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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요한복음 1장 1절: 본문

성경과 영성신앙/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1절:

柏道 2020. 9. 14. 18:15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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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복음서는 예수의 인성(人性)을 얘기했고,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얘기한 성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과연 그런지 각각의 첫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가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복음의 시작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예수 탄생의) 사실에 대하여...”

이렇듯 3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탄생에 관한 얘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우주의 탄생에 관한 얘기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같은 맥락입니다.

태초란 과연 존재하는 시간일까요?

태(太)는 “더 말할 수 없이”라는 뜻이고, 초(初)는 처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태초란 처음의 처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처음보다 더 먼저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역시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태초입니다.

초(初)를 풀이하면 옷 의(衣)와 칼 도(刀)를 합쳐서 만든 글자입니다. 비유하자면 태초란 옷을 만들기 위해 막 옷감을 자르려는 시점입니다. 옷감을 자르기 전은 아직 시작이 아니고, 옷감을 자른 후는 이미 시작이 지난 점입니다. 역시 태초는 상상 속의 시간일 뿐입니다. 동양적인 표현을 빌리면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으로 옮아가려는 시점을 말합니다.

그런 태초에 말씀(the Word)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 있었단 말입니까? 인간이 있기도 전에 말이 있었다니 말이 되는 말입니까? 혼란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결론을 얻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태초에 존재했던 것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한 것이라고...

헬라어 성경에는 태초에 있었던 것을 “로고스(Logos)”라고 했습니다. 로고스의 뜻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태초에 “다바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바르는 에너지라는 뜻에 가깝다고 합니다. 중국어 성경에서는 태초에 “도(道)”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말씀보다 도가 더 가까운 번역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태초에 “워드(Word)”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영어 성경을 따라 우리말 번역을 “말씀”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태초에 Something이 있었다.”

“태초에 Nothing이 있었다.”

태초에 있었던 것의 이름을 제 맘대로 바꿔 보았습니다.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말씀으로부터 우주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작을 말씀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진: 칠레, 안데스산맥의 태초)

[출처] 5. 태초에 무슨 말씀이?|작성자 사봉 조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