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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2) 천부경 공부 본문
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2) 천부경 공부
2019. 3. 2. 13:33
< 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2. >
천부경에는 단 한 구절도 선악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나 판단이 없다.
아니 사실 있기는 한데, 진정 그 뜻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워 오해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천부경의 진리가 참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수 천 년 동안 왜곡되어지고 거부당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앞서 설명한 여덟 차원에 대해서조차 선악의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논리상 정당하다.
여덟 차원이 열리는 것은 일곱 차원을 극복, 초월한 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며,
그것에 선악의 구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일곱의 원리,그 운명이라는 인연의 굴레를 벗어나는 가능성으로 시작된 믿음은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 믿음이 '주 예수'에 대한 것이든, 마호메트에 대한 것이든,
부처 싯달타 고타마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뒷산골짝 처녀보살에 대한 믿음이든 말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은 그 새로운 있음이 가지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 가치 때문이다.
어떤 매개체를 통해 믿든,운명의 고리를 벗어나고 싶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천부경의 원리,
있음과 긍정의 원리로 인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 천부경을 알고 있던 몇 몇 사람들은
앞에서 예를 든 스파르타쿠스와 비슷한 경우를 생각해 냈다.
그러자 이 가르침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른 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하는 걱정,기우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몇 배 더 큰 걱정이었을 수도 있다.
천국에 악마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만약,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이 여덟 차원에 악한 영혼이 접근해서 들어가는 것에 성공할 경우,
그 악영향에 대해 걱정이 앞선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들이 진정 천부경의 참뜻,본심본태양의 뜻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면,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겠지만,
이들은 천국을 천국으로 지켜내기 위해 급기야 본말을 전도해서 왜곡하는 한이 있더라도
천부경의 진리가 널리 퍼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그 참 진리를 가리고, 허튼 소리를 진리로 호도하면서라도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믿음이 또 다른 새로운 있음으로 되어 그 믿음을 가진 영혼이
이 여덟 차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천부경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그 어떤 믿음이라도 온전한 자유 의지에 의한 온전한 믿음일 경우
여덟 차원으로 인도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는 것이 우주의 원리 중 가장 중요한
원리로 자리하는 여덟 차원이 이미 열려 있기 떄문에.
그러나 이것은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한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런 이치가 바로 천부경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천부경의 참된 긍정의 원리는 심하게 변질되고 만다.
다시 말하자면 천부경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선악 모두들 한 자리에서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있는 그대로 긍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선이라 해서 긍정하고 악이라 해서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
원래 천부경의 참뜻이었다.
이런 온전한 긍정을 그들은 선악을 기준으로 왜곡된 긍정과 부정으로 바꾼 것이다.
즉 선만을 긍정하고,악은 절대 부정해야만 한다는 당위를 끼워 넣어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선을 선으로 긍정하고 악을 악으로 긍정한다는 것은
선은 그대로 좋고 악은 좋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었다.
즉 악을 긍정한다는 것을 악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그 악에 대한 참된 긍정이라 믿으면 될 뿐이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 일부가 이것을 선은 오로지 긍정의 대상으로,
악은 온전한 부정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있음이 시작되고 나서 없음이 시작되었다는 천부경 첫 구절에 대한 것부터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있음이 시작된 이후 없음은 필연적으로 있음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있음은 긍정하고 없음을 부정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있음만 존재하고 없음 그 자체를 없애버려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그들은 모든 없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있음과 함께 시작된 없음을 없애버리려는 모든 노력은
오히려 그 없음이 생겨난 근본 원인이 된 있음마저도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빛이 있는 곳에,
그 빛이 다다른 끝자락에 비로소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둠을 없애려면 그 빛을 더 환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부경이 갈파한 우주의 참 긍정의 이치인데,
일부는 빛을 키울 생각보다는 어둠을 없애려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다.
어둠을 없애려면 이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하고,
그 인식을 위해서는 그 어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연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생각의 연장과 확장이 우주적 긍정의 원리로 인해
어둠 그 자체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는 그들의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가려지고 왜곡된 진실로 인해 우주는 더욱 혼란스러워졌으며,
그들이 당초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던 선,그 참된 빛 조차 어둠에 가려지는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천부경은 말한다.
本心 本太陽 본심 본태양이라고,
여섯 차원에 생성된 마음 그 자체는 태양과 같이 크고 스스로 환한 것이라고.
그러니 여기에 어둠으로 상징되는 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애당초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크고 밝고 환한 그 태양 같은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그들은 애써 가리고 왜곡하고 변질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덟 차원에 악한 영혼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그들의 조급한 의도는 완벽한 실패가 되었다.
앞서 예를 든 그 사람에 대한 그 선량한 믿음이 실제로 이천 년 동안
우리 세상에 가져온 그 처절하고 안타까운 결과가 그 증거이다.
우주 그 자체로 상징되는 자기의 온 생명을 온전히 그리고 기꺼이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그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겉모습만 사랑이요,
그 내면은 악마적 성질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외치던 사랑이 그 처절한 성지 탈환 전쟁이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사람이 원하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너는 노예요, 나는 주인이므로 너의 모든 자유를 뺴앗고 짓밟아도 된다는
독선이었을 리가 없지 않는가 말이다.
하여간 가려지고 왜곡된 천부경의 진리는 비록 그 내용이 변질되었을지라도
그 참된 긍정의 원리 그대로 우리 우주에 가득 찬 그런 있음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천부경 진리 왜곡의 아이러니이다.
모든 잘못된 믿음이 판치는 세상,
그 믿음이 비록 악할지라도 그 믿음이 온전한 자유 의지의 결과일 경우
새로운 있음으로서 여덟 차원으로 입성하게 되는,
만약 천부경의 진리가 순탄히 세상의 도리로 자리 잡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여덟 차원에 들어선 그 영혼들의 온전한 밝음으로 인해
그 아래 차원의 모든 것이 온전한 밝음이 되었으리라.
그야말로 세상은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사랑이 넘치는 그런 세상,
지상 천국이 되었을 터이다.
스파르타쿠스가 피의 복수를 할 그런 사연일랑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랑을 펼치려는 노력만 해야 하는 시점에서 악을 생각하고,
악을 저주하려는 일부의 잘못된 행동이 온갖 부정과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쯤에서 풍류에 대한 이야기 한 자락을 덧붙이고자 한다.
앞서 풍류는 천부경의 참뜻을 새기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하는 도임을 밝혔다.
그것이 왜곡된 지금의 세상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부도지에보면 오미(五味)의 변(變)과 오행의 화(禍)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이 두 가지 큰 사건으로 인해 천부경의 참뜻이 가려지고 왜곡되어지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풍류가 현묘한 도라는 것이 비밀이 되어 간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미란 쓴 맛,신 맛,단 맛,매운 맛,짠 맛 등 우리가 느끼는 다섯 가지 맛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맛이 초기 우주의 타락 과정에 가장 큰 사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부도지에서 밝히는 초기 세상에서 인간이 먹는 유일한 것은
마고성 안에 흐르는 생명수 지유(地乳)뿐이었다.
그것만 마시고도 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인간이 늘어나게 되자
그 생명수인 지유를 마시려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느 날 지소씨가 노약자와 임산부에게 그 순서를 양보한 후 지유를 마시지 못한다.
집에 돌아온 지소는 집근처 난간에 열린 포도 열매를 보고 그것을 따 먹게 되고,
이 일로 지소의 몸속에는 다섯 가지 맛 즉 오미의 변화가 일어난다.
맛이란 것을 처음 느낀 사람들은 그 맛을 즐기려 너도 나도 포도를 먹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오미의 변이다.
부도지는 설명한다.
다섯 가지 맛을 느끼기 위해 포도,즉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금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제까지 사람들 스스로 알아서 하늘의 뜻에 맞춰 살아가던
자재율이 파괴되는 최초의 사건이다.
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야 말로 선악에 대한 불필요한 판단의 결과였던 것이다.
생명을 취하였다 한들,
그 자체가 악이 되고 그 자체가 곧바로 엄격한 부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만 생존이 가능하니 이 말이 옳다 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생명을 취함이 옳지 않다고 믿는 그 믿음에 있었다.
즉 앞서 언급한 부분,
있는 그대로 긍정할 것을 긍정하면 될 일을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을 추방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바로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여덟 차원에 악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그 믿음이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금지하게 되면서
하늘의 뜻에 맞춰 살아가던 사람들의 자재율이 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천부경 왜곡의 시작이라면 오행의 화는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오행이란 金木水火土의 다섯 가지 성질을 말한다.
부도지 십칠 장 이후에 나오는 이 오행의 화를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부도를 반역하여 이에 대립한 당도가 세워졌는데
이 당도의 기본 사상이 되는 것이 바로 오행의 원리이다.
부도에서는 水火氣土 이 넷이 기본 원리였다.
요,순,우로 대표되는 도당의 무리가 이 원리를 배척하고 오행의 원리를 세운 것이다.
즉 기존에 있던 4행 중 기(氣)를 없애면서 이를 금 목으로 대체하고,
또한 토를 중앙에 세워 모든 것의 중심으로 만든 것이 바로 오행의 원리이다.
부도지는 단언한다.
이 오행의 원리는 바로 오행의 화이다.
오행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인간 세상 모든 화의 근원이라는 선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모든 천지만물은 각자 고유한 특성과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중 기본이 되는 것이 '수화기토' 이 넷이다.
서로 연관되어 합화되고 분리되며 만물 존재의 기본 원리가 되지만
이는 그야말로 자연스런 흐름으로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을 배척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즉 서로 독립적이면서 자주적인 원리를 가지는 것이 원래 우리 조상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순,우 이 반역의 도당들이 이 중 현묘지도,
풍류로 대표되는 이 기(氣)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 자리에 금과 목을 나누어 넣고, 한 가운데 중앙 토를 세워 모든 것이 중앙인 토를 통해서만
서로 순환 상생,상극할 수 있는 지배와 통제의 원리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즉 요,순,우가 스스로 사람의 중앙, 사람의 지배자가 되어 자기를 통해서만
세상이 통치,통제되는 독선적인 거짓 원리를 강요한 것이다.
이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던
천부경의 풍류의 도가 충만한 부도의 그 순진하고 아름다웠던 세상이
누구는 지배하고 착취하고,누구는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그런 패악한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도지가 말하는 오행의 화이다.
소수의 지배자 외에는 모두가 억압받고 홀대받고 착취당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반역의 도당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중앙이라는 천리에 위배되는
억지 이론을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세세토록 그 지배와 피지배 구도를 유지하면서,
착취와 수탈을 일삼고 있으니 참을 수 없는 부조리가 이제까지도
이 세상에 만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참된 진리인 천부경이 세상의 비밀이 되어가는 과정을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알아보았다.
오미의 변은 있음의 도요 긍정의 이치인 천부경의 참뜻을 오해한 이론가들이
선악에 대한 천부경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모든 것을 선악을 기준으로 재해석한 후 선을 취하여야 하는 가치로,
악을 무조건 배척해야 하는 역리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사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 철학에서 그런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스스로는 권선징악적 가르침이야 말로 진정 가치 있고,
따라야 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 믿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세상은 악이 더욱 창궐하게 되었다.
오미의 변이 이론가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면
오행의 화는 권력자들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소수가 자기들의 지배을 당연시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였다.
그들은 인간 사회를 자기들을 중심으로 하는 통제 지배 시스템으로 만들었고,
그 시스템의 최상부에 군림하면서 누려서는 안 되는 권력을 휘둘렀다.
이 권력에 너무나 찌들어서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음양오행이 동양사상의 모든 것인 양 생각한다.
세속에서의 자기만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경우라면 음양오행을 잘 살피는 것이 좋다.
오랜 시간 세상을 움직이고 설명하는 이치로 자리 잡은 만큼,
또한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만큼 자기만의 물질적 이익을 갈구한다면
음양오행으로 세상을 바라볼 일이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말을 들을 때 왠지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내용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상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행의 원리요,
상생과 상극의 이치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들만의 이익이라는 것을.
천부경 구절 중 '만왕만래 용변 부동본(萬往萬來 用變 不動本)'
이 구절 만큼은 거의 모든 해설에 이견이 없다.
모든 삼라만상이 오고 가면서 그 쓰임은 변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부경의 원 의미를 무엇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부분 역시
확연히 다른 내용으로 정리가 된다.
본문대로라면 삼라만상이 오고 가더라도 천부경이 말하는 있음의 원리와
긍정의 도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마지막 숫자 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삼라만상이 오고 간다는 문구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우주의 존재 그 근본을 논하는 차원의 천부경에 나오는 이 만왕만래가
이제껏 논의했던 3차원의 물질만을 의미할리가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이미 아홉 차원을 이해했고,마지막 열 차원을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말 열은 열매의 뜻이라고 볼 수 있고,
열다의 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열로 이해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열매이면서 열어내는 것,
우주의 열차원은 바로 현존하는 우주의 마지막 차원이면서,
새로운 우주 창조의 처음차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들어 드디어 우주의 아홉 차원에 순수한 영들이 가득차는
그런 시점이 도래한다.
결과적으로 선한 영들도 있고,악한 영들도 있다.
양쪽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선과 악쪽이 자기들의 특성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선한 영들은 선한 영들끼리 모여 서로 배려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을 줌으로서 행복을 나누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일 테고,
악한 영들은 악한 영들끼리 모여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며 남의 행복을 뺏음으로서
행복을 느끼는 그런 추악한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은 원래 구분되어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천부경 원리라면 구분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경우가 된다.
이른 바 천국과 지옥이 같은 차원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느 순간,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이 다툼은 동료를 사랑하는 착한 선한 영들로 하여금 동료인 착한 영을 돕게 만들고,
천성적으로 다툼을 즐기는 악한 영들로 하여금 더욱 강하게 다툼에 참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홉 차원에 있던 모든 선한 영들과 모든 악한 영들이
자기들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시키는 어느 한 순간이 도래하게 된다.
그 한 순간 한 곳에 집중된 그 에너지는 대폭발을 일으킨다.
현존하는 우리 우주가 종말을 맞이하고, 그 에너지가 집중된 바로 그 한 점에서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
이것이 빅뱅이며,이것이 우리 우주의 열차원이며 새 우주가 열리는 원리이다.
아인쉬타인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살아있는 천재 에드워드 위튼이
우주는 십차원이라는 가설을 십일차원이라고 수정한 것을 알고 있는가?
위튼의 설명이 충분치 않다면 이 말을 들어 보라.
우주는 열차원이고,
그것은 곧 새로운 우주의 처음 차원임으로 동시에 십일 차원인 것이다.
자 이제 용변 부동변이라는 문구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 우주는 그 쓰임이 다했기에 가는 만가지 중 하나가 되었고,
그리하여 만 가지 우주 중 새로운 우주 하나가 또 탄생하는데,
이렇게 만왕만래하여 쓰여짐이 다른 우주가 생겨나고 없어지더라도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이 근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보이는가?
빅뱅에 대한 이 원리가 말로는 재미있지만
과연 우주를 소멸시키고 탄생시킬 만큼의 에너지를 영들이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아할 것이다.
하여 쓸 데 없는 한가지 설명을 덧불인다.
여덟과 아홉 차원은 엄청난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무슨 에너지?
그야말로 여덟 차원의 에너지와 아홉 차원의 에너지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
빅뱅을 야기할 만한 에너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물음을 던짐으로서 그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우주의 3차원의 그 모든 것을 준다면 4차원의 시간 그 한 조각을 살 수 있을까?
삼차원에 존재하는 그 모든 물질과 공간을 모두 허비하여 그 어떤 작업을 하면
그 삼차원만으로 사차원의 짧은 시간 한 조각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불가능하다.
이 말이 이해가 어렵다면 다음의 예를 주의 깊게 살펴보시라.
다섯 차원의 있음, 즉 생명 중에서, 그 많고 많은 현존하는 생명 중에서
그 어떤 단 하나의 생명이 죽는 순간 3차원의 모든 물질과 공간과 그리고
4차원의 태초부터 영원까지의 그 모든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야말로 내가 죽는다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내가 관계한 지금의 이 우주 그 자체는
통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차원의 그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한 내가 없어짐으로 인해
그 하위 차원의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들어보자.
3차원과 4차원의 모든 것을 준다면,
과연 5차원의 죽은 생명 하나를 산 생명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여섯 차원 이상은 설명한 대로 마음인 여섯 차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부여하는 그 의미가 바로 그 차원의 에너지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차원의 모든 생명보다도 여섯 차원의 마음 한 조각이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면 일곱과 여덟, 그리고 아홉 차원이 지니는 에너지는 어떠할지 상상이 되는가?
차원이 다른 것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런 엉터리 같은 비교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얻은 작은 직관의 한 조각이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진정 위대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여덟 차원은 이처럼 상위 차원이 가지는
고에너지 외에 특수한 성질의 에너지가 더해져 있다.
그것은 일곱 차원의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방출되는 에너지이다.
어느 정도의 크기이기에 엄청난 이란 표현을 써야만 할까?
이렇게 생각해 보라.
우라늄 수 그램이 원자폭탄의 재료가 되어 핵폭발이 일어난다.
그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그 엄청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운명,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는 그 순간에 발생하는 에너지는
아마도 우리 우주 전체 3차원의 물질이 우라늄일 경우,
그 전부가 한 순간 핵폭발을 할 때 방출하는 전체 에너지보다도 더 클 것이다.
우라늄 원자가 핵폭발을 하면서 우라늄이라는 3차원의 물질적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고,
그 인연의 고리 안에 각 입자를 묶어두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다.
일곱 차원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는 그 순간에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앞서 상위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와 하위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에 대해
그 의미를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이 일곱 차원 인연의 고리가 누군가에 의해 단 한 번 끊어지는
그 순간만으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이런 엉터리 같은 주장을 맘 놓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삼차원 우주의 모든 것이 우라늄이고
그 모든 것이 한 순간 핵폭발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에너지보다 클 것이라는...
빅뱅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에서 그치고 이 여덟 차원,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향유하는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차원의 에너지를 맛본 한 사람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채 태어나 자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이후 이천 년은 온 우주가 그를 신으로 받드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와 관계된 특정한 도시가 성지가 되었고,
그 도시를 이교도로부터 되찾기 위해
온 유럽과 아시아가 수백 년 간 처절한 전쟁을 해야만 했다.
이후에는 이교도가 아닌 사람들 간에 그 사람에 대한 찬양의 방도를 놓고
또 수 백 년 간 전쟁을 했다.
한 때는 그 사람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그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지구 전역에 군대를 파견했으며,
그 전후로 검은 사람들을 수없이 납치해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까지도 노예로 삼았다.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경망스런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마녀가 되고
마녀는 곧바로 화형에 처해졌다.
심지어 그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게도 만들었다.
살아있을 때 그는 많은 병자를 아무런 행위도 없이 치료했고,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다.
그가 시킨 대로 항아리만 바꾸어도 물이 포도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려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죽은 후 다시 살아났다.
그런 사실을 적어도 오늘을 사는 이십 억 명이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한 믿는다.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 하늘 위로 올라가서 천국이라는 곳에서
창조주 오른편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자기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그 영혼을 맞이해 영원한 새 삶을 준다고...
지난 이천 년간 이 우주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사건들은
그 여덟 차원 에너지 때문이다.
아니 단 한 사람이 여덟 차원 에너지의 한 조각을 맛본 결과이다.
실로 엄청난 에너지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진정 대단하지 아니한가?
또 다른 사람 역시 칼 한 자루와 책 한 권을 앞세워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는 전쟁을 했다.
전쟁에서 이기면 강제로 자기의 사상을 강요했다.
이 사람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앞선 그 사람과의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다.
이 사람을 신으로 받드는 사람 중 오늘을 사는 사람이 십오억 명에 달한다.
이 사람도 모든 인간의 사후 세계까지 주관한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영원한 행복과 또한 영원한 고통을 줄 권세가 있다.
대단하지 아니한가?
이런 엄청난 사건이 실재하는 우리의 역사인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제는 안다.
우주의 여덟 차원에 가득 찬 그 에너지를 단 한 조각이라도 향유하면
누구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다음 구절인 本心 本太陽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한 바 있다.
대삼(大三)이 합하여 만들어진 여섯 차원에서 생성된 마음은
그 본성이 태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로 해석해도 좋고,
태양과 같은 것이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이 부분은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천부경이 전하는 참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선악에 대한 가치 판단이 별도로 필요 없다는
경고가 들어있음 또한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원래 마음은 태양과 같이 크고 밝기 때문에 그 마음의 어두운 면에 초첨을 맞출 필요가 없다.
사람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듯 보이는 악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
악을 없애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그 악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강조했듯이 빛이 비취면 어둠은 사라지고,
사랑을 하면 마움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
이것이 바른 가르침이다.
앙명 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
그러니 우러러 밝히 알라, 사람 속에 천지가 있음을. 이렇게 읽는다.
앙명의 명은 밝히라는 동사로 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우리말로는 밝히 알라 정도가 무난하리라.
마지막 문구이다.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이 구절과 첫 구절 일시무시일은 서로 댓구를 이루므로 댓구로 읽어야 한다.
즉 첫 구절 일시무시일을 읽은 것과 같은 방식, 같은 어순으로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첫구절을 일시무시로 읽었다.
다섯번 째 글자인 일(一)은 뒤에 이어지는 일석삼극의 일로 주어로 읽었다.
우리가 첫 구절을 읽은 방식 그대로 댓구로 읽으면 있음이 끝나니,
없음도 끝난다가 된다.
그러면 마지막 한자 일은 어찌 읽어야 할까?
최치원이 그냥 천하의 명 시인이겠는가?
최고 수준의 대접을 해주면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읽는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시'...
있음이 끝나면 없음도 함께 끝나는 구나. 아~ 아 있음이여!
이상에서 수 천 년 간 감춰져왔던 비밀스런 천부경의 참 뜻,
참 원리를 해설했다.
그동안 구구절절 수많은 해석이 있었으나 옳은 해설은 단 하나로 족하리라.
이제 천부경의 참 뜻을 펼치는 의도는 세상의 모든 어긋난 것을 바로 잡아
올바른 제 위치로 돌려놓기 위함이다.
더 이상 악을 악이라 부르면서 그것을 멸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빛이 밝으면 어둠은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다.
일석삼극이면 무진본이다.
그저 사랑하자.
본심본태양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 밝음을 비춰 나만의 이익만을 탐하지 말고
모두의 이익을 만들어 내자.
이것이 제세이화요,홍익인간의 참 뜻이리라.
현묘한 우리의 도 풍류를 이해하자.
구구절절 설명은 많았지만 단 한 마디면 되는 일이었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 바람처럼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자.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그 어떤 운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나왔든 간에,
풍류를 아는 순간, 내 인생은 내 맘 대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즐기며 살자.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하고, 시행하고 내가 감독하고 내가 사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목적은 나 스스로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그 무엇이든 당신이 선택하는 그 의미를 당신 삶에 충만하게 부여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홍익인간의 뜻을 새기면서,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자.
진정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 모두 함께 살아 보자.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황극도원' 대이거사
[출처] 대이거사의 새로운 천부경 해석 (2)|작성자 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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