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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 오늘의 묵상 24. 09. 25(수) <매일 성경: 열왕기하 13:1-13> 본문

배움과 깨달음/숨터일지

■ 오늘의 묵상 24. 09. 25(수) <매일 성경: 열왕기하 13:1-13>

柏道 2024. 9. 25. 05:32

■ 오늘의 묵상  24. 09. 25(수)

<매일 성경: 열왕기하 13:1-13>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 성경 이해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
입니다. 

Ⅰ. 여호아하스의 통치 (왕하 13:1-9)

Ⅰ. 여호아하스의 통치 13:1-9 이것은 여호아하스의 통치 시대와 그의 재위기간, 17년 동안의 이스라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이다. (1) 이스라엘의 영광이 수치로 변하였다. 이스라엘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1)이스라엘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림으로써 명예를 얻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영 곧 영원한 정신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규례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이 명예를 분실하였고, 자신들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왕이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고`(2절), 백성들도 그 죄를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행악한 사실을 발견한다(6절). 2)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울타리가 되셨다는 사실은 그들의 명예였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 영광을 박탈당하고, 모든 이웃들로부터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전에도 종종 이렇게 된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다`(3절).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22절). 이스라엘처럼 자주 이웃 나라에 짓밟히고 약탈당한 나라는 결코 없었다. (2) 이 잿더미 속에서 이스라엘의 옛 영광의 불꽃이 얼마만큼 남아서 빛나고 있었다. 1)이스라엘의 옛 영광 중의 하나는 그들이 기도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영광이 되살아나는 것을 본다. 여호아하스 왕이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께 간구하였다`(4절). 그는 송아지 우상(이것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었겠는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하였다. 2)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그들에게 가까이 하신 사실이 이스라엘의 옛 영광이었다(4:7 신4:7).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셔서 물리치심이 마땅하였지만 왕 자신과 백성을 위한 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4절),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셨다`(5절). 이것은 여호아하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여호아하스의 시대에는 항상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2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 아들로 하여금 아람을 이기게 해주셨다. 그 결과 아들 요아스왕이 자기 아버지가 빼앗겼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은혜의 응답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23절).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속하게 자비를 보여주시며, 또 얼마나 은혜를 베풀고자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옛날의 언약을 돌이켜 생각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 말씀 핵심

13:1-9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가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람 군대의 침략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구원자(13:5)

여호아하스의 후손인 요아스(10절)와 여로보암(14:23)을 가리킨다는 해석과 앗수르 왕 아닷니라리 3세를 가리킨다는 해석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해석에 의하면 요아스는 25절에 기록된 대로 자신의 부친이 아람에게 빼앗겼던 일부 지역을 되찾았으며, 그의 뒤를 이은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였다(14:25). 두 번째 해석은 당시 앗수르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공격함으로써 아람이 이스라엘에 대한 침략 행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근거한다.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요한 두 가지 속성(屬性)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신 공의(公義)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이사야30:18). 또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律法)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은 은혜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공의, 즉 율법 앞에서는 범법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심판받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인 은혜로는 어떤 죄인이든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공의와 사랑 두 가지는 완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랑은 없고 공의 뿐이라면,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모두 다 심판 받고 영원한 형벌에 처해집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이 공의는 없고 사랑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도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공의와 사랑은 조화를 이루며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여 죄인(인류)을 심판하여 모두를 멸망시켜버린다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파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여 죄를 묵인하고 무조건 죄인을 용서한다면, 구원은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히 무시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속성 자체에 모순이 생깁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공의와 사랑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 묵상제목 [공의와 사랑]

1. 성령님, 이 말씀을 통하여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죄를 인지하고 징치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내가 하나님께로 돌이켜 진정성 있게 구할 때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금 심장에 새기겠습니다. 

나는 이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고, 높이고, 섬기고  찬양하겠습니다. 

2. 성령님, 주신 말씀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어려운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겠나이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죄에 대하여는 즉시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닮도록 훈련하겠습니다. 


3. 성령님, 그것을 위해 제가 무엇을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가운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조화롭게 드러나게 하소서. 
저희의 눈동자와 마음과 생각과 발걸음이 항상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저희의 삶 속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