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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다석의 주역강의(4) - 팔괘강의(3) 본문
[공유] 다석의 주역강의(4) - 팔괘강의(3)
(팔괘강의 - 3 )
전에 맘,눈,불,울,발,물,임,몸 만물을 이겠다는 몸이라는 복희씨의 팔괘를 차례대로 보았습니다.
1.乾天
2.兌澤
3.離火
4.震雷
5.巽風
6.坎水
7.艮山
8.坤地
이렇게 외워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차례는 복희씨의 팔괘 위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팔괘는 주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文王은 팔괘를 다른 식으로 정했습니다.
문왕은 乾을 아버지, 坤을 어머니로 정하여 부모를 먼저 내놓고, 陽에서 셋, 陰에서 셋씩 아들딸을 배치하여 아들 삼 형제 딸 삼 형제를 두었습니다. 큰아들이 震, 둘째아들이 坎, 막내아들이 艮, 큰딸이 巽, 둘째딸이 離, 막내딸이 兌입니다. 이것이 문왕의 팔괘 위치표입니다. 그런데 주역은 대개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봅니다. 여기서 세 아들의 맏이부터 괘를 보면 震下連, 坎中連, 艮上連입니다. 그리고 딸들을 보면 巽下絶, 離虛中, 兌上絶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正으로 사는 사람은 위로 차례로 올라갑니다. 正에 사는 우리가 영원히 가는 것을 대표하는게 우레(雨雷)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큰아들이라고 합니다. 陽과 陰 兩儀 맏아들이 우레입니다.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에게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마가복음 3:17). 우레가 가장 힘 있고 세게 보여서 그랬는지 모으겠습니다.
동양에서도 맏아들이 위험한 큰일에 나선 것은 퍽 흥미 있는 일입니다.
우레를 나타내는 震은 東震이라고도 해서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이름으로도 쓰였습니다.
震方이라 하면 동쪽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네 쪽을 동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해지는 곳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어떻든 우레는 맏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坎中連입니다.
坎은 물을 나타냅니다. 종단은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물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감중련은 부처가 한 손을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붙이고 다른 손가락은 파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모릅니다. 김삿갓 시집에서는 坎中連에 대해 얼토당토아니한 설명을 합니다. 우리도 그 까닭을 잘 모릅니다. 이렇게 하면(손가락을 세 개 편다) 乾三連이 됩니다. 그 중 가운데 손가락을 엄지와 이으면 이어진 것은 가운데밖에 없고 나머지 손가락은 터져 있으므로 감중련 한다는 말이 됩니다. 스님에게 그 까닭을 물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같이 가운데 손가락을 엄지와 이어서 원을 그리면 불교에서는 무슨 특별한 뜻이 됩니다.
원불교에서는 이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놓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말하라 해도 무궁무진하게 唯我獨尊 天上天下 左右를 논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앉아 있는 것을 감중련하고 앉았다고 묘사합니다.
艮에 忄을 하나 붙치면 恨이 됩니다. 문왕팔괘에서는 막내아들을 艮이라고 하는데, 막내아들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가서 그치는 것입니다. 艮은 산을 뜻하는데, 산은 세상의 끝에 있는 한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막내아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들 중에서 이 艮을 빼놓고 전부 陽이라는 사실입니다. 딸 쪽에서도 음이 둘이고 양이 하나(兌)들어 있습니다. 바꾼 셈인데 수가 많은 쪽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적은 곳을 대표합니다. 巽은 겸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것이 맏딸인가 봅니다. 주역세서는 巽을 不吉하게 여깁니다. 그 뜻이 손해본다는 뜻의 損과 통하기 때문에 巽方으로 가면 언짢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사갈 때 어디 가서 손없는 날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손은 맏딸입니다. 이것은 또한 여자를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離는 불입니다. ‘반대 요’를 나타내는 글자도 됩니다. 离. 이러한 짐승이 하나 있었는데, 鳥를 더하면 빛날 새가 됩니다. 빛깔이 고운 새가 됩니다. 离+鳥는 꾀꼬리를 말합니다. 고운 것이 가만히 있으면 곱지 않습니다. 불은 피워야 곱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가려고 할 때 떠나가는 것을 도로 붙들면 더럽지만, 헤어져 가려고 할 때는 몹시 곱습니다. 그러한 이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곱다는 것과 떠나는 것은 반대입니다. 또 한 가지 떠날 때는 ‘걸릴 리(離)’가 됩니다. 떠나는 것을 묘사한 ‘이서경’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서경은 시끄럽게 요란을 떨어서 붙잡혀 걸렸습니다. 떠나는 것이 걸렸습니다. 반대일 것 같으나 떠나는 것을 따지면 걸리는 것이 됩니다.
한문에는 이러한 것이 많습니다. 말에도 그러한 것이 많습니다. 떠난다는 것이 실상 무엇인가 하면 지낸다는 말입니다. 歷입니다. 이 세상 땅에서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면, 급하게 검문소 앞을 지날 때 잘 걸리는 것처럼 걸립니다. 안 지나가면 걸리지 않습니다. 지나가면 걸립니다. 離가 자꾸 지나가면 걸리는 것이 자꾸 생깁니다. 지나면 걸립니다. 안 지나면 안 걸립니다. 걸리면 지나는 것입니다. 지나는 것이 걸리는 것입니다. 두 가지 세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붙으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붙고, 이렇게 지내다가 죄다 죽어 가는 게 사실입니다.
‘걸릴 리’나 ‘떠날 리’나 똑같이 고운(麗)것을 내(離)놓는 것입니다. 고운 것을 혼자 영원히 갖고 있으면 정말 걸립니다. 들러붙다가는 걸립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 고운 것을 만나거나 가졌으면, 이것이 ‘고울 려(麗)’든 ‘떠날 리’든 ‘걸릴 리’든 정말 정신차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말이나 글이 그렇게 복잡해서야 되겠는가, 똑똑한 쪽으로 정리를 해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두면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합니다. 그게 아니라 말이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생긴 대로 이전의 말을 다시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운데 딸입니다. 가운데 딸 하나는 똑똑하게 두었습니다. 불같은 열이 있고 적당히 고우며, 저버리고 시집갈 때 가지 집에 가듯 휙 떠나고 돌아보지도 않는 가운데 딸이 제일 약습니다.
다음 마지막 딸은 태(兌)인데, 바다를 말합니다. 밑의 밑이 가장 힘세고 위는 부드럽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든지 여간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너무 깊어서 빠질까봐 걱정을 합니다. 널찍하여 천만 명의 사람이 죄다 볼 수 있는 것이 왜 그런지 좋습니다. 태는 ‘기별 태’이기도 합니다. 기쁨(悅)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태상절(兌上節)입니다. 이렇게 막내딸입니다. 막내딸 한 번 시원하게 태어났습니다. 이 막내딸은 업둥이입니다. 다른 태(陽)서 바꾸어 왔습니다.
이같이 옛적 사람들은 이 장난감을 맞추어보았습니다. 제각기 맞추어 봅니다. 복희씨는 저렇게 맞추어보고, 문왕은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맞추어보았습니다. 역시 동양에는 가족주의의 가족 철학이 있습니다. 가족 철학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옛날의 장난감을 맞추어봅시다. 어머니 아버지 밑에 아들 삼 형제 딸 삼 형제를 두고 그 뜻을 이렇게 보아 왔는지는 모릅니다만, 자유와 평등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맞추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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