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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금요일 큐티- 사사기 9장 1-6절.- 임미순 목사 본문

성경과 영성신앙/복음과 구원

11월 19일 금요일 큐티- 사사기 9장 1-6절.- 임미순 목사

柏道 2021. 11. 19. 11:38
11월 19일 금요일 큐티- 사사기 9장 1-6절

기드온의 아들은 70명이다. 그중 2명이 성경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들이 아비멜렉이다. 아비멜렉의 뜻은 “내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이다.(멜렉:왕)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첩으로부터 낳은 아들이다. 그 첩은 이방여인이다. 이로보건대 어쩌면 아비멜렉은 다른 형제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기드온이란 이름대신 “여룹바알”이란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기드온의 다른 이름이다. 여룹바알의뜻은 “바알과 다투다”란 의미인데 기드온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아비멜렉이 등장하면서 이제 여룹바알이란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아버지 기드온은 바알과 다툰 인물인데 그 아들 아비멜렉은 이제 하나님과 다투는 인물로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의도성이 엿보인다.
암튼 이제 아비멜렉이 그의 모친의 고향인 세겜에 방문한다. 그 목적은 이곳에서 왕이 되고자 함이다. 왕이 되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의 왕의 길에 걸림돌이 될 일들을 제거하고자 한다. 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이제 세겜땅에 와서 자기의 혈연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세겜성의 거주자들은 바알 숭배자들이다. 그는 가장 이들의 지지를 얻어서 왕이 되고자 한 것이다. 자신이 왕이 되도록 자신을 선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할 정당성으로 다음 2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자기 한 사람이 세겜을 다스리는게 낫느냐? 아님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이 모두 다스리는게 낫느냐?라고 질문한다. 모두 다 여룹바알의 아들들이니 모두 자격들이 있는 때문이다. 우리는 앞장에서 기드온이 백성들로부터 왕의 즉위를 요청받았을 때 거절한 것을 봤다. 기드온은 오직 여호와만이 우릴 다스릴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내가 다스리는게 어떻겠느냐?”라고 스스로 왕의 자리를 구한다. 사실 기드온의 나머지 아들들도 모두 왕이 될 자격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비멜렉이 와서 마치 그들 모두도 왕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을 교묘하게 바꿔서 말하고 있다. 즉 나머지 70명도 왕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기드온이라 하지 않고 일부러 여룹바알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교활한 작전이다. 세겜인들은 앞에서 말했듯 바알 숭배자들이다. 아비멜렉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들먹이며 그들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룹바알은 “바알과 다투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아비멜렉의 이 작전은 참으로 정치적이라 할 수있다. 정치는 이토록 메마르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다. 아비멜렉은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의 아들들에게도 등을 돌릴 것이라는 것을 머리를 굴려 짐작한 것이다.


자 이제 두 번째 이유는 아비멜렉이 자신들의 “골육 즉 뼈와 살이기 때문이라는”것을 상기시킨다.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2절 후반)
여기서 골육이란 단어를 내세운 이유는 “내가 너희의 친척이니 나를 왕으로 세워 서로 덕을 보자는“ 뭐 그런 의미인 것이다.
아비멜렉은 이처럼 외가친척의 연합으로 세겜 인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아비멜렉의 회유에 말려들어 그의 충성스런 지지자들이 된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세겜인들은 아비멜렉이 우리의 형제이다라고 말하게되고 점점 더 그들의 호의를 얻게 된 것이다. 아비멜렉의 작전은 성공하여 드디어 왕이 된다.
그리고 이제 세겜인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아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바로 자신의 이복형제 70명을 그대로 죽이고 만다. 그리고는 바알브릿이란 신전을 짓고 세겜인들로부터 70세겔에 해당하는 은을 후원금으로 받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이제 하나님 대신 바알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70세겔을 바치는데 이는 참으로 교묘하고 잔인하다. 세겜인들이 바친 이 70세겔은 아비멜렉이 죽인 70형제에 해당하는 말하자면 목숨값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수 있다. 결국 아비멜렉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지지가 아닌 바알의 지지를 받고 된 것이라 해석된다.
그 이유는 이전에 그의 아버지 기드온은 바알 신상을 부수고 수소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을 보였었다. 그때에 오브라의 바알숭배자들은 이러한 기드온에 감히 보복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아비멜렉의 그의 형제들의 죽임에 대해 결국 세겜의 바알 숭배자들은 기드온에 보복한 것이다. 아비멜럭은 그가 받은 후원금으로 무모한 무법자들 곧 그의 형제 70인을 오브라로 가서 한 바위 위에서 무참히 사살한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왕들을 죽여서 자기 형제들의 복수를 하지만 여기 아비멜렉은 자신이 왕이 될 욕망으로 자기 형제들을 죽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기드온의 권세와 부의 상징이었던 그 수많은 70명의 아들들은 한 아들로 말미암아 다 죽임을 당하게 된다. 형제가 모두 살육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아비멜렉의 잔인한 폭력성이 여기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나....바위위에서 그의 형제들 70명을 죽인 아비멜렉의 죄의 결과는 나중에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전 말씀에도 봤듯이 “보복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다.” 보복하면 그 보복의 결과는 반드시 본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형제들 70명을 바위 위에서 처단한 아비멜렉은 나중에 후에 가면 멧돌짝에 머리가 부서져 죽게 된다. 무시무시한 결과이다.
54절에 그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그 형제들이 당한 그 죽임을 반드시 기억하신다고 56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아비멜렉이 그의형제 칠십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자 그런데 여기 70명의 형제들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이다. 요담은 가까스로 스스로 숨음으로 살아남는다.
마침내 아비멜렉은 왕으로 추대된다.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자...사실 아비멜렉은 참으로 뛰어난 전략가이다. 정치적 수단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기드온의 아들로서 아들 영특한 사람이다. 그가 부리는 전략과 전술들은 아주 교묘하고 교활하다. 아비멜렉의 정치적 선동에 세겜인들은 그냥 꼼짝없이 넘어가고 만다. 말하자면 70인의 형제들은 도대체 왕이 될 욕심도 생각조차도 없는데 아비멜렉이 마치 그들이 그런 생각을 품은 것처럼 교란하고 속임으로 결국 세겜인들의 환심을 산 것이다. 대단한 정치적인 전략가이다. 또한 본인이 자기 어머니의 골육이니 혈육이니 하면서 즉 외가의 핏줄을 강조함으로 환심을 얻는다. 요즘 정치인들의 선거 유세 장면과 사뭇 비슷하다.
아비멜렉은 똑똑한 머리로 왕은 되었으나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한 것이다. 칼로 세운자는 칼로 망한다. 이로써 아비멜렉은 왕은 되었으나 결국 사사는 되지 못한다. 즉 아비멜렉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사사의 반열에는 들지 못한다.
사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 스스로 왕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역사에서 먼저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신다. 그리고 지금껏 이스라엘 역사엔 왕이 없었다. 기드온 마저 왕의 자리를 마다했는데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자처하면서 그의 이복형제들을 다 죽이기 까지 한 것이다. 이는 가인의 죄보다 더 큰 죄에 해당한다. 그 결과는 자기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보다 절대 앞서서는 안된다. 먼저 하나님이 부르시는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봐야 한다. 하나님보다 앞서서 자기의 머리와 자기의 계획으로 몬가를 이루려고 할땐 반드시 무리가 따른다.
하나님은 먼저 자기에게 묻고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보다 먼저 앞서는 것이 좋지 않다. 어떤 때는 정말 자기 생각에 이렇게 하면 잘 되겠다..하는 때에라도 먼저 하나님께 묻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어디로 갈까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보신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이뤄가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뤄가신다.
우리모두 항상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하나님 뜻을 먼저 묻고 구하고 답을 얻어 하나님께 쓰임받길 기도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귀한 말씀 통해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을 앞세움으로 넉넉히 이겨 승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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