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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카발라 - 2장. 10수와 10세피로트 II 본문
10수와 10세피로트
II
인간은 생명나무의 이미지에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10세피로트, 케테르, 호크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 네차흐, 호드, 예소드, 말쿠트가 인간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세피로트의 원소, 존재, 활동, 물질까지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아의 성찰이 오로지 생명나무를 앎으로써만 가능한 이유이다.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 존재의 광대한 차원들을 아는 것이다. 즉, 생명나무의 모든 상이한 영역들과 그것들을 함께 묶는 연결 고리들을 아는 것이다.
10세피로트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통하며 흐르는 하나의 생명 흐름에 의해 연결돼 있다. 이 살아있는 연결고리는 세피로트 상호간을 연결하는 22개의 길에 의해 표현된다.
불행하게도 인간 안에서 10번째 세피라 말쿠트는 천상과의 연결이 단절돼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교통을, 10을 회복하는 일이다. 10세피로트는 전체 안에 함께 묶여 우주에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 안에서 만큼은 더 이상 연결돼 있지 않다. 인간은 자신을 전체와 묶는 연결 고리를 부숴버렸다. 따라서 그것을 통해 흐르는 생명, 빛, 환희의 흐름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진정한 구도자의 사역은 바로 이 연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응고화된 물질, 말쿠트이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물질적 영역과 내면에 있는 고급한 영역과의 연결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무질서, 어둠, 죄악으로 얼룩진 무분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 안에 장애물을 창조해 왔다. 비교秘敎에서는 그 장애물을 '문지방의 수호자'라 부른다.
'문지방의 수호자'는 아홉 번째 세피라, 예소드 안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그곳으로 들어오는 겁먹은 구도자를 덮쳐 공포에 떨게 한다고 한다. 만일 그에게 빛과 용기가 부족하다면 그 수호자 앞에서 멈춰야 한다. 그의 가슴이 순수하지 못하다면 그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세피라 예소드는 달의 영역이다. 내면의 빛을 고양시키지도, 자기통제도 이루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감히 이 영역 속으로 들어온 자는 환영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완전히 준비시킨 자에게 있어서 예소드는 순수의 영역이다. 그곳을 통과할 때 그는 순수하게 맑혀져 투명하게 빛나게 된다. 인간이 천사들, 케루빔, 생명의 사자使者와 접촉하는 것은 바로 이곳 예소드에서이다.
달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달은 모든 순수한 것들의 저장소이자 모든 불순한 것들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달의 이면에 쌓여진다. 흑마술사들이 그들의 악한 작업에 사용하는 원소들을 끌어오는 것은 바로 그곳으로부터이다. 지구와 달은 자주 접촉 가능한 상태에 있게 된다. 따라서 달의 이면으로부터 끔찍한 암흑의 존재들이 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게 건너온 그들은 인간들을 괴롭히고 혼란에 빠뜨린다.
여기서 당신은 달의 영역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을 하기에 앞서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왜 필수적인 과제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반드시 마스터의 인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마스터는 그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그 길을 따라 여행했었고 그것을 체험하였다. 따라서 마스터 없이 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을 시도하는 자는 입구에서 수호자들에 의해 제지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내면에 있는 모든 충동적 힘들(분노, 성에너지 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지방의 수호자는 옆으로 비켜설 것이고 그 앞에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예소드를 통과한 제자의 앞에는 세피라 호드가 놓여 있다. 수성의 영역인 호드에서 그는 마법, 점성학, 카발라와 같은 것들을 신성한 학원으로부터 모두 배울 수 있다. 호드는 지식의 영역이다. 모든 지식, 모든 학문들이 여기에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정리돼 있다. 제자가 브네이 엘로힘 천사단과 접촉하게 되는 것은 세피라 호드 안에서이다.
호드 이후, 제자는 세피라 네차흐, 금성의 영역으로 가게 된다. 네차흐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세피라이다. 그곳은 모든 색깔, 형상, 소리, 향들의 집이며 모든 진실한 예술적,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네차흐는 엘로힘, 즉 창세기의 서두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신들의 집이다. 세계를 창조한 것은 네차흐의 천사들, 엘로힘이다. 네차흐에서 창조는 축소판으로 되풀이 된다. 아기들의 잉태가 바로 그것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아기를 만들 때 그들은 네차흐, 사랑의 영향 아래 놓인다. 아기의 몸을 만드는 것은 네차흐의 천사들인 엘로힘이다.
비록 두 남녀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엘로힘은 거기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 세피로트는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 여기 매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존재한다. 아기를 만드는 것은 단지 그 한 예일 뿐이다. 엘로힘은 여기에 당신과 매우 가까이 있다.
제자는 세피라 네차흐 안에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힘들, 창조의 원리들을 배운 뒤 티페레트로 가게 된다. 그리고 태양의 영역인 티페레트에서 위대한 영과 접촉하게 된다. 우리는 태양의 영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태양의 영은 신 자신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의 연결을 수립한다면 그는 자기 안에 갖고 있는 빛, 생명, 아름다움, 순수, 건강, 따스함 등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태양과 연결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햇빛에 육체를 노출시키는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무의식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태양의 입자들이 어느 정도 몸에 흡수된다. 그러나 태양으로부터 영적인 원소들을 받으려면 태양에 노출되는 것은 우리의 몸이 아닌 영이어야만 한다. 즉 우리의 영이 태양과 접촉하고 교감하고 그 심연 속으로 뚫고 들어가 그것과 하나로 용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피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위한 작업이다. 우리의 몸이 햇빛을 맞을 때 우리의 의식과 지성과 영이 그 접촉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햇빛으로부터 따스함이나 활력 이상의 것, 지식과 일루미네이션을 얻을 수 있다.
태양 속에는 지고한 이지령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토성, 목성 등 모든 행성들 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제한다. 왜냐하면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나무의 중심에 있는 티페레트가 세계의 심장인 것과 같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마스터들은 티페레트의 영역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빛을 흡수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스며들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위에 끊임없이 빛을 발산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피조물에게 빛을 발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날 태양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티페레트의 영역을 떠날 때 제자는 강한 전사, 그리스도의 병사, 용맹한 기사가 되어 일호의 두려움 없이 진리를 수호하고 인류를 돕기 위해 어떠한 역경도 맞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다음 세피라 게부라의 문이 열리게 되고 그는 진정한 천하 무적이 될 것이다. 게부라는 힘과 강함의 영역이다. 세피라 게부라는 활동적, 역동적이다. 때문에 그곳은 전투 천사들의 거처이기도 하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를 파괴할 때 또는 한 문명이나 심지어 대륙 전체를 쓸어버릴 때 신은 게부라의 천사들에게 그 파괴 임무, 불순물 소각 임무를 맡긴다.
인류에 대한 숭고한 자비, 사랑 등의 성품을 계발하면 제자는 헤세드, 자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기 전에 그는 이미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거나 타인을 무시하고 경시하고 해치는 자기중심적 성향을 극복한 상태이어야 한다. 그런 상태에 도달했을 때 그 앞에 헤세드의 문이 열리고 조화, 질서, 풍요, 영광으로 통치, 지배하는 힘을 부여하는 헤세드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헤세드는 모든 비전가들의 유산, 그들의 모든 놀라운 발견들, 노고의 열매들을 인류에게 보내준다.
자비의 헤세드를 거친 뒤 제자는 비나로 이르는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곳은 계시록에 나오는 24장로들, 카르마의 주님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운명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다. 비나는 그들이 지배하는, 두려움에 압도되는 삼엄한 영역이다. 그들은 모든 존재들의 행위 하나하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빚을 청산하고 완전한 자유를 얻기까지 어떠한 시련들을 감내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오로지 비나 속에서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비나 속으로는 오로지 어떠한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 어떠한 박탈, 상실, 유기, 고통 앞에서도 감정의 동요 없이 초연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비나는 토성의 영역이다. 토성은 우리에게 수행하는 은자와 같이 될 것을, 완전한 포기와 자기부정을 행하길 요구한다. 끊임없이 자기 운명의 부당성을 항변하고 자기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을 받아야 한다고 계속 생각하는 자는 아직도 비나로부터 천리만리 떨어져 있다. 비나는 좁은 문이다. 비나의 좁은 문을 통과하고자 하는 자는 두 개의 바위 틈 사이를 몸부림치며 나아가 낡은 허물을 벗는 뱀처럼 자신의 낡은 옷을 던져버려야 한다.
누군가를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하면 운명은 그로 하여금 모든 불필요한 옷과 쓸모 없는 누더기들을 던져버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건들을 겪게 한다. 그 좁은 문은 각자의 크기와 형태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상징적으로 완전히 벌거벗은 채 그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여 그 문을 통과한 자 앞에는 모든 우주적 지혜의 보고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영역들, 세피로트는 당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우리는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동시에 살고, 일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어떤 특별한 덕목들을 계발하기 위해 여러 세피로트 중 어느 하나에 특히 더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든 세피로트 상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취의 수준 또한 다양하다.
이 영역들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주 안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적 수준이 진보할 때 외부계의 문들 또한 우리 앞에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 문들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은 여호와에 의해 통치되는 엄격하고 삼엄한 비나의 영역 속에서이다.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시련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마음속에 완전히 명확해졌을 때 비나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이게 된다.
우리는 비나가 어머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실 카발라에서는 비나를 '우주의 어머니'라 부른다. 그녀는 엄격하다. 그녀가 엄격한 것은 자식들을 순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사랑으로 충만하다. 때문에 그녀는 자식들을 위해 이해의 50문門을 열어 놓는다.
이해의 50문은 각기 다섯 속성을 가진 10 세피로트이다. 이 문들을 통해 제자는 이제껏 그 앞에 신비로 감싸여진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그는 각각의 세피로트에 상응하는 덕목들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아래의 세피로트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곧 그가 길에 놓인 모든 것들을 이해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화학으로 어떤 학위를 받는 것은 그 분야에서 일련의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물리학이나 화학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는 아닌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구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나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이제까지 당신이 걸어온 모든 길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비나는 당신을 위해 50개의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크마, 지혜로 이르는 문을.
호크마는 그리스도, 신성한 말씀의 영역이다. 호크마 안에는 숫자들과 성스러운 알파벳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통해 단어와 구절과 시들을 조합하거나 창작하는데 이용할 수도 있고 신성한 마법을 실행할 수도 있다.
오랜 전승에 의하면 호크마의 대천사 라지엘이 아담에게 창조의 비밀들을 담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락 이후 그 책은 그에게서 박탈되었다. 카발라는 그 비밀들을 다시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 즉 호크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크마 속에서 인간은 전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곳에서 모든 숫자와 문자와 소리, 그리고 그것들의 힘과 상호 관련성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세피라가 비나라면, 인간을 전지전능하게 만드는 세피라는 호크마이다. 호크마 속에서 인간은 각각의 문자와 숫자는 우주의 힘이고 그것들을 작용시킬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세피라 호크마에 도달하여 말씀을 알고 그것을 정확히 발성할 수 있는 자는 신성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불린다. 첫 번째 영광은 아버지이고, 아버지이 반영인 두 번째 영광은 그리스도, 신성한 말씀이다.
이 호크마 속에서 우리는 지혜의 32길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32길과 인간의 32개 이빨 사이에는 특정한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비전가는 32개의 이빨로 신성한 지혜를 씹어 자양분을 얻는 것이다.
호크마를 떠난 비전가는 최종적으로 다음 세피라 케테르에 이르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오직 18명의 비전가만이 최고의 케테르를 성취하고 살아서 지상에 돌아온다고 한다. 이 정점에 도달한 자들 중에서 이 18명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육체는 케테르 속에서 흐르는 힘의 흐름에 의해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케테르는 그 안에 어떤 형상도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케테르에 도달한 자들의 육체가 분해되어 버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케테르의 불에 접촉한 순간 그들은 불타버린다. 아니, 그들 자체가 불이 되어 버린다. 이런 체험을 통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예정되어진 자들뿐이다. 그들은 지상에 매우 특수하고 위대한 미션을 이루기 위해 미리 특별히 준비되어진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육체는 분해되지 않은 채 케테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이 완성의 단계에 도달하면 변형되어 물질이 아닌 응축된 빛으로 구성되게 된다. 케테르는 왕관이라는 뜻이다. 왕관은 머리 위에 얹혀진다. 그러므로 케테르는 머리라는 육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오라Aura, 빛이다. 케테르에 들어가기 전에 제자는 절대적인 순수를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는 의지로 육체를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농밀한 물질 상태로부터 완벽하게 정묘한 상태로 말이다.
케테르의 천사는 세라핌이다. 계시록에서 요한은 세라핌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이 네 생물은 하이오트 하 카도쉬, 성스러운 생물이다. 이 성스러운 네 짐승들은 물질의 근원인 사대四大이다. 사자는 불, 황소(송아지)는 흙, 인간은 공기, 독수리는 물을 각각 상징한다. 초기의 모든 교부들은 이 카발라의 상징에 정통했다. 사실 기독교 전통에서는 4대 복음서 저자들을 이 네 생물로 묘사했다. 마가는 사자, 마태는 인간, 누가는 송아지, 요한은 독수리. 여기에는 카발라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성스러운 네 생물의 상징은 아주 먼 과거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카발라를 참고하지 않는 한 결코 정확히 계시록을 해석할 수 없다.
세라핌 천사단의 리더는 '얼굴들의 왕자', 메타트론이다. 신 앞에 서서 그와 맞대면하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메타트론뿐이다. 모세를 가르친 것은 메타트론이다. 그는 시나이 사낭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성경의 많은 구절을 보면 신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사실 어떤 인간도 신과 직접 이야기할 수 없으며 신을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신의 면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은 그의 대리자, 대천사들 중의 하나를 본 것이다. 신을 대리하는 존재가 바로 대천사들이기 때문이다.
대천사들은 말하자면 변압기처럼 전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신성의 에너지, 신성의 빛, 신성의 전기는 천사 하이어라키의 매개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그때 그 힘은 충분히 낮추어져서 우리에게 도달한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간이 직접 신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이어라키의 에이전시를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과 신 사이의 어떤 매개적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은 우주의 실상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이어라키의 존재를 인정하든 않든 그것은 존재한다. 그들은 현상이 자기들의 생각과 반드시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신과 인간 사이에 이 천사 하이어라키가 없다면 지상에서 단 한 명의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세피라 케테르에 도달한 뒤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케테르의 힘과 전류가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에 물질은 간단히 분해되어 버린다. 케테르에서 말쿠트(우리가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가장 농밀한 물질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비전가에게는 호크마와 비나 두 세피로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각각은 그에게 육체의 분해를 막을 수 있는 입자를 준다.
요한이 계시록 속에 묘사하고 있는 고도의 환영을 체험하면서도 증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받은 그 입자 때문이었다. 계시록에 나오듯이 요한은 작은 책을 먹으라는 말을 듣는다. 이 책은 세피라 케테르에 의해 방출되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진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는 원소를 상징한다.
라쉬트 하 갈갈림은 '최초의 소용돌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성운의 발단, 우주의 태동을 말하는 것으로, 창조의 산고 속에 순수 에테르 차원으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그것이 응고되고 구체화되면 우주가 되는 것이다. 신의 최초 계획, 청사진은 바로 이 영역에서 태어난다. 이 영역으로부터 최초의 충동이 나오는 것이다.
케테르는 수원水源이다. 물은 수원에서 흐르고 흘러 모든 저장소들을 가득 채운다. 카발리스트들은 세피로트를 발출물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수원인 케테르에 그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 각 세피라는 밑에 있는 세피라로 흘러넘쳐 들어간다. 그에 따라 순수질료는 차츰 농밀해지며, 마침내 말쿠트에 이르러 물질화된다. 그러므로 각 세피라는 선행하는 세피라로부터 발출된 것이다.
달이 지구의 어머니라는 전승의 가르침이 나온 것은 여기에 근거가 있다. 비록 천문학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카발라의 관점에서 이것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말쿠트는 예소드로부터 발출되었기 때문이다. 말쿠트는 우리의 혹성 지구이다. 흙을 한 줌 쥘 때 당신은 케테르의 순수 질료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흙은 담갈색을 띤 만져지는 물질이지만 그 속에는 케테르의 순수 질료, 에센스가 포함돼 있다.
생명나무는 고도로 조직화된 복합적 세계로, 그 광대한 전체 속에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연결돼 있다. 생명나무는 또한 의식의 고급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된다. 즉 영적으로 불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만물은 이 생명나무 속에서 서로 연결돼 있어서, 각 영역의 보물들은 다른 모든 영역들로 흘러 들어오고 그 각각을 통해 신성의 에너지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또 지상에서 천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신은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추방한 뒤 천사로 하여금 화염검을 들고 동산의 입구를 지키게 하여 생명나무로 이르는 길을 차단시켰다. 성경에 나온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된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누구를 향한 금지인가? 그것은 바로 신에게 봉사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 신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한 자들, 신의 풍요를 억지로 훔치려 애쓰는 자들을 향한 것이다. 결코 영적인 사람들에게 금지된 것이 아니다.
분명히 밝혀두지만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안 보이는 세계, 상위 세계의 위대한 마스터들은 내게 진정한 실체의 생명나무를 계시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생명나무에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조화와 완벽한 형태란! 카발라 전통에서 생명나무는 일반적으로 곧은 수직 형상이다. 그러나 나는 생명나무의 진정한 형태, 진정한 차원을 보았다. 그것을 본 나는 경이로움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말했다. 이것들은 언어를 초월한 신성함을 지닌다. 따라서 당신은 내면 깊숙이 경의, 헌신, 감사의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당신의 삶에 작용하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안 보이는 세계로부터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디 내가 당신에게 카발라의 깊은 가르침을 계속 밝히는 것이 허락될 수 있도록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받도록 노력하라. 그것들을 다른 가르침과 섞지 말라. 이제 이런 점들을 알았으니 전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비전의 카발라 - 2장. 10수와 10세피로트 II |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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