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독송용 한글 참전계경 - 제 1 장 성리훈(誠理訓) 본문
* 참전계경(參佺戒經)은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일찍이 백운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천서(天書)를 얻어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또한 을파소는 고구려의 모든 젊은이에게 이 경전을 가르쳐 고구려의 국가정신을 재확립하는 기초로 삼았다고 한다. 이 참전계경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걸어야 할 정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인간이 겪는 모든 일에 대한 해결방법을 366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구조는 8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각 장 또한 세부적인 항목으로 나누어져있다. 천부경, 삼일신고와 더불어 참전계경은 한민족 3대경전, 천부3경이라 한다. * 한글 참전계경* 제 1 장 성리훈(誠理訓) 제1조:성(誠) 정성이란 속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며, 본연의 성품을 지키는 것으로 육체 사십칠용(四十七用)이 있느니라. 제2조:경신(敬神) 경이란 지극한 마음을 다함이요, 신은 천신 즉 하나님이라, 해와 달과 별들과 바람과 비와 우레는 모습이 있는 하늘이요, 모든 것을 보지 않음이 없고 소리를 듣지 않음이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하늘이라. 모습이 없는 하늘을 하늘의 하늘이라 하며, 하늘의 하늘은 곧 천신(하나님)이니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사람에게 응하지 않아 마치 풀과 나무가 비와 이슬과 서리와 눈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제3조:존봉(尊奉) 존이란 숭배함이요, 봉이란 진실로 우러러 정성을 다함이라. 사람이 하나님을 우러러 높이 받들면 하나님께서도 사람에게 정기를 내려 주시나니 마치 갓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언 몸에 옷을 입혀 주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만약 정성이 없이 숭배만(모시기만,받들기만)하면 귀머거리와 소경과 같아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느니라. 제4조:숭덕(崇德) 숭이란 하나님을 존경함이요. 덕이란 하나님의 은덕이라. 하나님의 은덕은 가문 땅에 단비가 내리고, 그늘진 골짜기에 따스한 봄볕이 드는 것과 같으니라. 잠시라도 하나님의 은덕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될 수 없고, 물건이 물건될 수 없나니, 그러므로 밝은이는 부지런히 힘써 하나님의 은덕을 칭송하느니라. 제5조:도화(導化) 도란 가리키어 이끄는 것이요, 화란 하나님의 조화라. 사람이 하나님의 조화를 모르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이치에 어두워서 나의 타고난 성품이 어디서 받았는지를 알지 못하며 또 내 몸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느니라 이를 먼저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것을 깨달을 수도 없나니, 그러므로 밝은이는 마땅히 하나님의 조화를 펴서 뒤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느니라. 제6조:창도(彰道) 창이란 밝힘이요, 도란 하나님의 바른 길이니라. 사람이 이 바른 도를 따르면 요괴가 그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며 사특한 마귀가 그 간사함을 드러내지 못하느니라. 무릇 바른 길이란 중도(中道, 중심의 길,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길)이니 중심의 한 길9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한 길)을 그 표준으로 삼아 나아가면 하나님의 도가 이내 밝게 나타나느니라. 제7조:극례(克禮) 극이란 지극함이요, 예란 하느님을 공경하는 예이라. 예가 없으면 공손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면 정성이 없나니, 만약 예를 다하고 공경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온화하게(다정하게,기쁜 마음으로)임하시느니라. 제8조:숙정(肅靜) 숙이란 기운을 세움이요, 정이란 마음을 정함이라 기운을 세우면 물욕이 일어나지 않으며, 마음을 정하면 하늘의 이치가 저절로 밝아 지나니 마치 햇빛 아래 걸어놓은 거울이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듯하느니라. 그러므로 기운을 엄숙히 세우고 마음을 고요히 정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면 능히 하늘에 계시는 신령을 볼 것이니라. 제9조:정실(淨室) 정실이란 하느님을 존귀하게 받들어 모신 곳을 말함이라. 높고 깨끗한 때를 가려서 비린내와 더러움을 금하고 시끄럽게 떠들지 말며 번거로운 형식을 갖추지 말아야 하느니라. 쓰는 그릇은 진귀하고 호화로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탕의 정결함이 제일 중요하느니라. 제10조:택제(擇齊) 가린다는 것은 지극한 정성의 행위이요, 재계한다는 것은 고요히 마음을 경계함이라 비록 하나님께 빌더라도 칠정에 좌우되어 갑자기 구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욕함이라. 그러므로 반드시 날을 가리고 마음을 고요히 경계하여 오직 한결같은 정성된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서린 연후에 빌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굽어 살피시느니라. 제11조:회향(懷香) 향을 올릴 시에 이르기를 한 향을 받들어 올리고자 할 떄에 공손히 천리를 가는 마음을 품고 올려라. 그리하면 향 연기 날아올라 흩어지지 않으며 정한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정성으로 향해 가리라. 제12조:정(正心) 바른마음이란 본래 타고난 마음(天心)을 바르게 함이라 마음에는 일곱 구멍이 있어 일곱 가지 감정에 부림 받으면 하늘의 이치를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한 줄기 머릿골 영검이 홀로 우뚝 뚜렷이 선다면 밝은 햇빛이 구름과 안개를 걷고 넓은 바다 물결이 먼지를 없애 버리듯 칠정이 사라지느니라. 제13조:의식(意植) 뜻이란 마음에서 명령을 받음이요, 식은 뿌리를 옮기지 않음이라. 뜻이 천심(머리골 속에 내려와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명령받지 않고 사람의 가달된 욕심을 좇아 이리 저리 흔들리면, 온 신체가 오히려 그 천심의 명령을 어기게 되어 마침내 아무런 공도 거두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로 말미암아 그 뿌리까지 흔들리는 격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뜻을 심을 마음의 밭을 평평히 잘 골라야먄 이내 뜻(머리골 속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의 성품)이 운행하느니라. 제14조:입신(立身) 입(立)은 곧게 함이요, 신(身)은 몸이라.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뒤에 몸을 곧게 하여 세상에 서야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뇌와 고민이 연달아 일어나서 정신을 훝어지게 하고 기운을 쇠약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밝은이는 순수하고 당당하며 뭇 사람들은 잡되고 굽실거리느니라. 제15조:불혹(不惑) 불혹이란 사물에 미혹되지 않음이라. 마음이 바르면 밝으므로(마음의 눈이 밝아져)사물이 밝게 비추어져 그 추함과 아름다움,섬세함과 엉성함이 저절로 나타나느니라. 내가 분별하기도 전에 스스로 밝음으로 인하여 사물을 먼저 알아내므로 어찌 미혹될 수 있으랴. 마음이 밝지 못하면 마치 겹겹이 쳐놓은 발에 가려있는 것과 같아서, 발 밖에서 달아나고 날아가는 것이 들짐승인지 날짐승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물에 대해 의혹이 생기느니라. 제16조:일엄(溢嚴) 일(溢)은 물이 가득차서 넘친다는 것이요, 엄(嚴)은 바르고 큰 기색이라. 하늘이 가을빛을 머금음으로써 숙연한 기운이 온 세상에 차고 넘치며 사람이 바른 마음을 간직함으로써 엄숙한 기운이 한결같이 일어나서 그 위엄은 신령스러운 용과 같고, 그 모습은 우뚝 치솟은 산과도 같으니라. 제17조:허령(虛靈) 허는 물건이 없음이요, 령은 마음이 영검함을 이름이라. 비어서 영검한 이는 마음에 가리운 것이 없어 얼굴빛이 옥같이 아름답고 빈 가운데에서 이치와 기운이 생겨 크게는 천계를 두루하고 작게는 티끌에까지 미치나니, 그 이치와 기운은 비고도 신령한 것이니라. 제18조:치지(致知) 치지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 깨달음이라.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끊임이 없이 하면 마음의 신은 앎을 주관하고, 마음의 영은 깨달음을 주관하여 소리를 들으면 신이 통하고 사물이 다가오면 영이 깨달아서 과거와 미래를 그 당시처럼 환히 알 수 있느니라. 제19조:폐물(閉物) 폐란 열지 않음이요, 물이란 사물이라, 마음은 일을 간직해 두는 곳간이요, 몸은 일을 행하는 중요한 기구이니라. 마음에 간직하고서 행하지 않으면 어찌 그 일을 이룰 수 있으랴. 마음을 열고 일으킴에 때가 있고 장소가 있나니 열되 때에 맞지 않고 행하되 장소에 맞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가 어두워지고 사람의 도가 뒤짚히느니라. 그러므로 밝은이는 사물에 대한 마음을 닫고, 열어서 행함에 신중하느니라. 제20조:척정(斥情) 척이란 버림이요, 정이란 정욕이라. 기쁨과 노여움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며, 편안함과 즐거움을 구하여도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고 , 가난함과 천박함을 싫어해도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나니, 바른 마음을 얻으려면 먼저 정욕을 버려야 하느니라. 제21조:묵안(默安) 묵이란 오래 잠겨있음을 말함이요, 안이란 맑게 쉼이라. 오래 잠겨있음으로써 마음이 어지러워지려는 것을 경계하고 맑게 쉼으로써 마음이 번잡해지려는 것을 경계하면 흙탕물이 점점 맑아지듯 심하게 흐린물도 마침내 정화되느니라. 이것이 마음을 맑게하는 근원이니 맑은 마음은 바른 마음의 기초가 되느니라. 제22조:불망(不忘) 불망이란 잊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천연적으로 잊혀지지 않음이라. 정성이란 도를 이루는 전체요, 만사를 이루는 큰 근원이니 천연적으로 잊혀지지 않고 마음 속에 간직한 그 정성이 참 정성이요, 한결같이 어김이 없음은 그 다음이니라. 제23조:자임(自任) 자임이란 다른 데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정성을 다한다면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되어, 마치 봄 가을이 차례로 바뀌고 해와 달이 번갈아 뜨는 것과 같으니라. 제24조:자기(自記) 자기란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됨이라. 기억하려 함은 마음에 의지하여서 하는 것이지만, 저절로 기억됨은 마음에 의지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됨이라. 도를 닦는 사람은 정성의 이치대로 정성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성은 이미 머리와 정신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만 가지 생각이 갈라지더라도 굳게 가진 한결같은 생각은 오직 정성밖에 없느니라. 제25조:첩응(貼膺) 첩응이란 가슴에 붙어 떠나지 않음이라 천연적인 정성은 신이 그 정성을 보살펴 주시고 영혼을 감싸주며 몸이 이를 실러 가슴에 단단히 간직하면 몸은 비록 추워도 가슴은 뜨거우니라. 제26조:재목(在目) 재목이란 정성의 있는 곳을(따로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항상 눈에 정성이 서려 있음이라. 눈으로 사물을 봄에, 물건이 없으면 보이지 않으나, 다만 정성된 뜻이 눈에 있다면 가까운 물건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가까이 사물의 겉모습은 보지 못할지라도)먼 물건은 그림 보듯 훤하느니라. (깊이 사물의 본질은 훤히 보이느니라) 제27조:뇌허(雷虛) 뇌허란 정성의 마음이 오직 귀로 듣는 데에만 얽매이어 있으면 정성이 일어날 때에 비록 우레소리 같이 크게 일어나더라도 저절로 궁허해져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느니라. 제28조:신취(神聚) 신이란 정신이요, 취란 합침이라. 사람 몸의 모든 부분은 정신이 각각 지키는데 간이 하는 일에 폐가 참여하지 않고, 위가 하는 일에 콩팥이 참여하지 않느니라. 하지만 정성을 드리는 일에는 모든 정신들이 다 합쳐지나니 그 중 하나라도 없으면 정성을 이룰 수 없느니라. 제29조:불식(不息) 불식이란 지극한 정성을 쉬지 않음이라. 쉬지 않는다는 것과 쉼이 없다는 것은 각자 다르나니, 그것이 도력의 떨치고 움츠러듦과 사람 욕심의 사라지고 자람에 있어서는 가는 털끝만한 간격의 차이라도 하늘과 땅만큼한 큰 차이가 있느니라. 제30조:면강(勉强) 면강이란 힘써서 스스로 강해짐을 말함이라. 스스로 강해짐이란, 잔 꾀를 이기고 나아가 갈림길목에서도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마침내 힘들여 이룩해냄이라. 힘써서 강해지면 정성의 뿌리가 깊고 단단해져서 강함을 다스리지 않아도 능히 강해지고, 억지로 어찌하고자 하지 않아도 능히 이루어지느니라. 제31조:원전(圓轉) 원전이란, 정성을 쉬지 않음이 마치 둥근 물건이 평탄한 땅에서 스스로 구르는 것과 같으니라. 멈추려 해도 되지 않고 느리게 하려 해도 되지 않으며, 빠르게 하려 해도 또한 되지 않나니 그저 몸체를 따라 스스로 굴러 나아가 쉬지 않느니라. 제32조:휴산(休算) 휴는 쉬는 것이요, 산은 헤아림이라.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정성을 드리는 사람이 정성이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계산하여 그 동안에 혹 무슨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은 정성을 드리지 않음과 같으니라. 무릇 정성을 쉬지 않는 사람은 정성이 시작되는 해도 헤아리지 않으며, 또 정성이 끝나도 해도 헤아리지 않느니라. 제33조:실시(失始) 실은 잊음이요,시는 처음이라. 처음에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정성을 시작하여 차츰 깊은 경지로 들어가면 하고자 하는 바는 점점 적어지고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며, 그리고 차츰 참 경지로 들어가면 하고자 하는 바는 없어지고 오직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느니라. 제34조:진산(塵山) 티끌이 바람에 날려 산기슭에 쌓여 해가 오래되면 마침내 한 산을 이루나니, 지극히 적은 흙으로 지극히 큰 언덕을 이루는 것은 바람이 쉼없이 티끌을 모았기 때문이니라. 정성도 또한 이와 같아서 지극한 정성을 쉬지 않으면 정성의 산을 가히 이룰 수 있느니라 제35조:방운(放運) 방은 정성의 뜻을 넓힘이요, 운은 정성의 힘을 움직임이라. 정성의 뜻을 쉬지않고 넓히면 컴컴한 밤에도 밝은 달이 뜨며, 정성의 힘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 한 손으로 만근을 들 수 있느니라. 비록 정성이 그렇다 하나 혹 정성의 뜻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거나, 정성의 힘이 부드러웠다 강했다 하게 되면 그 결과를 알 수 없으니라. 제36조:만타(慢他) 만(게으름)은 마음에 있지 않음이요, 타(다르다)는 다른 일을 생각함이라, 마음의 일념이 오로지 정성에 있고, 정성의 일념이 오직 쉬지 않음에 있으면 다른 일에 대한 생각이 어찌 싹터 움직이리오. 그러므로 가난하고 천함이 그 정성을 게으르게 할 수 없으며 부유하고 귀함이 그 정성을 어지럽히지 못하느니라. 제37조:지감(至感) 지감이란 지극한 정성으로 느끼고 응함에 이르름이라. 느끼고 응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람의 정성을 느껴 그것에 응답함이라. 사람이 가히 느낄 수 없는 정성이라면 하나님이 어찌 그 정성을 느끼며 사람이 응답할 수 없는 정성이라면 하느님이 어찌 그 정성에 응답하시랴. 그러므로 정성을 드리되 지극함이 아니면 정성이 없는 것과 같으며, 느끼되 응답함이 없으면 느끼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제38조:순천(順天) 순천이란 이치에 순응하여 정성을 드림이라. 천리(天理)를 알면서도 거슬러 비는 이가 (하늘의 이치를 알면서 이치에 어긋난 것을 비는 이가) 혹 있는가 하면, 천리를 모르고 성급하게 비는 이(하늘의 이치를 모르고 빨리 응답해 달라고 비는 이) 도있나니,이는 모두 하나님을 느끼게 하지 못하며, 그 응답을 받지도 못하느니라. 만약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천리를 따르고 거스르지 않으며 천리에 따르고 성급하지도 않아야 하느니라. 제39조:응천(應天) 응천이란, 하늘의 이치에 응하여 정성을 기름이라. 하나님께서 고통과 어려움을 주시더라도 달게 받아 정성을 다함에 어김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상서로운 복을 내려 주시면 오히려 두려워하여 정성을 다함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환란이야 정성이 없는 곳에 돌아가지만 상서로운 복이 어찌 정성 아닌 곳에 속하리오. 제40조:청천(聽天) 청천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듣되 정성으로써 느끼고 응함이 있을 것을 기대하지 않음이라. 나의 정성이 반드시 하나님을 느끼게 함에 이르지 못했는데 어찌 응함이 있을 것인가 생각하여 더욱 오래하고 더욱 맑게하며 더욱 부지런히 하고 더욱 고요히 하며 도리어 정성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야 하느니라. 제41조:낙천(樂天) 낙천이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함이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지극히 공평하시고 사사로움이 없으시나니, 나의 정성이 깊으면 하나님의 느낌도 깊으시고, 나의 정성이 얕으면 하나님의 느낌도 얕으시나니 스스로 하나님의 느낌의 깊이를 아는 것이 내 정성의 깊고 얕음을 아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점점 더 정성을 다할수록 점점 즐거운 것이니라. 제42조:대천(待天) 대천이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사람에게 느끼고 응함이 있음을 기다리는 것이라. 하나님의 응함을 기다리는 깊은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정성도 없나니. 기다림도 무한하고 정성도 또한 무한해야 하느니라. 비록 하나님께서 느껴 은덕을 내리시더라도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정성을 멈추지 말아야 하느니라. 제43조:대천(戴天) 대천이란 머리 위에 하늘을 이고 있음이라. 물건이 머리 위에 있으면 아주 가벼운 무게라도 느낄 수 있나니 하늘을 머리에 임에 마치 무거운 물건을 인 것처럼 하면 감히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몸을 함부로 추스리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이와 같이 공경하여 받들면 그 정성된 뜻이 능히 하나님을 느끼고 응함에 이르게 할 수 있느니라. 제44조:도천(禱天) 도천이란 하나님께 비는(원도하는)것이라. 원도할 줄 모르는 이는 어렵다고 하여 어렵게 빌고, 쉽다고 하여 쉽게 빌지만(어렵게만 생각하여 원도를 잘 못하고, 쉽게 생각하여 원도를 가벼이 하지만), 원도할 줄 아는 이는 그렇지 않느니라. 쉽다고 하는 이는 쉽게 빌 줄만 알아서 정성이 자기 한 몸을 꿰뚫지 못하지만, 어럽다고 하는 이는 어렵게 빌 줄을 알므로 정성이 능히 하늘을 꿰뚫느니라. 제45조:시천(恃天) 시는 의지함이니 아랫 정성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중간 정성은 하나님을 믿으며 큰 정성은 하나님께 의지하느니라. 지극한 정성으로써 세상을 접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 주시어 자연히 의지하는 바가 있게 되지만, 세상 사람들이 정성을 다함에 달리 험하고 괴이한 것을 행하니 어찌할 것인가? 제46조:천(講天) 강천이란 하나님의 도를 헤아림이라. 사람의 일이 순조로움은 하나님의 도에 화합함이요, 사람의 일이 막힘은 하나님의 도에 거스름이라. 사람 일의 순조롭고 막힘을 알아서 하나님의 이치에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치를 헤아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리하여 두려워하고 삼가 조심함을 마음 속에서 버리지 않는다면 그 정성된 뜻이 마침내는 하느님을 감동시키게 되느니라. 제47조:대효(大孝) 대효한 지극한 효도라. 한 사람의 효도가 한 나라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온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나니, 천하를 감동시킬 만한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 어찌 이렇게 될 수 있으리오. 사람이 감동하면 하나님 또한 감동하시느니라. 제48조:안충(安衷) 안은 화평함이요, 충은 마음과 정성이 지극함을 말함이라. 사람의 자제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편안히 하며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모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며 부모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면 곧 상서로운 구름이 방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뻗치느니라. 제 49조:쇄우(鎖憂) 잠근다 함은 닫음을 말함이요, 근심이란 즐거운 일이 아님이라. 부모가 근심이 있으면 자식은 마땅히 이를 없애서 화평하게 하고, 그 근심이 있은 뒤에 이를 없게 함에는 근심될 말을 부모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하며, 설혹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형세에 따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직 지극한 정성으로 할지니라. 제50조:순지(順志) 순은 화평함이요. 지란 뜻(의)의 기운을 말함이라. 부모의 뜻은 저마다 다르니, 자식이 그 부모의 뜻을 알지 못하면 부모도 뜻을 얻지 못하여, 비록 몸과 집안의 좋고 즐김을 다할지라도 항상 불평하는 기운이 있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큰 효도를 하는 자식은 능히 그 부모의 뜻을 순(화평)하게 하느니라. 제51조:양체(養體) 양체란 부모의 몸을 봉양함이라. 부모님의 몸이 건강하다 하더라도 마땅히 봉양해야 하는데 하물며 잔병이 있거나, 중병이 있으심에랴, 잔병이 있으시면 성한 몸처럼 편안하게 해드리고, 중병이 있으시면 남은 증세가 말끔히 없어지도록 해드린 연후에야 사람의 자식으로서 효를 다하는 것이 되느니라. 제52조:양구(養口) 양구란 부모님의 입에 맞도록 봉양함이라. 부유하여 진수성찬을 드리더라도 남에게 맡겨서 하면 봉양함이 아니니 가난해서 물고기를 잡고 나물을 캐는 수고를 하더라도 손수 봉양해야 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의 식성을 모르게 되어 그 즐기시는 것을 버리게 되고 알맞게 조리해 드리는 것을 어기게 되나니, 비록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다 드렸다해도 잡수시면서 만족하시지 않느니라. 큰 효도를 하는 자는 봉양할 줄을 알아서 다섯 가지 맛을 식성에 맞도록 해드리고 사계절에 제 철이 아닌 음식을 해드림은 실로 하느님께서 감동하시느니라. 제53조;신명(迅命) 신은 빠름이요, 명은 부모님의 명령이라. 부모님의 명령이 계시면 자식은 반드시 받들어 행할 것이라. 부모님의 명령이 자애로움이 있는 것 같지 않다하여 선후를 뒤바꾸거나 완급이 적당함을 잃으면 비록 입으로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마음에는 달리 생각하심이라. 그러므로 큰 효도를 하는 사람은 부모님의 명령에 따르고 어김없이 행하느니라. 제54조:망형(忘形) 망형이란 자기 모습을 잊음이라. 자식이 부모님을 섬기되 감히 자기 몸 있음을 생각지 않는 것은 부모님 은혜에 깊이 보답함이니라. 오직 그것을 알아서 자기 몸을 감히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니, 자기 몸을 잊지 않는 것은 도리어 자기 몸을 아직 생각하는 것이니라. 큰 효도를 하는 이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언제나 자기 몸을 잊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자기 몸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느니라라
2017.03.10 - 수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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