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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살아 있는가― 고(故) 박기서 씨의 삶과 역사정의에 대한 성찰 본문

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정의는 살아 있는가― 고(故) 박기서 씨의 삶과 역사정의에 대한 성찰

柏道 Tony 2026. 7. 11. 11:01

정의는 살아 있는가
― 고(故) 박기서 씨의 삶과 역사정의에 대한 성찰

최근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 씨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의 삶은 단순히 한 개인의 생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가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이끈 대표적 지도자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혼란 속에서 그는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암살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비극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구 선생의 암살은 수많은 의혹을 남겼다. 안두희는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 복역한 뒤 출소하였고, 이후 오랜 세월을 사회 속에서 살아갔다. 

이 과정에서 암살 배후에 대한 의문과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 부족은 국민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역사적 상처를 남겼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집단적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박기서 씨였다.
그는 특별한 정치 권력도, 사회적 영향력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범 김구를 존경했던 한 시민으로서, 역사적 정의가 바로 서지 못했다는 현실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정의봉(正義棒)'이라는 글귀를 새긴 나무 방망이를 들고 안두희를 찾아갔고, 결국 폭행 끝에 안두희는 사망하였다. 이후 그는 도주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경찰에 자수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의 행동은 대한민국 형법상 명백한 범죄였다. 민주국가에서 개인이 사적인 응징을 하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반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폭력이 법 위에 설 수는 없다. 만약 개인의 신념에 따라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법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 운영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 점에서 박기서 씨의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원칙 위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법률 조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많은 국민들이 그의 행동을 두고 '의인'이라 불렀는가. 왜 그의 별세 소식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했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폭력을 찬양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정의를 대신 짊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박기서 씨 개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그가 보여준 역사적 분노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심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국가와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역사 정의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가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때 그 공백은 사회적 갈등과 상처로 남는다. 결국 그 상처는 한 개인의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박기서 씨의 삶은 폭력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그들의 헌신은 오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으며, 국가와 국민은 이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계승할 책임이 있다.
 
동시에 민주공화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 역사 정의와 법치주의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되어야 할 공동의 가치이다.

오늘 우리는 박기서 씨를 추모하면서 한 사람의 행동만을 평가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왜 이러한 비극적 사건을 반복해서 기억하게 되었는지, 역사 정의는 충분히 실현되었는지,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역사를 물려줄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정의는 단순히 법원의 판결문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양심과 역사적 기억 속에서도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 정의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과 제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고 박기서 씨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의 삶을 둘러싼 평가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삶이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역사 정의를 끝까지 바로 세웠다면, 과연 이러한 비극은 일어났을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몫이다. 

정의는 감정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법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세우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법질서를 확립할 때 비로소 정의는 살아 있는 가치가 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삶이 남긴 역사적 질문이 우리 사회의 성숙한 성찰과 더 나은 정의의 실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26년 7월 10일 
대한역사광복군 군장 황천풍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