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유란시아서는 새로운 복음이다.(중요) 본문
□ 유란시아서는 새로운 복음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구원은
사람이 죽음 이후에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구원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다가오는 사건이다.
구원은 얻은 것이 아니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의 과정이나 그 결과는
인간의 과학으로 증명되는 사실이 아니며,
언젠가 그 사실이 증명되기까지는
즉 자신이 직접 죽음 이후 부활을 경험하기 까지는,
전적으로 종교적 영역에 속한 것이며,
자신의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종교적 구원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허락되며,
구원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종교적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종교적 구원은 개별적이며
내 믿음의 결과로 나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사람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의 주요한 내용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애초부터 영원히 사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구원이란 말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원을 얻으라 외치는 종교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필연코
어떤 종교 안에서 구원을 주는 신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만일 신이 주는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들었더라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대답은 현재 어떤 종교이든
자기가 선택한 종교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아직 인류의 어떤 과학적 지식과 경험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분명한 다른 답을 주지 못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종교를 가져야 하며
그 종교를 통해 신을 찾아야 한다.
그 종교가 말하는 신의 뜻을 따라 살면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유란시아서는 이런 현실적인 구원의 문제에 대해
역설적인 사실을 말한다.
'구원은 얻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미 너 자신은 구원을 받은 존재이다.'
'영원한 생명은 얻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미 너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 존재이다.'
라고 파격적으로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뛰어넘고,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모든 종교로부터 벗어나고
종교 지도자들과 사제들에게 맡겼던
자신의 영혼을
되찾아오라는 강력한 호소이다.
각 사람은 어떤 종교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떤 종교 집단에 예속될 필요가 없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어떤 종교의 신에게 갈구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종교, 참된 종교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라면
유란시아서는
이미 그 종교는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한다.
유란시아서는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하나님이 계시며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람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며,
구원을 얻기 위한 별도의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거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거나, 용서를 얻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추상적이고 영적인 천국이나 극락세계,
불타는 지옥같은 곳은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가르침은 모두 미신적인 옛 종교들의
권선징악을 위한 산물일 뿐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고 죄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집행하는
그런 잔혹하고 냉혹한 신이 결코 아니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추구하고 있는 종교적 구원은
진정한 우주 사실들을 알지 못한
왜곡된 가르침에 따라 만들어진 상대적인 진리일 뿐이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들은
인류의 지성과 영적 각성, 그리고 과학적 발전에 따라
자연적으로 수정되고 해체될 운명에 처해있다.
이미 종교는 과학적 사실들과, 이성적 윤리에 추월당하고 있다.
유란시아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므로
종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따라 기쁜 삶을 살라고 말한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므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더 이상 어떤 종교적 신의 노예처럼 살지 말라고 말한다.
오직 모든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므로
서로 한 형제처럼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라고 말한다.
유란시아서는 모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밝힌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죽음 이후
어떻게 진화하고 진보하는지 설명한다.
각 사람이 영원히 사는 존재로서
어떻게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밝혀준다.
유란시아서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불완전하고 악한 조건 속에서 태어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거친 삶을 헤치고 생존해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유란시아서는 사람이 처음부터 완전하였으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불완전해지고
죄와 악 속에 빠져버렸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존재이며
악으로 부터 한걸음 한걸음
완전한 선을 향해 진보하는 존재임을 밝힌다.
이렇게 사람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신의 섭리와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신의 정의와 자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기존 종교들과 다른 그 선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유란시아서를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가?.' 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
너는 이미 구원을 얻었는데 또 무슨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가?.
라는 대답을 얻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원히 사는가?.' 라는 질문 역시 의미가 없다.
너는 이미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믿지 못하는가?.
라는 대답을 얻는다.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육체적인 내 삶은
진정한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내 혼은 죽음 이후 몸을 벗어나
영원한 세상에서 반드시 다시 부활하고
광대한 우주에서 하나님처럼 완전한 최상의 영 존재가 되는
장구한 진보의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내가 알든 모르든,
어떻게 이해하고 있든 상관없이
내 안에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인
성격, 하나님의 영, 혼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이루어 진다.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본래부터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수여된 목적,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존재인 이유,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선을 추구하게 되는지
그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궁금하지 않는가?.
유란시아서는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준다.
유란시아서는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고 새로운 복음이다.
흔히 기존의 종교적 교리나 정의와 비교하여
유란시아서를 이단, 영지주의, 외계인의 채널링 메세지처럼
소홀히 취급하거나
사람을 미혹하게 만드는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유란시아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가르침들이 왜곡된 것일 가능성은 전혀 없단 말인가?.
섣부른 판단보다는 유란시아서를 읽고
그 가르침이 가진 문제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란시아서는 인류의 지성과 영적 각성,
그리고 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인간에게 우주적 시야를 넓혀주고,
우주 창조의 목적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지
분명한 우주의 사실들을 밝혀주는 창조주의 계시이다.
현대 인류에게 주는 위대한 복음이다.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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