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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다석의 주역강의(2) - 팔괘강의(1)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주역강해

[공유] 다석의 주역강의(2) - 팔괘강의(1)

柏道 2019. 4. 6. 19:41


[공유] 다석의 주역강의(2) - 팔괘강의(1)

 


(팔괘강의 - 1)

乾,兌,離,震,巽,艮,坎,坤 이것을 팔괘라고 합니다. 빨리 기억하기 위해 연결된 것을 連이라 하고 끊어진 것을 絶이라고 합니다. 乾은 線이 다 이어졌으니까 乾三連, 兌는 맨 위가 끊어졌으니까 兌上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離는 가운데 하나만 끊어졌는데 離中絶이라 하지 않고 離虛中이라고 합니다. 震은 아래만 연결되었으므로 震下連입니다. 이런 식으로 巽下絶, 坎中連, 艮上連이 만들어집니다. 坤은 다 끊어졌으니까 坤三絶이 됩니다.

 

 

乾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어딘지 강한 것 같아서 힘줄을 세 개 그렸습니다.

반대로 坤은 땅을 나타내는데, 처음이나 끝이 약한 것 같아서 끝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 이유가 그럴듯 해보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의 兌는 목 태 인데 바다를 말합니다. 바다와 우리 인생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 밖에 큰 것이 없는데, 그 다음으로 큰 것은 바다입니다. 바다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밑이 강하고 중간도 강한 것 같으나 어쩐지 위는 찰랑거리는 것이 약하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밑에 두 줄은 힘차게 긋고 위는 터놓았습니다.

 

 

離는 불을 말합니다. 불은 어두움을 밝혀부는데 불이 자꾸타서 나올 때는 아주 강합니다. 밑동도 강합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는 아주 약하니다.

 

 

震은 우레의 雷를 말합니다. 요샛말로 電氣입니다. 한번 번쩍할 때는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같이 싱거운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지나갈 때는 아주 강하지만 한번 지나가면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巽은 바람을 말합니다. 바람이 우리를 스쳐갈 때는 아주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그 세력이 한 번 성을 내면 무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부드럽다해서 맨 밑은 끊고 위의 두 줄은 그었습니다. 巽은 겸손 손이라는 글자도 됩니다. 바람이 그렇지 않습니까?

坎은 水입니다. 물의 성질은 한없이 약한 것 같으나 이것이 모이면 또한 무서운 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표시한 坎中連을 從으로 세우면 水처럼 됩니다.

 

 

艮이라는 것은 山입니다. 땅은 속이 약한 것입니다. 산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인지 뾰족한 게 땅위에 높이 있어서 제법 강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맨 위만 그었는지 모릅니다.

 

 

이 여덟글자에도 차례가 있습니다.

 

하나에서 나온 것입니다. 곧, 太極에서 나온 것인데, 태극이라는 것은 전체인 하나로 크고 더 크다는 뜻입니다.

 

 

아주 옛날에도 하나를 인정했습니다. 하나는 너무나 커서 헤아릴 수 없는 불측입니다. 큰 태극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元一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밑동입니다. 그래서 주체로서 모든 개체에게 令을 내립니다.

 

 

이 밑동의 하나인 태극은 어떻게 생겼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보터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시작을 모릅니다. 절대 하나만이 이것을 아니다. 불측입니다. 하나, 둘까지는 따질 수가 없습니다. 셋부터가 우리가 수학에서 쓰는 숫자가 됩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밑동을 모릅니다. 우리의 처음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태극은 하나인데 이것이 쪼개졌다고 합니다. 하나는 쪼개지지 않습니다. 쪼개지는 것이 무슨 하나입니까? 태극은 하나입니다. 하나는 엄연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이고 참인 것입니다. 이것이 벌어져 나뉘었다면 딴 것입니다. 하나의 반동분자가 나오게 됩니다. 태극이 벌어져서 陰陽이 나왔다고 합니다. 陰이라는 글자는 阜, 곧 어떤 높은 언덕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간단히 阝라고 써서 언덕을 표시한 다음 月이나 水를 붙입니다. 陰은 언덕에 뜬 달의 그늘을 생각해서 이렇게 씁니다. 陽은 이와 반대로 언덕에 뜬 해를 표시하거나 火를 붙여 陽이라 합니다. 산의 뒷등을 음이라고 합니다.

 

 

태극에서 벌어져 나온 것은 크게 陰과 陽으로 봅니다. 음과 양 한쌍의 이쪽저쪽을 이같이 상대세계로 쪼개 놓았습니다. 이같이 자연형태를 쪼갰는데 이것은 참이 아닙니다. 둘이 만나서 작용하는 것은 참이 아닙니다.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세계는 좋은 것 같으나 싫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대세계에서 벗어나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이라는 것을 陰陽이라고 하였습니다. 있는 것이 양이고 없는 것이 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정하고 보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원점을 정해서 동쪽으로 가는 것을 + 라고 합니다. 반대편 서쪽으로 가는 것은 -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꾸로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있는 것이 음이고 없는 것이 양이라고 해도 같습니다. 양이다 음이다 하는 것은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목적을 위해서 혼돈하지 않게 하려고, 여기서부터가 + 이고 그 반대 방향이 - 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음양은 참이 아닙니다.

 

 

음양을 그대로 인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양 가운데도 음이 있고 음 가운데도 양이 있습니다. 또 하나가 둘로 벌어지는 일인데, 우리 인간은 하나에서 둘을 벌려놓고는 그 버릇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 또 벌립니다. 그리하여 넷이 됩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나, 하나인데 사람의 버릇이 그렇게 쪼개놓습니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에서 四象, 즉 네코끼리가 생깁니다. 양에서 太陽과 少陰이 나오니다. 양 중에서 가장 큰 양은 태양인데 그것이 겉으로 볼 때는 양이나, 그 素因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음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양에는 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이 다 그렇습니다. 음도 太陰이 큰 양을 가까이 해서 양을 조금이라도 취하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음에도 있습니다.

 

 

해와 달은 똑같이 둥글게 보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크기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가 훨씬 큽니다. 그러니 해와 달이 같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우주역학적으로 보면 恒星은 전부 태양을 중심으로 마치 학교에 있는 괘도처럼 우리 앞에 걸어놓은 모양이 됩니다. 그래서 양의 대표를 태양이라고 하고 음의 대표를 달로 하였습니다. 실제 태양을 비유하여 배낭만 하다고 하면, 달은 우리 얼굴에 붙은 사마귀정도일 것입니다.

 

 

발광체가 아닌 것을 대표하는 것이 달입니다. 이 달도 아주 음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들여서 밤에 빛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받는 기운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少陽이라고 합니다. 태양에는 뭔가 발광 물질이 있습니다. 그 물질은 음의 성질을 지녔습니다. 달은 순전한 물질 덩어리입니다. 태양이 활동하는데 거기에도 물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少陰입니다. 이런 것을 四象이라고 합니다.

 

 

이같이 쪼개본 성질이 그냥 있지 못합니다. 이 넷이 여덟 개로 나누어집니다. 태양과 태음을 하늘땅으로 나누어 그 하늘땅에서도 음양을 가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하늘이고, 그 다음으로 큰 것은 바다입니다. 바다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태양에서는 乾과 兌가 갈라져 나옵니다. 훤하고 시원하기는 하늘이나 바다나 마찬가지지만 둘은 성질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하늘이 크고 양의 성질을 많이 띱니다. 바다는 어림이 없습니다. 바다 또한 우리에게 시원한 감을 주지만, 陽氣에서는 하늘보다 못합니다.

 

 

그리고 少陰에는 작은 불과 우레가 갈라지는데, 우레는 한 번 지나가면 그만이어서 번쩍거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역시 불과 뇌성은 달리하는 점이 있습니다. 太陰도 땅과 산으로 나뉩니다. 산은 어딘지 높이 솟아 양을 받는 기세가 있습니다. 少陽은 물과 바람으로 갈라지는데, 여기에서의 물은 바다와 다릅니다. 얼어붙을 때는 꽁꽁 얼어붙고, 힘 셀 때는 힘센 민물입니다. 바람 역시 부드럽기가 한량없으나 힘셀 때는 물에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적에는 바람이 더 무섭고 힘센 것으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니 이 장난감을 만든 당시에 이렇게 이치에 맞게 한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이 이해해서 내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호락호락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장난감을 내놓고 맞춰보면, 그 옛날 사람들이 더 똑똑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딴 글자라 사용하여 보면 태극은 한늘입니다. 우주는 무한한 공간입니다. 영원한 시간입니다. 무한한 공간에서 늘 놀랍니다. 태양은 쳐다보지 말고 오직 하늘만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가지가 붙습니다. 븨(空)와 몬(物)입니다. 븨라는 것은 허공, 곧 비어 있다는 말입니다. 몬은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물건이 무엇이냐 하면 동, 은, 연 등 잘게 쪼개서 부스러기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부스러지기도 잘합니다. 부스러지기 때문에 서로 상치됩니다. 이것이 몬입니다.븨와 몬은 이같이 성질이 다릅니다. 양이 븨, 음이 몬이라면 확실히 갈라진 것 같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둘이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왜 븨와 몬 두가지가 나왔는지, 그것은 모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한 둘 이라고 합니다. 한둘이 두 둘이 됩니다. 븨는 해, 몬은 달, 븨는 또 자그몬, 몬은 또 자그븨, 이렇게 두 둘이 됩니다. 여기서 세 둘이 나옵니다. 해에서 몸이 나옵니다.

 

 

우리 맘은 하늘의 성질입니다. 우리 맘이 乾입니다. 眼은 당치않은 소리 같으나 가만히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눈으로 바다를 본다해서 눈을 내건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느끼고 아는 것의 90%이상을 눈으로 합니다. 눈같이 생각하고 눈같이 느끼는 것은 없습니다. 바다 역시 무척 깊지만 눈보다 깊지는 못합니다. 삼라만상이 틀림없다는 것은 눈으로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눈에 들어온 것을 전부 맘에 돌리어 보게 됩니다. 맘에 모아진 四象의 자료는 눈에서 거의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 깊이를 바다에 비하겠습니까? 그래서 여기다가 눈을 놓았습니다.

 

 

그 다음 少陰에 가서 불은 말할 것 없고, 울은 우레를 말합니다. 전기는 우레와 같은데, 머리 위에서 번쩍하였다 하면 벌써 보이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우러러보고 또 울어야 합니다. 운다는 것과 울은 같은 뜻입니다. 이상 陽쪽에다 맘, 눈, 불, 울을 붙여 보았습니다. 다음 한쪽인 몬(음)쪽에는 우선 몸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몸뚱이라는 뜻입니다. 坤이 몸뚱이입니다. 그 다음 임이라는 것은 이마를 말합니다. 땅의 산봉우리 같은 것은 몸에서 이마입니다. 이 이마 하나 내밀고 나왔습니다. 어디 갈 때마다 이마가 먼저 나갑니다. 산은 지구의 이마입니다. 우리 머리에 주님이 계시다는 말은 이마에 있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는 이마로 하늘을 받치고 삽니다. 일본 사람이 무엇을 달라고 하거나 받을 때 죠다이 라고 합니다. 이마에 올린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물인데, 요샛말로 기분 나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데 기분을 곧잘 찾습니다. 공기를 마시고 사니까 기분만 찾는지 모르겠습니다만 水分은 찾지 않습니다. 우리 가슴에 폐가 있어서 氣分입니다. 배는 수분을 채워야 합니다. 배는 수분으로 삽니다. 정신은 허분으로 삽니다. 그래서 기분, 수분, 허분, 이것이 다 깨끗해야 합니다. 여기서 물은 수분을 말합니다.

 

 

다음 발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입니다. 또 희망을 이룩하여 달라는 기도로서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발은 그러한 것을 바라는 발입니다. 한 발 내닫고 갑니다. 발이 있어서 갑니다. 지금 보다 나은 곳을 찾아서 어디론가 갑니다. 발을 쓰지 않고 바라는 것은 바라는 것이 안 됩니다. 발과 바람은 이렇게 같습니다.

 

 

이 같이 옛날 사람들의 장난을 이 사람이 우리말로 한 번 고쳐 보았습니다. 즉, 장난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맘,눈,불,울,발,물,임,몸, 이것입니다. 이것을 이어서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맘눈에 불을 올려 우러러보면서 위로 발을 내딛는 물음을 임 이마에 이고 나간다”이것은 이몸의 머리가 나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어지간히 맞는지 안 맞는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고 또 하느님이 아시는 일입니다. 이 사람이 만든 팔괘의 우리말로 맞추어보고 싶은 짝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하느님을 우러러 우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부르며 완전히 되자고, 이 몸이 완전히 되자고 웁니다. 발도 바란다는 것이 무슨 까닭에 바라는 것인지 발의 R닭이 있습니다. 願으로 이마, 내가 담당하마, 내가 분명하니까 내가 담당하마, 그렇다고 어디 매이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의 시작이 됩니다. 이러한 것에서 말의 둘, 셋, 넷이 시작합니다. 辭가 됩니다. 爫은 이렇게 벌린 손을 말합니다. 손으로 이러고 저러고 한다는 것인데 이 안에 어린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것인데 다름 아니라 精神을 기르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정신이냐면 辛, 곧 辛酸하다는 것입니다. 고생스럽게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서 기른다는 것이 곧 말씀 사(辭)입니다. 辛에게 하나 더 그으면 형벌이름이 됩니다. 쓰라리고 성가신 것을, 즉 븨,몬 등의 말을 자꾸 하고 이해하여야 하고 해자그믄 등 하나의 말을 여러 가지로 말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가시고 쓰라린 것을 사뢰어야 하니 辭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좀처럼 된 소리를 하는 것은 다 쓰라리고 성가신 것입니다. 갈 사람의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발전하는 하나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몬, 븨 가 힜습니다. 이것이 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자그몬이니 해니 해서 넷을 걸었는데, 이것이 다 한 몸뚱이를 말합니다. 몸뚱이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서 분리할 수 있습니까?

 

 

이같이 옛적 장난감은 원래 자세한 말 없이 그저 하나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 사람도 하나는 하나인데 여기서는 잇대어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에서 한 둘이 나오고 한둘에서 두 둘이 나옵니다. 한 둘이 모입니다. 이것이 이 지상입니다. 음과 양은 + 와 - 입니다. 두 둘은 四方입니다. 田(밭 전이 아님), 사방이 세 둘이 됩니다.⊗, 이같이 입방체가 됩니다. 두 둘의 둘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옵니다. 이것이 八입니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서 삽니다. 여기서 4차원, 5차원의 인식세계는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가 4차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상이 八字와 平方의 상관인데, 그런 딱지 모으기 할 때는 그만 지나지 않습니까? 세 둘은 몸, 눈, 불, 울, 발, 물, 임, 몸을 말하는데 자기 생명인 元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自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스스로 자입니다. 자기책임을 다 하겠다는 뜻도 됩니다. 이것은 또한 코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대표인 코를 말합니다. 以도 코로 된 글자이지만, 自도 코라는 글자입니다. 이 코는 상당한 것입니다. 四象의 코끼리에게 있는 코 따위와는 다릅니다. 여덟의 코는 특별한 코입니다. 가슴에 생각의 불을 붙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을 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이해하고 나아가는 코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차게 울면서 기도할 때 자기의 능력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하나가 되겠다고, 근본의 하나가 되고 궁신지화하겠다고 우러러 울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라는 것이 성령을 바라는 것입니다. 바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마를 내세워 男兒가 번뜻하게 그이를 바라는 발을 딛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자는 이 몸뚱이입니다.

 

 

한늘, 몬, 븨, 맘, 몸, 모음, 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람도 생각이 하나 떠오르는데 하늘의 한을 陽쪽에 붙이고 늘을 陰쪽에 붙여 읽어보면, 양 쪽은 한 븨 해 맘이 되고 음 쪽은 늘 몬 달 몸 이 됩니다. 이것에 무슨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로 븨히는 해 맘, 늘 물질을 따르는 몸, 이같이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면 또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自然辭令, 곧 스스로 나온 말씀입니다. 辭令은 辭令狀입니다. 사령은 어디어디를 가서 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사령장은 관직을 임명하는 증명서를 뜻하기도 합니다만, 꼭 그러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받아들이는 말씀이 명령입니다. 코로 받아들이는 말씀, 그것이 곧 명령입니다. 그 뜻이 스스로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