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 -21 본문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The Mustard Seed)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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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종교는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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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년, 모든 소녀들은 자신의 성기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것은
즐겁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몸 전체가 축복받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
런데 아이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면 모든 사람들이 즉시 그 행동을 금지시킨
다, 모든 사람들이 당황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의 행동을 중지시킨다,
심지어는 아이의 손을 묶어놓아 성기를 만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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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깊은 의문을 느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성기를 만지는 데서
오는 느낌을 좋아하고, 그 느낌을 즐긴다, 그는 그 느낌이 아름답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그가 그 느낌에 따라 행동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거부한다,
그는 못된 아이가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벌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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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생각한다. “그런 나쁜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만 이런 나쁜 짓
을 하고 있나 보다, 아무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
해서 알지 못한다, “세상은 선하다, 오직 나만이 죄를 짓는다,” 그래서 그는
죄책감을 갖는다, 이것이 깊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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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는 자신의 배고픔에 대
해서 그대들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이는 세 시간
마다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학적인 과정을 따른다, 그것은 책에 쓰여 있
다, 그대들은 그 책을 읽고 지성적인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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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시간이 지나면 깜짝 놀라 아이에게 음식을 먹인다, 강제적으로
음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라, 그들은 음식을 거부한다, 그들은 입을 열지 않는
다, 우유는 흘러 떨어진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삼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배고픔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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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해진 일과나 시간에 따라 살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가 말하는 의학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배고프지 않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배가 고파서 울 때에는 제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음식을 주지 않는다,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인가 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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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결정한다면 그대는 아이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
이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배고플 때는 먹지
못한다, 배고프지 않을 때는 먹는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는 말했다.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옳은 일은 하지 않고, 언제나 잘
못된 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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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모든 아이들의 기도이다, 그대가 결정하면 아이에게는 죄의식이 만들어진다, 아이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그런데 그대는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 화장실 훈련은 그러한 죄의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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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그를 강요하고, 설득시키고, 달래고, 유혹하며,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써본다, 그대는
아이에게 자신은 무엇인가 잘못되었고 나쁘다고 하는 죄의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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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왜냐하면 육체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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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다, 그는
정원과 집 둘레를 뛰어다니며 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대는 말한다, “가서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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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잠자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이 “가서 자거라”하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눈을 감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간 후에는 아이는 심연 속에 남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명령을 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착한 소년, 착한 소녀가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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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만들어지고 아이는 점점 독에 물들어간다, 그는 “나는 나쁘다, 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쁘다”라고 느끼게 된다, 놀고 있을 때에도 그는 잘
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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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어도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대는 “어디 아
프니?”하고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언제나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는 힘이 없고, 그대들에게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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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끊임없이 혼란을 느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차츰차츰 나쁜 것은 전부 거부하고 옳다
고 생각되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그는 가면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일생 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그 상처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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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때문에 내가 “있는 그대로 그대는 신이다”라고 말을 해도 그대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는 선하지도 않다, 그러니 어떻게 그대가
신이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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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궁극적인 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대에게는 기본적인 선조차도 없다,
어떻게 그대가 신일 수가 있겠는가? 그대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꾸짖는 어떤 다른 스승을 찾아갈 것이다, “너에게는 죄가 많고 너는 큰 죄인이다”라고 말해 줄 스승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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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옳다, 왜냐하면 그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를 비난하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대를 마치 벌레나, 더럽고 보기 싫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을 그대는 따른다, 소위 성자로 불리는 사람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대는 이러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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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사람을 비난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죄인들이다, 그리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그대의 생각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그대의 말에 동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대를 비난할 때마다 그대는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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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얼마나 난센스인가! 그리고 누군가가 그대는 위대하다, 나는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신은 이 방식을 선택한다, 그대 안에서 신은 이 방식을 선택한다, 이것이 그대 안에서 신이 존재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나는 그대의 어느 부분도 거부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의 섹스, 그대의 분노, 그대의 미움, 그대의 질투를 받아들인다, 나는 그대의 전체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때에만, 그대가 전체적일 때에만 ‘하나(one)'라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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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하나’는 그대의 질투, 그대의 분노, 그대의 섹스, 그대의 탐욕 그 전부를 초월한다, 아무도 탐욕을 변형시키지 못한다, 그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변형이 일어난다“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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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예수가 용서받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유태인들은 가장 큰 죄의 창
조자였던 것이다, 세상 모두가 그와 같은 일을 했다, 하지만 유태인들에 비
할 바는 못 된다, 유태인들에 의하면 세상에 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담과 이
브가 원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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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아담과 이브로부터, 그들의 죄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죄는 중심
개념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그대를 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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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회개하고, 그대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대가 착해진다면 그대는 신에게
로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대를 받아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대 모습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대는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버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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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복종이다, 그런데 하느님
은 왜 그렇게도 복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모든 아버지가 그렇
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주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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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왜 그렇게도 복종을 원하시는가? 조금 농담이라도 하는 여유를 보이면 안 되는가? 스스로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과 잠시 놀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을 조금만 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아담과 이브는 무엇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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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금지한 나무에서 단지 사과 한 개를 따먹었을 뿐이다, 하느님은
매우 이기주의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에고는 항상 복종에 집착하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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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내가 규칙이다, 복종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나의 에고에 상처
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에고를 가질 수 없다, 그는 복종을 주장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이야기를 창조한 것은 틀림 없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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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는 죄의식을 느낀다, 그대는 죄 속에서 태어났다, 그대는 태어
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다, 그대는 태생적으로 죄인이다, 그대에게 남은 일은
그대 자신을 갈고 닦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잘라내어 그대 자신
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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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는 그대가 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대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대는 죄인이 아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태도이다, 신은 그대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대는 신을 적대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은 그대에게 어떤 복수도 하지 않는다, 그대가 이것을 모른다면 그대는 스스로 고통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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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모른다면 그대는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힌두인
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대가 고통 속에 있는 것은 그대가 지식의 열매를 먹어서가 아니라 무지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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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지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그렇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잘못되어간다, 그러나 이것이 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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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종교는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지 도덕이나 덕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덕은 하나의 부산물이
될 것이다, 그대가 깨달을 때 덕은 따라올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같이 따라
올 것이다, 그대가 깨닫지 못하면 죄가 따라올 것이다, 왜냐하면 무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실수를 저지르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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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하나의 전통이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증명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름답다, 그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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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Christ)'라는 단어는 ’크리슈나(Krishna)'라는 단어의 한 형태
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 이야기이다, 인도의 벵갈 지방에서 ‘크리슈나’는 아직도 ‘크리스토(Kristo)'라고 불리우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슈나는 사람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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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는 그의 완전한 성취를 의미한다, 그것은 ‘붓다(Buddha)’와 같다, ‘붓다’는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도달하는 완전한 성취를 말한다, ‘붓다’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크리슈나’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세계의 중심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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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는 자석의 중심, 끌어당기는 사람, 모든 존재의 중심이 된 사람을 뜻한다, ‘그리스도’란 말도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리아는 그녀의 아들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을 때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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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중심이다,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은 나에게 돌아온다, 너희가 나에게서 멀리 간다면
너희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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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크리슈나’의 한 형태라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타에서의 크리슈나의 말이다, 그리스도의 말이 정확하
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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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에 대해서 그대가 이해해야 하는 세 번째 것은 베단타는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거부한다는 것은 곧 신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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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그대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잘라내야만 하고,
무엇인가를 내버려야만 한다, 지금의 그대 모습으로는 그대는 받아들여질
수 없고 환영받지 못한다, 그대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환영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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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는 그대가 현재의 모습 그대로 환영받는다고 말한다,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그대의 비참함의 원인이 되어
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그대를 이 세상 속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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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에서는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카르마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르마란 나쁜 것을 행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행한다는 뜻이다, 그대가 이것 혹은 저것을 하려고 너무나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그대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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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존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라,
무엇을 할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단지 그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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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는 무(無)도덕적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십계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그대에게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의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환영받는다고 말한다. 지금의 있는 그대로 그대는 좋으며, 아름답고, 진실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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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가 그대 자신을 거부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대 자신을 거부한다면 그대는 악순환 속에 있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하지만 향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대를 향상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대는 비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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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그대는 신이다, 어떻게 신이 향상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한다면 그대는 한 생에서 또 다른 생으로 옮겨
가야만 할 것이다, 그대는 향상시키고 또 향상시키지만 결코 향상되지는 않
는다, 그대는 언제나 같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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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같은 지점에서 조깅을 하는 것과 같다, 그대는 땀을 흘리고 숨이 가쁘기 때문에 빨리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자신이 빨리 달리고 있으며 어디엔가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대는 같은 지점에서 조깅을 하며 머물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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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삶 전체는 한 지점에서의 조깅이다, 그대는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갈 곳이란 없다, 그대는 향상되지 않는다, 향상은 불가능하다,
그대 내부에 있는 궁극적인 것은 보다 나아지지 않는다, 거기에 ‘더 나은’
또는 ‘더 좋은’ 것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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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베단타는 그대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대가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단지 그대의 내면을 바라보고 그대가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앎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아는 올바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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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는 돌이 되려고 배우는 것과 같다, 만일
다이아몬드가 더 좋은 돌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 생각이 바로 방해
물이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하는 모든 노력은 전부 쓸모 없는 일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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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가장 귀중한 돌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자기의
노력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그는 모든 노력을 중단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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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정신과 진찰실로 뛰어들어가서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요,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기
억력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한 일을 기억할 수가 없고, 오늘 아침에 한
말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요,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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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물었다. “언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언제부터 그런 증세가
생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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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당황했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증세 말입니까?” 그는 잊어버
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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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문제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잊어버렸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지 그대는 카르마를 만들어 낼 것이다, 카르마는 순환
이요 바퀴이다, 하나의 카르마는 다른 카르마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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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B로, B는 C로...... 이렇게 그대는 바퀴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바퀴이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카르마는
결코 그대를 해방시키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자유롭기 때문이
다, 그대가 이미 자유롭다는 사실을 납득한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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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에게 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하라 혹은 저렇게 하라고 말
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들에게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하고 시키는 것은 그들을 지치게 함으로써
어느 날엔가는 내게 와서 “나는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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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왔을 때 그대는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것을 해야만 한다,
만일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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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대는 완전히 있는 그대로 이미 신인 것이다, 이것이 베단타이다, 그것은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종교이다, 세상에
베단타주의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많을 수가 없다, 이 때문 에 베단타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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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대는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이미 브라마이다, 그대는 신이다”라고 한다면 그대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난센스처럼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 자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떤 목표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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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유사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주 극소수의 것들만이 다를 뿐이다, 달리 말해,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기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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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소란, 어떤 어린아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대도 한 어린아이였다, 그러면 즉시 사회, 부모,
어머니, 아버지, 형제 등 그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대를 더 아름답고, 더 도덕적이고, 좀더 낫게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는 옳지 않다, 무엇인가 되어야만 하며, 그때서야 그대는 받아들여질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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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린아이는 점차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좋은 일을 하면 받아들여지고, 나쁜 일을 하면 거부당한다, 순종하고 따르면 받아들여진다,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를 미워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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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배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이지 존재가 아닌 것이다, 옳은 일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할 것이다, 나쁜 일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거부하고, 미워하며, 화를 내고 반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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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 무언가 옳은 일을 하라, 그러면 세상은
그대를 환영할 것이다, 나쁜 일을 하라, 그러면 모든 문이 닫힐 것이다, 만일
어머니와 아버지의 문마저 닫혀 있다면, 그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아이
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면, 이렇게 이상한 세상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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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는 한 가지를 배운다,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옳은 일만 해야 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거부감을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나쁜 일은 언제나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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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나쁜 일이 되므로 나쁜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거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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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말한다, “나는 나쁘다, 나는 나쁜 아이, 나쁜 소년, 나쁜 소녀이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가 보통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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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만일 이런 기적들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만일 이런 기적들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유태인들은 흥분해서 그를 추종했을 것이다 죄는 실수와 같다, 그것은 마치 둘에다 둘을 더하고는 답을 다섯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이 죄는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둘에다 둘을 더 해 놓고 그것을 다섯이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그가 영원히 지옥에 던져지리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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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나의 실수이지 죄는 아닌 것이다, 그는 배워야 한다, 사물에 대하여
바른 시각을 얻어야 한다, 그는 수학을 모를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 -->
베단타는 그대는 단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그대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대가 깨달으면 그대는 신이 된다, 그대 말고는 신이 없다,
그대보다 더 나은 신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주의적인 주장은 아
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라고 하는 에고가 사라지고 그대가 전체가 될 때에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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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전체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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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쪼개보라,
거기에 내가 있다,
돌을 들추어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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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장 위대한 시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예수와 같은 사람은 철학자나 신학자, 혹은 수학자라기보다는 시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아주 시인에 가깝다, 그리고 그대가 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의 메시지를 완전히 놓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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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느 시인이 무언가를 말한다면 그대는 그를 용서해 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대는 ‘그것은 시일 뿐이니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어느 성자가 무엇을 주장하면 그대는 그것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
예수는 시인이다, 궁극의 시인이다, 그리고 궁극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다, 수학의 언어는 매우 좁아서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주
정확하다, 그래서 그것은 좁은 것이다, 시는 부정확하고 모호하지만 그 때문
에 그것을 통해서 많은 것이 말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그는 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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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인들은 절대로 깨달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들은 깨달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
그것은 분석할 필요가 없다, 분석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예를 들면
그대가 예수에게 가서 “좋다, 당신이 ‘나는 모든 것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전체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은 나에게로 돌아왔다’”라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입증해 보라, 태양을 보고 없어지라고 말해 보라, 아니면 오늘 밤에 또 하나의 달을 만들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믿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어리석다.
) -->
그대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그 말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시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 -->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끊임
없이 노력해 왔다, 그들은 예수가 돌멩이로 빵을 만들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내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어 고쳐주는 등, 이런저
런 기적을 행했다고 말해 왔다.
) -->
왜 그들은 그토록 예수가 행한 기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절대
로 붓다를 기적을 행하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가 기적을 행
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 -->
만일 누군가가 예수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기독교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 -->
기독교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기적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어느 날, 예수가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고, 장님을 눈뜨게 한 일이 없고, 문둥병자를 고처준 일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기독교 신앙은 즉시 사라질 것이다.
) -->
교회도 없어지고, 교황도 사라지며,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에게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에 의존하기 때문
이다, 이런 기적들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 -->
기적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사실 기적은 그것에 의해서 감동받는
사람들의 무지를 증명할 뿐,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내가 하는 한,
예수는 그러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기적을 행할
정도로 그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 -->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님이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육체의 눈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
그리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 그것은 시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그대들 같은 사람에 관한 것이다,
그가 죽은 사람들을 살린 것은 송장과 같은 존재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기적이다, 다른 기적들은 오늘날
과학에 의해서 어느 때고 이루어질 수 있다, 그날이 먼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러한 일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 -->
소련에서는 2차 대전 중에, 죽은 여섯 사람을 살려냈다,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 중 두세 사람은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이러한 일은 현대 의학에 의
하여 어느 때고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의학
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대들은 기적을 행하는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는 아마도 훌륭한 의사나 과학자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 -->
눈은 치료될 수 있다, 눈먼 사람들은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다, 육체가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들은 영적인 것, 내면의 존재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대들
은 장님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보
지 못하는 그대들이 도대체 무슨 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 -->
예수는 그대들을 눈뜨게 해주었다, 내면의 세계를 보게 해주었다, 그는 그
대에게 눈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
해야 한다, 그는 결코 돌로 빵을 만든 적이 없다, 이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
그러나 추종자들은 기적을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깨달음을 볼 수 없기 때
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크리슈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다, 그들은 오직 돌이 빵으로 변하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세상적
인 것만을 믿는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들
에게 증거가 된다.
) -->
그래서 그들은 깨달은 사람보다는 마술사를 따른다,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사람을 따른다, 그러나 모든 마술은 쓸데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마술은 오직 그대들의 무지만을 증명할 뿐이다, 마술사는 교활하며 그대를 이용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 -->
예수는 교활하지 않았다, 예수보다 순수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교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술사
가 아니었고, 그대의 무지를 이용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한번 생각해 보
라, 그가 정말 돌로 빵을 만들었고, 물을 술로 변하게 했는지를......
) -->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여인이 위스키를 백에 넣어가지고 다른 나라로 들
어가는 중이었다, 국경에서 심문을 받은 그녀는 백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가 말했다. “성수입니다.”
) -->
그러나 세관원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그가 물었다. “짐을 한번 봐야겠는데요, 성수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나 의심이 가거든요, 그냥 물이라고 하면 될 텐데 무슨 이유로 성(聖)자를 붙이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 -->
그래서 그는 짐을 검사했다, 그것은 위스키였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
) -->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오, 주님! 보십시오, 기적이 다시 일어났
습니다!”
) -->
예수가 물을 위스키로 변화시켰는가? 그가 죽은 사람을 살렸는가? 나사로가 그의 무덤에서 나왔는가? 앉은뱅이가 걷고, 눈먼 사람이 보게 되었는가?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기 시작했는가?
) -->
만일 이런 기적들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유태인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 못지 않게 물질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
만일 이런 기적들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유태인들은 흥분해서 그를 추종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더 물질적인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
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
그렇게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병들어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고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바로 기적을 행하는 인물이다, 죽은 사람을 살려 내고,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을 지폐로 만들어줄 정도로, 이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모든 유태 민족이 이 사람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 -->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기적을 일으켰지만 그 기적은 눈에 보이
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적은 일어났었다, 지금 그대들이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사
로는 죽었었다.
) -->
만일 내가 그대를 살려낸다면 그것은 나와 그대 사이의 개인적인 일일 것이
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 공표되지 않는다, 내가 그대를 그대의 내면 세계에서 살려낸다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대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
) -->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적은 일어났지만 그의
제자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현상이었다, 그들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아무도 그것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
) -->
102.모든 노력은 그대로 하여금
모든 노력은 그대로 하여금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
그들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적을
보았다,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 -->
이것이 바로 문제의 발단이다, 유태인들은 묻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보여달
라, 그리고 만일 그가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그리고 그가 그런 기적
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보자.
그리고 스스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해도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불사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그가 그러한
치료자라면, 우리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어 그에게서 피가 나오는지 안 나오
는지를 볼 것이다.”
) -->
이것은 제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들은 내면에서 일어난
일을 기적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예수는 온 나라의 초점이 되었 다, 그는 가짜처럼 보였고, 진짜 메시아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
들은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 -->
그는 두 명의 범죄자와 함께 죽었다, 유태인들에게 그는 그 두 사람과 똑같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로부터 어떤 빛도 내려오지 않았다, 땅도 흔들리지 않았고 지진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에서 하느님이 화를 내는 소리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도 하느님은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 -->
이것 때문에 유태인들은 예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가짜였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실험대였고 거기서 그는 자기가 하느님이 보낸 사람인지 아닌 지를 증명해야 했다.
) -->
그러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서도 역시 위대한 기적을 보았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놓쳤다, 그리고 유태인들도 그 첫 기적을 놓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언가 외부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이 사람을 잊어버렸다, 그는 사기꾼에 불과했다.
) -->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일어났던 내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만이 십자가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받아들였다, 이것이 기적이었다, 이
사람은 고통을 받아들였다.
) -->
이 사람은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
다, 그를 죽이고 처형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기도까지 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그 어떤 기적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것이었다.
) -->
예수가 한 마지막 말은 이런 것이었다. “하느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
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하지 마소서,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 -->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육신은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사 그가
소리를 지르고 저주하면서 “하느님, 저들이 당신의 아들에게 하는 짓을 보십
시오, 그들을 모두 죽여 주십시오!”하고 화를 냈다 해도 아주 당연한 일이었
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 -->
그러나 이것은 신성이었다, 십자가에서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을 증명하였다, 왜냐하면 순수한 자비의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의 자비를 파괴할 수 없었다.
) -->
그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였다, 그는 그대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비참한 순간에도 그는 그대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
기적은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 기적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는 마술사가 아니었다, 만일 그가 마술사였다면, 그리고 그가 정말로 돌을 빵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문둥병자를 고쳐주려고 노력했다면, 그는 높게 평가될 수 없다, 나는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 -->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라, 내적인 장님이나 내적인 문동병자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대는 아주 추하고 그 추함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토록 죄를 많이 가지고 있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질투가 많고, 근심이 있고......
이것이 바로 문둥병이다, 이것이 벌레처럼 그대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다, 그
대의 내면에는 상처가 있다, 예수는 그것을 치료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
인 일이다.
) -->
그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제자들조차도 나중에야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린다, 스승은 처음부터 그 상처가 치료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것을 제자들이 알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대개는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승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다.
) -->
예수는 말한다, “나는 전체이다,” 그대 또한 전체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
들이 알아야 하고 느껴야만 하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전체이
다, 그대는 모든 것의 근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대를 향하여 움직인다.
) -->
예수는 단지 그대를 대신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대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대는 한 알의
겨자씨이고 그는 울창한 나무가 되었다, 그는 그대에 대한 확신을 말하고 있
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전체이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대 또
한 전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대는 이미 전체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각
하지 못하고 있다.
) -->
그대의 비참함은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대는 더욱더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대가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정점까지 그대의 의식을 높여
야 한다.
) -->
그 순간 그대는 빛나게 된다, 그 어느 구석도 어두움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대의 모든 존재는 불타오른다, 그때 그대는 예수를 이해할 수 있고, 붓다를
이해할 수 있고, 크리슈나를 이해할 수 있다, 혹은 나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이다, 왜냐하면 모든 노력은 그대로 하여금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
예수의 이 말을 깊이 기억하라, 그대의 가슴속에서 언제까지나 고동치게
하라, 이 말을 통해서 그대의 씨앗은 흔들림을 견디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전체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 -->
나무를 쪼개보라,
거기에 내가 있다,
돌을 들추어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 -->
103.나는 불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요,
나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은
왕국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오라,
나의 멍에는 가볍고
나의 통치는 부드럽다.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의 입으로부터 마시는 사람은
나와 같이 될 것이며
나 자신은 그가 될 것이다,
그러면 감추어진 것이 그에게 드러날 것이다.
) -->
) -->
인간은 노예로 태어난다, 그리고 전 생애 동안 줄곧 노예로 남는다, 욕망과
육욕의 노예, 육신의 노예, 혹은 마음의 노예, 그러나 모두가 똑같다, 노예상태는 계속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대들의 생애는 노예 상태에 대한 기나긴 투쟁의 연속이다.
) -->
그리고 종교는 자유로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는 자유이다, 모든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노예 상태를 즐기고 있다,
계속해서 즐기기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 -->
완전히 자유롭게 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대
안에 하나의 결정체가 필요하다, 하나의 중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지금
그대 안에는 중심이 없다, 그대는 결정화된 존재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하나
의 혼돈일 뿐이다.
) -->
그대는 하나의 단체와도 같다, 그대는 결코 한 개인이 아니다, 때로 하나의 욕망이 강해져서 그 단체의 의장이 된다, 그러나 불과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의장은 사라지거나 추방당한다, 그러면 다른 욕망이 그대를 지배 한다, 그리고 그대는 그 각각의 욕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그대는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말한다.
) -->
섹스가 의장으로 앉아 있을 때 그대는 섹스가 된다, 분노가 의장으로 앉아
있을 때 그대는 분노가 된다, 사랑이 의장으로 앉아 있을 때 그대는 사랑이
된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이 이것 혹은 저것-섹스나 분노나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그대는 그런 것들이 될
수 없다.
) -->
그러나 그대는 의장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에 의해서
순간마다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의장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하나의 욕망이 잠시나마 충족되기만 하면 그것은 의장직에서 추방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욕망이 온다, 갈증, 배고픔, 요구 등이 의장이 된다, 그리고 그대는 모든 욕망들, 모든 노예 상태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 -->
이러한 자기 동일시가 모든 노예 상태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동일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대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자유란 육체와 마음 등 그대가 생각하는 어떤 것과도 그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그대들이 이해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이다.
) -->
즉 인간은 노예이며 노예로 태어난다, 무엇인가 충족시켜야 할 욕망을 갖고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우는
일이다, 그것은 그대의 일생 동안 남아 있다.
) -->
이것을 달라고 울고 저것을 달라고 운다, 아이는 우유를 달라고 운다, 그대는
큰 저택을, 자동차를, 또는 그 밖의 다른 것을 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운다,
그대가 죽었을 때에만 그 울음은 그치게 된다.
) -->
그대의 생애는 하나의 긴 울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는 숱한 고통이
있는 것이다, 종교는 그대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자유의 열쇠를
준다, 그러나 그대는 여전히 노예이다, 그럼에도 그대는 그런 노예 생활에
더 편리함을 느끼고 편안해 한다.
) -->
그리고 그대는, 자유는 주지 않고 오히려 그대에게 새로운 형태의 노예
상태를 부여하는 거짓 종교 속에 안주한다, 기독교, 힌두교, 불교, 회교 등
은 조직화된 현재의 모습으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감옥일 뿐이다.
) -->
예수는 자유이다, 모하메트는 자유이다, 크리슈나는 자유이다, 붓다는 자유이다, 그러나 불교, 회교, 기독교, 힌두교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들은 가짜이다, 그래서 새로운 노예 상태가 생겨난다, 그대는 그대의 욕망, 그대의 생각, 그대의 기분, 그대의 본능에만 노예인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에게도 노예인 것이다, 거짓 종교로부터 더 많은 노예 상태만 생겼을 뿐 그대의 내면에 있어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물라 나스루딘이 빚쟁이들에게 몹시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려 썼는데 그것을 갚을 깊이 막연했다, 그래서 그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 -->
그 변호사는 이런 제안을 했다. “나스루딘 씨,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가짜 장례식을 치르십시오, 당신이 관에 들어가는 겁니다,
온 마을에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십시요, 그리고는 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의 빚쟁이들은 당신이 죽은 줄 알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 -->
이 말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나스루딘은 자신의 가짜 장례식을 준비했다, 그는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었고 온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모였다.
) -->
첫 번째 빚쟁이가 아주 슬프게 작별을 고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그러나 아홉 번째 빚쟁이는 권총을 꺼내 들고는 외쳤다. “나스루딘, 나는 네가 죽은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쏘고 싶다, 그래야만 내가 조금이라도 만족하겠다!”
) -->
그러자 나스루딘은 관에서 뛰쳐나와 말했다. “그만두게! 갚아주겠네!”
) -->
그대는 죽음을 가지고 놀 수 없다, 죽음을 가짜로 만들 수 없다, 죽음을
속일 수는 없다, 가짜로 죽을 수조차 없는데 어떻게 가짜로 살아갈 수가 있
겠는가? 그대가 거짓으로 죽을 수 없다면 거짓으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불
가능하다.
) -->
그대는 그대의 주위에 더 많은 불행만을 만들게 된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수수께끼가 되어간다.
) -->
그대가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미친 짓은 더욱더 많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대의 가슴속에서는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원으로 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원을 찾아간 일이 있었는가?
) -->
그것은 가짜 종교이다, 자신이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 사원이라는 것 또한 노예이다, 의식은 노예이다, 성직자들은 그대의 약점을 알고 그대를 착취한다.
) -->
종교를 가지고 우리들은 아주 큰 게임을 하고 있다, 그 게임이란 자유로부 터 속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수나 크리슈나 같은 사람은 그대에게 속박 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에게 거짓된 삶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에
게 참된 것을 준다.
) -->
그래서 예수는 말한다.
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요.
) -->
그가 말하는 불이란 무엇인가? 그 불 속에서 그대는 남아 있지 못한다, 그대는 완전히 사라져야만 한다, 그대 속에 있는 군중은 남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대의 불행이었고, 비참함이었고, 고뇌였기 때문이다, 이 군중은 사라져야만 한다, 결정화된 중심 속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 -->
불은 하나의 연금술적인 용어이다, 결정화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불을 거쳐야만 한다, 금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고자 한다면 금을 불을 거쳐야
한다, 먼저 그것은 액체가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불순물이 걸러진 순금이 된
다, 그러면 그대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주조할 수 있다.
) -->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불을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일이 제자들에게도 일어난다, 스승은 불이다, 그대는 완전히 액체가 될 것
이고 모든 잘못된 것은 태워질 것이다, 순수한 것은 액체가 되어 하나가
된다, 이렇게 그대는 결정화될 것이다.
) -->
첫째로 스승은 불이다, 그리고 끝없는 신선함이 그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섭도록 뜨겁고 그것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성직자에게 가까이
가기는 쉽다, -그는 그대처럼 거짓된 존재이다, 거기에 아무 위험이 없으며
그대는 이것을 알고 있다.
) -->
의식을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대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예수에게 가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불 가까이로 가는 것이다, 그대
가 가까이 갈수록, 그대는 자신이 더욱 불타는 것을 느낄 것이다.
) -->
제자가 진실로 가까이 가면-용기를 가지고 점점 불 가까이 가는 것, 이것이
제자가 할 일이다 - 그는 용광로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 예수는 하나의
용광로이다.
) -->
그러나 그곳에서 나왔을 때 그 제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군중은 사라지고 이제 그는 하나의 다른, 완전히 다른 금속이 되었다, 기본 원석이 높게 변화되었다, 쇠가 금이 된 것이다, 그것은 변형되었다, 내가 변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만일 과거와의 연속성이 조금이 라도 있으면 그것은 변형이 아니라 수정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들의 상 태이다.
) -->
그대는 줄곧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자신을 수정하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부분적인 작업은 결코 혁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부분적인 작업은 그대에게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분적인 작업은 부분적인 작업일 뿐이다, 그대는 결코 변형되지 않는다, 어딘가 조금 변화되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인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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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체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그대가 작업한 새로운 부분은 오래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체가 그 부분을 흡수할 것이며
그러면 그것은 다시 낡은 것으로 되어 간다, 그대는 끝없이 자신을 개선시키
고 있지만 어떠한 개선도 그대를 종교로 이끌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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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개선이 아니다, 그대는 누구를 개선시키고 있는가? 그대 자신이 병이
며, 그대 자신이 바로 질병이다, 그대는 그 병을 개선시키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닦고, 칠하고, 거기에 가면을 씌울지도 모른다, 추한 것이지만 그렇게
추하게는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병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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