 같은 삶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꼬입니다. 긍정적이고 의욕적인 면이 사라지고 게으르고 절제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고 이기적이고 타산적입니다. 돈을 무서워하지 않고 빚을 쉽게 생각합니다. 사치하고 무절제한 까닭은 모두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관이 사라지고 도덕적으로 헤이해집니다.
4. 우상숭배
하나님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관심을 항상 세속적인 것에 두게
유혹합니다.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을 다음에 두도록 충동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우선하는 마음, 직장을 우선하는 마음,
사업성공을 우선하는 마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충동합니다. 이런
가치관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항상 2위의 자리에 두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우상 숭배는 교묘한 술수를 동원하는 마귀의
철저한 계략이 숨겨져 있어서 쉽사리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며, 생계와 환경에 직접 연관되어 있어서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는 사회적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배격하는 것은 사회에서 고립될 것 같은 위험을 느낍니다. 마귀는
이 약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올무에 걸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사회적 요구를 따르는 삶 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주변에 보면 대부분이 사회적인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만 보일 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아주
소수이고 특별한 사람들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그런 삶은 일반적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돌연변이라고 생각합니다.
5. 마술
마술은 고대 사회에서 주술사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신전의 제사장들이 마술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술은 속임수이며, 속여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푹 빠져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탐닉하는 메니아를 일컫습니다. 한 가지
일에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걸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다양성을 거부하고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활동 폭을 줄이는 것입니다. 속여서 이득을 취하려고 함으로써 가짜가 판치게 만듭니다. 이는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함으로써 분열을 만들어내고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6. 원수맺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일인데 이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처리하지 못하고 마음에
간직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런 원망을 마음에 품고 항상 그 상처에 갇히도록 유혹합니다. 서로를 용서하기 보다는 상처를 더욱
크게 만들도록 감정을 고무시킵니다. 마귀는 용서하지 못하도록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며, 잃어버린 것들이나 손해 본
것들을 항상 생각하게 만들어 더욱 미워하게 합니다. 미움은 상처만 볼 때 절대로 풀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만
제거될 수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입니다.
7. 다툼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내고 다투고 나면 후회합니다. 격분할 일도 아닌데 절제가 되지 못해서 일을 저지르고는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는 순간 그 사람의 단점인 격분하는 성격을 충동하는 것입니다. 억제하려는 노력보다는 마귀의
충동에 더 쉽게 휘말립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자주 다툼으로써 자신을 더욱 한심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포자기해서 방임합니다.
이런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툽니다. 다툴 일도 아닌데 자주 다툰다면 이는 마귀의 충동에 휘말려 있는 것입니다. 격분하기를
잘하고 인내심이 부족한 결점을 마귀가 집요하게 충동하는 결과로 인해서 다툼에 휘말려 드는 것입니다.
8. 질투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그렇게 해 보려고 과용하는 행위입니다. 경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질투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남들보다 더 잘되고 싶고 높은 위치에
있고 싶어서 적성이나 소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일등만 인정하는 사회구조는 이런 질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경쟁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마귀의 방법입니다. 마귀는 남을 누르고 자신을 높이는 것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경쟁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자질을 개발하고 펼치는 것입니다. 질투는 부당한 경쟁을 만들어내고 자신에게 관계가 없는 일에 힘을
빼게 만듭니다. 질투로 인해서 아이들은 하고 싶지 않은 학원으로 내달려 갑니다.
9.분열과 파당
무리를 짓는 일은 우리에게는 자연스런 본능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야 하고
무리가 있어야 힘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한 이유도 없이 분열하여 무리를 새로 만드는 일은 마귀의 일입니다.
분열에는 반드시 불순종이 깔려 있습니다. 자존심과 자기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배움의 터에서 몰아내는 것이며,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숙이 이루어지기 전에 마귀는 충동하여 분열하도록 유혹합니다.
지도자에게서 벗어나도록 유혹함으로써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지요. 미숙한 지도자가 생김으로써 혼란스럽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성숙을 방해하기 위해서 분열과 파당을 조장합니다.
10. 술취함과 먹고 마시는 놀음
자신을 망각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도취행위를 말합니다. 군중에 휩싸여 남들이 하니까 자신도 하는 그런 줏대 없는
행동을 말합니다. 마귀는 큰 길로 우리를 유인합니다. 남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군중심리를 자극합니다. 선동 선전을 마귀의
일입니다.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우리를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고유한
뜻을 살피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면 올바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에 방해하기 위해서 다수적인 사고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분별력을 상실하게 하여 군중적 태도를 취하게 함으로써 각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벙덜벙 살아가게 함으로써 아무런 특색도 없고 의미도 없는 막연한 삶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받아들이는 것만을 우선으로 하고 나누는 삶은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말씀만 듣고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이리 저리 다니면서 듣는 것으로 즐거워하고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좋은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면서 듣고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마귀는 이런 태도를 아주 신실한 믿음으로 착각하도록 만듭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마귀가 우리의 육체적 속성을 이용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휩쓸려 이런 일들을 반복하게 되면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고 하나님에게
나아가 회개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것과 같습니다.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일들이 마귀의 영향을 받거나 속박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영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발견하고 마귀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글에서 마귀의 속박에서
자유하는 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의 선천적인 성격으로 주어진 약점은 우리의 의지로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물론 강력한 의지로
그 약점을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거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약점을 인식하고 의지로 억제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편하고 온전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마귀의 영향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본성적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면 그 본성을 표면에
나타나도록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마귀가 부추기지 않으면 우리의 본성은 수면 아래에서 고요하게
잠들어 있게 됩니다. 이런 약점을 마귀가 충동하고 자극함으로써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을 빼앗을 수 없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며, 또한 성령을
충만히 유지하는 것입니다.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서 우리는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주님을 볼 낯이 없어져서 점점 믿음에서
떠나 소극적인 삶이 됩니다. 이것이 마귀가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더라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 없이 용서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다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비록 실수하고 문제를 반복하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그 악습에서 자유함을 맛보았다면 우리는 그런 상태를 소망하면서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약점이나 결점은 우리가 방임해 둔 오랜 세월로 인해서 우리에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악습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습관은 의식을 가지고 그 행동을 억제해야만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우리의 의식에서 점차로 사라지면서 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평생 노력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인해서 그런 약점이 완전히 제거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행동하려고 해도 전혀 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기쁨과 평안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했을 때 얻어지는 세계의 기쁨을 일시적으로 맛보는 것일 뿐입니다.
이 기쁨을 맛보았다면 우리는 이후로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단점을 극복하고 억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노력함으로써 마귀는 서서히 물러나게 되고 약점을 부추기는 마귀의 영향이 약해지면서 우리는 그 약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초기 단계가 힘듭니다. 마귀는 우리가 실수할 때마다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묻습니다. 마귀는 그런
자신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이런 생각을 물리치지 않으면 자신은 점점 주님을 뵐 낯이 없어지고 이중적인
자신이 미워지면서 서서히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내부에 이런 모순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육신으로는 죄를 짓는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좇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좇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 이중적인 행위에서 진정으로 자유할 수 있는 법은 성령의 법을 좇는 것인데
이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8:5).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 전체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써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그 음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함으로써 우리 안에 기쁨이 넘치고 이 기쁨으로 인해서 우리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가리어지고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듭날 때나 성령의 강한 임재를 통해서 우리는 그런 상태를 경험하였습니다. 이 경험이 우리 삶 속에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심령에 기쁨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듣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요. 실수해서 의기소침해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마귀의 바라는
바입니다. 실수해도 다시 일어나 주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할 도리입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 단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이론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정이 힘들고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 길로 들어가기를 애쓰고 힘 써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카페는 이런 부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다양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드리는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서 다르고 문제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죄로 기인한 것인지, 죄얼(악습)에 기인한 것인지, 조상의 범죄함으로 인한 마귀의 저주에 의한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인은 다양할지라도 그 해결의 열쇄는 주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해결 방법에 따라 성실하게
실천할 때 우리의 약점은 극복되고 자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약점은 보균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병이 몸에 있더라도 적절한 약물을 투여하고 절제된 습관을 유지하면 완치는 되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약점이 있다고 해도 이것을 적절히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간혹 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충동을 보이지만 즉시 억제하고 성령
충만을 유지함으로써 결국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이루는 법이나 주의 임재하심을 이끌어내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이 카페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력한
기름부음과 성령의 음성 듣기라든가, 꿈과 환상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든가, 주님과의 친밀함을 이루고 유지하는
법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방법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익히고 적용하여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천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다”(마 13:19). 또한 우리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딤전 6:5).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영분별의 능력을 주시는 주요 목적은 마귀를 물리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근본은 우리의 죄를 처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결한 곳에 파리가 끼는 것처럼 죄가 있는 곳에 마귀와 귀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심하면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이며, 파괴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마귀와 귀신을 발견하고 내어 쫓는 능력만이 아니라 죄를 발견하고 처리하는 능력입니다. 마귀와 귀신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처리 되지 않은 죄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적당한 절차를 통해서 처리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처리되지 않은 죄가 있다고 하면 불쾌해 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결점과 단점뿐만 아니라 죄의 악습에 대해서 지적하면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런 허물이 없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문제가 앞에 놓여지지 않으면 그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처리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날마다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을 더럽히고 있는 죄를 날마다 처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죄가 쌓이고 악습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처리해야 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와 귀신의 침해를 입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죄의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허락함으로써 비로소 죄를 회개하는
입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몸이 병들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영적 삶을 진솔하게 돌아보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사업이 곤경에 빠져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야 비로소 들을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일상에서 죄를 언급하면 전혀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사람이 심각한 문제에 부닥쳐야 회개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러서야 사역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그 전조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바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만나기 전에 영혼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아도 심각한 문제에 앞에 직면해 있는 사람에게 다가올 어려운 시기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마귀의 시험이나 귀신의 공격이 임박해 있으므로 죄를 처리하고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온전한 것으로 여깁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마귀와 귀신을 통해서 그 사람이 처리해야 할 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식의 말씀을 갖추어야 합니다. 악령이 어떤 사람 곁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령이 무슨 까닭에 접근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는 데는 지식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식의 말씀은 상담으로 얻을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안다면 악령의 존재를 발견했다면 그 사람과 상담을 해야 합니다. 원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담을 통해서 알아야 하고, 알 수 없는 부분은 지식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이런 까닭에 지식의 말씀을 얻도록 간구해야 하며 상담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악령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그것을 기회로 죄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죄의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처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초보 사역자는 문제만을 봅니다. 그래서 악령을 쫓는 일에만 급급하지요.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병만 나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환자도 그것을 원하지만 본질은 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문제에 있는 것이지요. 물론 단순한 질병이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담자의 문제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해야만 온전한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영분별의 능력은 죄의 문제를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만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악한 영의 존재를 정확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 마귀와 귀신을 분별하고 악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며,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 대상인 악령의 능력은 주로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 이 능력을 받을 때 경험하는 것인데 악령의 힘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솟고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짓눌리는 공포감을 경험함으로써 그 위협을 극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힘의 크기를 느끼지요. 자신이 경험하고 극복한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악령의 힘을 일반인들이 당하면 기절하고 졸도하며, 깊은 잠에 빠지듯이 실신합니다. 강한 힘으로 인해서 여러 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때로는 병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즉각적으로 간파하는 능력이 있어야 악령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내용들은 악령의 존재와 그 능력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마귀는 틈타고
들어온 배경을 제거함으로써 물리치게 되고, 귀신은 내어쫓음으로써 당사자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죄입니다. 이 부분을 온전히 다룰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사역자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연구가 많아야 합니다. 죄의 처리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하지요. 영분별의 능력은 단순히 악령을 제거하는 것이 아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알아야 하는 바는 죄의 처리의 절차와 시기입니다. 죄의 종류는 상담을 통해서 그리고 지식의 말씀을 통해서 알았다면 그 처리를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시기에 대해서 통찰력을 얻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잘 알아냈다고 해도 그 시기를 알지 못하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지요. 모든 일에 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금이 문제를 해결한 시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시기의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이 시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유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기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경험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사역을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온전하지 못해서 간혹 실수를 합니다. 상당히 미묘하고 어려운 부분이 이 시기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요령이 있습니다. 전반적인 상담을 통해서 당사자의 진실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정말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사모한다면 지금이 그 치유의 시기일 것입니다. 당사자의 진실성이 시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죄의 처리에 대한 진실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직 그 치유의 시기가 아닌 경우에는 더 고통스런 일을 겪어야 합니다. 그런 경우 악령은 쉽사리 떠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사역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기가 아직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 밖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매달리면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한계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악령은 높은 수준의 영적 존재로부터 낮은 수준까지 다양한 위계와 계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아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체험의 깊이와 넓이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한계를 넘는 악령과의 대면은 영적 손상을 입게 되고 두려움에 쌓여 사역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악령을 대하면 그 두려움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어 매사에 두려워하게 되고 소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습니다. 영적 손상을 입게 되면 악령을 만나면 두려움부터 생기기 때문에 사역 자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심각한 영적 손상을 입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영적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고 영적 사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심각한 위협을 당하는 경우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능력이 점점 소멸되어 무능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사역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회를 하게 되지요.
능력 한계를 모른 채 사역하는 것은 사역자의 수명을 단축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능력은 힘입니다. 주님은 여인이 옷자락을 만졌을 때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능력 사역을 하면 자신에게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보자들은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점점 미약해지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빠져 나간 능력을 다시
채워야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모된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듯이 소모된 능력을 다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다루어야 할 악령의 능력의 범위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능력을 주실 때 그 범위를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감당할 악령의 범위에 해당하는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닥치는 두려운 생각과 느낌들과 소름끼치는 전율 등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집합적으로 경험할 때 이것은 주님이 자신에게 가르치는 영적 범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심리적인 작용이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아직도 영분별의 능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 앞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며 그 주된 수단이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반드시 분별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영분별의 능력이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교회 안에서 거의 예언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언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예언을 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성령님을 계속 제한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예언이 주어짐으로써 우리는 성령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입니다. 예언이 교회 안에서 풍성해지고 우리는 식별하는 능력이 점점 강화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부분에서 이미 상당히 앞서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교회 안에서 영분별의 능력을 어떻게 적용하고 개발해야 하는지를 연구한 몇 권의 책을 통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데이빗 로손의 “하나님의 보시는 것처럼 보는 분별력”이라는 책과 제임스 펜하겐의 “협동적인 분별과 확증”이라는 책과 댄 모리스와 찰스 올슨의 공동저서인 “하나님의 뜻을 함께 분별하기”라는 책에서 몇 가지 주요한 부분을 살펴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분별을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2.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갈망
3.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위임을 받음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전제 조건이며,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근본적인 사항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내용은 영분별의 능력을 받은 소수의 사람에 대한 언급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성도들이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위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성도들은 영분별의 기능을 이해하고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데이빗 로손은 영분별을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선결 사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Discernment to See as God Sees by Bishop David Lawson)
1. 실제적인 정보에 근거한 좋은 자료들을 모읍니다. 선택사항이나 가능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2. 진행과정에서 창조성이 나타나거나 기여하게 되도록 모든 영역이 유연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합니다.
3. 모든 편견이나 선입감을 내려놓고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거룩한 중립을 취합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맡기고 그 결과에 순종합니다.
4. 예배의 분위기와 질서들을 유지합니다.
5.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확증에 대해서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거나 그에 대해서 답합니다.
6. 묵상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듣습니다.
7. 묵상시간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공동체와 함께 나눕니다. 그것에 대해서 의견을 나눕니다. 이 단계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합니다. 대화 속에 지식과 지혜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8. 겸손해야 합니다. 각자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9.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때로 기다리는 동안 침묵이 필요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 방향을 계속 여쭈십시오.
10. 나타나는 형상에 대한 거룩한 중립을 취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새로운 생각을 얻도록 기대하고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소집단의 모임에서 각자가 취할 수 있는 조건들입니다. 기도 모임이나 소집단의 예배에서
예언의 영이 임해서 예언할 경우 구성원들은 그 주어진 말씀을 분별함에 있어서 그 예언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려는
생각을 앞세우기 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이끄시는 성령님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각자가 자신에게 임하셔서 일하시는 주님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묵상과 관상 기도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기다림의 시간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대로 적용하기란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다리는 기도 즉 침묵과 관상의 기도에 익숙해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묵상과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실제로 온전한 분별은 주님과의 오랜 기간의 풍성한 교제를 경험하였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제임스 펜하겐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설명합니다. 집단에서 실제적으로 분별하는 과정에 대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Corporate Discernment and Consensus James C Fenhagen Ministry and Solitude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81)
1. 묵상시간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보여주심을 구해야 합니다.
2. 특별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에 대한 분별을 얻고자 할 경우 긍정적인 부분을 나눕니다.
3. 기도에 들어가서 나누었던 긍정적인 부분들을 심각하게 반추합니다.
4. 개인적인 분별에 대해서 긍정적인 부분을 나눕니다. 만약 분명한 일치점이 나오지 않으면 이 과정을 계속 합니다.
5. 기도에 들어가 긍정적인 부분을 반추합니다.
6. 긍정과 부정의 이유를 구별해서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공동체가 서로 분별할 수 있도록 각각의 이유들을 기록합니다. 열거된 것들을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 방향을 찾도록 합니다.
만약 공동의 분별에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었다면( 예를 들어 성령의 보여주심이 있다면) 결정은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깊은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John Futrell. Communial Discernment: Reflection on Experience -study n the spirituality of the jesuits 4. no 54 1972)
모리스와 올손은 분별에 있어서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Danny Morris and Charles Olsen Discerning
God's Will Together: a spiritual practice for the church)
1. 배경(grounding): 인도하심의 원리에서 이는 분별의 과정을 시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인도의 원리는 식별하는 공동체의 가치, 신조, 목적으로 구성됩니다.
2. 제쳐놓기(shedding): 이기심, 선입관, 잘못된 가정, 편견, 사전에 결정한 결론 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공평하게 다룰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3. 뿌리(rooting): 종교, 성경이야기, 주제, 이미지 등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통은 분별과정에서 맞서기도 하고, 굳히고, 환기시키고, 심지어는 방향을 바꾸게 하기도 합니다.
4. 듣기(listening): 성령께서 자극하는 바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별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모든 소리를 들음으로써
분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5. 발산하기(exploring): 인도하심의 원리 가운데 있는 길과 가능한 선택사항들을 인식하기 위한 능동적인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증진하기(improving): 생각하고 있는 사안 들을 증진시키는 기도와 위안을 위해서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가운데 이미지를 그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7. 평가하기(weighing):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반응으로 얻어진 선택사항들을 분류하고 검사합니다.
8. 분별하기(discerning): 결론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공동체가 진행한 과정에서 그리고 성령으로 인해서 평가된 선택사항을 구분합니다.
9. 맡기기(resting): 기본적으로 영적 위안이라는 느낌(평안한 기분이나 주님에게로 향하는 움직임 등)과 영적 고독
(낙담이나 주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움직임 등)이라는 느낌이 생기는 경우 결정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결정을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영분별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 기능이 제대로 적용되어질 때 교회는 인간적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마귀의 올무에서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은 허다한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교회는 영분별의 능력을 개발하고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우리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어내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장봉운 목사님의 글들|작성자 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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