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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지구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되었나[글로벌생명학] 8 : 나눔 없이 평화 없다 본문
인간은 왜 지구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되었나
[글로벌생명학] 8 : 나눔 없이 평화 없다
2020-09-14
이기상 edit@catholic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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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살림살이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인간이다. 우선 76억을 넘어선 인간의 개체수가 지구 자체에 과부하가 되고 있고, 그것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온난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76억 인구가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하는 식량수급과 연관된 생존의 문제가 인간들 사이, 국가들 사이에 첨예한 갈등의 요인으로 잠재되어 있다. 과연 지구는 76억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가?
유엔 산하 5개 기구가 공동조사해 발표한 ‘2019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 영양 부족 인구는 8억 2,1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000만 명이 증가했다. 전 세계 76억 인구 가운데 11%가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인 것이다. 더욱이 세계 기아 인구는 2015년 이후 계속 증가 추세라고 한다.
현재 우리의 과학과 기술로 76억 인류의 식량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도를 넘어선 욕망이다. 그래서 일찍이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인간이 필요한 만큼만 서로 나눠 가지며 사용한다면 지구는 76억 인구에게 풍요로운 곳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든다면 지구는 한없이 궁핍한 곳이다.
마더 데레사는 한마디로 “나눔 없이 평화 없다”고 하였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은 놀라운 선물로서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향하는 데 장애물을 적게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어떻게 비움과 나눔 그리고 섬김을 통해 지구 위의 모든 이들이 서로를 살리면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자신의 삶으로써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침묵, 기도, 믿음, 사랑, 봉사(나눔), 평화로 이어지는 영성의 여섯 단계라고 이름할 수 있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 : ‘비움’을 통한 하느님과의 소통
첫 번째 단계가 침묵인 것은 서양의 로고스 중심적인 생각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마더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그 분 자신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스스로 내가 아무것도 아니며 텅 빈 공백임을 깨달을 때라고 말한다. 침묵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경청하면, 그때 침묵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마더 데레사는 현대인들이 갖가지 소리에 익숙해 있어서 침묵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도시에는 혼돈과 폭력, 분노, 좌절, 절규가 만연하고 사람들은 그 와중에서 공허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 공허감을 먹을 것,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으로 채우려 하고 분주한 외부 활동으로 피해 다니려 한다. 그러나 이런 공허감은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하느님께 시간을 내드리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 : 만물 속에 깃든 하느님의 ‘살림’ 정신
기도는 자기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게 할 때, 그래서 하느님이 말을 건네올 때 인간이 거기에 응답하는 것이다. 기도는 침묵 속에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이 나를 통해 말하게끔 하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내가 하느님의 입이 될 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커 갈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때 그 생활은 ‘하루살이의 삶’이 된다. 마더 데레사는 “어제는 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우리의 마지막 날인 듯이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마더 데레사는 “모든 것, 모든 움직임이 기도”라고 말하며 “기도는 모든 사물, 모든 행위 속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완벽한 기도는 많은 말로 엮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마음을 활짝 열고 싶은 갈망 속에 있다고 말한다. 마더 데레사는 높은 열망 가운데 샘솟는 기도를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눈과 입을 닫고 가슴을 여는 가운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 : 사랑의 시작은 약한 이웃에 대한 섬김
마더 데레사는 몸과 오감을 비우고 하느님께 마음을 활짝 열 때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 내게 말씀하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도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고 다른 사람 안에도 계신 하느님을 보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열매는 다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갖는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마더 데레사는 무관심이라는 정신적인 병을 걱정하며, 서양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그곳에서의 가난은 고독과 영적인 빈곤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고, 그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 사랑의 운동은 대대적으로 벌여서 될 일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 혹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나눔) : 나눔과 섬김 속의 살림살이
나눔은 사랑을 실천하는 값진 열매다. 나눔을 통해 사랑은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의 뜻대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방식은 없이(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 외롭고 고독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 버려진 사람,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 삶의 희망과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들이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며 미소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기도이고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마더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한 가지를 내거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죽음의 순간에, 당신과 내가 누구였건 어디에 살았건 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이건 간에 똑같이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하느님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하느님의 실존 앞에 서서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대했으며 무엇을 주었는지에 따라 판단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인간성의 희망이라는 사실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더 데레사의 영성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구원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 부(富)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인간을 질식시킬 수 있다. 이미 가득 차있는 마음에는 하느님조차 더 이상 어떤 것도 넣어주실 수 없다. 부를 소유한 자에게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불러오고, 한 가지 사치는 또 다른 사치를 불러오기에 필요는 점점 더 커져간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제할 수 없는 불만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채워주실 수 있도록 가능한 텅 빈 채로 남아 있도록 하자고 마더 데레사는 촉구한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이 곧 자유로움이라고 말한다. 가난은 나를 어떤 것에 붙들려 있게 하지 않으며, 나의 소유를 누구에게 주거나 나누는 데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혹독한 가난은 우리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가난은 진정한 복음적 가난이어야 한다. 온유하고 부드럽고 즐겁게 마음을 열어놓는, 항상 사랑을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복음적 가난이어야 한다. 가난은 포기가 아니다. 가난은 사랑이다. 사랑하려면 주어야 한다. 주기 위해서는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봉사[나눔]의 열매는 평화 : 나눔 없이 평화 없다
마더 데레사는 “사랑의 활동은 언제나 평화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때마다 우리 스스로와 그 사람들에게 평화가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건드리는 방법이다.
마더 데레사는 사랑과 평화의 역사에 우리 각자는 단지 보잘것없는 도구일 뿐이니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자고 말한다. 전기제품을 분해해 보면 거기에 온갖 크고 작은 철사나 또는 굵고 가는 선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 한 기계는 작동하지 않고 빛이나 영상, 소리는 없다. 여기에서 철사와 선은 바로 인간들이며 전류는 주님이다. 우리는 전류가 우리를 통해 지나가게 할 수도 있고, 우리를 사용하여 세상에 빛을 비출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는 쓰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이도록 허용할 수도 있다.
영성적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 속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고 마더 데레사는 말한다. 그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을수록 그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아 시중을 들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믿음과 헌신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마더 데레사는 영성적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 속에 숨어 계시는 그리스도께 종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가 깊은 감사와 존경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녀는 불쾌하고 고단한 일일수록 사랑의 효과와 유쾌한 종사가 점점 더 커진다고 믿었다. 마더 데레사는 다음과 같은 영적 유언을 남겼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듯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 그런데 사랑하려면 순수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 순수한 마음이 있으면 하느님을 뵙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깊어지고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이웃에 대한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또 거기서 평화가 자랍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과 평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들판에 곡식이 넘쳐나고 물고기 떼가 바다를 메워도, 과학과 기술이 하늘을 찔러 달과 화성을 오가도, 서로를 인정하며 나누려는 마음이 없으면 76억 인류는 좀비가 되어 서로를 잡아먹으려 날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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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나눔 없이 평화 없다” : 마더 데레사의 나눔과 섬김의 살림살이>, 『경향잡지』 2012년 8월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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