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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

[비밀의 가르침] - 2. 로고스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고대 비밀 가르침(密敎)

[비밀의 가르침] - 2. 로고스

柏道 2020. 2. 13. 19:58



[비밀의 가르침] - 2. 로고스

       

Chapter 2: 로고스 (Christ Logos)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니체아 신경)

오직 절대영원성만이 진정한 실체(Reality)이다.

그것은 절대진리이자 불멸의 생명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고 담아내는 전체성이다.

그는 성스러운 다중성으로 이루어진 절대적 일체성이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 완전한 절대적 자체완전성이다.

그는 창조의 성업을 실현해내기 위하여 스스로를

로고스와 성령으로 화현한다.

그리하여 이 둘을 통하여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고 표현함으로써

성스러운 뜻을 펼친다.

신이 아닌 공간이란 없다.

세상 모든 것은 그의 자체완전성 안에, 다중성 안에, 그리고

그의 화현인 로고스와 성령 안에 있다.

절대적 실체인 절대영원성의 본성은 끝없는 절대사랑이며,

이는 절대지혜와 절대권능을 통하여 표현된다.

이것은 곧 절대영원성이

스스로를 로고스와 성령으로 화현하는 것이다.

(절대영원성의 절대사랑은 로고스의 절대지혜와

성령의 절대권능에 의해서 실현된다. – 역자주)

로고스와 성령은

절대영원성에 의한 창조물이 아니다.

이들은 절대영원성 자신의 직접적 화현이다.

즉, 이 둘은 절대영원성의 화신으로써 온 우주를 창조해내고

다스리는 주체인 것이다.

로고스와 성령은 곧 절대영원성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니라.’

(요한복음 1:1). (이 구절 속에서 말씀이란 로고스를 뜻한다. – 역주)

로고스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절대영원성과 하나였다 (요한복음 17:5).

로고스와 성령은

최초의 창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아버지와 일체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이라고 하셨다.

‘진리요 생명’이란

그의 내면에 있는 절대영원성을 뜻하며,

‘내가 곧 길’이라는 말씀은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해주는 사명을 짊어진 인간으로써의

당신을 뜻하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표현된 세계,

창조된 세계 속을 살아가는 동시에

절대영원성의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성스러운 축복의 경계 속에 거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이 근원적 경계로부터 분리된 적이 한 순간도 없다.

우주의 탄생은

절대영원성이 품은 성스러운 이상의 결실이다.

(여기서의 우주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를 모두 포함하는 다차원 우주이다.

– 역자주) 그는 우주를 빚어내기 위하여

‘마음’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였다.

(온 세상은 마음의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은 그 진동수에 따라 물질, 심령질, 이지질로 표현된다.

물질이란

가장 낮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마음으로써

3차원 물질계를 구성하며,

심령질은

이보다 높은 진동수를 지닌 마음으로써 4차원 심령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지질은

심령질보다 높은 진동수를 지니며 5차원 이지계를 구성한다.

고차원 파동일수록 진동수는 빠르고 정교해진다.

– 역자주)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원자, 영적원자 속에는

로고스와 성령이, 근원적으로는 절대영원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모든 것이 말미암은’(요한복음 1:3) 근원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술작품을 만드는 조각가가 있다.

그의 작품의 이름은 ‘우주’이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오른손에는 조각칼을 쥐고

조각상을 다듬으며, 왼손으로는 조각상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만드는 이는 조각가인가,

조각가의 양손인가?

이 우주를 창조한 이는 절대영원성인가,

로고스와 성령인가? 아니면 셋 모두인가?

로고스는 창조물이 아닌 창조주이다.

그는 곧 절대영원성이다.

로고스는 인간에게 깃들어서 자의식과 이성적 사고로써 표현된다.

성령은 로고스와 함께 절대영원성의 성스러운 뜻을 실현하는

사명을 맡은 또 하나의 사역자이다.

성령은 전적지혜, 전적전능, 전적사랑으로 충만하며

, 그는 우주라는 장엄한 교향곡의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지휘자이다.

미생물에서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온 우주의 경이로운 질서와 조화는

절대영원성의 절대지혜와 절대권능이 탄생시킨 위대한 걸작이요,

로고스와 성령의 완전무결한 협력과 조화가 일구어낸 눈부신 결실이다.

절대영원성은

스스로를 절대영원성-로고스와 절대영원성-성령으로 화현하여

다차원 우주를 창조한다.

하지만, 로고스와 성령을 절대영원성이 아닌

다른 독립적인 무언가로 보아선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신이 셋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셋은 본래 하나이다.

‘하늘에서 증언하시는 세 분이 계십니다.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십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요한1서 5:7)

온 우주의 탄생과 실현은

하나의 창조자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우주를 다스리는 것은 절대지혜가 탄생시킨

수많은 절대법칙들이다.

이들에 의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성스러운 법칙, 원칙, 원리들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대근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절대영원성이다.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로 이루어진 시공계라는

장엄한 무대 위에 그가 품어온 모든 이상을 펼치고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뜻으로부터 온 세상이 탄생한 것이다.

우주는 로고스와 성령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그들이 창조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미 장차 표현될 모든 만물은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 속에

정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다.

성스러운 자체완전성과 성스러운 이상에 의하여

창조된 모든 것, 또는 창조될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한 ‘영원한 지금’의 경계 속에 영원히 ‘있을’ 뿐이다.

로고스와 성령을 비롯한 인간,

프린시펠리티 (군주 대천사), 도미니언

(통치의 대천사), 오버로드 (대군주 대천사),

그리고 그 외 다양한 품계의 대천사들은

그 종류를 떠나서 모두 절대영원성의 성스러운 다중성을

구성하는 일원이다.

절대영원성, 로고스, 성령이 이루어내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조화는 세상의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단세포에서부터 태양과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깃들어있다.

우리는 절대영원성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이며

, 질적으로 그와 동일하다.

한 인간의 영적 성숙도란

절대영원성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수준이다.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다른 대다수의 인간들보다 성숙된 자세로써

절대영원성을 받아들이고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속에는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

예수께서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무지의 어둠을

남김없이 밝히고 그들을 깨우쳐서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그 당시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을 이미 내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절대영원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이들을 가르치셨다. 말씀으로써,

그리고 행동으로써.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한한 진리의 보고였으며,

그의 일거일동은 인류의 완성과 구원을 향한 초석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를 강조하시기 위하여

다양한 기적을 행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세인들의 관심을 모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적은 인간들을 매혹하여 숭배를 받기 위함이 아닌,

순수하게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리하여 그들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그들 내면의 영성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그 분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동경을 받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그 분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복음 10:30)라고 하셨다.

이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임과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은 우리와 신 사이의 운명적 결속을

강조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신이라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요한복음 10:34)

나사렛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으로써 모든 인류가

성스러운 진리의 빛으로 화하여 스스로가 깨달음과 구원의 햇불이

되도록 돕고자 하셨다.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절대영원성, 로고스, 성령이라는

신의 참된 본성을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완성된 진리이다.

그렇기에 크리스찬은 단순한 하나의 종교가 아닌

진리의 순수한 화현이며, 우리를 진정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훌륭한 이정표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영혼이신 예수는 우리 모두의 안식처이자 희망이다.

온 인류를 하늘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의 사랑은 끝이 없다.

그의 일부는 곧 우리의 일부이다.

우리 모두가 그를 내면에 품고 있듯이,

그 또한 우리 모두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늘’ (고린도후서12:2)로 승천한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만물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21-23)

진리의 문을 두드리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대에게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다면,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마테복음 17:20).

복음서의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은

무한한 영적 지혜의 보고이다.

이들은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사랑 그 자체이다.

모든 진리 탐구자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