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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호 목사님의 글 (계시와 개시) 본문
김흥호 목사님의 글 (계시와 개시)
2018. 12. 18. 16:17
계시와 개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계시啓示와 개시開示는 신앙과 사유의 갈림길이다.
그러나 계시와 개시는 생의 근원적인 체험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생의 근원적인 체험이란 생의 아픔을 말한다. 성인이나 철인이나 그들의 밑바탕에는 일찍이 생의 아픔을 가졌었다.
그들은 나무에 달린 자요, 칼에 찔린 자다. 신神의 계시啓示라고 하건, 무無의 개시開示라고 하건 모두 화살에 맞은 자리요, 칼에 찔린 자리다.
생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신앙도 사색도 다 헛것이요, 그것이 종교건 철학이건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아픔은 거짓일 수도 없고, 허무일 수도 없다. 칼에 맞은 사람처럼 사람은 그 혼에 상처를 가졌을 때 비로소 계시가 그려지고 개시가 물어진다.
현대의 깊은 신학적 사상가요, 높은 사상적 신학자는 하이데거와 불트만이다.
그들 속에는 키르케고르처럼 혼의 상처를 입었었다. 그 상처로 무의 근원적인 개시가 있었고, 그 상처로 유의 근원적인 계시가 있었다. 이 상처를 그들은 생의 근원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생의 근원적인 경험을 체험함이 없는, 생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이성적인 사유와 형이상학적인 신학은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개시와 계시는 관념의 유희도 아니고 교리의 체계화도 아니다. 계시와 개시는 피나는 생의 아픈 사실이다.
불트만은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적어간다.
‘신앙은 인간에게서부터 일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화살처럼 깊이 내 혼에 꽂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이다. 진실로 신앙이란 오직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창조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신앙이 인간 속에 실제로 살아있을 때, 신앙은 그 자신을 하나님 말씀 앞에 내맡긴다.
이리하여 신앙인은 하나님에 의하여 새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요, 하나님에 의하여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간이요, 결코 자연적인 인간이 아니다. 신앙은 저절로 알아지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적이요 신적인 사실이다.’
이것이 불트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내용이다. 불트만에 있어서 신앙은 피나는 생의 사실이요, 결코 형이상학적인 사변이 아니었다.
월간 思索 제11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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