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무한진인의 천부경 풀이 천부경 공부 본문
<한문 천부경 원문> 一始無始一 (0) 析三極 無盡本(1) 天一一 地一二 仁一三 (1,2,3,) 一積十鉅 無櫃化三 (4)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5) 大三合六 生七八九 (6) 運三四成 環五七一妙衍 (7) 萬往萬來用變 不動本 (8) 本心 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9) 一終無終一 (10) < 해석 > (절대근본바탕) 하나의 시작도 없음이 하나의 시작이니라 (0) 셋으로 나눠지지만 근본 바탕은 변함이 없노라 (1) 근본바탕의 일원화(一元化)상태에서는, 天(공간),地(시간),人(앎), 세가지 속성은 드러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느니라. 이 세가지 잠재된 속성은, '天11'은 드러나지 않은 공간(天)의 씨앗이니 근본바탕의 절대 존재상태로써, 모든 것의 움직임 없는 바탕이며, 모든 존재와 비존재마저 초월한 근원이니라 (1) '地12'는 드러나지 않은 시간(地)의 씨앗이니, 근본바탕의 절대지복(至福)상태로써,모든 움직임의 기본요소이며 시간의 생성원리이니,움직임 없는 움직임이노라 (2) '人13'은 드러나지 않은 앎(人)의 씨앗이니, 절대자각 상태로써, 앎의 원형이며,의식의 근원이니라. 즉 절대자각인 '3(人'은 절대존재(千)인 공간성 '1'과 절대지복인 시간성(地) '2'가 합쳐진 것이며, 앎없는 앎자체,즉 모든 앎을 초월한 순수자각 상태이니라.(3) 절대존재(天11), 절대지복(地12),절대자각(人13)은 동일한 하나이니라. (보편적 존재의식) 근본바탕인 '1'애 응집된 天11,地12,人13, 3극은 전체에 오직 순수한 '하나'로써 편재하는데, 경계를 만드는 육체기관이 없으면, 전체에 단일하고 청정한 순수 자각(3)으로만 펼쳐지느니라. 이 순수자각(3)이 이원화로 되어 밖으로 비추어지면, '4'(天23)는 파동성 움직임이 시작될 때에 의식적 공간성으로 전체에 펼쳐지며, 그 의식적 공간 자체가 진동하여 보편적 우주의식을 만들어 내느니라.(4) '5'(地23)는 파동성 존재의식의 움직이는 시간성으로서, 의식의 교번적인 파동 움직임 자체이며, 의식의 기본 움직임과 현상계에 있어서 시간의 기본요소가 되느니라.(5) '6'(人23)은 파동성 의식으로 드러난,마음(人)의 뿌리인 존재의식이니, 의식의 공간성(天23),의식의 시간성(地23),의식의 자각성(人23)이 합해져 연속적으로 진동하며 조화롭게 유지하는 존재의식이고, 우주적 보편의식이며, 이 삼라만상 우주세상이 나타나는 이원화 의식의 기본바탕이 되느니라.(6) (현상세계)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 天23,地23,人23의 존재의식(6)이 이원화 현상세계의 기본 바탕으로 펄쳐지면, 이 존재의식으로부터 이원화 현상세계의 공간(7),시간(8),사람(9)이 발현되고, 이를 바탕으로 삼라만상 전체가 다양하게 펼쳐져서 나타나는 것이니라. 절대바탕의 순수자각(3)이 움직이면 전체가 오직 자각성(앎,4)의 의식공간으로 펼쳐지며, 이 자각성 의식공간이 움직이면, 의식의 시간요소(5)가 회전하면서, 존재의식의 파동 움직임이 연속적으로 진동하면서 보편적 존재의식(6)이 저절로 형성되며, 이 존재의식을 기본 배경으로 해서 그 위에 우주공간과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묘하게 '하나'로 펼쳐지면서 운행되는 것이니라.(7,8,9) 존재의식에 의하여 드러난 현상세계에서, '7'은 현상세계에 나타난 하늘(天)로서, 움직임 없는 전체 우주공간을 이르는 것이고, '8'은 현상으로 나타난 땅(地)으로서, 삼라만상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이르는 것이며, '9'는 현상으로 나타난 사람의 마음(人)이며, 육체, 마음의 복합적 인간인 '나'를 이르는 것이니라. 천지가 만번 갔다 만번 오면서 그 시간의 작용은 변할지라도, 절대지복상태인 근본바탕(지금 여기)은 전혀 움직임이 없노라(8) 근본바탕이 아이(나)의 마음이노니, 근원의 태양(절대자각)이 밝게 비추고 있으므로, 사람(마음)안에서 전체 우주가 하나(一)이니라.(9) '하나'의 끝남도 없음이 '하나'의 끝남이노라.(10) <해설> 1)천부경 소개 한문천부경은 단군조선시대 이전의 고대부처 전송되어 내려온 한민족 고유의 가르침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81자로 구성된 아주 짧은 글입니다. 天符經이란 말뜻을 풀이해 보면 天은 하늘 또는 神이며, 符는 부호,증거,암호,인장,부적 등의 뜻이 있으므로 神의 암호,신의 부적, 천지창조의 秘意 등의 뜻으로, 그러한 진리의 가르침(經)이라고 해석해 볼 수가 있습니다. 글자수는 81자 밖에 안되지만 0~10까지의 숫자로 구성된 암호같은 문장들 때문에 지금까지 천부경에 대한 해석들이 아주 다양하며, 여러가지 관련 서적들이 많이 편찬되어 나와 있습니다. 또한 대종교(옛명칭 단군교)라는 민족종교 단체에서 천부경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소중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하며, 대종교 계통의 학자나 구도자들이 천부경에 대한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깊은 연구들을 많이 한 것 같읍니다. 그래서 우선 천부경이 나온 연유에 대한 소개는 대종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인용하여 수록했습니다. '우리 천손 천민의 배달겨레는 개천 이래로 위대하고 거룩한 3대 경전으로 조화경인(천부경)과 교화경인(삼일신고)와 치화경인(참전계경)이 있다. 81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한배검께서 천부삼인을 가지시고 태백산(백두산)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셔서 신시를 열어 인간을 넓고 크고 유익케 하기 위하여 만백성을 가르치실 적에 조화의 원리 곧 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참 경전이다. 말로써 전해 오던 것이 신지 혁덕에 의하여 녹도문자로 기록되었고, 뒤에 신라의 고운 최치원선생께서 신지(글을 맡은 사관 벼슬이름)가 쓴 그 천부경이 전자(篆字)로써 옛 비석에 적힌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작은 수첩에다 한자로 옮겨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귀중한 경전이 오랫동안 묻히게 되었는데, 특히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책만을 읽게 하고 이를 돌보지 아니 하였고, 그러는 동안 개천 4363(1916)년에 선천 계연수 선생께서 묘향산 석벽에서 이를 발견하여 개천 4364(1917)년 대종교에 전했으니,ㅡ 중략 ㅡ' 2)해설 천부경은 단 81자의 고대 한문으로 적힌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을 아무리 명쾌하게 밝힌다 해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거의 0~10까지의 숫자로 조합되어 있어서, 마치 숫자의 조합으로 비밀 암호를 풀듯이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주역의 음양 오행설을 응용해서 해설하는 사람도 있으며, 불교의 유식학 용어를 대입하여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슶니다. 또 주역의 원리를 활용하여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그려서 풀이한 분도 있고, 숫자의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를 대입하여 어떤 개념으로 대치해서 풀려고 하는 시도도 있으며, 어려운 수리학을 이용해서 숫자배치와 각숫자가 의미하는 특별한 개념으로 우주천문학적인 측면에서 풀이해 본 분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무척 난해한 암호글이라고 여기면서, 어떤 특별한 우주철리의 비밀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고서 암호를 해독하듯이 연구하는 분들이 많읍니다. 그러나 이 숫자로 된 짧은 문장은 그 결론적인 마지막 문장들을 보면, 누가 보아도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듯이, 진리를 구하는 구도수행 또는 마음에 대한 글이 확실하며, 기존에 널려있던 학문적 개념들을 도구로 활용하여 학술적으로 풀기에는 오히려 추리와 상상력에 의해서 공허한 환상철학이 될 소지가 많읍니다. 진지한 어느 한 구도자가 천부경을 풀어 보려고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기존 해석내용들을 완전히 무시한채, 구도수행으로 정화된 마음을 가지고 직감적 체험으로 해석해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천부경은 그 기본 내용이 정신수행의 체계적인 3단계를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어떤 개념어나 미사여구도 없이 거의 0~10까지의 숫자로 절대상태,보편의식상태, 개인의식상태를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숫자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거대한 건물을 세우는데,앙상한 골조만 세워 놓아서, 그 건물이 어떤 모양인지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고금동서에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신화,종교설화,민족신화,건국신화,종교 경전들, 기타 성인들의 가르침 내용 등에서 온갖 다양한 개념과 다채로운 미사여구, 화려한 치장과 불필요한 살점을 전부 발라낸 앙상한 기본 골조만 남겨서 기록한 모양새가 바로 천부경의 내용과 같이 간단한 숫자 몇개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의 가르침이나,하나님의 말씀, 신화의 상징적인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아주 기본적인 골조로 된 기본틀이 바로 천부경의 81자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천부경 기원의 배경이나 한민족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역사적 중요성같은 피상적인 문제와는 상관없이, 내용상으로 81자로 구성된 아주 단순한 고대의 비문내용에 인간정신의 가장 심오한 보편적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천부경의 가치는 아주 귀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경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우주 삼라만상이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온 의식의 빛으로 그려진 것이며, 그 의식의 빛이 나오는 근본 바탕과 의식이 저절로 생겨나서 펼쳐지는 과정,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시공간의 현상세계가 펼쳐지는 원리에 대하여 3단계 과정으로 나누어서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0~10까지의 숫자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면서 우주창조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현상세계측면에서는 우주삼라만상의 창조원리라고도 볼 수 있으며,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의식의 발생과 분화과정,현상화 되는 원리라고도 볼 수 있고,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신들의 유희, 즉 절대신 아래 三神의 유희 또는 창조신화의 기본원리이며, 구도수행 측면에서는 현상계의 주시자인 존재의식, 존재의식의 주시자인 절대본체애 대한 단계적 구조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이며,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현상세계와 육체,마음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국가조직,사회구성,물리적 현상,정신현상 등 다른 측면에서도 응용적으로 여러가지 다양한 현상의 기본원리로 적용해서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구도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해 보았습니다. 천부경은 네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쨰는 절대근본바탕에 대한 내용이고, 두번쨰는 의식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내용이며, 세번쨰는 나타난 삼라만상인 현상세계에 대한 내용이고, 네번쨰는 마음이 바로 근본바탕이라는 결론적인 내용입니다. 1~10까지의 숫자로 구성된 것을 보자면, 0,1,2,3 ㅡ절대본체인 바탕에 대한 묘사이며, 4,5,6 ㅡ보편적 우주의식에 대한 것이고, 7,8,9 ㅡ시공간의 현상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10 ㅡ결론적으로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1이란 숫자를 天1,地1,人1에 공통적으로 붙인 것은 절대 일원적인 상태를 표시한 것이고, 2의 숫자를 天2,地2,人2에 공통으로 붙인 것은 이원적인 상태를 표시하였습니다. 天은 1,4,7로 天(존재)의 절대진아 바탕,의식적 공간,현상세계의 공간에 각각 붙인 번호이고, 地는 2,5,8로 地(지복,시간)의 절대지복,의식의 시간성, 현상세계 내의 시간성에 각각 붙인 번호이며, 人은 3,6,9로 人(자각,앎,의식)의 절대자각,보편적우주의식, 현상세계의 사람마음에 각각 붙인 번호입니다. 한편 天은 공간을, 地는 시간을,人은 사람마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절대상태에서는 天이 절대존재, 地가 절대지복,人이 절대자각을 의미하지만, 활성화되지 않은 숨어 있는 속성입니다. 보편의식에서는 天인 의식의 순수공간성, 地는 의식의 시간성, 人은 의식의 공간성과 시간성으로 조합된 존재의식이며, 현상세계가 나타나는 바탕의식이 됩니다. 현상적인 세계에서는 天이 전체우주허공,地가 만물의 움직임 및 시간, 人이 사람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육체감각기관을 통해서 드러난 시공간의 전체 현상세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0~10까지의 숫자가 무엇을 상징하는 가를 이해하면 천부경 내용이 쉽게 풀립니다. 이 천부경에서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숫자는 3이라는 숫자입니다. 글자수도 3x3=9,9x9=81, 한줄이 9자이며 9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음,양의 2극 사이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세가지 운동속성이며, 이 세가지 작용을 조합하여,조화력과 유지력을 가진 파동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말하는 氣라고 하는 것이며, 푸라나 라고도 부릅니다. 모든 생명체와 물질우주의 기본질료는 바로 이 氣 또는 프라나라고 하는 파동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절대본체를 제외한 모든 현상세계는 이3이라는 파동성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죠. 천부경 문장자체에도 3x3x3x3=81, 이라는 글자 개수가 있는 것은 천부경 자체에 파동성의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서 이렇게 의도적으로 81자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글자로 만든 일종의 트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美와 醜, 싫어함과 좋아함,고귀함과 천함,부와 빈, 이러한 상대적 이분법적인 양쪽 끝(2)만 알지, 그 두가지를 하나로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3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3元化的인 통합과 조화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인간은 움직임없는 절대바탕(공간성 존재)과 움직임(활동성,시간성) 그리고 앎(자각성), 이 세가지 요소로서 존재를 유지합니다. 또한 움직임 또는 시간성에는 별도로 3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창조력(상승성),조화력(유지성),소멸력(하강성)이 그것입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조화력을 잃어버리고 균형을 잃어버린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현대인의 고달프고 애처로운 삶입니다. 따라서 이 3요소가 평형과 조화가 된 삶이야말로 이상적인 인간 삶이며, 평범한 삶속에서도 근본바탕을 잊지 않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올바른 인간적 삶(덕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천부경에서는 하늘(존제성)과 땅(활동성),그리고 자각(앎), 이 세가지 3원을 통합하고 스스로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본성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 본성자체가 순수존재,순수자각,순수지복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흑백의 2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조화와 평형이 유지되는 3평형적인 인간의식이 무엇인가를 숙고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이 천부경이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천부경에서는 움직이는 파동성은 무상한 것이고, 근본바탕인 절대존재만이 오직 진리일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부경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천부경에 나오는 비의적인 내용들마저 진리가 아니고, 실재적인 진리는 그런 말과 글과 개념들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써 천부경 내용자체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천부경에서 침묵으로써 가르쳐 주는 핵심진리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알기 위하여 천부경을 연구하지만, 사실은 그 내용 속에서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도 없는 시작'과 '끝남도 없는 끝남'이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그것은 천부경 내용자체에는 없고, 천부경을 보는 사람 안에 스스로 갖추고 있어서, 자신이 스스로 실재를 자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부경 내용의 기본의도는 바로 그 '말없는 자각'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기 위한 기도문입니다. 이 모든 삼라만상,세상만사,삶의 흐름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변화하는 파동의 움직임으로 실체가 없는 허황한 그림자 움직임과 같다는 것을 이 천부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가 있을 겁니다. 영원히 있는 것은 변함없는 절대본체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제 해석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절대근본바탕) 一始無始一 : 하나의 시작도 없음이 하나의 시작이니라 (0) 始: 비로소,처음. 직역하면 하나가 시작됨은 없음(無)에서 시작하는 하나이다. 하나의 시작도 없음이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다 (0=1) 직역을 해 보면 위와 같이 두가지로 해석해 볼 수가 있습니다. 두 문장은 같은 의미이며, 없음(無)자체가 하나(一)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一=無)이며,(1=0,없음)이라는 것이죠. 아무것도 없는 절대본체상태 자체(無)가 '一'의 시작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본체에서 일어나는 '一'자체가 절대본체 그 자체이므로 1다음에 줄줄이 사탕처럼 분화되어 뒤딸려서 끌려나오는 2,3,4,5,6,7,8,9,도 모두가 절대본체인 시작없음(無始,0)일 뿐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이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 변화하는 우주와 내가 '하나의 시작도 없음(一始無始)인 절대본체(無)그 자체이며, 이것을 간단하게 수식으로 전개해 보면 0=1-,2,3,4,5,6,7,8,9,와 같이 분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꼭지점 1이 맨 위에 있는 삼각형 구조처럼 보입니다만, 이렇게 분화된 것이 모두 1 그 자체이며, 그 1은 곧 0(無)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이 우주삼라만상의 모든 나타남(현상세계)은 바로 절대본체인 無(제로)라는 메세지입니다. 아무리 다양하고 특별하게 나타난 것도 절대본체인 제로(0)안에서 허망하게 움직이는 것일 뿐이며, 그 모든 다양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체인 無始(시작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 첫 문장에서 '시작도 없음 자체가 "一"의 시작이다'라는 첫구절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역경(易經)에서 말하는 무극(無極)상태와 비슷합니다. 도의 측면에서는 도의 본체,본바탕이며,정신수행으로 절대본체,진아,참나라고도 하며, 불교수행체계에서 최고의 깨달음인 부처 경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불교 유식학에서 말하는 제8식을 비롯한 모든 의식을 초월한 근본바탕인 제9식인 여래식이라고도 하며, 인도 베단타식으로 말하자면 파라부라만(근원바탕)이라고도 합니다. 고금동서의 세계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신마저 초월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죠. 말과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초월한 모양도 속성도 크기도 없고,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전체에 고루 편재되어 없는 데가 없는 모든 것을 나타나게 해주는 기본적 원인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이것을 근본바탕 또는 절대본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천부경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라는 개념적인 '명칭'을 전혀 붙히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뒤의 문장에서 그것을 다만 本(바탕)이라고 했읍니다만, 첫문장에는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하나가 시작된다는 말이 없이, 단순히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天이라고만 말했죠. 그래서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바탕(本)은 명칭을 붙히지 않고, 本에서부터 나온 '一'부터 말을 한 것이죠. 마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 한장을 놓고, 그 백지 한 곳에 점 하나를 찍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같읍니다. 이 점이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입니다. 시작과 끝이 동시적이며 동일한 상태입니다. 이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시작과 끝이 동시에 '하나'라는 것은 오직 '점'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시작없는 시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음 문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 '셋'으로 나눠지지만 근본바탕은 변함이 없노라 (1) 근본바탕의 일원화 상태에서는 天(공간),地(시간),人(의식), 세가지 속성은 드러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잠재된 속성은, '天11'은 드러나지 않은 공간(天)의 씨앗이니, 근본바탕의 절대존재 상태로써, 모든 것의 움직임 없는 바탕이며 근원이니라,(1) '地12'는 드러나지 않은 시간(地)의 씨앗이니, 근본바탕의 절대지복 상태로써,모든 움직임의 기본요소이며 시간의 생성원리이니라,(2) '人13'은 드러나지 않은 앎(人)의 씨앗이니, 절대자각 상태로써,앎의 원형이며,의식의 근원이니라. 즉 절대자각인 '3(人)'은 절대존재(天)인 공간성 '1'과 절대지복인 시간성(地) '2'가 합쳐진 것이며, 이는 앎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은 무루지(無漏知)로써 즉 완전한 앎인 절대자각 상태이니라.(3) 절대존재(天11),절대지복(地12),절대자각(人13)은 동일한 하나이니라. 析: 쪼개다,나누다,가르다, 極: 끝,다하다, 盡 : 다하다,없어지다. 本: 근본,원래부터 있는 것,바탕. (一)析三極 : (하나는)세끝으로 나누어지는데, 無盡本 : 바탕은 변함이 없다. 셋으로 나누어지지만 바탕은 변함이 없다. 하나가 셋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하나 안에 세개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하나가 세개로 분리되어 나타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無안에 '1'이라는 시작이 있고, 이 '1'안에 세개의 잠재된 기본 성질이 숨어 있다는 것이죠. 그 기본 성질이 바로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세가지를 말합니다. 이 세가지 성분은 아직 밖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절대바탕인 無안에 하나로 뭉쳐져서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천.지,인이라는 이름을 붙혀 주었습니다. 아직 잉태조차 하지 않은 아기에게 이름을 붙혀 준 것이나 같읍니다. 천,지,인이라고 이름을 붙혀 준 것도 알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읍니다. 그러나 그 세가지에 대하여 설명을 하려면 무슨 이름이든 붙혀주어야 하므로 여기서는 천.지.인이라고 이름을 붙혀 준 것 같읍니다. 천,지,인으로 표현되는 하늘,땅,사람은 나타난 현상세계의 대표적인 3요소인데, 이 절대바탕인 無안에 보이지 않고 발현되지 않은 세가지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인이라는 세가지 대표적 요소들이 의미하는 개념이 무엇인가 참고적으로 약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天이란, 하늘을 말하지만, 실제개념적인 의미는 '존재상태' 즉 '공간성'을 의미합니다. '존재'또는 '공간성'은 어떤 움직임도 없는 고정된 바탕을 말합니다. 地란, 땅을 의미하지만,실제 개념적인 의미는 '움직임'즉 '시간성'을 의미합니다. 人이란, 사람을 의미하며 공간성과 시간성이 조합된 움직이는 '생명기운'즉 의식,또는 앎(자각)을 의미합니다. 공간,시간,의식은 전체 우주의 세가지 기본요소이기도 합니다.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天을 시간으로, 地를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天은 하늘이고, 우주공간의 별들의 움직임이 시간을 가르쳐 주므로 天을 시간으로 여기고, 地는 땅이 넓게 펼쳐져 만물이 생성한다고 해서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개념으로 보자면 天은 우주삼라만상의 그릇인 허공이며, 지구는 회전하므로 시간으로 보는 것이죠. 그러면,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 세가지는 어떤 의미를 표현한 것일까요? 현상세계의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한 초월적 존재상태를 말합니다. 地는 시간요소이며,움직임없는 시간요소이므로 '절대지복'상태를 말합니다. 이것도 시간없는 시간요소,움직임없는 움직임요소를 말합니다. 人은 의식(앎)요소이며,절대바탕 안에서는 '절대자각'상태를 말합니다. 이것도 앎이 없는 앎,의식을 초월한 의식의 근원을 말합니다. 절대바탕의 無속에서 공간요소는 절대진아의 초월적인 존재상태, 절대바탕의 無속에서 시간요소는 절대진아의 초월적인 지복상태, 절대바탕의 無속에서 사람요소는 절대진아의 초월적인 자각상태, 이 세가지 속성들이 하나로 뭉쳐져 잠재해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天一,地一,人一 이라는 세개의 첫번째 '一'은 바로 절대상태인 일원적인 상태를 표시하는 것으로, 근본바탕인 '1'번 소속넘버를 앞에 붙여 준 것이죠. 천.지.인 각각이 모두가 움직임없는 근본바탕 그 자체라는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근본바탕(無)과 '一'의 시작은 같은 것이라고 맨 첫문장에서 이미 선언을 했습니다. 따라서 天一,地一,人一 이 세가지 성분은 '一'을 말하며, 근본바탕 그 자체이고 절대본체 자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절대근본(0)은 존재(천1, 지복(지1),자각(인1)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두번째 붙혀진 一,二,三은 활성화 되어서 밖으로 나타날 때의 발생순서를 나타낸 빽넘버 입니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에서 천.지.인은 아직 생기지 않은 속성의 이름이고, 가운데 공통적인 '一'자는 일원적인 절대본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표시한 소속팀의 앞가슴 넘버이고, 세번째의 1,2,3,숫자는 발생되는 순차를 표시하는 뺵(등)넘버인 것입니다. 天一一 : 일원적인 절대상태에서 첫번째로 생겨나는 天(공간,존재)의 잠재적 작용요소. 地一二 : 일원적인 절대상태에서 두번째로 생겨나는 地(시간,움직임)의 잠재적 작용요소. 人一三 : 일원적인 절대상태에서 세번째로 생겨나는 人(앎,의식)의 잠재적 작용요소.
이렇게 분류해서 정리를 해 보았읍니다만, 사실은 이 세가지는 하나이며,절대바탕인 無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근본바탕 그자체입니다.
이제 천(공간)>지(시간)>인(의식), 이 세가지가 순서적으로 발생하는 원리를 분석해 봅니다. 물론 진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현상세계애 나타난 물리적 현상을 예로 들면서 이해하기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주 고요하고 잔잔한 연못 표면은 전혀 움직임이 없습니다 (절대바탕) 무엇인가 처음 시작하려면 어떤 발생하는 힘이 저절로 하나 일어나야 합니다. 그 처음 발생하는 첫 힘이 상승하여 물결이 올라갔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밑으로 물결이 내려와야 합니다. 즉,첫 발생하는 힘이 상승했다가 어떤 지점에서 다시 하강하는 힘의 변화과정이 저절로 일어나면서 작은 파도가 하나가 생기고, 그 첫 번에 생긴 파도로 인해 연못 전체에 그 파도가 퍼져 나가겠죠. 말하자면 첫번째 한 움직임이 연못 전체에 파동을 만들어 저절로 파문들이 퍼져 나갑니다. 여기서 맨 첫번째로 생기는 파동은 세가지 기본작용 요소가 있습니다. 맨처음에 발생 순간 상승력이 있고, 그 다음엔 어떤 지점에서 하강력이 있으며, 이 상승력과 하강력의 한 회전은 두가지 힘과 그 사이를 조화시키는 조화력으로 일정한 파동을 형성하여 유지하면서 연못 전체로 퍼져 나갑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사람의 호흡을 보자면, 만일 첫 내쉬는 숨(呼)은 어느 지점에서 정지했다가 다시 들이쉬는 숨(吸)이 있으며, 呼-정지점-吸-정지점-呼-정지점-吸-정지점-呼, 이렇게 呼-정지점-吸,세가지 작용이 반복하는 것이 호흡이며,이것이 사람의 생명기운(생기파동)의 한종류입니다. 발생력 또는 상승성이 내쉬는 呼이며,들이쉬는 吸이 하강력 또는 소멸성, 상승력과 하강력 전체 한주기를 한 파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모든 움직임은 이러한 상승력,하강력,조화력인 세가지 힘이 항상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탄생,유지,소멸이라는 과정이 시간상으로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문장인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은 이러한 세계의 힘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활성화되지 않은채 잠재해 침묵속에 있다는 묘사입니다. 보통 전통적인 음양학에서 무극이 태극인 음과 양으로 두개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1->2(둘)로 나누어진다는 태극의 음과 양은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측면에서 규정한 개념입니다. 또 1->3(셋)으로 나누어진다는 삼태극은 음과 양의 이원화로 나누어지는 과정의 움직임의 동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가 음(-)과 양(+)인 둘로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생성력,유지력,소멸력이라는 세가지 힘(三極)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天(1)은 절대본체인 무극 그 자체이며, 이것이 양(+)입니다, 여기서 음(-)인 地(2)로 움직이고, 이 地(2,음)에서 다시 양으로 되돌아 오는 한바퀴를 인(中,3)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발생순서가 1(天,상승성)->2(地,하강성)->3(人,조화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본체의 바탕인 無속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세가지 힘의 속성 (탄생력,소멸력,조화력)이 잠재해 숨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근본 바탕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읍니다. 세가지 요소는 단순히 움직임 자체의 속성이지,절대바탕에는 영향을 못미칩니다. 이 3元的인 개념은 천부경이 제시하는 가르침 중에서 아주 중요하고 숙고해 볼 필요가 있는 개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고 나쁨만을 분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에만 젖어 있으므로 항상 나타난 현상에만 이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죠. 2(음,양)는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측면이며, 모든 개념과 사고는 정적이고, 고정적인 정신적 기억과 습관일 뿐입니다. 세상은 역동적이고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변하는데, 자기가 지니고 있는 고정개념, 사고방식은 모두 2원화적으로 어느 특정한 시간에 마음 속에 고정시키게 된 습이므로, 스스로 자신을 고정된 관념의 틀속에 묶어 놓고서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여 겪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제3원적인 조화력과 통합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죠. 이렇게 음양의 고정화된 이원화(음,양)와 전체 조화력을 갖춘 3원화(음,양,중)는 그 차이가 아주 엄청나게 다르므로,이것을 잘 이해해서 일상업무에 활용하며 자기 일상 삶에서도 실리적으로 아주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1)하면서 동시에 그 결과를 다시 원점으로 피드백(2,궤환,되돌림) 하여 조정하고 통합,조화시키는 중용적 시스템(3,자각성)은 국가경영,사회경영,조직경영, 인간경영,자기경영에 필수적이며,그것은 조직 스스로가 하나의 생명체로써 스스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자각행위이기도 합니다. 이 1,2,3,이 완전히 평형하여 아무런 간격조차 없이 일체가 되는 것이 완전한 자각상태라고 하는 것이며, 개인 인간이 이러한 자각이 완벽할 때는 바로 그것이 존재바탕,활동,자각이 조화를 이룬 전인적인 깨달은 인간이며, 한조직이나 사회, 국가가 이러한 자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떄에, '사람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완전히 균형이 잡힌 삶을 이룩하려면 오로지 움직임 없는 절대바탕에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절대바탕의 상태를 억지로 묘사해 보자면, 한 사람이 부모에 의해서 잉태되기 전의 의식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부모가 둘이 만나서 접촉하기 전,또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육체를 만든 부모도 없으니,그때는 몸도 없었고,몸에 딸린 의식(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죠. 의식이 없는 상태를 어떻게 마음으로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자신의 존재조차 없는 오직 침묵만 있는 것이죠. 만약 붓다나 역대 선불교 조사들,예수,마호멧,크리슈나,라마나 마하리쉬 등등 고금동서 해탈한 분들도 이 질문 하나만 받으면 아뭇소리 못하고 그저 침묵 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이 절대바탕이지만, 수많은 경전과 가르침들이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온갖 미사여구로 표현하여 전송되어 내려왔고,오늘날도 이러한 개념적인 설명들이 어디든지 널려 있습니다. 이제 천지인이 잠재된 절대바탕의 다음단계인 천지인이 의식형태로 발현하여 나타나는 과정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보편적 순수의식) 一積十鉅 無櫃化參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 근본바탕인 '1'에 응집된 天11,地12,人13, 3극은 전체에 오직 순수한 '하나'로써 편재하는데, 경계를 만드는 육체기관이 없으면, 전체에 단일하고 청정한 순수자각(3)으로만 펼쳐지느니라. 이 순수자각(3)이 이원화로 되어 밖으로 비추어지면, '4'(天23)는 파동성 움직임이 시작될 떄에 의식적 공간성으로 전체에 펼쳐지면, 그 의식적 공간 자체가 진동하여 보편적 우주의식을 만들어 내느니라. '5' (地23)는 파동성 존재의식의 움직이는 시간성으로서, 의식의 교번적인 파동 움직임 자체를 말하며, 의식의 기본 움직임과 현상계에 있어서 시간의 기본요소가 되느니라.
'6'(人23)은 파동성 의식으로 드러난,마음(人)의 뿌리인 존재의식이니, 의식의 공간성(天23),의식의 시간성(地23).의식의 자각성(人23)이 합해져 연속적으로 진동하며 조화롭게 유지하는 존재의식이고,우주적 보편의식이며, 이 삼라만상 우주세상이 나타나는 이원화 의식의 기본 바탕이 되느니라. 積 : 쌓다,많다,모여있다, 鉅 : 크다,강하다,높다, 櫃 : 궤짝,함, 化 : 되다. 一積十鉅 : 하나에 모여있는 것은 전체 사방으로 골고루 펼쳐진다. 積은 '모여서 있다'는 뜻이므로 一積은 '하나에 모여있는 것'입니다. 十은 보통 숫자의 열을 뜻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동서남북 사방, 즉 이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十鉅란 전체세상에 넓게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즉 전체는 오직 절대존재(1)만이 펼쳐져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절대신이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 도화지 위헤 우주만상의 전체 그림을 그리려고 붓을 백지에 대는 순간 점하나가 찍히는데, 이 점은 앞으로 그려질 전체 우주삼라만상의 그림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 첫점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一'과 같읍니다 無櫃化三 : 육체(상자)가 없으면 순수자각(三)으로 된다. 전체가 하나(일체)인데, 육체가 없어서 三(人,순수자각)이 된다는 말입니다. 櫃는 하나가 무한하게 전체로 펼쳐지는 것을 국소적으로 제한하는 일종의 경계선의 상자를 말하는 것이죠. 이 경계를 만드는 상자가 바로 인간에게는 '육체'라는 감각의식기관인 것입니다. 육체에 의해서 이 무한한 一의 펼쳐짐이 제한을 받아서 무지(無知)와 댜양한 모양과 색깔, 그리고 경계,오염된 속성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 육체라는 상자가 없으면 三이라는 순수자각만이 전체에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三은 一(존재바탕)이 움직여서 二(파동움직임)가 되고, 一과 二가 합쳐진 전체가 三(자각,앎)입니다. 이것이 순수한 자각 또는 순수의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움직임없는 공간성과 움직이는 시간성이 조합되어 되돌림 진동작용으로 인해서 스스로 반복회전하는 자각상태(셀프 피드백)입니다.
그러나 절대본체인 일원화(一)상태에서는 이 순수파동성(三)움직임이 활성화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활성의 잠재된 파동성이 어떤 원인으로 밖으로 활성화 되어 나왔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이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이라는 문장입니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에서 천,지,인은 각각 존재바탕,움직임,앎을 대표하는 명칭이고, 두번쨰 숫자인 '二'는 잠재된 힘의 요소가 밖으로 표출된 이원화 상태를 표시한 것입니다. 즉 절대바탕에서 밖으로 튀어 나와서 잠재되어 있던 1,2,3,의 힘이 나타났다는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절대바탕이 주체가 되고 이 1,2,3,의 움직임 자체가 객관대상이 된 것입니다. 파도없는 고요한 바닷물이 아주 약한 파도의 첫번째가 일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순수의식의 원형인데, 비로소 현상계의 공간,시간,의식의 뿌리인 의식이 형성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현상적인 공간,시간,의식이 전개되어 나타난 것은 아니고, 三이라는 기본 순수의식 속에 모든 것의 씨앗이 파동형태로 집적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天二三 은 공간(존재)의 내면의식 씨앗이고, 地二三은 시간(움직임)의 내면의식 씨앗이며, 人二三은 인간마음(앎)의 내면의식 씨앗인데, 이 세가지 씨앗은 三이라는 씨앗의 한주기 파동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 파동작용을 스스로 유지한 것이 바로 보편적 존재의식이라는 순수파동의식입니다. (현상계와 개인의식)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成 環五七一妙衍 : 天23, 地23,人23,의 존재의식(6)이 이원화 현상세계의 기본바탕으로 펼쳐지면, 이 존재의식으로 부터 이원화 현상세계의 공간(7),시간(8),사람(9)이 비춰지고, 이를 바탕으로 삼라만상 전체가 다양하게 펼쳐져서 나타나는 것이니라. 절대바탕의 순수자각(3)이 움직이면 전체가 오직 자각성(앏,4)의 의식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이 자각성 의식공간이 움직이면 의식의 시간요소(5)가 회전하면서, 존재의식의 파동 움직임이 스스로 연속적으로 지속되면서 보편적 존재의식(6)이 형성되며, 이 존재의식을 기본 배경으로 해서 그 위에 우주공간과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묘하게 '하나'로 펼쳐지면서 운행되는 것이니라 (7.8.9) 존재의식에 의하여 드러난 현상세계에서, '7'은 현상세계에 나타난 공간(天,하늘)으로서, 움직임 없는 전체 우주공간을 이르는 것이고, '8'은 현상으로 나타난 땅(地)으로서, 삼라만상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이르는 것이며, '9'는 현상으로 나타난 사람의 마음(人)이며, 육체,마음의 복합적 인간인 '나'를 이르는 것이니라. 運: 옮기다,움직이다. 成: 이루다,이루어지다, 環: 고리,둘레 두르다 妙: 묘하다 衍: 넓다,퍼지다,펼쳐지다.
大三合六 : 공간성(4)과 시간성(5)이 합쳐져 보편의식(6)이 된다. 天23,地23,人23,의 순수파동이 모여서 '내가 있다'는 우주적 존재의식이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천이삼,지이삼, 인이삼의 한회전 파동이 반복 진동하는 상태를 6(존재의식)이라고 하고, 인이삼은 파동 한회전 자체를 말하는 것이죠. 천23이 4,지23이 5,인23이 6이 되는 것입니다. 生七八九 : 이 존재의식(六)이 현상계에 나타나는 공간(7),시간(8),인간마음(9)을 발생시킨다. 즉 보편적 존재의식이 육체감각 의식으로 알 수 있는 현상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 존재의식이 바로 이 나타난 우주삼라만상의 물질세계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보편적 존재의식 속에 우주의 공간과 시간, 마음이 씨앗형태로 모두 포함되어 있어 육체감각기관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듣고 감각하는 이 세상과 우리 육체,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죠. 그래서 불교경전에서는 이 존재의식을 무지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존재의식(8아뢰야식)으로 인해 '나'라는 존재감과 대상화된 이 현상세계가 나온다는 것이죠. 나타난 현상세계의 모든 우주삼라만상을 마음을 통해서 이 존재의식(6)이 주시하고 있으며, 존재의식자체는 절대바탕이 저절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모든 삼라만상은 절대바탕이 최종 근원이며 주시자라는 것입니다. 구도자가 존재의식에 안정되어 있으면 서서히 모든 감각대상들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주시자가 사라진 상태가 안정되면, 그때에 절대바탕을 깨닫는 것이죠. 이 존재의식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의 뿌리인 의식 그자체입니다. 다음 문장은 시간과 공간이 생기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運三四成 環五七一妙衍: 순수자각(三)이 움직이면 의식공간(四)이 만들어지고, 의식의 시간성(五)이 회전하므로서 현상계의 우주공간(7)이 하나로 묘하게 펼쳐진다. 기본순수자각인 三이 밖으로 비치면 맨처음엔 의식공간이 전체적으로 펼쳐져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三은 사실 절대바탕인 一의 움직임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절대바탕의 그림자가 밖으로 이끌려 나온 것이 의식공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절대바탕이 아니라 절대바탕이 움직이면서 만든 움직임의 그림자입니다. 이것이 의식내면의 공간이죠. 의식공간이란 보편의식 안에 펼쳐진 공간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는 외부의 현상계 공간이 아니라,내면의식의 공간을 말합니다.
또 의식파동에 내재된 시간적인 요소(五)가 회전함으로서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하늘이 전체(一)가 하나로 묘하게 펼쳐져서 운용된다는 것입니다. 보편적 순수의식파동의 한주기 파동 안에 공간요소와 시간요소가 들어 있고, 순수의식자체가 진동하여 움직임으로써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인간마음,그리고 삼라만상이 존재의식으로부터 비춰서 펼쳐지는 것이죠. 순수의식파동(3)의 공간성(4),시간성(5),보편우주의식(6)은 인간육체 감각의식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계의 공간,시간,인간(마음)의 온갖 경계를 펼쳐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천부경에서는 현상계에 나타나는 온갖 다양한 만물의 경계와 특성이 어떻게 해서 나타나는가는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一積十鉅라는 문장이 그것을 잠깐 내보였는데, '一' 안에는 온갖 다양한 만물이 전부 그 요소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육체감각기관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는 동시에 만물이 나타나지만, 그 순수의식파동 속에는 이미 五원소인, 지,수,화,풍, 공의 의식파동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햇빛 속에 모든 색깔이 포함되어 있듯이 순수존재의식 속에는 모든 만물의 기본 五원소가 들어 있어서 五감각기관과 조합하여 만물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죠. 萬往萬來用變 不動本: 천지가 만번 갔다 만번 오면서 그 시간의 흐름은 변할지라도, 근본바탕의 절대지복상태(지금 여기)은 젼혀 움직임이 없노라(8). 천지삼라만상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변할지라도, 근본바탕인 절대본체는 전혀 움직임이 없이 원래부터 지복상태(지금 여기)에 정지해 있다는 말입니다. 천지 만물이 나왔다가 들어가고 무상하게 돌고 돌지만, 근본바탕인 절대본체는 전혀 삼라만상의 움직임과는 상관이 없이 가만히 지복의 침묵 속에서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절대바탕에서 1이 나와서 그 1이 2가 되고 3이 되면서, 4,5,6,7,8,9로 무한하게 분화되어 커지다가, 다시 절대바탕인 無속으로 되돌아가는 회전을 반복하는 생주이멸의 파동 회전작용이 끊임없이 계속되지만,근본바탕은 전혀 움직임이 없으므로, 그 움직임 없는 근본바탕은 모든 움직임을 저절로 주시하게 되는 것이죠. 무한하게 넓고 고요한 바다 가운데 한 점에서 파도가 일어나 파도가 넓게 퍼진다고 해도 그 바다자체가 움직인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삼라만상이 움직이는 것은 마치 무한한 바다의 표면 안에서 파도들이 일어났다가 꺼졌다가 하는 움직임과 같으며,근본바탕인 무한한 바다 자체는 침묵속에서 파도의 움직임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여하게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죠. 本心 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근본바탕이 마음이노니, 근원의 태양(의식)이 밝게 비추고 있으므로, 사람(마음)안에서 천지는 하나(一)이니라. (9) 昻: 높다,밝다,오르다. 여기서 마음(心)이라는 것은 개인의식의 움직이는 감각 육체적인 마음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의식의 주시자,즉 마음의 깊은 바탕을 말하는 것이죠. 근본바탕 자체가 의식이 나온 근원이므로 마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의 바탕마음은 마음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표면에 드러나는 의식의 움직임들을 알게 해주는 그 원인을 여기서는 마음 心자로 표현했습니다. 근본바탕이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의식이라는 마음빛이 항상 비추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있는 것이죠. 내가 의식이 있고, 살아 있고,깨어 있는 것을 지금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절대근원에서 나온 주시의 비춤입니다. 괴롭고,고통스롭고,아니면 즐겁고 기뻐하는 등 수시로 변하는 이 마음이 바로 절대본체인 근원바탕에서 의식이라는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의식의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달리 어디서부터 지금 이렇게 내가 있다는 느낌이 나오겠습니까? 근본바탕에서 나온 것이지,내 속의 또 다른 마음이 나오는 근원이 있겠습니까? 내면에 있는 의식의 태양이 빛을 내비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죠. 人中天地一 : 사람 안에서 천지가 하나 라는 말은 바로 사람 마음자체가 천지인의 근원인 절대바탕이라는 것이죠. 위에서 天(1)이 움직여서 地(2)가 되고,天(1)과 地(2)의 움직임이 합쳐져서 (1+2)=人(3)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사람이란, 사람=天(공간)+地(시간)+人(앎)이라는 산수공식으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마음안에 시간과 공간과 전체 우주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것이 내면마음(보편적 우주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의 빛은 전 우주공간에 두루 비치고 있으며, 그것이 마음이고,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이죠. 이 사실을 믿어서 굳은 확신이 마음 속에서 안정되면, 그런 사람은 우주전체와 일체가 되면서 이윽고 바로 해탈한 사람, 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결론적인 문장이 바로 천부경에서 가르치는 핵심주제입니다. 一終無終一 : '하나'의 끝남도 없음이 '하나'의 끝남이노라 (10)
하나의 시작도 없음이 하나의 시작이고, 하나의 끝남도 없음이 하나의 끝남이다,라는 뜻은 시작도 끝남도 없다는 말입니다. 즉 근본은 절대 변함이 없고,하나에서 시작하여 하나로 끝난다는 말씀이죠.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 보자면. 하얀 백지 한장에,점하나 찍어 놓고 하나에서 시작해서,0에서 10까지 변화한 것은 그 점 . 안에서의 움직임일 뿐이고, 그 점 안에서 끝난다는 비유와 다르지 않죠. 즉 절대본체는 시작도 없고,끝도 없이 영구불변하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1~9까지의 변화는 하나인, 안에서 일어난 한줄기 빛의 그림자 놀이였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즉 오직 절대바탕(참나)만 아무 움직임없이 있을 뿐,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변화와 시간의 흐름은 모두 꿈과 같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금동서,우주삼라만상과 나라는 인간존재는 .점 하나 속에서 비쳐진 의식의 빛그림자였을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점조차도 사실은 없고,점을 찍을 백지조차도 없습니다. 오로지 무한하고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는 절대근본만이 여여하게 있다는 것이죠. 끝도 없이 무한하게 넓은 바다 한 점에서 작은 물거품 방울 하나가 뽕긋이 부풀어 올라와서 잠시동안 이리저리 흘러다니며 정처없이 떠돌고, 혹은 한 곳에 잠시 머물기도 하다가, 어느새 저절로 폭싹 꺼져버려 바다 그 자체가 되어 버렸네. 물거품 한방울 일어나니 한사람의 세상이 나타났고, 물거품 한방울 꺼져 버리니 한사람의 세상이 사라지네. 그러나 말없는 바다는 항상 변함없이, 지금 여기 이렇게 있을 뿐!
천부경의 문장은 글자구성이 극도로 간략하게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무척 난해하므로 신비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내용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0~10까지의 숫자의 나열이 상징하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모든 현상세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들 변화자체가 '시작없는 시작'과 '끝남이 없는 끝남' 사이에서 변화된 것 같이 보여진 것일 뿐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원래는 시작도 끝남도 없이 전혀 아무것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천부경이 가르쳐 주고자 하는 핵심이 그 내용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숫자로 축약된 상징적인 글 내용의 이해를 통과하고 그 앎의 언덕을 넘어가서, 자기 내면으로 향해서 가도록 유도하는 길안내 이정표이며, 보이지 않는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 손가락질인 것입니다. 따라서 천부경의 글자내용을 완전하게 해석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천부경이 가르쳐 주는 비의(秘意)를 완전하게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체 비문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 앎마저 넘어선 말과 생각이 나오기 이전에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본바탕(本)'을 깨우쳐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지금 천부경을 보고 있는 그사람 내면에 저절로 갖추고 있는 것이며, 자신이 스스로 자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서 말하는 道와 같기도 하며, 불교 석가모니가 궁극적인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니르바나' 이기도 합니다. ㅡ 무한진인 ㅡ 출처 : 내 앞의 生,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 [출처] 무한진인의 천부경 풀이 |작성자 수한 |
'천지인 공부 > 천부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부경 도덕경 카발라 (0) | 2019.08.05 |
---|---|
담아온 글 카발라와 천부경.. (0) | 2019.08.05 |
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2) 천부경 공부 (0) | 2019.08.01 |
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 천부경 공부 (0) | 2019.08.01 |
天符經의 '본심본태양'은 진아의 구체적 표현이다 (0) | 201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