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삶에 있어서나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순환원리이다. 인간으로 말한다면, 그 생명의 씨앗이 모태 속에서 열 달 정도 머물며 자라다가 세상에 태어나 유아 소년 청년기를 거치면서 신체가 발달하며 세상을 경험하고, 지식을 배워가며 성장하다가 중년기에 이르면 외부 성장보다는 내면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일종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녀를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길러내게 된다. 그러다가 노년에 이르면 성장은 멈추게 되고 이윽고 주어진 삶을 마치게 된다. 이것이 인생의 과정이며 모든 생명체의 자연 순환원리이다. 하루에 밤낮이 있고 한해에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 또한 그러한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의 순환원리는 단순히 인생에만 해당하는 원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조직 더 나아가 민족 더 나아가 인류 역사에도 적용되는 생명의 순환원리이기도 하다. 이를 일컬어 역사의 흥망성쇠라고 말한다.
영원한 신을 대변한다고 하는 교회만 보더라도 이런 흥망성쇠의 순환원리는 어김없이 적용된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루에만도 3천명의 교인이 늘었다는 예루살렘 교회는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고,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는 물론 사도들이 세웠던 수많은 교회들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또한 지금은 단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들이 뿌린 씨앗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계속 성장하여 왔지만, 개체교회들에 있어서 하나의 생명 주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어떤 교회들은 수만명 혹은 수십만 명의 교인 수를 자랑하지만, 그 자랑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치는 진리이다. 나라와 민족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집트,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중국의 왕조들, 몽골제국과 같이 세계를 지배했던 수많은 제국들은 마치 달의 차고 기움과 같이 떴다 사라졌다.
시대를 바라보는 역사관
1919년 독일의 역사철학자 오스발드 슈펭글러는 여러 문명권을 연구하고 나서 『서구의 몰락』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자연순환적인 역사관이 담겨 있다. 이는 당시 유럽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칸트와 헤겔의 불변 관념론적 역사철학과 인간의 무한 역량을 믿는 낙관적 역사관을 주창하던 19세기의 자유주의 운동에 대응하는 의미가 컸고 출판 당시에는 그 충격이 상당하였다.
그 후 슈펭글러의 역사관에 대응하는 관점에서 영국의 문화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 26개의 문명권을 연구한 『역사의 연구』라는 방대한 책을 통해 한 문명의 존폐는 인간과 사회의 자유의지와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자연의 순환과 같이 죽음으로 운명지워진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을 펼쳤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은 그의 문명 역사관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 김교신 선생(뒷줄 오른쪽에서 넷째)은 양정고보 교사 시절,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에게 민족혼을 심어 줬다. ⓒ양현혜 교수 |
여기서 토인비는 한 문명의 존폐를 결정하는 도전에 대한 바른 응전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나온다고 보았다. 이 창조적 소수들이 바른 응전을 하고, 대중은 이들을 따라갈 때 하나의 문명은 계속 존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도전에 성공한 소수가 그 성공에 만족하고 자기 도취에 빠질 때는 거기서 인간의 교만이 일어나고 그리하여 결국은 문명은 쇠퇴 몰락한다고 보았다. 과거의 성공사례에만 머물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에 반대하는 무리를 폭력으로 누르고 우상화를 강요할 때, 이 창조적 소수는 지배적 소수가 되어 결국 문명의 쇠퇴와 해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의 위정자들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적 소수에 의한 역사 주도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정리하며 민중주체론을 설파합니다. 창조적 소수가 아닌 집단으로서의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는 그의 민족주의 역사 인식은 조선의 고대는 중국의 영향 아래 시작했다는 이전의 유교적 사관이나 삼국시대 이전의 것은 모두 외세에 의한 식민지 역사로 보려는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체적 사관이었다. 개인주의화 되고 사대주의적인 생각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지배하는 오늘에 신채호 선생의 민중주체적 민족역사관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한반도는 미국이라는 지금까지의 어느 제국보다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제국의 희생물이 되어 분단이 되었고 분단 74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미국의 군사전략에 따라 남북은 적대 관계를 계속 유지되면서 좀처럼 통일의 단초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는 일단의 수구 무리들이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함께 달아놓고 애국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주체 의식이 결여된 애국은 가짜 애국이다. 이들은 애국당이라는 깃발을 달고 있지만, 실은 매국당이다. 이순신동상 옆에 촛불민중혁명의 진원지인 광화문광장에서 이러한 몰역사적인 모리배들이 꽈리를 틀고 앉아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슬픕니다. 그곳을 지나가는 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광주항쟁 때 한미사령관 워컴 소장이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저들을 쫓아간다고 하며 우리 민족을 경멸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식은 신채호 선생의 민중민족의 주체적인 역사관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민족이란 족보에 기초한 닫힌 민족관이 아닌 운명을 함께 개척해나감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하는 열린 민족관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규칙을 바꾸는 사람들
남한은 100년 전 3.1독립항쟁과 독재에 저항한 4.19항쟁과 부마,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87년 6월 항쟁과 광화문 촛불항쟁을 통해 오늘의 문재인 정권에 이르렀는데, 오늘 우리의 상황을 보면 북을 적대시함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자체 안보가 아닌 미국에 의존하는 노예 안보의식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쓰지도 못할 미국산 무기 구입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남북의 대결이 아닌 중미러일이 모두 참여하는 3차세계핵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족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이라도 예수 말씀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기본이 무엇인가요? 축복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 믿어 부자되고 죽어서 천당가자는 것인데, 이는 겉으로는 야훼 하느님을 말하지만, 실제는 바알의 맘몬신앙이다.
사람이 물질 축복의 맘몬적 가치관에 매몰되면,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는 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성공의 구멍은 바늘구멍과 같이 비좁고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으니 결국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극소수의 성공했다고 말하는 삼성의 이건희회장이나 롯데의 신격호회장 조차 정말 성공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문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에게 주어진 딱 한번의 기회이고 이 기회를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건만, 오늘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맘몬적 가치관은 우리 모두를 실패자로 그래서 불행한 삶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오래 전 수원에 있는 백남준아트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기록된 한 문장을 기억합니다.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게임을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려면 자본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본이 있다면 게임의 규칙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나 없다면 규칙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를 대안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대안적 삶의 가치를 말씀하셨다. 제가 [조선교회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 하에 신앙의 선배들을 얘기하는 이유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험난했던 시대에 살았던 스승들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보기 위함입니다. 오늘은 지난 글에 이어 김교신 선생의 얘기를 이어갑니다.
조선지리 소고
신채호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이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에서 민족정신을 찾아내었다면 김교신 선생은 지리선생으로서 조선반도의 지리적 특성을 통해 민족정신을 함양했습니다. 그래 <성서조선 명논설집>(한국신학연구소 2003)을 펴낸 김정환님은 가장 첫머리에 <조선지리 소고>라는 그의 글을 놓고 있습니다. 당시 일제식민학자들이 퍼뜨린 지정학적 숙명론에 대항하여 조선반도를 하느님이 내린 천혜의 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나라 산촌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를 통계와 자료에 근거하여 비교한다는 점에서 매우 객관적이고 독창적인 논문입니다. 단원, 면적, 인구, 산악과 평야, 해안선, 기후, 위치에 따른 비교분석 논문으로 짧지도 길지 않습니다. 외국이라곤 일본과 만주 지역밖에 가보지 못한 분이 서양의 여러 나라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학문적 노력과 깊이에 감탄하게 됩니다.
저는 아직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가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강의 큰 나라들은 짧게나마 여행을 해본 사람으로서 우리 땅에 대한 자랑으로는 산수가 좋다는 것과 사계가 뚜렷하다는 점 외에 별반의 자랑거리는 없고 오히려 우리 땅은 왜 이리 좁은가?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교신 선생의 <조선지리 소고>를 읽으면서 우리 땅에 대한 새로운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첫 장인 <단원>에서 “지리적 단원이 또렷할수록 한 국가는 생활면에서나 행정구역 면으로나 그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폴란드의 국경이 시세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상한 것은 한눈에 끝도 없이 바라보이는 평원 가운데 인위적 국경을 설정한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영국과 일본의 섬나라 제국이 각각 그 모 대륙의 성쇠를 초월하여 오래 독립을 자랑할 수 있음이라든지, 노쇠하였어도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었기에 특이한 역사를 기록하여 온 스페인이라든지, 알프스의 하늘같은 성에 둘러싸여 3천년 노대국을 이룩한 이탈리아반도 같은 것은 모두 지리적 단원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지리적 단원은 어떠한가. 동서남 세 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륙에 접한 북면도 백두산과 그곳에서 발원한 압록, 두만 두 강으로 천연적 경계가 매우 확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단 조선이라는 범위가 역사의 변천에 따라 신축이 있었으므로 옛 조선의 경계를 대략 요하의 원줄기 및 그 연장선으로 추정한다면 산해관으로부터 오늘의 만주국 국경선이 하나의 큰 지리적 단원을 형성한다.”
사실 저는 그간 우리나라가 중국에 하나로 합병되지 아니한 점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강했던 과거의 여러 나라들, 발해니 말갈이니 만주국이니 심지어는 티베트까지도 오늘날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하나로 편입이 된 상태입니다. 그래 중국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소수민족만도 50개가 넘습니다. 다시 말하면 50개 국가를 다 무력으로 통일한 나라가 오늘의 중국입니다.
그러니까 조선 또한 쉽게 중국에 편입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비록 둘로 나누어지긴 하였지만,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지리적 단원에 근거하고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갖습니다. 또한 면적에 대해서도 김교신선생은 덴마크, 스위스, 네델란드, 벨기에의 예를 들어 “(이들 나라들은) 대략 조선반도의 5분지 1 혹은 6분지 1에 불과하면서도 타인에게 신세스럽지 않은 살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열강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토의 적음이 우리 민족의 약점이 될 수 없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논문 결론에서 “지리적 단원으로 보나 그 면적과 인구로 보나 산악과 해안선의 지세로 보나 그 위에 하늘이 베풀어주신 기후로 보나 한 국면 혹은 한 무대의 중심적 위치로 놓은 그 맞다음으로 보나 조선의 지리적 요소에 관하는 한, 우리가 불평을 토하기보다 만족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넉넉히 한 살림살이를 부지할만한 강산이요 넉넉히 인류사 위에 큰 공헌을 기여할 만한 활동 무대다. … 무릇 생선을 낚으려면 물에 갈 것이요, 무릇 범을 잡으려면 호굴에 가야 한다. 조선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 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다. 다만 문제는 그곳에 사는 백성의 소질, 담력 여하가 중요한 원인인가 한다.”
고난의 엑기스가 담긴 한반도
김교신 선생은 이렇게 조선반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다음 성서로 눈을 돌려 이스라엘 민족 또한 외세의 침입으로 수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복음이 들려졌듯이 바로 우리에게도 이러한 민족의 영광이 다가오고 있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온갖 고난도 이 땅에 집중되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하여야할 바 모든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큰 용광로에 달려낸 엑기스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성서조선 1934년 3월 62호, 김정환 엮음 26쪽)
김교신 선생이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대국의 힘을 빌려야한다는 사대주의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패가 갈려 한 패는 중국에 다른 패는 러시아에 또 다른 패는 일본에 또 다른 패는 서구 열강에 저마다 강대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입니다. 이때 김교신선생은 조선이 스스로 잘 살 수 있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애국이라는 단순한 민족주의적인 정열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지리에 기초한 객관적인 학문 연구 결과를 놓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저는 그분의 자주적 노선에 깊이 공감하는 것입니다.
무교회와 에큐메니칼
두 번째로 김교신 선생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것은 그의 무교회 사상입니다. 제가 기독교장로교단에 소속한 목사로서 교단과 개교회 성장을 얘기해도 모자라는 판에 무교회 사상을 피력함이 일견 모순되는 것과 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상 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한 자유와 해방의 정신에 기초한 매우 중요한 신학사상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께서는 채찍을 들어 백성들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케 하신 다음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매우 혁명적인 발언을 합니다.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불법적인 일을 하였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 대신에 보이지 않는 예수의 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성도들의 모임이 진정한 성전임을 설파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김교신 선생에게 이렇게 권유합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씨의 무교회주의는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일시적 필요로 생겨난 것이지 결코 영원히 있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는 하루바삐 우리 교회에 참가하라.” 이에 대해 김교신선 생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무교회주의를 전공한 사람인 줄로 아는 이도 있으나 이는 대단한 오해다. 근래에 공산당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공산주의를 선전할 사명을 띠고 국경을 넘고 들어오고 있다. 또 군관학교에서 교육받은 청년들이 침입하여 어떠한 운동에 헌신한다는 보도에 놀란 경험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의 무교회도 곧 그렇게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10년에 걸쳐 우치무라 선생에게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다. ‘성경’ 이었다. ‘복음’ 이었다. 설령 우치무라 선생의 내심에는 무교회주의란 것을 건설하고 고취하려는 심산이 있었다 할지라도 내가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요, 성서의 진리였다.”
“사람들은 무교회주의는 기성교회를 공격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라고 하나, 나의 무교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요즈음 조선 기독교계의 쌍벽이라고 할 만한 장로교와 감리교는 적극단(積極團) 문제가 생긴 이래로 자멸을 목표로 분쟁 또 분쟁이다. 성결교는 성결치 못한 문제로 탈퇴 성명과 법정고발이 이어지니 이 역시 자멸할 때까지 서로 치고 받을 것이다. 무슨 독한 마음으로 이 싸움에 끼어들겠는가. 교회 안에 경애할 만한 성도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교회 전체로 볼 때에는 희망을 두지 못하겠다. 오직 성서의 진리를 배우며 스스로 채찍질 하여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래도 무교회주의라고 부르고 싶거든 부르라.” |
제가 14년을 몸담았던 향린교회는 1953년 처음 출발할 때 어떤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평신도교회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교단 내 다툼으로 인한 폐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골육상쟁으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고, 민중들은 하루의 끼니를 채우지 못해 죽어가는 때에 교권에 매이고 선교사들의 사주를 받아 조선의 주체적인 신학과 교회를 세워가려는 김재준 목사와 그에 동조하는 그룹을 내쫓으려는 잘못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생활공동체로 그 모임을 시작한 것은 보이는 교회가 아닌 보이지 않는 예수의 부활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중시하였기 때문이고 이는 김교신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이 추구했던 무교회적인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교회 또한 비록 수는 작지만, 그러한 신앙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향린교회는 이후 교인들이 늘어나자 할 수 없이 기장교단에 가입을 하였지만, 여전히 ‘성전을 깨끗케 하고 성전을 허물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무교회적인 입장을 소중한 신앙 전통으로 간직하여 오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예수살기라는 단체 또한 어찌 보면 김교신 선생의 무교회 신앙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무교회주의의 반대는 교회주의인데 여기서 교회주의는 잘못하면 개교회주의로 쉽게 빠져듭니다. 개체교회는 언제든지 분열하고 사라질 수 있기에 같은 뜻을 가진 교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예수운동을 펼쳐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이유 또한 성전 자체를 반대하신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뜻을 대변하는 성전이 갖는 기본 정신 곧 가난한 백성들을 보호하고 눌린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김교신 선생의 무교회 신앙 또한 이러한 입장이었습니다. 결코 교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요청하는 교회에 가서 하늘뜻펴기도 했고 교회 건축비의 일부분도 부담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성장을 하느님 나라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비복음적인 신앙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건물이 아닌 예수 부활의 몸이 중요합니다. 예수 정신이 살아나는 그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부활의 몸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해골이 여기저기 나 뒹구는 골고다 언덕 곧 고난당하는 민중들의 현장으로부터 예수 부활의 몸이 시작합니다.
기독교와 민족정신
<김교신> 평전을 쓴 김정환은 당시의 독립운동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서재필·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외교적 방식이요, 둘째는 안창호로 대표되는 자아혁명을 통한 인격혁명방식이요, 셋째는 김성수로 대표되는 산업방식이요, 넷째는 김구로 대표되는 무력항쟁방식이요, 다섯째는 이승훈으로 대표되는 교육방식이다. 여기에 김교신의 방식은 이런 세속사적인 독립방식을 뛰어넘는 종교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 기여해야 할 고유 독특한 사명을 자각 정립하고 이러한 민족의 섭리사적 존재 이유에서 민족의 세속사적 독립을 꾀하려 한 것이다. 이는 바로 저 히브리인들이 품었던 세계사적 구원의 꿈이다. 저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았다.(26-7쪽)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조상이 되었다라는 말을 예수 시대에 가면 단순히 혈통의 의미로 제한합니다만, 본래 창세기가 전하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자손이 하늘의 별보다 바다의 모래보다 많아질 것이다라는 꿈입니다. 이는 자신의 자손들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정치군사적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세계인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의 세계를 꿈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축복이자 우리가 바라는 구원입니다. 비록 국토는 허리 잘리고 외세의 꼬임에 넘어가 동족 간에 총칼을 겨누는 반인륜적인 비극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통해 세계 평화의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확신에 찬 믿음이 필요합니다. 토인비가 말한바 “한 민족과 한 국가가 성숙하기까지는 숱한 시련과 반성, 그리고 성찰(省察)의 교훈이 퇴적(堆積)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김교신 선생이 외친 <조선에 필요한 기독교>라는 글을 읽어드림으로 글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조선에는 부도 필요하다. 힘도 필요하다. 학문도 필요하다. 위대한 작품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독교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히 기독교 청년회의 기독교가 아니다. 교회의 기독교가 아니다. 제도의 기독교가 아니다. 의식의 기독교가 아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체험한 기독교다. 바울의 기독교요 요한의 기독교다. 성서의 기독교다. 영적 기독교다. 산 기독교다. 즉 그리스도다. 그렇다. 현재의 조선에 절실한 것은 기독교요. 그 기독교는 살아계셔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우리는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며, 청년회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며, 제도와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그를 얻으면 우리는 전부를 얻은 바 되며, 그를 잃으면 우리는 전부를 잃게 된다. |
조헌정 소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choshalo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