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I AM THAT I AM
신지학 대의 39 - 아스트랄 대응체 본문
신지학 대의 39 - 아스트랄 대응체
아스트랄 대응체(Counterparts)
자아가 화신하여 내려올 때 그는 자기 둘레에 아스트랄 질료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아직은 완전히 분명한 아스트랄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먼저 이 아스트랄 질료는 코잘체의 형상과 아주 흡사한 달걀 모양의 형상(난형체 卵形體)을 취한다.
그러나 단계가 더욱 하강하여 외부적으로 물질적 화신(化身)이 될 때 그 아스트랄 질료의 중간에 작은 육체가 형성되고 그것은 즉각적으로 그 위에 강력한 인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이미 커다란 난형체 상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던 대부분의 아스트랄 질료가 그 육체의 주위에 집중된다. 육체가 성장하여 감에 따라 아스트랄 질료도 변화되며 그렇게하여 마침내 사람의 아스트랄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스트랄체는 99%가 육체 주위에 압착되어 있고 나머지 1%만 난형체를 채우고 있다.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의 삽화(*주1)에서는 육체의 윤곽을 단순히 연필로만 스케치하여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그렇게 희미하게 처리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책에서 내가 특별히 원했던 것은 난형체의 색깔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고 저급체로부터 고급체까지 진동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육체에 대한 아스트랄 대응체는 매우 농밀하고 명확하다. 따라서 아주 분명하게 주변 난형체와 구분할 수 있다. 아스트랄 질료는 육체와 정확히 동일한 형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육체가 아스트랄 질료를 끌어 당겨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아스트랄계의 최하위 부분계를 물질계의 고체에 상응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그 조직은 완전히 상이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아스트랄 질료와 그 대응 물질 사이의 관계는 액체와 고체 사이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의 모든 입자들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스트랄체가 육체의 감각 기관들과 같은 분화된 기관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아스트랄체에는 신체 중 눈의 망막을 구성하고 있는 간상체(桿狀體)와 콘(cones)에 대응하는 정확한 아스트랄 대응체가 있다. 그러나 아스트랄체에서 그 특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입자들은 일초나 이초 후면 팔이나 발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육체의 눈에 상응하는 아스트랄 대응체를 통해서는 아스트랄계를 볼 수 없다.
사실상 아스트랄적 인식 방법에 ‘본다’라든가 ‘듣는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들은 보통 분화된 감각 기관의 작용을 뜻하는 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아스트랄체의 모든 입자는 진동을 받아들이고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순간적으로 아스트랄 의식을 가졌을 때, 그는 자기가 앞면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방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육체에 대한 아스트랄체의 정확한 대응(일치)은 단순히 외형적인 것일 뿐 결코 여러 신체 기관들의 기능과 동일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계속되는 인력은 아스트랄 질료에 일종의 습 또는 타성을 만들고 그로 인해 밤에(또는 사후에) 육체의 인격으로부터 일시적으로(또는 영구적으로)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동일한 형상을 유지하게 된다.
심지어 오랜 아스트랄계의 삶을 거쳐오면서도 아스트랄체는 그때까지 생전의 육체와 같은 외형이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그렇다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념은 아스트랄 질료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서 신속하게 조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후에 습관적으로 자신을 죽을 당시보다 젊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아스트랄체가 차츰 어느 정도 젊은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한다.
“만일 사람의 팔이나, 나무의 가지, 또는 의자의 다리가 절단된다면 각 경우에 아스트랄 대응체 또한 없어지는가?”
“만일 아스트랄 대응체가 부서지면 해당 물건 또한 파손되는가? 만일 내 아스트랄체의 손으로 의자의 아스트랄 대응체를 부수면 의자는 실제로 부서지는가?”
위의 세 가지 경우는 전혀 유사한 것이 아니다. 나무나 인간이나 모두 내부에 생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아스트랄체를 하나의 응집하는 통일체로 만든다. 아스트랄 질료는 물질체의 입자들에 의해 강하게 끌어 당겨지고 그것에 맞게 조형된다. 그러나 물질체의 일부분이 제거된다 해도 살아 있는 아스트랄 질료의 응집력은 비교적 강한 편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팔이나 나뭇가지의 아스트랄 대응체는 물질체의 절단과 동시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스트랄 대응체는 일정한 형상을 유지하려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원래의 형상을 유지한다. 물론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되지만.
의자나 그릇과 같은 무생물체의 경우에는 응집력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개별적 생명이 없다. 결과적으로 물질체가 파손되면 아스트랄 대응체 또한 박리된다. 그러나 아스트랄 대응체를 먼저 부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파괴 행위는 물질계에서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아스트랄 손을 이용하여 순수한 아스트랄 물체를 이동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물질계 물체의 아스트랄 대응체를 움직일 수는 없다. 정 원한다면 손을 물질화시켜 그 물건을 이동시키면 된다. 그러면 그것에 따라 아스트랄 대응체가 움직일 것이다. 마치 방에 장미가 있으면 향기가 자연 방 안에 퍼지듯 아스트랄 대응체는 물체가 있는 한 존재한다. 아스트랄 대응체를 이동시킨다고 해서 물체가 따라 움직인다는 가정은 장미 향기를 이동시켜서 장미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아스트랄체의 입자는 물질체의 입자와 마찬가지로 변화된다. 그러나 다행히 음식을 요리하고 먹고 소화시키는 조악하고 지루한 과정은 아스트랄계에서는 필요치 않다. 떨어져 나간 입자들은 주변 대기에 있는 다른 입자들에 의해 대체된다. 배고픔이나 갈증과 같은 진짜 물질적 욕망은 아스트랄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각을 만족시키려는 대식가의 욕망, 알콜 흡수에 따르는 흥분을 추구하는 술꾼의 욕망, 이런 것들은 모두 아스트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욕망은 아스트랄계에 여전히 존속하면서 큰 고통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로지 육체를 통해서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들로서 이미 그런 육체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아스트랄체는 피로에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육체를 갖고 있는 동안 아스트랄계에서 일정 기간 계속 활동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빨리 윤회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특별한 상태를 위해 아스트랄계에서 25년 동안 기다린 한 사람의 경우를 알고 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내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며 보냈다. 그는 마스터들의 제자에 의해 열리는 클래스에 가끔 참가하는 것 외에는 휴식 시간조차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조금의 피로감도 느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피곤이 무엇인지조차 잊어 버렸다.
일상 생활에서 과도하거나, 오래 지속된 감정은 쉽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아스트랄적인 표현이므로 우리는 아스트랄체의 피로가 가능하리라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피로에 지배되는 것은 단지 육체 기관일 뿐이다.
이 물질계에서 우리 안에 현현하고 있는 모든 것은 육체 기관을 거쳐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에 피곤에 지배되는 것은 단순히 육체 기관일 뿐이다. 소위 말하는 정신적 피로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 안에는 피곤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피로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육체 두뇌의 피로인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두뇌를 통해 자신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력을 아스트랄 차원 너머로 들어올릴 수 없는 자는 타인의 오라를 볼 때 오로지 아스트랄 질료만을 보게 된다. 그는 이 아스트랄 질료가 육체를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에 삼투되어 있고 외부의 오라가 있는 곳보다 육체의 주위에 훨씬 더 농밀하게 집합되어 있음을 본다. 그 이유는 육체 세포들의 대응체로서, 거기에 응집되어 있는 대량의 농밀한 아스트랄 질료가 육체의 인력에 끌어당겨지기 때문이다.
수면 중에 아스트랄체가 육체로부터 이탈되었을 때도 아스트랄 대응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투시로 보면 전과 마찬가지로 육체를 닮은 체(體)가 오라에 둘러싸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체는 이제 단순히 아스트랄 질료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둘러싼 안개 사이에는 큰 밀도의 차이가 있어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비록 그것 자체도 단지 보다 더 농밀한 안개일 뿐이긴 하지만.
발달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사이에는 외형상 아스트랄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발달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도 비록 흐리고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내부 형태의 윤곽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둘러싼 난형체는 단지 형상 없는 안개나 화환에 불과하여 사실상 그 외형의 정형성이나 내구성이 전혀 없고 거의 그 이름의 가치를 상실한 상태이다.
보다 발달된 인간은 오라나 그 안에 있는 형태 모두에서 그것과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내부 형태는 훨씬 더 뚜렷하고 분명하여 거의 육체 형상의 재현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난형체는 뚜렷한 달걀 형태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아스트랄계에서 그 주위에 항상 소용돌이치고 있는 다양한 흐름들 한 가운데서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아스트랄체의 조직이 사후에 크게 변화된다 하더라도 난형체 안에 있는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까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 변화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내부 형상은 다소 희미해지고 보다 영적으로 변화된다.
관단
'성경과 영성신앙 > 신약외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지학 대의 41 - 욕망 엘리멘탈 (1) | 2026.01.05 |
|---|---|
| 신지학 대의 40 - 아스트랄체의 색깔 / 코잘체 (1) | 2026.01.05 |
| 로마서 8장 (0) | 2023.09.07 |
| 로마서 8장 (0) | 2023.01.25 |
| <야고보 비밀의 서. 번역과 해설(3) 예수를 본 사람은 화가 있도다! (0) | 2022.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