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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강의로 다시 읽는 중용 사상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다석 강의로 다시 읽는 중용 사상

柏道 2024. 12. 20. 02:57

출판사 책소개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은 하나다!

다석 강의로 다시 읽는 중용 사상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유교, 불교, 노장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어 독창적인 종교 철학의 체계를 세운 대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 그는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석가·공자·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다석은 여러 동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겨 강의 자료로 썼으나 우리말로 완역한 것은 『중용(中庸)』과 『노자(老子)』뿐이었다. 『다석 중용 강의』는 다석의 직제자 박영호가 다석의 『중용』 번역과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이한 책이다. 다석 류영모가 YMCA 연경반 등에서 행한 고전 강의에는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석의 강의는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모아 세움으로써 사상의 일대 장관을 만들어냈다. 독창적인 언어로 대자유의 세계를 구현한 다석의 사상은 한국 지식계에 저류와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 다석은 유교 경전 중에서도 특히 『중용』을 형이상학적 진리를 담은 경전으로 소중히 여겨 직접 번역하고 강의하였다. 『다석 중용 강의』는 1967~1968년에 다석 류영모가 우리말로 완역한 『중용』과 강의 내용을 40여 년 만에 그의 참제자 박영호가 쉽게 풀이한 책이다. 『다석 중용 강의』에는 공자의 유교 사상뿐만 아니라 불교, 기독교, 노장 사상을 포함한 종교 사상 전반에 대한 다석의 고유한 해석이 깊고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가 한자리에 모여 앉은 듯, 『중용』을 주제로 삼아 동서가 회통하는 말씀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석의 해석을 통해 공자는 하느님의 아들로 나타나며, 『중용』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드러난다. 동서 사상을 두루 꿰뚫어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종합한 대각(大覺)의 정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막힘없는 깨달음의 경지가 독특하고 생생한 언어로 솟아난다.

다석 연구에 빛이 될 또 하나의 귀한 텍스트

동서고금의 많은 사상과 철학에 달통했던 사상가 다석 류영모는 매일 기록한 『다석일지』 외에 다른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다석의 사상이 담긴 책들은 다석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다석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적은 기록이거나 해설서이다. YMCA 연경반 강의의 속기록 전문을 다듬은 『다석강의』와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서 한 강의를 녹취해서 푼 『다석 마지막 강의』가 다석의 육성을 생생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석 중용 강의』를 통해 다석 류영모의 독창적 유교 해석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다석이 우리말로 완역한 『중용』과 그것을 토대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또 하나의 귀한 다석 사상서이다. 여기에 다석이 인정한 유일한 직제자 박영호가 쓴 풍부하고 깊이 있는 해설은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었던 다석 사상의 넓고 깊은 지평을 한층 가깝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젊은 류영모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구학문을 하다 신학문으로 기울었다. 남강 이승훈이 세운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시당 여준과 단재 신채호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류영모의 나이 20살이었다. 그 두 사람이 류영모에게 동양학을 공부하기를 충언했다. 그래서 『노자』와 불경을 비롯하여 동양학을 본격적으로 두루 섭렵하게 되었던 것이다. 월남 이상재의 뒤를 이어 서울 종로 YMCA 연경반을 35년(1928∼1963년) 동안 지도하면서 성경만이 아니라 동양 고전을 두루 강의하였다. 꺼져 가는 동양 고전에 대한 면학 정신의 불씨를 살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1967∼1968년에 류영모가 빛골(光州) 무등산에 자리 잡은 김정호(목포대 교수)의 산양목장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류영모가 『중용』을 우리말로 다 옮겼다. 그 복사본이 필자에게 전달된 것은 1992년이었다. 여러 동양 고전을 발췌해서 우리말로 옮겨 강의 자료로 썼으나 우리말로 완역한 것은 『중용』과 『노자』뿐이다. 그밖에 문장이 짧은 불경인 『반야심경』, 장횡거의 『서명(西銘)』 같은 것은 여럿 있다. 류영모가 『논어』, 『맹자』, 『주역』, 『서경』 등 다른 유교 경전도 좋아하면서 굳이 『중용』만 우리말로 완역한 까닭이 무엇인가? 유교 경전에는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모자라는 것이 사실인데, 『중용』만은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풍성하기 때문쳀었다. 『중용』에는 노장(老莊)이나 불경(佛經)에 못지않은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통해야 한다. 그것이 중용이다.”

하느님 말씀이 곧 중용(中庸)이다. 다석 류영모는 공자의 말씀이 담긴 『중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다. 『중용』을 주석한 주희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절제하는 삶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 곧 ‘중용’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희의 해석과 달리 다석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곧 ‘중용’이라 하였다. 우리가 받은 본바탈(性)로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중용인 것이다. 다석은 제나의 감정인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하면 제나 너머의 얼나를 『중용』의 중(中)이라고 본다. 제나의 감정이 일어나도 얼나의 절제를 받으면 인격이 부드러워(和)진다는 것이다. 중(中)은 이 우주의 근본인 하느님이고 부드러운 이는 세상에 하느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하느님 아들이다. 곧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가 중용의 뜻이다. 예수가 가르쳐준“(하느님)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오 6:10)가 바로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와 같은 뜻이다. 이것을 더 줄이면 석가의 사성제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된다. 사람은 물욕, 식욕, 정욕의 짐승 성질(본성)을 지닌 채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짐승의 ‘제나(自我)’는 참나가 아니므로 짐승의 ‘나’는 죽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얼생명(靈性)을 받아 참나가 되자는 것이다. 제나의 감정인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중(中)’이다. 희로애락이 일어나는 제나를 죽이고 하느님의 성령인 얼나로 솟나 참사람이 되는 것이 곧 중용이다.

공자는 하느님 아들이다

다석 류영모는 예수와 붓다를 모두 어리석은 욕망과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힌 ‘제나’를 벗어버리고 ‘얼나’로 거듭난 하느님의 아들로 보아 좋아하였다. 그렇다면 예수, 석가와 함께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공자도 얼나를 깨달은 사람인가? 다석은 공자도 예수, 석가처럼 얼나로 솟난 하느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았다. 공자의 말씀과 몸가짐에서는 짐승의 냄새가 안 나고 진·선·미의 거룩한 향내가 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를 효(孝)의 개념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관계로 이해한 류영모는 공자가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 즉 얼나를 깨달은 군자(君子)를 하느님인 ‘그’를 그리워하는 이라 하여 ‘그이’라고 부른다. 하늘의 얼숨(성령)이 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 영원한 생명인 말씀이 되어 솟나는 것이다. 공자가 하느님 아들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중용』 이전에 『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류영모는 하느님은 너무 자주 가볍게 입에 올리면 싱거워진다고 말하였다. 공자는 하느님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삼갔다. 그렇다고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자주 말한 인(仁)과 덕(德)이 바로 하느님 아들 노릇 하는 것이다. 공자에게는 기도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데 “잠잠히 알게 된다(默而識之).”(『논어』, 술이 편)라는 말은 기도 명상 가운데 깨닫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공자의 유일한 스승님은 하느님이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내 선생이었다고 말한 것은 스승이 없었다는 말이다. 류영모 말과 같이,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신 편지인 것이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는 하나로 통한다

류영모는 평생 예수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성경을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석가,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성인들을 두루 좋아했다. 그는 성경과 함께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일상에서 성인의 삶을 실천한 끝에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생사(生死)와 애증(愛憎), 욕망의 노예인 ‘제나(自我, ego)’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야(부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류영모는 바로 이것이 예수와 공자, 노자, 붓다가 인류에게 가르쳐주려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로 통한다. 다석은 불경이나 성경 같은 형이상적인 종교의 경전만이 아니라, 『중용』, 『논어』, 『맹자』 같은 유교 경전에도 하느님 말씀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주희가 입힌 겉옷을 벗겨내야 『중용』의 참뜻을 알 수 있다

다석은 『논어』, 『맹자』, 『서경』 등 여러 유교 경전을 두루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중용』만 유일하게 우리말로 완역하였다. 그것은 다른 유교 경전과 달리 『중용』에 형이상학적 진리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이란 말은 원래 공자의 말이 담긴 『논어』에서 처음 나왔다. 그런데 공자가 다녀간 뒤로 공자처럼 깊은 깨달음을 이룬 이는 맹자밖에 없어 중용의 뜻을 바로 아는 이가 드물었다. 더구나 ‘중용장구(中庸章句)’라는 『중용』의 주석서를 쓴 주희(朱熹)는 ‘중용’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여 공자의 사상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그로 인해 『중용』에 담긴 형이상의 사상이 사라지고 인간사의 문제를 다루는 형이하의 사상으로만 전해지게 된 것이다. 주희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사고(思考)를 하느님에 맞춘 공자의 『중용』을 바로 알 수도 없고 바로 풀이할 수 없었다. 류영모는 중(中)을 하느님(성령)으로 보았고 하느님의 생명인 얼(성령)을 받아서 쓰는 것이 중용이라고 말했다. ‘용(庸)’은 ‘용(用)’과 통하는 글자라고 말하였다. 물고기가 물을 숨 쉬면서 살듯, 짐승이 공기를 숨 쉬면서 살듯, 사람은 얼(성령)을 숨 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짐승인 사람이 탐·진·치의 생각을 좇는 것인데 하느님을 그리는 거룩한 생각을 하는 것을 얼숨을 쉬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주희는 ‘중용’을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못 미치지도 않는 평상의 이치다(不傭不倚無過不及而平常之理).”라고 해석하였다. 류영모는 주희로 인해 유교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다석 중용 강의』에서 박영호는 주희와 후대 유학자들이 잘못 풀이한 『중용』 33장에 담긴 형이상적 진리를 다석의 언어와 사상으로 새롭게 밝혀 보여준다. 우리말로 철학한 최초의 사상가인 다석의 『중용』 풀이는 그 자체로 다석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귀한 자료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에게 다석의 말은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예를 들어, 단 한 글자의 한자도 쓰지 않으려 했던 다석은 ‘1장’, ‘2장’ 할 때의 ‘장(章)’을 글월의 ‘월’로 썼다. 이 점을 고려해 저자 박영호는 『중용』 각 장의 다석 번역 글 아래에 낱말의 뜻을 친절하게 풀이해놓았다. 더불어 다석의 『중용』 강의를 바탕으로 씌어진 각 장 ‘풀이’에는 유학 사상의 흐름과 『논어』, 『맹자』, 『노자』를 비롯해 성경과 불경에 이르기까지 다석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동서고금의 철학과 사상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풀이]만으로도 또 하나의 훌륭한 다석 사상 해설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