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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뉴턴이여…고개 들어 '상상의 바다'를 보라[이수연의 아트버스]<16> 본문
어리석은 뉴턴이여…고개 들어 '상상의 바다'를 보라[이수연의 아트버스]
오현주 기자
▲윌리엄 블레이크 '이성에 도전한 상상력'
'태고의 나날' 속 우주의 신 유리즌
컴퍼스로 세상을 탐색, 측량하지만
결국 이 도구도 상상력 산물인 것을
바닷가에서 삼각형에만 빠진 '뉴턴'
좁은시야로 세상 본 근대 한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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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1795∼1805). 선명한 색과 명징한 선 위에 상상력으로 빚은 기상천외한 형상을 만들고 스토리를 입혔던 블레이크가 한 세기 전 인물인 아이작 뉴턴을 그린 작품이다. 보이는 물질과 객관적 사실만을 추구했던 뉴턴은 블레이크에게 탐탁지 않은 인물이었다. 덕분에 갓 태어난 태초의 인간인 양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그림 속 뉴턴은 신을 닮은 완벽한 근육질 몸을 가졌지만 그저 쭈그린 채 삼각형 그리기에만 빠져 있을 뿐이다. 상상해서 창조한 것이 단순히 관찰해 얻은 것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했던 블레이크는 동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영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까지 격상됐다. 동판화에 잉크·수채, 46×60㎝,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 소장.
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9세기 영국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였다.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인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통치하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누렸고, 곡물법·항해법을 폐지하며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선도했다. 안으로는 선거법을 제정해 도시의 신흥 상공시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문맹률을 낮추며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기도 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로 등장한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찰스 디킨스와 코난 도일이 거닐던 19세기의 런던 거리는 근대 지식인이 동경하던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황금이 넘실대던 19세기 영국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다. 1888년 런던 화이트채플 거리에서 목에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된 하층 여성의 시신은 살인마 잭 더 리퍼의 등장과 함께 런던 이스트엔드의 비참한 삶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알렸다. 자본축적과 산업발전이란 명목 아래 어린아이마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는 가난한 여성들을 매춘부로 내몰았다. 이는 자본주의의 그늘이자 산업혁명과 계몽주의가 드높여온 중산층의 합리성과 도덕, 매너와 교양이 닿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처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
빛과 어둠이 공존하던 당시 영국의 장엄한 광기를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보다 잘 표현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시인이자 화가, 판화가로 활동한 블레이크는 영국 사회의 질서와 합리적 이성, 도덕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변화시키려 평생 노력했다. 그가 발간한 책 ‘유리즌의 첫 번째 책’(The First Book of Urizen·1794), ‘밀턴’(Milton·1804∼1811) 등에서 블레이크는 신이자 예언자를 상징하는 듯한 ‘유리즌’을 등장시키는데, 그 유리즌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한계와 합리적인 마음의 균열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삶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덕적 잣대와 종교적인 정결, 사회적 상식과 논리적 판단을 깨부수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맘껏 펼칠 것을 권유하면서 말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좋아했다고 알려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1803)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붙잡는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순진무구한 영혼을 노래하던 이 구절은 이내 사회 속에서 타락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으로 변한다. 어린아이가 굴뚝을 청소하며 고단한 삶을 겪어내야 하는 영국사회의 비애를 풍자하면서도 블레이크가 바라보고자 했던 것은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때 묻지 않은 어린시절의 순수, 도덕·법률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원시적 상상력의 세계였다. 어떤 편견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신비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이야말로 블레이크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능력이었고, 이는 교육·계몽으로 완성되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가 생전 몹시 사랑했다는 판화 ‘태고의 나날’(1794)은 바로 이처럼 과학과 계몽의 영역까지 잠식한 위대한 공상가로서 신을 은유한 작품이다. 블레이크의 시집 ‘유럽, 예언자’(1794)의 속표지에 쓰기도 한 이 판화는 블레이크가 창조한 우주의 신인 유리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흰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건장한 육체의 남성은 검은 허공 속에서 붉은빛을 뿜으며 나타나 대지로 손을 뻗어 그의 세계를 관찰하고, 측량하고, 창조하고 있다. 신은 근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과학적 탐색과 수학적 측량을 이용해 세상을 관장하고, 세상은 신의 그 이성을 통해 지배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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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태고의 나날’(1794). 블레이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은 유리즌이란 우주의 창조자를 그리고 있다. 신 혹은 합리·이성·법을 의인화한 존재가 건축을 하듯 컴퍼스를 든 손으로 세상을 창조하기 전 감을 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과 수학의 도구조차 상상력과 창조력의 산물일 뿐이란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인상 깊은 효과, 독창적 몸짓을 꺼내 마치 무대에 극을 올리는 듯했던 블레이크 작품세계의 특징이 온전히 드러나 있다. 동판화에 수채, 23.3×16.8㎝,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그러나 신이 존재하는 공간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그는 벌거벗은 채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은 빛과 광선을 타고 문득 나타나, 육체적이면서 인간적인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서도 세찬 바람이 불어와 수염과 광배는 휘날리고, 혼돈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학문인 과학과 수학을 창조해낸다. 태초의 신을 그린 이 작품에서 유리즌이 사용하는 과학과 수학의 도구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산물이다. 블레이크는 특히 상상력이야말로 경계가 없고, 끝없는 질문을 통해 인간이 처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극심한 빈부격차, 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세계대전 불러올 것이라 예견
이런 관점에서 블레이크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이자 19세기 합리주의 이성의 중심에 섰던 아이작 뉴턴(1642∼1727)을 풍자하는 작품 ‘뉴턴’(1795∼1805)을 만들기도 했다. 그림 속 뉴턴은 해초와 조개가 붙은 울퉁불퉁한 바닷가 바위에 앉아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스크롤에 컴퍼스를 들이댄 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듯 보인다. 거친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턴이 앉아 있는 자리는 반듯하다. 하물며 뉴턴의 머리와 몸, 스크롤 색까지도 단조롭기 그지없다. 뉴턴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무쌍하고 그가 밟고 선 땅은 형형색색 다채롭지만 오로지 삼각형만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는 뉴턴은 이 모든 신비를 놓치고 있다.
블레이크는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삼각형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의 뉴턴을 풍자함으로써 인간의 합리성과 교양에만 의존해 세상을 바라보려 했던 근대의 한계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뉴턴이 광학을 연구해 인간 시각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학계의 믿음에 분노하며, 단순히 보이는 시각을 넘어선 영적이고 감각적인 시각을 작품에 담아내려 했다. 울렁거리는 색채와 생동감, 위풍당당한 단순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은 바로 시각적 효과를 넘어선 작가 신념의 결과라고 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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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1795∼1805)의 부분.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이 주위 환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컴퍼스를 들이댄 채 빠져 있던 ‘삼각형 그리기’를 클로즈업했다. 명징한 선과 색으로 묘사한 움직임이 제대로 보인다.
블레이크의 통찰은 당대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는 주장 탓인지, 평생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미치광이로 취급받으며 삽화가이자 인쇄공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블레이크는 꿰뚫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빚은 극단적인 자본주의 신봉, 그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 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불러온 20세기 세계대전의 참사를 예견한다. 계몽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도 인간의 광기와 폭력, 부도덕과 위선은 잠재워지지 않았으며 인공지능이 등장한 21세기에도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이미 오래전 근대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블레이크가 시 ‘순수의 전조’ 한 구절로 남긴 짧은 충고는 그래서 여전히 유용하다. “어린아이의 믿음을 존중하는 자, 지옥의 죽음을 이겨낼 것이니 어린아이의 순수한 장난과 늙은이의 이성은 두 계절에서 맺힌 하나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현주(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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