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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 현대 한국 철학의 시작동서통합의 영성적 철학자 유영모 (3)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류영모, 현대 한국 철학의 시작동서통합의 영성적 철학자 유영모 (3)

柏道 2019. 7. 30. 19:51



류영모, 현대 한국 철학의 시작

동서통합의 영성적 철학자 유영모 (3)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5.26 17:42




얼마 전에 나는 큰 책방에서 철학책들을 훑어보다가 『한국철학의 흐름』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그러나 흐뭇한 기분도 잠시 차례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루고 있다는 그 책이 마지막으로 다룬 사상가가 다산 정약용이었기 때문이다.(1)

정약용은 1762년에 태어나서 1836년에 명을 달리한 사상가이다. 그를 끝으로 하여 한국철학의 흐름은 멈추었다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한국철학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이야기다. 독일을 예로 든다면 마치 헤겔(1770〜1831)을 끝으로 독일철학이 끝났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누가 한국 철학자인가


아니 그 예도 충분치 못하다.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로 통하는 것은 그가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정약용은 한 권도 자신의 사상을 한글로 써서 펴낸 적이 없다.(2) 서양에서의 근대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라틴어가 아닌 그들의 지방어인 민족어로 사유하고 글을 썼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정약용을 한국 근대 사상가로 분류하는 데에도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시대의 자식이라고 하며 자신의 시대정신을 개념으로 잡는다고 말한다. 정말로 정약용 이후 이 땅에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개념으로 잡은 사상가나 철학자가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지난 170년 동안 이 한반도에는 우리의 현실과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인간이 무엇인지, 세상이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했는지, 이 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으로 고민한 학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인가?

▲ 철학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생각하며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다석 류영모는 현대 한국 철학자이다. ⓒGetty Image

지금이라도 우리 철학인들은 왜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인지, 20세기 들어서서 한국철학은 무엇을 했는지, 21세기 한국철학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철학자,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


독일어로 기술되지 않은 독일철학, 프랑스어로 쓰이지 않은 프랑스철학을 생각할 수 없듯이 우선 우리는 엄격히 우리말인 한글로 서술되지 않은 사상들을 ‘한국철학’으로 분류하는 데에는 조심해야 한다. 물론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 등이 다 한국역사에 속한다. 그 시대의 사상들을 넓은 의미에서 한국사상 또는 한국철학에 소속시킬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우리는 한국 고대 사상, 중세 사상, 근대 사상, 현대 사상 등의 시대구분을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을 마련하고 그 철학적 독특함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럴 경우 정약용을 한국 근대 사상가로 분류할 수 있는지, 어떤 근거에서 근대 사상가인지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언어와 사상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하지 않고 한국에서 낳아서 자라 사상 활동을 한 사람은 모두 한국 사상가로 간주했다. 단순하게 산 시기 또는 왕조를 염두에 두고 사상가들을 분류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20세기 들어서서 세계철학의 흐름 자체가 ‘언어’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언어를 철학의 핵심주제로 삼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보편 언어란 없고 언어는 모두 말하는 민족의 기억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사상을 표현한다는 철학의 언어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그 민족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철학은 어디 다른 곳보다도 한민족의 기억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한글말 속에 가장 잘 표현되었을 것이다. 어떤 다른 언어보다도 한글말로 가장 맞갖게 기술되었을 것이다.



왜 류영모는 한국 철학자인가


이렇게 사상과 언어와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하고 철학은 우리말인 한글로 해야 하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한글로 표현된 말과 글에서 우리의 세계관, 인간관, 신관을 찾아 해석해내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한국의 현대 사상가라고 불리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그런 사람은 바로 다석 류영모라고 주장한다. 다석은 우리말 속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보며 우리말을 통해 우리말 안에서 일반 민중들에게 말건네온 하느님[존재]의 소리를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다음 글부터는 류영모가 20세기 한국의 현대철학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입증해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20세기 초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떤 문제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 당시 지식인들은 거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고찰하기로 한다.

미주

(미주 1) 한국 사상이나 철학에서 다산 정약용을 마지막 사상가로 소개한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김재영, 『한국사상 오디세이』, 인물과사상사, 2004; 민병수 외, 『한국사상』, 우석출판사, 2004;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 편,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1.
(미주 2) 우리는 오늘날 한시(漢詩)로만 시를 써서 발표한 시인을 엄밀한 의미의 한국현대시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