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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본문

배움과 깨달음/좋은책과 글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柏道 2020. 8. 2. 02:02

문학이야기
김용옥 -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프로필
Lian
2020. 1. 5. 22:33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을 읽은 후 목표가 하나 생겼다가,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읽고 무람해져 접었다. 아람어는 못 배우더라도 고대 희랍어를 배워서 성경을 번역해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도올은 이미 희랍어 성경을 번갈아 보면서 로마서, 요한복음, 외경인 도마복음에 이어서 복음서의 원형으로 일컫는 누가복음까지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문헌비평에 대한 도올의 이해는 정확하다.

'문헌의 원전(희랍어, 히브리어, 아람어, 근동언어들)에 대한 이해와, 그 문헌이 처한 시대와 문학양식, 그리고 문헌을 만든 사람이나, 문헌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 등등에 대한 치열하고도 포괄적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31)이라고 정의했다.



문헌비평에 대한 접근과 아울러 기원전부터 예수의 부활 이후 초기기독교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적 사유체계, 무엇보다 서아시아의 성경유적지 답사가 아니었다면, 성경의 메시지에 얽힌 상황은 결코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존경하는 마음으로 도올의 비평과 해석을 사유하며, 성경의 텍스트가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가는 도리밖에 없다.



전체 16장(661개의 문장)밖에 안 되는 마가복음을 600 쪽에 가득 풀어냈을 정도로 내용이 깊고 알차다. 영어 성경도 공부하듯 단어를 찾아가며 읽었고, 곳곳에 인용한 성경 구절을 펼쳐서 서로 견줘 봤다. 그 바람에 모두 읽는 데 30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행히 지난 연말동안 휴가여서 일주일만에 읽어낼 수 있었다.



책을 덮자 예수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무언가를 이뤄낸 듯 얼마나 뿌듯했던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김용섭의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를 읽은 뒤 느꼈던 기분마저 오롯이 전해져 왔다.



도올의 주석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중풍병자를 네 명이 메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었는데(막2:4), 이 구절은 의아했다. 우리와 다른 가옥구조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계단으로 옥상에 오르면 싸릿대거적 같은 게 처져 있고, 걷어내면 바로 아래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려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함이 아니냐(막4:21)도 읽기에 따라 헷갈렸다. 도올은 '그 등잔은 반드시 등경stand 위에 올려놓아 불빛이 널리 퍼지도록'(279) 해야 한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셋째,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막5:2) 라는 구절도 우리와 전혀 다른 무덤 양식을 모른다면,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도올은 주석을 달았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덤은 돌무덤이며 입구에 거대한 맷돌 같은 것으로 막혀있고, 그것을 굴려 치우고 들어가면 그 속은 마치 시신들의 아파트처럼 되어 있어, 여러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302-303) 라고.



그저 문사철에 관심이 있을 뿐,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예수의 이적과 부활은 신화로 여겼고, 역사 속 예수의 공생애도 의뭉스러웠다. 그런데 문사철에 빠지면 빠질수록 종교는 여러 갈래에서 강한 페로몬을 뿌렸다. 종교 특히, 기독교를 모르면 여러모로 관심의 분야를 드넓게 펼칠 수도 없었다. 내 관심이 인문학의 향유에 닿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도올의 해석에 딴죽을 걸 듯하다. 교회라는 회당에서 안식일과 십일조를 지키는 틀에 박힌 율법주의 기독교인이라면 더더욱. 도올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구약의 예언에 얽매이지 말고('동정녀 마리아 잉태설화는 부계의 혈통을 단절시키기 위한 장치'(112)이고, 마가복음에는 '동정녀잉태 얘기도 없고, 족보도 없고, 베들레헴도, 다윗도 없다!'(113)고 말한다), 신약만 놓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초대교회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사람들의 모임, 회중이라는 의미의 "에클레시아"를 가리키는 것'(45)이라고. 반드시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기총의 행태에도 뚜렷한 선을 긋고 날 선 비판을 하고 있으니, 쉽게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수구보수정치세력과 결탁한 대형교회의 타락에 일침을 놓았으니. 그럼에도 한 걸음 물러서서 텅빈 마음으로 아로새기면 바람보다 더 많은 감동이 뒤따른다. 우리말과 영어 성경을 번갈아 읽은 다음, 도올의 주석을 읽고 곁들인 사진을 봤다. 그토록 어렵던 구절들이 훨씬 쉽게 이해가 되었고, 역사 속 예수의 삶이 그대로 그려졌다. 갈릴리호수와 요단강을 가운데 두고, 나사렛, 가버나움, 사마리아, 예루살렘이 표시된 지도를 보며 예수의 활동반경을 따라가는 읽기여행도 꽤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지금 바로 이 곳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예수의 부활을 내 온 영혼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 듯하다. 성서신학자 부르스 메츠거의 글을 인용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질서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개체 사이의 인격적 관계'(164)라고 했다. '우리는 천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천국이 반드시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하시옵소서라는 뜻'(288)이라고도 했다. 곧, 천국은 사후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믿음이란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천하는 삶'(60)이라는 말은 참 기억에 남는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는 예수가 한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며, 그 말씀에 담긴 뜻에 따라, 그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91)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을까?

(김용옥,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통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