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신지학 대의 4. 마스터들 2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지학

신지학 대의 4. 마스터들 2

柏道 2025. 1. 23. 18:56

신지학 대의 4. 마스터들 2

 

 
 

마스터들 2

다른 여러 마스터들도 또한 이 사역에 참여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 중 한 분과 연결될 것은 당연하다. 마스터들은(―당신이 이름을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분들조차) 그렇게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이는 사역 중에 그들의 얼굴을 계속 직접 뵙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신은 마스터들이, 모호한 이상(理想)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비록 모든 점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진화하기는 했지만)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그들의 참 모습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분명 인간이기는 하지만 결점이 없는 인간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힘과 사랑과 자비를 방사하는 신과 같은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가공할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외경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앞에 서면 무서움이나 불안감 따위는 사라지며 항상 마음의 고양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스터 앞에 선 사람은 그 위대함 때문에 겸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마음 속에 일종의 강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마스터도 인간이고 그런 그가 성취한 일이라면 자기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스터의 면전에 서면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어려움들이 어째서 자기에게 두려움과 좌절을 갖다 주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며 경이감으로 그 고통을 되돌아보게 된다.

적어도 사물의 긍정적인 부분을 본 지금, 그는 다시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느낀다. 이제 그는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할지라도 그 위로 태양이 항상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잊지 않게 된다. 마스터들의 강한 진동은 당신 안에 그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질들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당신은 넘치는 자신감과 사랑 그리고 마스터와 함께 항상 있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 속에 부정적인 속성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마스터가 당신의 부정적인 성질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꺼리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마스터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용서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마스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아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나 많은 마스터들이 비교적 최근 시대에 역사적인 인물로 알려진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마스터 쿠트후미는 유럽에서 철학자 피타고라스로 화신했었다. 그 이전에는 이집트 사제, 사르톤이었으며 한 번은 소아시아에 있는 아게이트 신전의 대 제사장이기도 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는 산을 넘어 침략해온 야만족 무리들이 주민들을 대량 학살할 때 같이 죽임을 당했다.

그 때 그는, 도망가려다 익사한 그리이스 어부의 육체를 즉각 취했고 그 육신으로 페르시아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거기에서 그는 조로아스터교를 현대적 형태의 마즈다야즈니안(Mazdayaznian) 종교로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후에 그는 로마에 있는 주피터 신전의 사제였고 그 이후에는 위대한 불교의 스승, 용수(나가르쥬나)로 화신하였다. 우리는 우리 그룹 멤버들의 전생을 조사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항상 사제였거나 영적인 교사였다.

 

한편 이렇게 먼 과거를 조사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의 육체를 그리스도에게 맡기는 영광을 누렸고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그는 트야나의 아폴로니우스로 화신하였다. 11세기에는 인도에서 스승, 라마누자차랴로 화신했다. 라마누자차랴는 힌두교에서 헌신적 요소를 부활시켜 그것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스승이다.

 

당신들 중에는 신지학의 활동을 주로 돌보고 있는 두 분의 마스터말고 다른 마스터들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마스터는 우리를 위해 <길을 밝히는 빛>, <하얀 연꽃의 목가>를 구술해 주었고, 유럽에서의 활동을 돌보고 있는 다른 마스터 또한 우리를 위해 출판 활동 전반에서 아주 놀라운 책들을 써주었다. 전생에 예수였던 마스터는 특별히 기독교 교회들의 다양한 활동을 인도하고 있고 또 다른 마스터는 특히 이곳 인도에서의 활동을 돌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의 진화는 결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인도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거주자들에게 자유의지가 허용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진화를 관장하고 있는 것은 이 아데프트들의 하이어라키이다. 대백색형제단의 멤버들은 그들의 에이젼트(agent)들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조언과 암시를 주면서 전쟁이 사라지고 우주적 형제애가 편만한 위대한 미래를 향해 인류가 나아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카르마 문제를 고려,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도록 강제하기는 분명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진정한 이익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마스터 쿠트 후미는 언젠가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그대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쉽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면 기꺼이 그대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행위의 카르마는 나의 것이지 그대의 것이 아니며, 그대는 단지 즉각적으로 순종한 행위에 대한 카르마만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똑똑한 노예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 자신도 언젠가는 마스터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들이 미래에 더 위대한 일을 맡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의 소박한 일을 기꺼이 떠맡아야만 한다. 사실 언젠가는 진정 아주 중요한 기회(또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백 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일이다. 큰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도 놓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작은 임무들을 떠맡는 버릇이 길들여져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옳은 일을 하는데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중요한 순간에 자동적으로 옳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선행 또는 악행은 전체 세계에 대해서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가 오로지 무조건 이 작은 것들 중에서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기를 배운다면, 대백색형제단은 보다 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를 안전하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실로 우리는 마스터들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려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미거리로서가 아니라)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진실한 모습, 즉 우리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과 우리 인간들이 다양하듯이 그들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마스터들 모두에게는 지혜와 힘과 사랑이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들이 모두 똑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마스터들도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인류라는 사다리의 맨꼭대기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아직까지는 다소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해도 언젠가는 그들이 선 위치에 우리 또한 도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스터들에 대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다방면에 걸쳐 두루 발전을 이룬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한쪽 면에만 치우쳐서 발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적,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과 자비가 부족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랑이 넘치는 반면 지적인 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마스터는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다. 대표적인 예로 마스터 쿠트후미는 피타고라스의 빼어난 지성과 함께 사랑과 자비 또한 구족하신 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스터들의 놀라운 지성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흔히 아데프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지의 족쇄를 떨쳐버려야만 하고 무지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전지(全知)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마스터들과 직접 만나면서 알게 된 바로는, 그것이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만국어에 통달하지 못한 마스터들도 있고 예술이나 음악에 조예가 없는 마스터들도 있고. 이런 식이다. 내 생각에 무지의 족쇄를 떨쳐버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마스터들 자신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어떤 분야에 대한 어떤 지식이든 자유로이 부릴 수 있는 그런 힘을 얻었다는 뜻으로 보아진다.

 

분명 마스터들은 자신의 육체적 두뇌에 모든 것을 저장해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필요한 지식이면 어떤 것이든 매우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들 들어 언어의 문제에 있어서 만일 한 마스터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편지를 쓰길 원하면, 그는 그 언어를 알고 있는 제자의 두뇌를 자유로이 활용한다. 마스터의 생각을 그 제자의 두뇌에 투사시켜 그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아서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마스터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언어로 말을 한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멘탈계에서 화자(話者)의 이면에 있는 상념을 포착할 수 있다.

 

물질계에서 마스터를 만난 평범한 사람이 그를 마스터로 즉각 알아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곤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확실히 그 사람(아데프트)이 인상적이며 고결하고 위엄있고 신성하며 고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 앞에 선 자가 놀라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데프트인지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그의 코잘체를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는 없지만 코잘체의 거대한 크기와 특별한 색상 배열 -일곱의 대 타입마다 그 배열이 다르다- 을 통해 우리는 그의 발전 정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데프트들에게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외부적 특징이 없다. 비록 그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어떤 큰 고요함과 자비가 느껴지고 얼굴에는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할 때 나타나는 기쁨에 찬 평화가 서려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데프트들은 대부분 아주 미남들이다. 그들의 육체는 완전히 건강하다. 이는 그들이 완벽한 위생적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소진시켜야할 많은 카르마를 갖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것은 육체의 외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데프트들의 경우에 이미 오래전에 모든 카르마가 소진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그 육체는 물질계상에서 자아의 영광체(아우고에이데스, Augoeides)(*주12)의 완벽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마스터의 육체는 탄복할 정도로 핸섬할 뿐만 아니라 다음 화신에 입게 될 새로운 육체 또한 이전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변형시킬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동안 육신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완벽한 건강과, 걱정 근심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마스터들은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들의 육체가 상식적인 나이를 훨씬 넘어섰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있다. 나는 블라바츠키 여사가 그녀의 스승(마스터 모리야)은 지금도 60여년전 어린 시절에 처음 본 그때의 모습 그대로 하루도 더 나이를 먹지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딱 한 경우, 최근에 현 육신으로 아데프트의 위계에 오른 어떤 마스터는 그 얼굴에 연로함이 비치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과거의 카르마가 일부 남아 지금의 화신으로 넘어 온 결과인 것이다. 나는 그가 다른 육체를 선택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그러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아데프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말수가 적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다. 바쁜 사람은 한가하게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은 법이다. 그들의 제자인 블라바츠키 여사는, 내가 이제까지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화술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얘기만을 위해 얘기하는 적은 없었다. 마스터들 중 어떤 분은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는 결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할 경우 그것은 항상 용기를 북돋워 주거나 도움을 주거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는 항상 말을 부드럽고 상냥하게 했는데 그러는 중에도 언뜻언뜻 날카로운 유머감각이 비치곤 했다. 그러나 그 유머 자체도 언제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으며 결코 남을 마음 상하게 하는 법 없이 항상 어려움을 가볍게 하거나 필요한 꾸지람을 부드럽게 하는 데 사용하였다. 확실히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오컬트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의 진화를 돕기 위해 육체를 간직하고 있는 아데프트들의 수는 매우 적다. 아마 전부 합쳐서 오륙십 명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제자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다른 사역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아데프트라는 용어를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그녀는 실제로 어디에선가 비전(秘傳)을 받은 아데프트와 비전을 받지 않은 아데프트에 대해 말하고 있다.

 

후대의 모든 저작들에서 우리는 비전가라는 단어를 신성의 길에 이르는 네 가지 큰 단계 중 적어도 첫 단계를 통과한 자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고 있으며, 아데프트라는 단어는 아세카 수준에 도달하여 이 체인기에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진화를 성취한 자라는 의미로 엄격히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세카의 의식은 육체가 깨어있는 동안에도 니르바나계(아트마계) 상에서 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미 아데프트의 위계에 오른 자들 중에서도 위에서 말한 극소수 만이 육체를 가진 상태로 인류를 돕기 위해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어떤 특정한 상황 아래서 인간을 제자로 두고 있다. 우리가 마스터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분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맡은 임무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도움없이는 인간은 비전(秘傳)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주

주12) 영광체, 아우고에이데스

 

‘광채’라는 뜻이다. 산상에서 빛의 몸으로 변화된 예수처럼 인간의 육체가 영화되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영광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