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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 <道可道 非常道> 본문
노자 -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어진재
2019. 8. 28. 22:30
노자 <도덕경> 제1장의 의 첫 문장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를 우리말로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도올의 해석과 <노자를 웃긴 남자>의 해석을 비교하여 참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도올은 기존의 일반화된 해석을 준용하여 이렇게 번역하였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경숙은 도올과 달리 이렇게 번역하였다. <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꼭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도올은 위 문장을 조건문으로 보았다. 그리고 종속절에서 두 번 사용된 <도> 가운데 후자를 <말할 言 도>로 훈독하였다. 또한 주절의 <상>을 <늘 그러한>으로 풀었다. 그러면 이 문장의 의미는 <누군가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그것은 늘 그가 말하려는 도가 아니다>가 된다. 그것은 노자의 도를 선불교에서처럼 언표 불능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불립문자적 사고의 표현이다.
그와 달리 이경숙은 위 문장을 인용문 認容文으로 보았다. 그런데 <비상도>에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의미를 집어넣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비단 도가 아닌 것도 얼마든지 도가 될 수 있다>는 폭넓은 인용의 의미로 읽혀진다.
두 해석의 공통된 결함은 <도가도 비상도>와 이후 문장들의 의미맥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가도 비상도>는 <도는 도이지만 상도가 아니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부연하면 <도는 한 때의 도 一時之道일 수 있으나 고정불변의 도 恒常之道가 아니다>이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 道가 유일 절대적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문장들은 왜 <도가도 비상도>인가에 대한 이유를 상론 詳論한다. 따라서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은 <명은 명이지만 상명이 아니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부연하면 <이름은 한 때의 이름일 수 있으나 고정불변의 이름이 아니다>이다.
<무>란 천지의 시원을 가리키는 이름 無 名天地之始이며, <유>란 만물의 모태를 가리키는 이름 有 名萬物之母이다. 그처럼 태초의 무를 가리키던 이름이 현재 지상의 유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변화하였다.
도와 명은 천지자연 속 인간세계의 존재가치이다. 무와 유는 인간세계를 포함한 천지자연의 존재상태 그 자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무와 유에는 전자와 달리 상무 常無와 상유 常有의 경계가 현존한다. 가령, 인간의 죽음은 상유에서 상무로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그것들도 살아있는 인간의 언어로 인식하는 지각의 대상이지만, 특히 상무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신비의 영역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상무의 상태에 대하여 그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현묘함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常無 欲以觀其妙. 상유의 상태에 대하여 상무의 둘레를 맴돌며 徼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常有 欲以觀其徼.
인간의 도와 명은 <나 吾>의 상유의 상태에서만 존재 가능하다. 그러한 인간의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상무는 죽은 <나>의 추체험적 타자화로서의 천지자연의 허무한 상태이다.
그런데 상무와 상유는 자연의 시차에 의해 생겨난 같은 뿌리의 서로 다른 이름이다 同出而異名. 결국 그 둘의 본질적인 상태는 다함께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 할 것이다 玄之又玄.
세상의 올바른 이치인 <도>를 깨닫는 일은, 그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일은, 무에서 생겨나와 다시 무로 돌아가는 유의 현묘함을 세심히 관찰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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