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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傳習錄) 본문

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전습록(傳習錄)

柏道 2019. 7. 13. 21:10



절대지식 중국고전

전습록 (傳習錄)

왕수인

 

요약

1518~1556년에 편찬되었다. 왕수인[왕양명(王陽明)]의 어록과 서간을 모은 책으로, 양명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전습(傳習)’이란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 ‘전불습호(傳不習乎)’(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에서 비롯된 말이다. 스승에게 배운 것을 거듭 복습해 익히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논어』의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게 된 것은 주희(朱喜) 이후의 일이다.

 

저작자 왕수인(王守仁)

격물치지의 새로운 해석으로 주자학과 대립

양명학의 출발점은 주자학의 정적이며 고정적인 이론에 대한 비판인데, 그 계기가 된 것이 『대학(大學)』의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해석이다. 주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모두 이(理)가 갖추어져 있고, 따라서 내 마음의 이를 끝까지 파 들어가면서 만물의 이치를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격물궁리(格物窮理)].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 왕수인이 청년 시절에 품었던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격물’이라는 주자의 설을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할 뿐, 그 설을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젊은 시절에 그 설을 다음과 같이 실천해 본 적이 있다. 친구 전군(錢君)과 함께 성현이 되려면 천하의 사물과 그 이치를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해 논의하다가 먼저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전군이 아침부터 밤까지 대나무의 도리를 캐려고 노력했으나 사흘 만에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그가 정신적인 힘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도 아침부터 밤까지 대나무의 도리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일주일 만에 신경쇠약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우리 둘은 도저히 성현이 될 수 없고, 우리에게는 그럴 힘도 없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그 뒤 귀주의 이민족 속에서 생활하던 3년 동안 그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고 천하의 물(物)은 본래 그 도리를 밝혀낼 수 없는 것이며, 격물수행은 오로지 내 몸과 마음에 대해 행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주자가 말하는 격물은 사물 하나하나에 대한 일정한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서, 그렇게 하면 이치와 내 마음을 구별해 둘로 만드는 결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효도의 이치는 과연 부모의 몸에 있는가, 내 마음에 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만일 부모의 몸에 있을 경우,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의 이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격물치지란 내 마음의 양지(良知)를 하나하나 사물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양지는 천리(天理) 그 자체이다. 내 마음의 양지라는 천리를 하나하나의 사물에 나타나게 하면, 그 사물들은 모두 그 이치를 얻는다. 내 마음의 양지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 치지(致知)이며, 하나하나의 사물이 그 이치를 얻는 것이 격물(格物)이다. 곧, 마음과 이치를 합해 하나로 하는 것이다. 「중권 6」

 

심즉리(心卽理) - 내 마음이 나와 우주 만물의 근원

주희의 라이벌이었던 송나라의 육상산(陸象山)주은 내 마음이 바로 이(理, 도덕적 원리)라는 논리를 주장했던 적이 있다. 왕수인은 그 논리를 더 발전시켜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내 몸이나 인간 윤리, 나아가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최고선을 오로지 마음속에서만 추구한다면, 천하의 모든 사물의 도리를 궁극적으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서애(徐愛)의 질문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이야말로 이치이다. 천하에 마음이 아닌 도리가 어디 있을까. 부모와 군주를 섬길 때, 부모와 군주에게서 효와 충의 이치를 추구할 수는 없다. 친구를 사귀고 백성을 다스릴 때도 상대에게서 신(信)과 인(仁)의 이치를 찾아서는 안 된다. 효, 충, 신, 인은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은 그냥 그대로 이치이다. 이 마음이 사욕으로 흐려지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천리이니 바깥에서 무엇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이 천리를 따르는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와 군주를 섬기면 그것이 효고 충이며, 친구와 사귀고 백성을 다스리면 그것이 신이며 인인 것이다. 오로지 내 마음의 욕망을 버리고 천리를 추구하는 것, 그 이외에는 없다.” 「상권 3」

 

지행합일(知行合一) - 앎과 행위의 주체인 본심의 발현

왕수인은 ‘심즉리’의 논리로 행동의 기준과 판단의 근거, 도덕의 근원을 밝히고, 그것을 실천의 주체인 자신의 마음에서 추구했으며, 나아가 지행합일을 주장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실천한다’, ‘앎과 행위를 일치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지행합일이란 앎과 행위의 주체인 ‘본심(本心)’ 그 자체가 발현되어야 가능한 일로, 본심의 차원에서 앎과 행위가 합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애는 스승이 말하는 지행합일을 잘 이해할 수 없어 친구들과 토론을 해 보았는데, 그래도 알 수 없어 결국 스승에게 물었다.

 

“사람은 누구든 부모에게는 효를 다하고 형에게는 공손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지요?”

 

“그것은 사욕에 흐려져서 그렇다. 그것은 지행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모른다는 것이다. 『대학』을 보면 참된 지행이란 ‘마치 예쁜 여자를 좋아하듯 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라’라는 말이 있다. 예쁜 여자를 가려내는 것은 앎에 속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행위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쁜 여자를 가리는 순간 그것을 벌써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나쁜 냄새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맡는 순간 마음이 움직여 싫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효와 공경을 안다고 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미 효와 공경을 실천했을 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말로만 효와 공경을 외웠다고 해서 효와 공경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추위를 알고, 배고픔을 알 때도 제 몸이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앎과 행위를 분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사욕에 물들지 않은 지행의 본래적인 모습이다. 성인이 가르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행의 존재 방식이며, 그렇지 않으면 안다고 할 수 없다.” 「상권 5」

 

“내가 지금 왜 지행합일을 주장하는지 그 근본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을 하면서 앎과 행위를 분리하기 때문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선하지 않은데도 억누르지 못한다. 내가 지금 사람들에게 지행합일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행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하나의 생각이 선하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것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근본이다.” 「하권 26」

 

치양지(致良知) - 모든 실천의 주체인 마음의 본질

왕수인이 치양지를 자기 사상의 중심에 둔 것은 비교적 만년(晩年)에 들어서였다. 앎과 행위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합일시킨 그는, 그 뒤의 오랜 사색을 거쳐 모든 실천의 주체인 내 마음의 본질이 ‘치양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양지’란 『맹자』의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 양지(良知)이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양지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영묘한 도덕적 직관력이며, 이 양지를 사물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라고 했다.

 

“원래 학문과 사변(思辨, 깊이 생각해 시비를 가림), 독행(篤行, 독실한 행위)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내 마음의 양지에 이르는 것이며, 그 양지에 무엇 하나도 보탤 것이 없다. 지금 천하의 이치를 밝혀야 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선과 악, 진실과 허위의 구분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것은 오로지 양지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중권, 답고동교서(答顧東橋書)」

 

어떤 친구가 조용히 앉아 사색을 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 저주(滁州)에 있을 때, 제자들이 머리로만 이해하기에 힘쓰고, 천박한 논쟁에만 열중하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아무런 덕이 없다고 생각해 내성(內省)을 하도록 가르쳤다. 처음에는 좋은 효과가 있었으나, 이윽고 고요만을 즐기고 움직임을 싫어하여 생기를 잃어버리는 폐해가 생겼다. 그중에는 신비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허풍을 떠는 제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양지만 명백하다면 내성해서 깨달음을 얻으려 하건, 구체적인 일을 연마하건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양지의 본래 모습은 움직임도 고요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학문의 핵심이다. 저주 시절 이후로 치양지를 거듭 검토해 보았으나, 이것만이 어떤 병폐도 없었다.” 「하권 62」

 

만물 일체의 인(仁)

양지의 나타남은 도덕적 완성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사욕을 물리치고 천리를 밝혀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경우에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게 하고, 천하 만민을 구제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가지게 한다.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며, 천지 만물은 본래 나와 일체이다. 백성의 고통은 모두 내 살을 찌르는 고통이 아닌 것이 없고, 내 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시비지심(是非之心)’(판단력)을 가질 수 없다. 판단력은 선천적으로 알고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 즉 양지이다. 양지는 현명한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한결같이 갖추고 있는 자질이다. 세상의 군자가 오로지 자신의 양지를 실현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판단력과 선악을 구별하는 마음은 만인 공통의 것이 되고, 남과 나의 차별은 없어지며, 나라는 내 집과 같고, 사람과 천지 만물은 일체가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싫다고 발버둥 쳐도 천하는 저절로 태평해진다.

 

옛사람은 선한 것을 보면 내 것처럼 기뻐하고, 악을 보면 내 몸이 아픈 듯 슬퍼했으며, 백성의 굶주림과 아픔을 내 일처럼 괴로워하고, 천하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애써 꾸미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양지를 실현하여 내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 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이르러 양지가 잊히고,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인의(仁義)라는 미명 아래 제 마음대로 욕정을 발산하고, 혈육 사이에도 대립과 차별이 만연해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나는 하늘의 보살핌으로 양지를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의 고난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내 몸은 돌보지 않고 양지로써 백성을 구제하려 했으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 조소하고 비방했다.

 

하지만 그런 조소에 신경 쓸 틈은 없다. 내 몸의 고통은 너무도 심하나, 부모 형제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위험을 잊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점잖은 선비들은 그 곁에서 우아하게 인사를 나누고 담소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렇게 허둥대며 체면도 돌보지 않는 것을 보니 미친 사람일 것이라고.

 

아, 세상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내 마음이거늘, 세상에 미친 사람이 있는 이상 어찌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어찌 내가 정상일 수 있겠는가? 「중권, 답섭문위(答聶文蔚)」

 

책 속의 명문장

拔本塞源 / 발본색원

악의 근원을 자르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인데, 왕수인은 번잡하고 사소한 지식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학문을 타파하자는 뜻으로 사용했다. - 「중권, 답고동교서」

 

賢人如山嶽, 守其高而已 / 현인여산악, 수기고이이

현인은 높은 산과 같으니, 그 높음을 지킬 따름이다. 성인이 하늘처럼 자유자재인 것에 대해, 현인은 자신의 높이를 지킬 뿐 자유로운 성인의 경지에 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 「상권 75」

 

滿街人, 是聖人 / 만가인, 시성인

거리에 가득한 사람이 모두 성인이다. 사람은 모두 양지(良知)를 갖추고 있으므로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성인이라는 뜻이다. 왕여지라는 사람이 유람을 갔다가 돌아오자, 왕수인이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왕여지가 “만가인, 시성인”이라고 대답하자, 왕수인은 “그대가 보기에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었겠지만, 그 사람들의 눈에는 오히려 그대가 성인처럼 보였을 것이야”라고 대답했다. - 「하권 112」

 

왕수인(1472~1528)의 호는 양명(陽明)으로 명나라 때의 사상가이자 양명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열정적인 성격으로 과거 시험 공부에 그치지 않고, 기사(騎射), 문학(文學), 신선(神仙), 불교 등 여러 방면을 섭렵하면서 정통 교학인 주자학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병부주사(兵部主事) 자리에 있을 때, 그 무렵 권세를 부리던 환관 유근(劉瑾)을 탄핵했다가 투옥되었고, 귀주성 용장(龍場)으로 좌천되었다. 그 변경의 땅에서 수많은 사색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밤 ‘심즉리(心卽理)’(내 마음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근원이다)의 진리를 깨닫고, 여기서 ‘성즉리(性卽理)’라는, 주자학에 대립하는 양명학을 만들어 냈다.

 

이윽고 도성으로 돌아온 그는 관리 생활을 하는 한편, 새로운 학문의 정리와 강의에 열중하면서 많은 제자를 모았다. 만년에는 도적과 반란군 토벌에 나서 공을 세우고 광서성 반란을 진압한 후 돌아오는 길에 병사했다.

 

『전습록』 3권은 왕수인의 어록과 서간을 모은 것으로, 처음에는 제자 설간(薛侃)이 스승의 어록을 편집했고, 거기에 남대길(南大吉)이 서간을 더했다. 그 후 왕수인이 세상을 떠난 뒤 전덕홍(錢德洪)이 두 번에 걸쳐 증보해 완성한 것이다.

 

양명학의 근본 테제는 ‘마음과 이치를 합해 하나로 하는 것’, 곧 ‘심즉리’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고유한 양지(良知)야말로 우주의 본체이자 만물의 주인인데, 이 양지가 발현하는 곳에서 인식과 실천이 통일된 것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나아가 ‘천지 만물은 원래 나와 일체하는 것’이므로, 천하 만민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낌[만물 일체의 인(仁)]으로써 양지의 자각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왕수인은 객관적인 권위를 부정하며 자아를 절대적 주체로 확립하고, 거기에 기초해 천하의 고난과 인심의 퇴폐를 구하려고 했다. 이런 주체의 확신과 열정적 사명감은 『전습록』 전편에 걸쳐 힘차게 숨 쉬고 있으며, 그런 그의 사상이 어록이나 서간이라는 ‘육성’의 형식으로 정리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왕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