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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스크랩]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1]

柏道 2011. 4. 11. 04:32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1]


  

  우리 겨레의 근본 사상은 ‘알이랑 정신’이다.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홍수 후에 그렇게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족속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이다.

 

  셈족의 종가(宗家) 욕단 족속  


  창세기 10장 21절에 보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는 말씀이 있다. ‘에벨’은 셈의 셋째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였다. 셈은 아르박삿 외에도 네 아들이 있었고(창 10:22), 따라서 셈은 이 모든 자손들의 조상임에도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을 먼저 언급하면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으로만 구별해 놓았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셈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혈통’이 선택된 종족이라는 것이다. 즉 셈의 하느님(창 9:26)은 이제 ‘에벨 자손의 하느님’이 되신 것이다. 그러면 ‘에벨의 자손’이란 누구인가? ‘벨렉’과 ‘욕단’ 두 형제뿐이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온 자손’이란 곧 ‘벨렉 자손’과 ‘욕단 자손’을 말하는 것이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으니 셈은 곧 그 두 형제의 자손들의 조상이 된다는 말이요, 하느님은 ‘셈의 하느님’이라 했으니(창 9:26) 곧 “벨렉 자손의 하느님”이시요, “욕단 자손의 하느님”이신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 하느님은 선택된 백성이 하나가 아닌 둘인 근거를 분명히 예비하셨다.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계’와 ‘욕단계’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 이것을 칼빈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셈의 아들들에 대하여 말하려는 기회에 모세는 간단하게 서론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서론은 다른 사건들에 대하여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 계열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종족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한 표로서 이 종족을 격리시키기를 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이 모세가 특별히 그를 가리켜서 ‘에벨 자손들의 조상’ 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것은 셈의 복이 무차별하게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가족에게만 그것이 상속되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존 칼빈 원저, 「성경주석 창세기」, 서울: (주)성서원, 1999, P. 301)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으로만 부각시킨 까닭은 ‘에벨의 자손’이 선택된 종족이며, 셈의 복이 한 가족 ‘에벨의 후손’에게만 승계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주목하라. 여기에서 '셈의 복'이란 창세기 9장 26절에 기록된 것으로서 하느님이 ‘셈의 하느님’이 되신다는 복이다. 즉 천손으로 구별되는 복인 것이다.


  이 계시를 깨닫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에벨은 24절에 나오며, 24절에 에벨이 나오기 전에 벌써 셈의 후손이 여럿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이름만 대고 넘어가면서 에벨만은 셈의 후손 꼭대기에다 올려놓은 것은 선민, 즉 ‘천손민족’이 에벨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에벨’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에벨은 셈의 4대손이지만 ‘천손민족의 조상’이기 때문에 21절에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벨’은 창세기 10장 21절에 근거해 볼 때 셈 계열 내에서 두 계열의 천손민족, 곧 벨렉계 천손과 욕단계 천손으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므로 그의 이름이 셈의 족보에서 먼저 소개된 것이다.

 

        

  벨렉의 후손에서는 그의 6대손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또 하나의 천손(선민)인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천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 중에서도 특별선택을 받은 셈족의 종가(宗家)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이었고,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가장 확고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더욱이 우리말에서 ‘벌’(발)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팔)인데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직계 조상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따라서 동방의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이다(그러나 당신이 누구이든 꽉 막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상실되었던 계시가 드러나고 회복되더라도 결코 그것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하느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particularism)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현저한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그리하여 그들은 천손민족이다.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25,30). 그리하여 그들도 천손민족, 곧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 곧 천손민족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민족)이 있고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전자를 ‘명시적 언약백성’, 후자를 ‘묵시적 언약백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신적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이것은 상실되었던 진리로 마지막 때에 회복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계시이다.


  밝은 땅(밝달)의 임금 욕단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 곧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밝의 땅’, 동방의 땅 끝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배달나라를 세운 우리 밝달겨레(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밝달’의 ‘달’은 ‘아사달’의 ‘달’로서 ‘땅’이라는 말이다. 양달이 양지(陽地)요, 응달이 음지(陰地)요, 빗달은 비스듬한 땅(傾斜地)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욕단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물론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광명족)의 우두머리(Headship)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이 ‘욕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단군’이란 칭호는 ‘밝달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의 이두식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의 고유의 호칭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 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밝달임금’이란 뜻의 보통명사이다.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물려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이라고 불리어졌다.「제왕운기」와 기타 여러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47대라고 하니, 건국한 이는 제1대 단군이고 아사달에 입산(入山)한 이는 제47대 단군인 것이다. 이른바 ‘단군’이라는 한 임금이 조선을 건국한 지 천여 년 만에 산에 들어가 신(神)으로 화(化)했다는 전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후대에 와전된 것이다.


  한민족의 직계 조상 욕단은 배달나라를 세울 때 먼저 백두산 산정(山頂)에 올라 창조주 하느님께 천제(天祭)를 드렸다. 그것은 일찍이 노아가 대홍수 후 거행했던 아라랏 산정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답습한 것으로서, 이렇게 ‘평지’가 아닌 ‘산정’에서 제사하는 관습은 셈족의 종가(宗家)인 욕단 족속에게는 아주 당연한 제사 방식이었다.

 

계   속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lub.cyworld.com/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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