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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체험 -니고데모 본문

성경과 영성신앙/복음과 구원

거듭남의 체험 -니고데모

柏道 2019. 3. 10. 21:39

복음Gospel

요한복음 3장 거듭남의 체험 -니고데모

 

거듭남의 체험- 니고데모의 구원

요 3:1-7, 그러나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이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신 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이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나야 한다고 내가 그대에게 말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1. 거듭남 - 영적 체험의 시작

요한복음 3장에 있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주님은 거듭남에 관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모든 영적 체험은 거듭남으로부터 시작한다. 거듭날 때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다른 모든 항목들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거듭나야 함을 분명히 보여 주는 니고데모의 사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2. 니고데모(Nicodemus)

먼저, 우리는 「니고데모(Nicodemus)」라는 사람에 관해 살펴보자. 니고데모는 최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존경받고 권위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또한 도덕적인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하여 밤에 오기는 했지만, 그가 주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뿐 아니라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 당시 삼십 세를 갓 넘은 주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이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당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 이렇게 선하고, 훌륭한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1) 선생이었고, 2)유대인의 관원이었으며, 3)나이 많은 사람이었고, 4) 도덕적인 사람이요, 5)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요, 6) 겸손한 사람이요, 7) 정직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니고데모는 많은 미덕과 장점을 갖춘 상류층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주님은 그가 얼마나 선한가에 관계없이 여전히 거듭나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사마리아의 부도덕한 여인에게, 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던 세리 마태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고,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도덕한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도 여전히 거듭나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생명이 악하고 더 이상 개선될 수 없기 때문에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거듭나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거듭나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생명나무 앞에 두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람의 생명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람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듭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위해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어떤 종류의 외적인 개선이나 수양의 문제가 아니라, 새 생명을 받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문제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생명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남은 외적인 행위를 고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받은 사람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다시 한 번 받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부모의 생명을 받는 것을 의미하듯이, 거듭남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거듭남은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며(요1:13),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은 영원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 것이다(3:15-16).

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니고데모는 주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신 줄 압니다.라고 말했다(2절). 이것은 그가 주 예수님을 그의 행위를 개선하기 위해 더 나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음을 보여 준다. 선생이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고,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가르침이 아니라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진정한 필요는 행위를 고치거나 규제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었다. 당신이 얼마나 선한지 모르지만 여전히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 당신이 또 하나의 생명, 곧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출생, 즉 거듭남이 필요하다. 주님의 대답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진정한 필요는 자신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문제임을 그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니고데모가 물은 것은 행위의 문제였지만, 주님의 대답은 생명의 문제였다. 니고데모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그의 인간적이고,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관념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것이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은 그에게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네가 몇 번이나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해도 여전히 육일 뿐이다. 네가 그런 방법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고, 다시 젊어진다 해도, 또 다시 육칠십 년이 지나면 현재의 너와 똑같아질 것이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에 있어서의 다시 태어남이 아니라, 본질면에서 다른 또 하나의 태어남이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아무리 여러 번 태어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천연적인 생명을 가진 천연적인 사람이다. 우리의 본성은 결코 변할 수 없다. 거듭나는 것은 부모에게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서 태어나는 것이다.

4. 회개와 믿음

5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물은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끝내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상징한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타락되었으며, 장사 지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생명이 철저히 타락되었으며, 어떤 행위와 노력으로도 개선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물로 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물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중심 되는 표적인 것처럼, 영은 사람들을 새 창조 안으로 태어나게 하는 주님의 사역의 중심이다. 이 두 가지를 합할 때 거듭남이 있게 된다. 거듭나는 것은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끝내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 창조 안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물로 거듭나는 것, 즉 세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타락된 사람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회개한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회개하는 것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믿는 것은 주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듭남에 관해 말하면서 요한은 네 번이나 거듭나는 유일한 길이 믿음이라고 말했다(3:15, 16, 18, 36). 믿는 것이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나 선한 사람인가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런 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과 거듭남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의 문제이다.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죄들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받고 거듭나는 길도 오직 믿음이다. 십자가의 구속하는 죽음으로 주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영광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셨으며, 놋뱀으로 죽으심으로 우리를 강탈하여 종노릇하게 하는 사탄,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셨다. 모든 소극적인 것들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의 죽음에 의해 해결되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취하신 것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요한복음 1:12은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라고 말한다. 주님을 믿는 것은 바로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주님은 영접할 수 있는 분이시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죽으신 후에, 주님은 부활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고후3:17). 지금 주님은 그분이 성취하신 구속의 모든 효능을 가지고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 속에는 그분을 영접할 수 있는 영이라는 기관이 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영 안에 주님의 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생명 주시는 영이신 주님이 즉시 우리 영 안으로 들어오신다. 그럴 때 우리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에 의해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5. 성령(Spirit)으로 난 것은 영(spirit)이니

거듭남, 즉 신성한 생명을 받는 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사람의 깊은 곳에 영이라는 특별한 기관을 만드셨다. 사람의 영의 기능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담는 것이다. 거듭남은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영 안의 문제이다. 이것은 당신이 무게 있는 생각과, 균형잡힌 감정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오직 우리의 영만이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 있다(요4:24). 그러므로 거듭나기 위해 당신의 생각, 감정, 의지를 사용하지 말고, 단순히 자신을 열고, 깊은 속에서부터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받아들이라. 그러면 즉시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을 만지시며 당신은 거듭나게 된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거듭남은 성령에 의해서,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당신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즉 회개하고 주님을 당신의 영 안에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분명히 구원받게 된다. 당신의 존재의 깊은 곳을 열고 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내 영 안에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라. 그럴때 신성한 하나님의 영이 즉시 당신 안에 들어가실 것이다.

6.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감

3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원문 참조)고 말씀하셨고, 5절에서는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 하셨다. 여기에 있는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가 거듭남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왕국은 항상 생명과 관계된다. 식물의 왕국은 식물의 생명과 관계되며, 동물의 왕국은 동물의 생명과 관계된다. 당신이 어떤 종류의 왕국에 참여하려면 먼저 그 왕국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 오직 새들만이 새의 왕국에 참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갖지 않으면 사람의 왕국에 참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만이 신성한 왕국에 참여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고, 죄가 없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할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이 아무리 깨끗하고, 선하고, 순수하다 해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한, 하나님의 왕국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입구이다. 거듭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 골로새서 1:13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습니다(원문 참조)고 말한다. 우리는 거듭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받았으며, 이제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 개에게는 짖으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 개의 생명이 짖는 생명이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개는 자동적으로 짖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생명이 자랄 때 자연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할 때 너무 가르침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 피우는 것, 영화를 보는 것, 먹는 것, 옷 입는 것, 결혼 등에 관해 질문한다. 그러나 그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속에서부터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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