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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시원 이야기
김홍신님의 대발해와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님의 단기고사와 삼일신고
푸른하늘
2010. 12. 22. 20:04
김홍신님의 대발해와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님의 단기고사와 삼일신고 서문 - 민족혼과 국혼을 세워야 평화로운 대국이 될 수 있다! 책(영택의 독서 클럽)
2010/11/19 13:54
http://blog.naver.com/digitalan/10097839359
제목: 김홍신님의 대발해와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님의 단기고사와 삼일신고
- 민족혼과 국혼을 세워야 평화로운 대국이 될 수 있다!
○ 대야발 (617(?)년~ 742년)
대진국(大辰國) 즉 발해국의 태조(太祖) 성무고황제(成武高皇帝)인 대조영(大祚榮)의 동생.
고구려 때의 사서와 문서 등을 모으고 비문을 확인하였으며, 돌궐국까지 여러 번 답사하는 등 13년의 노력 끝에 발해문으로 쓴 ‘단기고사(檀寄古史)’를 완성. 삼일신고서문을 씀. 고구려 멸망과 함께 잃었던 삼일신고를 복원.
고구려 때 서와 문서 등을 모으고 비문을 확인하였으며, 돌궐국까지 여러 번 답사하는 등 13년의 노력 끝에 발해문으로 쓴‘단기고사(檀寄古史)’를 완성하였습니다.
단기고사는 약 300년 뒤 황조복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고는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1905년 정해박(鄭海珀)이 한문본을 국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또한 고구려 멸망과 함께 잃었던 삼일신고를 복원해내기도 했습니다.
단군조선 이래의 찬란한 정신문명을 가직한 고구려를 계승하여 그 폐허에서 일어나 다시금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삼일신고의 기림글을 쓰신 자신의 형님이자, 발해의 태조인 대조영의 덕을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삼일신고 서문에 남긴 글을 보면,
'무릇 이 세상 만물은 모습은 있으나 그 만물을 내보내는 참임자는 모습이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만물을 빚어내고 돌리고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이가 곧 한얼님이요. 그 있음을 빌어 세상에 나고 죽고 웃고 아파하는 것들이 바로 사람과 이 세상 만물이다.
처음에 하느님이 주신 성품에는 본래 참과 거짓이라는 게 없었으나 사람이 그것을 받은 뒤 깨끗함과 더러움이 생겨났으니, 그것은 마치 백 갈래 시냇물에 달 하나가 똑같이 비치고 같은 비에 젖지만 만 가지 풀이 다 달리 피어나는 것과 같다.
가슴 아파라! 모든 이들이 갈수록 악하고 어리석어져 마침내 어질고 슬기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며, 마음 속 어지러운 불길이 서로를 불태워 세상을 불구덩이로 만들고, 서로 다투는 허망한 생각 먼지가 청정한 마음의 근본을 가려 버렸다. 그로 말미암아 흥하듯 망하고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이 마치 아침 햇살 아래 노는 하루살이와 같고 밤 촛불에 날아드는 가엾은 나방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는 어린 아들이 우물에 빠지는 것보다 더 큰 일이니 어찌 자비로운 아버지가 그냥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이것이 무릇 큰 사랑과 큰 지혜와 큰 힘을 지닌 하느님께서 사람 몸으로 화하여 세상에 내려오신 까닭이며, 또 가르침을 펴고 나라를 세우신 까닭이다.
이 하늘 말씀은 진실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가장 높은 참 이치이면서 뭇사람들을 밝은이가 되게 하는 둘도 없는 참경전이니 그 깊고 오묘한 뜻과 밝고 빛나는 글을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출처: 한민족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http://www.koreapark.org/CyberTour/Defense.aspx?topMenuCd=2&leftMenuCd=03
우리나라 역사책의 하나로 발해국 시조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이 천통 31년(서기 729년)에 쓴 단기고사(단제조선과 기자조선에 관한 역사책)에 의하면 단제조선의 단군 제11세 도해 재위 56년(기원전 약 18세기)에 송화강변에 기계공장을 설치하였고 국내에 신기계를 현상공모하여 상을 주었다는 내용과 함께 상을 받은 발명품 중 "자행륜거<自行倫車>"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설계도면이나 실물은 없지만 문헌상의 기록에 의한 세계 최초의 자전거가 아닌가 합니다.
출처: 네이버지식인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0&dirId=100501&docId=118659270&qb=64yA7JW867Cc&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MUYIloi5UZsssJduwhsss--503695&sid=TOXq4SHq5UwAAFXCBVc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699년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둔화현(敦化懸)에 나라를 세웠는데,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 왕호는 고왕(高王)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돌궐과 국교를 맺고 신라, 당나라와도 통교함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의 국제적 자립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후, 호전적인 유목민족 돌궐과의 불안한 동맹에서 벗어나고 발전된 당의 문물 유입을 통한 왕국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713년, 대조영은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국으로 고쳤습니다.
다음은 발해의 태조 대조영이 직접 무릎을 끓고 앉아 향불을 피우고 삼일신고를 읽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배달국과 단군조선, 고구려 그리고 발해를 잇는 우리 민족 지도자들이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하기 위한 기본 수행의 모습이었음을 잘 알게 합니다.
“ -전략-
짐이 대업을 계승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조심하고 삼가왔으나
사방이 막힌 듯 깜깜하고 그릇됨이 달라붙으니
어떻게 하여야 이로부터 벗어나 오를 수 있으리
향불을 피우고 꿇어앉아 삼일신고를 읽으니
느낌(止感)과 호흡(調息)과 촉감(禁觸)이
이로서 고요해지고 맑아지도다.
바라옵고 비옵나이다.
부디 모습과 소리 없으신 가운데
옆에서 감싸고 도우시어
떨어짐이 없고 무너짐도 없게 하옵소서.”
천통16년(서기715년) 시월 길일 제
출처: 한민족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http://www.koreapark.org/CyberTour/Defense.aspx?topMenuCd=2&leftMenuCd=03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D589FF63F56339AFDAA99D6A553FBF3DD2BF&outKey=V1254d450ac74dc96912695d436f0275ca207d39bf71300a0395f95d436f0275ca207
▶KBS 사극에서 대조영의 역할을 했던 최수종씨의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개원 및 개천절 축하 영상
김홍신(金洪信·60) 전 의원을 다시 만난 것은 그가 2003년 9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국회의원직을 그만둔 후 거의 3년 만이었다. 김홍신 의원실은 의원직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오염 사건을 터뜨리는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아 기자들의 출입이 잦았다.
대제국 발해
▼ 발해와 관련된 유적, 유물, 기록이 드물어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랬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정혜공주 비문과 건국자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가 고작입니다. 우리와 관점은 좀 다르지만 북한에서 나온 연구서적도 도움이 됐습니다.”
▼ 취재답사를 많이 다녔습니까.
“발해는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었습니다. 총연장 4300km에 사방 5000리(1리는 5.6km)에 달하는 대제국이었으니까요. 2005년과 2006년 여름 두 번을 다녀왔는데, 법륜스님과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부터 항일운동 유적지까지 다 훑었습니다. 발해의 첫 수도이자 시조산인 동모산은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데 재수 좋게 올라갔다 왔어요. 정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습니다.”
▼ 발해 소설은 언제부터 구상했습니까.
“1986년 처음 중국을 갔을 때 그곳 재야 사학자로부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점점 사실이 되어가더라고요. 1998년 국회의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미 그때는 ‘동북공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어요.”
발해 유적지에서 온갖 수소문을 해 기와 파편과 유물조각 등을 어렵사리 구해 들여오기도 했다.
말갈은 발해의 일부였을 뿐
대조영에 제사 지낸 천손(天孫)
▼ 좀전에 우리 역사가 모화사상에 젖어 있다고 하셨는데.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오랑캐 이(夷)자를 보세요. 큰 대(大)자 안에 활 궁(弓)자가 들어간 형세입니다. 본래는 군자를 의미하는 글자였죠. 따라서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 사는 군자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번역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중국 사서에서 할 위(爲)자를 번역하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낸 국서는 ‘하라’라고 하고 우리가 중국에 보낸 국서는 ‘하옵소서’로 번역한 겁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소설에서 이걸 하나하나 바로잡았죠.”
▼ 소설을 쓰면서 제사를 지냈다지요.
“2005년 여름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 고구려 국내성이 자리잡았던 중국 지안(集安)현 통천동(通天洞)에서 환인, 환웅, 단군, 대조영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앞뒤가 다 트인 이상한 굴인데 너비가 20m, 높이가 6m나 됩니다. 그곳에 서면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동의 의미를 알 수 있어요. 고구려와 발해의 왕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 즉 천손임을 인정받았죠. 당시 하늘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나라는 고구려뿐이었고, 발해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발해가 고구려의 역사를 이은 나라이며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 소설의 시작과 끝이 다 민족사의 가슴 아픈 시기군요.
“교훈을 얻자고 그렇게 했어요. 작품을 쓰면서 우리를 포함해 각 나라의 멸망사를 훑어봤는데 비슷한 특징이 있었어요. 첫째는 좌우, 상하의 치열한 갈등과 분쟁입니다. 둘째는 상류층의 호화사치, 셋째는 지도층 인사들의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둡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가 부패했다는 뜻), 넷째는 민심이반이 지나쳐 천심을 거스름, 다섯째는 외침(外侵)입니다. 우리는 IMF 관리체제 때 이미 외침을 당해 패망한 경험이 있지요. 요즘 전쟁은 총칼을 앞세우지 않는 경제전쟁입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출처: 신동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0023
[출처] 김홍신님의 대발해와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님의 단기고사와 삼일신고 서문 - 민족혼과 국혼을 세워야 평화로운 대국이 될 수 있다!|작성자 새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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