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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이재명을 위한 변명>페북 김환근 님 글 공유합니다

柏道 2022. 2. 13. 16:59
<이재명을 위한 변명>
페북 김환근 님 글 공유합니다

- 2년반만에 처음으로 전체공개글을 씁니다.

1. 여전히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졌던 시절,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가장 인정받는 야당 정치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김근태였다고 한다.
비록 치열하게 싸웠던 적이지만, 김근태에게는 적장의 예우를 갖춰줄만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서울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민청련이라는 운동권 최고의 엘리트 학당을 직접 만들었던 우아한 전력과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족스러운 품격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에게는 그런 김근태가 자신들과 치열하게 맞서 싸워도 될만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했을터다.
저런 자라면 만에하나 싸움에서 져도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채기를 내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거다.

혁명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처럼 보수주의자들로부터도 존경받을만한 출신성분과 성장과정과 성정을 가졌다.
레닌도 그랬고, 호치민도 그랬다.

친구이자 스승인 노무현의 장례식에서조차,
그 죽음의 원인인 정적 이명박을 향해서 크게 고개를 숙여 젊은 후배의 결례를 사과한 문재인도 김근태류의 정치인이었고,
여.야를 넘나들며 세련된 언어로 이해와 통합을 역설한 김부겸도 비슷한 성격의 정치인으로 대우받고 있다.
그들은 지지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인간 자체로 존경받았고, 또 그래도 될만한 품격있는 삶의 경로들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를 좀 안다는 선수들은 더더욱 우아한 삶의 경로와 좋은 언어를 사랑했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지도자로 세우고 싶어했다.

2. 이재명은 확실히 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과거사는 큰 범죄행위가 없었다한들 "정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릴만한 사건들로 첨철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평균을 훨씬 하회하는 집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교육과정조차 밟지 못한채 처절한 성장과정을 겪었고,
그 질곡의 천정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해와 비난거리를 만들었다.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천성이 거친데다 바탕의 천박함은 변치 않았고, 그래서 시시때때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했고, 마치 트라우마처럼 자기확인욕구가 점철된 정치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지난한 세월동안, 그는 훗날 결국에는 자신의 발목을 잡게될 수많은 논란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나는 시장이 되기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재명위원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거칠고, 생경하고, 우아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찿을 수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그의 포퓰리스트적 경향과 분노를 참지 못하는 즉흥적 성정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가 시장에 처음 당선되어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을때,
자치단체 교부금 문제로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박근혜를 향해 농성을 할때,
경기지사가 된 직후 불같이 화를 내며 기자들과의 당선인터뷰를 중단해 버렸을때,
장문의 비판글을 쓰기도 했다.

3. 그런 내가 지금은 이재명을 지지한다.
어떤 특별한 정치적 인연이 없었으나, 이미 경선전부터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물론 김부겸이 경선에 출마했다면 김부겸을 지지했을 것이고, 김경수가 출마했다면 김경수를 지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김부겸이나 김경수가 이재명보다 더 훌륭하거나,
국민들에게 이 시기 더 필요한 지도자라서가 아니라,
내 선호도와 정치취향에 더 걸맞는 정치인들이어서 그렇다.
사실 되어보기전에야 누가 더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지도자감인지 어찌 알겠나.

그렇게 내 선호도에는 맞지도 않고, 소문과 진실을 포함해서 그가 걸어온 삶이 영 껄적찌근하지만,
그것들이 대통령을 해서는 안될 정도로 치명적이냐하면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다수의 대중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길래, 이재명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나는 대중의 판단이 반드시 내 생각보다 허술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4.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몇가지를 뜯어보았다.

제일먼저 전과 4범 논란은 사실 음주운전 한건을 빼고는 이렇다할 범죄행위랄만게 없다.
검사 사칭 논란은 벌금액에서 알 수 있듯, 악의나 고의성이 없었고,
나머지는 선거법과 대부분의 운동권들이 가지고 있는 싸움과정에서의 벌금 수준이었다.
가장 큰 음주운전은 분명히 잘못된 범죄행위가 맞지만 이미 20년전의 일이고, 그가 정치를 해오는동안 충분히 그 죄값을 과하게 치를만큼 정치적 비난을 받고 또 받았을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이것을 두고 전과 4범이라 비난하는 것은,
과거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전력을 온통 전과로 치부시키는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화운동인사들의 범죄란것도 사실 보안법이나 집시법만 있는게 아니고, 폭행과 도로교통법위반등 뭐 이러저런 잡범 수준의 전력들이 얼마든지 많다.

형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건, 뭐 썩 흔쾌하지 않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여배우와의 염문설이나 형수에 대한 욕설은, 내가 가장 많이 비판했던 광화문 농성이나 인터뷰중단이나 기본시리즈보다 훨씬 중요치 않은 문제다.

최악의 진실을 상정한다손 치더라도 그의 사적행보들이, 대중의 삶을 책임지는 공적일에서 폭력적으로 이어졌다는 어떤 정황도 없다.
성남시장 8년과 경기지사 4년에서 그는 비교적 일잘하는 목민관으로 평가받았고, 그의 공적미래는 이 12년의 증명된 시간에서 찿는게 더 합리적인 태도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의 12년에서 몇가지 납득못할 문제들을 발견했지만, 대중들은 나보다 훨씬 더 그의 시정.도정활동에 우호적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발견한 문제들이
경선과정에서 이낙연이나, 본선에서 윤석열.안철수의 단점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말할 순 없다.
공직자로서의 단점은 더 크지 않고, 강점은 더 크게 보였다는 얘기다.

5.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정치인을 좋아하고, 싫어할 자유가 있다.
김근태와 김부겸을 좋아할 수도 있고,
윤석열이나 안철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그 선택을 누군가가 비난한다면 잘못된 쪽은 정치적 선택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이다.

이재명을 싫어할 수 있다.
어쨌건 소란스러운 가족사가 싫을 수 있고,
천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삶의 궤적과 포퓰리스트로서의 행적이 싫을 수도 있고,
지금은 많이 순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본성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거친 성정과 좌파적 사고가 싫을수도 있다.

다만 자신이 디디고 있는 삶의 영토와 다른 토양에서 성장한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그리는 이상적 정치인상과 너무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아닌것을 진실인양 몰아가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거다.

그래서 전과 4범이라는 비난은 음주운전전력을 욕하는것보다 훨씬 야비하다.
어쨌건 전과 4범 아니냐고 반문하는건 너무 뻔뻔하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중 민주화인사를 전과자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테니까.

화천대유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없다해도 분명히 무엇인가 있을것이라 함부러 추정한다.
그가 만약 김근태나 문재인이나 김부겸의 삶의 행적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적어도 지금쯤이라면 그들의 말과 해명을 진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재명의 과거사가 좀 파란만장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공적지위에서 일어났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사적과거를 가지고, 12년동안 다른 범죄행위가 없었던 명백한 전력이 있는데도,
검찰수사가 꽤 진척되는동안, 아직까지 아무것도 드러난게 없는 사건에 대해 일방적으로 추론하는건 따지고보면 한 공적인간에 대한 인격살인이다.
이런 일방적 추정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더 무서운건 두사람의 죽음에 관해서 어쨌건 이재명과 관련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었으니 찝찝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두 사건은 엄연히 별개의 사건이다.

하물며 한명은 심근경색이라는 사망원인이 분명히 밝혀졌고,
또 다른 한 명은 검찰의 과잉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과 잘못이 없다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 죽음에 대해 오히려 상대인 윤석열이 검찰에 대한 해명성 발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두 사건을 엮어서 이재명의 문제로, 심지어 마치 죽임을 당한것 아니냐는 쪽으로 상상하고 몰아가는 것은 잔혹해도 너무 잔혹하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던 좀 불량해 보이는 행인에게, 그의 태도가 거칠게 보인다하여 살인자의 누명을 씌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사인은 살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치이전에 인간으로서 한 인간에게 함부러 씌울 덫이 아니다.
그렇게 덫을 씌우고 싶은건 아무리 정치적 의사가 다르다해도 심각한 야만이다.

2000년대 중반쯤 열린우리당에서는 여섯명의 당직자가 죽었다.
고작 100여명 당직자들의 연령은 대체로 죽음과 거리가 먼 30.40대 젊은층이었기에 단 한명이 죽어나가는것도 흔치않을 일인데 그 짧은 시간동안 6명이 세상을 등졌고, 죽음의 이유도 심장마비, 교통사고, 살해등 제각각이었다.
이 기막힌 우연의 연속을 민주당 탓이라 말할 수 있겠나.

오히려 그런 상상과 추정이야말로 합리적 인간이 가장 멀리해야할 정신적 범죄행위다.

6. 이재명은 지금까지 특히나 좌파지식인들에게 익숙치 않은 좀 다른 정치인이다.
정통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그는 좀 사이비같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에게 또 열광하는 대중들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의 가치판단에 따른 다름이다.
그리고 적어도 민주당이나 진보 블록에서는 그의 쓰임새를 더 귀중하게 보는 사람들이, 그를 폄훼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찍을 사람이 없다는 푸념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소회일뿐, 일반론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대중들은 이재명에게 환호하고, 윤석열에게 열광한다.
적어도 대중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보다 이 지점을 존중하는게 우선이다.

대한민국은 계급사회도 아니고,
사적 과거가 공적 미래에 반드시 투영되는 것이 정의실현도 아니다.

과거가 질박했던 천민도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고,
부박한 사적과거가 있는 사람도, 성정이 거친 사람도,
대중과 호흡하며 국가를 이끌수 있어야 한걸음 진보한 사회다.
애당초 그 고난의 운동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바로 누구나 편견에 갇히지 않고, 관습을 뛰어넘어가는 이런사회 아니었던가.

취향과 선호야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상상력과 추정만으로 한 인간을 질곡에 가두고,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자격을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진화를 위해 앞서간다는 사람들이 버려야할 가장 전근대적인 결정론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