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소설 단(丹) 김정빈 본문
丹
-이 책의 실존 주인공인 봉우 권태흔 옹, 단기 4233년(1900년) -단기 4327년(1994년).
이제 곧 하나된 白頭山族이 北滿洲 옛 대륙을 달리리라.
오성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 위에 비쳤어요. 이미 30년 전입니다. 그것도 이번에는 직렬취합이었어요. 이런 예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원래 천지인(天地人)은 삼재(三才)라고 했어요. 그렇게 30년을 준비한 뒤에 비로소 본운(本運)이 시작 되는 겁니다. 바로 올해로서 그 30년이 다 끝이 나고, 이제 우리나라는 본운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번 오성취두는 삼천 년 만에 우리에게 다가 오는 대길조 입니다.
압록강 너머에 삼사백리나 되는 대분지가 있어요. 거기가 북계룡 입니다. 만산이 조복(朝伏)하는 형세인데, 아마 동아시아에서 그 같은 도읍지는 다시 없을 겁니다. 그곳이 우리나라 도읍 될 곳입니다. 세계적 거국이 될 백두산 족, 3천년 대운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세계는 지금 황백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축소, 소련의 분열, 중국의 양분을 따라서 한국은 강성하게 된다. 10년 이내에 무혈의 남북통일, 그 후 북만주의 진출, 이 때 우리에게는 광개토대왕과 같은 탁월한 지도자와 을지문덕과 같은 지(智) . 덕(德). 용(勇)을 겸비한 대도인. 대영웅이 출현할 것이다. 그리고 바이칼호와 몽고 북중국의 회복이 이루어 진다. 그리고 세계사는 서구 중심에서 서서히 동양중심으로 서서히 옮겨지게 될 것이다. 그때 세계의 주역은 한.중.인(韓中印) 삼국이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한국은 지금의 미국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에서 백권의 역사서를 섭렵하기 보다 한번 북만주 일대를 돌아 보아라. ………
위대한 우리 조상들의 영광은 깊이깊이 파 묻혀 있는 셈이다.
지은이 김정빈은 단기 4313년(서기 1980년)에 』현대문학에 수필이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단기 4314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단기 4317년 (1984년) 말에 발표한 소설 』단(丹)은 그때까지의 출판사상 가장 많이 읽힌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그밖에도 』성자들의 마을 숭어 지혜의 바다 등 널리 읽힌 20여 권의 팩을 내었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이 같은 관심은 자연스럽게 성자·현인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단기 4323년 서기 1990년)부터는 붓다에 의해 제시된 가장 중요한 명상법인 위빠사나를 수련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내기도 했다.
중판에 부쳐
여기 한마당 판소리처럼 낭자하고 질펀한 이야기 한 꾸러미 독자 앞에 내놓는다. 때로는 민족혼을 일깨우며 '선구자'가 되중국 대륙을 휘달리고, 군데군데 이인(異人)과 술사(術師), 도사(道師)와 선인(仙入)들이 출몰하는가 하면, 조금은 엉뚱한 눈으로 '정신과학'을 논하기도 하는 기이한 이야기책을, 비수처럼 날카로운 안광(眼光)을 가지고 삼엄하게 도열한 독자들 앞에 열병 해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앞선다. 그 예리한 눈매들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소설이라고 하기엔 비소설적이고, 넌픽션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미심쩍은 이 책을. 보나마나 한쪽에서는 비난을 퍼부울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열심히 그를 변호하지 않을까.
마치 10여 년 전 그때에 그랬듯이.
아는 분들은 다 알고 있듯이, 이 책의 초판은 단기 4317년(서기
1984)년 11월에 출간되었다. 출간 직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이 책은 이듬해 내내 베스트셀러 첫머리를 고수했는데, 그동안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가 문학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에 대해 문학이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변호해준 이들이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사관(史觀)이 편협한 국수
주의에 불과하다고 폄하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폄하야말로
일제의 식민사관에 물든 입장에서 나온 것뿐이라고 반박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하였다. 이것은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의
집합이라고.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 찬성하지 않았다.
지금의 과학이 밝히지 못하는 현상이라 하여 그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고대인들에게 있어 천둥은
비과학적이어야 했겠지만 이제 와서는 그것이 너무나 과학적인 것이
아니냐, 그런 끝에 그들은 미래의 어느 때가 되면 여기에서 다루
고 있는 현상들이 과학으로 밝혀져 그것들이 과학의 일부로 편입되게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13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회고해볼 때 그같은 찬반 양론은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하겠다.
먼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관(史觀) 문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일부 재야 학자들의 편협한 의견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던
견해가 이 책이 일으킨 관점 변화에 힘입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제는 전에 정통파를 자처하던 사관이 도리어 사대사관:으로
비판되는 가치 역전 현상까지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변화는 국가 차원에서까지도 승인될 정도가 되었다.
두번째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초상적(超常的)인 정신력 문제
또한 」비판자'보다는 '변호자' 쪽이 유리한 정황으로 변하였다.
간단한 예로 기(氣)의 문제만 말해보자. 책이 나오던 당시의 관심1
」기가 실존하느냐, 않느냐'가 문제였지만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과학자들까지도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을 정도이니까, 이제는 기의 실존 여부가
문제인 시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를 어떻게 활용할
일인가'가 문제인 시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이 책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던 주된 요소의
하나는 남북통일에 대한 예언 부분이다. 이 책의 실존 주인공(단
4327년 95세로 작고)에 의해 남북통일은 단기 4317년(서기 198
년)으로부터 15년 이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것이며
거기에 더하여 우리 민족이 세계적인 강국이 될 것이며, 중국이
양분되고, 소련이 사분오열될 것이라는 등 그의 다른 예언도 함께
이 책에 실렸다.
그런데 실존 주인골이 "두고 보십시오. 아마도 몇 십 년 뒤쯤에는
그 노인네 허튼소리 하드니만 제법이었네, 소리 하실 겁니다
라고 말한 그대로 이 가운데 멎몇은 이미 현실화되었거나 되어지는
중에 있다. 소련이 사분오열되고 위성국들이 저마다 자기 주장을
하리라는 예언은 완전히 현실과 일치하였으며, 당시 그 가능성을
의심치 않은 사람이 없었던 남북 통일이 이제는 기정 사실처럼
여겨지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미진한 부분 또한 적지 않다. 문학성 문제로 말하면
필자 자신도 이 책을 문학이라고 여긴 적이 없으니 비판자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또 예언만 하더라도 아직은 '모두' 완성된 것이 아니며
정신과학' 또한 아직은 연구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현실적인 분석과 판단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 위에서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필자 또한 입장과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부터 필자는 이 책이 가진 장점과 함께 결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관한 한 장점보다는 약점을 더 잘
인식하는 체질이었기에 필자는 그때 무척 고심하였다. 특히 책의
내용이 도(道:體)보다는 술(術:用)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필자는 구도(求道)의 본질이 도에
있을지언정 술에 있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
유념하여 책 가운데 군데군데 구도의 본질에 대해 언급해두었지만
일반 대중은 그런 배려에 마음을 써주지 않았다.
이 책은 필자의 견해가 아니라 실존 주인공인 권옹의 견해를
바탕으로 써진 것이다. 그런 만큼 필자가 동의하지 않는 견해일지라도
권옹의 뜻을 존중하여 그대로 옮겨적을 수밖에 엄는 부분이
있었는데, 예언과 술적(術的)인 부분이 특히 그랬다. 때문에 책의
내용은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이 생각 밖으로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오자 필자는 당
스러웠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라고나 할까, 그 결과 필자의 행보는
불교의 진리 체계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교양적으로
알고 있던 불교를 받아들여 불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불교의 영향 아래 생각하고
동하였으며,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필자의 마음도 차츰 평정이
되었고, 일반인의 』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필자
마음 또한 '제3의 시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
필자는 도와 술을, 체와 용을, 성(聖)과 속(俗)을, 문학과 비
학을, 과학과 '정신'을, 사해동포주의와 민족주의를 '함께 묶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둘은 배척관계가 아니
상보(相補)관계로 바뀌었다. 그럼으로써 필자는 한때 이념적
병증에 떠밀려 출판권을 포기까지 했던 이 책을 새로운 마음으로
독자 앞에 선보이기에 이르렀으니, 이에 즈음하여 실로 마음이란
것이 이토록 곡절이 무궁한가 싶어 미소가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독자여, 원컨대 이 책을 한바탕 즐거운 지식 유희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예[古1와 이제(今)를 종횡으로 왕래하고,
그대와 서로 분망하게 질주하면서, 때로 웃고, 때로 울며, 가끔씩 가르치며
격동에 잠겨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너무 경박한 것도 병이려니와 또한 너무 진지한 것도 병일지니, 암담하고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안개 자욱한 시대에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달래고 위로해야 하는 것-필자가 독자들에게 기대하기는
오직 이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만나야 한다. 남과 북이 30차선 고속도로로
후련하게 뚫리고, 1,300년 동안 잠자던 을지문덕 장군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서는 정신으로 만나야 하며, 마음이 현실을 돕고 현실이
마음의 평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만나야 하고, 마침내 우리 발밑에
피어난 한 포기 제비꽃을 흐뭇한 마음으로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그런 조촐한 인간과 인간으로서 만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남 '지금의 그대' 앞에 필자는 '지금의 나'로서
따끈한 차 한잔을 권하리니, 거기 모든 사물은 그러히 그러한(如
如) 모습으로 깨끗하고 단정하게 서 있을진저!
단기 4330년(서기 1997년) 6월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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