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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불화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는가? 본문

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우크라이나 불화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는가?

柏道 2022. 2. 23. 01:01
우크라이나 불화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는가

늘 그렇지만 이 살찐 고양이의 본업(...)은 국내정치가 아니라 본디 해외이슈를 다루는 일이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늘은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다들 아시다시피 러시아의 푸틴은 오늘 우크라이나 영내에 세워 둔 친러 공화국들로 러시아군의 진주를 승인했고 사실상 수도 키예프를 위협하는 위치까지 바싹 다가가는 것에 성공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의 최종 목적지인 몰도바 동부의 트란니스트라니아와 가가우지아를 크림 반도와 연결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즉 러시아는 몰도바의 동부와 우크라이나의 동부에서 지속적으로 불온한 움직임을 유지하여 우크라이나의 약화를 시도할 것이고, 만약 우크라이나가 이에 굴복하여 무너지고 친러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서방의 유럽 최전선은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된다. 이 두 나라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적으며 러시아와 매우 사이가 좋지 않은 터라 (루마니아는 작년에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전력도 있는 국가이다.) 푸틴의 확장은 몰도바에서 공세종말점에 다다를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본다.

그런데 왜 하필 우크라이나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진출은 단순히 21세기형 범슬라브주의라든지 푸틴의 팽창욕구로는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에 심어진 불화의 씨앗은 적어도 서기 16세기까지 거의 400년을 되돌아가야지만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 시계를 조금 더 되돌려 서기 882년으로 가보면, 동유럽에는 비잔틴 출신의 바랑인 올레그라는 걸물이 한 명 등장한다. 이 사람은 본디 비잔틴 제국의 용병 민족 출신이었으나 슬라브족들과 손을 잡고 크림 반도 북부에 나라를 세웠으며, 이것이 현재 러시아의 시초인 키예프 공국이다. 키예프 공국의 강역은 놀랍게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서부 러시아에 걸쳐져 있다. 즉 본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한 뿌리가 맞기는 하다.

문제는 중세 시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그 비옥한 토양과 유목민족들의 이동 경로에 서 있다는 기구한 운명 때문에 몽골을 시작으로 타타르까지 많은 유목 민족들의 침입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역사에서는 이 시절을 '타타르의 멍에' 라고 하여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 지방의 경우 15~16세기까지 타타르 족의 침입에 시달렸고 이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화가 시작된다. 당시 우크라이나 서부를 장악하고 있던 리투아니아 공국이 크림 칸국과 싸우는 사이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북부 모스크바 지역에서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때 드네프르 강 서안의 서부 우크라이나는 리투아니아 공국에 이어 등장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으며, 드네프르 강 동안에 살고 있던 카자크 인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조상인 루스 차르국에 지원을 부탁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입김이 미치기 시작했으며, 동-서부 우크라이나 간의 간극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이 완전히 동부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게 되면서, 동부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인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압제로부터 러시아가 자신들을 해방시켰다는 관점을 갖고 러시아에 동화된 반면 지속적으로 풀란드-리투아니아 및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서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는 관련성이 약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현재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 사용 빈도가 매우 낮은 반면 동부는 러시아어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것도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불화의 씨앗은, 우크라이나라는 지역 자체가 전 세계 흑토의 3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옥한 곡창 지대였으며, 이와 동시에 많은 민족들의 침략을 받아 드네프르 강을 기준으로 동부와 서부의 이질성이 지속적으로 커진 국가를 우크라이나라는 하나의 나라로 합친 것에서부터 발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와의 합병까지 논의하는 벨라루스와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과거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치하에서 지속적인 독립 운동을 벌였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주도 세력이 드네프르 강 서안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우호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에 살던 폴란드인들이 폴란드 국경의 변화로 인해 (소련은 원래 폴란드 고유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최서단 지역을 폴란드에게서 빼앗아 우크라이나에 주었다.) 모두 폴란드 영내로 이주하게 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서부에서 상당히 극에 달했다.

즉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동부와 서부의 민족감정이 분화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의 근원이 된 것이다.

크림 반도의 경우 사실 다소 애매한데, 크림 반도는 본디 러시아의 고유 영토는 맞으나 (실제로 러시아인 비율도 50% 가 넘는다)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에 우크라이나 출신인 흐루쇼프가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에 넘겨 주었던 문제가 있다. 실제로 크림은 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자치국을 구성하여 우크라이나와는 별도의 국가결사체를 유지하려 하였으나, 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체결로 인해 가뜩이나 나쁜 경제 환경에서 우크라이나와 투닥거릴 여유가 없었던 옐친 시기의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그냥 내버려 둔 것에 가깝다.

물론 그저 한 명의 알콜 중독자에 불과했던 옐친과는 달리 푸틴은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 따위는 휴지 조각이 된다 한들 크게 상관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결국 러시아의 손으로 그 각서는 무력화되었다.

현재로 돌아와 보면,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과 완전히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러시아는 러시아인의 비중이 높은 남오세티야 지방을 실질적인 괴뢰국으로 두고 평화유지 명목으로 러시아군을 파견시켜 두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조지아가 선제 공격을 가하자 얼씨구나 하고 조지아를 두들겨 패버린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에서도 같은 방법이 먹혀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크라이나의 실수는 핵무기를 포기한 것일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어렵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말 그대로 핵무기를 물리적으로 보유만 하고 있었을 뿐 그 많은 소련제 핵무기들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할 능력도 자원도 없었다. 사실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그야말로 소련의 핵무기였을 뿐 우크라이나가 사용할 수 있었던 핵무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실수는,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를 체결하며 안전 보장의 주체를 서방이 아닌 러시아에 맡겼다는 점이라고 본다. 이 때 안전보장의 주체를 러시아에 맡긴 탓에,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에 반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우크라이나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제멋대로 재단할 수 있었고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발원한 유로마이단 상황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