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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사상의 기원과 발전 본문
도교사상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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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comeWest
2021. 3. 22. 10:22
1.도교사상의 기원
도교는 중국의 토착종교로서 선진시기의 신선사상이 장기간에 걸쳐 발전해오면서 도가 사상과 중국고대의 무술(巫術)이 서로 결합되어 동한 말년에 형성되었다.
신선(神仙)신앙은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주요한 문헌기재로 한 나라 사람들이 편찬한 사서가 있다. 선진시기 신선 장생의 신앙과 관련 있는 신화전설은 초(楚) 문화와 연제(燕齊) 문화 이 두 가지 계통의 속에 존재한다. 시선설은 인류의 장생불사에 대한 추구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좌전>중의 안앵과 제경공의 대화, 제국(齊國)의 명문(銘文) 속에는 그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장생불사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신선이다. 따라서 신화(神話)라는 것은 신선이 되어 오래 살고자 하는 신앙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곤륜(崑崙)신화로 서방의 곤륜산 위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옥석의 정화를 먹었는데 그 위에는 선인과 불사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힐강(顧纈剛)은 <장자>와 <초사>중에서 곤륜과 봉래 두 종류의 신화가 융합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고 서구인은 신을 말하지만 동양인은 시선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봉래신화가 곤륜신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곤륜신화는 서부고원지대에서 발원한 괴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동방에 전해진 이후로 대해라는 자연조건과 결합하여 연오재월(燕筽齋越) 연해다가 전국시대 중 후기에 이르러 새로운 여사 조건아래에서 사람들에 의해 결합되어 새로운 통일된 신화세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신선신앙은 결코 중원문화와 동이(東夷) 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문일다(聞一多)도 역시 도교신앙의 기원은 서강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시기의 신선사상을 언급할 때면 대부분 <장자>,<초사>와 사기(史記)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장자>와 <초사>는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어느 한 시기에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신선사상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신선사상이 유존과정 중에서 점차 다른 사상설과 서로 융합되어 갔으며, 동시에 적송, 왕교 등과 같은 많은 신선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려준다.<전국책>,<한비자>등에는 제후들에게 불사약을 바쳤다는 기재가 나온다. 이 당시 사회에는 이미 신선과 선약을 말하는 “방사”들이 출현했었다. 진시황때 이르면 이들 방사의 말에 따라 불사약을 구하러 동남동녀로 바다 건너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고, 무제때는 이소군, 소옹 등 방사들이 군주의 총애를 받으면서 신선신앙의 영향은 날로 확대되었다.
선진시기의 기학(氣學)은 신선사상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관자(管子)>중의 내업 (內業)편은 선진시기의 기학을 대표하는 도가의 한 가지이다. 중국의 기학은 중국적인 것이고 “형기(氣形)”의 관념은 후대에 나온 것이다. 그들은 정기(精氣)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을 설명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형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기는 천지간에 흩어져 있는데 이를 “도(道)”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도는 천지간에 흘러나왔을 때 귀신을 만들어 낸다. 물체에 들어가면 사람, 생물, 생명의 빛이 있는 천체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정신과 지혜는 바로 이 “천지의 정신”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천지로부터 기를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를 얻는 방법이 정신의 고요한 사색과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신(神) ”이라는 것도 기인데, 정기 신 (情氣神)이 세 개념은 여기서 그 내용이 같다. 선진시기 사람들이 말했던 기는 대부분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
정(精)은 점차 생명활동과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어졌다. “정기는 모이게 되면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데 날개 달린 새에 모이면 날게 되고, 걸어다니는 짐승에 모이게 되게 되고, 주옥에 모이게 되면 영롱하게 빛나게 된다. ”이렇게 생물과 혹은 무생물에 깃들이 공능과 신기한 현상은 모두 정기를 받아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산(子産)은 이것을 “물정(物精)”이라고 불렀다. 기학과 음양오행설이 결합하면서 많은 구체적인 이름을 생겨나게 했으며, 음정(陰精) ,양정(陽精), 오행지정(五行之精), 오방지정(五方之精)등이 어떤 금수도 상응하는 정기를 받게 되면 능히 정(精)이 되고 괴(怪)가 되고 신이 돌 수 있다고 믿었다.
신(神)이라는 개념은 고대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변화(變化), 정신(精神, 神明), 신령(神靈)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기와 본질적으로 관계가 있다. 인격적 의미의 신령이 바로 기이다. 기학의 영향으로 중국고대인들은 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렸고 어떤 정신상의 기를 받은 신으로 변화 되었다. 천지간의 정기가 사람에게 들어와 어떤 부분에 멈춘 것이 바로 어떤 기관의 신이 된다. 도교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이런한 몸의 신이 많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오장신(五臟神)이고 그 외에도 발신(髮神), 비신(鼻神), 이신(耳神)등이 있다.
이상의 사상은 모두 도교와 관련이 있다. 진한시대의 전적에서 기학이 신선신앙과 결합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신선사상은 한 대에 이르면 중국고대의 종교신앙과 무송이 결합해서 하나로 발전한다. 많은 도교사의 저작들은 중국고대 종교와 무술이 도교의 래원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도교가 흡수한 고대종교신앙과 무술 중의 대부분은 신선사상과 기학신비주의의 이 중 흡수와 개조를 거친 것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선신앙 역시 이런한 중국문화의 각 부분에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 한 대에는 이것이 바로 각종 방술(方術) 예를 들자면 복식(服食) ,방중(房中), 환단금액(還丹金液)으로 표현되었다. 이외에도 본래는 신선장생과 무관한 잡술이 한 대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또한 이후에 도교에 의해 흡수되었다.
한 대에 황로(黃老)사상 역시 신선 상이 도교로 발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한초의 황로학은 주로 황제지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대 양생으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황로학의 주요 경향이 되었다. 학술이 황로를 숭배하는 것으로 홍로도(黃老道)가 출현했던 것이고 이 때 노자도 신격화되기 시작했다.
2.“도교”라는 명칭의 기원
도교의 본뜻은 ‘도“를 설한 ”가르침“이다. ’도‘는 유가, 도가를 비롯한 모든 제자학설의 중심이며 중국민중의 의식 밑바탕에 존재하고 있다. ’도교‘라는 말이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사례는 <묵자>에서이다. 여기서 도교는 유가의 가르침.”성인, 선왕의 도에 대한 가르침“,”성인이 도를 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후대로 오면서”도를 설한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혹은 유교를 혹은 불교를 가르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방술, 주술, 도술이 혼동되어 왔고, 그 도술에 유가, 도가를 비롯한 ‘제자 백가’더 나아가 ‘술수(術數)’, ‘방기(方技)’, 등 각 요소가 혼합되어 쓰였던 후한 시대에는 ‘황로’신앙의 객체화가 진행되었고 농민 민중신앙에 의한 구체적 집단인 도가 성립되었다. 후한대에는 ‘황로도’,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생겨났다. 또한 동진이후 나타난 ‘천사도(天師道)’도 그 한 예이다. 그런가하면 동진이후에 훗날의 유불도, 삼교 중의 도교를 ‘도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도가’라는 말은 전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사기의 다음과 같은 설명 “음양의 큰 순리에 따르며 유.묵(儒. 墨)의 선을 채용하고 명. 법(名.法)의 요체를 섭취하고 때에 따라 움직이며 사물에 응하여 변화한다.” 말에서 볼 때 그것은 다양한 학파를 종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가사상에 황제(黃帝)가 결합된 것은 전국말 부터이고 전한 초에 이르면 황제를 도가의 시조로 보아 ‘황제지술’, ‘황로도덕지술’, ‘황로..지언’, ‘ 황로’ 등과 같은 표현이 <사기>곳곳에서 보인다. 따라서 전한 초에는 ‘황로’가 도가와 같은 내용으로 생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진초의 갈홍의 <포박자>에 이르면 ‘도가’의 많은 요소가 포함되고 훗날의 이른바 ‘도교’의 내용과 가깝게 된다. 갈홍은 도가의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신선(神僊), 금단(金丹), 양생(養生), 연년(延年), 방약(方藥)등을 중심으로 중국 전통문화의 과학적인 면을 중시하여 훗날의 도홍경과 함께 도교과학에 있어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5세기경 북위에 구겸지는 삼교주의 불교 또는 도교를 도교라고 부르는가 하면 후세에 도교를 도가라고 하여 도교가 포함하고 있는 각 요소를 총괄적으로 서술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도교’는 최초에는 ‘성인의 도’를 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유불의 가르침까지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5세기에 도가만을 도교하고 부르게 된 것 같다. 도가가 유교, 불교에 대항해서 도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사실상 도교가 하나의 큰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사실들도 위와 같은 성립사를 방증한다.
일반적으로 도가는 철학이고 도교는 종교라고 구분하지만 이는 편의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도가의 철학적 측면과 도가의 종교적인 측면이 합쳐저서 도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3. 도교 발전사
갑골문에 의하면 은대인 들은 나라의 행사와 왕의 일상 생활등을 행할 때 모두 점을 쳐서 신의 의사를 물었다. 당시 제사지냈던 신들은 은왕직계의 선조신, 동맹제족의 선조신, 원래의 신하들, 산, 강, 바람, 토지, 그외의 자연신, 천계의 신등이었을 것이다. 발굴된 부장품으로 보건대 당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은 내세가 서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뒤에 가서 신선설의 성립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 것 같다.
주대에는 은대의 생각이 발전한 결과였는지 혹은 서방이나 북방의 유목민족 사상의 영향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늘(天)에 대한 관념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천자(天子)’라고 부르는 존재가 생겨났다. 이 천은 위의 상제와 똑같은 신격을 가진 것으로 정치, 종교 방면에서 권위를 가지게 되는데 천명은 뒤에 인간이 행하는 것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되었다.
전국시대가 되면 제자백가라 불리던 여러 학파와 사상가가 나타났는데 그 중에는 특히 유교에 강한 반대를 표명하고 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도가가 있었다.
4.도교와 도가 사상
도가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 다시 말하면 우주와 인간사회의 상호작용, 신간의 주기적 성격과 우주의 리듬, 복귀(反者道之動) 등의 법칙이다.
ㄱ. 우주와 자연질서의 개념
우주론: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고 했다. 이는 중국 고대사상의 중에서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려면 각자의 신분에 걸맞는 내용을 갖고 책임을 보아한다는 정명론(正名論)과는 그 범주에서 다른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모태(母胎)이다.” 즉 무명과 유명, 무와 유는 상호의존적이며 영원한 도의 양측 면이다. 무는 아무 것도 없음이 아니라 감지할 수 있는 질(質)이 없음을 의미한다. 노자에게서 무는 유보다 상의 개념이다.
*소우주와 대우주 개념: 인간은 대우주에 대응하는 소우주이다. 인간과 사이에는 그 체계에서 일치하는 점과 연관성이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질서가 통일적으로 융합되어야 한다는 신비로운 사상은 중국사상의 고유한 특징이며 도가가 특히 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도에로의 복귀: 자연질서로서 도의 법칙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이 애초에 시작한 시점을 계속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휘어지면 온전하게 되고 굽으면 곧게 되고 움푹 패이면 꽉 차게되고 낡게 되면 새롭게 되고......등등은 모두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라는 법칙에서 나온 말이다. 삶과 죽음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무’에서 ‘유’로 다시 ‘무’로 반복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 놓여 있지만 그 기초가 되는 최초의 합일성은 상실되지 않는다.
*발전과 분화: <역경(易經)>의 오행과 64개의 이론에 따르면 변화 자체는 어떤 체계를 가지고 일어나며 또한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장자의 생각은 도공과 장인의 활동. 즉 ‘형성시키고 변화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동일한 과정의 두 국면이다. 즉 미지의 도가 태초의 혼돈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우주를 형성시킨다. 그리고 음(陰)과 양(陽)의 반복에 따른 우주의 영원한 변화 (밤과 낮, 겨울과 여름 같은 것)는 동일한 도의 바깥 면에 지나지 않는다.
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개념
*무위: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과장하지 않음을 뜻한다.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고 인공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완전한 행위란 그 뒤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모든 자연의 과정에서 인위적인 것이 끼어 들게 되면 그것은 항상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되거나 실패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무위 없이는 진정한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도가 원시 사상의 사회적 이상: 초기의 도가 사상에서는 계획적인 인간의 간섭은 자연의 변화과정의 조화를 깨뜨리게 된다고 믿었다. 원시 농경사회의 자연적인 리듬과 자연의 커다란 움직임 속에서 사심 없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도가가 이상으로 여기는 사회이다. 장자는 유가에 의해 찬양되는 문화 영우이나 문화. 제도의 창시자, 사회의 의식과 규범을 만든 성현들까지도 비난했다. 심지어는 ‘지식욕’ 까지도 그것이 경쟁심을 자아내고 물욕을 자아내어 분쟁을 일으킨다고 하여 비난했다.
*지식과 언어에 대한 사상: 장자는 중국의 논리학자인 혜시로 부터 자극을 받아 그의 지식 과 언어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도가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와 만물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의견대립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전체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부분적인 진리를 절대적으로 간주 할 때만 일어난다. 따라서 장자가 생각하는 성인(聖人)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등과 같은 관념의 상대성을 완전히 인지한 사람이다. “그대가 변론(辨論) 할 때면 그대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다. 가장 위대한 도는 어떠한 이름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변론에서는 어떠한 것도 말해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동일성: 신비로운 깨달음은 자아와 세계사이의 구분을 없앤다. 이러한 사상은 죽음에 대한 장자의 태도를 규정지었다. 삶과 죽음은 단지 낮과 밤, 여름과 겨울처럼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기적인 단계의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 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거대한 베틀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베틀에서 나오 베틀로 돌아간다.” 일상적인 지(知)의 분별을 잊은 망(忘)의 상태에서 본다면 생시의 장자와 꿈에서 나비가 된 장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려운 것처럼 생과 사를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의 종교적 목표: 유교에서 성인(聖人)은 고대의 의례를 회복하는 길을 가르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도가의 성인개념이 정적주의(靜寂主義)를 통해서 세상을 도의 길로 인도하는 외왕(外王)에 의해 분명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가에서의 성인은 내성(內聖)이다. 보통사람은 세속적인 탐욕과 부, 특히 일상적인 지(知)에 의해 흐트 려지고 자신의 힘을 마르게 하지만 성인은 “통일성을 파악하고”, “하나를 굳게 잡는다.”(抱一) 즉 성인은 의식의 기초를 이루는 태초의 혼돈상태의 도를 가지고 통일성을 회구한다. ‘통일성의 파악’ 은 또한 자기 자신 내부의 음양의 조하를 유지하고 혼(混)과 백(魄)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혼백을 보존하고 조화시키는 것은 육체적인 생활을 위해서와 똑같이 인간의 실재 전체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다. 옛 도가의 진인(眞人)들은 오랜 삶을 통해 스스로를 함양함으로써 성인이 되었다. 그들의 장수(長壽) 자체야말로 그들의 성인다움과 도와의 일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오며한 성찰 속에서 장자는 육체적인 수행을 통하여 장수와 불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렇지만 육체적 불사는 도교 신비주의가 전개됨에 따라, 그리고 이전부터 오랫동안 도가의 목표였다.
*상징주의와 신화: 도가들은 그들의 좌망(坐忘) 상태에서의 통찰력을 상징과 우화를 사용해 표현했다. 예를 들면 도는 골짜기와 같이 낮으며 수동적이고, 물과 같이 유연하며 생명력을 주는 것이다. 또한 수레의 축이며, 들보이고, 바퀴의 비어 있는 중심이라고 했다. 많은 고대 중국이 신화는 도가에 의해 보존되었는데 그들은 도가의 사상을 예시하기 위해 신화를 끌여 들었다. 신비로운 낙원. 구름을 타고 다니는 여행, 날아다니는 용에 대한 꿈은 혼백의 방황, 도의 깨달음, 꿈과 현실의 동일성에 대한 은유이다.
ㄷ.초기의 이론적 절충
*음.양과 기(氣)의 사상: 음과 양은 모든 중국철학의 공통된 줄기이다. 음과 양은 공간과 시간속에서 교대로 일어나는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2개의 원리 또는 국면이다. 음.양은 우주의 모든 대립쌍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상징이다. 음. 양의 변화와 상호작용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음과 양은 자주 2개의 ‘기’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원초적인 생명력의 한부분인 ‘기’를 갖고 있다. 사람이 할 일은 그에게 주어진 생애를 모두 마치기 위해 ‘기’를 강하게 하고 다스리며 키워나갈 수 있도록 분별있는 생활을 하여 ‘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음양가(陰陽家)와 관련하여 또 다른 중요한 개념으로는 오행과 오덕이 있다.
*양주(揚住)와 열자(列子):양주(BC 400경) ‘사회를 개선하려는 공자의 열정을 비웃은’초기 도가 은둔자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다. 양주는 모든 사람은 어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세상을 다준다 하더라도 자기의 머리카락 한 올도 희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은 <열자>에 잘 나타나있다. 열자는 많은 고대전설 속에서 영혼의 여행을 했다고 하는 유명한 인물로 나오며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작용 전체를 기계론적으로 파악한 철학자였다.
*관자(管子)와 회남자(檜南子): 도교의 색채가 들어 있는 <관자>의 몇몇 부분은 ‘심술’(心術)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있다.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듯이 ‘심’은 육체를 다스린다. <회남자>는 그 당시까지에서 가장 정교한 우주철학, 즉 대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 사회 질서, 인간의 성인다움을 지향한 이상에 대해 논했다.
ㄹ. 진.한(秦漢) 이후 도가사상의 발전
3~4세기에 도가는 3방향으로 발전했다. 첫째, ‘현학’(玄學)으로 왕필(王弼 226~249)의 <노자주 老子注>나 곽상(郭像 ?~312)의 <장자주 臟子注>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왕필은 송학(宋學)보다 앞서 이(理)를 말했고, 곽상은 자연을 중심개념으로 서술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성인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는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완성된 생활을 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최대의 성인은 노자가 아니라 공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열자가 출현하여 숙명론적 자연주의를 말했다. 셋째,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는 청담사조(淸談思潮)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사조는 2세기 중엽부터 6세기초까지 계속되었다. 11세기에 도가사상은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이 도가의 정적주의와 무위사상을 호되게 비판한 결과, 도가사상은 11세기 이후에는 철학체계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정서에서는 중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ㅁ. 도가 사상의 영향
도가는 선진(先秦)시대의 중요한 학파 중의 하나로 중국 고대철학의 전체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상 도가철학은 정통 유학에 비판적인 인물들인 한 대(漢代)의 양웅(揚雄) .왕충(王充)등의 사상을 변화시켰으며, 송. 명(宋明)이학과 같은 관변유학에 흡수되기도 했다. 또한 한 대 초기의 황로학(黃老學)이나 위. 진현학(魏晋玄學)에서와 같이 통치철학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도가철학은 도교의 종교철학체계 수립과 불교의 사상발전에 기여했다. 한 대나 위진남북조 시기의 불교는 종종 도가사상을 원용해 인도의 불경을 해석하기도 했다. 양진(兩晋)시기의 불교인 반야학(般若學)은 도(玄學) .불 결합의 산물이다.
ㅂ. 도가와 도교의 구분이유
중국에서 도가와 도교는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철학유파로, 후자는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교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도가와 도교를 구분하는 데에는 3가지의 관점이 있다. 첫째, 중국학자들은 도교는 도가사상이 복잡한 다른 사상이나 신앙을 섭취함으로써 본래의 순수성을 잃은 타락한 것으로 본다. 둘째, 프랑스 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학자들은 도교는 도가사상의 발전형태로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도교가 도가사사의 타락한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거하여 도가와 도교를 구분하지 않고 다오이즘(Taoism)의 한 단어로 양자를 모두 호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가를 철학적 다오이즘(Philosophical Taoism)이라고 불러, 도교와 구분하기도 한다. 셋째, 일본학자들은 도가와 도교를 명확히 구분하여 전자를 철학, 후자를 종교라고 한다.
ㅅ.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과학에 대한 도가의 공헌
도가의 생리학 연구 기술 그 자체에는 신앙적 성격이 없다. 의학자와 똑같이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이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의학은 1세기경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많은 도가 치료자와 위생학자들이 의학지식을 더해 주었다. 전설적인 선사(禪師)가 황제에게 말한 가르침을 기록한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현존하는 최초의 의학서이다. 도가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전통의 권위에 의존하는 유교와는 반대로 도가들이 물(物)의 성질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을 중시했던 사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현세 문학에 대한 영향
전국시대와 전 한 시대부터 도교에 대한 내용은 이미 다른 학파의 저술 속에서 나타난다. 직접적인 인용과 분명한 모방이 자주 발견되며 <도덕경>과 <장자>로부터의 인용은 이후 모든 시대의 중국문학에서 풍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문체와 내용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많다. 신선술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다. 많은 시에서 신선과 불로초를 찾아다닌 경험을 직접 또는 은유적으로 쓰고 있으며 불로 장생약을 지으려고 했던 사실을 묘사했다. 방술상의 많은 용어들이 시어의 기본이 되었다. 마오산 파의 저술들은 중국문학에 가장 큰 영햐을 미쳤다. 당시(唐詩)에서 특히 마오산 파의 문헌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 많다. 이백과 같은 위대한 시인도 마오산 파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ㅇ. 다른 사상과의 관계
유교와 도가사상이 ‘사회참여’와 ‘사회 초월’ 사상으로 대조를 이룬다고 하는 기존의 평가는 <역경>과 같은 유교경전에서 나타나는 비(非)사회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도교에 대한 평가도 도가철학의 사회사상과 도교의 정치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중국불교는 인도 종교가 전파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중국 종교의 나무가 인도의 자극을 받아 개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중국적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중국에서 불교가 가장 먼저(AD 65) 언급된 곳은 황로사상을 신봉하던 한 도가의 저술 속에서였다. 따라서 불교는 처음에는 단순히 도교의 다양화로 간주되었다. 붓다의 깨달음은 득도(得道)로 불교의 성인들은 진인으로 열반(니르바나)은 무위(無爲)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AD 166년 한의 황제는 노자와 붓다를 함께 제사 지냈다. 초기의 도교 조직. 문헌. 의식이 불교로부터 영향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4세기경에는 도교 문헌의 문학적 형식 속에서 그리고 최고 수준에 달한 도가들의 철학적 표현 속에서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발견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상호적인 것이어서 도교가 불교와 다른 외래종교의 영향아래 사상의 폭을 넓혀갔다면, 불교는 중국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도교화’를 진행시켰다. 도교와 불교의 궁극적인 통합은 선(禪)사상에서 이루어졌다. 도교의 불로장생이라는 종교적 목적과 불교의 윤회사상은 서로 유사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선불교의 사상은 ‘도학’이라고 일컬어진 송 대 성리학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일찍이 당대부터 ‘3교’의 통합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은 송과 명 대에 이르러 대중적인 운동이 되었다.
ㅈ. 현대의 도교
20세기 도교의 중심지는 타이완이다. 타이완의 도교는 17~18세기 푸젠 성에서 옮겨난 대규모 이주민 때문에 비롯된 것이지만, 새로운 발전은 제63대 선사인 장어푸가 1949년 피난 온 것 때문이다. 타이완의 도교는 여전히 전통적 형태로 남아 있다. 오늘날 선가의 음송은 장도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1960년대에 타이완의 도교는 부흥기를 맞았다. 도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 또한 서양학자까지도 참가하여 진행중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도교가 앞으로 크게 발전하여 서양에까지 전파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현재는 장위안센이 64대 천사로 있다.
5. 노자(老子)
노자(老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연대의식이 피어나는 자연사회를 이상사회로 생각하였다. 자연사회의 중요한 주건은 신분계급이 철폐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신분계급의 철폐는 단순 한 제도의 폐지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였다. 그리하여 그의 자연사회는 물질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진보한 사회 라기보다는, 정신문명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신문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연대의식이 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가 보기에는 사회와 자연을 통틀어서 지배하는 진리(道)가 있었다. 이러한 진리에서 벗어 나는 인위적인 노력이나 제도는 오히려 사회를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오히려 이상적인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가 생각한 자연사회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사람들이 구도자(求道者)로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에는 사회적 존재를 초월하는 차원이 있으며, 그러한 경지에 대한 지향이 인간의 주된 사회적 동기가 될 때 인간사회는 자연스럽게 자연사회가 되는 것이었다.
둘째, 사람들이 구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또 하나의 의미는 자아 실현적인 삶이었다. 노자가 제시하는 삶은 반드시 세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이든 탈세이든 무관하게 모든 삶에서 도에 이르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장자는 소를 도축하는 도살자나 심지어는 도둑에게 도 그 세속적인 삶을 통하여 그 속에서 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셋째, 이렇게 인간이 자아실현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사회는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것이며,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고 특정한 사회적 가치를 위하여 인위적인 제도를 통한 노력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인위적 제도들은 사회적 연대에 기여하기보다는 반대로 그것을 저해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인위적 제도적 노력의 카르마(業에:karma)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사회가 타락한 원인이 바로 인위적 제도적 노력의 카르마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가 추구하는 사회는 사회적 카르마가 제거된 사회였다. 그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국가적 사회적 제도는 과거의 이상사회와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번잡하고 무도(無道)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을 폐지하는 것이 오히려 백성들이 자연스럽고 연대적인 삶을 영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사회제도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는 것도 오히려 인간의 연대의식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과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것이야말로 자연사회의 조건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사회를 보장하는 사회체제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노자의 대답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이었다. 즉 그는 공동체의 규모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간의 세계가 작은 규모의 공동체로 분화되어 있을 때만 도가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규모가 작아지면 인위적인 모든 제도는 불필요한 것이며, 계급과 헤게모니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인간의 연대는 자동적으로 형성하고, 인간의 추구는 자연스럽게 인간 스스로를 고양하는 도(道)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노자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정치란 백성이 다만 통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뿐인 그런 정치였다. 그 다음의 정치는 백성들이 서로 연대하여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의 정치는 백성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백성들을 모욕하는 정치였다.(노자 17장) 백성들이 다만 통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뿐인 그런 정치는 교묘한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사회적 제도적 카르마를 제거했을 때 이루어진다. 백성들에 대한 구속과 규제가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물질적 재화나 기물(奇物)이 많아질수록 국가나 가정은 더욱 혼미해지고, 인간의 사회적 기교가 많아질 수 록 기이한 물건들이 많이 생겨나고,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난다. (노자 57장) 이러한 사회는 거대한 국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노자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하여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것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도덕과 윤리(공자), 경제적 평등과 (묵자), 국가 안전이나 부국강병(법가) 그 자체는 무가치한 것이었다.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은 삶과 사회를 넘어서서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道)에 합일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지에서 보면 사회적인 여러 가지 가치는 하찮은 것이었다. 인간과 사회가 도를 지향할 때, 사회적 제가치(연대, 평등, 안전 등)는 자연스럽게 저절로 달성되는 것이었다.
그 반대로 사회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추구할 때에는 결코 그것을 달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적 가치들은 개별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 진리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마치 뿌리가 없는 줄기나 잎을 아무리 쓰다듬어도 나무가 성장 할 수 없으며, 뿌리를 튼튼히 하면 줄기나 잎은 저절로 무성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줄기나 잎을 쓰다듬는 행위를 중지하면 그 카르마가 소멸되고, 그러한 때에 근원적인 진리는 스스로 피어나 사회적 제가치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無爲而無不爲) 현명한 이를 숭상치 않는 사회에서 도둑이 생기지 않고,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사회에서 백성의 마음은 어지럽지 않다. 그리하여 성인의 정치는 백성의 마음을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우게 하는 것이다. (노자 제 3장)
신분 계급의 철폐에 관한 노자의 사상은 물론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것이었다. 나아가 이상사회에 관한 그의 사상은 실로 위대한 통찰이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는 농업사회에서는 그러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노자의 사상에서는 폭력, 토지자본, 그리고 지식(집합표상)의 문제, 다시 말하면 헤게모니의 문제가 배제되어 있다. 작은 국가는 분명히 이러한 헤게모니를 배제 할 수 있는 이상사회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작은 국가로 가는 경향이 없으며, 노력한다고 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폭력, 자본, 지식의 헤게모니는 반대로 거대국가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근원적인 제약은 신분계급의 철칙이었다. 노자는 이러한 점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공자는 확고한 현실적 입장에 서 있었다. 공자는 비록 자신의 당대에는 도시국가들의 전쟁상태였지만 미래에는 거대국가로 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신분계급체제가 철칙이라는 것에 대해서 지극히 현실적인 안목에 서 있었다. 노자는 ‘도덕경’은 노자라는 자연인 홀로 완성한 학문적 체계가 아닌 것 같고 동양사회에서 오랜 세월 축적된 영지의 모음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경은 유럽사회에서 크나큰 파장과 영향을 입힌 것만큼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노자]가 서양세계에 알려지는 19세기 중엽 이후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전해져 무저항 반전(反戰)사상의 씨를 키웠으며 그것을 발단으로 해서 헤겔이 [논어]를 통속적 도덕으로 하고 [노자]를 보편적인 면으로 구분하여 서로 다른 점을 파악하였다.
20세기 초두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에 의하여 [노자]의 해석이 신선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융의 집합적 무의식이라는 개념 속에 노자의 풀기 어려운 구석이 무의식 상태하 에서의 기록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 융과 거의 동시대의 역시 심리학에서 출발했던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도 동양사상 특히 노자의 영향을 받아 데카르트 이후에 물. 심(物.心) 2원론에 기초를 둔 기계문명에 의문을 품고 현재의 과학적 인식만으로는 세계의 전체를 파악 할 수 없다고 보고 형이상항학 분야에서 초월자의 실존을 말하는 즉 초월자의 실존을 확인하는 암호해독 방법으로 역설했습니다. 노자의 실존적 해석이 형이상학적인 면에서 노자의 내용을 초월자의 암호로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과학론으로서의 노자에 대하여 사색의 근원으로 노자에 주목한 사상가는 하이데거입니다. 후기 하이데거는 무위(無爲)라는 인위(人爲)를 부정하는 세계관을 가지 도의 개념이 종래의 존재론을 해체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를 뚫어 밝힌 노자의 체계를 톨스토이는 도덕적으로 수용했고 융은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하이데거는 철학적으로 노자를 수용하여 현대적 노자의 평가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위자연이라는 범주는 한국의 조선중기 청담파 도학자들의 완전 자유로운 소요에 의해 도교적 가사와 시로 적절하게 표현되었던 과정을 스쳐 간 후 요사이 뉴 사이언스라고 부르는 과학기술의 방법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 과학은 다만 동양적 사유에 의한 과학론을 이른 말입니다. 1975년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의 ‘도 자연학’이 출판되어 현대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적 초과학 사상을 관련시키는 수법이 다만 물리학 뿐 만 아니라 자연과학 전반에 새로운 수법으로 등장하여 화제를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카프라의 방법론에 촉발되어 탄생한 동양사상과 자연과학을 관련시키는 생각하는 방법이나 더 넓게는 종래의 과학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전통적, 습관적 해석, 방법을 관련시켜 보자는 방법론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데 새로운 의학론으로서의 에쓰노 메디신(Ethno-Medicine-민족의학)은 세계 각 민족들에게 전해오는 의료방법을 현대의학과 관련시키려는 방법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주창되었습니다.
또 존 웰우드(John Welwood)의 [동양과 서양의 심리학]과 같이 묵상법(일본식 표현-명상법)에 의한 심리요법의 실천까지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카프라식의 [도 자연학] 이후에 형성된 영역이다.
뉴 사이언스(신과학)의 입장이 데칼트식의 물, 심 이원론에 대한 맹반성임은 말할 것도 없고 카프라는 [도 자연학, Tao physics]에서 근대과학에 기초를 둔 뉴튼역학의 이론이 통용되지 않은 영역이 있음을 밝혔고 근대과학(의학 포럼)의 원리, 원칙이 반드시 만능이 아닌 것을 실증했습니다. 사실 테카르트 아류의 철학은 모든 현상을 개별적으로 세분화된 현상을 다시 쪼개어 분석해 가는 근시안적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 외에 많은 현상들이 서로 관련지어져 얽혀있고 밑바탕에는 우주를 형성하는 하나의 합일사상이 있음을 카프라는 생각해 냈습니다. 이런 합일을 동양사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우주 생성(生成)의 기반이니 도(道)와 거기에서 발생한 만물의 인 하나를 설명하고 [하늘은 하늘를 얻어 그럼으로써 맑게된다. 다른 하나를 얻음으로써 안하고 평안해지고 신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신령하며 산골짜기는 하나를 얻음으로써 꼭 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음으로 생긴다. 천지우주의 하나에 의한 통일을 밝혔으니 이것이야 카프리가 모든 사상(事象)이 서로 관련되어 뭉쳐있는 불가분의 우주, 그곳에 자기조화가 없으면 말의 씨가 없다. 동양의 초자연적 신비사상이 강조해 마지않는 전 현상(全現象)의 합일성과 상호성, 어떤 의미에서 이 두 가지는 한 생각의 다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도(道)의 도인(道人)에 있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도 즉 도의 일부이다. 이런 카프라의 노자 해석과 이해는 대부분을 영국의 중국학자 조셉 니덤(Joseph Needhum)에 힘입은 바 크다.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의해 알려진 중국사상의 대가이다. 니덤의 관점은 이런 노자 속의 잠재된 도가적 경험론을 캐냄으로써 자연과학에도 사회과학에도 고대 중귝의 문화를 나타내는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예증하려는데 있습니다. 소위 경험론적 해석입니다. 이 해석이 카프라의 ‘뉴 사이언스’에 영향을 준 것은 카프라 자신이 동양의 현자는 일반적으로 사물을 설명하는데 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합일서의 직접체험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하는데서 뚜렷하다.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참선이나 지관(止觀)의 묵상법을 가르친 것이지만 니덤이 마한 위와 같은 경험론적인 도가 해석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현대 서양세계에 있어서 노자의 해석과 이해는 예컨대 하이데거나 카프라에게서 볼 수 있듯이 우주의 합입의 논리를 모색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도(道)의 전개에 있어 무극-> 태극-> 음양론의 해석을 상징적으로 도형을 현대국가의 국가로까지 표시한 민족은 도에 흠뻑 젖어있는 전통상의 핵심을 말한 민족(民族)일 뿐이다. 자기를 높이고 이웃을 오랑케로 비하하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친 패권적 풍조를 공자를 통해 나무란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의 원천은 최치원 선생이 언급한 “현묘한 도에 있지 않겠습니까?” 즉 현묘한 도의 고장인 고조선 영역의 사상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도는 직선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순환하는데 본래 면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합일성과도 통합니다. 이런 순환과정에서 대순 즉 Pilgrimage을 역설한 강증산(본명 강일순 1871~1909)의 주석 , 즉 해석과정이 도의 현대화에 있어 밟을 수 있는 통과 지점이 될 것이다. 태극기, 강 증산이 두 가지 요소로 감안할 때 도를 현대에 설명한 나는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 할 것입니다. 애당초 노자라는 중국 자연인의 정체와 노의 저술자는 명확하게 밝혀지는 않고 있는 상태에서 도를 대순하여 동방의 뛰어난 문화로 원시반본(原始反本)시키는 일이 이 땅의 학자와 시민의 책무가 아닐까 합니다. 즉 도의 승화는 21세기를 맞는 옛 대국문화국인 이 땅의 지성과 양심의 손을 거쳐 이루어 질 것입니다.
6. 장자(莊子)
장자는 중국 고대(古代)의 사상문헌(思想文獻)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을 주창하고 해탈(解脫)의 중국적 사고를 논리 정연하게 갖춘 책이다.
이 장자라는 저서를 남긴 장자는 어떤 사람인가?
장자의 이름은 주(周)요, 자(子)는 중국에서 흔히 쓰는 존칭이며 장주의 출생이나 사망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마천(司馬遄)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기록이 그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
이 사기의 장주열전에 양혜왕(梁惠王 서기전 370~318년 재위)이나 제선왕(濟宣王 서기전 319~310년 제위)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서기전 4세기 중엽의 인물이라는 ,연대가 불확실한 기록만 남아있다.
그럼 장자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자.
1. 비판 정신
장자 천하편은 선진시대 주요 철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면서 그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비판이란 원래 하급기관의 공문서에 대하여 상급기관이 부전을 달아 의견을 표시하고 심사 판결하는 것을 뜻하였다. 그러나 그 의미를 좀 더 넓은 의미로 쓰면 그것은 기존의 권위나 제도 그리고 이념과 학설과 도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근거를 물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자기자신의 인식 능력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를 검토하고, 자기의 이론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1). 사회의 제도와 규범
대체로 지난날 움직였던 것은 통치자와 제도와 이념과 도덕이었다. 유가에서는 성인이 예악(禮樂)을 만들어 다스리는 것을 정치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장자는 아무리 성인이라고 할지라고 자기의 뜻으로 천하 사람들을 바로 잡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이란 어떤 시대나 어떤 지역의 특정한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므로 결국 그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제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제한성 때문에 그는 사물이나 사건들을 깊고 포괄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들어서 알게 된 것만이 옳다고 고집할 수 있다.
장자는 이러한 의식에서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僞)라고 한다. 인위 가운데서도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통치자의 통치행위이다. 통치권이 정당하게 성립되어 행사되지 않을 경우 그 폐해는 적지 않다.
장자의 거협편(胠篋)의 글에 의하면 인위적인 통치행위가 인류사회에 얼마나 크게 해독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장자에 의하면 상과 벌로 다스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식. 법제에 의한 다스림, 심지어 인의와 예약 등 도덕에 의한 다스림도 인위의 다스림이다. 사람들은 지식과 제도 그리고 도덕 규범을 도구로 삼아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통치자를 성인으로 착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선 통치자가 아니라 도적이다. 그래서 통치자를 강도의 두목이라는 의미에서 도우(盜竽)라고 불렀고 장자는 대도(大盜)라고 불렀다. 그들 통치자들은 국가의 재물과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쓰기 위하여 나라의 법과 이념, 그리고 도덕을 도구로 이용한다. 그래서 장자 서무귀(徐无鬼) 편에서 인의(仁義)와 같은 도덕이 금탐자(禽貪者)에게 도구로 이용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탄자’ 란 어부가 고기를 많이 잡을수록 좋아하듯이. 재물을 탐욕스럽게 차지하려는사람을 비유한 말인데. 여기서는 탐욕스러운 통치자에게 이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명분을 중시하는 윤리 도덕을 건너뛰어 사람들의 자연 본성에 따르자!’ 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자연 본성에 맞지 않는 허위 도덕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장자의 비판정신이 역사적으로 되살려졌음을 의미한다.
2). 사람의 욕망과 지식
사람들에게 알고 싶어하는 성향과 욕구하는 성향이 있다. 장자는 이런한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장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가지가지 욕구 때문에 자기 바깥의 사물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분주하게 치달리면서 외부 사물들에 빠져 종신토록 돌이키지 못하니, 슬프다!” 고 하였다.
장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외물(外物)을 추구하고 그에 의존하면 속박당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물(物)에 의하면 자기를 상실하고 세속적인 것의 의하면 본성을 잃는 것을 도치된 사람이라고 한다.” 고 하였다. 만물의 근본인 도를 등지고 물을 추구하며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장자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물질계에서 물질과 관계를 맺으며 물질을 추구하는 사이에 자기의 본래적인 성향을 잃고 미혹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장자는 외물(外物)에 대한 맹목적인 욕구가 사람들을 외물에 의존하게 하고 속박하며 미혹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욕구의 성향이 있을 뿐 아니라 호지(好知)의 성향이 있다.
사람들은 눈과 귀와 같은 감각기관을 가지고 대상을 지각하여 얻은 감각에 사려를 가하여 지식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감각과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러나 장자는 인간이 지닌 인식 능력이 사물의 진상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하여 회의하였다. 천도편(天道)에 있는 글에 의하면, 인간의 감관에 나타나는 것은 형체와 빛깔, 이름과 소리 등 사물의 표상(表象)일 뿐이다. 사람들은 단지 사물들의 표상만을 알 뿐이지, 그 진상을 알지는 못한다.
감각기관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유 기관으로도 일체 사물. 사건들의 근원인 도를 알 수 없다. 이 문제를 장자는 지북유(知北瀢)편에서 지(知)와 무위위(無爲謂)와 광굴(狂屈)과 황제(黃齊)의 대화 형식을 빌어 논하였다. 지가 무위위와 광굴과 황제에게 도에 관해 물었는데,무위위는 대답할 바를 몰랐고, 광굴은 말하고자 한 바를 잊어버렸으며, 황제만이 “사려작용이 없어야 도를 알 수가 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로써 보면 도느 인간의 사유기관에 의한 사려 작용으로는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도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한 장자의 인간 인식 능력에 대한 비판은, 중국철학사상에 가장 체계적이고 철저하였다고 보고 있다.
2. 초연정신
초연이라는 말은 단순히 향락생활에 빠지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사상과 언어와 행동이 기성 사조와 제도에 제한받지 않는 사람들을 초연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연이란 말에는 초범탈소(超凡脫俗) 또는 초탈세속(超脫世俗)의 뜻이 있다.
1). 탈속
장자는 말하기를 “세속에서 본성을 닦고, 세속의 학문으로 성명의 본원을 회복하고자 하며, 세속의 물욕에 의하여 어지럽혀지면서 대도를 밝히고자 한다면, 이는 어릭석은 백성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세속적은 학문은 유가와 법가 등 인간 사회에 관심이 많은 학문을 뜻한다. 이허한 학문으로는 탈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자의 경우 탈속이란 속세를 떠난 무릉도원과 같은 별천지를 찾아가 사는 것이 아니라, 속된 성품을 탈피하여 자기의 본성인 덕을 되찾는 것이다.
장자는 사람들이 자기의 본성인 덕을 되찾는 방법으로 성수반덕(性脩反德)의 수양방법을 제기하였다. 사람들의 성품은 물질세계에서 육신과 물질의 영햐을 받아마치 진흙 속의 진주처럼 구정물에 물들어 있다. 그러한 성품을 말게 하여 본연의 성품을 되찾는 것이 성수반덕이다.
장자가 제시한 성수반덕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심재(心齎)와 좌망(坐忘)을 들 수 있다. 심재(心齋)는 마음 속의 욕념을 씻어내버리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물든 성향을 정화하게 되면 마음이 텅 비게 되고, 텅 비게 되면 천지만물의 본성인 도(道)에 통할 수 있다.
장자 대종사 편에 의한면 좌망은 먼저 예약(禮樂)과 인의(人義)를 잊어버리는 공부로서 시작한다. 유가에서는 인의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인의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지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어떤 냄새도 맛도 없는 물처럼 소박(素朴)하다. 소박한 인간의 본성은 어떤것도 물들어 있지 않다. 도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인의와 같은 도덕성은 소박한 인간의 본성에 비본질적인 도덕관념이 덧칠해진 것이다. 도를 터득하고자 하는 수도자는 자기 본성에 섞여 있는 것들을 맑게 하고 씻어낸다. 명리 관념은 물론이고 도덕 관념까지도 버린다. 인간의본성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남김없이 제거한다면, 덕성의 순수한 빛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 빛은 일체의 근원을 비출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자아의 본성인 덕과 천지만물의 본성인 도 사이에 놓여 있는 장애가 없어지고 만물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인간이 물물자(物物者)인 도와 통하게 된다.
2). 정신적 자유
장자 내편에서는 정(情)이라는 글자와 신(神)이라는 글자가 각각 따로 쓰였다. 두 글자를 합하여 이루어진 ‘정신’ 이라는 용어는 외편과 잡편에서야 비로서 나온다.
장자는 정신적 자유를 추구한다. 자유로운 정신을 찾으려면 물질에 얽매일 수 있는 심(心)을 씻고 맑게 하여 심의 정수(精粹)가 현묘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한다. 일상심이 맑아져야 정신이 날개를 펴게 된다. 이는 정신의 자기 초월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본성에 덕에 따라 살려면 자아 안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장자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지인은 무기(無己)하고, 신인은 무공(無功)하며, 성인은 무명(無名)하다.”고 하였다. 이 때 무명과 무공은 무기에 부수한다. ‘무기’하게 되면 외부사물과 얽혀있는 관념은 물론이고, 자기자신에 대한 의식조차 잊게 될 것이므로 자연히 무명. 무공하게 될 것이다. 무기에 이르러서야 어떠한 사물. 사건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어떠한 일에도 얽매이거나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무대(無待)의 소요(逍遙)’를 누릴 수 있다. 이 무대의 소요는 일종의 정신 초월이다. 이러한 소요는 단순히 명리(名利)에 대한 초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자아의식을 버리는 자기 초월을 거쳐 실현 할 수 있다.
3). 조화정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인화(人和)라고 하는데 장자는 인화의 소이로서 천화를 들었다. 천화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천지의 덕은 천지의 본성을 뜻한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려면 천지의 본질적인 성향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에 의하면 천지 만물의 근원은 도이고, 사람의 근원은 덕이다. 덕은 어떤 객체에 전개되어 내재한 도이다. 따라서 나의 근원인 덕을 회복한다면 천지만물의 근본인 도와 막힘 없이 통할 수 있다.
덕은 천지 만물의 근원인 도와 통할 뿐 아니라, 타인과도 통할 수 있다. 나뭇잎과 나뭇잎이 서로 통하려면 뿌리를 매개로 삼아야 하듯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서로 통하려면 서로의 뿌리에 해당하는 덕을 매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장자는 “천지에 통하는 것은 덕(德)이요, 만물에 유행하는 것은 도(道)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인 덕은 인간들이 서로 통할 수 있는 뿌리일 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사물들과도 통할 수 있는 뿌리이다. 따라서 덕을 자각하여 회복할 수 있다면, 인간들끼리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만물과도 친화 할 수 있다.
장자는 인간들 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금수 그리고 만물과 함께 같은 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던 세상을 지덕(至德)의 세상이라고 하였다. 장자 마제(馬蹄)편에 의하면 지덕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은 소박한 본성에 따라, 날짐승, 들짐승 그리고 만물과 어울려 여유롭고 순박하게 살아갈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러한 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은 인위적인 다스림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개인의 주관적인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과 자연의 조하가 무너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도 깨졌다. 장자에 의하면 이 세계가 등장하여 자의로 자연 환경을 변형하고 개조하면서 자연계의 평형과 조화가 깨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자연환경 피괴는 가속화 되고 있다. 17세기 이래로 인간은 자연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도구로 삼아 자연 환경을 조작함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는 바로 인간이 삶을 의탁하고 있는 유일한 터전이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오른 어떤 사람이 그 나무의 밑둥을 절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는 이미 지구라는 터전에 삶을 의탁한 인류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과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3. 장자의 내용에서 본 장자의 사상
도는 물과 같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아울러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해 있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
물은 천덕의 상징이다.
육체를 고달프게 하면서도 쉬지 않으면 지치고 정력을 쓰면서도 멈추지 않으면 피로해지니
정력이 피로해지면 탈진하다. 물도 마찬가지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으면 맑구 흔들리지 않
으면 평탄하지만, 일단 가로막혀서 흐르지 않으면 맑을 수가 없으니, 이는 자연의 운행으로
서의 천덕의 상징이다.
<장자 외편 제 15장 : 각의>
평탄함이란 물이 물결 하나 없이 완전히 정지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물을 법칙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니, 안으로는 고요한 본성을 간직하며 밖으로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 의 덕도 이처럼 조화를 이룬 상태이니, 안으로는 평정을 유지할 수 있고, 밖으로는 대상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자 내편 제 5장: 덕충부>
성인은 천지의 묘한 이치를 관찰하더라도 거기다 인위적인 조장을 하지 않으며, 자연의 덕 을 완성하더라도 거기에 인위적인 덧붙임은 없으며, 인에 부합하더라도 이를 자랑하지는 않으며, 의를 가까이 하더라도 그것을 쌓아두지 않는다.
또 성인은 예를 응하지만 구애받지 않으며, 세간의 일을 접하더라도 사양하지 않으며, 법으 로 사물을 바로잡지만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백성을 의지하지만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며, 사물을 따르면서도 그 본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세간의 사물은 위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천의 이치에 밝지 못한 사람은 그 덕성이 순수하지 못하며, 대도를 통하지 못한 자는 일마다 장 애에 부딪힌다. 따라서 이 도애 밝지 못한 사람은 너무나 가련한 것이다.
무엇을 도라 하는가? 이른바 대도에는 천도와 인도가 있다. 무위인데도 존숭을 받는 것은 천도이며, 인위적인 행위로 분란을 초래하는 것은 인도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것은 천도이 고, 부림을 받는 것은 인도이다. 천도와 인도의 거리가 이처럼 현격하니, 깊이 관찰하지 않 을수 없을 것이다.
<장자 외편 제 12장: 제유>
7. 노장 사상이 주는 교훈
노장 사상이 물질문명에 파묻혀 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혜를 내보인다.
첫째, 노장사상은 사람들에게 물질에 속박당하지 말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인생관을 가지라고 말한다. 속사에 매이지 않고 산과 물 사이를 오고가며 시원스럽게 살아가는 신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라.
둘째, 사람들의 사태를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좀더 깊고 넓게 보게 할 수 있다. 사물마다 관점이 같지 않을 수 있다. 물고기와 새와 사슴과 사람의 관점이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인류가 인간 중심주의를 고집한다면 다른 생물들을 해칠 수 있다. 오늘날 인류가 부닥친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을 전면적으로 볼 수 있는 세계관이 요구된다.
셋째, 오늘날 인류는 다원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획일주의는 이제 설 땅이 없다. 노장에서는 일체 사물들을 그 자체의 성질에 따라 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은 갖가지 사물들의 다양한 성질을 조화롭게 살려낼 수 있는 세계관으로 이끌 것이다.
대체로 요약하면 위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하지만 더 자세히 다루면 도교라는 종교가 던지다 주는 풍요로움은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모든 권위와 권력을 넘어서고 진리에 대한 어떠한 매개도 거부하는 부정의 정신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장자의 자연사상은 자연의 순리에 인간이 거함으로서 더욱더 큰 우주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하늘의 새파란 빛은 과연 제 빛일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하고 고백하는 장자의 독백은 어린이들의 동요에 나오는 가사처럼 투명하지만 푸르른 하늘의 모습 그대로를 장자 가슴속으로 그려보고 있음을 나는 언젠가부터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가사상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매우 풍부하고 유용한 이점을 지니고 있기에 역사적으로 미신의 요소로서 변질되는 경향도 보여왔다. 풍수도참사상, 신선사상, 기복신앙의 갖가지 형태로서 우리 안에 정착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도교의 정신은 오늘의 성장위주의 바쁜 시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꼬집어 내는 귀중한 통찰을 이 안에 담고 있다. 또한 만물안에 깃든 도를 인식하고 행함으로서 형식적인 윤리와 도덕의 율법성을 극복하는 단서를 제시한다. 인간의 본질이 자연에 있음을 새삼스럽게 오늘의 혼탁한 현실에서 발견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예전부터 그 본질적인 면을 엿본 도교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새롭게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 있어서 불교, 유교, 도교는 삼교의 원리로서 깊이 우리 안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종교 그 자체 보다는 하나의 통치의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함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종교는 얼마나 그의 고유한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새롭게 개혁하는 지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는 어쩌면 도가사상이 보여왔던 초월적이고 피안적인 면이 오히려 반대로 너무 현실적인 차원의 수단으로 타락하였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실로 도교는 오늘날 한 민족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인가? 한국인의 감정과 신앙의 기저에는 어쩌면 저 도교적인 심성이 깊이 스며있는 것은 아닐까? 기복적 미신 신앙과 그에 기인한 종교적 개인주의는 어쩌면 저 도교의 영향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닌가? 특히 오늘의 종교인이 행하고 있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감각,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인 뿌리에 대한 과도한 신앙,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가장한 물신에 대한 이기주의적 욕망을 도교에 대한 깊은 안목속에서 한 번쯤 숙고해 해본다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의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걸려 있는 서글픈 모습을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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