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 - 최치원 본문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 - 최치원
고운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관직에 나아가 상관 고변의 종사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고변이 제도도통 검교태위로 있을 당시
황소가 난을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이 글은 최치원이 상관을 대신해서 지은 격문으로
이를 통해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너무 멋있는 글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
대장부...요즘말로 상남자의 포스가 느껴진다랄까...
격문을 읽던 황소가 혼비백산하여 침상에서 떨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내가 황소였어도 무서웠을 것이다.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 검교태위 아무개가 황소에게 고한다.
올바름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라 하고 위기에 처해 변통하는 것을 권이라 한다. 지혜로눈 사람은 때에 순응하여 성공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치를 거슬러 실패한다. 그러므로 백 년 인생에 죽고 사는 일을 기약하기는 어려우나 모든 일이란 마음에 달려있어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천자의 군대는 정벌을 할 뿐 전쟁을 하지 않고, 군정은 은혜를 베푸는 일을 먼저 하고 죽이는 일을 뒤에 한다. 장차 수도를 되찾아 큰 신의를 펴고 삼가 천자의 분부를 받들어 간사한 꾀를 그치게 하고자 한다.
너는 본래 변방 촌사람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 감히 도리를 어지럽히고, 마침내 불측한 마음을 품고 천자의 자리를 노리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그 죄가 하늘에 닿아 반드시 패하여 도망갈 것이 분명하다.
슬프도다! 당우 시대 이래로 묘와 호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선량함이 없고 무뢰하며 충의가 없는 무리들이었다.
너희들이 한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
멀리는 유요와 왕돈이 진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이는 녹산과 주자가 당나라를 시끄럽기 하였다.
그들은 모두 손에 막강한 병력을 쥐고 몸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아, 호령이 떨어지면 우례와 번개가 치듯 요란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와 연기가 서린 듯 자욱하였지만, 잠시 동안 간악한 일을 도모하다가 결국 남김없이 섬멸되었다.
햇빛이 활짝 났으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는가? 하늘 그물이 높이 쳐졌으니 흉악한 족속들은 반드시 제거될 것이다.
하물며 너는 말단 평민 출신으로 밭두둑 사이에서 일어나 불 지르고 겁탈하는 일을 좋은 일로 알고, 죽이고 해치는 일을 급한 일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이 큰 죄만 있고 속죄할 작은 선행조차 없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땅의 귀신들도 너를 죽이고자 의논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너는 비록 숨은 붙어 있느나 넋은 이미 빠졌을 것이다.
사람의 일 중에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나는 헛된 말을 하지 않으니 너는 잘 들어라.
근래 우리나라(당나라)는 더러움을 용납하는 덕이 깊고, 허물을 용서해 주는 은혜가 중하여 너에게 병권을 주고 지방을 다스리는 일을 맡겼거늘 너는 도리어 짐새의 독을 품고 올빼미의 흉한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개가 사람을 물어뜯고 주인에게 짖는 격이다.
그리하여 공후들이 험한 길로 달아나 숨게 하고 천자의 수레는 먼 지방으로 피난 가시게 하였거늘 너는 일찌감치 덕의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완악함만 키우고 있다. 천자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베푸셨거늘, 너는 나라에 가 받은 은혜를 배신하는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물며 주나라 솥은 네가 넘볼 것이 아니요. 한 나라 궁궐이 어찌 네가 머무는 곳이겠느냐! 장차 네가 어찌하려는 건지 모르겠구나!
너는 듣지 못하느냐? 도덕경에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못 넘기고, 소나기는 하루를 못 넘김다 라고 하였으니, 천지자연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너는 또 듣지 못하느냐? 춘추전에 하늘이 나쁜 사람을 놓아두는 것은 그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흉악함이 더 심해지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너는 간사함을 감추고 포악함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화가 가득하였는데도 위험함을 편히 여기고 미혹되어 돌아올 줄을 모르니, 말하자면 제비가 막 위에다 집을 지어 그 막이 불타는데도 제멋대로 날아들고, 물고기가 솥 속에서 헤엄치지만 곧 삶아지는 것과 같은 셈이다. 우리는 웅대한 전략을 모으고 여러 군대를 규합하여, 용맹한 장수가 구름처럼 날아들고 용감한 군사들이 비처럼 모여들어, 높이 휘날리는 깃발은 초 지방 요새의 바람을 에워싸고 총총히 들어선 함선은 오강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도 태위처럼 적을 쳐부수는 데 날래고, 양 사공처럼 신이라 불릴 만큼 엄숙하여 멀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를 가로지를 수 있으니, 너를 헤치우는 일 따위야 큰 불을 놓아 기러기 털을 불사르고 태산을 높이 들어 새알을 짓누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가을이 되어 바야흐로 물의 신이 우리 군대를 반기는 이때에, 가을 바람은 초목을 말라 죽게 하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이슬은 혼탁한 기운을 씻어주니 파도는 이미 잠잠하고 길은 곧장 통한다. 석두에 닻줄을 놓으니 손권이 우리 후군이 되고, 현산에 돛을 내리니 두예가 선봉이 되었다. 이제 수도를 다시 찾는 일은 늦어야 한 달이면 되겠지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꺼리는 건 하늘의 깊은 인자함이요, 법을 뒤로하고 은혜를 펴는 건 국가의 훌륭한 제도이다.
공공의 적을 토벌하는 일에 사적인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되고, 길을 헤매는 이를 깨우치려면 정녕 바른말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내 이 한 장 격문을 날려 너의 위급함을 해결해 주려는 바이니, 너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일찍 기회를 보아 좋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지난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만약 땅을 떼어 받아 제후국을 열어 몸과 머리가 동강 나는 화를 피하고 공명을 세우고자 한다면 네 무리를 믿지 말아야 네 후손에게 영화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안은 아녀자가 알 바가 아니요, 진정한 대장부의 일이니 속히 답을 주기 바라며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천자에게서 명령을 받았으며 맑은 물에 신의를 명세하였다. 말이 떨어지면 반드시 메아리처럼 응할 것인바 은혜가 많으니 원망을 깊이 할 건 없다. 만일 미쳐서 날뛰는 너희 무리가 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고 수레바퀴에 항거하듯이 고집만 부리다가는 곰을 치고 표범을 잡는 우리 군대가 한 번 휘둘러 박멸함으로써 오합지졸 같은 너희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요, 네 몸뚱이는 도끼날에 잘려 나갈 것이고 네 뼈는 수레 밑에 깔린 가루가 될 것이요, 처자들은 잡혀 죽고 친척들은 베여 죽을 것이다.
동탁처럼 배를 불태울 때가 되어 후회한다면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진퇴를 잘 생각하고 선악을 잘 분별하라. 국가를 배반하여 멸망하기보다는 귀순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바라는 바는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니 대장부가 할 바를 힘써 찾아 얼른 생각을 바꾸고 졸장부의 염려느느 갖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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