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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보자 대자연(하느님)을! 觀太自然界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보자 대자연(하느님)을! 觀太自然界

柏道 2022. 6. 8. 03:49

다석 류영모 명상록---2. 보자 대자연(하느님)을! 觀太自然界


다석 류영모 명상록


보자 대자연(하느님)을! 觀太自然界


깜짝 사이 참나 계심을 느끼는 빈마음 瞬息實存虛空心

여느 일하는 이제라도 세상 소리를 들어야 茶飯現在觀世音

얼의 불꽃에 스스로 더러운 몸을 불살라 性焰自燒却垢肉

재앙(몸)의 씨들은 자기도 모르게 말씀을 거스른다. 禍種無妄逆福音
(1959.12.22)


茶飯(다반):예사로운 일 , 恒茶飯의 약어. 瞬:눈깜짝할 순 , 잠깐 순

瞬息(순식):눈을 한번 깜짝이거나 숨을 한 번 쉴 동안의 짧은 시간

垢 : 더러울 구. 焰 : 불꽃 염. 燒却(소각):불사르다. 無妄(무망):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류영모는 말하기를 "하느님이라는 말이 싫다면 진리라고 하자. 진리라는 말도 싫다면 자연이라고하자"라고 하였다.마하트마 간디는 하느님을 진리라고 하였고 스피노자는 하느님을 자연이라고 하였다.여기에서 태자연계라고 한것은 하느님을 말한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온통(전체)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하나(절대)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모두가 중간에다 희망을 걸어놓고 ,거기에 맞는 진 선 미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다다르면 만족한다.그러나 예수나 석가와 같이 우주를 깊숙이 본 이는 전체요 절대인 하느님 밖에는 모든것을 거짓으로 보았다.

영원절대에 비춰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라는 것을 아주 무생물로 취급하는 수가 많다. 생명이

없는 것으로 알고 물건 취급을 하니 우주도 퍽도 대접을 못 받는다.

그러나 대접을 받거나 못 받거나 거기에는 하느님의 성령이 가득차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汎神論같은것을 아주 싫어한다. 사물에도 성령이 있다고 하면 당장 反神論이라고 단정을 하고 내던진다.그렇게 해서는 올바르게 살 수 없다. 자기 것밖에는 모두가 틀렸다,나쁘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1512년 11월1일 萬聖節에 세상에 공개된 미켈란제로의 작품으로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로 그려진 노인 하느님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스피노자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人態神의 유치한 신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하느님은 無形無狀하여 없이 계신다.

스피노자는 이르기를 "그 본성에서 보면 실체는 변태에 선행하여 존재한다.자연 속에는 실체와 그 변태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스피노자『에테카 정리 』1,6)라고 하였다.

자연은 靈인 본체와 物인 樣態로 되어 있는데 양태는 본체인 실체의 변태라는 것이다.이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었다는 요한복음의 사상과 일치한다. 하느님이 體라면 말씀은 用이다. 여기에서 존재론상 명실상부한 유일신관을 볼수 있다.슈바이처는 범신론이 유일신과 상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범신론에서 비로소 절대존재인 유일신이 드러난다.

'하느님은 곧 자연'이란 스피노자의 자연은 '참은 자연의 다스림을 받는다'(道法自然-노자 25장) 라고 한 노자의 자연과 일치한다.

R.W에머슨은 이렇게 말하였다."우주는 자연과 정신으로 이루어졌다. 자연은 정신의 상징이다." 에머슨은 스피노자의 자연을 우주라 하였다.에머슨에게는 우주가 곧 하느님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에머슨은 류영모처럼 허공을 말하지 않았다.

류영모는 허공을 강조 한 것이 다르다."형이하의 물건을 固有한 것으로 느끼는 것과 형이상의 허공을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이 합해진 하나(절대)가 하느님이다."



깜짝 사이 참나 계심을 느끼는 빈마음 瞬息實存虛空心



瞬息이란 글자 그대로 눈 한번 깜짝하는 동안,또는 숨 한번 쉬는 동안을 뜻하는 순간이요 찰나다.시간은 순간의 연속이다. 사람은 이 순간에 시공의 상대계를 초월하여 절대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을 깨달음이라 하며 頓悟라 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쏘아 맞히듯이 곧이 곧아 神聖하고,靈明하고 영원한 나(하느님)의 한 복판을 똑바로 맞추어 참나를 깨닫는것이 가온찍기(「·」)이다. 내 맘에하느님 으로부터 온 영원한 생명의 긋(點)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가온찍기야 말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요 영원을 만나는 순간이다. 이 찰나에 영원한 생명(얼나)을 느끼지 못하면그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은 없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靈我)는 시간 공간과 무관하다".

이제까지 임자 노릇하던 제나(自我)가 거짓 나임을 알고 제나를 버린다. 그러면 맘속에 가득찼던 탐 진 치의 獸性이 없어져 맘이 빈다. 맘이 비면 하느님의 성령이 가득 찬다. 하느님의 성령이 참나다. 이것이 순간에 이루어 진다. 이렇게 거짓 나와 참나가 만나면 거짓나는 사라지고 참나의 존재는뚜렷해 진다. 이것을 하느님을 영광되게 한다는 것이다.이처럼 상대와 절대,유한과 무한이 만나는 순간이 현존재가 체험하는 실존의 순간이다.이것을 류영모는 '가온찍기'라 하였고,틸리히는 카이로스(瞬間時)라고 하였다.

틸리히는 카이로스를 '영원히 현재에서 분출해 나가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이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얼나를 깨달아서 하느님 아들이 된다. 하느님 아들인 참나와 하느님이 얼나로 하나다.얼나로는 내 생명과 하느님의 생명이 하나다.얼나와 하느님은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유한과 무한이 내게서 이어진다. 유한과 무한이 이어진 것이 바로 실존이다. 그래서 예수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10:30)라고 하였다. 예수가 말한 나는 하느님이 보내신 성령의 얼나임을 알아야 바로 아는 것이다.



여느 일하는 이제라도 세상 소리를 들어야 茶飯現在觀世音



앞의 구절이 하느님 사랑이라면 이 구절은 이웃 사랑이다. 하느님 사랑이 위로 진리(얼나)를 구하는 것이라면(上求菩提) 이웃사랑은 아래로 중생을 교화시키는 것이다.(下化衆生) 모든 성인들이 이를 실천

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다반이란 항다반사를 줄인 것이다. 항다반사란 예사로운 일,곧 늘 있는 일이란 뜻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말한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밥 먹고 똥누고 하는 이일을 얼마나 더 해보자고 애쓰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다"라고 하였다.항다반사로 인생을 보내는 것이 어이없다는 말이다.항다반사가 순조롭지 않아 살려달라는

이들이 많다.아프리카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더니 가까이 북한에도 굶어 죽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어려운 사람의 호소를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이가 관세음보살이다.류영모의 말은 이웃의 항다반사에

현재의 관세음보살이 되자는 것이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정말 남의 선생 자리에 서는 이는 선지자(先知者)의 성격을 꼭 가져야 한다고 보겠다.선지자라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없다.그저 하느님이 맡겨 주신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이

다. 세상을 바로보고 생각이 나면 옳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그대로 관세음이다. 참으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도와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얼의 불꽃에 스스로 더러운 몸을 불살라 性焰自燒却垢肉



류영모는 말하기를 "미인 코에서는 콧물이 안 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안 나오나?그 몸에서 떨어지는 때는 때가 아닌가? 그 창자에는 똥이 없는가? 절새 미인도 알고 보면 똥자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몸이 더러운 것은 씻으면 되지만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더 더러운 것이 우리 몸에 있다.몸이 지니고 있는 짐승의 성질인 삼독이 그것이다.사람은 이 몸뚱이의 삼독으로 인하여 악마가 될수도

있다.

예수는 말하기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마태오 15:16-20)라고 하였다. 예수는 탐진치라는 말은 안 썼으나 모든 죄악을 분류하면 삼독으로 나뉜다

이 나라 경찰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탈옥수 신창원도 알고보면 무리하게 삼독을 행사 한 것이다.

마음의 때(垢)인 삼독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성령(말씀)으로 불사르는 것이다."이런 때를 불살라 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性焰인 바탈 불꽃이다. 옛 스님들 가운데는 몸을 불살라 등신불이 되기도 했다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자신을 참으로 불사르고 싶으면 하느님 성령인 性焰으로 수성을 불살라 聖別을 이뤄야 한다. 그것을 실천한 이가 예수나 석가 같은 성인이다.



재앙(몸)의 씨들은 자기도 모르게 말씀을 거스른다 禍種無妄逆福音



재앙의 씨앗은 말할 것도 없이 짐승 성질인 삼독이다. 사람도 몸으로는 짐승이라 이 삼독의 수성을 지녔다.우리의 선조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수성인 탐진치 삼독을 밑천으로 살아왔다. 사람이 바로 서는 유인원이 된지가 2백만 년에서 3백만 년이 된다고 한다. 류영모는 사람의 짐승성질이 인류의 원죄라고 하였다.

사람에게 끈질긴 삼독의 욕망이 없었더라면 벌써 멸종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짐승만큼도 삼독을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부리다가 재앙을 부른다. 그래서 맹자가 이르기를 "하늘이 짓는 재앙은 피할수 있지만 스스로 짓는 재앙에서는 살 길이 없다"(맹자 공손추 상)고 하였다.그러나 하느님이 보내시는 성령의 불길에 짐승의 성질을 불사른 이는 삼독의 욕망에 끌려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일

따위는 없다 .재앙의 씨인 삼독을 쫓느라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른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르면 멸망이다.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면 악한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간디-날마다의 명상) 라고 하였다.

그래서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몸으로는 다른 짐승들과 같은데,그래도 귀한 것이 하느님의 씨(얼)가 사람의 맘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하느님의 씨(얼)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높고 귀하다.사람은 분명 짐승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음 이 얼로 솟나는 우리의 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란 다른 것을 직접 간접으로 잡아먹고 사는 짐승이다.

그런데 다른 짐승과는 달리 하느님의 얼이 있어 맘속을 밝혀 위로 한없이 솟나려 함이 인생의 길이다."