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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전, 하단전, 유체이탈, 제3의 눈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지학

상단전, 하단전, 유체이탈, 제3의 눈

柏道 2018. 10. 8. 19:08

수행

상단전, 하단전, 유체이탈, 제3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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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이 가능한 시간은 상단전에 氣가 얼마나 차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도 처음에는 5분에서 20 분 정도 였으나  요즈음은 두시간이나 경과 한 적도 있다. 단전호흡을 해본 사람은 약간의 준비만으로도 충분하다. 필자는 16초간의 호흡으로 준비를 했다.

 

단전호흡처럼 길게 호흡하면 오히려 방해 될 수도 있으니 4초나 8초 정도로 쉽게 하는 것이 좋다. 초침 소리에 따라서 하나, 둘 해도 좋고 다른 방법을 써도 괜찮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종교에서 사용하는 주문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귀신 부르는 주문 같은 것은 절대 사용하지 말기 바란다.


필자는 “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을 사용했다. 8초씩 16초간의 호흡을 했다. 단전호흡처럼 의식을 하단전에 두고 깊게 호흡하지 말고 상단전(미간)에 두고 배를 불룩이지 말고 편하게 하면 좋다. 그러면 5-10분이면 누구나 氣를 느낄 것이다.


氣의 가느다란 줄기가 머리 위에서 뚫고 들어와 미간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몸을 약간씩 흔들어 댈 것이다. 심한 경우는 몸이 심하게 요동 칠 것이다. 놀라거나 좋아할 일이 아니다. 단순히 기의 움직임에 몸이 동조할 뿐이다. 한참을 그러다 잠잠해지면 된다.

 

그러한 과정이 없어도 미간이 그저 묵직해 지면 준비는 된 것이다. 눈을 감고 준비 하는 동안  눈앞에 무서운 형상이나 기괴한 모습이 자꾸 나타나면 중지하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자기 바란다. 이때 억지로 행하면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호흡을 하며 준비하는 중에 눈앞에 녹색의 빛이나 청색의 빛이 보이면 충분히 준비 된 것이다. 이제 편하게 눕는다. 베개는 너무 높지 않게 목뒤에 받치고 팔 다리를 편히 뻗고 힘을 뺀다. 눈을 감고 의식을 상단전에 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자.


“하늘에서 기운이 내려온다. 내 두 눈 사이로 들어온다.” 이미 준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두 눈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들어올 것이다. 정신은 맑아지고 심신은 피로해져 잠이 온다. 이때 이렇게 암시하라.


“자! 이제 잠이 온다. 잠이 온다. 내 육신은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난다.” 이렇게 몇 번 되뇌면 잠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귀에서 -앵- 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때 다시 “일어난다. 일어난다”하고 강하게 외쳐라. 물론 소리는 내지 않지만... 그러면 순간적으로 이탈이 될 것이다.


처음 시도하더라도 십중팔구 이탈에 성공할 것이다. 이탈에 한 번 성공하면 당신은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서 이탈이 가능한 사람이 된 것이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를 만날 수도 있다. 불교인이라면 “석가”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이 불확실하면 안 된다.

 

“내가 하느님이다" 하고 길을 막는 놈이 있으면 모두 가짜라고 보면 된다. 예수를 만나고 싶은 사람 앞에 나타나 “내가 예수다”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 어떻게 진짜를 판별할 수 있는가? 만나 보면 알게된다.

 

당신은 유체이탈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헛소리를 하거나 환상이나 환각, 환청을 사실로 착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의 갈 길을 거부하고 구천을 떠도는지 알 수 있다. 유체이탈이 어려운 것은 절대 아니다. 유체이탈의 본질을 이해하기가 힘들뿐이었다.


당신은 이제 사물을 바로 보고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문 앞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그마한 나룻배로 먼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큰 바다로 가볼 수도 있고 바다만큼이나 넓은 호수를 가 볼 수도 있다. 연못에서 맴돌다 그칠 수도 있고, 물 빠진 개펄에 얹혀진 채로 무의미하게 앉아 있다 돌아올 수도 있다.
  

내가 육신을 비워놓고 없는 동안 딴 놈이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영은 자기의 육신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공통된 의문이 있어서 몇 자 더 적습니다. 상단전에 氣가 잘 모이지 않는다는 분이 계셨는데, 초심자는 이해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다시 설명 드리지요.


두 눈이 코끝을 바라본 채로 눈을 감습니다. 그 상태로 4초나 8초간의 호흡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초심자의 경우에는 두 눈이 자꾸 풀릴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바로 잡고 계속하면 됩니다.


이탈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기의 양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양미간이 묵직할 정도면 됩니다. 단전호흡을 해본 사람은 5분 이내에 가능할 것입니다. 초심자라도 30분은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러누운 상태에서 이탈하기 직전에 아주 강한 신념으로 “내 육신은 잠을 자고 나는 자지 않고 일어난다” 하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후배에게 몇 년 전에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전혀 준비 없이 실행 해보았는데 상체만 겨우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시도하십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이탈 중에 딴 놈이 육신을 점거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먼저 언급한 바도 있지만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으론 그렇습니다. 주위에 그런 분이 있으면 그것은 십중팔구 “업”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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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유체이탈의 실행 방법.

우선, 가위눌림 과정에서의 희미한 의식을 현재의 것처럼 또렷하게 갖도록 노력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잠이 들되 몸만 재우고 혼-정신을 바짝 차려 정신은 잠들지 않게 해야 한다. 말이 쉽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유체이탈이 가능하자면 우선 상단전(上丹田)이 발달해야 한다. 상단전은 눈과 눈 사이- 즉, 미간(眉間)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단전호흡을 해본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이 설명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수련은 특별하게 상단전만을 단련시키는 것은 아니다. 단전호흡의 조식 자세, 그 자체가 상단전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킨다. 특히, 양쪽 눈의 시선을 코끝으로 모으는 자세는 처음엔 조금 힘들기도 하고 자꾸 풀어지기도 하는데, 자꾸 하다보면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가 나오게 된다.

▣ 실행준비.

(1) 환경.

조용한 방이 좋다. 전화 벨 소리나 야채 장사의 확성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좋다. 요즈음은 대부분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데, 반드시 전원을 꺼두도록 한다. 진동으로 두어도 명상 시에는 아주 크게 들려 방해가 된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어려우면 모두가 잠든 밤에 실행할 수밖에 없다.

(2) 호흡과 명상.

호흡과 명상은 따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진다. 호흡에 열중하여 잡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 자체가 바로 명상이다. 말은 이렇게 쉽지만, 실제로 행하다보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방해를 한다. 억지로 생각을 지우려고 하면 더 심해 질수도 있으니 생각이 일면 그대로 두고, 눈앞에 헛된 영상이 보이면 그냥 바라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점차로 정리된다.

(자세)

허리가 꼿꼿해 지도록 엉덩이 밑에 방석을 두 장정도 받쳐주고, 몸과 벽 사이의 거리를 1미터이상 둔다.
기(氣)의 작용으로 몸이 흔들릴 경우 머리가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가부좌(結跏趺坐)든, 반가부좌(半跏趺坐)든 상관이 없고, 책상다리를 해도 된다. 눈을 감은 채 시선은 코끝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눈 근육이 아프고 시선이 자꾸 풀리지만 반복하는 동안 익숙해진다. 종래에는 이 자세만으로도 충분히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운전 중에 의식을 두정(백회)에 두기도 했다. 그러면 두정으로 들어오는 기의 느낌이 상당히 강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에는 의식하지 않고, 시선을 모으지 않아도 상단전에 기가 뭉쳐지는 느낌이 강렬해지기도 한다.

(호흡)

위의 자세로 호흡을 하는데 편하게 4초간씩 8초의 호흡을 하면 된다. 초침의 소리에 맞추어 하나, 둘, 셋, 넷, 세어가면서 호흡을 해도 되고, 기독교도는 “찬미예수” “성령 충만”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 한자씩 암송하되 한자에 1초정도씩 할당한다. 필자는 주로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암송하였는데, 4초간의 호흡이 너무 답답해서 8초간 16초 호흡을 하기 위해서였다. 길게 한다고 좋거나, 짧다고 기가 덜 모이는 것은 아니니 각자 편한 상태의 호흡을 하는 것이 좋고, 호흡은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약하고 가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호흡의 길이를 맞추어 가면서 하지만, 세월이 가고 경력이 쌓여가면서 종래에는 호흡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럽게 호흡(呼吸)을 하되, 호(呼)와 흡(吸)의 길이를 갖게 하고, 호흡에 몰두하여 잡생각을 떨어버리되 억지로 만들지는 말자.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하는 당사자의 목적이다.

이렇게 호흡을 하다보면 빠른 이는 10분 이내, 늦은 사람도 30분 이내에 기(氣)의 움직임이 느껴질 것이다. 약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상단전이 묵직한 정도일 것이며, 두정으로 들어온 기(氣)의 줄기가 미간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천천히 몸을 시계추처럼 흔들리게 할 것이다. 진동이 사람은 기의 흐름이 몸을 오뚝이처럼 마구 흔들어대거나 엉덩이까지 들썩거리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심한 요동이 기의 축적을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 마음 쓰지 말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氣)의 흐름에 몸을 맡겨버리면 된다. 이때, 놀라거나 기뻐하지 말고, 초능력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담담하게 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호흡에만 열중하면 된다.

기의 작용으로 어느 정도 몸이 흔들리다가 조금씩 약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즈음 되면 눈앞에 청색이나 녹색의 빛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없더라도 상단전이 무겁게 느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면 준비는 된 것이다.

(3) 이탈.

이제는 편하게 눕는다. 이때 코를 골지 않게 목뒤에 조금 얇은 베개를 받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의식을 상단전에 집중시키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한다. “자, 이제부터 나는 잠을 잔다. 그런데, 육신만 재우고 나의 정신은 잠을 자지 않는다.” 이렇게 되풀이 하다보면 미간이 서늘해질 것이다. 미간에서 바람이 이는 듯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에는 “기가 들어온다. 상단전으로 기가 들어와 가득 채워진다.” 하는 생각을 해보자. 하늘로부터 기의 줄기가 직접 두 눈 사이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없어도 상관은 없다.

그러고 있노라면 정신은 초롱초롱 맑아지는데, 거짓말처럼 잠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바로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잠이 다가오면서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눈앞의 광경이 회전을 하기도 한다. 이 순간이 육신은 현실에서 잠이 들고, 자신의 혼은 육신과 분리되어 죽은 자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다시 말하자면, 육신과 혼이 분리되는 순간이다. 분리는 되었지만, 누워있는 혼을 자신의 의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누운 채로 죽은 자의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세계에 존재하는 망령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우리는 가위 눌리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 “ 일어난다, 일어난다.”를 되풀이해서 강하게 자신에게 명령하자.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무서운 형상이 보이거나 분위기 자체가 무서울 수도 있다. 또 주변에서 무언가 왔다 갔다 하거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무서운 형상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잠재해있는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상이거나 환청이다. 누워있는 자신의 혼을 일으켜 세우면 그것들은 대부분 사라진다. 미처 혼을 일으키지도 못 했는데, 방문 앞에 산발한 여인이 칼을 물고 서있다거나, 무섭게 생긴 할머니가 노려보고 있다거나 어떤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이런 무서운 형상이나 분위기를 보게 되는 것은 우리 인간들 내부에 공포심이 본질적으로 잔재(殘在)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입력된 두려운 정보가 만들어낸 허상(虛像)이다. 미처 일어나기 전에 이런 것들이 보이면,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가, 내가 일어나서 보아야겠다. 잠시 기다려라.” 하고 으름장을 놓아도 괜찮다. 하지만 막상 일어서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지금은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의 실행은 참으로 두려웠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에게는 아들이 두 놈 있는데, 그놈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던진다는 각오로 덤벼든 것이다. 이상한 존재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내가 무섭다고 피하면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무식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러분은 나와 같은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나의 경험을 믿어도 좋다. 내가 공연히 여러분들을 죽음으로 인도하겠는가.

(이탈 후)

사람에 따라,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혼을 일으켜 세웠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거나, 둥실 떠 천장에 닿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 바로 잡을 수 있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그쪽에서는 입을 벌리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다. 입으로 말을 하지 않는데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곳은 죽은 자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절대, 현실로 착각하지말기 바란다. 자, 우선 전등을 켜 보자. 스위치를 눌러도 딸깍거리는 느낌이나 소리는 들리지만 불은 켜지지 않는다. TV 스위치도 작동하지만 화면은 깜깜하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만, 그곳은 이승- 즉, 산(生) 사람들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당신은 죽은 자의 세상에 들어간 것이다. 육신을 재워두고 혼만 빠져 나왔으니 당연히 죽은 자의 상태와 같은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명부(冥府)에 들기를 거부하거나 갈 길을 모르는 부류이거나, 급사(急死)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그저 생각 없이 구천을 헤매는 부류들이다. 옆에 아내나 남편, 자식 형제들이 숙면에 빠져있다면 분명히 자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자신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자신은 일어나서 그들을 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 자리에 누군가 누워있다면 호통을 쳐서 깨워 보라. 벌떡 일어나서 도망 갈 것이다. 혹시 죽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를 만나면 좋은 말로 타일러 명부(冥府)에 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단계까지 왔으면 임의로 유체 이탈이 가능해진 것이다. 필자가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 스스로 증명하여 지금부터 이루어질 그 공(功)과 깨달음은 모두 당신의 것이다. 불교도는 부처님을,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속적인 문제로 만날 수 없으며 해답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현실에서처럼 그쪽 세계에서도 가짜예수, 가짜 하느님도 만날 수 있다. 예수는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서 바른 길을 가르쳐 주었고, 당신의 약속대로 지금도 인간의 모습으로 명부를 관장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교회에서 말하는 형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그분(이런 호칭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적절한 것이 없어서 ..)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필자가 설명한 지금의 단계에 이르면 본인이 직접 느끼고 알게 된다. 당신이 올바른 마음을 갖고 있다면 쉽게 분별이 가능하다. 그리고 떠돌이 귀신들과 타협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여배우의 집에 몰래 잠입하여 훔쳐볼 수 없다. 거기서 발견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질의 망령들이다. 다시 한번 부탁하지만, 유체이탈의 능력은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 할 수 없으니 그런 목적이라면 상당히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깨달음과 종교의 참 의미를 알고자하는 올바른 생각과 목적으로 행(行)하여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이비 종교인이나 사기꾼으로 전락하여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말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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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동안 꿈도 아니며 그렇다고 뭐라 말할수 없는 이상한 경험을 한적이 수없이 많았다. 나중에 알아 본바 유체이탈이거나 또는 그 경계 비슷한 현상이었다. 초기의 유체이탈은 유체이탈이 되어도 본인은 몽중에 헤매이듯 꿈을 꾸듯이 그러한 현상과 어울려져 별의미 없이 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꿈은 더욱이 기의 흐름이 단전으로 회귀 할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어떻든 그것이 유체이탈의 현상임을 알고 그 현상을 몇 번인가 시도한 적이 있다. 드디어 2000.11.19일 새벽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다. 

잠은 막깨어서 잠이 들지 않고 있는 그러한 상태였고, 몸안의 기의 흐름이 위로 서서이 움직이면서 무엇인가 밀려나오는(그것은 내가 밖으로 나오는 그러한 느낌)것을 느끼면서 서서히 육체를 빠져나왔다. 방안은 어두워서 희끄무레한 사물들이 보이고(주로 흰색 계통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밖으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바로 밖으로 나갔으며 즉시 무엇엔가 빨려 올라가듯 공중으로 그대로 직선으로 올라갔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희끄무레한 무한한 공간이며 달리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손을 모으고 “하느님 나를 보호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한 없는 수행을 통하여 생과 사의 경계가 사라졌음을 아는 데 어떻게 이러한 약한 모습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웬지 걱정스러워 다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자 나는 무엇인가에 의해 빨려내려가듯 밑으로 내려왔다. 그때의 기분은 말 할 수없이 좋지않았다. 집에 돌아와 몸에 흡수되듯이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머리가 들들어갔을때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의 머리가 두개인 것을 느끼며 보는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어떻든 맑은 이성과 의식을 갖고 이러한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것이 이것이 최초이다. 다만 앞으로는 이러한 유체이탈의 시도를 함부로 하지 말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유체이탈후 그날 저녁 좌선수행시 상당한 피로를 느꼈다. 아마도 영체의 기가 그만큼 많이 소모되는 것 같았다.

유체이탈의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하루동안 상단전에 기를 많이 올려서 기감을 상단전 백회 또는 머리 전체에 많이 느끼게 한다.

2) 잠이 들기전에 자신의 수행중 느끼는 영체가 머리쪽으로 밀려나는 듯이 몇차례 노력한다.

3) 아마도 별일 없다면 밤새(본인의 경우는 새벽녘) 영체가 몸을 빠져 나오는 일이 생긴다.

다음에는 수행인으로써 결코 두려움없이 이러한 경험을 할예정이며 가능하면 일이 있을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다만 이러한 일은 좀더 오래있다가 할 예정이다.

전생에 나는 지금의 수행의 수준정도는 수행을 한 것 같다. 평생을 제대로 수행을 못하고 헤메이다가 천우신조로 바른 길을 들어선후 그저 3년에 채 못되는 지금 나는 무위의 수행의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 참으로 감사는바이다.

강원도 정선의 한운 씀


http://ytkil.com/mainpage.htm


4


단전의 위치를 설명할 때 보통 신체 밖의 부위를 얘기합니다만, 사실 그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가야하는것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하단전은 배꼽아래 3촌 정도 아래에 있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어서 위치를 알기 어렵습니다. 하단전은 그 보다 훨씬 더 등쪽으로 깊고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을것입니다. 상단전은 눈과 눈 사이라고 얘기하지만 좀더 깊은 곳으로 느껴집니다.

"몇센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못박을 수는 없고, 하단전처럼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다. 수련을 하면 당연히 어디인지 알게 될것입니다. 유체 이탈후에 망령들이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이탈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에서는 괴로움을 당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위눌림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지요.

죽은자의 세상에서 떠나 더 위의 세계로 가다보면, 길을 막고 괴롭히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그 단계 까지 가면 별로 어렵지 않게 물리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을 앞세우지 마시고, 수련에 힘쓰십시오.

호흡을 4초나 8초씻 하라고 하는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정신일도" 네 글자를 암송 하면서 내쉬고, "하사불성" 네 글자에 들이쉬면 4초간 8초 호흡이 되겠지요.

이때, 호흡을 의식적으로 크게하거나 배를 잔뜩 부풀려서는 곤란합니다. 몸이 긴장하지않게 아주 가늘게, 약하게 숨을 쉬십시오. 이와 동시에 촛점을 코 끝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유체이탈 자체에 목적을 두지말고 호흡을 열심히 하십시오. 눈이 풀어지면 바로 잡고, 자세가 흐트러지면 바로하고...

그렇게 호흡에 열중하다 보면, 몸안으로 기가 훓터 다니기도 하고, 몸이 마구 흔들리기도 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여러가지 현상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흔들리면 그대로 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놓고 계속해서 호흡에 열중하십시오. 그러다보면 잠잠해지고, 상단전 부위가 무거워 질것입니다. 상단전 부위를 가느다란 철사줄이 들어와서 이리저리 흔드는 현상을 맛볼수도 있을것입니다.

이때쯤 되면 눈 앞에 빛이 보이기도 합니다. 오색의 영롱한 빛이 환상처럼 나타났다가 뒤섞이면서 눈앞을 희롱 할 것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내버려두십시오.

그것도 잠잠해지고, 청색이나 초록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없다고 실망하지는 마세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것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수련을 하다보면, 버스나 전철안에서, 혹은 운전을 하다가도 생각만하면 백회로 기가 들어 오는것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상단전이 무거워 지지요. 심지어는 걸어가면서도 그 기운을 느낄때가 있을것입니다.

이정도가 되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80~90% 이탈이 가능합니다. 저의 지난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니 엉터리는 아닐것입니다. 먼저 준비를 많이 하십시오. 그래야 분별력이 생깁니다.


--------------------- [원본 메세지] ---------------------  


호롱불님 안녕하세요. 또 질문을 하네요..  저기 상단전이 눈과 눈사이 인가여?? 아님 눈썹과 눈썹 사이인건가여?? 그리고 상단전과 미간이 같은건가여?? 또 만약 유체이탈후에 령들이 저를 공격하면 어쩌죠?? 그러면 저는 그냥 그 공격에 맞기만 해야하나여?? 방어를 하거나 저는 공격할수 없는지요.. 제가 말하니깐 좀 무슨 게임 얘기 하듯이 얘기하게 돼었는뎅,, 휴,, 귀신이 예를들어 나의 목을 조른다거나 구러면 어떻게 하나요?? 또 호롱불님이 쓰신 유체이탈의 실행방법을 보니깐여.. 거기에 4초간 8초의 호흡을 하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슨뜻이죠?? 그리고 제가 유체이탈을 해도 바로 그냥 잠으로 들어가버려여 ㅠㅠ 왜이러져,, 옛날엔 막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이 들고 막 차가워 지고 그랬는데(죽은자에 세계에 닿을떄 그런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시네여..) 이젠 안그렇구 ㅠㅠ 어쩌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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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몽 06.02.16. 21:49

양쪽눈에 시선을 모으면 미간에 자극이 가죠..그 자극이 가는 이유는 눈으로 흘러가는 기운이 시선을 코끝에 모음으로 인해서 미간으로 흐르기때문입니다..따라서 시력이 떨어질수도 있습니다만 계속 수련하시다보면 원래 시력이 회복돼리라 생각돼고요..그리고 평상시에는 시선모으기를 자제하시는게 좋을듯하네요.. 

    

대소천 07.02.20. 15:17         

생각없음 상태로 양미간에 집중된상태로 몸이 이완되어지면 수면마비의 과도기로 접어들때도 있습니다. 시각이탈이나 유체이탈이 일어나지전의 상태를 경험하신듯하네요

    

대소천 07.01.22. 13:41 

연령토행은 저도 겸험이 없어 잘모르겠네요. 명상이나 하단전 기운을 모으는 상태에대해 제경험을 말씀드리자면 하단전에 의념이 가는것은 맞지만 임의로 단전으로 기를 끌어들인다는 생각을 가지면 의념이 기를 이끌게되어 자연적 기운을 얻기는 미약한것같습니다. 기를 모은다는 생각없이 몸을 이완하면서 단전만을 의식하면 기운이 흐르는것을 느낄수있을것입니다. 그 흐르는 기운을 통제하려 하지마시고 단전에만 의념을 두고 기의흐름을 지켜보시면 강한기운이 점차적으로 외부기운이 흘러들어오는것을 느낄수도 있을것입니다.

      

돌자 11.05.15. 08:47

의식이 소립자를 만들어 낸다는것..저도 동의 합니다..기수련이나 호흡수련을 보아도 의식이 있어야지 가능하지요..하단전으로 호흡을 하여도 실제로 산소가 그까지 내려가지는 않죠..산소는 폐에 남고 우리가 에너지,,샥티등으로 표현하는 보이지 않는물질(?)이 단전에 가게 되지요..상단전도 그렇고요..어떻게 사람이 인당으로 숨을 쉬겠습니까..의식이 그곳으로 감으로써..기가 상단전으로 가는것이지요..인도에서도 시바(의식)가 샥티()를 이끈다고 합니다..성경도 대부분 비슷하지만..다르게 해석하는곳들도 많습니다..불경도 마찬가지고요.."색즉시공공즉시색"도 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과 이해도에 따라 달리하는듯 합니다.


http://cafe.daum.net/oo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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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단전 호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제대로 배우지 않고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제 의식을 몸 속 어느 한곳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오래 하지는 않았는데 언제인가 부터인지 심장에 자꾸 의식이 가네요. 그래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답답해서 아무래도 상기병이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그래서 의식을 심장 말고다른곳에 둬야 할것같은데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전에 두는 방법은 좋은 스승님에게 잘 배워야 하는데 저는 사정상 그럴 형편이 안되서요. 신체 중에서 의식을 둬도 부작용없는 곳이 어디있나요?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한 대처법좀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건데 장난이나 제대로 알고 계시지 않는 분은 답변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제 생명에 걸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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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님께서 심장에 의식을 두는것은 매우 위험한것입니다. 기(氣)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의념한곳으로  움직입니다. 특히나 심장은 엄청중요한 우리몸의 장부입니다. 심장을 의념하지마시고 배꼽바로아랫에 있는 하단전을 의수 하시면 됩니다. 이때에 너무  머리가 징하도록 의식을 하시면 않됩니다. 의식하고 복식호흡하면서  잠시쉬었다가 하시면 되실것입니다. 무리하시면 기가 머리쪽으로 상기되곤 할것입니다. 이럴때 조심하셔야합니다. 또한 상기되어서 내려오지 못할때에는 걷는것이 최상입니다.  침을 놓을줄아시면 침이젤좋지요, ^^& 궁금한점이 있으시면 쪽지보내시면 아는대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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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호흡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면 의식하는 기가 모이기 시작하겠죠? 수련없이 호흡을 하는 분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기운을 위에 두는지 아래에 두는지의 부분일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운이 위에 떠있으면 상기가 되니 그 기운을 아래로 내려야 겠죠^^ 그래서 기운을 내리기 위해 의식을 아래로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단전은 배꼽 밑에 있는 하단전을 얘기하는 것인데 현대의학으로 보면 단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단전과 중단전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 의식을 두기 위해서 배꼽 밑에 3cm 그리고 그 안쪽으로 3cm에 풍선을 상상하고 호흡을 들이쉴 때 풍선이 부푼다고 상상을 하고 내쉴 때 작아진다고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기운을 내리기 위해서는 의식을 꼭 단전에만 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숫자를 100부터 거꾸러 쉬면서 그 숫자가 땅 밑으로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호흡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기운이 아래로 내려 가죠^^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 정도면 님께 도움이 되고 편안한 호흡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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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작성일 15-04-14 18:17 
58.239.95.235 오랜만올시다. 그런데 허...놀랍소이다 그려. 유체이탈이 뭔지 재대로 알고 말입니다. 박다함씨 당신이 말한것은 거의 95%정도 맞수다. 아래에 유체이탈이 뭔지도 모르고 주접떨떤 인간들 보며 비웃음만 흘렸었는데, 댁같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있군요. 일단은 박다함씨 주장은 거의 맞는데, 나머지 5%도 틀렸다기 보다는 미숙함으로 인한 부정확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수다.

5%부족한걸 본인 독사가 약간만 보충하겠다. 박다함씨가 말한 의식적인 컨트롤을 위해서 어떠한 수련이 필요한것 같다고 한것...그것은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 유체이탈을 하면서 그것을 다루는 테크닉을 알아가는것이다. 의식과 지성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기 보다 사고 과정이 육체를 뛰어넘는 또다른 페르다임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체가 가진 패턴으로 사고하는 버릇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것이다. 육체가 없는데 육체를 가졌을때의 습관은 남아있기 때문이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또한가지 나도 한때는 그 수행이란것과 유체이탈이 관련이 없는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더란것. 유체이탈을 할때 육체와 유체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어떠한 에너지가 있는 모양이던데 이것이 점점 소모가 되더란것이다. 유체이탈을 할때는 이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을 하고 하는것이 육체에 무리가 안간다는것. 바로 여기에 또다른 유체이탈의 방법이 있다. 특정한 수법으로 이 에너지를 과충전 시키면 유체이탈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것이다. 비유하자면 화학에서 들뜬 상태에 있는 물질은 안정된 상태로 가기위해서 에너지를  방출하려고 하는것 처럼 유체에 에너지가 과충전이되면 유체이탈을 통해서 이것을  방출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것 같다.

하지만...좀 다른 비법이 있다. 유체이탈을 한상태에서 특수한 요령으로 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여서 소모가 잃어나지 않게 하는 요령도 있고, 아에 방출자체가 잃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유체이탈은 본성을 깨우기 위한 훌륭한 방법이 될수도 있다. 유체이탈을 했을시 나타나는 현상들과 세계는 엄청나게 다양하다는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진동수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는데...어떻게 보면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는것과도 비슷하고 알고자 하는 대상과 관심이 가는 대상으로 이동할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루어이야기 하자면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대를 맞추는것과도 비슷하다. 특히나 이 의식의 진동수를 올리면 올릴수록 나타나는 현상은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물질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상태에서는 그것을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새로운 감각능력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러나 한가지 웃기는것은 육체이탈을 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어떠한것을 배우는것 보다 육체로 돌아와서 그것에 대해서 사색을 함으로서 얻어지는것이 더더욱 많다는것이다. 여기까지. 더 말하면 사이비들이 사기치는 밑천을 제공할것 같아서 이만합니다.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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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요해져가며 존재의 에너지가 준비가 되면..저절로 고요히 있으면 끌어당깁니다. 오쇼의 메세지는 잘 보진 않는데..자석처럼 끌어당긴다는 표현은 아주 멋지네요. 말그대로 양 눈을 끌어당겨버립니다. 눈감고 그저 고요하게만 있으면 자석처럼 고정시키지요.

미간쪽부근에서 눈을 당겨 고정시켜버리고... 호흡까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해서 이런 에너지이끔의 현상(눈의고정과 호흡움직임)이 강렬해집니다. 하나의 귀결점을 위해서요. 허나 에너지가 약하면 증상의 형태는 나타나는데 알멩이 즉, 힘이 문제가 되죠..

바톨로뮤가 말했듯이...에너지는 언제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추구합니다. 때가되면 이끈다는 것입니다.에너지가 충만한 존재는 저절로 임계치에 도달한 에너지들이 물이 흐르려하듯 고요히 있으면 진화를 위해 일을하려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http://cafe.naver.com/energyhealing/2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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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깨달음, 해탈, 각성, 사마디라는 것을 최근 2년에 5번 해보았습니다. 그에 따라 투시도 가능했습니다. 그때는 제3의 눈이 이마에 있었지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마에 있었습니다. 각성을 하면 이마에 눈이 떠 지는 느낌이 들었고 가끔가다 초능력이 일어날 때면 이마에서 눈이 깜빡거리는 느낌이 났으니까요. 하지만 며칠 전 저는 눈을 감고도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른쪽 눈만이 가능했으며 그것은 제3의 눈이 하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은 눈 가운데 바로 사이에 제3의 눈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마에서 마음대로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눈의 위치를 체외로 내보내면 신이 되는 것이 됩니다. 람타님이 바로 그분이시지요... 오쇼님의 말씀은 틀린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다보다 머리가 좋으신 분은 아실 것인데 사실 제 3의 눈은 영혼 그 자체 입니다. 손가락을 갔다 대었을 때 느껴지는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부위..말이죠..


깨달음이 뭔지 알고 싶으시면 제게 물어보시길 내가 옆에 왔어도 당신이 깨달음을 얻고 싶지 않으면 나를 지나칠 겁니다.. 최소한의 도움은 줄 수 있습니다. 이끌어 드리는 것이지요... 제게 쪽지를 보내도 됩니다...^^


http://cafe.naver.com/stasis/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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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명상법은 가장 강렬하고 빠르게 초능력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은 피타고라스가 행했다고도 하는 명상법인데, 모든 명상 수행자나 신비가들은 이 명상법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한 번은 거쳐간다. 왜냐하면 미간은 우리 인체 내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생리학적으로는 송과선(松果腺)이 있는 곳인데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여기서 결합된다고 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이곳을 지혜의 근원이라고 하며 상단전 또는 아즈나차크라라고 칭한다. 이곳을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아닌 제3의 눈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초능력이나 지혜와 같은 초이성적인 능력이 나온다고 수많은 신비가들은 말한다. 그들은 이것을 영안, 천안, 상상의 눈, 혼의 눈, 지혜의 눈, 시바(SIVA)의 눈, 탄트라의 눈 등으로 부른다. 신의 능력·진리·지혜·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을 통해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신비가들은 보통의 육안이 가시광선의 도움을 받아 물질의 형상을 보는데 반해, 이 제3의 눈은 물질의 배후에 존재하는 보다 정묘한 세계를 비추어 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3의 눈은 그 자체로도 빛을 내고 있는데, 이 빛은 주로 마음의 힘과 결부된 의지의 투사체다. 그래서 제3의 눈은 물질의 배후세계가 나타나는 수동적인 기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성취시키는 능동적인 기능을 갖기도 한다. 남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고, 물질세계를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뜻대로 어떤 일을 실현할 수도 있고, 지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으나 아직은 잠자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일깨워 활동시키는 방법은 오직 의식의 집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명상법은 의외로 잘 된다. 먼저 편안한 좌법으로 앉는다. 눈을 감고 두 눈썹 가운데서 5mm 정도의 윗쪽에 의식을 집중한다. 눈을 감은 상태로 눈동자를 위로 치켜 뜨기도 하나, 집중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듯이 모아진다. 눈동자보다도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머리가 아픈 듯한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으나, 계속 집중하고 있으면 두 눈이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모든 의식이 그곳에 집중된다. 이때 대개는 무겁고 기분 나쁜 덩어리 같은 것이 생기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이마 속에 나타나지 않고, 대개 암흑속에서 20-30cm 전방에 집중점이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명상법을 할 때 눈동자를 무리하게 모으려고 하거나,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두통이나 상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심할 경우에는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조용히 호흡하면 대개 사라진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으면 체위와 호흡을 하고 당분간 이 명상법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명상법은 강렬한 반면에 위험도 따른다. 그래서 심신이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 특히 혈압이 높거나 상기가 잘되는 사람 등은 절대하지 말아야 하며,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앞에서 소개한 수식관(隨息觀)은 심신의 안정과 질병 치유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으나, 이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요구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이 명상법을 하지 말고 수식관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으로 집중을 계속하고 있으며, 점점 마음이 가라앉고 어둠속에서 작은 별같은 빛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1-2초 정도 나타났다 없어지나 집중을 계속하면 수 분 동안 나타나 있다. 이 빛은 처음에는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으므로 집중을 강화하여 한 점으로 모으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집중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그 빛은 점점 커져서 계란 정도에서 얼굴 크기 만큼 커진다. 또한 점점 투명한 흰 빛으로 변해 간다. 이때에는 의지의 힘으로 빛을 보다 빛나게 하고, 크게 하며, 이 빛과 나를 일체화시키게 한다. 마치 빛 속으로 뛰어들 듯이 빛과 일체화시킨다. 그 때 머리 속은 빛으로 가득찰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제3의 눈은 의지의 힘에 의해서, 감각세계에서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일체의 현상을 영화의 화면처럼 빛의 스크린에 환영으로 전개시킬 수 있다. 이때 이 빛으로 자신의 내부를 비춰 본다.

 

이것을 요가 경전에서는 ‘미간을 응시하면서 자아의 낙원을 보라’고 한다. 즉 참 자아를 본다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전에서는 ‘미간에 시바신의 자리가 있다. 그곳에서 마음이 정지된 상태가 삼매이다. 거기에는 죽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이 명상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의 집중 이후에는 이러한 상태가 거의 무의지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명상법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명상법을 통해서도 이 과정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쳐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이 명상법의 수행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http://yoga.ool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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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의 종류와 개념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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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 요가 경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옮겨 봅니다.

 

"하타요가프라디피카" --위대한 반다

3.20 그리고 숨을 마신다음, 턱을 가슴에 바짝 붙이는 목반다와 항문을 수축하는 항문반다를 하고, 마음을 중앙의 수슘나 기도에 집중한다.

 

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괄약근을 왜 조여야(뮬라반다 mula Banda) 하는지를 생리적으로 이해하면 간단 합니다.

 

 요가 생리학에서 인체의 氣는 크게 세가지 상초(순환계,폐,심장),중초(소화흡수계,위,비장 등)),하초(생리,배설,대장,성기 등)를 각각 담당하는 '프라나","사마나", "아파나" 氣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프라나기는 위로 상승하는 성향의 기로 호흡을 담당하며, 아파나기는 아래로 하강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위로 뜨는 프라나기와 아래로 내려가려는 아파나 기를 동시에 몸안에 결합시키거나 저장하는 것이 호흡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 입니다.

 

 프라나기는 심장에 아파나기는 항문에 퍼져 있는데 하강하는 아파나기를 끌어 올리거나 몸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괄약근을 조이게 합니다.

 

 기의 흐름은 물리학의 기본적인 법칙처럼 위에서 아래로 고압에서 저압으로 흐르는 특성을 기본으로 하기에 프라나기가 위로 상승하기에 목반다((jalamdhara Banda,잘란드라하 턱을 당겨 가슴에 닿게하는 행법)를 하여 위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래로 하강하는 아파나기는 뮬라반다((mula,뮬라, 괄약근 조이기)"를 하게 됩니다.


 즉 숨을 마쉴 때 복강내의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때 위의 두 가지 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강내 압력이 높아지면 프라나 기는 위로 나가려 하고 아파나 기는 아래로 나가려고 하겠죠?


 그래서 숨 마쉬면서 뮬라 반다(괄약근 조이기)와 잘란드라하 반다를 하는게 맞으며 숨을 참을 때는 우디냐나 반다를 하게 합니다.


 이 세 가지 반다를 동시에 하는 것은 요가 중급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 가능하기에 나중에 기억하시고 일단 목반다와 항문반다를 생리적으로 잘 이해 하시고 요가 수련에 적용하시면 됩니다.
 

 최근에 인도 유학을 하고온 사람들 중 숨을 내쉴 때 괄약근을 조이라고 하는데 차라리 들숨, 날숨 모두 괄약근을 조이는 것이 더 바른 것입니다. 숨을 내 쉴때 사람의 의식은 이완이 되는 특성이 있는데 이 때 괄약근을 조이라는 것은 생리학의 기본을 무시한 입장 입니다.


특히 여성들은 下氣 체질이라 괄약근 조이기가 잘 되지 않습니다.


요가 체위(자세)를 할때 숨 마쉴 때나 숨을 참을 때는 반드시 괄약근을 조이도록 하고, 중급 이상의 단계에서 호흡 수련시에 반드시 알아야 하는 행법이기에 원리를 잘 이해 하시고 특히 일상 생활에서도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누울 때도 괄약근 조이기를 생활화 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람의 생명이 끝난 것을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항문이 열려있는지 여부로 판명하는 것도 아파나기가 다 빠져 나가면 항문이 열리게 되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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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7개의 차크라중 3번째 차크라인 마니푸라 차크라가 있다. 우리의 혈자리는 중완혈이다. 중완혈 이름의 "완"자는 사람 장기의 "위"다. 혈자리에는 상완 중완 하완이 있다. 그중 위의 한가운데라는 "중완혈"자리가 마니푸라차크라이다.

단전호흡을 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중 하나가 허기짐이다. 멍때리는 증상도 있고 어떤사람은 자꾸 슬퍼져서 울고 싶어 진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때 배고픔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어쩔때는 너무 배고파서 호흡수련을 그만하고 뭘 먹은 적도 있다.  내가 특별히 배고픔에 민감한 것은 젊었을 때 폭음을 해서 위내시경을 하면 지금도 붉은 반점이 많이 보인다. 출혈 흔적이란다. 그래서 위산과다가 되면 속이 심하게 쓰린다. 한때는 겔포스를 끼고 살았으니 참 한심했다.

호흡수련 초기에는 뭘 먹고 하면 안된다. 평소하던 흉식 호흡도 아닌 익숙하지 않은 복식호흡을 해야 하는데 위 안에 음식물까지 있으면 속이 거북해서 호흡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꼭 음식물 섭취전에 호흡수련을 해라. 배고프면 호흡수련에 방해되지 않게 아주 약간만 음식물을 섭취하고 해야 한다. (그래도 뭘 먹었으면 좀 셨다가 호흡수련 해야 한다)

호흡수련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서 엄청나게 허기진다. 이상하게 허기져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씌어 있다. 몸에 나타는 증상들을 인터넷에서 확인 하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

지금은 좀 진정이 됐지만 대주천을 하고 난후 초기 몇번을 돌리고 있을 때는 허기가 처음 보다 더 커졌다. 너무 배고파서 일부러 적당히 먹고 나서 호흡수련을 했다. 초기의 허기짐과 비교가 안된다. 수련이 어느정도 익숙해지면서 위에 음식물이 차도 호흡수련하는데 크게 방해를 받지 않는다. 물론 과식한 상태에서는 하면 안되겠지만 어느정도의 음식물 섭취는 수련에 방해가 안된다. 초보자는 절대 이렇게 하면 안된다. 해보면 안다. 숨도 잘 안셔지지만 체하는 것 같다.

이런 허기짐은 중완혈자리와 같은 마니푸라차크라가 계속 자극을 받으면서 생기는 증상이 아닐까 싶다. 호흡수련을 하면서 기가 계속 그  혈자리를 자극하니 위가 활성화 되어 위액을 끊이 없이 분비하지 않을까?

침도 결국은 혈자리를 자극하는 것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가 뭐라해도 이건 내 재미 있는 상상이다. 맞는 말인지 틀리는 말인지 그게 중요하지 않고 혼자 혈자리 놀이를 하는 것 중 하나다.

어제 저녁 수련과 오늘 새벽 수련을 하면서 심하게 오른쪽 겨드랑이 밑이 움찔거린다. 이따 퇴근하면 이자리에 무슨 경락이 지나가는지 찾아 볼 것이다. 슬쩍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체크 안하는데 지속적으로 확실하게 반응을 보이는 자리는 경락책에서 찾아 보곤 한다. 소소한 나의 재밋거리가 됐다.


[출처] 마니푸라 차크라와 중완혈 | 작성자 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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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요가(Hatha yoga)는 단지 육체요가가 아니다. '하(ha)'와 '타(tha)'는 몸에서 두 가지 다른 힘을 나타내는데, 태양 또는 생명력과 달 또는 정신력이다. 이러한 두 가지 힘의 균형이 하타요가의 목적이다. 태양 에너지는 교감신경계 활동과 관련되고 달 에너지는 부교감신경계 활동과 관련된다. 이러한 두 흐름은 생명력, 에너지, 몸의 건강 그리고 감정, 정신을 조절한다. 육체 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영적 건강을 획득하기 위한 두 가지 힘의 조화가 하타요가의 목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타요가는 샤뜨까르마(shatkarma)로 시작하는데, 그러한 특별한 수련의 목적은 몸과 내부시스템의 정화와 해독을 돕기 위한 것이다. 몸의 해독으로 몸의 내부 시스템은 통제되고 불규칙한 생활방식, 불규칙한 음식습관 그리고 일반적인 불규칙한 습관 때문에 몸 내부에 발생한 부조화는 극복된다.

첫 번째 세가지는 샤뜨까르마는 네띠(neti), 다우띠(dhauti), 바스띠(basti)다. 그들은 머리,위장,내장을 깨끗하게 한다. 정화는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고, 한번 독소가 제거되면, 몸은 에너지와 건강을 얻는다.

다음 세가지 수련은 나울리(nauli), 까빨라바띠(kapalabhati), 뜨라따까(trataka)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에너지 구조를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울리는 태양신경총 또는 쁘라나 샥띠의 원천인 마니뿌라 짜끄라에 있는 에너지 센터를 활성화한다. 마니뿌라 짜끄라의 활성화는 나울리 끄리야로 발생한다. 두 번째 수련은 까빨라바띠로 쁘라나야마(호흡법)가 아니라, 뇌의 죄반구와 누반구의 균형을 초래하는 수련이다. 까빨라바띠 수련은 이러한 두 뇌 반구의 기능을 균형잡는데 도움이 되고, 그래서 대뇌활동에 평정과 조화를 초래한다. 다양한 파형이 베타, 알파, 델타 그리고 세타파의 형태로 생성된다. 여섯 번째 수련은 뜨라따가로 흩어진 에너지를 모으고, 그들을 몸 안의 에너지 센타로 집중시키며, 잠자는 에너지 센타를 열고 각성시킨다. 이것이 하타요가의 시작으로 샤뜨까르마는 하타요가의 첫 번째 수련을 구성한다.


[출처] <미셀 요가> 샤뜨까르마 (6가지 정화) | 작성자 미셀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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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 

반다는 속박, 함께 모으는 것, 족쇄, 붙드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의 어떤 조직이나 부분이 수축되거나 조절되는 자세이다. 프라나야마의 수행으로 프라나가 요가 수행자의 몸 안에 흐르도록 만들어질 때 쁘라나의 분산을 막고 다른 부분에 해를 미치지 않고 정확한 부분에 그것을 옮기기 위해 반다들을 써야한다.

1. 잘란다라 반다 - 목과 목구멍은 수축되고 턱은 흉골 맨위의 쇄골 사이에 있는 V자 모양의 가슴에 놓여지게 된다. 심장, 경선, 뇌를 포함한 머리로 흐르는 혈액과 프라나를 조절한다. 잘란다라 반다 없이 프라나야마를 행한다면 즉시 심장, 안구, 귓속에 압박이 느껴지고 머리는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2. 욷디아나 반다 - 횡격막을 흉부까지 들어올리고 복부 기관을 척추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욷디아나 반다를 하는 동안 큰 새로 표현되는 프라나는 척추 안쪽에 있는 신경 에너지가 흐르는 주요 통로인 수슘나 나디를 통해 상승하게 된다. 반다 중에서 최상의 것이다. 이것은 단지 숨을 내쉰 뒤의 바야 쿰바카 동안만 행해져야 한다. 숨을 완전히 내쉬고 나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전에 행한다. 이것은 횡격막과 복부 조직을 단련시킨다. 숨을 완전히 들이마시고 내쉬기 전의 멈추는 시간인 안타라 쿰바카 동안에 행해져서는 안된다. 이때 행하면 심장과 횡격막을 긴장시키게 되고 눈은 부을 것이다.  

3. 물라 반다 - 물라반다는 항문과 음낭 사이의 부분이다. 이 부분을 수축시킴으로 그 기운이 아래로 향하는 아파나 바유는 가슴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프라나 바유와 합쳐지기 위해 위로 흐르게 된다. 물라반다는 우선 들이마신 뒤의 지식인 안타라 쿰바카중에 행해져야 한다. 배꼽과 항문 사이의 하복부 부분은 척추 쪽으로 수축되고 횡격막 쪽으로 끌어올려진다.

무드라 

무드라는 인간의 몸에 있는 아파나라고 하는 음성적인 힘을 각성시켜 주는 방법이다. 인ㆍ도장ㆍ무도ㆍ상징적 언어ㆍ제의 등 다양한 말로 표현되고 있는 무드라는 옛날부터 수행의 전통에서 영적인 치유와 진화에 특별히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사나는 신체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반면, 무드라는 위치ㆍ근육의 잠금ㆍ손 모양 등의 심정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우주의 진리를 담은 것이 인체라면 그 인체의 축소판을 우리는 손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손의 각 부분들은 자극, 그에 상응하는 주요에너지 센터와 내장 기관들이 움직임을 활성화함으로써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쁘라나의 순환을 원활케하는 무드라 동작들이 많이 있다. 쁘라나에는 선과 악이 없지만 그 쁘라나를 사용하는 자가 어떤 목적과 마음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에너지의 쓰임새가 달라지기 때문에 무드라의 수행에는 마음의 정화 또한 필수적이다. 이 무드라의 종류에는 스물한 가지가 있다, 마하, 나보, 우디야나, 쟈란다라, 무라반다, 마하반다, 마하베다, 케쨔리, 비파리타카리, 요니, 바쥬로니, 사크티 짜라니, 타다기, 만두키, 샴바비, 판챠다라나, 아슈비니, 파시니, 카키, 마탕기, 부후쟝기니 등이다.


반다 Bandha


반다(Bandha)는 ‘속박’, ‘함께 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인체의 어떤 조직이나 부분을 수축시키거나 조이는 자세이다. 반다를 통해서 쁘라나의 흐름은 통제하고 제어되며 조절된다. 반다는 Pranayama(호흡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흡수행으로 쁘라나가 요가 수행자의 몸 안에 흐르는 동안 반다는 이들의 분산을 막고 정확한 부분에 쁘라나를 옮기게 된다. 만약 반다를 행하지 않으면 쁘라나는 곧 소실되고 만다. 따라서 효과적인 호흡을 통해 생명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미리 반다에 숙달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호흡법을 위해 주로 중요시되는 잘란다라 반다(Jalandhara bandha), 우디야나 반다(Uddiyana bandha), 물라 반다(Mula bandha)가 있다.


무드라 Mudra


무드라는 ‘인(印)’, ‘도장’, ‘봉인’, ‘상징적 언어’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몸의 자세나, 특정한 손 모양, 눈동자의 위치는 어떠한 형상과 의미에 대한 상징으로서 보여지는 의식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무드라의 어떠한 자세는 각각에 특별한 상징과 의미를 가진 상태로 수행자의 의식을 분명하게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어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는 어떠한 무드라를 지속적으로 취했을 때 그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상징적 요소가 수행자의 뇌와 마음과 영혼을 자극하여 그에 따른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무드라는 ‘상징적인 언어’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겠다. 따라서 언어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 못하는 내면의 소리나 우주의 본질적인 것들, 시공을 초월한 진리에 대한 의사표시에 대해 무드라는 언어를 초월하는 동작을 행하였던 것이다. 교회나 성당, 절에서 볼 수 있는 신상들의 다양한 손 모양과 일정한 형태의 몸짓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요가에서 체계화 되어진 다양한 무드라 행법들의 실천은 육체적 질병의 치유는 물론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 등의 심리적 요인의 질병에도 효과가 있다. 나아가 영혼의 진화와 성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드라와 반다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것이 있습니다.

무드라 Mudra

 
1) 즈나나 무드라와 친 무드라 Jnana Mudra & Chin Mudra
2) 삼바비 무드라 Shambavi Mudra
3) 부차리 무드라 Bhuchari Mudra
4) 아고차리 무드라 Agochari Mudra
5) 부장가니 무드라 Bhujangani Mudra
6) 까끼 무드라 Kaki Mudra
7) 요니 무드라 Yoni Mudra
8) 요가 무드라 Yoga Mudra
9) 비빠리따 까라니 무드라 Viparita karani Mudra


반다 Bandha


1) 잘란다라 반다 Jalandhara Bandha
2) 우디아나 반다 Uddiyana Bandha
3) 물라 반다 Mula Bandha


반다의 뜻을 알아보면 영어의 "band"에서 즉 "묶는, 묶다"와 같은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로 "bandha"로 표기 됩니다. 하타요가나 쿤달리니 요가의 호흡법에서는 이 반다는 굉장히 중요한 행법 입니다. 반다의 종류로는 "목반다(jalamdhara,잘란드라하)"," 복부반다(uddiyana,우디야냐)", "항문반다(mula,뮬라)"의 세 반다가 있습니다. 요가 생리학에서 인체의 氣는 크게 세가지 상초(순환계,폐,심장),중초(소화흡수계,위,비장 등)),하초(생리,배설,대장,성기 등)를 담당하는 '프라나","사마나", "아파나" 氣가 있습니다. 호흡 수련 중 세가지 기를 반다를 통하여 인체 내에 저장하는 행법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행법입니다. 이 세 반다는 숨을 마시고 참으면서, 목반다는 턱을 당겨 가슴에 붙이며, 복부반다는 하(복부)단전을 수축시켜 대장을 위로 끌어올리며, 항문반다는 괄약근을 꽉 조이는 것으로 마신 숨이 빠져 나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세 반다 모두 동시에 행해야 하는 행법 입니다. 이 행법은 일반인이 혼자서 익히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부작용도 있을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요가원의 강사에게 지도를 받는게 좋습니다.

http://cafe.daum.net/yaga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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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푸라 차크라(manipura cakra)
‘마니’(보석) + ‘푸라’(도시) = ‘보석의 도시’
생명 에너지를 분배해주는 에너지 센터
위치 : 배꼽(중완) 바로 뒤, 태양신경총과 관련

⊙ 프라나와 아파나의 결합
상초(上焦, 프라나)와 하초(下焦, 아파나)가 중초(中焦,사마나)에서 결합된다.
부정적 상태 : 허약한 몸, 삶의 동기 부족, 허무감, 분노

⊙ 마니푸라 차크라의 각성을 위한 수련법
태양신경총 자극 자세 (복부 운동, 보트 자세)
우디야나 반다 (복부 조이기)
복식 호흡, 싯탈리 호흡법


https://blog.naver.com/42yoga/22072886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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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이란 어떤 특정한 부위의 중심을 말합니다. 예를들어 상단전은 머리부위의 중심을 말하고, 중단전은 가슴부위의 중심이고, 하단전은 복부의 중심을 말합니다. 특히 하단전은 복부의 중심과 동시에 인체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태풍과 회오리바람 같이 소용돌이의 중심이 강력한 파워를 나타내듯이 중심이란 특정부위의 가운데로 에너지가 집중되는 현상입니다. 인체도 마찬가지로 단전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으면 기운이 소용돌이 치며 단전이 열리게 됩니다. 단전이 열리는 소용돌이 현상은 주로 진동과 강한 열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자발공은 단전을 비롯한 전신의 막힌혈도를 진동과 회전을 일으켜 열어가는 수련입니다.

본원에서는 하단전을 열기위해서 하단전쪽에 의념을 집중하는 수련, 즉 원심공과 원심호흡 등의 수련법을 전수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단전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축전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기치유를 하는 치유사들은 필히 하단전을 열어서 외기와 내기를 축기시켜 치유행위를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유사의 에너지 고갈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http://www.mediaura.co.kr/medi_system/view.php?bbs_id=bbs_3&page=&doc_num=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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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요가수트라와 같은 경전은, 일상 생활을 벗어나 특정한 스승 곁에 머물면서 오랜 시간 동안 집중된 수행과 공부를 하는 가운데, 스승으로부터 개인적인 가르침을 들으면서 이해하는 경전이었다.

본래 요가라는 말은 종교적 수행과 삶 그 자체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 전통적인 인도 사상의 범위 내에서 생산된 문헌적인 자료 중심으로 엮어내는, 학술적인 관점의 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장시간의 집중된 요가수행에는 반드시 일상생활의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가 수반된다. 그 말은, 현대에 유행하는 요가에서처럼, 단순히 건강이나 마음의 안정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식으로, 혹은 하나의 심리 기법으로서 접근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현재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요가와는 달리, 150 년 전만 해도 요가는 인도의 숲속의 고행자들이 공부하고 실천하는 종교적 수행이었다. 서양에서 요가가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5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불교 수행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로, 요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불과 이십여 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요가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요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주로 건강과 미용에 치중되어서 자본시장의 상품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시대가 변했다. 서점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요가만이 아니라, 각종 수행 전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해설과 정보에 의지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요가 수행을 비롯한 각종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늘어났다.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다양한 취지의 단체들이 생기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적인 문제들을 인식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성학자들의 말대로, 물병자리 시대Aquarian Age가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공유되는 많은 정보와 각종 수행단체들이 제공하는 지침과 수행기법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들까지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보와 요가 수행 그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킨다.

에너지는 생각을 따른다Energy follows thought.”

 

이 말은 에너지는 관심 또는 집중을 따른다라는 말로 바꾸어도 의미가 통한다. 집중을 하는 곳으로 에너지는 흐른다. 특정한 신체 동작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그 부위로 에너지는 집중적으로 흐른다. 심신의 모든 질병은 에너지의 지나친 과잉 또는 부족으로 생긴다. 요가에서 행하는 아사나의 유익함과 위험성이 거기에 있다.

 

지혜롭게 에너지를 부족한 부위에 집중시킴으로써, 에너지 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면, 유익한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필요이상으로 집중되면 과잉상태가 되어 그 부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 이상의 존재다. 그 말은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라는 유기체는 거의 모든 영역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육체의 거의 모든 생리 작용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건강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숨을 언제 쉬어야할지, 심장을 어떻게 뛰게 할지,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통제하게 된 것이 현재의 우리 육체다. 현대의 발달한 스포츠 활동은 인간이 육체를 통제할 수 있는 고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DK대사는, 현대의 인류는 더 이상 육체적 수행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과거의 인류는 하타 요가를 통해서 그 당시에 이룰 수 있었던 영적 목표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그 시기를 오래 전에 지났고, 이제는 아스트랄체의 통제와 멘탈체의 발달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타 요가를 집중적으로 행할 경우, 인간의 영혼은 더욱 더 육체에 속박되게 된다. 자신을 육체적 존재로서 동일시하는 것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대다수의 인류는 아스트랄체가 매우 발달된 단계에 있기 때문에,

집중된 하타요가를 통해서, 강하게 유입되고 있는 아스트랄 차원의 에너지까지 육체에 과도하게 집중된다. 육체는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과잉 상태에 처하게 되어, 나중에는 육체의 질병으로 발전한다.

아사나를 행하는 초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집중됨으로써 신체의 건강과 활력을 경험하게 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일차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육체적 욕구의 증대와 육체에 대한 집착이다. 요가 본래의 영적 성장이라는 목표에서 그 만큼 멀어지게 된다. 육체에 대한 집착은 어느 선을 넘으면, 과도한 에너지의 유입으로 인해서 육체 자체의 붕괴 현상으로 이어진다.

 

성인들이 육체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 이유 중의 하나가 거기에 있다. 육체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육체의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균형 잡힌 섭생과 절제 있는 생활 습관을 실천하는 것은, 육체의 건강을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들이라고 가르쳤다. 거기에는 반드시 감정의 절제와 분별력의 함양이라는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 더해진다.

http://theosoph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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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언젠가 인도에 가게 된다면, 많은 사두와 요기들의 배가 유난히 불룩 나온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대는 거의 모든 부처상, 성자상들이 장구통배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비전가(秘傳家)에게 있어서 둥근 배는 힘과 능력의 표시이다. 그것은 그가 오랜 기간동안 특별한 호흡수련을 한 결과 쌓이게 된  영적인 축적의 표시이다. 호흡을 길게 하는 수련은 신체중 배를 발달시킨다. 왜냐하면 비전가로 하여금 질병을 치유하고 해로운 영향들을 분해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특별한 성분들이 저장된 곳이 바로 거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룩 나온 배는 물질적인 생활방식 아니면 영적인 생활방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먹고 마시고 자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그의 비만은 나쁜 징조이다. 그것은 그가 거칠고 물질적이며 육욕적인 사람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순수하고 투명하고 지성적인 사람이 뚱뚱하다면 그것은 그가 타인을 치유하고 선한 행위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쩍 마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을 보라. 그들 중에는 엄청나게 큰 배를 갖고 있음에도 매우 유연하고 강하고 지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말하는 하라 센터를 계발시켰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배꼽으로 부터 4센티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일본어로 하라는 ‘배’를 의미한다. 그대들은 모두 하라키리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배를 갈라서 자결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현인들에 따르면 하라는 인간의 생명 센터, 중심, 우주 센터이다. 만일 그곳에 의식을 집중하여 충분히 계발시킨다면 우리는 피로를 모르고 굉장히 강해질 것이다. 하라센터를 계발시키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매우 균형을 잘 잡는다는 점이다. 우리시대의 전형적인 많은 문제들은 삶의 균형을 상실함으로써 온다.

 

특히 서양인들은 그들의 중심, 그들의 생명센터에 대한 집중을 상실했다. 대신 인간의 원주(圓周) 상에 있는 머리가 중심의 지위를 빼앗았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 걱정, 과도한 두뇌활동은 우리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신경체계가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쉽게 균형을 잃고 회복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심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심이 정상적으로 작용한다면 그 상태를 치유시켰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만일 하라 센터에 집중하고 정확히 그것을 계발하는 법을 안다면 신경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서구인들의 경우 문제가 있다. 오랫동안 그들은 육체의 하부에 있는 힘 센터들은 영적인 삶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센터’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거의 최고의 센터, 신, 최초의 원인 등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육체에서 인간의 진정한 센터는 배꼽 바로 밑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 왔다. 그대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대들은 이 센터를 뚫고 탐험할 준비가, 이 센터를 계발시키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 존재의 근원을 발견할 준비가 되었다. 그대는 그대 존재의 근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자주 그대에게 해왔던 말이 있다. ‘파라! 당신 자신 밖에서 또는 표면에서 해결책을 찾지 말라. 파라. 깊이 파라. 그러면 당신은 황금과 석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징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파야할 곳이 바로 여기임을, 무의식 속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라 센터는 많은 비교(秘敎)서적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종종 매우 상이한 방식들을 통해서이다. 유명한 연금술사 바실르 발렌틴은 그의 책 ‘12개의 열쇠’에서 철학자의 돌을 찾으려면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시타(Visita) 인테리오라(interiora) 테라에(terae), 렉티피칸도(rectificando) 인베니에스(invenies) 오쿨툼(occultum) 라피뎀(lapidem), 베람(veram) 메디키남(medicinam)’

 

그 의미는 이렇다.

 

‘지구의 중심을 방문하라. 만일 당신이 바로잡는다면 숨겨진 돌, 진정한 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 라틴어의 앞 문자들을 취하면 VITRIOLUM(황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물론 발렌틴의 말은 실제로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 속, 우리 자신의 중심 속으로 내려가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온갖 보물과 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신은 브라마, 비쉬누, 쉬바이다. 힌두 경전에 따르면 브라마는 배에, 비쉬누는 가슴에, 쉬바는 두뇌 속에 산다고 한다. 어째서 창조자 브라마는 배 속에 산다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만일 배가 저급한 곳이고 두뇌가 귀한 곳이라면 힌두의 신비가들은 브라마를 두뇌에 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두뇌에 연결된 것은 바로 쉬바이다.

 

왜냐하면 쉬바는 위대한 파괴자이기 때문이다. 브라마는 창조자이고 비쉬누는 유지자이다. 비쉬누가 수리하고 지탱하고 양육하는 자인 반면 쉬바는 파괴자이다. 쉬바가 두뇌와 연결된 것은 두뇌(즉 저급 멘탈체)가 실체를 나누고 분석하고 분해시키기 때문이다. 인간들을 하나하나 나누고 오류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두뇌이다.

 

아기가 잉태되고 발육되는 곳은 바로 배 속이다. 따라서 배는 인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에는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 전혀 없다. 분명코 생명은 자신이 잉태될 곳으로 부끄러운 장소를 선택하지는 않았을테니! 만일 우주 지성이 이 장소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이 장소가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그것을 하시해야 하는가?

 

생명이 자신의 발생지로 그곳을 택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산모가 태아를 배고 있는 곳도 배 속의 자궁이지만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양분을 끌어오는 곳도 배 속이다.

 

러시아인들은 태양 신경총과 하라 센터를 포괄하는 부위에 대한 용어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보트(jivot)이다. 불가리아어로 지보트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맞다. 이곳은 생명의 근원이다. 이곳으로부터 생명은 다른 기관들로 방사되어 퍼져나간다. 따라서 두뇌 또한 이 센터에 의존하여 그로부터 생명을 끌어온다.

 

나무를 예로 들어 보자. 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뿌리이다. 그것은 땅 속 밑에 감추어져8  보이지 않는다. 하라 센터와 태양 신경총은 우리의 뿌리이다. 따라서 우리가 뿌리 속으로 내려가 그 본질을 본다면 거기서 우리는 지극한 풍요와 다양한 원료와 에너지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광산, 고갈되지 않는 원천을 말이다.

 

배는 생명이 창조되는 곳이다. 그렇다. 거기에 생명의 근원이 있다. 심지어 복음서에서도 이렇게씌어 있다. ‘그의 배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어째서 배인가? 어째서 두뇌나 폐가 아닌가? 도대체 신체의 이 부위(배)가 뭐 그리 특별해서 생수가 그곳으로부터 흘러난다는 것인가? 그것은 왜냐하면 브라마, 아버지, 창조자가 거기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를 체험하고 그와 교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는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존재로부터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히 쉬바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도에서조차 브라마에게 봉헌된 신전은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비쉬누 신전들이 더 많고 그보다 더욱 많은 것은 쉬바 신전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쉬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는 파괴자이다. 따라서 그를 달램으로써 자신을 그의 파괴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면 브라마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창조자이다. 그는 결코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그가 경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수년동안 나는 그대들에게 오로지 고급한 영역, 즉 의식과 빛에 대해서만 가르쳐왔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단지 그대가 자신의 심연 속으로 깊이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것일 뿐이다.

 

만일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기 원한다면 두 영역을 모두 알아야만 한다.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것을 말이다. 위에 있는 것은 두뇌 센터이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것은 하라 센터이다. 하라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 무의식을 상징한다. 물론 이 어두운 영역은 매우 위험하다. 먼저 상위 영역을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대가 진정으로 강건하게 되고 모든 필요한 무기와 장비들을 획득했을 때 비로소 그대는 심연 속으로 내려가 그 비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는 지하에 있다. 황금, 보석, 희귀 광물, 석탄, 석유 등, 이 모든 것들은 땅 밑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무수한 정령들과 불가시의 존재들이 그것들 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물질계에서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도 모든 것은 밑에 감추어져 있다.

 

모든 존재들이 볼 수 있도록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옥과 그 악마들 또한 아래에 존재한다. 우리가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간단히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우리의 공부가 상위 세계로부터 시작된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어둠과 대면하기에 앞서 빛으로 자신을 무장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태양 신경총, 하라 센터와 접촉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의식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거기에 닿을 수 있다. 즉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따라서 만일 하라 센터가 우주와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고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주 혼으로부터 방사되는 향기를 흡수할 없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명상 중에 하라 센터에 작용할 수 있는 간단한 행법 하나를 제시하면 이렇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순수한 마음, 완전한 무욕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보다 더 강해짐은 물론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양 손을 하라 센터 위에 두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련을 할 때는 항상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역에 있는 다른 센터들을 일깨워 자신의 저급 자아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하라 센터의 계발을 시도하기에 앞서서 당신은 반드시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은 위험없이 이 심연을 탐험할 수 있다. 그것은 심연, 인간 본성의 진정한 하계(下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신분석 학자들이 무의식의 일부 영역들을 탐구해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하라 센터의 신비에 대해서는 물론 무의식의 심연 속에 묻혀 있는 이 센터와 초의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 비전가가 뱀의 머리와 꼬리를 연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우리가 저급 센터(차크라)들과 두뇌에 있는 왕관 차크라(사하스라라)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선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것들에 대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위험한 하위 영역에서 가치있는 것을 성취하길 바랄 수 있겠는가? 당신은 먼저 자신을 순수하게 맑히고 힘을 기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나서 준비되었다고 느껴질 때 하위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할 수 있다. 그 체험은 당신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연금술사들은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둠은 빛보다 무한히 광대하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을 감싸며 삼투해 있다. 반면 빛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작은 불꽃에 불과하다. 어둠은 모든 존재의 뿌리이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현상, 모든 현현과 물질들은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어머니 우주의 자궁안에 있는 아기처럼 모든 에너지, 원소들은 일종의 탯줄을 통해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주혼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한다.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빛’에 대한 관념은 ‘어두운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의 심원한 상징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어째서 예수는 화려한 저택이나 궁전 또는 신전이 아니라 황소와 나귀 사이 구유에서 태어나야만 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아기가 육체의 하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영적인 아기가 태어날 때, 인간 속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도 그 낮은 영역, 하라 센터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라 센터는 구유이다. 그리고 황소와 나귀는 양 측면에 있는 간장과 비장이다.

 

예수가 태어날 때 천상에서 천사들이 노래하고 찬양했다. 왜냐하면 이 탄생, 제2의 탄생은 천상의 모든 존재들이 참여하는 지복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들은 한 인간이 거듭날 때마다 매번 다시 일어난다. 황소, 나귀, 마기(동방박사), 천사, 동정녀, 구유 속의 아기. 이것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만 오직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만일 이 아기가 우리 안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내면에 그 아기를 끌어오고 양육하고 보살피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구유 속에서의 예수의 탄생은 의미심장한 비전적 상징이다. 우리가 신성한 아기 예수,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켜야만 하는 곳은 바로 황소(간장)와 나귀(비장) 사이에 있는 구유, 여기 하라 센터인 것이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에 대한 정확한 복사판이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코 아래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아래 있는 것과 위에 있는 것이 같다는 말은 그 법칙과 작용이 동일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물에 비친 집을 보라. 실제 세계(위)의 집은 반영된 세계(아래)의 집과 같다. 그러나 두 세계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밑에 있는 반영, 환영의 세계 그리고 위에 있는 실제의 세계. 두 세계 각각에 또한 위와 아래가 있다. 따라서 환영의 세계에 속한 아래의 것은 실재의 세계에 속한 상위의 것에 상응한다.

 

창조자는 신성 하이어라키의 최고급계에 있다. 그러므로 하이어라키의 반영인 인간 속에서 그 창조적 작용은 가장 낮은 세계에 있게 된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러한 전도(顚倒)에 대해 말해왔다. 돌과 광물과 수정은 위에 있는 신성계의 반영이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뜻이다. 인간 안에 있는 하위 센터들은 신성계의 최고급 레벨과 상응한다. 왜냐하면 대우주는 소우주 인간 속에서 거꾸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창조자 브라마가 인간의 배 속에 거한다고 일컬어지는 이유인 것이다.

 

이 주제는 매우 광대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말했다. 아무튼 현재로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이 이상 더 말한다 해도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부담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누구나 모든 것을 알기 원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호기심일 뿐이다. 진정한 비전의 가르침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제자들이 실천적이 되고 자기 힘, 자기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가치있는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는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내가 이런 말 하는 것을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안다.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 안의 힘 센터들이 바라는만큼 활동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들은 녹슬었고 자류는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센터들에 대한 작업을 자기 힘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힘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어요’ 물론 어떤 것도 쉽지 않다. 바로 이 때문에 환생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만일 이번 생이 센터들을 각성시키는 노력을 한 첫 번째 생이라면 그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수세기 동안 꼼짝도 않은채 방치되어 왔다. 따라서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수생동안 이 방면에서 작업해 욌던 사람들, 그리고 현생에서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은 자연 그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지고 모종의 결과들을 얻게 된다. 내가 ‘서둘러라. 이 생에서 그 작업을 시작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결과가 매우 미미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당신은 시작하였다. 따라서 다음 생에 당신은 거기에서부터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실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 이번 생에서 당신 내면에 신성한 흐름을 해방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출처] 아이반호프의 비전학 1. 하라센터(하단전) | 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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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떤 단체에도 속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아주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체계적으로 수련을 하지면 연정원이나 국선도를 권하고 싶은데, 거기서 배워나온 사람들이 또 헛짓을 할 경우도 있으니 잘 알아보시고 선택을 하십시오. 주의 할것은 과장되게 성과를 자랑한다거나 그렇게 만들어주겠다든가, 일정한 기간이 되면 무조건 승급을 시켜준다던가 하는 등의 편법을 내세우는 단체들입니다. 또, 종교성이 짙다거나 최고지도자의 능력을 신격화?) 하거나 초능력자로 선전하는곳도 조심해야만 합니다.

저는 69년인가 70 년도에 백과사전을 뒤지다가 복식 호흡이란 것을 보고 난생처음 호흡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건강에 좋다고 소개되어 있어서 한동안 흉내를 내곤 했지요. 그 호흡은 천천히 폐와 배를 가득 채우고 천천히 끝까지 다 뱉아내는 것이엇습니다. 그러다 80 년대에 들어서서 단전 호흡관련 책자들이 눈에 띄어 따라해 보았는데, 홀로 하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호흡을 늘이려는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탈은 없었지만, 그때 욕심을 냈더라면 큰일 낼뻔 했지요. 저녁에 퇴근후 짬짬이 호흡을 했는데(조식만 ), 1년여 기간이 지나자 한 호흡이 1분 정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87년부터 임의로 이탈이 가능해졌고, 한 호흡을 20초 정도로 줄여버렸습니다.

정상적인 가르침을 받아가면서 호흡을 늘이는 것은 괜찮지만, 홀로 호흡을 늘이거나 축기를 하려는것은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것을 알게된거지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훌륭한 사법을 만나 호흡을 체계적으로 수련을 할 시간 여유가 없을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해보았고, 가장 안전한 방법을 권하는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무리하게 호흡을 늘이거나 축기를 하지 마십시오. 단전호흡의 첫번째 단계인 조식을 꾸준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명상과 함께. 억지로 호흡을 늘리지 마시고, 가장 자연스럽게 하세요.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현재 자신의 호흡이 불편하면 줄여서 하세요. 호흡에 집중하다가 나중에는 호흡 자체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가장 잔잔하게, 조용히 호흡을 하십시오. 숨이 들락거리는 소리를 자신이 듣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배나 가슴이 부풀어 오르게도 하지마세요.

그렇게 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은 가늘어지게 되고, 가늘어지면 길어지게 되며, 가늘고 길어지게 되면 하단전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조금씩 열리게 됩니다. 또, 정수리(백회)로 부터 기의 통로가 열려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것을 느끼게 되며, 기의 움직임에 따라 몸도 자연스럽게 반응하는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방법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것인지를 올바르게 깨닫기 위하여, 잘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기 위한 수련입니다. 초능력이나 특별한 능력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런것을 바란다면 오히려 삿된 길로 빠지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중에 이탈하는 방법도 스스로 체득하게 될것입니다.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입니다. 이 길에는 왕도가 없고, 편법도 통하지 않으며, 속성 비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는것과 똑 같습니다.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만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를 판별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는 길을 추구하거나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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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성적 원리가 고도로 발달하면, 상위 멘탈체(higher mental body)의 기능이 강해지면서, 더 근원적인 세계를 접하게 된다. 육체적 존재로 살면서 겪는 물질계, 아스트랄계, 멘탈계에서의 경험이 보다 더 의미심장한 현상으로 목격되고 이해된다.

​상위 멘탈체의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의식적으로 부디(Buddhi) 의식의 영향을 자각하게 된다. 부디 의식을 다른 말로 그리스도 의식(Christ Consciousness)이라고 하는데, 그 의식부터 깨달음의 의식이라고 부른다.

 

수동적인 상태에서 하위 인성자아(lower personality)의 진화를 지켜보고 있던 영혼의 의식은 본격적으로 하위 인성자아에 관여하기 시작하고, 인간은 총체적인 의미에서, 인성자아와 영혼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 전의 갈등은 대부분 하위 인성자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체들 사이의 갈등 내지는 불균형이었다. 많은 열망자들이 하위 인성자아를 구성하는 체들 사이의 갈등을, 인성자아와 영혼 사이의 갈등으로 착각한다.

 

영혼의 영향력이 의식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진정으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수행 내지는 공부가 시작된다. 통합된 인성자아와 더 근원적인 어떤 속성 사이에 첨예화된 갈등이 표면화되고, 삼계(三界) 안에서 경험하는 최종적인 이원성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것은 오랜 열망의 삶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는 기간이다. 그런 삶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감동적인 비극성과 자아극복의 전형을 드러낸다. 삶의 무게중심이 하위 인성자아에서 영혼으로 옮겨감으로써 그런 일이 발생한다.

 

DK대사는 영혼의 영향력이 자각되는 것을 깨달음의 전부로 보지 않는다. 그 때까지는 영혼을 발견하고 영혼에 안주하는 것이 영적 진화의 목표였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인성자아의 분별 의식이 영혼의 분별 의식―인성자아의 위치에서는 영혼의 분별 의식이 분별을 넘어선 무분별 의식의 경지로 인식된다―으로 변형된 후, 더 근원적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 모나드(Monad)와의 연결이 조금씩 의식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현재의 인류가 성취할 수 있는 최종적인 영적 깨달음의 경지다. 모나드와의 연결, 즉 영(Spirit)과의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연결은 상위 멘탈 차원(higher mental plane)에 자리 잡은 영혼 의식이 활성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영혼이야말로 모나드, 즉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야말로 모나드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모나드와의 연결을 통해서, “나는 그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육체/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 상위 멘탈체, 부디체.....인간의 각 체들의 발달은 결코 단순 직선적 진화노선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진행된다.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각각이 고유의 영적 진화의 단계에서 나름의 진화를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육체와 에텔체의 통제와 발달에 초점을 맞추고서 삶을 사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아스트랄체에 의식의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이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멘탈체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복잡한 삶을 산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멘탈체의 하위 속성에 집중된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현재 물질계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체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고, 체들 간의 중요성을 변화시키면서 삶을 영위한다. 물질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구성된 체들로 인해서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인류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관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리도 복잡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어떤 하나의 체가 발달하고 통제되기까지 매우 많은 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러 생에 걸쳐서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각각의 체가 발달된다. 그런 발달은 체들의 불균형적인 발달이라는 필연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이 바로 오컬트적인 의미에서의 질병의 원인이다.

 

체들은 발달하면서 항상 특정한 차크라들의 과도한 활동 혹은 정체를 낳고, 그런 활동과 정체는 에텔체의 차크라들만이 아니라, 아스트랄체와 멘탈체의 차크라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거 생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변화된 차크라의 속성들이 현재의 생을 규정하듯이, 현재의 삶 동안 이루어진 차크라의 변화는 다음 생으로 이어지면서, 다음 생을 규정한다. 그런 맥락에서도 카르마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오직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만족시키면서 보낸 삶은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카르마를 쌓는다. 그렇게 축적된 카르마를 해속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여러 생 동안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특정한 차크라를 무분별하게 자극해서 활성화시킨 나머지, 그 차크라에 심각한 과잉 상태 혹은 정체라는 결과가 발생하면, 다음 생에 가서 그 차크라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차크라와 관련된 육체 기관들에 심각한 병이 생길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생에 걸쳐서 차크라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차크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차크라에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방법은, 성인들이 가르치신 덕목을 연마하면서, 감정을 정화시키고 분별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영적 진화는 필연적으로 부정적 의미에서 카르마를 쌓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카르마를 쌓는 과정이기도 하다. 창조적 카르마의 축적이 곧 영적 변형과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종교적 구도자들은, 카르마의 완전한 해소를 통해서 카르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영적 완성이라고 잘못 이해했다. 부처조차도 카르마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조차도 타인의 카르마에 개입하지 않았다. 카르마로부터 자유롭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에서일 뿐이다.

 

DK 대사는, “일체가 마음의 작용일 뿐, 모든 현상세계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 그 자체가 인류의 커다란 환영이라고 경계한다. 그는 인식만 바꾸면 된다는 식의 이해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지적한다. 그 만큼 카르마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생을 통해 각 체들이 발달되고, 궁극의 영적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윤회는 본질적인 영적 진화의 원리다. 영적 진화의 과정에서, 죽음은 단지 육체의 죽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스트랄체의 죽음, 멘탈체의 죽음도 의미한다. 그것은 재생의 작용이고, 한 단계 상승된 삶을 위한 도구의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윤회를 통하지 않고는 영적 완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윤회의 법칙은 영적 법칙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전생에 사도 바울로 활동했었다고 하는 힐라리온 대사Master Hilarion는, 서양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지난 2천 년 동안 서양인들에게 윤회사상을 은폐시킴으로써, 너무나도 중요한 영적 법칙을 인식할 수 없게 했고, 더 나아가서 윤회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의 영적 깨달음을 지연시킨 카르마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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