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종교. 선한 신이 창조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종교의 본질에 관한 24가지 질문 / 게르하르트 지음 본문
종교. 선한 신이 창조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종교의 본질에 관한 24가지 질문 / 게르하르트 지음
종교. 선한 신이 창조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종교의 본질에 관한 24가지 질문 / 게르하르트 지음. 이화북스.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무능하거나 선과 악이 싸우는 악취미를 가졌거나 인간이 만들었거나, 네 가지 중 하나.<도봉생각>
실존주의적 입장 ㅡ실존주의를 추구했거나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철학자와 문학가들. 실존주의는 개인의 주체적 존재성을 주장하는 한편,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전쟁을 통해 비인간화되어가는 현실을 고발했다. 대표적인 키르케고르, 도스토예프스키, 샤르트르, 니체 등은 ‘나는 나다.’ 나는 일정한 조건에서 내가 진화하여 나를 만들었으며, 신의 피조물이 아니므로, 자유를 누려야 하며 누구의 간섭이나 제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철학은 종교의 위대한 적수이며 동반자인 이유는 철학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워 마침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이에 과학이 끼어들면 종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다행히 중립적이지만 무신론적 입장에 가까운 불가지론이 나타나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논리적으로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 증명의 책임이 있지만 증명이 불가능하다면 종교에 맡겨두라는 과학적 철학의 입장에 서면서, 과학은 종교에게 철학을 통하여 자신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힘주어 경고한다. 그러나 신은 인간을 제어하려 하므로 보이지 않는 신이 제어하는 세상은 부조리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불멸할 것이며 이 불멸이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4만 년 전, 채집과 사냥을 할 수 없는 칠흑의 밤을 지내기에 종교놀음보다 좋은 것은 없다. 기도나 예배는 무료함을 달래주며 그것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며 초월적 존재와 神聖은 입증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도들의 헌신을 강요하며 뒤집을 수 없는 진리로 만들어버린다. 신성은 이성이 아니라 직관으로 마주하며 직관이란 논리적 추론과 결정을 거치지 않고 어떤 대상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와 같이 종교는 강한 결속력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인간이 진화하는 데에 성공의 기여도를 높인다. 여기까지는 종교는 유익하다. 불가와 도가와 유가는 신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동급으로 생각하므로 종교로 인한 폐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는 심각한 폐해를 일으킨다. 영토전쟁 못지않은 종교전쟁이 일어나 많은 슬픔과 절망을 일으켰다.
종교의 미래는? 인류역사에서 종교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 다행히 우리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종교는 늘 예언을 하고 심판의 날에 이르는 구원의 시나리오를 작성해왔다. 심지어 창조의 경우 연도와 날짜와 시간을, 멸망을 예언한 휴거처럼 정확한 날짜까지 못 박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최후의 심판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스도가 구원을 약속했음에도 세상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고, 특히 그런 상황을 예언한 유일신교의 경우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런 현대의 흐름과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교회들은 젊어지기 위한 성형 수술에 돌입하여 만인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시대와 발을 맞추기 위해 안달하고 있다. 특히 신교의 교회가 더 열성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신앙은 왜곡되고 세력만 확장하는데 혈안이 되어가는 종교의 문제점
서구 사회는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종교가 아닌 철학적 명상을 중시하는 승단에 기울어지고 있다. 물론 아주 서서히. 대신 유일신교는 가난한 아프리카에 힘을 쏟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세력이 큰 분파가 미국에 뿌리를 둔 성령강림 교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주의 와 인권을 요구한 나라들의 내전이 종식된 이들은 가까운 시기에 세계가 멸망하고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설파하고, 이슬람을 악의 화신으로 보며, 가난과 기아, 전쟁, 질병, 자연의 재앙을 천국으로 향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신의 시험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분파의 일부는 세상과 완전 담을 쌓기도 하지만, 기독교 광신주의와 이슬람교 광신주의의 적대감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그 결과 내전과 흡사한 갈등을 빚을 것이고 신앙은 살인무기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역사가 짧을수록 매우 공격적 성향을 띤다. 최악의 경우 이 세계는 광신화된 종교 때문에 멸망할 수도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폭력의 주범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지목하겠지만,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은 21세기의 최고의 골칫덩어리는 급진적인 기독교라고 평가한다.
종교의 미래 그리고 인류의 미래
근본주의는 종교의 사악한 측면이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도 변해야 하는데 수천 년 또는 수백 년 전의 말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개혁하지 않고,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자기 종교만이 옳다며 우기고 따르는 것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며, 인간의 과학적 · 철학적 능력을 경시하고 악용하는 종교인들의 사악한 면모를 드러낸다. 같은 조상을 가진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의 전쟁은 쿠란이나 성경에 폭력과 만행을 정당화할 구절이 충분하다는 점을 구실로 악용하고 있다. 미래의 종교는 신이 인간을 위해 이루고자 했던 바를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이 끝없는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총애를 받는 신의 자녀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2000억 개 가까운 은하 중 2000억 개의 별 중 하나인 지구보다 신과 더 가까운 지적 존재가 있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종교를 믿지 못하는 까닭에 내세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무無가 이어질 거라는 생각 역시 동양 종교/철학의 핵심 사상이다. 따라서 기독교도가 천국을 믿듯 無를 믿는 것 또한 신앙의 일종이다.
-천만에, 그대들은 천국을 보지만 우리는 천국에는 관심이 없으며 보는 방향이 다르다. 그러므로 걱정 마시라. 그건 우리들의 일이니까.<도봉생각>
인간은 왜 신을 볼 수 없으며, 만약 신을 포착했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다
종교는 각기 다른 신의 마스크를 에워싼 사상 체계다. 순수 교리로 신의 마스크를 벗겨낼 수 있었던 종교는 불교 하나뿐이다. 불교에서는 신과 空이 하나이니까.
-천만에, 붓다는 신을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며 육도 윤회하는 존재로 보았으므로 유신론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경스러웠을 것이다.<도봉생각>
유신론자의 물리학은 빅뱅의 순간 - 직경 10의-33승(1을 0이 33개인 1로 나눈 숫자)인 작디작은 우주에 숨어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빅뱅 후 10의 -44초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우주의 온도는 10의32승도였고, 밀도는 세제곱미터당 10의92승그램이었다. 따라서 신은 빅뱅 이후 아주 작은 대신 밀도와 온도가 극도로 높은 우주에 몸을 숨겼다. 이처럼 신은 무한하지만 무한히 작은 곳에 자리 잡을 만큼 무한하다는 것이다.
-이 짧은 찰나에는 신도 할 짓이 없다. 그러므로 창조론은 황당한 거짓말이다.<스티븐 호킹>
야훼는 전쟁의 신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적 입장이나 신을 은유적 상징으로 생각하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신의 존재와 신의 창조설로 거의 유일신교를 주장하는 주장에 대해 모두 무시하는 입장이다. 수많은 비교종교학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신의 창조설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다윈의 진화론이 옳다는 견해를 변함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며 일부 비교종교학자들은 유일신교의 창조자 야훼를 신 중의 신이 아니며, 서열 여섯 번째의 신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신은 바람을 주관하며 비를 내리는 엘렐이었다고 주장한다. 최초 인류가 수렵이나 사냥을 하며 살아갈 때는 인구가 늘지 않아 신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으나 농경·목축사회로 진입하면서 인구가 늘면서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비는 농경과 목축에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물질이 되면서 구름을 이동하여 비를 내리게 하는 바람의 신을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농경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식량이 부족해졌다. 그러다가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이 발달하면서 욕심이 증가하고 손쉽게 약자를 제압하고 재물을 빼앗는 약탈의 문화가 발생하게 됨으로서 전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전쟁의 신인 야훼가 神 中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까지 그들의 신은 야훼 혼자가 아닌 여러 신이 있었으며, 전쟁의 신 야훼는 다른 신을 몰아내고 유일신이 되었다.<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73. 81. 83. 86. 88. 91쪽> 과연 그들 중 자신들이 추앙하는 신, 야훼가 ‘전쟁의 신’이었음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신부님의 고백이기도 하다.<종교의 두 얼굴 : 평화와 폭력/박충구>
야훼가 설치는 한 이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 된 것은 325년 니케아종교회의/공의회.
독일의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에서 1600만 중 600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개망나니들이 일으킨 십자군전쟁은 약탈이 목적이었으니 그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일으킨 살육의 현장.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
오늘날 그들의 싸움은 그때의 업이 아라야식에 들어가 끊임없이 증오하고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화의 철학(?)인 불교가 세상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때가 온다한들 얼마나 유지될까? 더 평화적인 자이나교가 위의 경우를 당한다고 해도 세상은 평화롭게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분쟁의 근본이유인 이기심도 진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행을 지적, 심리적, 철학적 방법으로 치유하려는 인류의 방식은 그것들의 느린 확장성과 대중성 때문에 거의 실패해왔다. 더구나 인간의 불행을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적 방법을 선택한 인류의 시도는 실패해 왔다. 특히 유일신교는 오직 자신들의 신 이외는 우상이라고 박해를 가하며 포교를 위해서 이교도를 말살해도 된다는 논리로 전쟁도 일으키는 해악자가 되어 버렸다. ‘만약 당신이 신에게 이야기를 건넨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신이 당신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정신병이 집단이 될 때,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신교를 통한 인류의 구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토마스 사스. 정신의학자<우주에는 신이 없다/데이비드 밀스 237쪽>
그들은 신의 존재에 대하여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면서 존재의 과학적 증명의 책임을 무시하고, 예수의 황금률 ― 네가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 에 대하여 철학적 논리에 무관심하여 다른 사람들의 종교와 신을 배척하고, 예수가 ‘사람의 아들에서 신의 아들’로 승격한 니케아 종교회의(A.D 325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노아의 방주’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바빌론과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에서 차용’했으나 신화 자체를 외면해버리는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일신교도가 아니었다. 전쟁의 신 야훼는 특별한 신이었지만, 그들은 다른 신들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들을 섬겼다. 야훼가 유일한 신이 되는 것은 기원전 6세기 말이다. 초기에 야훼는 신들의 모임에 속한 ‘신성한 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88쪽>
汎神論에 관하여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오고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 곧 신은 자연(우주)와 동일하다. 힌두교적 신관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이런 견해를 완강히 거부한다. 유일신론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가난하라고 가르치는 이유
예수는 즐겨 ‘먹고 마시’었다(루카복음서 7장 34절)
세례 요한은 금욕주의자
그러나 지금의 교황청은 무척 부자의 공동체
한국의 교회는 부를 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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