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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우신 그 이름 예수(23) 본문
놀라우신 그 이름 예수(23)
E.W. 케년
제 12 장 감각 지식의 믿음과 계시 믿음의 차이(1)
감각 지식의 믿음은 육신적인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믿습니다.
육신적인 증거들로 증명할 수 있어야 성령님을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이러한 태도를 취해 왔고, 불행히도 속아 왔습니다.
만일 그들이 모든 감각 지식의 증거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의 근거를 두었다면, 그들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재정을 위해 기도할 때 사람들은 증거를 볼 때까지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내 눈에 보이면, 그때 말씀을 믿을 겁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전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믿음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당신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실체를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픈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내가 치유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말씀에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나은 것을 압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있지 않고
그가 보고 느끼고 듣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에서 말씀을 두 번째 위치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몸, 즉 감각의 집을 첫 번째 위치에 두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는 내 죄들을 회개했기 때문에, 내가 구원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모든 나쁜 습관들을 버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주장하는 이러한 일들은
모두 자기가 한 일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어떤 성경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육체적인 증거들을 믿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는 감각적인 증거들이 영적 갈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감각 지식의 철학이 교회를 장악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마치 꽃이 태양을 좇는 것처럼, 인간의 영은 하나님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한 행동에 믿음의 근거를 두고 말씀보다 경험을 더 믿는 것은,
결국 우리를 어둠과 의심으로 이끕니다.
말씀 대신 이성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인간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신뢰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기도는 일시적으로는 그들을 구출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불신앙이 그들의 기도를 무효로 만들 것입니다.
당신은 믿음을 갖고, 당신 자신의 믿음을 믿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성공하게 됩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해서나 믿음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말씀 안에서 절대적으로 안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을 얻기 위한 기도는 필연적으로 불신앙의 기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신앙입니다.
이는 오직 말씀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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